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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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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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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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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97. 팀의 완성도

DUMMY

[로스 카운티가 리그 컵을 우승합니다! 이로써 델 레오네 감독은 부임한 뒤 삼 년 연속으로 빠짐없이 트로피를 거머쥐는 경이로운 성과를 거둡니다!]


샌더스의 결승 골로 경기가 종료되며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해설자는 준비해 뒀던 멘트를 꺼냈다.


2013/14 시즌 스코티시 컵 우승.

2014/15 시즌 프리미어십 & 유로파 리그를 석권한 더블 크라운.

2015/16 시즌 리그 컵 우승.


중요한 건 시즌은 끝나지 않았으며 아직 모든 대회에서 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존 주전들에게 충분히 쉴 시간을 주면서 후보 선수들 위주로 꾸린 스쿼드로 우승까지 이뤄내다니요. 참 이걸 강심장이라 해야 할지, 관리에 통달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해설자들의 찬사 속에서 거행되는 우승 셀레브레이션. 햄던 파크 스탠드에 비치된 로얄 박스로 올라온 선수들. 대기하고 있던 리그 협회장이 차례대로 목에 메달을 걸어주고, 트로피를 전해준다.


교체로 들어와 블랜차드에게 주장 완장을 넘겨받았던 잭 마틴이 처음으로 컵을 들어 올렸고,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오는 함성.


하나둘씩 전달받아 높이 들어 올릴 때마다 리듬을 타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호응하는 관중들. 그중 가장 높은 데시벨을 기록한 건 단연 샌더스였다.


팬들도 오늘 그가 우승의 주역이란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골을 넣고 포효할 때도 잘 참았던 샌더스였지만, 끝내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자제할 수 없었다.


그렇게 셀레브레이션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믿기지 않아요! 내 손으로 그걸 들어 올렸는데도 꿈만 같아요! 제 커리어에서 우승이란 걸 경험하려면 정말 한참 나중의 일이라고만 여겼는데! 당연히 로스 카운티에 소속되면 우승은 언젠가 했겠지만. 아니, 끝내 여기서 프로 데뷔를 하기는 어려울 거란 생각도 했었는데! 리그 컵 우승이라니! 그것도 제가 주전으로 뛰면서 직접 이뤄낸 거라니요!”


“어? 어······ 그, 그래. 축하해.”


딩월은 생클랜드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다가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어린 선수가 여전히 긴장해서 움츠러들어 있는 것 같아 다가갔는데, 갑자기 따발총처럼 쏟아내는 소감. 평소의 딩월 그 자체였지만, 그런 자기 모습을 보는 건 본인으로서도 처음이었다.


“왕성하게 뛰어다니는 스타일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닮았다고? 그냥 조용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


“정신없는 수다쟁이가 하나 더 늘어난 기분인데.”


그걸 본 브리튼과 보이드는 그렇게 중얼거렸고, 멀리서 수석 코치와 나란히 선 감독은 좀 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닐, 이 순간을 잘 지켜보게. 저들이 곧 미래니까. 모든 게 계속 그대로일 수는 없는 법이야. 영광을 이어가려면 미래를 항상 들여다보고 있어야 해.”


“예. 명심하겠습니다.”


이후 경기장을 나와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짤막한 인터뷰를 진행했고, 거기서 이탈리안이 가볍게 던진 말은 한 선수가 평생 잊지 못할 그런 멘트가 되었다.


“우리의 전방에는 블랜차드, 후방엔 샌더스가 있습니다. 이것이 로스 카운티가 꾸준하게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일 수 있는 이유입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또 하나의 대형 이벤트, 파리 생제르맹과의 2차전. 오직 그것만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던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경기 전날을 앞두고 프랑스에서 델 레오네는 여느 때처럼 깔끔한 컨퍼런스를 마쳤고, 즐라탄이 꺼냈던 사자 발언에 관해 미소를 지으며 재치 있는 답변을 남기기도 했다.


“글쎄요. 저는 사자가 아니라 사람이긴 합니다만.”


