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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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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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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7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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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80. 지상 최고의 팀 (2)

DUMMY

“사실 예전 감독이었던 토니 홀트, 그 사람에게 하나 고마운 점이 있어요. 지금 감독님을 만날 기회를 줬다는 점이죠. 전 선수 생활에서 최악의 인연과 최고의 인연을 둘 다 경험해 본 흔치 않은 사람일 겁니다. 레인저스를 떠나게 된 건 아직도 마음이 아파요. 그렇다고 후회하진 않습니다. 찬밥 신세를 견디며 팀에 남는 방법도 있었겠죠. 그건 안 좋은 선택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여기로 와서 프리미어십과 유로파 리그를 우승했으니 결국 제 선택이 맞았던 거죠. 음······ 이거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레인저스를 떠난 게 기쁜 건 아니에요. 결코. 하지만 로스 카운티로 오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이해해 줄 거라 믿어요. 네? 감독님이요? 절 한층 더 성장시켜 준 은인이죠. 제 인생에서 또 그런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예요. 전 그가 반드시 세계적인 지도자가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 로스 카운티 풀백 ‘리 월리스(Lee Wallace)’ -


*******


“델샤드가 어떻게 계속 필드에 남을 수 있던 건지 의문입니다.”


경기 후 베니테스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명백한 파울이었어요. 그것도 득점까지 연결될 뻔한 상황이었죠. 난 거기서 레드카드가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후반 80분경.


로스 카운티 진영으로 단번에 넘어가는 롱패스를 차지하기 위한 경합 과정에서 델샤드와 호날두가 충돌하는 장면이 있었다.


호날두는 델샤드의 어깨에 부딪히며 나뒹굴었고, 주심은 수비가 먼저 어깨를 집어넣은 정당한 경합으로 인정하며 휘슬을 불지 않았다.


베니테스는 진로 방해를 어필하며 대기심에게 달려가 항의했지만, 그 요구가 기각되자 인터뷰에서 그대로 불만을 늘어놓는 중이었다.


정말로 간발의 차. 경합이냐 파울이냐를 결정짓는 경계가 모호한 순간이었기에 이해할 만한 반응이었다.


만일 델샤드가 퇴장당했다면 득점은 물론이고, 로스 카운티의 핵심 하나를 쳐내고서 2차전을 더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었을 테고 말이다.


유로파 리그 8강전 당시에도 델샤드가 곤살로 이과인을 단독 찬스에서 일대일로 막아내지 않았다면 역전의 발판 따윈 애초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베니테스에게 있어 델샤드는 숨겨진 눈엣가시 같은 존재.


‘그나저나 컨퍼런스 땐 잠잠하더니, 역시나 감정이 잔뜩 실려 있군.’


인터뷰를 듣는 기자들의 공통된 속마음이었다.


처음엔 사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베니테스는 누구보다 로스 카운티를 이기고 싶어 안달 난 상태인 게 틀림없었다.


이후 받아친 델 레오네의 발언은 그러한 감정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


“판정에 의문을 가질 순 있습니다. 이를테면······ 다닐루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블랜차드를 밀어 넘어뜨린 걸 운 좋게 넘어간 것에 대해서 우리도 언급할 권리가 있겠죠.”


참 이질적이고도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레알 마드리드가 무슨 팀인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에서 32회 우승, 유럽 최고의 무대인 챔피언스 리그에서 라 데시마(La Decima : 열 번째라는 뜻의 스페인어) 우승을 달성한 독보적인 클럽.


이 세상 어떤 구단도 그들의 10회 우승을 따라잡지 못했다.


당연히 로스 카운티와는 그 간극이 하늘과 땅 이상의 수준일 터. 그런데도 양 팀 감독은 마치 서로가 라이벌인 양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보통 이만큼 클래스 차이가 벌어진 대결에선 잡음이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나더라도 약체팀의 극단적인 수비 태도에 대한 비판을 강팀의 감독이 가하는 정도일 것이다.


2014년 첼시의 조제 무리뉴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시합에서 무승부를 거두고 난 뒤, ‘그들은 19세기에서 온 축구를 하고 있다’며 독설을 퍼부었던 때처럼 말이다.


전력의 불균형이 심한 양 팀이 대등한 싸움을 벌이고, 끝난 뒤에 판정까지 거론하며 승리의 열망을 드러나는 사례는 흔치 않았다.


