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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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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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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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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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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199. 대립

DUMMY

축구에는 무수한 선수들이 각지에 분포해 있고, 개성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나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극소수의 희귀한 타입이 가끔 나타나곤 한다. 콕 집어서 말하기 어려운 그런 스타일.


정확히 미드필더로 분류하기도, 공격수로 분류하기도 모호하여 그 경계선에 걸친 듯한 선수들. 다르게 말해서 어디에 놔도 일정 이상 활약이 가능할 만큼 축구 지능이 뛰어난 팔방미인.


현역으로만 따지면 토트넘 홋스퍼의 델리 알리(Dele Alli),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앙투안 그리즈만(Antoine Griezmann).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의 토마스 뮐러(Thomas Muller)가 대표적이다.


골잡이다운 감각과 오프 더 볼을 탑재했으나, 공격수로 한정 짓기엔 활동폭이 굉장히 넓어 필드 전체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들.


특히 뮐러는 그 소수의 유니크한 그룹에서도 압도적인 아이덴티티를 보유한 선수다. 아예 그 분야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 버렸으니까.


잘 보이지 않는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것도 모자라, 없는 공간도 만들 줄 아는 경지에 올라서 독일 현지에서는 그를 두고 ‘공간 해석자’의 뜻을 지닌 라움도이터(Raumdeuter)라 부른다.


뮐러 특유의 지능적인 움직임은 설명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를 지휘하는 과르디올라조차도 뮐러는 이해하기 어려운 선수로 규정짓기까지 했다.


그 변칙적이면서 종잡을 수 없는 플레이스타일은 앞서 언급했던 다른 선수들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차원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제임스 블랜차드, 이 선수가 제일 뮐러와 유사성이 깊은 플레이를 보여주는 건 기분 탓일까? 프리먼의 개인적인 생각은 그랬다.


“내가 편애해서 그렇게만 보이는 건 아니야.”


레벨이 동등하다는 게 아니다. 당연히 두 선수의 격차는 존재한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블랜차드와 뮐러 중 고르라 하면 백이면 백, 뮐러를 선택할 테니까.


단지 프리먼은 블랜차드가 멈추지 않고 이대로 지금의 성장세를 꾸준히 유지한다면 그의 정신적 계승자가 될 가능성을 보았다.


토마스 뮐러를 완벽히 따라 구현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 다만 그 없는 선수 중에서 그나마 가까운 게 블랜차드 같다는 얘기다.


물론 결이 같을 뿐, 세세하게 파고들면 둘의 차이점도 크게 두드러진다.


우선 접근 방식. 뮐러가 공간에 완벽히 통달했다면, 블랜차드는 지능적이지만 그의 타고난 힘을 병행하는 편이다.


한쪽이 민첩하다면, 한쪽은 강력함의 표본. 서로 비슷한 신장을 가지고 있으나, 골격과 체중 등 신체 조건이 달라서 스타일이 미묘하게 갈린 느낌이다.


그리고 이건 분데스리가와 프리미어십이라는 리그의 현저한 격차 때문에 비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지만.


“블랜차드가 뮐러보다 나은 점도 있긴 있어.”


명품 조연은 뮐러에게 붙는 수식어 중 하나. 분명 월드클래스 반열에 드는 기량임엔 확실하나, 조연으로서 팀을 빛나게 해줄 순 있어도 본인이 직접 빛을 발해야 하는 주연 역할에는 서툴다는 평가가 있다.


정상급 무브먼트와 연계 능력을 갖췄음에도 볼을 소유하고 있을 때 파괴력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원인일 것이다.


블랜차드 역시 온 더 볼이 뛰어난 편은 아니나, 몸이 단단해서 경합을 잘 밀리지 않는다는 강점이 있다. 거기에 팀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클러치 능력도 상당하니 종종 경기의 주인공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쓰임새의 다양성도 블랜차드가 살짝 더 앞서는 부분이다.


중앙과 측면 운용이 자유로운 뮐러지만 결국은 공격 임무에 집중된 느낌이 짙은데, 블랜차드는 공격 포지션 외에 수비적인 역할도 곧잘 해내는 만능 미드필더에 가깝다.


올해는 감독이 좀 더 전방에 힘을 쏟도록 지원해 주고 있는 것 같지만, 작년에는 케빈 더브라위너를 철저히 마크해 냈었고, 에베르 바네가와도 준수하게 싸운 경력이 있다.


