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륙(3)
카린은 정말로 하루 만에 신대륙에 도착했다. 엘은 속으로 용은 정말이지 불공평한 생물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신대륙에 도착하자마자 맨 먼저 가장 가까운 항구로 들어가 갓 입항한 사람인척 했다. 익숙한 지역도 아니고, 눈에 띄지 않게 정보를 입수해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틈에 섞이는 게 가장 좋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특무기관에서 많은 정보를 제공받았지만, 여러 오차는 필연적이니 현장정보를 다시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다.
다행히 아루스에서 편도로만 3개월이 걸리는 곳이긴 해도, 배 자체는 드물지 않아서 마침 그날도 새로 입항한 배가 한척 있었다. 두 사람이 늘상 하던 것 처럼 최면으로 간단히 수속을 처리하고 건물을 빠져나오니 몇몇 사람들이 크게 무언가를 외치고 있었고,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그들 주변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일주일 거리에 있는 포이 마을에서 광부로 일할 분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지금 오시면 선금으로 월급의 반인 30루셀을 드립니다! 철 이외의 광물은 광부가 가져도 괜찮습니다. 금이나 보석을 발견해 떠나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티두르 마을에서 사냥꾼으로 일하실 분을 찾습니다. 신대륙은 위험한 곳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몬스터에 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사냥꾼은 아주 좋은 자리입니다. 계약기간을 채우면 전직도 가능하고, 그 동안 마을의 빈집을 무료로 제공해 드립니다!”
“-클리 마을의 자경단원으로 들어오실 분 안 계십니까? 마을의 치안 유지가 주된 임무이고, 지원자에게는 마을의 빈집을 우선적으로 제공할뿐더러 급료 면에서도 최고의 대우를 보장합니다. 아루스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최고의 대우입니다!”
사업체나 마을에서 이민자들을 모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광고하는 이들의 말을 절반만 믿어도 최상급의 대우라 할만 했다. 농장이나 기업이 아닌 마을에서 사람을 모으고 있다는 것도 특이했다. 엘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여기, 꽤 위험한 것 같군.”
카린은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히 사업을 하는 공동체가 아닌데도 사람을 끌어 모으기에 급급하다는 것은 사람 수가 부족하면 그만큼 곤란한 공동체라는 말이고, 자본증식을 위해 형성된 공동체가 아닌 경우, 사람이 부족해 위험한 경우는 외부에 물리적인 적이 있는 경우 외에는 상상하기 어렵다. 인원이 적을수록 개인 앞으로 돌아오는 자원의 총량은 커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일부러 사람을 늘리려 드는 것은 그만한 사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승리하는 것은 욕망이다. 카린은 이어서 입을 열었다.
“몬스터가 많이 나오는 모양이야.”
외부의 적. 전쟁이 있지 않은 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몬스터가 그만큼 흔히 나온다는 이야기다. 발견된 지 200년이나 되었음에도 개발이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그만큼 그것들의 위협이 컸다는 뜻이리라. 그런 대화를 나누며 항구 도심으로 접어들려던 두 사람에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아, 거기 아가씨!”
“에? 저요?”
카린이 돌아보며 물었다. 큰 체격의 험상궂은 얼굴을 한 남자였다. 엘은 그를 보고 눈썹을 불쾌하게 좁혔다. 카린의 얼굴을 보고 말을 걸어온 남자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가씨, 우리 가게에서 일해보지 않겠나? 금세 최고가 될 거라고 보장하지.”
지금 카린은 얼굴을 원래대로 돌리고 있었다. 얼굴을 원래대로 돌리고 활동하는 것은 그녀가 엘을 태우고 여기까지 오기로 한 조건의 한 가지였다.
“가게라면...?”
“뭐, 말하자면 물장사지만, 어차피 저런 배로 여기까지 왔을 정도면 사정이야 듣지 않아도 뻔한 거고, 달리 구할 수 있는 건 대부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거니, 안전하게 여기서 어떤가? 일 년만 일하면 한몫 단단히 쥘 수 있는데.”
“-아, 사양하지요.”
카린은 웃으면서 거절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말을 걸어온 남자를 지나 항구로 들어섰다. 남자는 음산한 눈으로 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한편, 두 사람은 곧장 여관을 찾고 있었다. 카린이 장시간 비행으로 피로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관까지 가는 길에, 그리고 여관에서 방을 잡아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카린을 놀란 얼굴로 바라봤다. 그럴 밖에. 카린은 무척 아름다운 소녀다. 보통은 평생을 통틀어도 그녀만큼 아름다운 여성을 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카린은 그들의 시선을 꽤 즐거운 표정으로 즐겼다. 방에 도착해서 두 사람이 짐을 풀고 쉬려던 차에, 엘이 갑작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아. 하역장에서부터 졸졸 따라 올 때 이럴 것 같더라니.”
엘은 귀찮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으며 문을 걷어찼다. 낡은 문이 와그작, 부서지는 소리와 비명이 뒤섞여 여관을 울렸다. 문 밖에는 두 명 정도의 남자가 바닥에 쓰러진 채 끙끙대고 있었고, 그들의 양 옆에 서 있던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두 명 정도가 단검을 들고 멍한 표정으로 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오면서 카린에게 물장사를 권했던 남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엘은 싱긋 웃으며 그들에게 말했다.
