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2)
디리디타는 술을 마시고 있다. 위스키라고 하는 술이다. 이제껏 맛 본 적이 없는, 파도를 건너온 자들의 술이다. 홍록의 반투명함은 그들의 추악한 심성에서 상상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는 위스키를 들이켰다.
“적당히 마셔.”
옆 자리에서 엘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의 옆에는 카린이 있었다. 디리디타까지, 그들 세 사람은 지금 투숙하고 있던 여관을 빠져나와 근처의 작은 술집에 들어와 있었다.
큰 술집에는 가지 않았다. 디리디타가 원주민이기 때문이다. 이 작은 술집에서도 들어오면서 디리디타는 주인의 마뜩치 않아 하는 눈길을 받아야 했다.
“......”
디리디타는 엘의 만류를 듣지 않고 다시 털어 넣듯이 위스키를 마셨다. 엘은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지만 더 말리지 않았다. 그가 오늘 본 것은 사실 이런 정도로 씻어질 수 있을리 없는 장면이다.
“이봐, 그들은 어떻게,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위스키로 술잔을 채우며 디리디타가 물었다. 그의 말은 술에 젖어 어렵게 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엘은 얼마 전에 읽었던 민속연구지를 떠올렸다.
그 글은 원주민을 바보취급하고 있었다. 우리는 완전한 인간이다. 너희는 부족한 인간이다. 하지만 엘은 그 책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지금 디리디타가 그것을 들어 보아야 하나 좋을 것이 없으리라.
“글세...”
“우리를 쉽게 죽일 수 있다는 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적과 싸우고, 그를 죽인다는 행위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드문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렇지만...”
디리디타는 말을 끝내지 못한다. 오늘 낮에 보았던 노예상인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 모양이다. 인간을 물건처럼 아무 거리낌 없이 파는 자들을.
“...여기서는 노예를 이용한 검투시합도 있다고 들었다. 꽤 성행한다고 하더군. 가족을 인질로, 목숨을 걸고 싸우게 한다더군.”
“......”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노예로 잡혀온 젊은 원주민 여자가 매춘을 하게 되면 오히려 운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 잘하면 고정 고객을 확보할 수 있고, 그는 포주에게 값을 지불하고 그녀를 정부를 맞아들여 줄 수도 있으니까.”
“......”
엘도, 카린도 침묵할 수 있을 뿐이다. 무슨 말이 가능할까. 디리디타는 술을 마셨다. 엘과 카린은 그를 그저 지켜본다. 지켜보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결락을 생각한다. 마음이 헝클어진다.
시간이 흘렀고, 술병은 모두 비워졌다. 엘은 디리디타에게 말했다.
“이만 돌아가자. 내일 네가 그 사람들 인솔해야 하잖아.”
“아, 그래. 그렇지.”
쓸쓸하게 말하면서 디리디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지 않은 술을 마신 탓에 그의 몸가짐은 약간 어지러웠다. 앞으로 발걸음을 내 딛던 그는 주춤, 몸의 균형을 잃었다.
엘이 그의 손을 잡아 도왔다. 항상 천으로 묶어 가리고 있던 손이었다. 두꺼운 천 너머로 까글까글한 고체의 감촉이 느껴졌다.
“조심해.”
“아, 아.”
디리디타는 황급히 엘에게서 손을 빼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황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엘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손에 무슨 대단한 비밀이 있어서 저러는 걸까?
“그런데 전부터 계속 궁금했는데, 그 손은 왜 그렇게 계속 가리고 있는 거야? 전투에서도 사용하지 않길래 다친건가 했더니, 그것도 아닌 것 같고.”
“나도 궁금했는데.”
카린이 부리나케 끼어들었다. 두 사람의 질문에 디리디타는 당황한 모습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아, 음... 이 손은...”
한동안 답하지 못하고 서 주첨거리던 그는 마음을 굳히는 한숨을 술기운과 함께 토하며 쓸쓸하게 말했다.
“악마가 깃든... 손이다.”