“나중에 더 높은 수준의 무대를 가서도 통하는지 봐야겠지만, 어쨌든 현재 유럽 대항전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긴 하니까.”


뮐러가 블랜차드의 강점을 가지지 못해서 문제 될 건 없다. 어차피 바이에른 뮌헨은 스쿼드가 탄탄해서 굳이 수비에 기여하지 않아도, 애써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팀이니까.


초호화 군단으로 이루어진 탑독팀의 선수와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온 언더독팀의 선수가 서로의 알맞은 생존 방식을 터득한 거라 볼 수 있었다.


확실한 건 둘을 대조해서 보는 게 재미있다는 사실이다.


각자 뛰어온 환경이 달라서인지, 아니면 태생이 원래 그런 것인지. 비슷한 유형의 플레이어가 이런 식으로 방향이 갈라졌다는 점부터 말이다.


와아아 -


일순간 들썩이는 알리안츠 아레나.


아르연 로번이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수비 뒤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뮐러가 헤더 골로 연결하면서 터져 나온 함성이었다.


“실제로 만나서 붙을 땐 더욱 흥미진진하겠지.”


프리먼은 빨리 둘의 본격적인 대결을 필드 위에서 확인해 보고 싶었다.


*******


대진이 확정된 이후, 상대편 나라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독일의 스포츠 뉴스에서는 온통 로스 카운티에 관한 얘기뿐이었다.


그도 그럴 게, 힘들다고 전망되었던 조별 리그를 뚫고 파리 생제르맹까지 격침시킨 팀이다. 뮌헨의 위상을 생각하면 우습게 여길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꽤 진지하게 바라보는 중이었다.



[ Kicker ] 로스 카운티는 펩의 뮌헨을 시험대에 올리기 좋은 상대


[ Bild ] 자이언트 킬러, 로스 카운티를 조심하라



스포르트 빌트는 특집 칼럼까지 작성했다.


그들은 로스 카운티를 두고 겉보기와 달리 매우 특별한 팀이며, 그 특별함의 이유는 다른 팀에 없는 두 명의 유니크한 선수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 두 선수는 바로 에이든 딩월과 제임스 블랜차드였다.


딩월에 대한 극찬은 상당했다.


‘활동 반경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바이에른 뮌헨 선수였지만, 현재는 유벤투스로 떠난 마리오 만주키치를 연상케 하는 스태미나를 갖고 있다. 오히려 그 활동량만 따졌을 땐 만주키치조차 혀를 내두를 지경일 것이다.’ - ‘스포르트 빌트’ 칼럼 중 발췌 -


전방 압박의 온상지이자 게겐프레싱의 나라라서 그런지 딩월 같은 플레이스타일이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심지어 방송국에서 딩월의 플레이를 면밀히 관찰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기도 했다.


[결정력이 떨어지는 건, 에너지를 뛰는 데 쏟아부어서 그래요. 다른 공격수들이 딩월처럼 뛰었다면 애당초 저 위치에 있지도 못합니다. 숨이 차서 들어갈 생각도 못 하죠. 이 선수는 쇄도까진 성공하는데, 몸이 지친 상태라 슛에 힘 조절이 안 되고, 정확도가 흐트러지게 되는 거예요.]


맥긴이 만들어준 프리 찬스를 오른발 인스텝 킥으로 힘껏 찼으나, 아웃 프런트 킥이라도 한 것 마냥 코너 플래그 쪽으로 날려버리는 장면을 보며 진지한 분석에 들어간 패널의 멘트였다.


이 방송을 맥도넬이 봤었다면 ‘아니. 딩월은 그냥 더럽게 못 차는 거야.’라고 중얼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일은 정확히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로스 카운티가 그동안 보여줬던 걸 생각하면 이제 모를 수 없겠지만.


