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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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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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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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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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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185. 새로운 국면 (3)

DUMMY

두 번째다. 캐리를 미끼 삼아 상대의 허를 찌른 것은.


저번에도 잠깐 언급하긴 했지만, 작년 유로파 리그의 잘츠부르크전과 비슷한 수법. 왼쪽에서 압박을 유도하고, 신속한 반대 전환을 통해 완벽한 승리를 가져온 적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그땐 월리스가 전환하고 델샤드가 받아 올라가는, 양 풀백을 활용하는 게 핵심이었다는 거지만.


만일 그대로 나왔다면 통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우선 측면에서 변수 창출에 능한 소피앙 부팔의 부재가 상당히 크며, 설령 그가 있었다 해도 첼시의 왼쪽은 쉽게 흔들기 어려운 구역이다.


팀이 부진한 성적을 거두는 와중에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꾸준히 견고한 모습을 보여주는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톰슨은 1차전에서 그에게 철저히 봉쇄당했고, 자연스레 로스 카운티의 화력도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캐리를 저렇게 쓸 거란 예상도 못 했지만, 풀백을 통한 측면 전환부터 첼시에는 통하지 않는 패턴이기에 염두조차 두지 않았었는데.


“너무 단편적으로 생각했나?”


측면이 통하지 않으면 중앙을 노리면 된다.


말로는 참 단순하지만, 아무나 쉽게 계획하지 못할 방법. 또 그런 게 가능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치밀한 설계.


캐리를 가운데에 두지 않은 건 당연히 의도적인 배치였다.


보이드의 좌측 스토퍼 부적합성이라든가, 상대 역습을 고려했다거나. 그저 다 부차적인 것이었을 뿐. 진짜 목적은 첼시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함이었다.


일부러 좌측 구석에 놓고 볼을 점유하며 윌리안과 오스카를 깊숙한 곳까지 끌어들인다. 그래서 후방의 마티치를 고립시킨다. 마치 전투에서 선봉대를 유인한 뒤 허리를 끊어버린 모양새다.


그리고 그 후미를 습격하는 기병대가 바로 맥긴과 블랜차드.


캐리가 라볼피아나 중앙에 있었다면 오스카가 뒤늦게나마 후퇴하여 3선을 지원할 수라도 있었겠으나, 한쪽으로 지나치게 쏠린 형태에선 돕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해진다.


방금도 맥긴에게 시선을 뺏긴 마티치 뒤로 블랜차드가 공중볼을 받아내며 공격을 만들었다. 기습적으로 찌른 스루패스를 아스필리쿠에타가 태클로 차단하지 않았다면 톰슨의 단독 찬스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제껏 하던 것처럼 캐리를 강하게 압박하면 마티치가 역으로 두 명에게 둘러싸이는 형태가 된다.


마티치가 맥긴을 쫓아가면 첼시가 점유해야 할 중앙에 거대한 구멍이 발생한다. 그 영역은 전부 블랜차드의 차지가 된다. 위치선정이 탁월한 저 10번은 작은 공간도 내줘선 안 되는 위험 대상이다.


그럼, 반대로 물러서서 블랜차드를 묶어두면 될까? 볼을 받으러 내려가는 맥긴을 포기해야겠지만, 무리하여 나가는 것보다는 자리를 지키는 게 안정적일 수 있다.


맥긴은 압박하는 공격진과 물러서는 3선의 틈새에 위치하면서 방해꾼 없이 볼을 받는다.


“저게 골치 아픈 거지.”


압박이 실패하고 볼이 전진하는 순간부터 첼시의 계획은 실패한다.


앞에 뚫려있는 넓은 공간으로 볼을 몰며 성큼성큼 올라가는 맥긴. 뒷걸음질하는 마티치와 금세 간격을 좁힌다.


아까 말했듯 첼시의 전방 인원은 라볼피아나 압박에 무게가 실려 3선을 바로 도울 수 없고, 마티치는 전진해 오는 맥긴과 뒤에서 어슬렁대는 블랜차드를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와아아 -


왼쪽으로 빠지는 블랜차드의 움직임에 현혹되어 버린 마티치의 무게 중심이 쏠리고,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과감히 그를 돌파하는 맥긴의 드리블.


그대로 가속을 붙이면서 존 테리까지 뚫으려다가 다리에 걸려 큰 동작으로 넘어지고 만다.


