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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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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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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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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0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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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3쪽

195. 한 마리의 송골매

DUMMY

“동기부여의 신.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감독님은 올드 스쿨도 아니고 방임자도 아니에요. 다르게 말해서 올드 스쿨이 될 수도 있고, 방임자가 될 수도 있죠. 사람에 따라 유연하게 달라진다는 얘깁니다. 각 선수의 성격을 파악해서 그에 알맞은 방법으로 자극하죠. 개인 전술만 해도 그래요. 누군가에게는 최소한의 지시만 부여하면서 자유를 주고, 누군가에게는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한 지침서를 주입하기도 하죠. 그게 일부를 편애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도 라커룸에서 불만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정말 위대한 겁니다.” - 수석 코치 ‘닐 스튜어트(Neil Stewart)’ -


*******


경기가 끝난 직후 열린 기자회견은 난장판이었다.


“백스리를 꺼내든 이유가 뭐죠?”


“잘못된 선발이 패배의 원인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제대로 된 공격을 거의 못 했습니다. 완패를 인정하시나요?”


아니, 항상 이랬다. 로스 카운티와 경기를 치르고 난 상대의 회견장은.


조롱 섞인 의도로 질문을 던지는 스코틀랜드 기자와 진지하게 문책하려는 프랑스 기자들. 그 외에도 중립적인 위치에 있지만 기자로서의 윤리 의식보다는 옐로 저널리즘에 충실한 하이에나들이 모여들어 패장을 두고 청문회를 벌이는 중이었다.


로랑 블랑은 안경을 벗어들고 피곤한 눈을 손으로 한번 쓸어내렸다. 먹잇감을 노리던 카메라 플래시가 기다렸다는 듯 터졌지만,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쓸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제 실책입니다.”


마음을 추스른 그가 다시 안경을 쓰며 대답했다.


“로스 카운티에 많은 부분을 압도당한 경기였습니다. 점유율은 앞섰지만,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고요. 베라티의 몸이 온전치 못했고, 그를 쓰지 못하는 시점에서 중앙 싸움을 이기기 어려울 거라 판단했습니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지만, 그게 잘못되었던 것 같네요.”


“음, 제가 이해한 대로면······ 베라티 하나 빠졌는데 파리 생제르맹이 로스 카운티에 중앙을 내줘야 했다는 건가요?”


블랑은 놀란 어조로 반문한 기자를 슬쩍 쳐다보며 대꾸했다.


“스코틀랜드 리그라는 이유로 과소평가 되는 팀이에요. 그들이 내뿜는 에너지는 이미 세계 레벨입니다. 다들 진작 확인하지 않았습니까? 여러 경기를 통해서요.”


그 말엔 아무도 흔쾌히 반박하지 못했다. 확실히 유럽 대항전에서 로스 카운티가 보여준 모습은 상상 이상이긴 하니까.


“선수들도 체력이 대단하지만, 시스템이 체계적이죠. 특히 딩월과 블랜차드가 구축하는 압박 대형은 어느 팀도 쉽게 헤쳐 나오지 못할 겁니다.”


상대 선수의 이름까지 언급한다는 것은 적으로서 그만큼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였다. 그 둘이서 수비 라인과 3선 라인을 이어주는 길목을 틀어막고 있노라면 당하는 쪽에서는 정말 숨 막히지 않을 수 없다.


일단 뚫으려면 이탈리안이 만든 시스템에 버금가는 디테일로 접근하는 것부터 실현되어야만 한다. 아직 그 정도를 보여주는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았다.


블랑은 물론이고 라파엘 베니테스와 조제 무리뉴도 끝내 실패했다. 그나마 결승전의 우나이 에메리 정도?


“그렇다고 끝난 건 아닙니다.”


블랑이 말했다.


“남아 있는 2차전은 홈에서 치르는 경기. 그때쯤이면 부상자들도 다 복귀할 시점입니다. 모든 부분에서 유리함을 가져올 수 있죠. 온전한 전력이 가동된다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우리는 원정에서 한 골을 넣었으니까요. 로스 카운티도 안심할 위치에 있는 건 아닙니다.”


