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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최근연재일 :
2008.11.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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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27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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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다시 아루스로(2)

DUMMY

그리고 카린은 엘을 태우고 아루스로 향했다. 모더니티의 수도 트리타스 까지는 느긋하게 여행해서 이틀이면 됐다. 역시 용은 불공평한 생물이다. 따져봐야 소용없긴 하지만 좀 억울하게 느껴지기는 했다.

아루스의 수도에 도착한 엘은 본부로 가기보다 우선 신문을 몇 부 사서 근처의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다음 도시의 전체적인 상황을 살폈다.

“어때, 뭐 특별한 거라도 있어?”

카린이 물었다.

“뭐, 여전하네. 실업은 넘쳐나고, 좀도둑과 산적도 들끓고, 사형도 넘쳐나고, 별로 달라진 것 같진 않아. 아,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있더라.”

“어떤거야?”

엘은 신문을 이리저리 뒤지며 기사를 찾았다.

“여기있네.”

카린은 엘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곧 그녀의 입으로 풋, 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하하, 뭐야 이게.”

엘이 가리킨 곳에는 신대륙과 세키리아, 아루스 등에서 지극히 높은 순도의 금이 발견되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두 사람이 뿌리고 다닌 금이었다.

기사는 그 기술의 출처도 방법도 모른다고 서술하고 있었지만 그런 순도의 금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세계의 화학계에서는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음, 순도 높은 금이라는 게 귀한 모양이야. 이렇게 되면 우리가 줬던 금은 생각보다도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거군.”

“그런가봐.”

“우리야 아까울게 없지만, 그 사람들이 덜 손해를 보고 활용했으면 하네. 이익은 무리라도 말야.”

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보니 황금에 관련해서 뭔가 윗대가리들도 꽤 열심히 싸우고 있는 모양이야. 우리가 올 때도 많이들 싸우고 있었지만 지금은 본격적인 것 같은데. 여당과 야당이 치고 박으면서 난리라고 하는데... 이런 건 내가 정치를 잘 모르니까 뭐라 말하긴 좀 그렇다.”

“어디어디.”

카린이 엘의 신문을 받아들며 자신이 빠른 눈으로 훑었다. 확실히 엘이 말한 것과 같이 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헌법 개정에 관해 운운하는 것이 나와 있었다. 자세한 사항은 엘이 그러하듯 역시 그녀도 알기 어려웠다.

그보다 퍼뜩 카린의 눈에 띄는 기사는 그 뒷면의 것이었다.

“헤. 여기도 재밌는 기사가 있는 걸?”

엘도 카린이 보고 있는 쪽으로 시선을 넘겼다. 거기에는 아름다운 소녀의 초상화와 건물 정면의 모습이 나란히 인쇄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 ‘왕립 실버 라이트 아카데미 입학식, 일정대로 진행하는가?’ 라는 표어가 붙어 있었다.

“아. 황녀다.”

엘은 그림을 보고 말했다. 역시 고결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세상에 나오고 아름다운 아가씨도 많이 봤지만, 역시 카린에 비길만한 미녀는 둘 밖에 못 봤다. 하나는 엘프였던 실버 라이트는 이번 후계자고, 다른 하나가 황녀였다. 이름이 로비노스 였던가?

그런데 무슨 일이 있기에 입학식 운운하는게 나오는 걸까? 엘과 카린은 잠시 신문을 더 살펴 사정을 살폈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괴한에게 습격을 당했다니.”

“어떻게 경비를 하면 황족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불상사를 당하지?”

“글세.”

신문 기사의 내용은 간단히 축약하면 황녀가 습격당한 사건으로 인해 이번 아카데미 입학식이 늦춰질지도 모른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학원 측의 입장을 비롯,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따로 또 소개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그 기사를 읽고 난 다음 다른 것들을 쭈욱 살폈다. 읽는 도중에 간단히 음식과 마실 것을 시켜 간단한 식사도 했다. 자릿세를 낸다는 의미도 얼마쯤은 있는 행위였다.

한동안 시간이 흐르고, 신문을 접어 한 쪽으로 치우며 엘이 말했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건 있네.”

“뭐가?”

“폭력조직 이야기가 거의 없잖아.”

“아, 그건 그렇네.”

“그때 한번 설쳤던 게 역시 효과가 있었나봐. 후후.”

엘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기쁜가봐?”

“그야 기쁘지. 좋은 일을 한 건데. 아아, 세상 모든 악당들이 그놈들처럼 간편했으면 좋겠다. 아무 생각 없이 두들겨 패면 되니까 편하잖아.”

카린의 되물음에 엘은 두 팔로 뒤통수를 감싸며 몸을 뒤로 넘기는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응. 그건 확실히 그런 것 같아.”

카린은 동의한다. 숙고하지 않아도 판단할 수 있는 악이란 편하다. 엘은 그녀의 동의에 슬몃 웃어 보인 다음 말한다.

