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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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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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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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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23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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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쪽

196. 신뢰의 결실

DUMMY

[ Scottish Sports ] 리그에 이어 컵 대회에서 붙게 된 마더웰과의 2연전


[ The Scotsman ] 또 8강에서 로스 카운티와 마주친 마더웰


[ Football Focus ] 마더웰은 이번에 탈락할 경우, 로스 카운티에 의해 8강을 세 번 연속 탈락하는 팀이 된다



< 15-16 Scottish Cup Quarterfinals >

로스 카운티 : 마더웰

2016년 3월 5일 (토) 15:00

햄던 파크 (관중 수 : 38,958명)



[로스 카운티 / 4-2-3-1]

FW : 리암 보이스

AM : 잭 마틴 / 제임스 블랜차드 / 필립 로스

CM : 라이언 잭 / 데미안 생클랜드

DF : 고든 스미스 / 대니 패터슨 / 스티븐 샌더스 / 딜런 갈브레이스

GK : 데이비드 밀스



“으으, 도대체 뭐가 문제야?”


마더웰 감독 빌 매칼리스터(Bill McAllister)는 앓는 소리를 내며 아랫입술을 씹었다.


멋대로 떠들어대는 망할 놈의 언론들. 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가용할 수 있는 최고의 전력을 내세웠다.


괘씸해서라도 그 얌체들의 입을 싹 다물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충분히 승산 있는 판이기도 했다.


상대 라인업 꼬락서니를 보라. 주전이 대거 빠져서 진짜 로스 카운티라고 보기에도 어려운 수준인데. 저걸 못 이긴다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 안 돼야 하는데······.”


매칼리스터는 이제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블랜차드의 스루패스에 뒤가 무너져 잭 마틴에게 한 골, 박스 외곽에서 짧게 찍어 올린 로스의 크로스를 헤더로 받아 넣은 보이스의 한 골.


이미 두 골을 내주고 후반전에 들어간 상태다.


로스 카운티가 매번 컵 대회에서 힘을 빼고 나오는 건 꽤 유명해진 사실. 전임자 이안 바라클로가 그런 반쪽짜리 상대에게 8강을 연달아 탈락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한심한 일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 전임자보다 딱히 나을 것도 없는 성적을 거두고 있는 데다 로스 카운티에 제대로 된 저항을 해본 적조차 없다.


작년에 5 : 3으로 대역전극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부분 또한 저번에 6 : 3을 내주며 역전당한 본인이 할 말은 없었다.


막상 부딪쳐보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굴욕적이지만, 전임자가 왜 그랬었는지를 말이다.


이것마저 진다면 분명 손가락질당할 텐데,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데.


‘어떻게 이겨야 하지?’


매칼리스터의 심정이었다.


그리고 아까 전부터 계속 골칫덩이다.


평소 리그에선 출전이 뜸해도 토너먼트는 꼬박꼬박 나오고 있는, 또한 이 무대에서 유난히 활약이 돋보이는.


리그 컵 득점왕이 유력하며, 스코티시 컵마저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는 선수. 적어도 자국 토너먼트 한정으로는 잭 마틴보다 더 치명적인 킬러이자 어느 누구보다 무서운 존재.


리암 보이스, 저 선수를 막을 재간이 없다.


“왜 주전이 아닌지 의문이 들 정도인데······.”


샌더스의 롱패스가 중앙선을 넘어 마더웰의 골문 앞까지 떨어졌고, 박스 안으로 진입한 블랜차드가 수비를 등진 채 먼저 볼을 받아낸다.


받자마자 원터치로 내주는 백패스. 뒤쪽에 대기하고 있던 보이스가 자세를 잡더니 힘차게 슛을 날렸고, 직선으로 뻗어간 볼이 우측 하단 구석으로 빨려 들어간다.


“저놈은 뭐냐고!”


참지 못해 울분을 터뜨린 매칼리스터였지만, 좌절할 새는 없었다.


보이스가 그중에 제일 무섭다는 것이지, 그 하나만 위협적인 건 아니었다.


볼을 도중에 뺏기며 당한 역습. 라이언 잭이 찔러준 것은 스루패스도 아닌 단순한 전진 패스에 불과했고, 수비 네 명이 후방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위험하지는 않았던 상황.