이건 베니테스의 문제라 봐야 할까? 아니면 레알 마드리드란 절대적 존재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델 레오네가 비범해서일까?



반면 개별적인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인 호날두는 의외로 덤덤했다.


“인정합니다. 로스 카운티의 수비가 생각보다 견고했어요. 하지만 이걸로 끝난 건 아닙니다. 경기는 한 번 더 남아 있으니까요. 다음에 베르나베우에서 만날 땐 상대 쪽에서 바짝 긴장해야 할 겁니다.”


“오늘 당신의 퍼포먼스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내 퍼포먼스요? 문제 될 게 없었습니다. 단지 골을 못 넣었을 뿐, 오늘 경기에서 못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음, 메시와 비교하면 부진했던 것 같은데요.”


“슈퍼컵과 챔피언스 리그는 다릅니다. 많이 달라요. 대회에 걸려있는 가치부터 경기에 임하는 마음가짐. 그리고 단판전이 아니라 2차전이 존재하죠. 이걸 굳이 더 설명해야 한다면 문제 있는 겁니다.”


“다음 경기에서는 제대로 활약하겠다고 선언한 거라 봐도 되는 건지?”


“일단 내가 넣은 챔피언스 리그 골 기록을 한 번 보고 오세요. 대답은 그걸로 충분할 거예요.”


“······.”


“다음에 어디 한 번 두고 봅시다.”


뼈가 들어있는 말을 남기고서 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하더니 유유히 믹스트 존을 빠져나갔다.


*******


[이번 주 프리미어십 일정의 한 사이클이 마무리됩니다. 로스 카운티는 과연 11경기 전승이란 대기록을 달성할 수 있을까요?]


리그 구조상, 상대 팀과 세 차례 맞붙으며 기본 33라운드까지 치르게 되는 프리미어십.


로스 카운티는 마틴 오닐의 셀틱을 잡아내면서 10연승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이뤄냈다.


한 번만 더 이기면 공식적으로 리그의 모든 팀을 다 때려눕히게 되는 셈이다. 신문사를 비롯한 모든 미디어가 이에 대해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인버네스 CT의 스티브 클라크는 심하게 흔들리는 중이고, 셀틱까지 박살 난 마당이니 적수가 아예 없는 상태.


게다가 로스 카운티는 작년 기록까지 이어서 리그 한정으로 현재 26경기 무패 행진, 16경기 연승 행진 중인 팀이다.


또한 그 명성이 자자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호각을 다투다가 비기기까지 했으니.


매 순간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가는 중인 그들이 대기록을 세우는 건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분명히 그랬을 터였다.



< 15-16 Scottish Premiership 11 Round >

로스 카운티 : 세인트 존스톤

2015년 10월 24일 (토) 15:00

햄던 파크 (관중 수 : 46,488명)



[로스 카운티 / 4-1-2-3]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존 맥긴 / 리차드 브리튼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스콧 보이드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우선 결과부터 말하자면 로스 카운티는 달성을 목전에 앞두고 실패했다.


리 월리스의 왼발 중거리 슛이 통쾌하게 그물을 흔들었을 때만 해도 다들 무난하게 기록을 세울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세인트 존스톤은 이후 틈새조차 허용하지 않는 단단한 수비를 연달아 보이면서 로스 카운티의 공세를 버텨내다가 코너킥으로 얻어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어이 동점 골을 만들었다.


결국 그들은 끝까지 골문을 지켜내면서 1점을 나눠 가지는 데 성공했다.


햄던 파크 원정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큰 성과였으니 상대는 공격을 일정 부분 포기하면서까지 수비에 치중한 모습이었다.


그런다 해도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로스 카운티의 화력을 막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주전이 빠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핵심 역할을 맡던 존 맥긴이 복귀하면서 풀 전력을 가동한 스쿼드였다.


꾸준히 좋은 폼을 보여주던 앤드류 톰슨은 올 시즌 처음으로 존재감이 희미한 활약을 보였고, 골잡이 잭 마틴은 수비 한 명이 끈덕지게 마크하는 바람에 기회를 철저히 봉쇄당했다.


후반에 투입된 제임스 블랜차드마저도 세인트 존스톤의 견고한 문을 깨뜨릴 수 없었다.


패배한 건 아니었으나, 프리미어십 열한 개 팀을 상대로 한 전승 달성과 연승 행진의 기록이 허무하게 깨지고 만 것이다.