맞는 말이었다. 1차전에서 크게 점수를 벌려놔도 2차전이 상대의 홈이면 뒤집히는 사례가 적지 않다. 유럽 대항전에선 종종 일어나는 풍경이다.


그런데 고작 한 점 차밖에 되지 않는다면 웃기엔 한참 이른 상황. 더군다나 실점까지 내준 한 점 차라면 승리한 홈팀보다 패배한 원정팀이 더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원정 다득점 원칙이라는 게 존재하니까. 경기는 이겼어도 승부에서 이겼다고 보기는 아직 어려운 것이다.


“베라티가 복귀하고, 미드필드진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굳이 어렵게 돌아갈 필요도 없겠죠. 어설픈 접근은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은 다음에 진짜 파리 생제르맹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패배는 인정하나, 최상의 팀 상태로 진 건 아니다. 그 말인즉슨 2차전은 숨길 것도 없이 대놓고 잘하는 걸 꺼내 들어 결판을 짓겠다는 선전포고였다.


블랑은 한 번 크게 심호흡하더니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맺었다.


“2차전은 우리가 제일 자신 있는 4-3-3으로 응수하겠습니다.”


*******


< 15-16 Scottish Premiership 29 Round >

던디 FC : 로스 카운티

2016년 2월 27일 (토) 15:00

덴스 파크 (관중 수 : 10,349명)



[로스 카운티 / 4-1-2-3]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존 맥긴 / 제임스 블랜차드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대니 패터슨 / 스콧 보이드 / 스티브 샌더스

GK : 마크 브라운



파리 생제르맹전의 승리는 프리미어십 경기에도 거대한 여파를 몰고 왔다.


[이거······. 설마, 또 벌어지나요?]


조심스럽게 멘트를 꺼내는 해설자의 목소리, 그와 함께 화면에 비춘 전광판의 스코어.


0 : 6, 물론 원정팀이 6이다.


[던디 FC의 홈인 덴스 파크에서 참극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던디 유나이티드의 태너다이스 파크에서 일어났던 던디 쇼크를 연상케 하는 스코어인데요. 로스 카운티가 또 다른 던디 주민들에게 악몽을 심어줍니다.]


마틴 2골, 블랜차드 2골, 맥긴 1골, 캐리 1골, 그리고.


[다시 뚫리는 측면! 앤드류 톰슨의 크로스! 아아, 키퍼의 펀칭 미스로 뒤쪽으로 떨어지며 딩월이 헤더로 빈 골문에 밀어 넣습니다!]


[전체적으로 멘탈이 무너진 상태인 것 같습니다. 평소에 하지 않던 실수가 잦아지고 있어요.]


이렇게 된 건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 후반 시작하고 톰슨을 무리하게 막으려다 뒤늦게 정강이를 가격한 파울로 퇴장을 당하면서 한 명이 줄어든 게 치명적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 전에 앞서 이미 던디 FC는 전반전에만 세 골을 내준 상태였기에 승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오늘 리차드 브리튼이 선발로 나오지 않았는데요. 캐리 위에 맥긴과 블랜차드를 세운 걸 보고 너무 극단적인 공격 진형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게 효과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델 레오네 감독이 또 가볍게 새로운 형태를 들고나온 거죠. 브리튼의 공격력이 나쁜 건 아니지만, 맥긴과 블랜차드는 상대 진영을 파괴할 수 있는 선수거든요. 이 둘이 중앙 영역을 지배하고 있으니 던디 쪽에서는 대처하기가 너무 어려운 겁니다.]


왼쪽에는 돌격대장 맥긴, 오른쪽에는 인간흉기 블랜차드. 적어도 프리미어십의 수비로는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다.


브리튼이 없으면 로스 카운티의 밸런스가 흔들릴 수 있겠지만, 던디 FC처럼 내려앉고 보는 팀에겐 딱히 고려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


이제 견고하게 벽을 쌓아 버텨보려는 팀마저 어느 정도 파해가 된 셈이다.


[리 월리스와 교체하며 들어온 고든 스미스, 쌩쌩합니다. 맥긴의 패스를 받아 들어가는 스미스! 짧게 내주는 크로스! 블랜차드! 맙소사! 해트트릭입니다! 델 레오네의 밑에서 나온 미드필더의 첫 해트트릭!]