“악마가?”
“그래. 악마가.”
엘의 되물음에 디리디타는 간결하게 답할 뿐이다. 그리고 몸을 돌려 어지러운 걸음으로 걸었다. 엘과 카린의 얼굴로 의혹이 서렸지만 디리디타가 더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은 명백했기에 더 물을 수는 없었다. 그들은 술값을 지불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술집이 있던 골목을 빠져 나오니 화려한 유흥가였다. 그곳은 밤과 사람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서럽게 가린 옷 사이로 피부를 내보이며 호객을 하는 여자들, 술 취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술꾼들, 어둠에 숨어 토악질을 하는 만취자들. 세 사람은 그런 인파를 헤치며 걸었다.
“이봐요, 오빠!”
길을 가는 중에 세 사람을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가 있었다. 반사적으로 셋은 고개를 돌렸다. 매춘부로 보이는 여자였다. 카린은 얼른 엘의 팔을 잡아 강하게 끌었다. 엘은 약간 아깝게 생각했지만 애당초 그 여자가 부른 것은 엘이 아니었다.
“나?”
“그래요? 어때요? 사게 해 줄 테니까 놀다 가지 않겠어요?”
여자는 눈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디리디타는 얼떨떨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나는 원주민이다."
“알아요. 그러니 여기 와서 화나는 일 많이 겪었을 거 아녜요. 열 받았던 거 여기서 다 풀고 가라구요.”
그러면서 여자는 호호 웃었다. 디리디타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하하하! 하고 크게 웃음을 터뜨였다. 매춘부는 당황하면서 이어질 그의 답을 기다렸다.
“제안은 고맙지만.”
곧 웃음을 멈춘 그는 짧게 답하고는 앞으로 걸었다. 뒤에서 매춘부가 “이 원숭이 같은 새끼야! 개보다 못한 야만인 주제에 불쌍해서 말해 줬더니! 재수가 없으려니, 퉷!” 이라며 바락바락 화내는 소리가 돌아왔다.
“저런 소리 들었다고 화내지마. 저런 사람들도 알고 보면 다 사정이 하나씩 있는 사람들이고...”
엘이 디리디타에게 말했다. 디리디타는 답했다.
“화나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하겠지. 그녀는 내가 원주민이라는 것을 알고서 손님으로서 대우해준 것이니까. 여기서는 파격적인 대우였겠지.”
“그래...”
“더구나, 덕분에 한 가지 알 게 된 것이 있다.”
“뭘?”
“어째서 그들이 우리를 아무 거리낌 없이 사고 팔 수 있는가 하는 것 말이다.”
“...음.”
“파도를 건너 온 자들은 우리를 야만인이라고 경멸한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인 것처럼 대우한다. 하지만 저 여자는 파도를 건너온 이들의 한 사람이면서 짐승인 나에게 몸을 팔려고 했다. 그건 내가 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돈, 이라.”
“그래. 돈이 가장 중요하다. 다른 것은 부차적일 뿐이야.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상품으로 취급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돈을 위해서라면 사람이 어찌되든 중요하지 않다. 돈을 위해서라면, 짐승과 몸을 섞는 것도 꺼리낄 게 없다. 여자의 태도를 접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럴지도.”
엘은 자신의 허리춤에 아직도 남아 있는 금을 생각한다. 그 금이 어떻게 생겨났던 지를 생각했다. 수백의 생명이 이것을 위해 참혹하게 스러져갔다.
생명은 소중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능멸의 대상이다. 디리디타의 말이 옳았다.
“-그래도 파도를 건너왔다고 모두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너와 네 연인이 보여주는 것 처럼 말이다.”
생각 사이로 갑자기 말이 끼어들었다. 엘과 카린은 기분 좋게 웃으며 그의 말을 받았다.
“높은 평가에 몸 둘 바를 모르겠군.”
그리고 세 사람은 여관으로 돌아갔다. 자그마한 따듯함을 가슴에 품고서.
“응?”