다행히 37경기 무패 행진 기록은 깨지지 않고 이어 나갈 수 있었지만.


그간 프리미어십에서만큼은 무적의 포스를 뿜어내던 로스 카운티, 그것도 장소가 홈인 햄던 파크였건만. 세인트 존스톤이 보여준 퍼포먼스는 생각 이상이었다.


셀틱의 뒤를 이어서 3위에 자리 잡고 있긴 해도 시즌 초반이라 언제든 미끄러질 수도 있는 시점. 그래서 아직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그들이었지만, 이렇게 되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작년에 강등권까지 추락하며 허덕이다가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자마자 180도 달라지며 기사회생했던 팀. 더불어 스코티시 컵 결승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해냈던 팀.


그리고 올 시즌, 그 기세를 유지하며 상위권을 나름대로 사수하고 있는 팀.


어떻게 보면 전망이 어둡던 로스 카운티에 이탈리안 감독이 나타났을 때와 약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기 감독, 전 시즌에도 스티브 클라크와 안토니오 델 레오네 둘에게 연달아 비기면서 잠깐 화제가 된 적 있지 않았나?”


세인트 존스톤의 라이언 고드프리(Ryan Godfrey).


짧게 자른 흑발에 지적인 안경을 쓴 서른넷의 젊은 스코틀랜드인.


로스 카운티에 쏠린 스포트라이트가 분산되면서 기자들의 눈이 상대 감독에게 돌아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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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1 : 1 세인트 존스톤 >

리 월리스(25‘)

+++++++++++++++++++++++++++++

스티븐 앤더슨(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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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비기다니.”


닐 스튜어트는 하일랜드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여전히 결과가 아쉬운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엄밀히 따지면 크게 타격받은 건 없다. 셀틱도 같은 시각, 무승부를 거뒀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가 선두권에서 유리한 건 변함없다지만, 그래도 김이 새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실망할 만한 일이다. 한 사이클 내에 모든 팀을 상대로 전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울 수 있었는데, 상대가 제대로 고춧가루를 뿌린 셈이니.


“내가 저번에 말한 적 있었던가? 프리미어십에서 우리를 위협할 만한 인물은 두 명 정도 존재한다고.”


옆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던 감독의 조용한 물음에 스튜어트가 대답했다.


“스티브 클라크와 라이언 고드프리······ 라고 하셨죠.”


델 레오네는 겉보기에 굉장히 신사적이다. 먼저 도발을 걸어오는 게 아니라면 언제나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카메라가 돌아가는 장소에만 국한된 얘기다.


실제로 그의 머릿속에는 어지간해선 다른 사람이 본인보다 우위에 있다거나 하는 생각 따윈 아예 들어있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저 이탈리안이 프리미어십 내에서 진심으로 인정하는 인물은 단 두 명.


다만 스튜어트는 감독이 그 둘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미묘한 차이를 느꼈다.


스티브 클라크는 끝내 자신 앞에서 고꾸라질 한때의 적수로 여기는 정도라면, 이름도 생소한 신인 감독을 향한 시선은 ‘경계’에 가까웠다.


마치 가만히 놔두면 장차 로스 카운티에 화근이 될 인물처럼.


지역 라이벌 인버네스 CT를 상대할 적엔 항상 여유로운 웃음을 잃지 않던 그가 비교적 약체팀인 세인트 존스톤을 만날 때마다 진지해지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거기에 더 강한 승부욕을 보이는 건 덤이다.


“정정해야겠군. 올 시즌의 클라크는 영 날카롭지 않으니 말이야. 발톱이 무뎌져 무기력해진 맹수를 보는 기분이었지. 이제 유일한 위험인물이라고 하는 게 맞겠어.”


“고드프리란 자가 그 정도입니까?”


“자기 신념이 확고하면서, 팀에 주어진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있는 상대는 무척이나 까다롭지.”


감독이 말했다.


“첼시전이 끝난 뒤로 무리뉴의 수법을 모방하려는 카피캣들이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오지 않았나? 표면으로 보이는 성공만 좇느라 고민의 흔적도 없이. 그러다 제 발에 걸려 스스로 무너지는 광경을 최근 적잖이 봐왔지.”


“예. 심지어 셀틱조차 그런 실수를 저질렀죠.”