[정말 쉽게 쉽게 축구하는 선수예요. 그냥 보는 입장에선 슥 들어가서 툭 차 넣는 느낌이거든요.]


[그렇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선수는 미드필더예요. 그것도 중앙 미드필더죠!]


톰슨의 크로스를 받아 수비 경합을 이기고 넣은 헤더 골, 수비가 한쪽으로 쏠려 시선이 분산될 때 혼자 박스 우측으로 빠져 맥긴의 패스를 받아 깔아 찬 두 번째 골, 그리고 이번 골까지.


Blanchard began to move, It's hard to Prevent him -

(블랜차드가 움직이기 시작했어, 그를 막기는 어렵지.)

Hi-ho, the derry-o, You'll crumble in a blink -

(하이-호, 데리-오, 너넨 눈 깜짝할 새 무너질 거야.)


울려 퍼지는 챈트 가사 대로 정신 차려 보니 그에게 박살 나버린 꼴이다.


[스미스의 오버래핑, 올리는 크로스. 리암 보이스! 파워풀한 헤더 골! 스코어는 아······ 아홉 점 차. 던디 FC, 전의를 상실하고 맙니다.]


[결국 역사에 남을 스코어가 찍히네요. 던디의 주민들은 대체 무엇을 잘못했길래 저 이탈리안한테 끔찍한 수모를 계속 당하는 걸까요?]


어느새 빈자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덴스 파크. 최근 썩 나쁘지 않았던 성적을 거둬왔기에 내심 가졌던 일말의 기대를 처참히 부숴버리는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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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디 FC 0 : 9 로스 카운티 >

잭 마틴(12‘, 51‘)

제임스 블랜차드(23‘, 56‘, 81‘)

존 맥긴(36‘)

알렉산더 캐리(66‘)

에이든 딩월(72‘)

리암 보이스(85‘)


=============================



“그러게 왜 그랬어, 에이든.”


경기가 끝난 후 보이드는 다시 피치 위로 올라온 딩월을 보며 가벼운 핀잔을 던졌다.


“저 미친놈, 불이 제대로 붙었잖아. 무슨 깡으로 제임스를 자극했던 거야?”


3골 1어시스트의 공격 포인트와 더불어 90분 내내 발휘한 존재감. 골 파티가 터진 초대형 승리 속에서 맨 오브 더 매치의 주인공이 블랜차드가 될 것임은 누가 봐도 유력했다.


그뿐만 아니라 1월에 이어 이달의 선수 연속 선정까지 확정적인 상황.


발목을 완전히 회복하여 돌아와 적응을 완료하고 더 나아가 한 꺼풀 성장까지 이루며 절정에 오른 것이겠으나, 거기에 딩월의 도발도 아주 약간은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그······.”


그 승부욕에 불을 붙였던 장본인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다가 손으로 쌍권총을 만들더니 보이드를 향해 겨냥하며 유쾌하게 대꾸했다.


“기, 긴장감?”



[ SPFL Official ] 5경기 5골 5어시스트, 압도적인 2월의 선수 제임스 블랜차드


[ Scottish Sports ] 초인 제임스 블랜차드 11골 11어시스트, 17경기 22공격 포인트


[ The Scotsman ] 작년에 이어 또 10-10 달성을 이뤄낸 블랜차드


[ Daily Mirror ] 던디 FC 폴 하틀리 감독 “블랜차드는 끔찍한 존재”


[ ESPN ] 1경기 1공격 포인트를 상회하는 중앙 미드필더, 과거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에도 없던 유형


*******


< 15-16 Scottish Premiership 30 Round >

마더웰 : 로스 카운티

2016년 3월 1일 (화) 19:30

퍼 파크 (관중 수 : 8,378명)



[로스 카운티 / 4-1-2-3]

FW : 필립 로스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존 맥긴 / 라이언 잭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스콧 보이드 / 폰투스 얀손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제임스가 환상적인 폼을 보여줬긴 한데······ 다른 선수들이 녀석에게 너무 묻힌 감이 있어 아쉽군.”


