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카이첼 님의 서재입니다.

서브라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최근연재일 :
2008.11.22 23:02
연재수 :
118 회
조회수 :
1,231,922
추천수 :
2,226
글자수 :
613,860

작성
08.07.25 14:43
조회
4,763
추천
28
글자
12쪽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1)

DUMMY

신대륙의 개척을 가장 먼저, 그리고 활발히 한 것은 아루스지만 지역의 척박함으로 인해 그렇게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덕분에 후발주자들도 개척에 어렵지 않게 참여할 수 있었다. 슬렌은 그 후발주자의 하나인 모르모른의 식민도시다.

슬렌은 여러 교역로가 겹치는 곳에 위치한 곳도 아니고, 항구가 있는 것도, 하다못해 주변에 농업을 할 만한 평지가 발달한 것도 아니지만 상당한 규모의 상업도시로서 이름을 날리고 인근 일대를 통합하는 맹주도시로서의 위용을 굳히고 있었다.

슬렌이 그렇게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한데, 그들은 노예시장이라고 불리는 틈새를 공략했기 때문이다. 아루스에서는 노예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본국과 행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한 그곳에서 비롯된 식민지들은 노예산업에 관여하지 않았다. 자연히 원주민들을 잡아 노예로 파는 산업은 다른 국가들의 몫이 되었다.




도시로 들어온 덕분에 일행에게는 적지 않은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또, 중간 보수도 지급됐다. 그간 꽤 빡빡하게 지내왔던 만큼, 모두들 들떠서 놀기 시작했다. 낮부터 술을 마시는 자도 있었고, 여자를 사러 간 자도, 도박을 하기 시작한 자도 있었다.

엘과 카린은 그런 데는 별로 관심이 없는 만큼 그냥 도시나 한 바퀴 빙 둘러보기로 했다. 두 사람은 모르모른의 말도 꽤 능통했고, 슬렌에서는 상업적인 이유로 키틴어를 아는 사람도 많았기에 의사소통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노예 시장이 합법적으로, 그리고 거대하게 운영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슬렌의 도심은 다른 도시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성벽에 둘러싸인 마을에서 오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분주했다.

다만, 사람들 사이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서 따르는 이질적인 용모의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뻔했다. 모두 원래 이 대륙의 원주민이었고, 이제는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이었다.

“음.”

엘은 불쾌하게 눈썹을 찌푸렸다. 노예가 당연한 지역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눈앞에서 접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카린이 그의 소매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화난다고 닥치는 대로 시비 걸고 다니지 말라는 뜻이었다.

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더했다.

“나보다는, 그 녀석이 더 걱정인걸. 나야 그래도 외지인이지만, 그 녀석은 아니잖아.”

옆 자리의 카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구출한 부족원들과 족장은 몇 명의 용병과 함께 도시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지만, 디리디타는 일행과 함께 슬렌에 들어와 있었다.

혹시 노예시장에 자기 부족이나 인근의 친밀한 부족 사람이 거래되고 있다면 적은 수 나마 사 돌아오기 위해서였다.

“노예 시장에 가는 것, 내일이지?”

“응.”

“아아, 더러운 꼴을 봐야 하는군.”

“그래도, 디리디타에 비할 바는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이런걸 보면 확실히 아루스가 좋은 나라였던 것 같아.”

“거슬리는 말이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서글프군.”

아루스가 문제가 많은 나라다. 하지만 사람이 공공연하게 상품이 되지는 않는다. 두 사람은 종종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그들의 곁으로 마차가 한 대 지나갔다. 커다란 마차였다.

뒤의 짐칸에는 창문이 뚫려 있었고, 청장이 쳐진 그 창문을 부여잡은 손 뒤로는 빛을 잃은 얼굴들이 있었다. 노예시장 구역으로 가는 마차인 모양이었다. 다시 두 사람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불쾌한 장면이다. 얼른 이 구역을 빠져나가기 위해 둘의 발걸음이 빨려졌다.

“응?”

엘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린다. 카린도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시야 너머로 어떤 소란이 일고 있는 것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흥분된 음성이 많이 뒤섞인 소란이었다. 하지만 사건이거나 축제 같은 것 같지는 않았다. 경기, 같은 것 같았다. 카린이 엘에게 물었다.

“가볼래?”

“음- 그러자.”

어차피 시간은 넉넉하게 있었다. 둘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향했다. 곧 소란의 근원지로 도착할 수 있었다. 노예시장과 도시의 생활구역을 가르는 내성의 뒷문 근처에 세워진 거대한 건물에서 흘러나오는 소란이었다.

“역시 검투경기인 모양이군.”

“결투를 구경거리로 만든 거야?”

“그런 것 같아.”

