퀵바

카이첼 님의 서재입니다.

서브라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최근연재일 :
2008.11.22 23:02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1,231,924
추천수 :
2,226
글자수 :
613,860

작성
07.05.20 22:20
조회
9,442
추천
47
글자
11쪽

가장 위대한 전사(1)

DUMMY

‘...전사 쉬프로카티는 그 들소의 뼈를 흙에 묻고 두 손을 올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는 들소의 뼈가 묻힌 곳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면서 춤을 추며 위테드라여아수시르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중심을 향해 모이는 춤이 그의 노래를 하늘로 올려 보냈다. 그가 한 바퀴 돌 때마다 흙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자라난 흙은 들소의 형상을 갖추었다.

들소의 형상이 커지면서 흙의 거칠한 감촉이 매끄러운 가죽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뚫려진 들소의 구멍으로 생기어린 숨결이 들락이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가 춤과 노래를 멈추었을 때 죽었던 들소는 살아났다.

들소의 무리는 분노를 거두고 살아난 그들의 부모이자, 자식이자, 연인이자, 동료인 그를 맞이하며 기뻐하며 춤을 췄다.

그들은 쉬프로카티를 향해 외쳤다.


“그대, 인간이여! 그대, 위테드라여아수시르에게 엎드려 절하는 자여! 그대야 말로 가장 위대한 전사다! 이제 우리를 사냥할 때는 이와 같이 춤을 추어다오! 그리하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대들을 위해 기꺼이 죽으리라!”


그리고 들소는 떠나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기뻐하며 쉬프로카티를 가장 위대한 전사로 칭송했고, 촌장의 자리를 주었다. 이것이 사람들이 들소를 사냥할 수 있게 된 기원이다. 만물에 편재한 위테드라여아수시르를 찬양하라.’


엘은 책을 덮었다. 고루한 책은 당장에 책먼지를 뿜어낼 것 같은 고루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그가 머물고 있는 곳은 울티아의 그럭저럭 중급쯤 되는 여관의 한 곳이다. 카린은 엘의 얼굴이 불쾌한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책 잘보고 있다가 왜 그래?”


울티아에 도착한 엘은 맨 먼저 책을 샀다. 책의 제목은 ‘신대륙의 원주민 문화연구’라는 꽤 재미없어 보이는 것이었다. 저자는 비튼이라는 비교민속학자라고 한다. 하지만 엘은 얼마 전 각지의 민속(정확히는 결혼제도)에 대해 연구한, 같은 종류로 보이는 책을 아주 감명 깊게 보았다. 불의(?)의 사고로 소장할 수 없게 된데 참으로 안타까워하고 있다. 더해서 루딜에서 쿠틴 댄스에 대해 들은 이후 원주민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서점 주인이 요즘 ‘교양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책이라면서 엘에게 소개한지라 거기 혹해서 샀다.


“아니, 책이 좀 짜증나서.”


“역시 재미없나 보지?”


카린이 알만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제목만 봐도 재미없다는 것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그녀는 책을 싫어하지 않지만 좀 촉촉한 책을 좋아한다. 소설, 그 중에서도 연애소설이 그녀 취향이다.


“재미없기 이전에... 책이 굉장히 짜증나.”


“어째서?”


“너무 내용이 재수가 없어. 축약하면 원주민은 다들 멍청한 쪼다들이고, 아루스 시민은 논리적이고 현명한 문명인이라고 주장하잖아. 그러면서 원주민 신화나 풍습 소개하면서 그것들의 비논리성이 어쩌고 하면서 깎아내리고 있어. 쿠틴 댄스의 기원신화도 현실도피를 위한 비논리적이고 자위적인 사상체계 운운하네. 죽었던 들소 살리는데 그런 게 말이 되냐면서. 아 뭐, 특별히 반론할 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너무 짜증나. 이렇게 따지면 용들이 ‘무식하고 병신 같은 인간새끼들.’ 이라고 주장해도 아무 할 말이 없잖아.”


투덜거리는 엘의 말에 카린은 눈을 반짝이며 잠깐 콧대를 높였다. 어쨌든간에 용으로서 용이 높이 평가받는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평범한 인간이 말했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했겠지만 엘은 연인인데다 삼좌의 후계자다. 신분으로 따져도 전세계, 전종족을 통틀어 최고위다. 이어서 그녀는 엘을 달랬다.


“뭐 그러려니 해. 세키리아에서는 사람들이 세키리아가 제일 잘났다고 했잖아 뭐. 다들 자기 얼굴에 분칠하기 바쁜 것 같아. 엘이 삼좌의 후계자라서 그런데 민감한 것 뿐일 거야.”


“음, 그것도 그런가.”