주심이 달려와 옐로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고의로 저지른 파울이라 테리는 항의조차 못 하고 얌전히 받아들인다.


“보내줬으면 실점 위기까지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


결국 뒤로 물러서도 똑같이 두 명을 상대해야 하는 건 변함이 없다.


맥긴은 캐리만큼은 아니어도 보조 플레이메이커로서 기능할 수 있는 선수.


주요 플레이메이커가 지나친 견제를 받아서 자신의 쪽이 느슨해지면 날카로운 공격을 주도할 정도의 능력은 지녔다는 얘기다.


특히 그는 볼 운반에 능숙하다. 벌어진 공간쯤은 순식간에 치고 올라갈 수 있으며, 약간의 교란만 있으면 상대 중앙을 프리패스로 가로지르는 게 가능하다.


비교해서 미안한 말이지만, 저 자리에 케틀웰이 있었다면 효과를 크게 볼 수 없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그는 볼을 다루는 기술이 투박한 편이니까.


딩월과 함께 압박 지분을 크게 양분하여 담당하는 것 이외에도 공격적인 부분에서 많은 것을 책임지고 있는 돌격대장.


상당히 비중이 컸던 소피앙 부팔이 빠졌음에도 로스 카운티가 예전보다 강력해 보이는 이유는 저 맥긴의 존재에 있다.


캐리 쪽으로 의존도가 쏠리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두 명의 플레이메이커가 있어서 견제가 분산될 수밖에 없는 상황.


거기에 블랜차드 또한 작년 활약에 그치지 않고 나날이 성장을 거듭하며 경기를 읽는 능력까지 키우고 있으니, 여차하면 예비 플레이메이커의 임무를 수행할 수도 있다.


“당시 캐리를 미끼로 두는 작전에는 분명 한계도 명확해 보였는데, 맥긴으로 인해 단점이 보완된 느낌이군. 물론 블랜차드까지 받쳐줘야겠지만.”


캐리에게 무작정 달려들면 대신 전개를 맡아줄 두 명이 풀려나는 구조. 특히 현 첼시에는 더욱 효과적인 방법이다.


안 그래도 파트너인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수비 영향력이 약해서 1차 저지선 역할을 거의 혼자 부담하고 있던 마티치였건만, 이런 과부하를 걸어버리면 수비진 전체가 흔들릴 수밖에.


프리먼은 터치라인으로 달려가며 크게 소리치는 무리뉴를 보았다. 이쯤 되면 그도 방관할 수만은 없는 노릇.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하지만 무리뉴 축구에서 갑자기 라인 전체를 끌어올리는 건 부자연스러운 대처. 이제 와서 해봐야 선수들이 제대로 소화할 리도 만무하니,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그래, 오스카를 뒤로 빼겠지.”


캐리의 압박을 포기하는 것이다. 최전방 인원을 전부 뒤로 물리고 로스 카운티 3선부터 묶는 게 급선무. 델 레오네가 펼쳐놓은 함정에 걸려들었음을 인정하고 한발 물러선 셈이다.


오스카가 맥긴을 잡으면 마티치는 블랜차드에게 집중할 수 있으니까. 3선의 커버 범위가 축소되면 적어도 아까처럼 끔찍한 허허벌판을 제공하는 일은 막을 수 있다.


프리먼이 가장 우려하던 부분이다.


첼시가 작정하고 내려앉으면? 이탈리안 신예 감독의 기세를 한 번 더 꺾어볼 요량으로 똑같은 방식을 들고나왔던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무리뉴가 극단적인 실리주의자 모드로 돌아가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쪽이 어수선할 때 점수를 냈어야 했는데······.”


어쨌거나 아직 골은 들어가지 않았다. 첼시는 오늘 비기기만 해도 승리를 따낸 거나 다름없는 시합이고 말이다.


촘촘하게 포진한 수비 대형에 막혀 볼을 뒤로 빼는 브리튼. 첼시가 후퇴하면서 제법 숨통이 트인 캐리가 패스를 받는다.


무리뉴가 작전을 바꿨으니 델 레오네도 다시 변화를 꾀할 것이고, 그 중심은 역시 저 선수가 될 수밖에 없다.


미끼 역할을 하던 가짜 레지스타가 진짜 레지스타로 돌변할 타이밍.