“공격수는 기본적으로 골을 넣어야 합니다. 그걸 델 레오네 감독이 모를 리 없는데도 그를 핵심으로 쓰는 이유는 간단하죠. 득점보다 더욱 가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스 카운티가 챔피언스 리그의 강팀들과도 쉽게 밀리지 않으며 싸워나갈 수 있던 건 딩월이란 존재가 정말 크다고 보거든요.” - TZ 소속 기자 ‘헤르베르트 쿤체(Herbert Kunze)’ -


“포지션상 공격수로 표기되는 것뿐이에요. 실상 이 선수의 영향력 범위를 보면 미드필더나 다름없습니다. 그것도 8번 미드필더 수준이죠. 공격수로 뒀는데 전방에 한 명, 허리에 한 명씩 배치한 효과가 나는 거예요. 축구는 열한 명이 뛰는 스포츠인데 딩월로 하여금 마치 열두 명을 상대해야 하는 체감을 느끼게 되는 거죠. 기본기가 서툴고 단점이 많지만, 그걸 고려하고도 기용할 가치가 있는 선수입니다. 골까지 잘 넣었다면 진작 스코틀랜드를 벗어났겠죠.” - 독일 칼럼니스트 ‘파비안 코브(Fabian Korb)’ -


블랜차드 역시 고평가를 받고 있었다.


확실히 분데스리가를 일평생 봐왔던 독일 사람들이라서일까. 그들은 블랜차드가 누구의 플레이를 떠올리게 하는지 금세 알아챘다.


그리고 딩월과 마찬가지로 블랜차드의 경기를 분석하면서 ‘Schotte Muller’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독일 말로 ‘스코티시 뮐러’란 뜻이었다.


‘발칸 반도의 튀람’ 호칭을 얻은 델샤드에 이어 두 번째로 현지에서 직접 공식으로 인정받은 선수가 된 셈이었다.


“바이에른 뮌헨과 로스 카운티는 이번에 처음 만납니다. 축구 역사를 통틀어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던 스코티시 팀인데요. 어쩌면 이 팀에서 뮌헨 팬들이라면 익숙한 만주키치와 뮐러의 분신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과장한다면 말이죠. 과르디올라가 철저히 준비해 오지 않으면 그 둘에게 많이 시달릴 거예요.” - 독일 전문 패널 ‘베른트 위만(Bernd Wiemann)’ -



이후엔 역시나 감독 쪽으로 주목도가 쏠렸다.


2010년대 축구판에서 가장 이름을 크게 알렸던 펩 과르디올라와 최근 이름을 급격히 알리기 시작한 안토니오 델 레오네.


이 핫한 두 인물의 대립을 두고 독일 언론들이 제일 많이 사용한 키워드는 ‘시험’이었다.


사실 과르디올라가 팬들에게 확고한 신뢰를 얻지 못한 상황에 놓여 있는 까닭이다. 엄청난 성공을 거뒀던 바르셀로나 시절에 비하면 실망스럽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니까.


부임 후 2년 연속 분데스리가 챔피언에 등극하긴 했으나, 그건 리그 25회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한 바이에른 뮌헨이라면 마땅히 거둬야만 하는 성과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건 챔피언스 리그 우승.


2013/14 시즌은 4강에서 만난 레알 마드리드에, 2014/15 시즌 또한 마찬가지로 4강에서 만난 바르셀로나에 탈락. 스페인 팀을 상대로 2연속 탈락은 자부심 높은 뮌헨 팬들에게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전통적으로 스페인 팀에 강했던 뮌헨이었기에 더욱 용납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4강까지 갔다면 나쁘지 않은 행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과르디올라의 전임자가 하필 트리플 크라운의 영광을 가져다주었던 유프 하인케스(Jupp Heynckes)라는 게 문제였다.


하인케스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남긴 최강의 팀을 과르디올라가 계승한 뒤 스페인식 축구와 독일식 축구를 접목하여 향후 몇 년간 세계를 제패하는 게 뮌헨의 궁극적 계획이었다.


그런데 고작 4강 따위로 만족할 리 있겠는가? 전력 누수도 없이 고스란히 물려받은 스쿼드로 정상에 오르질 못하니 팬들은 복장이 터질 수밖에.


그 외에도 수십 년간 뮌헨에 헌신해 왔던 전설적인 닥터 한스빌헬름 뮐러볼파르트와 불화를 일으켜 팀을 떠나게 만들었던 사건.


뮌헨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를 본인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팀에 넘겨버리거나, 트리플 크라운 공신 중 하나였던 만주키치를 홀대하다가 등 떠밀듯 내보내거나. 여러 자잘한 비판 요소도 불안정한 민심의 원인에 한몫했을 것이다.


