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일반소설

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1,082,626
추천수 :
33,838
글자수 :
1,875,939

작성
23.11.22 19:58
조회
925
추천
43
글자
25쪽

193. 두 마리의 사자

DUMMY

2016년 2월 23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마운트 플로리다, 햄던 파크, 컨퍼런스 룸.


파리 생제르맹 FC(Paris Saint-Germain FC)의 로랑 블랑(Laurent Blanc)은 진지한 얼굴로 인터뷰에 임하고 있었다.


“감독님은 모나코와 리그 일정을 치르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스코틀랜드에 입국했습니다. 경기 하루 전날 온 게 아니라요. 그만큼 로스 카운티전을 철저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나요?”


“현지 적응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잉글랜드는 예전에 몇 번 와봤지만, 아직 스코틀랜드 경험은 없었으니까요.”


“그 말은 로스 카운티에 대해선 딱히 걱정이 없다는 건가요?”


“축구는 예측이 어려운 스포츠 중 하나입니다. 공은 둥글다. 그 본질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낸 팀이 로스 카운티고요. 그들이 거둔 성과는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제가 가볍게 여길 리 있겠습니까?”


블랑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원정 경기에서 변수는 무시 못 할 요소입니다. 변수를 최소화하는 게 감독의 일이죠. 우선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져야 다음 대응을 해나갈 수 있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말은 새로운 환경이라고 해도, 만일 로스 카운티가 아닌 평범한 스코틀랜드 팀이 상대였다면 굳이 현지 적응을 위해 일찍 오려고 했을까?


겉보기엔 태연하지만, 기자들은 그 심리를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다.


블랑도 심히 경계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델 레오네는 작년에 유로파 리그를 거머쥐었고, 올해도 무리뉴나 베니테스 같은 감독들과 호각세로 싸우면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입니다. 설마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이런 기세를 유지할 거라 예상하셨나요?”


“그는 유럽에서도 꽤 굵직한 유명 인사가 됐습니다. 예상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죠.”


“당신은 어떤가요? 그와 맞서서 이길 자신이 있는지?”


“그건 해봐야 알 것 같군요. 붙어보기도 전에 자신할 수 없다면 감독 일에 맞지 않는 거겠죠.”


몇 번의 가벼운 도발을 걸어본 기자들은 블랑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내는 걸 포기하기로 했다.


연달아 무난한 답변으로만 넘겨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사실 함께 참석한 선수 쪽에 더 신경이 쓰였기 때문이었다.


193cm의 블랑에 못지않은 거구. 아니, 그보다 몸집이 좀 더 큰. 훤칠하게 넘긴 올백을 감아 묶은 꽁지머리와 두드러진 콧수염이 인상적인 사나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Zlatan Ibrahimovic)가 옆의 감독보다 한층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현지 적응부터 얘기해 볼까요?”


질문이 나가지도 않았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새로운 환경,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 명은 예외로 둬야겠죠? 이미 숱한 나라를 오가며 증명을 해낸 선수가 당신들 눈앞에 있으니까. 즐라탄에게 적응이라는 건 무의미한 단어입니다. 스코틀랜드도 다를 건 없어요.”


자신감을 넘어 자존감이 흘러넘치는 듯한 어조. 현시대 필드 위 최고의 에고이스트다운 발언이었다.


틀린 말도 아니다. 프로로 데뷔했던 말뫼 FF로부터 시작해 AFC 아약스, 유벤투스 FC,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FC 바르셀로나, AC 밀란까지.


스웨덴,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페인을 순회하다 현재는 프랑스에 들어와 활약 중인 그라면 확실히 적응은 문제 따위도 되지 않을 테니까.


초기에는 팀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저니맨의 오명이 붙어 다녔지만, 가는 곳마다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이제는 우승 청부사가 더 어울리는 호칭이 되었다.


즐라탄이 21세기 당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하나로 꼽히는 건 그런 이력도 한몫할 것이다.


