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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최근연재일 :
2008.11.22 23:02
연재수 :
11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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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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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613,860

작성
07.05.0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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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신대륙(7)

DUMMY

교회에 들어온 마차에서 내린 것은 정장으로 몸을 감싼 중년의 남자였다. 강인한 인상의 얼굴에, 약간 큰 체격의 남자는 일견하기에도 부유해 보였다. 실비는 얼른 그에게로 다가가 인사를 했다. 엘은 호기심을 가지고 그쪽을 바라봤다. 그녀의 인사를 받은 남자는 사람을 시켜 마차의 지붕에 올려두었던 포대를 내려 교회 안으로 운반하게 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다시 엘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저, 레 씨, 이쪽은 덴힐 마을의 촌장이신 마티씨입니다. 마티씨, 이쪽은 이번에 오우거를 퇴치하기 위해 촌장님이 고용하신, 엘이라는 분입니다.”


“반갑소.”


“저도 반갑습니다.”


두 사람은 악수를 했다. 웃는 얼굴로 교환된 악수였지만, 이상하게 분위기는 별로 좋지 않았다. 마티가 말했다.


“선뜻 오우거를 처리해 달라는 의뢰를 받아들이다니, 어지간히 실력에 자신이 있으신 모양이군.”


그의 말은 어딘가 차갑고 가시가 돋아 있었다. 엘은 눈썹 끝을 살짝 올렸다.


“뭐, ‘어디서든’ 자기 몸 하나 지키는 거야 문제없는 수준은 됩니다.”


오만한 답변이었다. 마티는 입꼬리를 불쾌하게 올렸다.


“호오, 언젠가 우리 마을에서도 고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군.”


“조건만 맞는다면야.”


그리고 두 사람은 손을 땠고, 마티는 실비에게 무어라 무어라 말하고는 마차로 돌아갔다. 실비는 어딘가 당황하는 표정을 보였다. 곧 마차는 교회를 떠나갔다. 엘은 실비에게 다가가 짜증스레 물었다.


“저 인간, 왜 쓸데없이 초면인 나한테 적대적입니까?”


“그게-”


답하기 어려운 듯, 실비를 말꼬리를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하다가, 자신을 계속 바라보는 엘을 눈치 채고 한숨을 포옥 쉬고는 설명을 이었다.


“아마, 레 씨 때문에 목적한 일이 실패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곧장, 떠나시는 모양이네요. 평소에는 시간을 좀 보내고 가셨는데.”


“오우거 길들여 서커스라도 한답니까? 내가 처음 본 저 인간을 방해하게.”


황당한 표정으로 엘이 물었다. 실비는 곤혹스런 얼굴로, 양 볼을 살짝 붉히며 설명했다.


“그런 게 아니라, 저 분이 실은 제가 자기 첩으로 들어왔으면, 하고 바라고 계시거든요. 그래서 몇 달 전부터 자기가 어떻게든 해 줄테니 대신 시집오라는... 그런 곤란한 제안을 해오고 계셔서...”


“아루스는 분명히 일부 일처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처음에 엘은 실비의 설명을 듣고 미티에 대해 ‘이런 도둑놈의 새퀴!’라고 생각했다가, ‘첩’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고는 확인을 겸해서 물었다. ‘처’가 아니라 ‘첩’이라니!


“본국의 이야기지요. 이곳에는 최소한의 행정력 이상이 닿지 않고, 몬스터 덕에 남자가 많이 죽고 인구가 부족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한 남자가 여러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드문 일은 아닙니다.”


실비의 우울한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엘은 생각했다. ‘이곳은 좋은 곳이다!’ 신대륙의 장점을 처음으로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으로 어촌에서 과부가 남편의 형제에게 재가하는 풍습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어촌에서는 여자가 남편 없이 혼자 살 물적 기반을 도저히 마련할 수 없다. 아이까지 딸리면 한결 더하다. 그리고 남자는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태풍 등을 만나 죽기 쉽다. 이 두 사실이 결합해 만들어지는 것이 형수혼이다. 그러니 합리적인 제도이긴 하지만 좋다 나쁘다고 가치판단을 통해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제가 온 덕분에 그런 교섭이 이제 안 들어 먹히겠구나, 싶어서 저렇게 심통 맞게 굴었다는 말이군요.”


엘이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정리했다. 겉으로는 평정을 가장했지만, 속으로 그는 낄낄낄낄낄낄, 하고 무척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음험한 엘의 속은 모르고 실비는 쓰게 웃었다.


“아마, 그렇겠지요.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와서 교회에 헌금도 해 주시고, 식량도 주시는 좋은 분이지만...”


엘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보아하니 헌금이나 식량 지원은 결코 신앙심이나 선의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 같지는 않으니 ‘좋은’ 이라는 가치판단을 붙이기는 힘든 사람으로 보였다. ‘인간적’이라고 까지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엘은 맑게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군요. 일시의 필요로 마음에 없는 상대와 같이 살게 된다는 것은 비극이겠지요.”


“그렇... 겠지요.”


실비는 어두운 얼굴로 엘의 말을 긍정했다.




점심을 먹고 난 다음에 엘은 간단한 운동 삼아 아이들에게 새끼손가락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면서 팔 굽혀 펴기를 하는 묘기를 한 500개 정도 보여줬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와 간단히 책을 보며 시간을 떼우자니 카린이 돌아왔다. 엘보다 훨씬 빨리 작업을 끝마친 모양이었다. 용인 그녀는 엘과 달리 이동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거라 위치 확인도 간단했다.


“나 왔어~”


카린은 해 맑은 얼굴로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얼굴을 천으로 가리고 아름다운 눈만을 드러낸 그녀의 모습은 어딘가 신비적인 매력이 있었다. 이래서는 그냥 다 드러내놓는 것만 못하지 않을까? 라는 불안함을 느끼며 엘은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서와. 그런데 기분이 좋아 보이네?”