“스페인 팀에게 연속 탈락했는데, 이번에 스코틀랜드 팀한테마저 탈락한다면 제아무리 펩이라도 온전한 위치를 보장받긴 어려울 겁니다.”


한 전문가는 그렇게 얘기했고, 그게 대다수 여론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과르디올라는 과르디올라인 것이 트렌드의 선두 주자답게 선 굵은 축구가 두드러졌던 뮌헨에 자신의 철학을 차츰 주입해 나가며 최신식 축구로 체질을 개선 중이었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발현될 씨앗. 나름대로는 뮌헨 고위층들이 바라던 시나리오대로 흘러가고 있는 셈이다.


다만 그 과정을 과르디올라가 머물러서 함께 지켜볼 수 있을지는 로스 카운티와의 일전에 달렸다. 반대로 어쩌면 델 레오네가 또 한 명의 감독을 궁지로 몰아넣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른다.


스코티시 스포츠는 이에 관해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작성하여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로스 카운티는 이때까지 작년 분데스리가 3위였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꺾었고, 작년 2위였던 볼프스부르크를 무너뜨렸다. 그러면 이번에 만날 작년 1위였던 바이에른 뮌헨과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


경기 하루 전날을 앞두고 열린 두 감독의 컨퍼런스는 무난하게 이루어졌다.


과르디올라는 웬만하면 논쟁을 일으키기보단 깔끔한 인터뷰 스킬을 추구하는 편이었고, 델 레오네는 상대의 태도에 따라 신사다울 수도 혹은 도발적일 수도 있는 카멜레온 같은 남자였다.


먼저 한쪽에서 매너를 보이면 구태여 날카로운 이를 드러낼 필요는 없으니까. 내심 기대했던 기자들은 시무룩할 수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정확히는 시무룩했다가 약간 화색이 밝아졌다고 해야겠다.


감독 간에는 딱히 충돌이 없었지만, 생각지 못한 곳에서 원하던 반응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독일 쪽에서는 당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스코티시 뮐러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니까요. 이건 굉장한 일이에요. 평가를 받음에 있어 토마스 뮐러 같은 탑클래스 선수 이름이 거론된다는 건 흔치 않죠. 어떤가요? 당신도 영광스러운가요?”


그건 함께 컨퍼런스를 참석한 블랜차드에게 독일 기자가 질문을 던지면서 발생한 해프닝이었다.


“딱히 아무 생각도 없습니다.”


“아무 생각도 없다고요? 그게 무슨 말이죠? 뮐러라는 이름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건가요?”


“제2의 누군가가 된다는 건 별로 원하는 길이 아니에요. 저는 제1의 블랜차드로 기억될 겁니다.”


“그런······.”


질문했던 기자는 말문을 잃었고, 나머지들은 놀라움을 표하며 허겁지겁 내용을 받아 적었다.


기억되고 싶다는 것도 아니고, 기억될 거라고 확신에 찬 듯한 발언. 실로 대단한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언어 선택이 유쾌하게 들리진 않았다.


아직 전성기 나이대도 채 오지 않은 새파랗게 젊은 선수가 뮌헨의, 분데스리가의 대표적인 아이콘을 무시하다니. 그것도 시큰둥한 얼굴로. 당돌하다 못해 거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였다.


이쪽 딴에는 호의적인 시선으로 보면서 그런 별명도 붙여준 건데. 돌아오는 반응이 이렇다면 쌓였던 호감조차 적대적으로 변하지 않겠는가?


물론 제1의 선수가 되겠다는 주장도 충분히 이해할 만했지만, 좀 더 존중을 내비쳐서 잘 말할 수도 있던 부분이었다. 단지 블랜차드는 그쪽 방면에서 표현력이 부족했고, 애써 노력하려는 성격도 아니었다.


아마 무시할 생각이었다기보단 그냥 무관심하게 내뱉은 말에 가까울 터였다.


혼란에 빠진 회견장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짧게 내젓는 이탈리안 감독뿐이었다.



[ Sport Bild ] 블랜차드 “스코티시 뮐러란 호칭은 필요 없어.”


[ TZ ] 오만한 블랜차드, 뮌헨 팬들의 심기를 건들다


[ Welt ] 자만심에 빠진 스코티시 스타


[ Der Spiegel ] 스코틀랜드 선수의 망언 “뮐러 같은 선수를 목표 삼으려고 축구 시작한 게 아니다.”