“로스 카운티는 레알 마드리드와 첼시가 섞인 조에서 살아남아 16강으로 올라온 팀입니다. 파리 생제르맹은 어떨 것 같나요? 혹시 그들의 희생양이 될까 봐 걱정되지는 않나요?”


“왜 걱정을 해야 하죠? 내가 있는데.”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로스 카운티를 상대로 준비한 비법이라도 있는지?”


“비법? 그런 건 없습니다. 즐라탄이 곧 전략이고 전술이니까.”


지나칠 정도의 자기애를 보여 나르시시스트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는 말뿐인 허언가와는 달랐다. 즐라탄이 말하는 건 정말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포지션 상 폰투스 얀손과 자주 부딪치게 될 것 같은데요. 그는 즐라탄 당신과 같은 말뫼 FF 출신입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몇 번 만났으니 잘 알겠죠? 그에게 특별히 전할 말이 있나요?”


“아, 물론이죠. 꽤 아끼는 친구지만, 적으로 만나서 안타깝습니다. 경기를 치르고 나서 충격받지나 않았으면 좋겠네요. 수비하면서 경험해 본 적 없던 악몽을 느낄지도 모르니까요.”


또한 이런 과감한 발언을 서슴지 않으니, 기자들에게는 반가울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몇 개의 만족할 만한 답변을 얻은 뒤 한 기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혹시 로스 카운티에서 특별히 주목하는 선수가 있나요? 만일 있다면 누구를 지목하고 싶나요?”


“특별히 주목이라······.”


즐라탄은 콧수염을 한 손으로 쓸어내리며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훌륭한 선수들입니다. 이건 진심이에요. 뭐, 그럴 만한 일을 해내지 않았습니까? 사람들은 거인에 맞서는 언더독에 열광하기 마련이죠. 나 또한 그런 얘기를 싫어하진 않아요. 로스 카운티는 즐라탄의 박수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지만 굳이 따지면······ 꼭 선수만 지목해야 한다는 법은 없겠죠?”


기자의 말을 빠르게 끊으며 그가 말을 이어 나갔다.


“폰투스. 그 친구가 국가대표팀에 올 때마다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자기 감독에 관한 얘기를 정말 지겹도록 늘어놓더군요.”


“아······ 델 레오네 감독 말입니까?”


“그래서 나도 좀 흥미가 생겼습니다. 어쨌거나 조제를 일찍 떨어뜨린 장본인 아닙니까?”


조제 무리뉴에 관한 얘기다.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같은 팀으로 만난 이후 즐라탄은 그와의 친분을 종종 드러냈었다.


다혈질인 그가 만만찮은 성깔을 가진 무리뉴와는 잘 지내는 것도 모자라 존경한다는 의사 표현까지 거리낌 없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었지만, 분명 무리뉴는 즐라탄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하나였다.


‘조제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발언까지 날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마 델 레오네를 언급하는 얀손에게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관심을 가지고 조금 알아봤는데 재미있는 얘기가 있더군요.”


그러나 무리뉴를 떨어뜨린 것에 대한 즐라탄의 반응은 적개심보다는 호기심에 가까운 것 같았다.


“그쪽 팬들이 최근, 감독을 ‘레오’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사실. 본인의 이름에서 따온 거라 생각하면 이상할 거 없겠지만, 이전에 딱히 그러지 않았던 걸 보면 가벼운 의미는 아니란 걸 알 수 있죠.”


“맞습니다. 스코틀랜드와 유로파 리그를 정복한 그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만든 별칭이라 들었습니다.”


“그래요. 바로 그겁니다. 단순한 의미가 아니란 말이죠.”


즐라탄이 커다란 손으로 답변한 기자를 가리키며 웃었다.


“물론 팬들이 감독을 위해 별칭을 만드는 건 좋은 일입니다. 전혀 문제 될 게 없죠. 그런데 파리 생제르맹을 만난 이상 얘기는 다릅니다. 나랑 마주쳤으니, 검증을 해봐야겠어요.”