“그러나저러나, 이제 우리도 슬슬 목적한 곳에 갈까.”

“그래.”

그리고 두 사람은 계산을 치르고 특무기관의 본부를 찾아 움직였다.



본부의 주변은 여전히 빈민가였다. 헐벗은 주민들과 썩어 들어가는 하수구. 코를 찌르는 악취, 모기와 쥐. 사람 살기엔 도무지 좋지 않은 환경이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엘과 카린은 그런 곳을 한동안 걸어 본부에 도착했다. 처음 두 사람을 맞이한 것은 과거와 같은 요원이었고, 그는 두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놀라면서 사람을 교체했다. 그 소드마스터이던 남자 이리라. 엘과 카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

“와.”

하지만 건물 안쪽의 어두운 그림자를 뚫고 나온 것은 훨씬 가녀린 체형의 사람이었고, 여성이었다.

“오랜만인걸요.”

그녀는 두 사람 앞의 소파에 앉았다. 엘과 카린은 반갑게 그녀를 맞았다.

“오랜만이네요. 그루비얼양.”

“저도요. 그간 잘 지내셨나요?”

그루비얼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은 좀 했지만, 두 분과 같이 해결했던 사건이 가장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그 외에는 평이했으니 아마 잘 지냈다고 말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네요.”

“다행입니다. 그런데 부장이라던가 하는 분은?”

엘은 물었다.

“부장은 지금 황녀님 호위에 바쁘셔서 자리를 비우시고 계십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황녀님께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지라.”

그루비얼이 어둡게 말한다. 엘이 그 말을 받는다.

“아, 괴한의 습격이 있었다지요?”

“아시나요?”

“신문에 나와있던 걸요.”

카린이 답했다.

“예.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시끄러웠죠.”

“그런 일이 있었으니 소드마스터가 빠져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겠군요.”

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죠.”

“여기서 저희 두 사람에게 직접 할 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럼 좀 기다려야 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아루스에서 갑자기 그런 대대적인 지원을 하면서 저희를 도우려는 이유를 듣도록 할까요.”

엘이 두 손을 모으며 예리한 눈으로 말했다. 그루비얼도 편안하게 웃던 얼굴을 조금 굳히며 목소리를 아래로 깔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저희 특무기관에서는 두 분에게 황녀님의 호위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의뢰였다. 하지만 생각 못할 것도 없는 의뢰였다.

“호위입니까. 어려울 건 없지만. 기간이 문제군요.”

“그런 부분도 생각해서 의뢰하는 것입니다. 가능하면 두 분이 함께 황녀님과 함께 학원에 입학해 그 분의 근처에서 지내주셨으면 합니다.”

“그건, 너무 긴걸요.”

카린이 조금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적어도 몇 년인데, 그렇게 오래 호위에만 전념할 수는 없다.

그루비얼은 웃으며 말한다.

“두 분이 얼마나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지 저희는 이미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울티아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고 아는데, 그만한 속도로 이동하실 수 있다면 주말을 비롯 저희가 제공할 수 있는 시간으로도 충분히 하시던 일을 지속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음-”

카린은 그루비얼의 말을 검토한다.

“더구나 조사를 시작하고 있는 것은 신대륙 쪽만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무시되고 있던 아루스 전 지역에서의 조사 역시 진행중이죠. 아마 이 부근에서만도 상당한 것들이 보고되어 오리라 생각합니다.”

결국 그루비얼의 설명에 두 사람은 내심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금광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이 원하던 어비스의 흔적을 찾기 위한 조사에 열중한다면 아루스에서 놓치고 지나간 많은 어비스의 흔적들이 발견될 것이다. 두 사람의 속도를 생각하면 주말만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다고 해도 조사 범위는 아루스 거의 전역을 간단히 커버할 수 있다.

“이야기가 그렇게 정리된다면 꽤 매력적이군요. 하지만 기껏 호위를 구하는데, 이런 엄청난 투자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적지 않은 행정력이 필요했을 텐데요.”

엘이 묻는다. 그의 의문은 당연하다. 그루비얼은 조금 성급하게 답한다.

“아,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지만, 두 분을 적극적으로 돕게 된 것은 사실 특별히 거래라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고 순수한 전하의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전하?”

“황녀님 말이죠. 그 분은 이 기관의 최고 권력자이시기도 하답니다. 두 분에 대한 이야기가 그 분에게 전달되고, 제 보고서가 사실이었던 것이 판명되고 난 뒤에 큰 관심을 보이셨거든요. 그리고 이런 일에 개별 국가의 이익 따위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결국 협력을 결정하신 거죠.”

“와. 대단한 분이네요.”

카린은 감탄한다. 엘도 속으로 감탄했다. 두 사람의 얼굴에 떠오른 놀라움이 자랑스러웠던지 그루비얼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대단한 분이시죠.”