숙사로 돌아오니 분위기가 이상했다. 이상하게 뜨거웠고, 난잡했다. 험하게 살던 놈들이 술 마시고, 도박하고, 여자를 끼면 당연히 그곳의 분위기란 그렇게 되는 법이긴 하지만, 지금 이곳의 분위기는 평소의 그것보다 한층 더 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엘에 안으로 들어가며 근처의 동료에게 물었다. 술에 잔뜩 취해 낄낄거리고 있는 그는 엘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엘에 대한 평소 그의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쳇, 너 같은 놈은 알바 없어! 그저, 우리끼리 즐긴 것, 뿐이니까!”
“나도 너 같은 놈 알바 없거든. 그냥 무슨 일 있었는지만 닥치고 말하라는 거 거든.”
엘이 매서운 눈길로 그의 옷깃을 틀어잡으며 말했다.
“아, 우, 어- 벼, 별 건 아니고, 그냥, 원주민 계집애와 놀았을 뿐이야.”
“놀다니?”
“여기 투숙한 다른 팀 대장이라는 놈이 오늘 사온 원주민 계집애 중 하나를 데리고 나가서 즐겼거든. 뭐, 함부로 우리 물건 건드리는 게 화가 나긴 했지만, 그리고 나서 그 녀석이 크게 샀고, 이야기 하다 보니 친해져서 우리도 같이 즐기게 된, 그런 거였지. 지금도 저 안 쪽에서 한창일걸.”
최악의 상상이 뇌리를 스친다.
“설마, 윤간한거냐?”
“윤간이라니, 듣기 안 좋군. 돌리고 있긴 하지만, 그런 원주민 계집애 하나 둘 쯤-”
그는 더 말하지 못한다. 엘이 주먹을 날려 그가 입을 더 이상 놀리지 못하도록 막았기 때문이다. 뒤를 돌아봤다. 카린과 디리디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 디리디타는 이내 이를 악물고 안쪽으로 뛰어 들어간다. 두 사람이 그의 뒤를 쫒는다.
소란이 꿈틀대며 뛰쳐나오는 방문을 열고 세 사람은 들어갔다. 원을 그리며 남자들이 중앙을 둘러싸고 있다. 숨결이 뜨겁고, 신음이 낮다. 가학적인 웃음으로 충만한 공간의 모습이다.
원을 그리는 그들의 희미한 틈 사이로 초점을 잃은 여성의 눈이 보인다. 엘은 말을 부수고 치솟는 뜨거움을 느낀다. 이 개자식들! 몽땅, 다 죽여 버리고 싶었다. 그는 살심을 견디고 그들에게 외친다.
“그만둬!”
“이런 씨발, 한창 좋을 때 끼어들어선 왜 난리야? 끼려면 차례를 지켜야지!”
엘은 답 대신에 주먹을 날렸다. 엘에게 말대답을 하며 나선 남자의 얼굴이 뭉개지며 그의 몸이 날아 벽에 처박혔다. 분위기가 싸- 하게 식었다.
“왜, 왜 이러는 거야?”
“제기랄, 너희가 하고 있는 짓이 사람이 할 짓이냐?”
“원주민 계집 따위... 물려주면 될 거 아냐! 몇 푼이나 한다고!”
“그래! 이런 짐승 같은 것들, 죽여봐야 주인에게 벌금이나 물어주면 그만이라구! 왜 이러는 거야! 우리가 큰 죄라도 지은 것처럼!”
엘은 아득함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 짓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엘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결국 엘은 마음속으로 탄식을 토한다. 사부, 세상은 너무 비루합니다. 정말 이런 곳에서 서브라임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까?
“크, 크크크크크큭...”
피를 토하는 웃음이 뒤에서 들려왔다. 엘은 고개를 돌렸다. 디리디타는 허리를 꺾고 웃고 있었다. 참혹한 웃음이었다.
그제서야 윤간에 참여하고서 당당하던 놈들의 얼굴에 죄책감 비슷한 것이 어렸다. 디리디타는 원주민이니까.
