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일반소설

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1,082,413
추천수 :
33,838
글자수 :
1,875,939

작성
21.10.31 15:22
조회
1,969
추천
85
글자
25쪽

148. 평범했던 그 날의 오후

DUMMY

언코 펌(Unco Firm).


아직 널리 퍼지지는 않았으나, 오늘을 기점으로 서서히 알려질 이름이었다.


이제 앞으로 벌어질 로스 카운티와 셀틱의 격돌을 한 단어로 축약한 더비 명칭이 될 테니까.


일시적인 대항마 수준을 넘어서 두 시즌 연속으로 우승 경쟁을 벌인 끝에 순위까지 뒤집었다. 이쯤 되면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적어도 이 나라 안에서는 산 파올로의 기적에 버금갈 사건.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은 수십 년간 왕권 다툼을 벌이는 둘과 밑에서 받쳐주는 나약한 소작농들로 구성된 리그나 다름없었다.


하나가 추락하면서 독식 체제가 굳어지는 동안에도 나머지들은 힘없이 그들의 전쟁을 관망해야만 했다.


챔피언의 아성에 도전하는 팀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일찍 나가떨어지는 게 다반사였다.


구단의 빈부격차가 더욱 극심해진 현대에 와서는 셀틱을 정상에서 끌어내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근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냈다. 규모도 보잘것없는 팀이. 초반에 반짝 올라선 것도 아니고, 시즌 막바지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면서.


환상적인 유로파 리그의 활약을 뒤로 제쳐두고 이것만 놓고 봐도 센세이션한 업적인데 당연히 정식 더비로 인정하는 게 옳지 않겠는가?


반대 의견도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봤자 잠깐 돌풍을 일으켰던 거고, 전성기가 끝나서 제자리로 돌아가면 다시 셀틱의 시대가 도래할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단지 그들을 묵살시켜버릴 만큼 찬성파가 압도적이었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로스 카운티는 현재 단순히 축구팀의 개념을 넘어서 하나의 신드롬에 가까웠으니까.


모두가 이 하일랜드의 작은 팀에 미쳐 있었으니까.


시작은 광장에 모여든 축구팬들의 입에서 은연중 흘러나왔으나, 그것을 본격적으로 다듬어서 퍼뜨리는 건 언론의 몫이다.



[ Scottish Sports ] 언코 펌, 이 경기를 칭하게 될 새로운 이름


[ Daily Mirror ] 올 시즌 언코 펌의 최종 승자는 로스 카운티



소식은 전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로써 스코티시 리그에는 또 하나의 펌이 생겨났다.


유서가 깊은 전통의 라이벌, 셀틱과 글래스고 레인저스의 올드 펌.


이후 알렉스 퍼거슨 경의 애버딘과 짐 맥클린의 던디 유나이티드가 두각을 드러내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절에 생겨난 뉴 펌.


‘오랜 동료’와 ‘새로운 동료’라는 뜻을 지닌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두 개의 더비 매치.


여기에 언코 펌을 포함하여 세 개가 된 것이다.


해석하면 ‘낯선 동료.’


그나마 주요 도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어 익숙하게 다가왔던 앞선 네 팀에 비해 완전히 생소한 이름.


하일랜드 내에서도 대표 지역이 아니었던, 군소 도시 딩월을 연고지로 둔 낯선 존재인 로스 카운티가 스코티시 리그를 대표하는 펌의 일원이 되었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명칭이었다.


공식적으로는 그랬지만 사실 그 외에도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Unco는 보통 ‘낯선’이라는 말로 쓰이지만, 동시에 ‘눈에 띄는’ 혹은 ‘섬뜩한’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밑바닥에서 치닫고 올라와 프리미어십과 유로파 리그를 휘젓고 있는 모습이 워낙 ‘눈에 띄는’ 행보라서.


그런 점이 챔피언인 셀틱의 시각에서 보면 ‘섬뜩한’ 수준이라. 누군가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언코 펌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날에 벌어진 2 : 4의 재현은 정말로 섬뜩했을 테니.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올드 펌도 당분간은 보기 어려운 시점에서 새로운 흥행보증수표의 등장은 프리미어십 사무국에서 기꺼이 반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당장 셀틱 파크가 매진되어버릴 정도의 엄청난 열기였으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경기 내용 또한 객석을 꽉 메운 관중들의 기대를 충족하고도 남았다.