어느덧 8강의 운명을 결정짓는 경기가 코앞으로 다가오는 중이었다.



[ Scottish Sports ] 델 레오네 “모든 준비는 완벽.”


[ Le Parisien ] 파리 생제르맹, 최정예 출격 완료


[ The Scotsman ] 프랑스 원정을 간 숫사슴들은 즐라탄의 인터뷰에 대응하기 위해 경기장에서 레오의 이름을 열창할 예정


[ L'Equipe ] 로랑 블랑의 거취는 이번 경기로 결정될 것


[ Le 10sport ] 파리 생제르맹은 스코티시 스타 블랜차드를 영입할 가치가 있는지 테스트할 생각



챔피언스 리그 16강이라는 이름값은 생각 이상으로 거대하다.


유로파 리그가 로스 카운티에 있어 대단하긴 했어도, 최고 레벨 무대의 하위 단계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건 정말로 제대로 된 16강. 전 유럽의 무수한 클럽들을 대표하는 열여섯 개의 팀 중 하나에 속했다는 의미다.


수년간 16강은 고사하고 예선 문턱도 넘기 버거웠던 역사를 겪어본 스코틀랜드 국민이 어찌 열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카운티 신드롬은 점차 사그라든다 싶으면 다시 불을 지피는 흐름의 반복이었다. 적어도 챔피언스 리그에 잔류하는 한 그 열기는 계속될 것이다.


유럽 대항전에 출전하는 로스 카운티는 이미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니까.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거리의 풍경이었다.


작년 드니프로전을 시작으로 세비야와의 결승전까지. 하일랜드 시청은 메리버그 쪽 공터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여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주었었다.


그리고 1차전의 성과를 보고서 이번에도 그런 화합의 장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것도 두 군데나.


저번에 예상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그 행렬이 다른 지역까지 밀려났던 걸 고려한 결정이었다.


두 번째 지점이 될 하이 스트리트, 이 거리의 광장은 메리버그 쪽처럼 의자 같은 시설이 제대로 배치되긴 어려운 구조였지만, 스크린만 설치해 줘도 사람들은 만족할 수 있었다.


일일이 TV가 있는 가게에 들어가서 봐야 했던 때에 비하면 훨씬 나으니까. 서서 보더라도 맥주 한잔을 손에 쥐면서 경기를 즐기면 충분한 것이다.


조지 맥도넬의 펍이 아침부터 분주한 까닭이기도 했다. 이전에는 워낙 경황이 없어 생각을 못 했지만, 이제 적극적으로 동참할 여유가 있었다.


그는 펍 앞의 마당에 가벼운 테이블을 하나 차리고는 맥주 제조기와 큰 종이컵을 쌓아두었다.


“자, 오늘 한정으로 싼값에 맥주 한 컵 나눠드립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빨리 줄 서세요!”


호객 전담은 케니 풀러, 맥주를 뽑아 나눠주는 건 해리 윌슨. 그의 친구들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주인장은 그동안 맥주가 떨어지지 않게 꾸준히 공급하고 간단한 안주를 만들어 제공하는 일을 병행할 것이고 말이다.


장사치로서 수익을 벌어들이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그저 팬으로서 이 즐거움을 나누고 싶을 뿐이었다.


“케니, 해리. 오늘은 우리도 조그마한 TV 대신 저 커다란 화면으로 사람들과 어울려보자고.”


맥도넬을 비롯해 딩월시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완벽하게 즐길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


< 15-16 UEFA Champions League Round of 16, 2차전 >

파리 생제르맹 FC : 로스 카운티

2016년 3월 15일 (화) 19:45

파르크 데 프랭스 (관중 수 : 47,356명)



[파리 생제르맹 / 4-1-2-3]

FW : 에딘손 카바니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 앙헬 디 마리아

MF : 블레즈 마튀디 / 마르코 베라티

DM : 티아고 모타

DF : 막스웰 / 다비드 루이스 / 치아구 시우바 / 마르퀴뇨스

GK : 케빈 트랍


[로스 카운티 / 4-1-2-3]

FW : 제임스 블랜차드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존 맥긴 / 리차드 브리튼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대니 패터슨 / 폰투스 얀손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참 재밌는 상황이네.”