“응. 애들이 다들 즐거워 보여서 나도 기분이 좋더라구. 처음 여기 왔을 땐 다들 어딘가 풀이 죽어 있었는데. 실비 양한테 들었어. 엘이 이것저것 보여준 덕분이라지? 잘 했어!”


그리고 카린은 까치발을 들어 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창피했던 엘은 얼굴을 붉히고 뒤로 몸을 물린 다음, 얼른 화제를 바꿨다.


“큼, 공치사는 됐고, 갔던 건 어떻게 됐어?”


“-음, 엘이 말했던 대로였어. 어비스적이지만, 어비스는 아니던걸. 왜 그런 일을 했던 건지도 전혀 모르겠어. 거기 있던 사람들을 몽땅 그냥 죽인 것 같은데, 설령 고위 악마라고 상정해도, 그렇게 죽이기만 한다는 비효율적인 방법을 고위악마가 할 것 같지는 않아.”


카린은 얼굴을 진지하게 바꾸고 말했다. 엘은 얼굴을 찌푸렸다.


“쩝. 그러면 어제와 얻은 정보를 확인한 정도에 그친 건가.”


“완전히 그런 건 아냐. 한 가지 흥미로운 걸 발견했으니까.”


검지를 앞으로 내세우며 카린이 지적했다.


“어떤?”


“남은 마나 가운데 굉장히 자연적인, 그러니까 정령과 친한, 그런 마나가 느껴졌어. 물론 어비스의 기운을 가진 마나의 주인이 동시에 품고 있던 기운이야.”


“우와! 뭐야 그게! 더 모를 노릇이구만!”


엘의 얼굴이 구겨졌다. 어비스적인데 어비스는 아니고, 거기다 정령력과 친하다고 하다. 정령은 어비스와 친할 수가 없다. 어비스의 힘은 생명에 적대적이고, 정령력은 마나가 생명과 가장 조화롭게 상생하며 드러나는 형태의 에너지다. 양자는 상극이다. 그런데 한 개체가 그 두 가지 힘을 모두 가진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꽤 시간을 들여서 여러군데 조사해야 할 것 같아. 신대륙 쪽의 용 아저씨나 아줌마 발견하면 좀 찾아가보기도 하고.”


“후, 골치 아프군.”


엘은 머리를 위로 쓸어 올리며 침대 위로 주저앉았다. 꽤 장기체류가 될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카린이 엘을 달랬다.


“어비스가 얽혀 있는걸. 뭐가 됐든 쉬울 리는 없잖아.”


“그야 그렇지.”


카린의 말 대로였다. 엘은 고개를 무겁게 끄덕였다. 어비스가 얽힌 일이라면 무엇이든 쉬울 리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델시테리아조차 아득한 시간, 지켜보고 방어하는 것 이상의 일을 못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초대 삼좌라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 처럼 급작스럽고도 엄청난 힘의 등장만이 그 균형을 깨뜨릴 수 있었다.


“그리고 오면서 실비 양 만났을 때 얼굴이 많이 어둡던데, 엘이 뭐 나쁜 짓 했던 거 아냐?”


어비스에 대한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카린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무서운 얼굴로 질문했다. 엘은 반사적으로 답했다.


“삼좌의 명예에 맹세코 아냐!”


엘의 성격상 삼좌의 명예씩이나 걸고 나온 이상 거짓말일리는 없었다. 카린은 위협적인 태도를 풀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어두워.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글쎄, 나도... 아, 하나 있네.”


“뭔데?”


카린이 눈을 반짝이며 물어왔다. 엘은 오늘 오전에 이었던 ‘마티’라는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그와 실비 사이의 관계를 설명했다. 하지만 엘이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도 카린은 어딘가 개운하지 않다는 표정으로 엘에게 말했다.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하면 엘이 오우거 이제 처리하면 끝나는 사태니, 아무 걱정거리도 될 수 없잖아. 뭐 엘이 미덥지 않으면 몰라도, 낮에 보여줬다는 묘기만 해도 실비양이 네 실력을 신뢰하도록 하는데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런가... 하지만 그게 아니면 나는 모르겠어.”


엘은 어깨를 으쓱였다.




*의견이 올라오는 족족 받아들여진다고 생각하면 매우 곤란. 오타지적 이외에 족족 받아들일 수 있는 의견은 없습니다. 독자의견은 참고일 뿐입니다. 그리고 올라오는 의견은 확실히 참고하고, 때때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가령 카린이 이제 얼굴 안 고치고 다니게 된 거라든가.


*피곤해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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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6

  • 작성자
    Lv.33 첫솜씨
    작성일
    07.05.10 12:38
    No. 31

    잘 읽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AR퀸
    작성일
    07.05.10 14:59
    No. 32

    음 형수혼 이라니.....조금 슬프네요...
    그나저나.....연애는 이제 그만....>_<///
    너무 행복하기만 한거 아닙니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티브리엘
    작성일
    07.05.10 16:18
    No. 33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2 다훈
    작성일
    07.05.11 14:32
    No. 34

    대부분 글쓰는 이에게 멧시지 전달용으로 댓글을 사용하시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경운 대개 혼자 중얼거릴 것을 댓글로 하는 편이라.......

    보아도 그만 안 보아도 그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0 메롱이야
    작성일
    07.05.12 14:53
    No. 35

    신대륙.. 왠지 옛날의 제주도가 생각 나는듯 ㅎㅎ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2 어킁
    작성일
    08.11.12 20:44
    No. 36

    오 카린이 얼굴 안고치고 다니는 것은!!! 독자의 의견이였단 말입니까!?(?)
    괜찮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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