여러 진기한 장면들이 많았지만, 특히 소피앙 부팔의 장거리 드리블 돌파가 나왔을 땐 하일랜드 전역을 뒤흔들 함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보다 성공적인 결과가 있을까? 과장 좀 보태면 흥행을 넘어서 리그가 번영할 수 있는 수단으로 뻗어 나갈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언코 펌의 탄생은 모두가 바라는 현상이었다.


오직 한 곳, 졸지에 공공의 적으로 몰리면서 한동안 악당의 이미지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게 될 셀틱만 제외하고.


다르게 보면 그 셀틱이 허무하게 쓰러지지 않고 훌륭히 맞서 싸웠기에 경기가 완성되었으니 신규 더비의 출발을 빛내준 건 그들의 공이 큰 셈이다.


*******


“어서 옵쇼.”


그날은 여느 때와 별다를 게 없는 하루였다.


평소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가게 문을 열고, 빗자루로 앞뜰을 쓸고, 장사 준비를 마친 뒤 잔을 닦으며 프런트 바를 지키는.


조지 맥도넬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


그에게 있어 잔을 닦는 것은 펍 내부의 적적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쓸쓸함을 달래는 행위에 불과했었지만, 지금은 대화를 나눌 누군가를 기다리는 설렘으로 바뀌었다.


언제부터 그랬냐 하면 꽤 오래된 일이다.


정확히 작년에 로스 카운티가 2위를 하면서 국내 인지도를 차곡차곡 쌓아나가던 때. 딩월시 주민들이 점차 축구에 관심을 가지고 모여든 그때부터.


연고지 팀의 무용담이 하나둘 추가될수록 이곳을 찾는 방문자들 또한 조금씩 늘어나니, 발걸음이 뜸했던 예전에 비해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로스 카운티가 이대로 우승까지 하려나?”


“거의 확정적이지. 두 경기 남았지만, 어려운 상대도 없고. 셀틱은 인버네스랑 경기가 남아 있잖아.”


손님들 사이에서 이런 얘기가 오가는 건 흔하게 볼 수 있었고.


[로스 카운티가 93점, 셀틱이 92점입니다. 이 정도로 치열한 접전을 벌인 시즌이 최근에 있던가요?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군요.]


TV에서도, 거리에서도 모두가 지난 경기에 대해서 떠들기 바빴다.


“셀틱이 그래도 저력이 있으니 모르지. 한 번이라도 미끄러지면 다시 순위가 역전되는 거 아냐?”


“그건 그렇긴 한데······.”


“하하, 젊은 친구. 저력 하면 로스 카운티도 빠지지 않는 팀이잖소. 그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역전승을 거둬왔다고!”


맥도넬 또한 자연스레 그들의 대화에 동참할 수 있었고 말이다.


잔을 닦으면서도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왔다.


사랑하는 축구팀은 스코티시 리그의 얼굴이 되었고, 그의 펍은 북적거린다고 할 만큼은 아니나 적어도 텅 비었단 느낌은 확실히 사라졌다.


인구 밀도가 적은 도시, 인적이 드문 거리에 세워진 이곳까지 찾아오는 손님이 많은 게 도리어 이상할 것이다.


생계로 인해 사이가 소원해졌던 오랜 친구와도 다시 가까워지고, 같은 즐거움을 공유할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얻었다.


맥도넬은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이봐, 조지. 저번 경기 봤나?”


“오, 맥코드 씨로군. 나야 안 봤을 리가! 근데 무슨 일 있었소? 꽤 오랜만에 들른 것 같은데.”


“오랜만이라 해봐야 일주일도 안 됐네, 이 사람아!”


친구들 외에도 말동무가 되어줄 술집 단골들이 늘어난 건 덤이다.


“그러면 오늘 저녁에 있을 경기도 보러 갈 건가?”


