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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첼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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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첼
작품등록일 :
2008.11.22 23:02
최근연재일 :
2008.11.22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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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8.0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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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죽음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5)

DUMMY

그는 달리던 자세 그대로 양 손을 마주 합친다. 그의 손에 쥐여졌던 마나가 합쳐지더니 망토처럼 펼쳐져 엘을 맞이한다.

“핫!”

엘은 검을 휘둘러 그 검은 마나를 기다렸다는 듯 벤다. 섬연한 마나는 엄청난 에너지의 응집으로 그 검은 마나의 집결을 잡아먹는다. 순간의 번뜩임.

엘의 검에 갈라진 대공의 마나는 얇은 종이처럼 허공으로 떠오른다. 문득 엘은 지금 공격, 혹은 방어가 대공답지 않게 엉성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지금 바로 눈앞에 그의 팔이 위맹하게 날아들고 있다. 디 세리온을 섬세하게 움직여 그 공격을 막는다.

-쿵!

‘자잘한 부분은 카린에게 맡기고 전투에 집중하는 수 밖에.’

잠깐 정신을 딴 곳에 판 덕에 힘을 충분히 흘리지 못해 팔이 시큰하게 아프다. 엘은 후회한다. 계속해서 전투를 지속하며 엘은 대공의 빈틈을 찾는다.

그때였다. 거대한 폭음이 일더니 도시 전체가 일순간 환해진다.

‘뭐야!’

엘은 당혹스런 표정을 한다. 그는 발을 박차고 몸을 조심스레 뒤로 띄운다. 대공이 뒤를 쫒는다. 노예시장을 격리하는 성벽을 넘어, 그의 몸은 슬렌의 내성으로 들어선다. 높은 허공에서, 엘의 두 눈은 경악에 커진다.

“이건!”

중력에 당겨지는 몸을 느끼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노예시장 너머 광대한 지역에 걸쳐, 집들은 불꽃에 타오르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다닌다. 하지만 사방이 타오르는 불길에 막혀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속절없이 죽어간다.

죽음과, 비명과, 불꽃과-

지옥의 한 장면 같다.

엘은 방어에 집중하면서 고개를 들어 카린을 본다. 카린은 당혹한 모습으로 날고 있다. 그녀 역시 지금 장면에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다.

어떻게 된 일이지?

엘은 미간을 찌푸리며 의아해한다. 의문의 다음 순간, 종이같이 베이던 마나의 망토가 기억났다.

엘은 이를 간다. 처음부터 노리던 것은 이것이었나!

엘은 보도에 내려앉는다. 대공도 착지한다. 그는 조롱하듯 웃으며 말한다.

-저 용이 싸움의 흥취를 계속해서 막기에, 깜짝 쇼를 준비했지. 이런 장절한 전투에 죽음과 비명이 포함되지 않는다면, 그만한 농담이 없겠지.

대공이 흥이 오른 어조로 말한다. 그는 카린이 소방수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하지만 그녀의 주의력이 엘과 자신의 전투 주변에 불과한 것을 읽고 간단한 트릭으로 광역파괴, 살상을 시도한 것이다.

“전투 중에 이런 장난질이라니, 대공도 질이 부쩍 떨어졌군!”

엘이 비난했다. 무의미한 비난이란 건 자신도 알지만. 하지만 의외로 대답이 돌아왔다.

-후후, 약속을 지켰을 뿐이다.

“약속?”

-그래. 이 몸의 원주인과의 약속. 그는 이 도시에 사는 모든 이주민을 살육해주길 원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염원했다. 내가 그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지. 그렇지 않은가, 블랙 둠의 후예여.

“......!”

엘은 충격에 말없이 이를 문다. 그는 대공과의 싸움을 돌이킨다. 그러고 보면 그는 싸움 과정에서 원주민을 향해 피해가 갈만한 공격을 의도적으로 피했었다. 약속, 을 지키고 있었단 말인가.

대공은 그의 얼굴을 즐긴다. 그는 이것을 노리고 일부러 엘과 대화를 나누었다. 이 몸의 원주인과 블랙 둠의 후예와는 아는 사이였던 것 같으니까.

-이 몸의 원주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은 정당한 싸움이다. 너희들의 개념으로 전쟁에 가깝겠지. 나는 이곳의 모든 자들을 죽이고, 노예가 되어 있는 그의 동족들을 해방할 것이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어비스의 대공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그의 욕망이 거짓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한에는. 그들은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는 강자다.

“...그렇다면, 그냥, 해방시켜라.”

-후후후. 그것은 무의미하다. 그저 탈주하게 하면 그들은 다시 잡히겠지. 그들은 노예였기에 노예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유로웠다가 노예가 되었다.