기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왕 또는 맹수 사자의 뜻이 담겨 있는 레오. 그에 걸맞은 이름을 쓸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다들 알다시피 내가 인정하는 레오는 바르셀로나의 한 명밖에 없습니다. 스코틀랜드를 벗어나 유럽에서도 그 이름을 쓰겠다면 일단은 우리, 파리 생제르맹을 꺾어보길 바랍니다.”


즐라탄이 계속 말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자(Lion)를 쓰러뜨려야 할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엄지로 가리켰다.


“피치 위에 두 마리 사자는 서 있을 수 없는 법이니까.”



[ BBC ] 즐라탄 “사자는 하나뿐.”


[ Sky Sports ] 파리 생제르맹이 훈련할 수 있도록 구장을 빌려준 레인저스


[ Scottish Sports ] 또 스코틀랜드 전 국민이 뭉쳤다? 홈 스탠드 매진


*******


“바로 코치진 소집해.”


블랑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면서 회의실로 들어갔다.


벌써 몇 번의 상의를 거쳤는지 셀 수도 없었으나, 그러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기자들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해보였지만 실상 그의 속마음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로스 카운티가 처음 상대로 걸렸을 때 주변 반응은 기쁨 일색이었다. 대진운이 좋았다면서. 확실히 레알 마드리드나 유벤투스 같은 팀을 만나는 것보다야 낫긴 하다. 정작 그게 함정이었지만 말이다.


블랑으로선 차라리 강팀을 만나는 게 속 편했다. 그러면 졌을 때 핑계거리라도 세울 수 있는데, 로스 카운티는 어떤 구실로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아무리 유로파 리그 우승을 했다 한들 그들의 전력이 드라마틱하게 상승한 건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은 당연히 파리 생제르맹의 우세를 점칠 수밖에.


그게 엄청난 골칫거리로 다가왔다.


얼핏 보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막상 붙을 때는 만만치 않은 팀. 이겨도 본전이고, 지면 최악인 상대.


그에 앞서 당장 이기기조차 쉽지 않은, 언더독을 가장하여 속에 날카로운 이빨을 감춘 지독한 사냥개들.


최근 있었던 세 경기를 유심히 조사하고 나서 그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

15-16 Scottish Premiership 26 Round

< 로스 카운티 5 : 0 세인트 미렌 >

리암 보이스(65‘, 73‘)

제임스 블랜차드(70‘)

잭 마틴(82‘)

알렉산더 캐리(88‘)


=============================


=============================

15-16 Scottish Premiership 27 Round

< 킬마녹 1 : 1 로스 카운티 >

그렉 킬티(72‘)

+++++++++++++++++++++++++++++

잭 마틴(56‘)


=============================


=============================

15-16 Scottish Premiership 28 Round

< 로스 카운티 4 : 1 파틱 시슬 >

잭 마틴(11‘, 23‘)

제임스 블랜차드(45+3‘)

앤드류 톰슨(78‘)

+++++++++++++++++++++++++++++

칼럼 부스(56‘)


=============================



단순히 스코틀랜드 수준이라 치부하기엔 레벨이 혼자 다른 느낌. 몇 단계 위에 올라선 경기력으로 상대를 주무르는 듯한 운영.


무승부를 거둔 킬마녹전도 주전 몇 명이 제외된 상태로 강하게 몰아붙이다가 결과만 못 낸 것뿐이었다.


무엇보다 유럽 대항전에서도 성과를 꾸준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지난 챔피언스 리그 조별 경기를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전력이 우위인 강팀들을 만나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결코 녹록지 않은 상대.