필드를 바라보던 델 레오네가 대뜸 입을 열었다. 경기가 시작하면 무서울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하는 이 감독이 현 상황과 다른 주제를 꺼내 든다는 것은 더 이상 깊이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오래간만에 코너킥에서 나온 보이드의 헤더 골, 얀손의 롱패스를 받아 뒤를 무너뜨린 톰슨의 추가 골, 박스 안까지 볼을 몰고 들어간 월리스의 컷백 패스를 받아 넣은 로스의 쐐기 골까지.


완벽하게 리드하고 있어 여유를 부려도 될 만한 점수 차였으니까.


“전체적으로 봐도 팀의 퍼포먼스가 최고였던 달이었는데 말이지. 하필 한 명이 지나치게 돋보이는 바람에 주목을 못 받았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


닐 스튜어트는 대답하면서 짧게 끄덕였다.


무려 27골을 만들어 낸 달이었다. 리그로만 따져도 20골. 던디 FC의 지분이 상당하긴 하지만, 그걸 포함해도 대단한 기록이다.


이 득점수가 더 놀라운 건 수비수의 세트피스 골 같은 게 하나도 나오지 않고서 오로지 순수 화력으로만 뽑아냈다는 사실.


알렉산더 캐리의 보기 드문 필드골을 두 번이나 볼 수 있었고, 교체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줬던 리암 보이스는 컵 대회 포함해 6골을 넣으며 팀의 상승세에 기여했다.


일부 기사에서 득점왕을 또 밀리니 마니 흔들어댔던 잭 마틴은 2월의 모든 경기에서 빠짐없이 골망을 흔들며 총 10골을 넣었고, 리그에서만 5경기 7골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다들 정말로 훌륭한 활약이었지만, 블랜차드가 그 모든 걸 뛰어넘어버린 탓에 스포트라이트의 대부분은 한 사람의 몫이 되고 말았다.


“저는 앤드류의 활약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녀석이 측면을 계속 허물어주니 공격이 수월한 것도 많았었죠.”


스튜어트는 톰슨이 없었다면 이만큼 폭발적인 득점은 나오기 어려웠을 거라 생각했다. 최근 들어서는 상대 풀백과 붙었다 하면 프리미어십에서 일대일은 적수가 없을 지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뷔 시즌에 고작 2골 활약에 그쳤던 미숙한 소년이 작년 리그 기준으로 3골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실로 대단한 성장세를 보이지 않았나 싶었는데.


지금은 마더웰전 득점을 포함해 9골 12어시스트. 올해는 이미 커리어 하이를 훌쩍 넘겼다.


“녀석의 발전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현재도 리그 수위급 윙으로 평가받고 있지 않습니까? 본격적인 프로로 뛰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심지어 요새는 저 포지션에서 독보적인 탑인 것 같습니다.”


지난달에만 1골 6어시스트를 만들며 블랜차드를 제치고 팀 내 최다 도우미로 등극했으니 말 다 한 수준. 이 폼을 꾸준히 이어간다면 리그 베스트를 넘어 프리미어십 역대 반열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글쎄. 아직 멀었어.”


델 레오네는 그런 활약에도 도통 만족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이상하리만치 톰슨에 관해서는 단호하다 못해 매정한 평가를 내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감독님은 저번에 앤드류를 팔콘에 비유하셨죠?”


스튜어트는 궁금증을 풀 기회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녀석에게 건 기대치가 얼마나 크신 건지 저로서는 가늠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제 눈에는 지금도 훌륭해서 흠잡을 데가 없어 보이는데······.”


“······.”


감독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질문을 하나 던졌다.


“닐, 자네는 앤드류의 최대 강점이 뭔지 아나?”


“강점은 역시 빠른 것······ 이라고 한다면 왠지 오답일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이탈리안은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제법 눈치가 생겼군. 앤드류의 진짜 강점은······.”


그리고 잠시 멈췄다가 말을 이었다.


“바로 엉덩이가 튼실하다는 거야.”


“네?”


전혀 예상 못 한 답변에 평정심을 지키려던 스튜어트는 결국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그러니까 엉덩이 근육이 잘 발달되어 있다는 말이네.”


감독은 역시나 태연한 얼굴이었다.


“타고난 엉덩이는 허리와 무릎도 튼튼하게 만들어주지. 앤드류가 저토록 스프린트를 자주 하는데도 부상이 별로 없는 이유이기도 해. 에이든과는 다른 부분에서 강인한 몸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


“그렇······ 군요.”