“물론! 그래서 낮 장사만 할 거요. 빅토리아 파크에 갈 때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하니까. 드니프로와 붙는 유로파 리그 2차전이잖소. 중요한 경기인데 놓칠 순 없지!”


“아쉽구먼. 여기서 함께 맥주를 들이켜며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보아하니 손님도 모여들고 있는데 이대로 문 닫기엔 좀 그렇지 않나?”


“곧 빠질 텐데, 뭐······. 아시잖소. 이 술집, 그렇게 잘 나가는 편은 아니란 거. 요새 로스 카운티 덕을 좀 보고 있긴 하지만.”


그러면서 맥도넬은 테이블을 반쯤 채운 손님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월리스는 셀틱만 만나면 더 날아다니는 것 같아.”


“레인저스 출신 풀백이잖아. 그는 평생 셀틱을 적으로 둘 운명인 거야.”


대화에 끼어들 필요도 없이 지켜보고만 있어도 흐뭇했다.


새삼 혼자서 고독하게 로스 카운티의 매력을 여기저기 퍼뜨리려 노력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는 거들떠볼 가치도 없다는 듯 외면했던 사람들이 마침내 그 진가를 알아봐 주고 있다.


비록 그 전도 활동이 안토니오 델 레오네의 전임자였던 데렉 아담스 시절부터였긴 했지만.


당시 내세울 거라곤 프리미어십 승격과 강등권으로 전망되던 순위를 5위까지 끌어올린 정도. 보여줄 건 실리라는 말로 잘 포장된 지루한 롱볼 축구였으니 설득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했다.


맥도넬은 그것도 대단한 거라며 열변을 토하곤 했지만, 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대중들을 매료시킬 수준은 아니란 걸.


아담스의 업적이 위대하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단지 현 감독이 그 위대함을 넘어선 경이로움을 보여주며 스코틀랜드 전역을 열광에 빠뜨리고 난 뒤에는 언급할 일이 사라진 것뿐이다.


“그래도 참 신기하지. 여기까지 많은 손님이 찾아와서 로스 카운티에 대한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소.”


“아닌 게 이상한 거야. 나도 내 인생에서 축구를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맥코드의 대답에 콧등이 시큰해진다.


[전국적으로 퍼져나가는 로스 카운티 열풍. 언제까지 지속될까요? 올해 만일 리그를 우승한다면 다음 시즌에도 그 기세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충분히 가능합니다. 안토니오 델 레오네, 이 감독이 존재하는 이상. 그는 불가능을 기적으로 만들어낸 남자예요.]


모든 매체, 주변에서 들리는 온갖 소음마저 로스 카운티와 감독을 향한 찬가처럼 들려온다.


맥도넬이 꿈꿔왔던, 여러 명과 함께 축구의 기쁨을 누리고 싶었던 소망보다도 더 황홀한 풍경.


“늘 바라오긴 했다만, 이건 정말이지······.”


하지만 그 작은 여운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뭔가 위화감이 들기 시작한 건 맥코드와 담소를 나눈 지 한 시간쯤 지난 후였다.


“······오늘따라 좀 많이 오는 것 같긴 한데.”


금방 빠져나갈 거라 생각했는데, 어째 그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먼저 왔던 손님들이 나가면 또 다른 이들이 몰려와서 테이블을 채운다. 오히려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는 인원들.


기억나는 얼굴이 방문하면 반갑게 인사하길 좋아했던 맥도넬로서는 기이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 동네에 모르는 얼굴들이 이렇게 많았나?


아까 전부터 이상하단 느낌이 불현듯 들긴 했었다. 그래도 별거 아니라 여기며 넘어갔는데, 점점 뭉클함보다는 당혹스러움이 밀려왔다.


오늘 있을 드니프로전 때문일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른 낮부터 맥주를 마시러 오는 이들이 많았던 것부터 심상찮음을 느꼈어야 했을까?


그 와중에도 점점 몰려들어 급기야 남은 테이블 하나까지 채워버렸고, 방문자들은 계속해서 들이닥치고 있다.


저들은 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인가?