십여 분 정도를 관전한 존 프리먼의 감상이었다.


“분명 겉보기에는 파리 쪽이 좀 더 우세였는데.”


최정예, 말 그대로 베스트 일레븐을 꺼내든 파리 생제르맹. 프랑스를 초토화 시킨 공격진과 유럽을 통틀어 상위권에 견줄 만한 미드필더 삼각편대.


이들이 전부 출격한다면 로스 카운티도 쉽게 경기를 풀어갈 수 없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프리먼도 그 생각에는 동의하는 편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반대였지만.


홈 어드밴티지와 우세한 전력 차. 모든 부분에서 유리함을 가져왔음에도 흐름은 파리 생제르맹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원정팀이 안정적인 운영을 하고, 홈팀은 어딘가 꽉 막힌 듯한 답답함이 지속되는 양상이다.


그 속에서 프리먼은 문득 느꼈다. 두 팀이 꽤나 비슷한 구조란 사실을.


유사한 포메이션. 빌드업 능력이 되는 원 볼란테를 두고 좌우에 메짤라를 내세우는 전형. 레프트백을 과감히 올리면서 라이트백으로 밸런스를 조절하는 것까지.


심지어 왼쪽 메짤라의 맥긴과 마튀디가 측면을 오르내리며 공수에 기여한다는 부분마저 닮았다.


그래서 더 이상한 상황이긴 하다. 비슷한 구조에 다른 전력 차라면 파리 생제르맹이 밀어붙이고 있어야 하는 게 상식인데.


“······측면 활용을 안 하나?”


프리먼은 세부적인 요소에서 근거 하나를 찾아냈다.


중앙, 오로지 중앙. 집착에 가까운 중앙 지향적 플레이. 상대가 수비를 두텁게 쌓든 말든 무조건 가운데로 전개하는 게 답답함의 요인인 듯했다.


볼 키핑이 되는 즐라탄과 베라티를 보유했으니 그들 중심으로 풀어가고 싶은 건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이건 측면을 아예 내다 버린 수준이다.


풀백이 열심히 오버래핑하고 있으나 실속은 없는 움직임. 패스 길목이 끊긴, 패스가 불가능한 곳으로 올라가 고립을 자처하고 있다.


반대로 로스 카운티의 수비 방식은 중앙 밀집형. 그들은 간격을 좁혀 틈새를 막아두고, 차라리 측면을 열어주는 걸 선호한다.


왜냐하면 백포 전원이 180cm 이상의 장신으로 구성되어 제공권만큼은 쉽게 밀리지 않는 팀이니까. 어지간해선 크로스로 실점 당하지 않으리란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저렇게 열린 측면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않고 중앙으로 들어가려고만 하면 로스 카운티로선 그저 고마울 수밖에.


한마디로 파리 생제르맹의 공격 패턴은 완벽히 카운터 당한다.


“측면을 저렇게나 활용하지 않다니······.”


현대 축구에서 측면은 압박을 해체할 수 있는 중요한 영역이다. 상대 수비 하나를 터치라인 부근까지 끌어당기고 벌어지는 틈새를 공략하는 것이 요새는 기본 교범처럼 퍼져 있다.


그런데 저건 대체 무슨 축구인가? 풀백과 미드필더가 삼각형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패턴 플레이를 할 생각도 없이 각자 따로 논다는 느낌만 들뿐.


저쪽 풀백이 패스를 받는 경우는 단 하나다. 간신히 로스 카운티 진영까지 도달했을 때 건네받는 정도. 이미 수비 진형이 다 갖춰져 있어 아무것도 못 하고 다시 볼을 돌리는 선택지밖에 없다.


점유율은 60 : 40으로 파리 생제르맹이 우세하지만, 백패스가 과반수인 시점에서 무의미한 지표다. 정작 골문을 위협한 슈팅 개수는 뒤처지고 있다.