“그래도 로스 카운티가 주도권을 잡아나갈 수는 있게 됐어.”


서두를 필요는 없다. 첼시는 내려앉아 패스를 끊으면 역습을 나가려 할 테니, 급하게 전진하기보다 서서히 라인을 올리면서 조여 들어가는 포위망을 구축하는 게 좋다.


섣불리 공격하면 역습 한 방에 무너져 버릴 수도 있으니까. 첼시의 양쪽에 아자르와 윌리안, 걸출한 윙어가 포진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신중한 빌드업과 전개, 웅크린 수비진을 어떻게 공략할지는 그다음이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주저 없이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캐리의 롱볼. 이어서 높이 뛰어올라 그 볼을 따내는 블랜차드.


그의 헤더 패스가 앞으로 훌쩍 넘어가고, 달리는 딩월과 붙어서 경합하던 테리가 위로 높이 차올리며 간신히 코너킥 라인으로 걷어낸다.


“······.”


이후 코너킥 수비까지 성공한 첼시였지만, 공격권은 다시 로스 카운티에 넘어가고.


브라운 골키퍼가 있는 곳까지 쭉 빼면서 전열을 가다듬나 싶더니, 캐리가 내려와서 받자마자 빠른 직선 패스를 첼시 진영으로 찔러 넣는다.


조급한 전개처럼 보였지만, 이후 벌어지는 장면은 그렇지 않았다.


캐리의 패스가 블랜차드의 발에 안착하고, 그를 등 뒤에서 밀착 마크하던 수비는 단순한 턴 동작에 균형을 잃으며 휘청거리고 만다.


오른쪽으로 드리블하며 수비를 떨쳐내는 블랜차드의 파워풀한 외곽 중거리 슛이 몸을 던지는 테리의 스터드를 맞고 터치라인까지 튕겨 나간다.


“아······ 이건가?”


잠자코 지켜보던 프리먼은 이탈리안의 노림수를 알 것 같았다.


템포를 늘어뜨리면서 뒤로 빠졌다가 급속도로 전개하는 패턴. 활시위를 끝까지 당겼다가 쏘아 올리는 느낌.


그 줄을 놓는 방아쇠 역할을 알렉산더 캐리가 맡고 있다.


상대가 볼을 가진 쪽으로 균형이 쏠리면 공간이 생겨나는 반대편으로 전환하는 게 기본적인 흐름인데, 캐리는 그저 직선으로만 찔러준다.


라볼피아나로 압박을 끌어당긴 뒤 맥긴과 블랜차드를 이용하던 그 체계적인 플레이와 상반될 만큼 단조로운 공격 패턴.


재밌는 건 시도하는 족족 통하고 있었다.


“이 얼마나 악랄하기 짝이 없는 짓인가.”


프리먼이 꺼낸 말의 의미는 찬사에 가까웠다.


왼쪽의 캐리가 겨냥하는 직선 방향, 로스 카운티가 노골적으로 노리는 저곳은 첼시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공격을 전혀 제어하지 못해서 블랜차드에게 두 번이나 주요 찬스를 허용한 저 수비수 말이다.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Branislav Ivanovic).


한때는 EPL을 대표하는 탑클래스 라이트백이었지만, 올해 들어 급격하게 하락세를 타더니 팬들의 비난 대상으로 전락해 버린 선수.


단단한 체격과 수비력으로 대인 마크에 일가견이 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몸싸움과 스피드 전부 수준 이하로 떨어져 상대 팀 공격수에게 매 경기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팀의 심각한 구멍으로 지목받는 중이다.


그럼에도 무리뉴는 발군의 활약을 했던 이바노비치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는 건지, 최악의 퍼포먼스를 거듭하는데도 꾸역꾸역 기용하고 있었는데.


지금 하는 공격은 그 점을 후벼 파려는 것이다.


이번엔 캐리를 거치지도 않는 브라운 키퍼의 골킥이 좌측으로 날아가고, 블랜차드와 공중볼 경합을 붙은 이바노비치는 과도한 몸동작으로 불필요한 파울을 범하고 만다.


그다지 정교한 킥이 아니었지만, 블랜차드에게 연달아 경합을 패배하면서 부담감이 가중된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던 거였나?”


첼시가 뒤로 물러서면 로스 카운티 선수들의 위치도 바뀐다.