하지만 그걸 호소해봤자 더욱 초라해질 뿐이다. 투자한 돈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2011년, 카타르의 국왕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Tamim Bin Hamad Al Thani)가 구단주로 들어오면서 소위 오일머니라고 불리는 무지막지한 거금을 풀었고, 파리 생제르맹은 투자받은 돈으로 엘리트 선수들을 사 모으면서 단숨에 프랑스 최고 팀이 되었다.


당장 올 시즌 지출만 해도 116.1m 유로(약 1,500억 원)에 달하는데. 고작 6.3m 파운드(약 110억 원)를 쓰고서 클럽 레코드 경신을 했다 떠드는 로스 카운티를 두고 우는소리를 한다면 지나가는 개도 웃어 재낄 것이다.


막말로 에딘손 카바니(Edinson Cavini)를 데려오면서 썼던 64m 유로(약 850억 원)만 가지고도 로스 카운티 선수단 전부를 사들일 수 있을 텐데.


다행히도 리그에서는 초반부터 압도적인 성적으로 승점을 벌리며 1위를 굳혀놓은 상태였지만, 그게 블랑에게 안전한 위치를 보장해 주진 못했다.


카타르 국왕에게 몇 번 손쉽게 거머쥔 자국 리그 우승 따위는 이제 안중에도 없으니까. 그건 당연히 우승해야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프랑스가 아닌, 유럽 최고의 구단.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얻어야만 하는 게 바로 챔피언스 리그 타이틀.


국왕은 삼 년 동안 인내했다.


그 인내심이 마침내 한계에 다다랐고, 블랑은 자신이 파리 생제르맹에 적합한 감독이라는 걸 증명해야만 한다.


변명도 필요 없다. 누가 됐든 무조건 꺾고 8강에 진출하는 것만이 해답.


로스 카운티전의 패배는 곧 사형선고였다.


“일 초도 허비하기 아까워.”


블랑은 노트북을 펼쳐 경기 영상을 다시 훑어보았다. 로스 카운티와 무승부를 거둔 킬마녹, 여기에 힌트가 있을지도 모른다.


“백스리라······.”


비록 운 좋은 무승부였다 해도 킬마녹은 센터백 셋을 내세운 수비적인 접근으로 성과를 얻어냈다. 이전까지는 두 번 연속 졌다가 백스리를 쓰면서 비겼다는 건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물론 파리 생제르맹 체급으로 스코틀랜드 팀에 웅크리는 것 자체가 손가락질받을 일이었지만, 이길 수만 있다면 딱히 상관없다.


햄던 파크 원정길이니 못 세울 근거도 아니다.


“이제 결정해야 해.”


변형된 시스템으로 대응해야 하는가? 아니면 프랑스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낸 가장 자신 있는 4-3-3을 고수해야 하는가?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쯤 코치들이 들어왔고, 블랑은 헝클어진 넥타이를 다시 고쳐 잡았다.


아마도 경기 전 마지막이 될 지금 회의에서 결론을 도출해 내야만 할 것이다.


*******


한편, 로스 카운티도 파리 생제르맹을 대비하기 위한 회의를 진행 중이었다.


“내일 경기 또한 앤드류의 역할이 막중할 것 같습니다.”


닐 스튜어트의 브리핑이었다.


“상대 레프트백 막스웰의 오버래핑을 제한시키려면 우측 공격 위주로 나가야 합니다.”


“그건 나도 동의하네. 황혼기에 접어든 나이지만, 아직도 지능적이고 노련한 플레이가 매서운 선수야. 공격을 들어오면 후방에 리스크가 발생하는 상황을 만들어 줘야지.”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활동량이 뛰어난 선수지만, 스피드 싸움에서 앤드류를 상대하기는 버거울 테니 결국 뒷걸음질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앤드류 본인의 폼도 지금 상당히 올라와 있고요.”


“우리 팀의 기동력을 고려해서 막스웰 대신 퀴르자와를 기용할 가능성은 없을까요?”


크리스 리들 코치가 꺼내든 의견에 스튜어트는 고개를 저었다.