견제를 버티면서 줄 곳을 찾다가 뒤로 빼는 즐라탄. 베라티는 나름대로 분투하고 있지만, 한 명을 가까스로 제쳐도 다른 한 명에게 가로막혀 결국 안전한 곳으로 볼을 빼돌리고 만다.


아래까지 내려온 카바니가 로스 카운티의 볼을 끊어내면서 좋은 역습 찬스가 만들어졌지만, 또 중앙을 통해 들어가려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후방에서 쓸데없는 티키타카만 이루어진다.


이런 식으로 중앙을 무리해서 들어가다가 압박에 포위되는 상황만 연속으로 나온다.


마튀디 쪽도 그렇다. 측면으로 빠지는 움직임이 체계적이라기보다 단순히 공간이 생기면 뛰어 들어가는 식. 막스웰과 협력하여 풀어나가는 빈도는 낮고, 공간이 없으면 중앙의 압박 속으로 들어가 버리니 공격이 될 턱이 없다.


그조차도 로스 카운티는 브리튼과 딩월로 하여금 마튀디의 움직임에 따라 대처할 수 있는 구조를 세워 놨다.


반면 파리 생제르맹은 똑같이 측면으로 빠져들어 가는 맥긴을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변칙적인 패턴의 움직임과 주변 팀원들이 조밀하게 모여서 활발히 연계해 준다는 차이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언뜻 시스템이 같아 보여도 디테일 부분이 갈리면서 이렇게 된 거다.


무리하게 전진하다가 기어이 뺏기는 마튀디. 볼을 가져온 브리튼이 뒤쪽으로 빼면서 수비진이 패스를 돌린다.


잠시 템포를 조절하는 듯했으나, 어느새 좌측 스토퍼 자리로 내려온 알렉산더 캐리. 직선으로 찔러준 패스가 베라티를 달고 내려오는 맥긴에게 향한다.


와아아 -


반시계 방향으로 급전환하며 떨쳐내는 맥긴의 턴에 폭발하는 환호. 베라티가 황급히 유니폼 자락을 잡고 늘어지지만, 균형을 잃어 쓰러지는 와중에도 측면을 내달리는 월리스에게 스루패스를 성공한다.


박스 외곽 부근까지 도달한 월리스와 그 볼을 차단하려 달려드는 마르퀴뇨스. 쟁탈전에서 승리한 월리스가 한 박자 빠르게 볼을 건드리며 중앙으로 컷백 패스를 내주었고.


그 뒤쪽에서 받은 건 벌써 슛 동작을 가져가고 있는 제임스 블랜차드.


“허.”


프리먼과 관중들은 물론이고 그 노련한 베테랑 치아구 시우바마저 속아 넘어간 동작이었다.


슛하는 척 오른쪽으로 빼주는 패스에 시선을 전부 뺏겼던 수비진은 박스에 진입한 톰슨이 노마크인 걸 너무 뒤늦게 눈치챘다.


우측 니어 포스트, 트랍 키퍼가 막아선 그 좁은 틈새로 넣는 데 성공하는 앤드류 톰슨. 로스 카운티의 선제골이었다.


“왜 백스리로 나왔던 건지 이해가 좀 되네.”


블랑도 알고 있었다. 그의 주력이라 할 수 있는 4-3-3 체제, 로스 카운티의 특성과 맞물려 취약점을 드러낼 시스템이라는 걸.


알고는 있으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답은 찾지 못한 거다. 고뇌 끝에 백스리라는 자충수가 나온 배경임이 분명했다.


“이런 말을 하는 게 나도 어이없지만······ 우리가 한 수 위인 것 같아.”


오일 머니로 초호화 군단을 갖춘 그 파리 생제르맹인데. 선수단 몸값을 따지면 천문학적인 가치로 비교조차 불가능한 그들인데. 원정에서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이는 건 로스 카운티라니.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부드럽게 움직이는 패스 플레이, 급소를 찌르듯 매섭게 들어가는 공격. 마땅히 파리 생제르맹이 보여줘야 할 것들이다.