“반면 세인트 존스톤은 무리하게 압박해 오지 않았네. 누군가는 지레 겁먹고 단순히 물러선 거라 말하겠지만, 그들은 짜임새 있는 수비까지 보여줬지. 결코 엉성한 후퇴가 아니었어. 이미 며칠 전부터 탄탄히 준비했단 얘기야.”


“제가 봐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이건 주변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팀이 가진 한계와 장단점을 활용할 줄 아는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일일세. 알렉산더 캐리를 무조건 압박해야 한다. 캐리만 막으면 로스 카운티를 이길 수 있다. 그저 단편적으로 보면서 달려드는 어중이떠중이보다 훨씬 낫다는 거지.”


델 레오네에게 들을 수 있는 보기 드문 극찬이었다.


그도 그럴 게 어쨌든 로스 카운티에 패배한 열 개의 팀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으니까.


“닐, 이제 세인트 존스톤이 선보인 수비법을 따라 하려는 자들이 속출하게 될 거야.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는 걸 목격했고, 아무래도 라인을 올려서 압박하는 방식보다 이행하기도 쉬울 테니.”


“우리로선 달갑지만은 않겠네요.”


“다들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던 덕분에 점수를 내기 수월했었는데 말이지. 뭐, 그래도 문제 될 건 없어. 언젠가는 오게 될 흐름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것들에 대처를 못 하면 챔피언이라 불릴 자격이 없지.”


“물론이죠. 저도 각오하겠습니다.”


“단지, 고드프리······ 그자는 좀 신경 쓰이는군.”


감독이 생각에 빠진 얼굴로 말했다.


“현재는 워낙 환경이 열악해서 쥐어 짜내는 모양새다만, 좀 더 지원을 받거나 더 좋은 구단으로 옮긴다면 꽤나 골치 아픈 상대가 될지도 모르겠어.”


“그렇습니까······.”


이후 그는 자신만의 정신세계로 들어갔는지 대답이 없었다.


스튜어트는 고개를 돌려 창가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라이언 고드프리, 어쩐지 이번만 듣고 넘기면 안 될 이름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 15-16 League Cup Quarterfinals >

글래스고 레인저스 : 로스 카운티

2015년 10월 27일 (화) 19:30

아이브록스 스타디움 (관중 수 : 38,682명)



[로스 카운티 / 4-2-3-1]

FW : 리암 보이스

AM : 잭 마틴 / 제임스 블랜차드 / 필립 로스

CM : 대런 케틀웰 / 데미안 생클랜드

DF : 고든 스미스 / 대니 패터슨 / 스티브 샌더스 / 딜런 갈브레이스

GK : 데이비드 밀스



“오랜만이야, 리. 유로파 리그 우승팀의 주전 풀백이라 그런가? 어째 후광이 비치는 것 같은데?”


“하하, 다들 잘 지내지?”


경기 전, 리 월리스는 레인저스 진영으로 다가가 상대 선수들과 한차례 포옹을 나누었다.


한때는 같은 유니폼을 입고 뛰던 동료들이었다.


오늘 월리스는 벤치에 앉는다. 스트랜라전처럼 복수심을 태울 상대가 아니었기에 구태여 선발로 나올 이유가 없었다.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된 친정팀이지만, 그는 여전히 레인저스를 사랑하고 있었다.


작년 프리미어십으로 승격하는 플레이오프에 그들이 올라오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는 내내 우울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서로에게 호의적인 건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전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관중석을 향해 돌아보자, 월리스를 향한 환호와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와아아 -


“월리스! 잠깐이지만, 고향에 돌아온 걸 환영해!”


아낌없는 환대에 월리스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누르는 표정으로 두 팔을 높이 들어 화답했다.


*******


[오오, 선제골입니다! 제임스 테버니어의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점수를 먼저 리드하는 레인저스!]


경기는 예상보다 비등비등했다.


주전 멤버를 거의 가동한 레인저스에 비해 로스 카운티는 힘을 빼고 나온 모양새였으니 당연한 흐름이었다.


이곳이 홈구장인 아이브록스 스타디움이라서일까? 아니면 한때 스코티시 일대를 호령했던 올드 펌 중 하나로서 체면을 구기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레인저스는 테버니어의 골이 들어간 뒤에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화끈하게 맞불을 놓았다.


어쩌면 로스 카운티의 주전이 대거 빠진 상태라서 승부수를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보는 축구팬들은 즐거웠겠으나, 이것이 마냥 좋은 선택이라 볼 순 없었다.