노예인 그들은 본디 모두 자유로웠다. 부당하고 일방적인 전투의 결과 그들은 노예가 되었다. 엘 역시 알고 있다.

-그러니까 경고해야 한다. 건드리지 마라. 고. 슬렌의 모든 인간을 죽이는 것은 좋은 본보기가 되겠지. 그 이상은 약속할 수 없지만. 하지만 어설픈 정의감에 아무도 죽이지 않고 그들을 탈출시켜도, 결국 한층 더한 억압과 차별과 인간사냥이 횡횡할 뿐이다. 너는 그것에 대해 책임질 수 있나? 맞으면 때릴 수 있는 자만이, 맞지 않는다.

“......”

-더구나 이 몸의 원주인은 모든 것을 이들에게 잃었다. 그의 동족들은 무참하게 살육당하고, 마침내 노예가 되었지. 그들은 맨 처음,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춥고 배고픈 그들에게. 그리하여 돌아온 것은 제노사이드였다. 그의 증오는 바다처럼 넓고 깊다. 너는 그 증오에 대해 어떤 대답을 되돌려 줄 수 있지?

대공은 엘을 조롱한다.

“......”

엘은 더 말하지 못한다. 신대륙의 원주민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그도 안다. 대공은 그의 침묵을 즐긴다.

-후. 할 말이 없는 모양이군.

사실이다. 엘은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대공은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폭발 소리가 났다. 엘의 앞에 그가 등장한다. 엘은 디 세리온을 들어 그의 공격을 막는다. 응집된 마나와 응집된 마나가 충돌한다.

-쿵!

엘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고, 대공의 공격은 이어진다. 소란스런 폭음이 이어질 때 마다, 엘의 몸은 한층 더 높이 허공으로 뜬다.

-후!

대공이 기합성을 내지르며 허공에서 발로 엘을 내려찍는다. 시커먼 반원이 한 순간, 주황빛으로 물든 밤하늘에 생겨난다. 엘은 디 세리온의 검날로 그 공격을 받아냈다. 양손과 어깨로 엄청난 충격이 전달되며 그의 몸은 대지로 내리꽂힌다.

-쾅!

엘은 어렵게 허공에서 자세를 잡았다. 그의 몸이 상반신까지 대지를 파고 들어가며 작은 크레이터가 발생했다. 주변으로 모래와 돌조각이 산산이 튀며 집과 사물을 파괴한다.

대공은 쉬지 않고 공격을 이어 나간다. 그는 곧장 엘의 머리를 두 발로 찍듯이 대지로 내려선다. 엘은 왼쪽으로 몸을 피한다. 다시 한 번 폭음이 나며 대지가 푹 패였다.

“하아!”

이번에는 엘의 차례다. 그는 디 세리온으로 대공의 옆구리를 핥듯이 베어간다. 공기가 그의 검날을 타고 흐르듯 넘어갔다. 대공은 팔꿈치를 움직여 엘의 검 끝과 충돌시켰다. 마나의 충돌에 공간이 흔들린다.

엘은 디 세리온을 회수하며 주춤, 뒤로 물러선다.

-후후후.

대공은 웃으며 엘과 맞선다. 그는 즐거워하는 것 처럼 보인다.

-검에서 망설임이 느껴지는군.

“웃기는 소리!”

엘은 반사적으로 답한다.

-그런가.

고개를 갸우뚱, 하고 움직인 대공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동시에 엘의 몸이 폭음과 함께 뒤로 밀린다. 폭음은 거의 같은 순간, 세 곳에서 겹쳐 터졌다.

대공이 사라진 자리, 나타난 자리, 엘이 방어한 자리.

압도적인 전투력의 유희.

뒤로 밀린 엘은 몸을 돌리며 디 세리온을 휘두른다. 검이 움직이고, 엘을 향해 움직이던 그림자가 멈칫, 물러선다.

-꾸웅!

엘의 뒤를 잡으려던 대공은 기회를 놓치고 밀려났다. 그는 허공에서 몸을 돌리며 근처 집의 지붕에 올라선다. 그의 어깨 너머로 타오르는 밤하늘과 그 파괴에 물든 달빛이 보인다. 엘은 그를 향해 검 끝을 내민다.

-아주 좋아. 너는 역시 강하군. 하지만 나와 처음 싸울 때와 비교해서 조차, 그 기세가 죽었다고 느끼는 것은 다만 나의 착각인가?

대공은 엘에게 묻는다. 그 물음은 조롱이다. 엘은 혼란을 느낀다. 미묘한 흐트러짐을 노리고 대공이 습격한다. 거대한 충격이 전신을 휘감았고, 엘은 저 멀리로 처박힌다. 몇 채의 집을 파괴하고 마침내 멈춘 곳에서, 돌비가 후드득 내렸다.