막말로 로스 카운티에 축구 레슨을 시켜줘도 이상할 게 없는 팀이 도리어 축구 레슨을 받고 있는 꼴이다. 이 얼마나 우스운가?



후반전에 들어서도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중앙만 꾸역꾸역 공략하려는 홈팀과 압박으로 볼을 탈취한 뒤 매서운 속공을 노리는 원정팀. 점수를 앞서고 있기에 급할 것도 없었다.


“이쯤 되면 측면 활용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게 아닌지······.”


아무리 비집고 들어가려 해도 통하지 않으니 급기야는 롱볼로 중앙에 욱여넣는 시도를 하기에 이른다.


“어?”


느닷없이 몸싸움에서 밀리며 앞으로 엎어지는 얀손. 즐라탄이 가슴으로 볼을 받아 돌아서며 박스에 진입한다.


뜻밖의 위기. 달려드는 패터슨의 태클을 옆으로 부드럽게 피하면서 구석으로 밀어 넣는 슛은 세계적인 공격수의 남다른 클래스를 보는 듯했다.


“오히려 저러니까 통하네.”


그리고 오 분도 채 되지 않아.


삐익 -


주심이 휘슬을 불며 로스 카운티의 페널티 스폿을 가리킨다.


또다시 올린 롱패스 이후 세컨드 볼 싸움이 벌어졌고, 빠르게 올라와 낚아챈 베라티가 안으로 넣어준 예리한 패스. 얀손과 즐라탄이 엉킨 과정에서 무리하게 뺏으려다 발을 건드려 파울을 범한 상황이었다.


허탈한 웃음을 짓는 얀손과 근엄한 얼굴로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즐라탄.


“아까 실점으로 부담감이 컸나?”


이어진 페널티 킥도 깔끔하게 좌측 하단 구석에 꽂아 넣었고, 양 팀의 총 스코어가 3 : 3이 되면서 눈 깜짝할 새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간다. 어렵게 중앙으로 자잘하게 들어가는 것보다 저렇게 선이 굵은 축구가 더 나아 보일 지경.


단순하게 들어가는 공격으로도 수비를 흔들고 골을 넣는다. 그런 능력을 갖춘 선수들을 보유한 팀. 그게 파리 생제르맹의 무서움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프리먼은 로스 카운티가 더 낫다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모타의 롱패스 한 번과 베라티의 공간 패스 한 번으로 즐라탄의 쇼가 몇 분간 펼쳐지긴 했으나, 여전히 흐름을 잡고 있는 건 이쪽.


상대는 순전히 개인 능력에 의존하여 넣은 골이고, 그것마저 얀손의 치명적인 실수로 만들어진 요행에 가깝다.


“만일 이런 식으로 진다면 좀 기분이 나쁠 수도 있겠지만.”


프리먼은 신기하리만큼 질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도 이대로 끝나면 패배가 아니라 연장전에 돌입하겠지만, 그 전에 다시 점수를 뒤집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선수의 클래스? 물론 파리 생제르맹이 우위다. 하지만 감독의 클래스로 따지면 블랑에게 밀린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심지어 작년에 비하면 선수단도 마냥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느낌 또한 들지 않는다.


자신이 아는 안토니오 델 레오네라면 그는 이런 요행에 무너져 내릴 인물이 아니다.


즐라탄의 두 골은 저 쪽에게 잠시 호흡기를 달아준 것일 뿐.



후반 65분.


홈팀을 그들 진영까지 몰아넣고 연거푸 두드리는 상황.


“이것부터 사실 대단한 거라고.”


파리가 점수를 앞서면서 내려앉은 것도 있겠으나, 저런 팀을 상대로 더 나은 경기력을 발휘하여 지공 플레이를 펼치는 것부터 놀라운 일이다.


“이제 결과만 내면 돼, 카운티.”


아크 서클 부근에서 밀집된 수비 블록을 뚫어보려다가 여의치 않는지 백패스를 돌리는 블랜차드.