“크, 크크크크크크...”
디리디타는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윤간에 참여하던 자 중 한 명이 외쳤다.
“아, 씨발! 미안해! 됐냐? 우리가 돈 모아서 내일 시장에서 몇 명 더 사올게. 그러면 될 거 아냐?”
“그래. 너희는 언제나 그랬다. 죽이고, 농락했지. 아, 그래. 정말 언제나 그랬다. 호의는 배신당했고, 동맹은 기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 너희는 언제나 그랬다.”
디리디타는 대답 대신에 독백 비슷한 것을 중얼거렸을 뿐이다.
“이 새끼, 미친 거 아냐! 무슨 알아먹지도 못할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거야?”
“사람이 성의를 가지고 제안하면 응당 그에 상응하는-”
신경질적으로 지걸이던 이들의 말문이 막힌다. 디리디타가 손을 묶던 천을 풀었기 때문이다. 천이 풀리며 드러난 그의 손은 완전했다.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단 하나, 커다란 검은 보석 같은 것이 손등이 박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리고 그것을 외부로 보임과 동시에, 디리디타의 몸에서는 위압적인 기운이 서리기 시작했다.
“저건!”
엘은 당황한 얼굴로 카린을 바라본다. 카린은 고개를 끄덕인다.
“사념의... 결정, 이야.”
어떻게?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의문을 떠올린다. 그는 어디서 저런 것을 구했고, 저것을 어떻게 손에 박아 놓고 있을 수 있는 것이지? 하지만 그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디리디타를 둘러싼 분위기가 점점 더 이상해지고 있었다.
“디리디타! 진정해!”
“그래! 화난건 알겠지만, 우선 진정하고...”
하지만 두 사람의 말은 그에게 가 닿지 않았다.
“아아. 그래. 언제나 그랬다. 언제나 그랬으니, 우리도 너희가 그러한 대로 돌려주어야만 했다. 아, 그래. 죽이고, 죽이고, 다시 죽여야만 했다. 화해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조화라던가, 우정이라던가, 신뢰는 올바른 생각이 아니었다. 아, 그래. 아, 그래. 그래.”
그는 계속 중얼거렸을 뿐이다. 마치 정신의 한 곳을 놓아버린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넋이 나간 디리디타의 주변을 뒤덮는 강렬하고도 음울한 기운이다. 그것은, 지독하게 어두우면서도, 또한 희미한 안온함을 느끼게 했다.
“그래, 죽여야만 했다...”
마침표 같이 그는 말했다.
이어서 그는 몸을 펼쳤다. 대기가 공포에 떨었다. 시커먼 기운이 폭발하듯 주변으로 번져나갔다.
카린과 엘은 불안하게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자신의 손에는 ‘악마가 깃들어 산다.’고 디리디타는 오늘 말했다. 그러나 설마, 그럴 리가-
가까운 곳에서 제리는 공포에 질려 외쳤다.
“저 새끼 너희 일당이지? 어떻게든 해!”
하지만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했다. 모두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몸을 물릴 뿐이다. 재수가 없었다. 잘 키웠던 오우거도 잃어버렸고, 계집에 품지 못한 김에, 냄새나는 원주민 여자와 조금 놀았을 뿐인데, 이건 무슨 벼락이란 말인가.
자신이 잘못한 게 뭐가 있다고!
제리가 속으로 세상을 원망하고 있는 가운데, 디리디타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걸음을 내딛음과 동시에 겁먹고 뒤로 물러서던 이들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 들고 디리디타를 위협했다.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
“천한 짐승새끼 주제에!”
“죽고 싶지 않다면 꺼져!”
거친 외침들이 디리디타를 향했다. 디리디타는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손을 들었다. 그의 손으로 검은 아우라가 모였다. 팔꿈치 위로부터, 그의 손은 타오르듯 불길한 검은 색에 잠식되었다.
*역시 오랜만이다보니 호응이 없군요. ㅠㅠ; 으음~ 신작도 슬슬 적어봐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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