엘도 띄워주니까 기분 좋게 카린의 말을 받아들였다. 단지 띄워줘서 그런 건 아니고 실제로 삼좌는 모두 기저에 공통된 세계관의 지니고 있다. 그것은 모든 현존재는 평등하다는 것이다. 물론 기저(基底)만 같다. 세부로 들어가면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가령 라이트닝 클로 같은 경우는 ‘모두 평등’에서 좀 과격하게 뻗어나가서 ‘다 평등하니까 계급장 떼고 붙을 자신 없는 것들은 구제할 길 없는 좆병신!’이라고 주장한다.


“하여간 재수가 없어서 이 책 더 읽지는 못하겠고, 그냥 밖에 나가자. 어차피 좀 찾아가야 하는 곳도 있고.”


엘은 책을 낡은 침대 위에 냅다 던지며 말했다. 카린은 반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관을 나선 두 사람은 울티아의 중앙관청으로 갔다. 중앙관청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관청은 없었다. 트리타스처럼 수십 개 구획으로 나눠 일일이 관청을 두어야 하는 거대한 도시가 성립하기에 신대륙은 환경이 너무 척박했다. 대포가 개발된 이후 아루스의 도시개발은 성벽을 배제하고 이루어지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데, 울티아는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싸여있다는 점을 봐도 그 척박함은 명료했다. 그래도 서점이 있을 정도니 도시로서의 품격은 갖추고 있다고 할 법 했다.


관청까지는 멀지 않아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구에는 경비병이 두 사람 서 있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나무로 만든 큰 게시판에 세워져 있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모집 공고와 범죄자의 사형일시, 그리고 무수한 의뢰가 게재되어 있었다. 울티아의 도시로서의 활기는 사람들의 교통이 많은 대로보다 도리어 이 게시판에서 확실히 드러나 있는 것 같았다. 엘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 의뢰를 쭉 훑어보다가 갑자기 시선을 한 곳에 집중하며 얼굴을 확 찌푸렸다.


“왜?”


카린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물었다. 엘은 턱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카린은 엘의 턱이 가리켰던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어서 카린도 얼굴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조금 어설픈 글씨로 노예상인에게 납치된 수우족의 부족원들을 구출할 분을 찾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보수는 상담 후 결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노예상인이라니, 여기엔 그런 벼락 맞을 짓을 하는 놈들이 다 있었군.”


“여기는 행정력이 닿지 않는다고 하니까...”


카린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게시물을 바라봤다.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카린은 말없이 엘이 생각을 끝내길 기다렸다. 어떤 종류의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카린은 엘을 잘 안다. 그녀가 아는 엘은 많이 시건방지지만 그래도 여리고 착하다. 여리고 착하다는 것은, 결국 타인의 고통에 민감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곧 엘은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카린, 가자.”


“응.”


더 이상 그 게시물에 대한 대화를 나누지는 않고 두 사람은 관청으로 들어갔다. 문을 지키던 두 사람에게 도시에 들어오면서 받았던 여행자증명서를 보여주니 별 말 없이 들여보내 줬다. 안은 적당히 한산하고 적당히 바빴다. 두 사람은 먼저 도시 행정과를 찾아갔다. 비교적 한산한 곳이었다. 기다리지 않고 관리와 만날 수 있었다.


“예예. 무슨 일입니까?”


“이걸 좀 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엘은 품에서 엠블렘을 꺼냈다. 예전 그루비얼에게서 기본적으로 같은 형태였지만, 번개형상에 금색 도장을 해 놓고 있다는 차이가 있었다. 특무기관의 부장이라던 사람에게서 받은 엠블럼이다. 그것을 보고, 관리는 표정을 바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를 따라 오시죠.”


두 사람은 관리를 따라 걸었다. 그는 관청 지하로 들어가더니 열쇠를 꺼내 안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두침침한 방이었지만 관리가 무언가 중얼거리고 나자 광구가 떠오르며 주변이 밝아졌다. 그는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모양이었다. 통신 관련을 제외하면 마법은 노력에 비해 효율이 떨어진다고 해서 점차 퇴보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여전히 엘리트다. 특무기관의 요원다웠다.


밝아진 방안은 소박하지만 복잡했다. 중앙에는 탁자가 하나 놓여 있었고, 벽면에 설치된 서류대에는 굉장히 많은 서류들이 들어차 있었다. 세 사람은 탁자 주변에 둘러앉고 대화를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본부에서 오신 분 같은데, 신분이?”


“그냥 외부자입니다. 특례로 귀 기관의 도움을 얻기로 했을 뿐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어쩐지 본부 측에서 연락이 없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찾아와서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본부에서 그러했듯 아무런 자기소개 없이 말을 시작한 요원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히 엘의 말을 믿는 것 같았다. 엘이 가진 엠블럼의 권위를 설명하는 장면이다. 그것은 곧장 부장의 권위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마스터이니 이만한 대접을 받을만 했다.