“그런데 벌써 그런 걸 밝히시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기껏 협상의 카드를 제시하신 건데 제희 두 사람의 결정과 상관없이 계획은 추진될 거라 하시면.”

엘이 지적한다.

“예리하시군요. 하지만 전하께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하면 어차피 무너질 계획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밝히더라도 별 상관이 없죠. 어차피 두 분이 아루스의 행정력을 빌리기 위해선 그 분을 보호해 주셔야 할 테니까.”

“으음, 그럼 얼마 전에 있었다는 황녀님을 향한 습격은 우발적인 사건 따위가 아니었다는 말이군요.”

카린이 이제까지 얻은 정보를 검토하곤 확인하듯 묻는다.

“그렇습니다. 저희는 이것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계획적인 것이었다고 판단합니다.”

“흐음... 어떻게?”

“그건, 이야기가 좀 길 것 같군요. 간단히 핵심만 전하자면, 아루스의 헌법 가운데 황금법의 개정에 관련되어 있는 이야기입니다.”

“황금법? 아아...”

엘은 퍼뜩 그 법을 기억해 낸다. 벤도 저번에 이 법에 대해 이야기 했던 적이 있다. 자세히 기적은 안 나지만 아루스 전 금광의 소유, 채굴권이 황실에게만 있다고 하는 다소 요상한 법이었다.

“예. 그 법이죠. 그 법의 개정에 관련해 반대하는 세력이 적지 않습니다. 저희는 그들 세력 가운데 지속적으로 전하를 노리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음, 알긴 알겠는데, 이곳이 황녀님을 지킬 수 있을만한 힘도 없다고 보이진 않는데요.”

카린이 조금 궁금한 듯 묻는다. 그루비얼은 쓴 웃음을 짓는다.

“실버 라이트 아카데미는 치외 법권지역이거든요. 정부의 공권력이 행사될 수 없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지키기 힘들죠. 범죄자가 그 안에 침입해도 손댈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그건, 좀 위험하지 않나요?”

그루비얼은 카린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위험합니다. 그래서 실버 라이트 아카데미는 무척 훌륭한 기사 양성 학원이기도 하죠. 자치는 자위가 가능할 때만 가능한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그런 자위력으로 전하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저희의 판단입니다. 그래서 원래라면 전하의 입학을 늦추던가 취소하려고 했습니다만, 대신에 제 제안으로 두 분에게 이렇게 의뢰를 하는 쪽이 선택된 것이지요.”

“그러면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저희 두 사람은 그곳에서 학생으로서 배울 수 있습니까?”

엘이 묻는다. 그루비얼은 문득 이 질문이 엘이 이제껏 한 다른 모든 질문보다 진지한 것 같다고 느낀다.

“두 분은 신분을 숨기고 전하를 호위해 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히 평범한 학생으로서 입학하는 것이 될 테고, 다른 학생들처럼 공부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루비얼은 답한다.

“알겠습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엘은 더 생각해 볼 필요는 없다는 듯, 냉큼 의뢰를 받아들인다. 어딘지 다급한 결정에 그루비얼은 놀란 모습을 보였다가 기쁜 듯이 웃는다. 카린은 엘은 어째서 이렇게 쉽게 결정했는지를 이해하고 따스하게 그를 바라본다.


*저는 이 글의 기본적인 기획을 꽤 좋아해서, 어쨌든 완결을 볼 생각입니다. 근대에 대한 이해가 숭고에 대한 인식으로 이어지는 과정 같은 것들은, 저 자신에게도 꽤 흥미로운 문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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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황립 실버 라이트 아카데미 (1) +18 08.11.03 4,457 18 13쪽
» 다시 아루스로(2) +18 08.10.27 4,274 37 13쪽
114 다시 아루스로(1) +15 08.08.22 4,227 21 12쪽
113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8) +29 08.08.18 4,561 56 15쪽
112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7) +22 08.08.15 3,730 7 15쪽
111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6) +13 08.08.10 3,877 15 13쪽
110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5) +10 08.08.07 3,960 18 16쪽
109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4) +15 08.08.03 3,962 11 16쪽
108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3) +11 08.07.31 3,929 11 18쪽
107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2) +15 08.07.28 3,992 9 15쪽
106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1) +12 08.07.25 4,764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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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가장 위대한 전사(2) +30 07.05.22 7,223 101 11쪽
102 가장 위대한 전사(1) +32 07.05.20 9,443 47 11쪽
101 신대륙(14) +42 07.05.19 5,383 21 11쪽
100 신대륙(13) +37 07.05.18 5,738 30 12쪽
99 신대륙(12) +34 07.05.17 5,287 8 11쪽
98 신대륙(11) +37 07.05.16 5,434 26 12쪽
97 신대륙(10) +35 07.05.15 5,300 13 12쪽
96 신대륙(9) +28 07.05.13 6,107 1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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