[ WAZ ] 더욱 가열되어 버린 뮐러와 블랜차드의 맞대결


*******


< 15-16 UEFA Champions League Round of 8, 1차전 >

바이에른 뮌헨 FC : 로스 카운티

2016년 3월 29일 (화) 19:45

알리안츠 아레나 (관중 수 : 68,259명)



[바이에른 뮌헨 / 4-1-2-3]

FW : 프랑크 리베리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 아르연 로번

CM : 토마스 뮐러 / 아르투로 비달

DM : 사비 알론소

DF : 데이비드 알라바 / 제롬 보아텡 / 하비 마르티네스 / 필리프 람

GK : 마누엘 노이어


[로스 카운티 / 4-1-2-3]

FW : 제임스 블랜차드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존 맥긴 / 리차드 브리튼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대니 패터슨 / 폰투스 얀손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우우우우우 -


알리안츠 아레나를 격하게 뒤흔드는 야유.


터널에서 양 팀 선수들이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진다. 당연히 바이에른 뮌헨의 안방이었기에 타깃이 된 건 로스 카운티 쪽.


원정팀의 선수들을 무차별로 겨냥한 게 아니란 것쯤은 다들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로스 카운티에 있는 딱 한 명한테 보내는 야유였다.


홈팬들의 텃세라기엔 그저 받은 만큼 되돌려주려는 것이었고 말이다.


“그러게, 좀 부드럽게 대응하지 그랬어.”


블랜차드 옆에 선 브리튼이 입을 가린 채 속삭이듯 말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만 만든 것 같은데. 저들도 처음엔 널 좋게 보고 있었지 않아?”


고작 몇 마디만 했을 뿐인데. 독일 언론들이 퍼다 나르고, 조금씩 왜곡하여 내보낸 기사의 파급력은 생각 이상이었다.


심지어 작년 볼프스부르크와의 2차전 당시에 발언했던 것까지 재발굴 되면서 여론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더브라위너란 선수가 얼마나 유명한지,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했든지 그건 상관없습니다. 단지 이번에는 그가 활약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지만, 분데스리가 팬들은 케빈 더브라위너의 위력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뮌헨을 상대로도 위협적이었던 그 선수에게조차 무례하게 굴었던 전적이 추가로 밝혀지니 이런 사태까지 치달아 버린 것이다.


수만 명에 달하는 군중들이 적개심을 품은 채 일제히 엄지를 아래로 내리고 있는 상황. 그것도 세계적인 경기장 중 하나인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이쯤 되면 동요할 법도 한데, 표적이 된 블랜차드는 덤덤해 보였다.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요. 제2의 누구라고 불리는 거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대충 유연하게 넘어갈 수도 있었단 거지. 지금 분위기를 보면 네가 볼을 잡을 때마다 야유가 쏟아질 기세인데.”


“뭐, 맘대로 하라죠. 신경 안 써요.”


브리튼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넌 야유가 심해질수록 더 불타오르는 타입이니까. 네 고집을 누가 말리겠어. 넌 참 여러모로 대단한 녀석이야.”


그러다 무섭게 빗발치던 야유가 이내 뚝 끊기고, 아주 잠깐 쥐 죽은 듯 고요해지는 경기장.


Ils sont les meilleurs -

(그들은 최고다.)


곧바로 챔피언스 리그를 상징하는 테마곡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고, 브리튼과 블랜차드를 비롯하여 가볍게 잡담을 나누던 선수들은 자연스레 결의에 찬 자세로 뒷짐을 진 채 집중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듣기만 해도 바짝 긴장이 되었지만, 여러 번 겪어서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도리어 고양감을 끌어올리기 위한 사전 준비 절차에 가까웠다.


이어서 양 팀 선수들과 차례대로 대면하며 악수를 나누는 시간.


블랜차드는 스쳐 가듯 빠르게 지나가는 뮌헨 선수들 중 한 선수가 유독 힘이 들어간 채로 자신의 손을 맞잡은 걸 미세하게 감지했다.


그리고 동시에 토마스 뮐러와 눈이 마주쳤다.


“······.”

“······.”


거의 일 초도 안 되는 찰나였지만, 서로의 의사를 교환하기에는 충분했다.


지정된 진영으로 이동하는 도중 블랜차드는 등을 돌려 뮐러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래. 어디 한번 그 잘난 실력 좀 보자.”