삐익 -


마침 경기장에서 휘슬이 불렸고, 수비수와 충돌한 톰슨이 쓰러져 있었다.


상대가 옐로카드를 받을 정도로 거친 태클이었음에도 톰슨은 잠시 잔디에 걸터앉아 숨을 고르더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일어난다.


“확실히 그런 듯합니다.”


수긍하는 스튜어트의 모습에 이번엔 좀 더 크게 웃는 감독이었다.


“하하하, 진지하게 받아들이니 조금 당황스럽군. 아예 빈말은 아니었다만, 사실 자네의 반응이 재밌어서 약간 농을 섞어 본 거야.”


“예? 그러면······.”


“당연히 앤드류의 강점은 빠른 것이지 않겠나?”


“아. 역시 그렇죠? 하하.”


“······그게 발은 아닐 뿐이지.”


“예?”


계속 반문을 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 되자 스튜어트는 감독의 페이스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또다시 내려놓기로 했다.


“물론 앤드류는 발도 굉장히 빨라. 스피드만 놓고 보면 세계 정상급과 견줄 만할 거야. 그런데 아마도 그 발보다 빠른 게 있을 것이네.”


“그게······ 무엇입니까?”


“내가 왜 팔콘을 떠올렸겠나?”


스튜어트는 머리를 굴리다가 뭔가를 깨달은 듯 작게 외쳤다.


“눈?”


감독이 미소 짓는 걸로 보아 정답인 듯했다.


“맹금류는 동체시력이 우월한 동물로 유명하지. 자네는 이런 생각이 안 들던가? 앤드류가 리그의 풀백들을 차례대로 초토화시키고, 레알 마드리드의 마르셀루 같은 선수마저 고전하는 걸 보면서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말이네.”


“그거야······.”


“빠르다고 다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아니야. 뒤로 찌른 패스를 받기 위해 내달리는 거면 몰라도, 일대일 대치 상황에서 상대의 타이밍을 빼앗아 치고 달리는 건 발보다는 뇌와 눈의 영역에 가깝지.”


그가 계속 말했다.


“어쩌면 녀석의 눈에서는 상대의 동작이 약간 느리게 보일지도 몰라. 볼을 뺏으려고 들어오는 다리를 찰나의 시간 동안 충분히 인지하고 다음 행동에 옮길 수 있단 얘기지.”


“그게 진짜라면 엄청난 거 아닙니까?”


“다만 그건 대개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야.”


감독이 말했다.


“내가 괜히 엉덩이 얘기를 꺼낸 건 아니라네. 앤드류는 축복받은 하체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리고 시즌 개막 전에는 뭔가에 자극받았는지 자신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상체를 열심히 단련하더군. 성공적인 벌크업으로 이제 경합에도 쉽게 밀리지 않는 신체가 완성되었지. 드리블러로서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조건을 갖춘 셈인데······.”


거기까지 말하더니 그는 짧게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감. 정작 드리블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 있어.”


“그래도 최근에는 상대가 누구든 쭉쭉 밀고 들어가는 걸 보면 자신감도 많이 오른 거 아닐까요?”


“그래. 그게 문제야.”


감독이 미간을 찌푸렸다.


“닐, 나는 좀 통한다고 저 패턴에 고착화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기도 한다네.”


그때 홈 스탠드에서 터지는 함성. 톰슨이 수비를 직선으로 제치면서 크로스를 문전에 붙였고, 돌고래처럼 솟아오르며 이마에 맞춘 딩월이 관중석을 향해 볼을 높이 쏘아 올렸다.


“······뭐, 처음에 보았을 때에 비하면 많이 나아지긴 했지.”


감독이 다시 말했다.


“연습 경기에서 보았던 적갈색 머리 소년의 첫 만남은 가관이었어. 내 눈엔 흡사 병아리들 속에 섞여 적응 중인 새끼 매 한 마리를 보는 것 같았거든.”


스튜어트는 살짝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감독님은 앤드류를······.”


“유소년 시절부터 잘못들인 습관과 교육으로 인해 잠들어버렸지만, 그러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간간이 튀어나오는 본능은 숨길 수 없더군.”