맥긴은 중앙에서 브리튼과 일자 대형을 이루고, 잭 마틴을 대신해 나온 블랜차드는 더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캐리가 좌측 후방에 위치하면서 3-4-3 형태가 만들어진다.


마틴이 선발이었다면 공격수처럼 좀 더 안쪽으로 움직이고, 측면을 월리스가 더 올라가서 채웠을 테지만, 블랜차드는 좌측으로 넓게 퍼져 있다.


이바노비치와 자연스러운 매칭을 이루기 위해서. 블랜차드의 타고난 힘을 이용해 폼이 떨어진 그를 박살 내려는 속셈이다.


그러면 물러서는 상대를 두고 빠른 전개를 하는 것 역시 이해가 된다.


중앙선을 넘어가면서 골문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첼시의 미드진과 수비진의 간격이 좁아지면서 두 줄 수비를 만들기 쉬울 테니까.


“버스 주차를 하기 전에 승부를 보겠다는 거지.”


버스 주차(Parking the bus). 골문 앞에 커다란 버스를 세워 모든 볼을 막아내겠단 의미로 필드 플레이어 열 명이 내려가서 걸어 잠그는 방식.


무리뉴의 특기인 수비 축구, 그 조직이 제대로 형성되기 전에 공격을 가하려는 게 이탈리안의 의도였다.

첼시 2차전.jpg

두 줄 수비가 만들어지면 윌리안이 이바노비치를 도울 수 있게 되고, 협동으로 에워싸는 형태를 만들기 쉬워진다.


블랜차드는 다재다능하지만, 드리블로 다수를 파괴하는 능력은 없다.


그래서 윌리안이 수비 가담을 하러 오기 전에 이바노비치를 온전히 일대일로 상대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드는 게 목적.


볼을 뒤로 빼면서 첼시의 간격이 어느 정도 벌어지길 기다렸다가 블랜차드를 타겟맨 삼아 롱패스를 넣었던 것이다.


골문 앞에 주차하기 전 타이어 한쪽을 터뜨리면 버스는 움직일 수 없으니까.


방금도 이바노비치가 무리하게 앞으로 나와서 처리하려다 헛발질 실수가 나왔고, 맥긴이 잡아채서 블랜차드를 향해 찔러준 패스를 테리의 수비로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수비 축구는 얼핏 보기엔 간단한 전략처럼 보여도 중요한 조건 하나가 성립되어야 한다.


수비진이 기본적인 기량을 갖춰야 한다는 것. 흔들리는 곳이 있으면 전체의 균열로 번지게 된다.


다시 첼시 진영으로 들어가는 캐리의 롱볼. 이번엔 이바노비치가 헤더를 따는 데 성공하지만, 내려와 있던 딩월이 루즈볼을 잡아내고 뒷공간으로 침투하는 블랜차드에게 밀어준다.


테리가 쫓아가 태클로 막아냈지만, 충돌이 거칠었는지 주심이 휘슬을 분다.


아차 하는 표정. 그러나 카드는 꺼내지 않는 주심의 구두 경고에 한시름 놓은 듯한 테리. 경고 누적 퇴장을 당할 수도 있던 장면이었다.


연달아 터지는 위기. 중앙이 불안해서 뒤로 물러섰더니 오히려 더 위태로워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래도 참 놀랍군. 저렇게 대놓고 공략하는데 통한다니.”


마티치를 급습하면 무리뉴는 틀림없이 캐리를 포기하며 후퇴할 테고, 내려앉는 지역 수비로 전환한다. 그러면 여유로워진 캐리의 정교한 킥을 통해 이바노비치 쪽만 집중적으로 두들긴다.


전부 델 레오네의 계산에 들어있었다는 얘긴데.


아무리 폼이 떨어졌다지만, 블랜차드가 그를 완벽하게 짓누를 거라고 감독이 확신했기에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다. 지시 받은 선수는 그걸 또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는 거고.


무리뉴는 이걸 두고만 봐야 한다. 로스 카운티의 패턴은 첼시의 행동으로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캐리에게 달려들면 맥긴과 블랜차드가 또 마티치를 둘러싸겠지. 물러서면 캐리는 계속 이바노비치를 겨냥할 테고. 델 레오네, 정말 미친 인간이군.”


프리먼은 또 한 번 찬사를 내뱉었다.


이제 오스카와 윌리안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월리스와 맥긴이 그들의 발을 묶고 있으니까.