이 펍을 운영하면서 맥도넬이 난생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바깥도 갑자기 시끄러워진 것 같은데.”


맥코드가 창문을 가리키며 말한다.


창밖이 시끄러운 거야 익숙했다. 최근 들어 로스 카운티로 떠들썩한 것쯤은 워낙 흔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볼프스부르크와 나폴리를 이겼던 날은 온종일 시끌벅적하기도 했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맥코드가 언급할 만큼 신경 쓰이는 소음이 바깥에서 나고 있다는 얘기다.


맥도넬의 귀에도 뚜렷이 들려왔다.


평소의 라디오 전파가 아니라 다수가 술렁이는 듯한 소리. 유로파 리그 4강 진출을 성공했던 때에 준하는. 어쩌면 그보다 더 웅장한 것 같은 소리.


마치 경기장에라도 와 있는 착각을 들게 만드는 군중들의 웅성거림.


방금만 해도 몰랐는데, 한 번 의식하니 확실히 피부를 통해 느껴져 왔다.


“밖이 소란스러운 것 같긴 한······.”


“이봐, 조지!”


누군가가 불러 고개를 돌아보니 서점의 마크 비어드가 상기된 표정으로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던가?”


“무슨 날이냐니······. 드니프로전이 있긴 한데······.”


“내가 그걸 몰라서 물었겠나? 설마 그것 때문에 이 지경이 되었다는 거야?”


“무슨 일인데 그러오?”


“이 친구, 둔하기는! 설명보다는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네. 밖으로 나와 보게. 어서!”


맥도넬은 비어드를 따라 허겁지겁 나가보았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이게 뭔······.”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들.


수십? 수백? 도저히 셀 수 없었다. 많은 수준을 넘어서 붐빈다는 표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


하이 스트리트에 사는 모든 주민이 밖에 쏟아져 나온다 해도 이럴 수가 있을까? 장담컨대 불가능하다.


뒤따라 나온 맥코드도 놀랐는지 눈을 비벼대며 헛것을 본 것처럼 연신 끔벅거렸다.


“지금 이 마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모르겠소. 나도 잘······.”


“조지!”


이번엔 정육점의 코리 맥골드릭이었다. 급하게 뛰어왔는지 한동안 숨을 고르던 그는 맥도넬의 양어깨를 덥석 잡으며 흥분을 토해내었다.


“자네, 알고 있었나? 하일랜드 시장이 저기 앞 메리버그 공터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준다는 거.”


“대형 스크린?”


“빅토리아 파크는 진작 매진되었잖은가? 수용 인원은 부족한데, 다들 로스 카운티 경기는 보고 싶어 하니. 그래서 경기장에 못 들어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응원할 자리를 마련해주고 있다는 거야. 나도 방금 들은 얘기네.”


“난 처음 듣는데······.”


“근데 지금 난리가 났어. 그마저도 꽉 찼다는 모양이야. 거기 공터에 잔뜩 모여들어서 자리가 남아나지 않는다는데.”


“그러면 이 사태가 어느 정도 이해되는군.”


비어드가 말했다.


“그 많은 사람이 밀려왔다는 얘기가 아닌가?”


“뭣······ 그게 가능하다고? 메리버그에서부터 만들어진 행렬이 여기까지 들어왔다는 거요?”


“나도 말하면서 황당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설명해주고 있잖나?”


맥도넬은 말문이 막혔다.


여기서 걸어가는 데만 삼십 분은 족히 걸릴 메리버그. 거기서부터 하이 스트리트까지 개미 떼처럼 바글바글한 인파.


정말 터무니없는 얘기 같지만, 그게 아니고서야 이 자연재해와도 같은 현상을 어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그러는 동안에도 손님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빅토리아 파크가 매진된 것처럼, 딩월시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도 자리가 꽉 들어차 버린 것처럼. 맥도넬의 펍도 북적거리고 있었다.


“여기 맥주컵 팝니까?”


“맥주컵이요?”


“일회용 컵이요. 자리가 없으니 일단 나가서 마시게요.”


“아아······. 그런 건 없는데······.”


“에이, 그럼 그냥 병이라도 주세요.”