“백주 대낮부터 납치 시도라니, 간이 크군. 그만한 각오는 했겠지?”
물론 각오 따위를 했을 리가 없지만, 그들은 침을 꼴깍 삼키는 것 밖에는 할 일이 없었다. 엘은 느긋하게 디 세리온을 뽑았다.
엘은 그들의 다리와 팔뼈를 철저하게 분질러 반쯤 병신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항구 치안부대에 넘겼다. 이후 엘이 여관으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설교였다. 그는 카린을 앞에 앉혀두고 엄숙하게 잔소리했다.
“-이렇게 될게 뻔하니까 좀 고치고 다니자고 한 거야.”
“응. 그건 알지만...”
“알면 앞으로는 다시 고치고 다니는 거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카린은 굉장히 예쁘니까 조용하게 처리할 일도 시끄러워지는 수가 있다니까.”
“그건, 싫어.”
카린은 완강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엘은 곤란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왜 그렇게 얼굴 좀 평범하게 고치는 게 그렇게 싫어?”
“다들 무시하잖아! 아루스에서 쭉 무시당했는걸. 그 메르첼이라는 여자한테도 그렇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 치고 나를 깔보지 않는 사람이 없잖아. 특히 나하고 엘하고 연인이라고 하면 나보고 ‘어떻게 저런 여자가!’라는 식으로 다들 놀라는 게 얼마나 스트레스였는지 알아?”
카린은 열이 뻗쳐오른 목소리로 역설했다.
“아니, 뭐 겨우 그런거 가지고-”
“그런 거라니! 자기도 자존심 세우는데 무지 열중하면서! 그럼 그것도 다 쓸모없겠네? 엘은 처음에 로시테아씨 만나기 위해 형식만이라도 종자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 무지 싫어했잖아. 내가 가자고 안 했으면 그 검, 얻지도 못했을거면서!”
엘의 입이 굳었다. 카린의 말은 사실이라서 되돌릴 말이 없었다. 카린이 얼굴 때문에 무시당해서 화가 난 것은, 자기가 삼좌의 후계자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자기가 사소한 부분에서도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한다면 그녀가 사소한 부분에서도 무시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존중해주는 당연한 일이다. 엘은 전략을 바꿨다.
“-큼. 확실히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하고는 파급력이 다르잖아. 내가 얼마나 세다든가, 신분이 어떤 거라던가 하는 건 가만히 있으면 아무도 모르지만, 카린이 본래얼굴로 다니면 다들 주목하잖아.”
죽어도 자기 자존심 죽이는 짓을 앞으로 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엘은 그런 네거티브 전략에 별로 취미가 없다. 대신에 카린 옆에 앉으면서, 달콤한 목소리로 꼬셨다.
“그리고 어차피 카린 본래 얼굴은 나만 알고 있으면 되는 거 아냐? 다른 사람들 보여줘서 뭐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카린 보고 욕심내는 거 보면 불쾌하단 말야.”
본인은 삼처사첩을 주장하는 주제에 뻔뻔한 소리다. 용은 종족변이 폴리모프를 선천적으로 할 수 있다. 마법을 통한 폴리모프와는 질적으로 틀리다. 일반적인 폴리모프는 대상을 그리고 거기 맞춰 육체를 변형하는 것이지만 용의 선천적인 폴리모프는 그런 일체의 과정이 제거된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것이다. 선천적인 폴리모프로 변신한 모습은 용을 다른 종족으로 완벽하게 ‘번역’한 모습이라 용 문화권에서는 사실상 본체와 같이 취급한다. 카린이 자신의 본래 모습에 집착하는 것은 그런 연유에서이고, 그녀는 당연하게도 자기 용모에 꽤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엘은 그런 카린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 앞길의 피곤함을 처리하기로 했다. 카린은 주저주저하는 기색으로 그의 말을 받았다.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이왕 같이 이렇게 여행하고 있는데 나만 무시당하고, 그런 거 싫단 말야. 앞으로도 쪽 같이 여행할 건데...”
“뭐 어때, 다른 사람들이야 무시하라지. 누가 뭐라 지껄여도-”
그러면서 엘은 오른손으로 카린의 왼쪽 귀밑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녀의 금발은 부드럽고 아름다워서 만지고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카린은 얼굴을 확 붉히면서 얼굴을 숙였다. 좋은 분위기다. 이제 한발만 더 나가면 되겠구나! 엘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마지막 일격을 날리고자 했다.
-똑똑.
그걸 노크소리가 방해했다.
*자신의 취향이 시장의 코드와 맞는 작가 분들은 편하겠습니다. 그런 분들은 별 고려할 것 없이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쓰면 될 테지요. 조금쯤 부럽기도 합니다. 저는 별로 대중적인 취향의 소유자는 아닌 것 같아서 마냥 취향대로 쓰긴 힘들군요. 음, 저도 독자에 대한 고려 없이 적어도 팔릴 걱정 따위 안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여간 그런 연유로 의견 모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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