*******


“과연······ 수비적으로 나가는 건가?”


프리먼은 킥오프한 뒤 로스 카운티가 포진한 형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1차전이기도 하고, 알리안츠 아레나인데 무리해서 좋을 건 없지.”


바이에른 뮌헨의 위용은 그 대담한 이탈리안도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게 만드는 모양이다.


평소보다 더 아래로 가라앉아서 대처하는 건 올해 처음 보는 광경. 슈퍼컵에서 붙은 바르셀로나전도, 조별 경기에서 치른 레알 마드리드전에도 이만큼 뒤로 물러서진 않았다.


아마도 저쪽 좌우 날개가 크게 신경 쓰여서겠지.


프랑크 리베리(Franck Ribery)와 아르연 로번(Arjen Robben). 바이에른 뮌헨이 내뿜는 화력의 원천이자 21세기를 대표하는 최강 콤비 중 하나.


개개인의 실력뿐만 아니라 서로 간의 호흡도 워낙 잘 맞아서 팬들은 둘의 이름을 합성한 로베리(Robbery)로 부르기도 하는데, 공교롭게도 이 단어는 ‘강도질’이라는 의미 또한 담고 있다.


실제로 상대 팀의 측면을 무자비하게 털어버리는 모습 때문에 은연중 그런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델 레오네는 상대의 창끝이 매서울수록 역으로 전진하려는 감독. 막을 수 없는 공격진이라면 볼이 가는 것부터 원천 봉쇄하려는 마인드로 접근하는 게 그의 전술적 특징인데.


그런 그가 후퇴를 선택했다는 건 로베리가 단순히 돌파 능력뿐만 아니라 뒷공간을 허물어버리는 데도 탁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아르연 로번의 스피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 앤드류 톰슨이 최근 떠오르는 스피드스터라지만, 로번은 이미 그 방면에서 이름을 날릴 대로 날린 선수다.


섣불리 압박을 걸었다가 삐끗하는 순간 단 한방에 함락당할 수 있다. 뮌헨은 사비 알론소를 중심으로 그 한 방을 가진 패서들이 후방에 다수 존재한다.


“게다가 감독은 펩 과르디올라······.”


이전 상대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진정으로 차원이 다르다.


그동안 맞붙어왔던 명장이란 이름의 베테랑들은 과거에 잘 나갔더라도 현재는 일선에서 물러난 이들이 대부분이었고, 전술적 측면으로 보았을 때 이탈리안과의 지략 싸움에서 밀리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었다.


하지만 과르디올라는 현역 중에서도 가장 앞서 있는 전술가. 확실히 로스 카운티의 신예 전술가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수준이라 봐도 무방하다.


감독의 역량으로 부족한 부분을 극복해 왔던 것도 저 독일의 절대강자에겐 쉽게 통하지 않을 거란 소리다.


초반부터 몰아치는 뮌헨의 공격.


측면에서 비달과 원투패스를 주고받으며 중앙으로 파고든 로번의 날카로운 슛이 골문을 향하고, 브라운 키퍼가 간신히 쳐내며 밖으로 넘긴다.


정직하게 가운데로 날아갔지만, 간담이 서늘해지는 슛이었다.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저기는 오늘 컨디션도 좋아 보이는데······.”


이어지는 코너킥에서는 패터슨이 머리로 걷어냈고, 세컨드 볼을 잡은 뮌헨이 로스 카운티의 진영을 에워싸며 전개를 계속해 나간다.


측면으로 전개된 볼. 패스를 받은 리베리와 델샤드가 대치하고, 조금씩 잔발을 써가며 전진하려는 드리블.


와아아 -


원정팬들의 함성이었다. 델샤드가 자세를 낮춘 채 리베리의 진로를 묶어둔 틈을 타 뒤에서 접근한 딩월이 볼을 갈고리처럼 낚아채는 장면에 프리먼도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


그대로 직선으로 찌르는 딩월의 패스. 그에 맞춰 톰슨이 질주했고, 미리 자리를 선점한 보아텡이 달려가 볼을 낚아채면서 공격이 무산된다.


딩월의 패스가 정교하지 않은 게 아쉬웠지만, 수비가 빠르게 대처하지 않았다면 톰슨에게 기회가 나올 수도 있었다.