“크으-”

이번 공격은 쓰렸다. 비명과 당황한 소리가 들린다. 이 집안에 피신해 숨어 있던 사람들이 있던 모양이다. 이곳의 노예로 생활하던 것으로 보이는 원주민 한 명이 다급하게 짐을 싸들고 부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넘긴다. 다시 짐을 챙기러 노예는 집안으로 들어간다. 성급한 말의 발 굴리는 소리가 들린다.

“잠깐만요, 딕이-”

“그딴 노예 따위 알게 뭐야!”

그리고 마차 소리가 멀어진다. 그는 버림받은 모양이다. 서둘러 내려온 노예는 사라진 마차를 앞에 두고 멍하니 서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어디론가 도망간다. 엘의 머릿속은 한층 복잡해진다. 그는 억지로 복잡함을 떨치고 앞을 바라본다. 희멀건 먼지구름을 뚫고 대공이 앞에 서 있었다.

“...내가 검을 드는 것은...”

엘은 억지로 입을 연다.

“네가 대공이라는 것으로 충분해!”

그리고 돌격! 그는 한 줄기 섬전이 되어 난다. 대공은 긴장한 표정으로 그 공격을 받는다. 이제까지와 달리 튕겨나가는 것은 엘이 아닌 그다. 검은 아우라의 응결체가 쏘아진 화살처럼, 불꽃 사이에서 뒤로 튕겨나가는 모습은 장관이다.

-쿠웅!

충돌 지점에서 엘은 대공과 떨어지며 근처에 착지에 자세를 잡는다. 대공은 안정된 자세로 먼지를 헤치며 걸어 나온다. 크게 피해를 입지 않은 모습이다. 그는 엘을 비웃는다.

-그래. 차라리 그것이 좋겠지.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 않고, 아무 고민 없이, 단정적으로 사태를 판단하는 것이, 차라리 편리하겠지.

“그건...!”

-대공이기에 반드시 ‘악’이며, 악마이기에 반드시 ‘악’이다.

“아니란 말이냐! 너희는---!!”

-아, 아마 맞겠지. 나는 그걸 부정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단지, 위대하고 정의로운 삼좌의 한 후예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네가 단지 내가 대공이기에 검을 들듯이, 우리나라 사람이기에 선하고, 우리 지역 사람이기에 선하고, 나와 피부색이 다르기에 악하고, 천하고, 멍청하다고 판단하는 그들도 정당하다. 그런가-

“그건...”

-하하하! 재미있군!

대공은 엘을 놀린다. 놀리면서, 쉬임없이 공격한다. 삶을 갈망하는 어둠의 마나가 쉼없이 엘을 가격한다. 엘은 그것을 모두 막아내지만, 조금씩 충격이 쌓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크윽!”

자세를 정비하고 숨을 돌리기 위해 크게 검을 휘두르며 엘은 그의 공격권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대공은 엘을 쫒으려 하지만 견제를 위해 엘이 펼쳐놓은 안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하아하아...”

엘은 숨을 헐떡이며 대공과 대치한다. 타오르는 불꽃과 부서진 집. 쓰러진 자와 도망치는 자의 비명. 그들이 지나온 자리는 무참한 파괴의 흔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흥!

대공이 웃는 순간, 엘의 텃이 뒤로 당긴다. 그리고 그의 몸 전체가 곧은 직선을 그리며 빨려 들어가듯 뒤로 날아간다. 대공의 공격을 받고 튕겨나간 것이다. 또 몇 채의 집을 박살내며, 엘은 벽에 처박혔다. 대공은 느긋하게 다가오며 말한다.

-후후후. 자신의 정의를 확신하지 못하는 블랙둠의 후계자와의 싸움은 재미있군. 내 예상대로다. 역시 이쪽에서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거늘. 그 바보 놈들은... 쯧.

엘의 직감이 지금 대공의 말은 ‘중요하다’고 속삭인다. .

“무슨, 말이지?”

-너는 적에게 너무 많은 친절을 바라는 나쁜 버릇이 있군. 아무리 블랙 둠의 후계자라고 해도, 그래선 오래 살지 못할걸.

다시 대공은 엘을 공격한다. 검을 들어 그 공격을 막는다. 바쁘게 손을 놀리던 중에, 대공이 멀을 든다. 엘은 황급히 몸을 띄운다. 그의 아래로 대공의 다리가 스치고 지나간다. 엘은 디 세리온으로 방어하면서 관절 부분을 마나가 응집된 발로 거세게 걷어찬다.

-퍽!

대공의 무릎 부분이 꺾인다. 동시에, 대공의 주먹이 엘의 옆구리를 치고 들어온다.

-꿍!

엘은 옆으로 튕겨나며 공중제비를 돌아 자세를 잡는다. 대공은 그 사이 부러졌던 다리를 원래대로 회복시킨다.