아예 술병을 통째로 사서 나가는 무리.


“이쪽도 야단났구먼.”


맥골드릭의 말이었다.


“자네 가게만 이러는 게 아니네. 주변 술집이나 음식점은 죄다 미어터지고 있거든. TV로라도 경기를 볼 수 있는 곳은 다 어수선할 거야.”


“······.”


자세히 살펴보니 벌써 밖에서는 단체로 음주를 즐기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중이었다. 다른 주점에서 구한 듯해 보이는 일회용 컵을 높이 들어 올리며 흥얼거리는 사람들.


저들은 딩월시를 보러 온 관광객이 아니다. 로스 카운티의 축구를 보러 온 관객이다. 그냥 모여든 게 아니라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온 거다.


슬슬 실감이 났다.


전국적으로 퍼진 신드롬이 하일랜드마저 통째로 집어 삼켜버렸다는 걸.


이윽고 해리 윌슨이 놀란 얼굴로 펍에 들어왔다. 평소에 덤덤한 성격인 그조차 충격을 크게 받은 모양이었다.


“조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나도 모르겠어.”


맥도넬은 여전히 비현실적인 이 상황에 홀려 있었다.


만약 이전에 누군가 자신에게 와서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코웃음을 쳤을 텐데.


어제만 해도. 아니, 오늘 아침만 해도 한산했던 거리였는데.


“해리.”


맥도넬이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지금 꿈꾸고 있는 거 아니지?”


온몸을 휘감으며 선명하게 느껴지는 감각. 꿈은 결코 아니다. 마음속으로 몇 번을 되물었지만, 답은 빤히 있지 않은가.


잔잔했던 하이 스트리트가 한순간에 변했다. 에든버러의 번화가처럼.


······번화가?


문득 무언가 머리에 빠르게 스치며 지나갔다.


그 남자와의 첫 만남. 그가 로스 카운티 감독으로 부임하기 전날, 이 술집에 와서 하고 갔었던 한마디.


‘주인장의 술집은 분명 번창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보장하죠.’


“······설마 그래서.”


양팔에 소름이 돋아 올랐다.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로스 카운티의 성공 가도를 보면서 어렴풋이 짐작은 했었다. 왜 그가 그런 말을 하고 갔는지.


조금씩 늘어나는 손님들을 보면서 이래서 그런 말을 했던 거였나 싶었다.


하지만 맥도넬은 오늘에 와서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알아차리고야 말았다.


이탈리안은 그때부터 이만큼 거대한 파급력을 일으킬 심산으로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


< 14-15 UEFA Europa League Semi-finals, 2차전 >

로스 카운티 : FC 드니프로

2015년 5월 7일 (목) 19:45

빅토리아 파크 (관중 수 : 6,541명 / 매진)



[로스 카운티 / 4-2-3-1]

FW : 에이든 딩월

AM : 소피앙 부팔 / 제임스 블랜차드 / 앤드류 톰슨

CM : 알렉산더 캐리 / 리차드 브리튼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스콧 보이드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FC 드니프로 / 4-4-2]

FW : 니콜라 칼리니치 / 예우헨 셀레즈뇨우

MF : 예우헨 코노플리얀카 / 루슬란 로탄 / 야바 칸카바 / 브루노 가마

DF : 레오 마토스 / 예프겐 체베르야츠코 / 더글라스 / 아르템 페데츠키

GK : 데니스 보이코



“조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마침 잘 왔네, 케니. 일손이 부족하니 좀 도와줘.”


“아니, 바깥에 왜 이리 사람이 많은······.”


“나중에 설명해줄 테니까. 이것부터 저기 테이블에 갖다주게.”


케니 풀러는 오자마자 영문도 모른 채 떠밀리듯 가게 일을 도와야만 했다.


해가 저물었는데도 여전히 혼잡한 맥도넬의 펍.


이미 윌슨을 비롯한 마을 친구들이 그의 일을 돕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몰아치는 인파에 한 명이라도 손이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원래라면 서서히 뒷정리를 해야 할 시간인데. 가게 문을 닫고 일행들과 함께 빅토리아 파크로 향했어야 할 시간인데.