오스카가 압박하러 가면 마티치가 맥긴과 블랜차드를, 윌리안이 압박하러 가면 이바노비치가 월리스와 블랜차드 둘을 상대하게 된다. 가만히 두면 이바노비치가 블랜차드를 잘 막아주길 기도해야만 한다.


이 얼마나 환장할 노릇이란 말인가?


캐리의 위치 변화와 블랜차드의 가세만으로 첼시가 옴짝달싹 못 하는 판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거였나?


더 큰 문제는 블랜차드가 마냥 정적인 스타일도 아니라는 거다.


차라리 우직하게 경합만 해온다면 수비진이 그다음 상황을 예측해서 대비라도 할 수 있겠지만, 저 선수는 눈 깜빡하면 시야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까다로운 움직임의 소유자가 아니던가?


캐리의 패스. 이바노비치와 마티치 사이의 절묘한 틈새를 찾아들어간 블랜차드가 받으며 로빙 패스를 보내고.


낙하점을 잘못 짚은 이바노비치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 볼이 오버래핑하며 내달리는 월리스를 향해 나아간다.


악착같이 쫓아가며 따라붙는 윌리안을 떨쳐내지 못한 월리스의 백패스. 뒤에서 받은 노마크 상태의 캐리가 크게 휘어지는 얼리 크로스를 문전에 붙이고, 딩월의 쇄도를 의식한 베고비치의 펀칭.


오우 -


세컨드 볼을 잡은 블랜차드의 빨랫줄 같은 중거리 슛을 다시 한번 쳐내는 골키퍼의 선방. 홈팬들의 탄식이 경기장을 울린다.


“미스 매치를 넘어서 호러 매치에 가까울 지경이야.”


블랜차드를 전혀 막지 못하고 있다. 이바노비치 쪽에서 몇 번의 사고가 터졌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전반전에 문책성 교체가 나와도 이상할 것 없는 수준.


이대로 가면 첼시는 정말 버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보다 못한 무리뉴가 다시 터치라인으로 나가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결국······ 저렇게까지 하는 건가.”


센터백이던 커트 주마가 측면으로 서둘러 이동한다. 급한 대로 이바노비치와 자리를 바꿀 셈이다.


190cm의 거구인 만큼 블랜차드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은 않을 테니 당장은 최선의 판단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그다음에 터진 장면은 무리뉴도 선수들도, 어쩌면 델 레오네도 예측 못 했을 일이었다.


코스타의 압박을 피해 우측으로 볼을 빼는 캐리. 횡패스를 받은 얀손이 또 한 번 좌측으로 길게 날려 보내고. 블랜차드를 밀어낸 주마가 먼저 끊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마티치를 향해 보내는 엉성한 패스가 앞으로 튀어 나간 맥긴에게 차단되고, 찔러주는 스루패스를 쟁탈하기 위한 두 선수의 속도 경합.


와아아 -


블랜차드와 엉키며 달리던 주마가 발을 헛디디며 바닥에 엎어졌고, 첼시의 측면이 휑하니 뚫리고 만다.


“모, 몸싸움을 이겼어!”


엉거주춤한 자세로 물러서며 시간을 버는 존 테리와 안으로 조금씩 좁히며 슛 각을 보는 제임스 블랜차드.


아니, 슛 각을 보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등 뒤로 돌아 들어가는 움직임에 맞춰서 밀어주는 패스. 테리의 시선을 피해서 잠입에 성공한 맥긴이 측면에서 크로스를 띄워 올린다.


골문으로 쇄도하는 딩월과 톰슨, 그를 막기 위해 바짝 붙은 이바노비치와 아즈필리쿠에타.


그들의 사이로 어느새 침투한 델샤드의 내리꽂는 헤더 슛.


우와아아아 -


곧이어 터진 홈팬들의 거대한 함성은 승부의 추가 드디어 기울어졌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무리뉴의 첼시가 기어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경이로워······. 정말 경이로워.”


프리먼은 이후 말을 더 잇지 못했다.


*******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첼시는 두 명의 교체를 감행했다.


끝내 불려 나오는 이바노비치, 레프트백인 바바 라흐만의 투입. 아즈필리쿠에타를 오른쪽으로 옮겨 블랜차드를 맡기려는 모양이었다.