“블랑 감독은 퀴르자와를 로테이션 멤버 이상으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1위를 확정 지은 뒤 마지막 경기로만 선발로 나왔죠. 갑자기 중요한 16강전에 깜짝 선발할 확률은 낮아 보입니다.”


“막스웰만 봉쇄할 수 있다면 파리의 좌측은 많이 약해질 겁니다. 카바니는 전형적인 윙이 아니라 측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을 테고, 또한 아메드가 버티고 있으니 큰 걱정은 들지 않습니다.”


“울프 코치 말대로입니다. 물론 중앙의 마튀디가 좌측면으로 빠지면서 계속 카바니를 도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리차드와 아메드 쪽이 제 컨디션만 낸다면 쉽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 확신합니다.”


“문제는 파리 측도 비슷한 접근법을 쓸 거로 보입니다만. 그들도 디 마리아나 모우라처럼 빠르고 기술이 화려한 선수를 우측에 배치합니다. 때문에 우리도 좌측 오버래핑을 편히 나가긴 어려울 것 같아요. 알렉스를 측면에 두는 방식은 추천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폰투스나 대니를 배치해서 공간을 커버해야 합니다.”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라볼피아나를 쓸 거라면 알렉스를 중앙에 두는 게 좋아 보입니다. 그리고 양쪽 메짤라로 나올 마튀디와 베라티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을······ 확실하게······.”


회의를 주도하던 스튜어트는 델 레오네 쪽을 바라보다 잠깐 말을 흐리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 제대로 호응해 줬던 이탈리안 감독은 어느새 눈을 감은 채로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확실하게 대비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겁니다.”


물론 이제는 익숙한 일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대처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냥 하던 대로 할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 알아서 돌아올 것이다.


“동물에 빗댄다면.”


잠시 후 감독이 천천히 입을 뗐다.


“자네들은 앤드류가 어떤 동물이라고 생각하나?”


그래도 이런 난데없는 질문을 받을 때면 여간 적응하기 어려운 게 아니다.


“어······.”


“그······ 글쎄요.”


활발하게 의견을 주고받던 코치들은 할 말을 찾지 못해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즐라탄이 회견장에서 사자를 언급한 것 때문에 그러는 건가? 갑자기 톰슨을 동물에 빗대면 무엇일 것 같냐니······.


의도는 알 수 없었으나 감독이 물어본 건 답해야만 한다.


“동물이라면 아무래도······ 가젤······ 쪽이 아닐까요?”


먼저 나선 스튜어트가 조심스레 말했다.


“빠르지만 워낙 온순하고 여린 녀석이니까요. 가젤도 빠른 초식 동물로 유명해서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한데······.”


“저도 가젤인 것 같습니다.”


“저도······.”


만장일치로 모두가 스튜어트의 말에 동조했고, 감독은 한번 눈을 감았다 뜨며 코치진을 바라보았다.


“가젤이라.”


그러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러고 보니 그것도 꽤 어울리는데? 가젤 중에는 톰슨가젤이란 종도 존재하지 않나? 앤드류 톰슨과 톰슨가젤이라니. 이거 생각지도 못했어.”


“하하.”


감독의 웃음에 스튜어트가 따라 웃었고, 다른 코치들도 거들면서 회의실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래. 그게 자네들이 생각하는 앤드류의 이미지인가.”


감독이 말했다.


“아니, 자네들 말고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겠지. 초식동물······ 나도 비스름하게 인식한 적도 있었고 말이야.”


“그러면 감독님은 앤드류를 어떤 동물로 보고 계셨던 겁니까?”


대뜸 궁금해진 스튜어트가 물었고, 모두가 감독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나 말인가?”


델 레오네는 구부정하게 있던 허리를 펴더니 느긋한 동작으로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다. 좌우를 둘러보며 최대한 뜸을 들이던 그가 마침내 대답했다.


“팔콘.”