“조지, 어떻게 된 건가? 경기장에 안 가려고?”


“어떻게 가, 케니. 이 많은 인원을 다 내보낼 순 없잖아. 모두 로스 카운티 경기를 보고 싶어서 우리 가게까지 들어온 손님들이야.”


맥도넬은 남기로 결정했다.


경기를 직관하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그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이 작고 아담한 펍에서 다른 이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았으니까.


사실 맥도넬이 제일 원했던 그림이기도 했다.


물론 한순간의 꿈이다. 설령 신드롬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이만한 감격이 지속되긴 어려울 것이며, 앞으로 사람이 좀 더 많아진다 해도 이렇게 들끓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당장 내일만 되어도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겠지.


그래서 경기장에 가는 것보다 더욱 소중한 추억이 될지도 모른다.


[로스 카운티와 드니프로의 유로파 리그 2차전, 곧 선수들이 입장합니다.]


기다리던 중계 해설이 흘러나오자 단합된 목소리가 펍 안을 크게 울리며 밀려오는 파도처럼 맥도넬의 가슴에 부딪힌다.


자신의 조촐한 가게에서 이토록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나폴리전, 친구들을 모아 응원했던 그 날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로스 카운티가 기회를 얻을 때마다 혹은 위기를 맞을 때마다 한마음으로 외치는 함성.


맥도넬의 펍은 사실상 빅토리아 파크의 일부나 다름없었다.


[딩월, 중간에서 가로챕니다! 좋은 역습 찬스! 블랜차드가 전방으로 길게 넘깁니다! 필사적으로 몸을 날리며 걷어내는 수비! 패스가 살짝 짧았습니다!]


[드니프로도 쉽게 물러서지 않습니다. 1차전보다 더 나은 경기력을 보이고 있어요.]


반대편 나라에서도 현재 이러고 있을까? 저들 또한 유로파 리그 4강 신화를 이룩하며 여기까지 올라와 로스 카운티를 마주하는 것일 텐데.


[평소의 4-2-3-1이 아니라 4-4-2를 들고나와 매우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드니프로. 상당히 효과를 보고 있는데요. 오늘 양쪽 날개의 화력이 매섭습니다.]


스코틀랜드와 우크라이나 국민의 염원을 짊어지고 치열하게 공방전을 펼치는 양 팀.


[코노플리얀카, 안으로 파고드는 드리블! 박스 안으로 찍어 올리는 크로스! 셀레즈뇨우의 헤더! 들어갑니다! 후반전에 선제골이 터지고 맙니다!]


“안 돼!”


[총합 스코어가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드니프로의 에이스, 코노플리얀카가 만들어낸 골이네요. 1차전의 부진을 만회하려는 건지 오늘 유난히 돋보이는 활약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진 건 아니야. 이대로 가면 연장전에 들어가겠지.”


“카운티, 힘을 내!”


맥도넬은 자신들의 친족을 응원하는 것처럼 격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며 미소가 흘러나왔다.


경기 내용에는 별로 걱정이 들지 않았다. 선제골을 내줬다 해도 겨우 동점이 되었을 뿐이며, 역전의 여지는 충분하니까.


이 팀은 로스 카운티이며, 그들을 지휘하는 감독은 안토니오 델 레오네니까.


무엇보다도 그 선수가 절정의 폼을 유지하고 있다.


[빠르게 오버래핑해 들어간 월리스가 옆으로 패스를 전달합니다. 수비를 떨쳐내는 부팔! 박스 안으로 진입!]


“어어어?”


[반 박자 빠른 대각선 왼발 슛이 키퍼 아래를 뚫고 들어갑니다! 다시 동점을 만드는 소피앙 부팔! 다시 총합 스코어를 앞서가는 로스 카운티!]


“우와아!”


“세상에!”


[팬텀 드리블인가요? 왼발로 시작한 부드러운 드리블이 페데츠키를 완벽하게 무너뜨렸습니다.]


“저게 소피앙 부팔이지.”


“난 그가 한 건 해줄 거라 믿고 있었어!”