‘엘...’

하늘에서 계속 싸움을 바라보는 카린은 초조한 마음이다. 치열한 공방이지만, 어딘가 엘이 밀린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엘이 평소보다 약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역시 대공의 말에 휘말린 탓일까. 엘은 이 도시를 혐오한다. 이 도시에 사는 이들도 혐오했다. 대공의 말은 그 혐오를 파고들어 엘의 집중력을 좀먹고 있었다.

‘믿는, 수밖에.’

카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두 존재의 싸움을 지켜보며 그 여파를 조율한다. 이미 도심이다. 사물과 사람은 물처럼 조밀하게 들어차 있다. 번지는 불꽃을 억제하고, 바위와 자갈의 속도를 억제하고, 사람을 피난시킨다. 조율의 일족에게도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짜증스런 도시다.

대공의 공격을 받으며 엘은 그렇게 생각한다.

역겨운 도시다.

대공의 공격을 받으며 엘은 그렇게 생각한다.

피부색이 다르다. 얼굴 형태가 다르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 말이 다르다. 체격이 다르다. 그 모든 다름이 주홍 낙인이 되어 그들의 등에 찍히고, 그것은 가장 저열한 욕망의 이유가 된다. 그러니까 추악한 도시다.

이번 공격은 왼쪽이다. 디 세리온을 든다. 검면으로 충격이 전해진다. 살짝 손의 힘을 빼어 그 충격을 흘리면서, 마나로 손 아귀의 힘을 보강한다. 힘은 저항하지 않는 흐름을 따라 땅으로 파고든다.

그런 것들이 뭔데, 그들을 죽이면서도 죄가 아니게 되는 정당한 이유가 되고, 차별을 하는 정당한 이유가 되고, 혐오하는 정당한 이유가 되고, 상품으로 만드는 정당한 이유가 되고, 강간을 하는 정당한 이유가 되고, 자식을 인질로 죽음의 길로 내몰면서도 죄책감 없이 웃을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는가. 추악, 이라는 단어 이외에 다른 것이 거기 끼어들 여지는 없다.

허공에서 검은 마나의 응집이 발생한다. 엘은 그것이 대공의 공격이라는 것을 알아챈다. 그는 손을 펼쳐 긴급히 역장을 발생시킨다. 검은 응집체에서 뻗어 나오는 화살 같은 마나가 그 역장에 막힌다. 성공적인 방어다.

-호오.

대공이 감탄한다. 엘은 그의 감탄에 주의를 할애할 여유가 없다. 그의 손발은 바쁘게 움직일 뿐이다. 돌과 바위는 그들 앞에서 그저 엉성하게 뭉쳐진 톱밥처럼 무력하다. 분분히 날리는 돌조각.

하지만 가장 짜증스러운 것은, 그러한 짜증스런 사태의 해결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깊은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 쓰러진 노인을 돕듯이, 한 사람을, 한 명의 노예로 전락한 원주민을 돕는 것은 가능하리라. 하지만 그러한 전락의 끝에 비참을 맛보는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것은 검으로 사물을 베어내듯,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래서,

-하하하하!

대공은 웃으며 팔과 다리를 모은다. 그의 동작에 맞춰 허공을 격하고 에너지가 엘을 향해 짓쳐들어온다.

“컥!”

엘은 커다란 충격에 머리를 위로 젖치고 뒤로 물러난다.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한쪽 발로 바닥을 내리쳐 지지대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의 몸은 다시 먼 곳 까지 날려갔을 것이다. 도로로 길게 선이 그어졌다. 엘은 고개를 들며 왼손 소매로 코밑을 훔친다. 소매로 검붉은 피가 묻어져 나온다.

나는 디리디타의 증오에 답할 수 없고, 디리디타의 슬픔에도 답할 수 없다. 아아, 사부. 세상은 이토록 비루합니다. 서브라임을 이런 곳에서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당신은 그것이 거침없는 신의 발걸음 같은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엘은 발을 박찬다. 그의 몸은 바람이고, 빛이다. 날아오는 힘에 대공은 팔을 교차하며 막는다. 주변이 충격이 일순 밝아졌고, 두 존재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나갔다. 그들은 착지하자마자 언제 튕겨나갔냐는 듯 부닥치며 싸운다.

벤이 떠오른다. 어누룩한 말, 하지만 확고한 정신과 강철 같은 논리를 지니던 아름다운 사람이다. 결국 실패하면서도, 그 실패를, 실패를 넘어선 것으로 받아들이는 강인한 사람. 그라면 여기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이 비루함에 서브라임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내가 아니라 그에게 있을 것인데, 나는 그런 서브라임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성원을 합시다~ 성원~

*감상문 등등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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