“······.”


“야생성을 잃어버린 매는 평범한 조류에 불과해. 본능이 제대로 따라주지 않으면 그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없지. 그게 앤드류가 기복이 심했던 결정적인 이유였던 거야.”


꽤 놀라운 이야기였다. 톰슨을 향한 감독의 기대치가 낮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단지 폭발력이 뛰어나단 잠재성만을 보고 있었던 거고, 그 부분에서는 거의 완성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는데 애초부터 평가점이 달랐던 것이다.


“저 녀석을 일깨우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해 왔는지 다들 상상도 못 할 것이네. 필드 위에서 앤드류가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꾸준히 조성해 준 것은 물론이고, 경기장 밖에서도 상담을 통해 자신감을 가지라는 조언과 그런 자신감이 생길 수 있는 상황을 계속 만들었지.”


“그랬군요······.”


“그러나 나도 착각하고 말았던 거야. 그저 여린 소년의 겉모습만 보고서 혹여 부러지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레 대하려고만 했던 거지. 새끼 매라는 걸 알아보았음에도 강하게 키울 생각을 못 하고.”


스튜어트를 마주 본 감독의 얼굴은 무척 진지했다.


“한마디로 앤드류는 따스한 온실 속보다는 험난한 정글이 어울리는 놈이었어. 실은 속내조차 팔콘 그 자체였던 것이지.”


그가 계속 말했다.


“잘못 짚었다는 걸 깨달은 뒤 나는 소피앙을 데려와 경쟁의식을 부추김과 동시에 그의 현란한 발재간을 보고 자극을 받도록 만들었네. 그리고 셀틱에서 티어니라는 훌륭한 외부의 적이 나타난 걸 보고 기쁨을 금치 못했지. 그 모든 게 전부 앤드류의 자양분이 되어줄 게 확실했으니까.”


시작부터 윙어로 포지션 변경, 좀 더 활약이 좋았던 에드빈 데 루어에게 끝까지 만족 못 했던 이유, 소피앙 부팔의 임대 영입, 수비 가담을 최소화하면서 공격에만 열중할 수 있는, 한 명에게 너무 의존하다 싶기까지 했던 우측 공격 시스템.


올 시즌, 공격수처럼 중앙으로 침투하는 움직임을 자주 가져가라고 지시했던 것까지.


막연히 짐작만 해왔던 감독의 단계별 행보가 머릿속에서 전부 연결고리처럼 엮이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모든 게 톰슨을 처음 보았던 그 순간부터 세워진 계획이었다. 그 안에 잠들어 있는 팔콘, 즉 송골매의 본능을 깨우기 위한.


생각 이상으로 스케일이 큰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자, 설명을 찬찬히 들어보니 어떤가? 지금 상태? 나쁘진 않지. 하지만 길들여진 맹금류가 그저 시키는 매사냥만 나가는 꼬락서니로 보이지 않나? 야생성을 되찾았다고 보기 어려운데 어찌 만족할 수 있을까?”


스튜어트는 간신히 대답했다.


“그렇겠습니다.”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건 모조리 했다고 생각하네. 남은 건 앤드류의 몫이지. 이제 슬슬 막바지에 다다른 것 같아 자네에게도 밝히는 거지만.”


감독이 벤치에 몸을 천천히 기대며 나지막이 말했다.


“녀석은 여전히 몰라. 본인이 자유롭게 활공하며 사냥감을 잡는 포식자라는 걸. 그 사실을 스스로 깨닫기 전까지는 아직도 멀었단 얘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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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더웰 0 : 4 로스 카운티 >

스콧 보이드(13‘)

앤드류 톰슨(36‘)

필립 로스(57‘)

리암 보이스(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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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새 A형 독감이 유행이라하니

몸조심 하시길 바랍니다.

재미있는 내용이 됐으면 좋겠네요.

방문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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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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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13/14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9 17.12.19 18,424 0 -
203 203. 공간 싸움 (4) +5 24.04.07 480 36 25쪽
202 202. 공간 싸움 (3) +6 24.03.18 575 35 25쪽
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643 39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1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7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7 38 28쪽
»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3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3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4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6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0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69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1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4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3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6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5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0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8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8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2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69 50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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