뒤쪽에 대기하던 캐리가 곧장 좌측으로 패스를 넘겨주고 월리스가 안정적으로 뛰어오르며 발등으로 받아 낸다. 이 팀은 측면을 써서 수비를 유인하는 기본기가 몸에 배어 있다.


월리스를 저지하기 위해 붙어오는 마르퀴뇨스. 그리고 순간 옆으로 볼을 내주며 달리는 월리스. 맥긴이 리턴 패스를 받기 좋게 앞으로 찔러준다.


마르퀴뇨스를 사이에 두고 이뤄진 빠른 원투 패스. 마크를 따돌린 월리스가 박스에 진입했고, 치아구 시우바가 달라붙기 전에 원터치로 컷백을 내준다.


마찬가지로 안에 들어와 다시 볼을 받은 맥긴. 골문을 직접 겨냥하는 듯하다가 왼발을 틀어 가볍게 찍어 넘기는 크로스.


볼은 슛 각을 좁히려 맥긴 쪽으로 쏠린 골키퍼를 지나고, 다비드 루이스와 티아고 모타가 동시에 볼을 클리어하기 위해 점프한다.


그 순간, 미사일처럼 나타난 제임스 블랜차드가 그 둘보다 한 뼘 더 높이 솟아올라 이마로 찍어 내리며 골망을 흔들었다.


“나이스!”


크게 충돌하며 나동그라지는 모타와 다비드 루이스. 블랜차드는 착지하여 잠시 휘청거리다가 골대를 잡고 중심을 잡더니, 볼을 주워들어 하늘 높이 차올린다. 충격을 받기는커녕 멀쩡한 모습이다.


“정말 대단한 존재감이야. 저 탑클래스 수비수들 사이에서 힘으로 들어가 헤더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가 얼마나 있을까?”


게다가 방금도 맥긴을 확실히 제어하지 못하면서 벌어진 사달이다. 내내 저곳을 제대로 대응 못하고 있으니, 걱정이 들 수가 없다.



파워풀한 퍼포먼스로 더욱 과열된 필드.


중앙에서 팽팽한 주도권 다툼이 벌어졌고, 브리튼과 교체하여 들어온 라이언 잭이 볼 경합 도중 길게 앞으로 걷어내듯 차면서 파리 생제르맹 좌측 진영으로 굴러간다.


주인이 없는 볼을 회수하러 움직이는 막스웰. 로스 카운티는 숨을 돌리며 잠시 전열을 가다듬고, 파리 생제르맹은 천천히 다시 빌드업을 작업해 나갈 타이밍.


평범한 흐름이었다면 그랬을 터다.


우와아아아 -


잭이 볼을 앞으로 차낸 즉시, 볼을 가지러 가는 막스웰보다 먼저 발을 떼며 쏜살같이 달려가는 두 명.


딩월과 톰슨이 전력 질주하며 볼을 추격하는 모습에 열광하는 스탠드. 프리먼도 흥분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달려라!”


그 함성 덕분에 막스웰도 빠르게 눈치챌 수 있었지만, 이미 돌아봤을 때는 등 뒤로 바짝 따라붙은 상황.


당황한 나머지 힐킥으로 쫓아오는 추격자의 몸에 맞혀 터치라인 밖으로 내보낼 심산이었으나.


막스웰의 발꿈치가 볼에 닿기 직전에 딩월의 발이 들어가 맞받아친다.


무게 중심을 잃고 앞으로 쏠리는 막스웰, 충돌하여 같이 고꾸라지는 딩월. 그리고 둘의 사투 끝에 나가지 않은 볼을 잡아채며 치고 나가는 톰슨.


“달려!”


엉거주춤 자리를 잡고 선 다비드 루이스를 한발 빠르게 제쳐내고 문전에 가까이 붙이는 땅볼 크로스.


철썩 -


살짝 회전을 먹인 볼이 수비진과 키퍼를 지나치고, 좌측에서 쇄도해 들어온 맥긴이 슬라이딩 태클을 하듯 미끄러지며 발바닥으로 밀어 넣는다.