이제 다들 확신에 차 있었다. 승기가 잡혔다는 걸. 로스 카운티가 다음 무대에 한 발짝 더 다가서고 있다는 걸.


드니프로 측에서도 못 느낄 리 없었다.


점차 조급해지는 상대의 공격,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는 수비 라인. 이럴 때일수록 빛나는 건 알렉산더 캐리의 발끝.


[캐리의 패스가 길게 전방으로! 블랜차드의 단독 찬스!]


모두가 숨죽였고, 주변 공기가 일순간 고조되었다.


제임스 블랜차드. 빠른 발을 지니진 않았지만, 오프사이드 트랩을 허물었을 때 쉽게 추격당할 만큼 느린 편은 아니다.


그리고 골문 앞에서 보이는 능력은 팀 내에서 상위권. 큰 경기에 강한 특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수.


[블랜차드! 골키퍼와 일대일 대결! 아아!]


골키퍼까지 옆으로 제쳐내는 장면을 보며 양 팀의 팬들은 직감했다.


결승에 올라갈 팀이 어느 쪽인지를.


[여유롭게 밀어 넣는 블랜차드! 빈 골대로 굴러가는 볼!]


이예에 -


기다렸다는 듯 폭발하는 군중들의 함성.


[역전의 사나이! 제임스 블랜차드가 드니프로의 추격 의지를 한층 더 꺾어버립니다!]


[로스 카운티, 정말 강하네요!]


그다음은 일방적이었다.


로스 카운티는 유리한 위치에서 남은 시간을 여유롭게 운영했고, 쫓아갈 수밖에 없는 드니프로는 자제력을 잃어버리며 끌려가다가 한 번 더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골문 바로 앞에서 높이 날려버린 딩월의 자비로운 결정력으로 간신히 추가 실점은 모면했지만.


의도한 건 아니었겠으나 그가 승리의 축포를 쏘아 올린 셈이다.


이후 곧바로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


“결승이라니.”


맥도넬은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 로스 카운티가 진출한다. 첫 유럽 대항전 참가 시즌에 결승까지 올라가는 말도 안 되는 대기록을 달성하면서.


“있잖아, 조지. 올해 내가 제일 잘한 일이 뭔지 알아?”


풀러가 여운에 젖은 얼굴로 말했다.


“자네 말이 생각나서 유로파 리그 최종 예선전을 봤던 거야. 그때 홀딱 반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그 예선전을 치렀던 팀이 결승 무대에 오르다니.”


“말했잖아.”


맥도넬은 축배를 들며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대꾸했다.


“누구든 로스 카운티를 보면 안 빠져들 수 없을 거라고.”


=============================

< 로스 카운티 2 : 1 FC 드니프로 >

소피앙 부팔(66‘)

제임스 블랜차드(79‘)

+++++++++++++++++++++++++++++

예우헨 셀레즈뇨우(53‘)


=============================

=============================

< 종합 성적 >

1차전

FC 드니프로 0 : 1 로스 카운티


2차전

로스 카운티 2 : 1 FC 드니프로


총합 스코어

로스 카운티(W) 3 : 1 FC 드니프로


=============================


작가의말

이 글을 시작하기 전부터 

머리 속에 크게 맴돌던 그림 중 하나를

마침내 글로 옮기게 되었는데

그만큼 재미있게 표현되었는지 모르겠네요

항상 좋게 봐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foir 님

모아두상 님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015/16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스포일러 주의) 23.01.14 559 0 -
공지 2014/15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스포일러 주의) +4 18.09.04 2,082 0 -
공지 연재 주기에 관한 공지입니다 +4 18.04.11 3,272 0 -
공지 독자분들께 공지 하나 드립니다 +11 18.02.08 5,472 0 -
공지 2013/14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9 17.12.19 18,424 0 -
203 203. 공간 싸움 (4) +5 24.04.07 478 36 25쪽
202 202. 공간 싸움 (3) +6 24.03.18 575 35 25쪽
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643 39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0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7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7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3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3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4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6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0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69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1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4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2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4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3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299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6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7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1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68 50 2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