존 테리는 팀을 위기에서 구하는 좋은 수비를 연달아 보여줬으나, 옐로카드의 부담이 컸는지 게리 케이힐과 교체되었다.


어지간하면 후반전에 바로 칼을 뽑기보다 좀 더 주시하려는 게 무리뉴의 성격인데,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거란 판단을 내린 거다.


심지어 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비수 둘의 교체.


60분에 가서는 오스카마저 불려 나오고 미켈이 투입되면서 파브레가스가 2선으로 올라가 공격의 지휘를 맡았다.


압박이 통하지 않는 이상 오스카의 효용 가치는 떨어진다. 점수를 쫓아가야 하는 첼시로선 1차전 승리의 일등 공신을 빼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로스 카운티는 같은 60분에 맥긴을 불러들이고 잭 마틴을 투입했다.


공격을 나오는 첼시의 뒤를 노리기 위함도 있었지만, 맥긴보다 좀 더 안정성을 갖춘 블랜차드에게 중앙 싸움을 맡기려는 교체였다.


또한 맥긴이 딩월을 활동량 기록에서 조금 앞설 만큼 공수 양면에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느라 많이 지쳐있었기에 휴식을 부여해 준 것이기도 했다.


눈을 뗄 수 없었던 전반전에 비해 후반전은 루즈한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델 레오네가 수비를 강화한 것도 있었지만, 무리뉴가 공격적인 부분에서 이렇다 할 대안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 게 컸다.


그렇게 70분이 넘어갈 즈음.


어김없이 왼쪽에서 패스를 받는 캐리, 순간적으로 달려드는 윌리안.


오오 -


볼을 흘리며 부드럽게 시계방향으로 돌아 압박을 떨쳐내는 캐리의 전진에 한동안 잠잠한 챈트만 울려 퍼지던 햄던 파크가 들썩인다.


치고 나가며 앞으로 주려는 듯 멈칫하다가 갑자기 우측 반대편으로 크게 전환하는 캐리.


예리한 패스를 받은 델샤드가 곧장 볼의 밑을 찍어 올리며 앞으로 넣어주고.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질주하는 앤드류 톰슨과 바바 라흐만.


와아아 -


먼저 볼을 터치하며 치고 나가는 톰슨의 스피드에 열광하는 관중들.


삐이익 -


주심의 휘슬. 이 악물고 쫓아가던 바바 라흐만이 얼떨결에 팔을 잡아채면서 나뒹군 톰슨의 위치가 하필 박스 안이었다.


아즈필리쿠에타를 우측에 두며 수비의 안정을 가져왔지만, 아직 어려서 미숙한 수비수에게 톰슨을 혼자 감당하게 두는 건 가혹한 처사였다.


페널티 키커는 브리튼. 유로파 리그 결승전에서 뼈아픈 실축을 했던 그였지만, 감독은 바꿀 생각이 없는 듯했다.


페널티 스폿에 볼을 내려놓는 그의 눈빛 역시 동요하는 기색은 없었다.


“끝났군.”


프리먼은 베고비치를 피해 오른쪽으로 깔끔하게 굴려 넣은 로스 카운티 주장의 추가 골을 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후반 75분이 되고, 캐리가 대런 케틀웰과 교체되었다.


1차전 당시엔 불명예스럽게 불려 나왔던 그였으나, 오늘은 돋보이는 활약을 하고 팬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었다.


오스카 교체를 끝으로 세 장의 카드를 다 쓴 무리뉴가 변화를 줄 수 있는 건 없었다.


변화를 주지 못하니 흐름을 바꿀 수도 없었다.


딱 한 번. 내내 침묵했었던 아자르가 델샤드를 드리블로 제치고, 얀손까지 속이면서 감아 찬 회심의 슛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우측 골대를 맞고 나가는 불운이 겹치고 말았다.


이후 기회를 더 만들지 못한 첼시는 비효율적인 공격만 반복하다가 순순히 경기 종료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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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2 : 0 첼시 >

아메드 델샤드(28‘)

리차드 브리튼(PK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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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이 되시길 바라며

그 즐거움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계속 써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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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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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203. 공간 싸움 (4) +5 24.04.07 480 36 25쪽
202 202. 공간 싸움 (3) +6 24.03.18 575 35 25쪽
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643 39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1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7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7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3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3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4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6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0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69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1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4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3 42 25쪽
»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6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5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0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8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8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2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69 50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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