“그래서 무슨 도움을 원하십니까? 부장의 엠블럼을 받은 이상 제가 도울 수 있는 한에서는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실은-”


엘은 상체를 앞으로 당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다음, 요원이 엘에게 지어보인 표정은 그다지 긍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에, 그런 황당한 일이...”


몬스터도 있고 용도 있지만, 어비스는 삼좌 이후로 삼좌와 마찬가지로 신화의 영역으로 접어든 이야기다. 갑자기 신화를 아무런 가감없이 현실로서 불쑥 튀어나오게 하면 믿기 어려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엘은 굳은 표정으로 강하게 나갔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불과 며칠 전에 신대륙에서도 그들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폐촌 가운데 한 곳이 어비스로 인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마나를 다룰 줄 아시니, 증거를 원하시면 정보를 공유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반가운 표정으로 요원은 증거를 요구했다. 엘이 원하는 작업은 어쩌면 한동안 기존 작업을 정지시키게 될지도 모른다. 특무기관은 결코 인원이 많은 부서가 아니다. 확실한 증거 없이 일을 시작하기는 곤란했다. 카린이 요원 옆으로 가서 그의 이마에 손을 댔다. 그리고 눈을 감고는 마나를 운용해 그 가운데 일부를 요원에게 전달했다. 짤막한 기억의 공유가 이루어졌다. 카린이 눈을 뜨자 요원은 새파란 얼굴로 바닥에 구토를 시작했다. 좁은 방은 시큼한 냄새로 가득 찼다. 공유한 것이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 어비스의 마나에 대한 상세한 이미지이기도 했던 탓이다.


“사, 사실이군요. 알겠습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겨우 속을 진정시킨 요원이 거북한 안색으로 일어서며 말했다. 공유된 기억이 거짓일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정체불명의 소녀가 그런 게 가능한 실력이면 자신의 자유의지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감상을 주세염~


*이놈의 글은 써도써도 끝이 안 보이네염.(;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32

  • 작성자
    Lv.15 눈꽃여울
    작성일
    07.05.22 13:22
    No. 31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요즘 서브라임 읽으면서 혹시 클아우스 학원 케릭이 나오진 않을까
    기대 하기도 하는데...혹시 시대(또한 세계관)가 같은지 아닌지 궁금 하네요..팬 써비스로 함 넣어보시는건 어떻하신지..

    그냥 한번 의견 올려 봅니다..신대륙이 요즘 무대라..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어킁
    작성일
    08.11.14 00:15
    No. 32

    먼산 잘 읽고가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서브라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8 황립 실버 라이트 아카데미 (3) +74 08.11.22 10,218 56 10쪽
117 황립 실버 라이트 아카데미 (2) +36 08.11.09 3,937 13 16쪽
116 황립 실버 라이트 아카데미 (1) +18 08.11.03 4,457 18 13쪽
115 다시 아루스로(2) +18 08.10.27 4,273 37 13쪽
114 다시 아루스로(1) +15 08.08.22 4,227 21 12쪽
113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8) +29 08.08.18 4,561 56 15쪽
112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7) +22 08.08.15 3,730 7 15쪽
111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6) +13 08.08.10 3,877 15 13쪽
110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5) +10 08.08.07 3,960 18 16쪽
109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4) +15 08.08.03 3,962 11 16쪽
108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3) +11 08.07.31 3,929 11 18쪽
107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2) +15 08.07.28 3,992 9 15쪽
106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1) +12 08.07.25 4,764 28 12쪽
105 가장 위대한 전사(4) +44 07.05.28 8,460 27 10쪽
104 가장 위대한 전사(3) +35 07.05.25 6,085 23 11쪽
103 가장 위대한 전사(2) +30 07.05.22 7,223 101 11쪽
» 가장 위대한 전사(1) +32 07.05.20 9,443 47 11쪽
101 신대륙(14) +42 07.05.19 5,383 21 11쪽
100 신대륙(13) +37 07.05.18 5,738 30 12쪽
99 신대륙(12) +34 07.05.17 5,287 8 11쪽
98 신대륙(11) +37 07.05.16 5,434 26 12쪽
97 신대륙(10) +35 07.05.15 5,300 13 12쪽
96 신대륙(9) +28 07.05.13 6,107 19 11쪽
95 신대륙(8) +36 07.05.10 5,892 36 11쪽
94 신대륙(7) +36 07.05.09 5,463 15 10쪽
93 신대륙(6) +34 07.05.08 5,517 18 13쪽
92 신대륙(5) +39 07.05.07 5,741 12 9쪽
91 신대륙(4) +45 07.05.06 6,074 20 13쪽
90 신대륙(3) +55 07.05.05 6,744 14 10쪽
89 신대륙(2) +38 07.05.03 6,277 17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