[역습을 차단하는 케틀웰. 블랜차드가 중앙에서 이어받습니다. 앞으로 띄워주는 볼. 보이스가 가슴으로 받아, 옆으로 토스! 잭 마틴 슛! 키퍼가 막지만! 스미스! 갑자기 나타나 그물을 흔듭니다!]


[언제 저기까지 올라가 있던 거죠? 마틴의 발리슛을 막느라 키퍼가 쓰러져 있긴 했지만, 각이 모호한 위치에서 잘 밀어 넣었네요!]


로스 카운티를 상대로 내려앉지 않은 대가는 상당히 컸다.


[샌더스가 전방을 바라보며 롱패스. 블랜차드가 잡습니다! 수비 두 명이 붙어있는데도 몸싸움을 밀리지 않습니다! 앞으로 찔러주는 스루패스!]


[시몬스가 패스 길을 읽고 차단하네요.]


[어? 어엇! 치명적인 실수! 불안정한 볼 터치로 쫓아오던 필립 로스에게 볼을 빼앗기는 칼럼 시몬스! 로스, 그대로 박스 안까지 몰고 들어가 낮게 깔아 차는 마무리! 허무하게 역전을 내주는 레인저스입니다!]


또한 주전이 빠졌다 해도 그가 나왔다는 점을 너무 간과한 탓이기도 했다.


[레인저스, 움직임이 급합니다. 생클랜드의 훌륭한 태클! 볼을 빼앗는 로스 카운티의 역습! 옆으로 길게 치고 나가며 수비를 떨쳐내는 블랜차드! 전방의 크게 벌어진 균열로 찔러줍니다!]


[리암 보이스의 완벽한 찬스가 열렸어요!]


[보이스! 달려드는 키퍼를 두고 침착하게 밀어 넣습니다! 고오올! 불굴의 하일랜더가 레인저스를 제압합니다!]


앞선 고든 스미스의 골과 필립 로스의 골, 전부 누구의 발에서 시작했었는지 인식했다면 더 확실한 대처를 시도라도 해봤을 텐데.


결국 레인저스는 블랜차드가 치명적인 쐐기 골의 어시스트를 할 때까지 방치해두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레인저스의 골킥으로 시작해 중앙선에서 공중볼을 다투는 랠리전. 앞으로 튀어나온 샌더스가 전방으로 차올립니다. 뒤로 빠져나가는 잭 마틴! 수비가 쫓아갑니다! 박스 외곽에서 잭 마틴, 슛할 각이 나오지 않습니다! 옆으로 밀어주는 패스!]


[아앗! 블랜차드가 어느새!]


[슈웃! 들어갑니다! 놀랍습니다! 받자마자 왼발로 강하게 찬 슛이 우측 상단 구석에 꽂힙니다. 이 선수, 왼발도 강력한데요? 마틴의 패스도 놀랍지만, 블랜차드는 정말 경이롭습니다!]


[단연 눈에 띄는 활약입니다. 기록상으로는 1골 1어시스트지만, 네 골에 전부 관여했어요. 사실 골문 타격이나 볼 다툼에 강점이 있는 선수이지, 패스는 아쉽단 평이 많았는데요. 오늘은 플레이메이커의 역할도 준수하게 해줬습니다. 이 부분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그렇습니다. 평소 뛰는 거 보면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같아도, 아직 스물넷의 젊은 선수거든요? 얼마나 대단해질지 참 기대가 됩니다.]


후반 70분.


가차 없이 네 골을 폭격한 로스 카운티는 과열된 템포를 가라앉히고자 교체를 진행했다.


역전의 주역을 벤치로 불러들이는 신호가 전해졌고, 블랜차드는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경기장을 천천히 걸어 나갔다.


남은 시간은 레인저스가 반격할 차례였지만, 쉽지 않았다.


블랜차드를 대신해 들어온 선수가 알렉산더 캐리였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들이 후방 빌드업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해서 로스 카운티에 상당한 시간과 점유율을 순순히 내줘야 한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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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래스고 레인저스 1 : 4 로스 카운티 >

제임스 테버니어(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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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스미스(32‘)

필립 로스(38‘)

리암 보이스(52‘)

제임스 블랜차드(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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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6 Scottish Premiership 12 Round >

하이버니언 : 로스 카운티

2015년 10월 31일 (토) 15:00

이스터 로드 스타디움 (관중 수 : 17,837명)



[로스 카운티 / 4-1-2-3]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존 맥긴 / 리차드 브리튼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스콧 보이드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새삼 느껴지네요. 세인트 존스톤이 정말 잘 싸웠었다는 걸 말입니다.]