“헤-”

두 사람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료는 보통의 도시민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런 가격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없어서 두 사람은 입석(立席)을 사야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맞이하는 것은 천정이 뚫린 원형의 경기장이었다. 족히 천명은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상당한 규모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원주민 두 사람이 구식의 무기를 들고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음.”

“아.”

엘과 카린은 동시에 조금 굳은 표정을 했다. 무기를 가지고 하는 경기라니, 아무래도 너무 과격한 것 같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곧 자신들의 판단을 철회해야 했다.

두 사람의 곧 승패를 결정지었는데, 한 사람이 다른 이의 무기를 날리고 목 끝에 검을 들이 내밀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사람들이 일제히 ‘죽여라!’ 하며 반복적인 리듬을 타고 외치기 시작했다. 승리자는 망설였다. 그러자 머지않은 곳에서 어떤 이들이 줄에 묶인 여자와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남자는 결국 패자를 죽였다. 피가, 바닥을 붉게 물들여 가는 모습은, 여러번 보았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모습은 한층 더 뚜렷해 보인다.

일련의 과정에 엘과 카린은 경악했다. 감정이 생각과 뒤섞여 뇌리에서 휘몰아치는 가운데, 엘은 근처에서 흥겨워하며 박수를 치는 이에게 물었다.

“저, 방금 전에 끌려나온 여자와 아이는 뭡니까?”

“응? 자네, 슬렌에는 처음인가?”

“예.”

“하하. 그렇다면 모를 만도 하지. 그것들은 승리한 놈들의 가족이네. 짐승 같은 원주민 놈들은 노예주제에 경기에 승리해도 상대를 죽이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 그럴 때 협박용으로 쓰면 좋지. 전에는 부양 가족이 없는 것들도 검투사가 되곤 했는데, 그런 놈들은 때때로 채찍으로 수백 대를 때려도 상대를 죽이지 않는 짜증스런 것들도 있어서 흥이 팍 죽어서 지금은 주로 저렇게 가족이 있는 것들을 사용하지.”

남자는 아주 즐거워하며 말했다. 엘은 혐오스러웠고, 혼란스러웠다.

그것이,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내용이란, 말인가.

“---돌아가자.”

“그래.”

두 사람은 환호성을 뒤로 하고 경기장을 빠져 나왔다.





다음날.

“수고했어.”

노예시장에서 빠져나오는 길에 엘은 디리디타의 어깨를 쳤다. 카린도 옆자리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디리디타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의 얼굴은 파리했다.

‘그럴만도 하지.’

카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의 뒤로는 지루한 얼굴을 한 상금 사냥꾼 몇 명과 함께 어린아이와 여자 몇 명이 힘없는 발걸음으로 따르고 있었다. 시장에서 사들인 원주민이었다.

디리디타의 원래 부족 사람은 없었지만, 근처의 동맹관계에 있는 부족의 부족원들은 몇 명 구할 수 있었다. 엘도 그들의 사는데 적게나마 보탰다. 누군가 자신들을 돕는 걸 좋아하지 않는 디리디타 였지만 이때는 그저 고마워했다.

그들을 사들이면서 디리디타가 참고, 견뎌야 했던 것들은 참혹했다. 후드를 뒤집어씀으로서 정체를 숨긴 채, 동물처럼 우리에 갇힌 채 판매되는 이들을 일일이 바라보면서 그들을 판별해야 해야 했고, 사들일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다.

어떤 분노와 슬픔이 그의 가슴을 채웠을까? 카린은 그의 심경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천으로 감싼 자신의 손을 다른 손으로 꾹 잡고 희미하게 몸 전체를 경련하는 디리디타의 모습에서 겨우 그 흔적을 읽어볼 뿐이다.

“......”

그러고 보니, 디리디타는 왜 저렇게 손을 천으로 감사고 있는 걸까? 심하게 다쳐 보기 흉하게 뭉그러지기라도 한 걸까?






밤이다. 슬렌의 한 술집에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 사내의 이름은 제리였다.

그는 자그마단 용병단이랄까, 상금사냥꾼 팀이랄까, 그런 것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집단은 무척 독특한 특징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의 팀이 몬스터를 조련해 팀원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몬스터를 조련하는 것은 방법이라는 면에서 다른 동물을 조련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차이라면 그저 더 위험하다는 정도였다.

물론 그 차이가 가장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잘 훈련한 몬스터는 보수를 분배할 필요도 없고, 배신도 하지 않아서 무척 훌륭한 전력이 될 수 있었다.

그는 고블린부터 시작해서 오크를 거쳐 마침내 오우거 까지 훈련하는데 성공했다.

오우거를 조련하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새끼 오우거를 우연찮게 구해 훈련시키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으리라.

‘다시 생각해도 아깝군.’

하지만 그렇게 고생해서 조련한 오우거를 얼마 전에 잃었다. 다른 마을의 계집에게 눈독을 들인 촌장이라는 자의 의뢰 때문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그 계집이 살고 있는 마을을 위협해 자신의 힘에 기대도록 하려고 했다. 일은 잘 진행되어 나갔다.