“마냥 웅크리지만은 않겠다는 거지.”


그 와중에 델 레오네도 대단한 게 단순히 내려앉으려고만 하지 않고, 반격의 장치를 만들어뒀다는 사실이다.


그는 로베리를 제어하기 위해 라인을 내려 뒷공간을 최소화하고, 풀백들을 상시 도울 수 있도록 맥긴과 딩월을 좌우에 배치하여 중앙의 캐리, 브리튼과 함께 일자로 4-4-2의 수비 형태를 만들었다.


측면으로 가면 공격 기여도가 낮아지는 딩월을 굳이 저기에 놓은 이유는 간단하다. 델샤드와 함께 리베리를 협동 마크로 꾸준히 방해하기 위함이며, 동시에 톰슨으로 하여금 뮌헨의 뒤를 노리겠다는 속셈.


포지션 그대로 톰슨이 측면 수비에 가담한다면 로스 카운티의 기동력이 크게 떨어져 역습 위력이 반감될뿐더러, 수비 기여도는 딩월보다 한참 떨어질 것이다.


역습에만 의존하는 그림이 되긴 하나, 어차피 지금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독일 원정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충분히 성과를 거두는 셈이니까.


“저 이탈리안 양반은 어지간히 톰슨을 내리길 싫어하는군.”


하지만 저 준족을 전방에 둠으로써 얻은 이익이 적지 않았으니 그로선 타당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 단계는 뮌헨이 그들 진영에서 빌드업을 진행하는 흐름.


“그래도 역시 압박을 완전히 포기할 생각은 아닌가 본 데?”


최후방까지 달려들기보단 배급의 중심이 되는 3선 쪽으로 원활히 전달될 수 없도록 길목 위주로 차단하는 압박. 로스 카운티가 즐겨 쓰는 방식이다.


톰슨만 적당히 최후방 수비진에게 붙어주고, 블랜차드가 알론소에게 밀착하여 전담 마크, 측면 공간을 맥긴과 딩월이 점유한 4-2-3-1 대형이었다.


그러나 허무할 정도로 쉽게 빠져나가는 뮌헨.


“아······ 저건.”


유럽 대항전에서도 끈끈한 조직력을 발휘하며 누가 되었든 쉽게 떨쳐내지 못하던 로스 카운티의 압박이 헐겁게 풀려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알론소가 견제를 제대로 떨쳐낸 것도 아니었다.


그는 명백히 블랜차드에게 묶여 있었고, 로스 카운티 선수들은 평소대로 체계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며 공간을 꽉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뮌헨은 손쉽게 포위망을 뚫어내 중앙선을 넘으면서 로스 카운티를 다시금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선수의 역량? 어느 정도 영향은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과르디올라가 구축한 시스템으로 인해 벌어진 상황이었다.


프리먼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턱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저게 펩이 고안해 냈다는 그 인버티드 풀백인가?”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일찍 올릴 수도 있었는데

느려서 매번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kkatnip 님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 작성자
    Lv.99 벼리까꿍
    작성일
    24.01.25 18:44
    No. 1

    오.. 200화 미리 축하드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2 마굴탈출자
    작성일
    24.01.25 18:50
    No. 2

    축하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3 사비하
    작성일
    24.01.26 11:33
    No. 3

    이작품은 진짜 일연재만 보장되면 최고의 작품인데
    작가님 너무 감사히 잘보고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8 foir
    작성일
    24.01.26 22:20
    No. 4

    잘봤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7 마호가니TD
    작성일
    24.02.07 21:19
    No. 5

    볼파르트 건은 먼저 긁은 펩도 문제지만
    정작 범인은 본인이었죠

    팀닥터라면서 출퇴근한 것
    ㅈ도 아닌 아들이 거들먹거리고 갑질하는 거
    방치한 것
    기싸움 한번 했다고 쫄아서 도망간 것
    자기 편 안 들어준다고 삐져서 도망간 것

    실력에 비해 과한 유명세와 과한 에고 덕택에
    다시 돌아왔다기엔 명성에 먹칠은 다 했고
    추해진 말년 보내는 중이니깐 쌤통이라고 봅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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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643 39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1 37 26쪽
» 199. 대립 +5 24.01.25 788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8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5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4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5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8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7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1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71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2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5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4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7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6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1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8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9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2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69 50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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