*******


< 15-16 UEFA Champions League Round of 16, 1차전 >

로스 카운티 : 파리 생제르맹 FC

2016년 2월 24일 (수) 19:45

햄던 파크 (관중 수 : 48,732명)



[로스 카운티 / 4-1-2-3]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제임스 블랜차드 / 리차드 브리튼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대니 패터슨 / 폰투스 얀손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파리 생제르맹 / 3-4-1-2]

FW : 에딘손 카바니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AM : 앙헬 디 마리아

MF : 막스웰 / 아드리앵 라비오 / 티아고 모타 / 세르주 오리에

DF : 다비드 루이스 / 치아구 시우바 / 마르퀴뇨스

GK : 케빈 트랍



“뭐지?”


스튜어트는 헛것이라도 본 듯 눈을 비비며 킥오프 이후의 필드 상황을 확인했다.


“이게 무슨······.”


파리 생제르맹의 진형이 이상했다.


처음에 선발 라인업이 나온 걸 봤을 땐 마르퀴뇨스가 미드필더로 배치된 형태의 4-3-3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백스리라니? 밤새 분석하고 머리를 맞대며 연구했던 게 전부 헛짓거리로 느껴질 만큼 파격적인 포메이션이었다.


프랑스 리그 1에서 블랑은 4-3-3 외엔 다른 시스템을 쓴 적이 없다. 이걸 어떻게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단 말인가?


“동요할 것 없네, 닐.”


감독은 안절부절못하는 스튜어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그는 역시나 덤덤해 보였다.


“왜 이렇게 나온 걸까요? 베라티는 부상에서 복귀한 지 얼마 안 돼서 바로 내보내기엔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이해한다 쳐도, 마튀디는 멀쩡한데 어째서······.”


가운데에서 티아고 모타가 중심을 잡아주고 블레즈 마튀디와 마르코 베라티가 좌우로 포진하여 공수를 활발히 지원하는 게 파리 생제르맹이 가용할 수 있는 최고의 미드필드진 구성.


호흡을 떠나 그들의 기량만 따지면 유럽 상위를 다툴만한 조합이다. 그런데 블랑은 중요 경기에서 그 셋 중 달랑 모타 한 명만 내보낸 셈이었다.


“어떤 연유에서 이렇게 나왔을지는 얼추 짐작되는군.”


델 레오네가 말했다.


“저쪽에서 고민이 아주 많았던 모양이야. 원정은 리스크를 최소화해서 넘기고 홈에서 승부를 볼 작정인 거겠지.”


“그런데 왜 마튀디 대신 라비오가······.”


“마튀디는 빠르면서 왕성한 스태미나를 갖추고 있지만, 그가 보여주는 발군의 태클과 커버 능력은 보통 압박하는 구도에서 빛이 나거든. 자리를 잡고 수비해야 할 상황에선 큰 효율을 내지 못해.”


그가 계속 말했다.


“자주 전방으로 튀어 나가는 버릇도 지금은 독이 되지. 마튀디가 올라가면 중앙에 모타 한 명만 남아버리니까. 아직 미숙하더라도 최소한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라비오가 낫다고 판단한 거야.”


“아······ 그럴 수 있겠네요.”


“그 외에도 베라티를 무리하여 내보내지 않기로 결정한 이상, 모타에게 가중되는 전개 부담을 덜어낼 필요도 있었을 테고. 마튀디보단 라비오가 볼을 가졌을 때의 전진 능력이 좀 더 좋으니까.”


감독의 해석을 듣고 나자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았다.


필드에서는 라비오가 악착같이 달라붙는 딩월을 188cm의 우월한 체격으로 버티더니 가볍게 떨쳐내고 있었다.


카바니를 향해 찔러준 패스는 델샤드에게 막혔지만, 빠져나갔으면 약간 위험했을 장면이었다.