로스 카운티의 두 번째 골이 터진 뒤 해설자가 꺼낸 멘트였다.


하이버니언은 홈구장인 이스터 로드 스타디움의 분위기를 등에 업고 어떻게든 성과를 내보려 했지만,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리그 컵의 레인저스전 퍼포먼스도 인상 깊었지만, 역시 주전이 출동한 로스 카운티는 차원이 다릅니다.]


연승 행진을 저지당하기 전까지 열 개의 팀을 정복한 로스 카운티다. 한 번 삐끗해서 주춤거리나 싶었지만, 역시나 하이버니언은 그 기세를 꺾을 만한 수준이 되지 못했다.


로스 카운티는 초반부터 강력한 전방 압박을 가했다.


선제골도 에이든 딩월이 수비수의 실수를 이끌어내며 상대 박스 안에서 볼을 빼앗아 잭 마틴에게 건네준 극단적인 압박 플레이로 만든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존 맥긴이 얻어낸 파울로 진행한 프리킥 찬스에서 알렉산더 캐리의 정교한 킥을 받아낸 폰투스 얀손의 헤더 골이 터졌다.


리그 컵 일정을 소화하지 않고 일주일간 휴식하며 체력을 비축해 둔 주전 멤버들의 퍼포먼스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리고 이 선수 또한 오늘 미친 듯이 날아다니는 중이었다.


[하이버니언, 걷어내지만 불확실해요. 볼을 잡는 알렉산더 캐리. 한 번 바운드시키면서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대로 우측으로 전개하는 롱패스! 시동을 거는 앤드류 톰슨! 수비가 쫓아갑니다!]


[따라붙으면서 어깨로 거칠게 밀어붙이는데도 밀리지 않습니다!]


[계속 버티는 앤드류 톰슨! 치고 나가면서 조금씩 앞섭니다! 대각선으로 좁히며 박스 안까지 들어가는 톰슨! 엔드라인 부근에서 짧게 전달! 잭 마티인! 문전으로 쇄도하여 톰슨의 패스를 받아 골을 넣습니다!]


[작년까진 몸으로 부딪치면 힘없이 밀려나던 톰슨이었는데요. 이제는 그런 모습이 없습니다. 좀 더 단단해지면서 장점인 스피드도 죽지 않았어요. 벌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단 뜻이죠.]


[네. 시즌이 끝나고 휴식 기간에도 체력 훈련을 열심히 했다는 소식이 많았는데, 그 효과를 제대로 보네요!]


전후반을 내내 몰아치던 로스 카운티는 60분에 존 맥긴과 블랜차드를 교체했고.


블랜차드는 투입되자마자 5분 만에 좌측에서 올린 왼발 크로스로 에이든 딩월의 헤더 골을 어시스트하는 활약을 보여주었다.


또 한 번의 대승으로 여유가 생기자 70분에 스티브 샌더스와 고든 스미스가 투입되며 캐리와 월리스는 무난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하이버니언은 힘을 뺀 로스 카운티를 상대로, 스미스의 측면을 뚫어낸 크로스를 통한 만회 골 하나를 넣은 걸로 만족해야만 했다.



=============================

< 하이버니언 1 : 4 로스 카운티 >

제이슨 커밍스(82‘)

+++++++++++++++++++++++++++++

잭 마틴(12‘, 53‘)

폰투스 얀손(19‘)

에이든 딩월(65‘)


=============================



지난번에 잠깐 발목을 잡힌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환상적인 플레이를 펼치며 대승을 거둔 로스 카운티.


경기가 종료되고 상대 감독과 가벼운 악수를 나눈 델 레오네는 두 손을 정장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로 관중석을 둘러보았다.


로스 카운티 팬들이 전부 일어나서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감독은 심호흡을 하더니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좋아. 이제 스페인, 베르나베우로 간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원래도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지만

개인적인 사유로 지방에 갔다 오느라

글을 쓰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다음 화는 더 빠르게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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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644 39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1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8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8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5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4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5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9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8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2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71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3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6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5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7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6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2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8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9 39 24쪽
»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3 5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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