하지만 중간에 다른 놈들이 끼어드는 바람에 실패했다. 마을을 구한답시고 다른 놈들이 끼어든 것이다.

남녀 둘로 구성된 팀인 모양인데, 심상치 않게 강했다. 오우거는 그들에게 죽었다. 그래도 의뢰 자체는 성공했다. 마지막에 그들을 피해 여자를 납치해 촌장에게 데려다 줬으니까.

꽤 좋은 여자였다. 늙은이가 혈안이 될 만 했다. 고상한 척 하던 그 노인네는 회춘했으리라.

제리는 오우거와 함께 그 여자도 아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만 아니었다면 품어보는 건데.

뭐, 그 일을 한 덕분에 돈은 적지 않게 받았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도시에 들어왔고 하니, 괜찮은 계집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쓰읍.”

그는 자신의 앞에 놓여있던 술을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는 알콜의 맛이 상쾌했다. 다른 녀석들은 벌써 도박이니 여자니 하며 흥청망청 바빴다. 제리도 입가심은 이쯤하면 됐으니 슬슬 제대로 놀아 봐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막 탁자에서 일어난 제리는 눈에 이채를 띄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을 바라봤다. 거기에는 엉거주춤 조심하는 모습으로 내려오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긴 옷을 입어 몸을 감추고 있었지만 원주민이라는 것은 감출 수 없었다. 피부색이 이민자들과는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이다. 흘깃흘깃 들여다보이는 얼굴도, 확연히 이질적었다. 여기 투숙한 누군가가 산 계집일까?

그러고보니 이 여관에 오늘 낮에 한 무리의 원주민을 사 데리고 왔었다고 한다. 같이 투숙하고 있는 다른 그룹 놈들이 노예상인쯤 되는 모양이다.

‘뭐, 조금 독특하게 즐겨 보는 것도 괜찮겠지.’

선이 고운 젊은 여자였다. 냄새나는 원주민이지만, 매일 같이 남자를 받아들이는 여자들이라고 뭐 그렇게 깨끗하겠는가. 제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진보적인 관점에 스스로 감탄했다. 아루스 본국에서는 노예산업이라면 학을 떼며 인구 운운하는 병신들이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라며 백과사전 만들기에 열중한다고 하지만.



*개인지 제작도 이제 발송만 하면 되니 느긋하게나마 다시 연재 하겠습니다. 이 챕터와 저번 챕터 사이에 빠진 부분이 있는데, 그건 책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서브라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8 황립 실버 라이트 아카데미 (3) +74 08.11.22 10,218 56 10쪽
117 황립 실버 라이트 아카데미 (2) +36 08.11.09 3,937 13 16쪽
116 황립 실버 라이트 아카데미 (1) +18 08.11.03 4,457 18 13쪽
115 다시 아루스로(2) +18 08.10.27 4,273 37 13쪽
114 다시 아루스로(1) +15 08.08.22 4,227 21 12쪽
113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8) +29 08.08.18 4,561 56 15쪽
112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7) +22 08.08.15 3,730 7 15쪽
111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6) +13 08.08.10 3,877 15 13쪽
110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5) +10 08.08.07 3,960 18 16쪽
109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4) +15 08.08.03 3,962 11 16쪽
108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3) +11 08.07.31 3,929 11 18쪽
107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2) +15 08.07.28 3,992 9 15쪽
»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1) +12 08.07.25 4,764 28 12쪽
105 가장 위대한 전사(4) +44 07.05.28 8,460 27 10쪽
104 가장 위대한 전사(3) +35 07.05.25 6,085 23 11쪽
103 가장 위대한 전사(2) +30 07.05.22 7,223 101 11쪽
102 가장 위대한 전사(1) +32 07.05.20 9,442 47 11쪽
101 신대륙(14) +42 07.05.19 5,383 21 11쪽
100 신대륙(13) +37 07.05.18 5,738 30 12쪽
99 신대륙(12) +34 07.05.17 5,287 8 11쪽
98 신대륙(11) +37 07.05.16 5,434 26 12쪽
97 신대륙(10) +35 07.05.15 5,300 13 12쪽
96 신대륙(9) +28 07.05.13 6,107 19 11쪽
95 신대륙(8) +36 07.05.10 5,892 36 11쪽
94 신대륙(7) +36 07.05.09 5,463 15 10쪽
93 신대륙(6) +34 07.05.08 5,516 18 13쪽
92 신대륙(5) +39 07.05.07 5,741 12 9쪽
91 신대륙(4) +45 07.05.06 6,074 20 13쪽
90 신대륙(3) +55 07.05.05 6,744 14 10쪽
89 신대륙(2) +38 07.05.03 6,277 17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