“닐, 아무래도 블랑 감독이 우리를 열심히 연구해 온 듯하네. 수비적인 운영을 떠나서 앤드류를 통한 뒷공간 침투를 크게 경계하고 있으니 말이야. 하긴, 그동안 그걸로 많은 재미를 봤으니 대처를 안 하면 오히려 이상하지.”


백스리의 스토퍼로 출전한 다비드 루이스가 톰슨이 파고들어야 할 측면 영역을 완벽히 메우고 있는 것에 관한 설명이었다.


“이러면 막스웰이 뒤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공격하러 들어올 수 있게 되었어. 반면 좌우로 열릴 공간을 이용하려던 잭과 앤드류는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센터백 셋을 상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지.”


“지정해 놓았던 마크에도 혼동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에이든이 오늘따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 같기도······.”


또다시 라비오에게 돌파를 허용하는 딩월을 보며 스튜어트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경기 극 초반부임을 감안해도 심각하게 휘둘리고 있었다.


브리튼이 볼을 몰며 들어오는 라비오를 간신히 막아냈지만, 뒤로 흐른 볼이 카바니의 원터치 패스를 거쳐 즐라탄의 발에 들어갔고.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얀손의 파울로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다. 옐로카드를 받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일방적으로 밀려나는 양상에 당황했는지 벤치는 물론이고 열렬히 응원하던 관중석마저 일순간 정적이 흐르고 말았다.


“여기까지가 블랑 감독이 그리고 있는 시나리오였을 거야.”


어수선한 흐름 속에서 태평한 건 이탈리안 혼자뿐이었다.


“이론은 괜찮아 보인다만······ 모든 게 생각한 대로만 흘러가면 재미없는 법이지.”


“하지만 연구를 열심히 해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가 의도 했던 대로 판이 흘러가는 느낌인데······.”


“열심히 했다는 것이지, 제대로 연구되었다고 하진 않았네.”


감독이 말했다.


“일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들도 포기한 부분이 적지 않아. 게다가 그 일부로만 우리를 판단하고 있는 게 큰 실수지. 치명적인 급소를 보호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안면을 노출하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겠나?”


“그러면 저 예측 못 한 백스리가 패착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아직 결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패착은 너무 이르고······ 성적에 대한 부담감과 압박, 과도한 생각과 고민으로 인해 발생한.”


이탈리안이 자기 머리를 검지로 가볍게 두드렸다.


“오버씽킹이라고 할 순 있겠지.”


오오우 -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경기장이 들썩였다.


즐라탄이 멀리서 찬 중장거리 포가 미사일처럼 나가며 크로스바 위로 스쳐 지나간 것 때문이었다.


“······정말 괜찮을까요? 당장 선수들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자네처럼 예측 못 한 상황이라 바로 적응을 못하고 있는 것뿐이야. 시간이 지나면 뛰고 있는 본인들이 직접 몸으로 느끼게 될 테지.”


감독은 그렇게 말하며 벤치에서 일어섰다.


“물론 이대로는 안 되고. 4-3-3을 기준으로 설계한 게 틀어졌으니, 약간의 조정은 필요하겠군.”


그리고 한번 정장을 고쳐 입으며 터치라인으로 걸어 나갔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속도가 조금씩 붙는가 싶었는데

또 늦게 되어 죄송합니다.

점점 추워지는 날씨,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015/16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스포일러 주의) 23.01.14 559 0 -
공지 2014/15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스포일러 주의) +4 18.09.04 2,082 0 -
공지 연재 주기에 관한 공지입니다 +4 18.04.11 3,272 0 -
공지 독자분들께 공지 하나 드립니다 +11 18.02.08 5,472 0 -
공지 2013/14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9 17.12.19 18,424 0 -
203 203. 공간 싸움 (4) +5 24.04.07 481 36 25쪽
202 202. 공간 싸움 (3) +6 24.03.18 576 35 25쪽
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644 39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1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8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40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4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9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5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5 42 25쪽
»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6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9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8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2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71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3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6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5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7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6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2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8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9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3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70 50 2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