“그렇지이이!”


벌떡 일어나 주먹을 꽉 쥔 채 양팔을 활짝 벌리며 내달리는 맥긴. 다시 앞으로 엎어지더니 잔디 위로 슬라이딩하며 끓어오르는 감정을 표출한다. 열정이 흘러넘치는 셀레브레이션에 프리먼도 동화되는 기분이었다.


“이게 로스 카운티라고! 파리 생제르맹도 안 돼!”


기어코 해낸 재역전. 블랜차드의 골만으로도 로스 카운티가 올라갈 수 있었겠지만, 끝내 비기는 것도 허용할 수 없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불굴의 전사 하일랜더들은 그저 승리를 갈구할 뿐이다.


예상대로다. 잠시나마 희망을 던져준 즐라탄의 두 골. 그러나 결국 팀의 완성도가 다르다는 걸 로스 카운티가 입증해 냈다.


“왜 블랑이 일찌감치 리그 1위를 굳혀놔도 계속 비판을 받는지 알 것 같아.”


프랑스 현지에서 가끔 나오는 얘기가 있다.


파리 생제르맹이 유럽 대항전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는 건 지나치게 리그 스타일에만 물들어서라고.


프랑스에서는 일관된 시스템과 패턴을 고집해도 당해낼 팀이 없다. 대부분 체급이 한참 아래이기 때문에 수비 숫자를 최소화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도 리스크가 없는 수준이다.


공격진만 봐도 알 수 있다. 볼 소유권을 넘겨주면 수비 가담을 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제대로 장착되지 않았다.


선제골 당시. 마튀디가 볼을 뺏긴 뒤에 수비진이 볼을 돌릴 때부터 행해졌어야 할 압박이 잘되지 않았고, 디 마리아는 캐리에게 확실히 붙든가, 월리스를 쫓든가 한 가지를 확실하게 선택했어야 했다.


로스 카운티 특유의 변칙적 빌드업이 통했다고 볼 수도 있으나, 그 전에 공격진이 어정쩡한 움직임을 가져가면서 전개를 허용한 문제가 크다.


재역전 골. 정신적으로 지쳐가는 시간에 딩월과 톰슨처럼 매섭게 압박하는 걸 파리 생제르맹은 할 수 있나? 아니, 못 한다. 더 높은 클래스에 위치한 팀인데도 말이다.


어쩌면 저들의 고질적 문제는 셀틱과 비슷하다. 절대강자로서 약자를 짓밟는 것에만 익숙해진 탓에 유럽 밖에서 만만치 않은 팀을 만났을 때의 매뉴얼이 부족한 셈이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똑같이 스코틀랜드에서 모든 상대를 깨부수며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는 로스 카운티는 왜 학살하는 리그 스타일에 물들지 않았냐고.


그걸 선수단에게 일깨우고 조절하는 것이 바로 감독이 할 일이다.


선수가 못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디 마리아와 카바니는 활동량과 수비 가담이 강점인 편. 다만 그 특성과 별개로 효율적인 압박 대형을 짜는 건 팀 단위로 이루어져야 한다.


감독이 손 놓고 있으면 대개 불협화음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일 서로 팀을 바꿔서 델 레오네가 저 파리 생제르맹의 스쿼드를 손에 쥔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프리먼은 그 정도로 확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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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생제르맹 FC 2 : 3 로스 카운티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58‘, PK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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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톰슨(26‘)

제임스 블랜차드(74‘)

존 맥긴(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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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합 성적 >

1차전

로스 카운티 2 : 1 파리 생제르맹 FC


2차전

파리 생제르맹 FC 2 : 3 로스 카운티


총합 스코어

로스 카운티(W) 5 : 3 파리 생제르맹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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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 하는 일 다 잘 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kkatnip 님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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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644 39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1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8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4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9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5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4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5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9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8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2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71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3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6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5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7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6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2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8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9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3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70 50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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