그러나 볼을 받는 게 제임스 블랜차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각선으로 들어온 패스를 오른발 인사이드로 터치하며 붙어오는 수비의 다리 사이로 볼을 빼내더니, 아크 서클 부근에서 그대로 깔아 찬 왼발 슛. 두 명이 버티고 선 틈새를 뚫고 나가며 이번엔 좌측 하단 구석으로 들어간다.


제대로 갖춘 수비 진형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장면이었다.


“크아악! 또 졌어! 왜 지는 거야! 왜! 왜애애!”


매칼리스터는 끝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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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4 : 1 마더웰 >

잭 마틴(19‘)

리암 보이스(57‘, 63‘)

제임스 블랜차드(76‘)

+++++++++++++++++++++++++++++

매튜 쿠퍼(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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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ily Mirror ] 8강에서 좌절, 막힌 상대는 또 로스 카운티


[ Daily Mail ] 이길 수 있는 판을 엎어버린 마더웰의 한심한 경기 운영


[ Football Inside ] 핵심 주전이 빠져도 왜 로스 카운티는 강할까?


[ Daily Telegraph ] 888의 징크스, 마더웰의 넘을 수 없는 벽?


[ Scottish Sports ] 자국 두 개 대회 합쳐서 6경기 11골, 컵의 사나이 리암 보이스



역시나 대부분 언론의 화살은 마더웰에 쏟아졌다.


비판을 받아도 어쩔 수 없는 성적이기도 했다.


2014-15 League Cup Quarterfinals 탈락

2014-15 Scottish Cup Quarterfinals 탈락

2015-16 Scottish Cup Quarterfinals 탈락


아무리 로스 카운티라 해도 세 번을 연달아 한 팀에 의해 탈락한다는 건 팬으로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유럽에서 맹위를 떨치는 중인 그 라인업이 나왔다면 핑곗거리라도 있겠으나, 힘을 빼고 나온 상대에게 삼 연속으로 당한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연패의 시작은 전임자로부터 비롯되었으니 당장 경질당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매칼리스터에게도 방금 노란불 하나가 켜졌을 것임이 분명했다.


마더웰의 최근 행보로 보아 빨간불은 시간문제. 이탈리안의 손에서 또 한 명의 실직자가 추가될 예정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이 남자는 매칼리스터를 포함한 수많은 희생자와 완벽히 대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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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 Scottish Premiership 31 Round

< 로스 카운티 0 : 0 세인트 존스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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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겼습니다! 세인트 존스톤, 대단한데요?]


[라이언 고드프리 감독, 또 챔피언 로스 카운티와 승점을 나눠 가지네요! 후반의 끈끈한 수비가 정말 돋보였어요!]


일정이 비교적 편했던 세인트 존스톤과 달리, 로스 카운티는 계속 한 주에 두 번 경기를 치르는 살벌한 일정을 소화하긴 했다.


물론 델 레오네가 후보들을 활용하면서 선수들의 체력 관리를 철저히 해줬기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거라 보긴 어렵다. 결과적으로 그냥 세인트 존스톤이 잘한 판이었다.


더군다나 그들 또한 주축 몇몇이 부상으로 나오지 못하는 상태에서 거둔 무승부였기에 더 높이 평가할 만했다.


특히 후반전에 들어온 제임스 블랜차드를 끝까지 틀어막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막판에 블랜차드를 향한 크로스를 먼저 뛰어올라 차단하는 수비의 활약은 정말로 인상 깊었다.


그간 패배 하나 없이 승점을 착실히 쌓아온 로스 카운티였기에 치명적인 결과까진 아니었지만, 이제 모두의 머릿속에 저 이름이 각인되고 있었다.


라이언 고드프리. 안토니오 델 레오네를 상대로 세 번이나, 아니 작년 후반기에 부임한 뒤로 아직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남자.


반대로 델 레오네 또한 진 적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래서인지 더 흥미로운 적수로 두드러지는 중이었다.


한때 잠시나마 델 레오네의 천적으로 불렸던 스티브 클라크는 상대 전적이 뒤집히고 기어이 경질되면서 대립 구도의 끝을 맺었다.


세인트 존스톤은 당시 인버네스 CT보다도 떨어지는 레벨의 팀. 그런 상태로 전력 누수가 없는, 또한 올해 완전체로 거듭난 로스 카운티와 비긴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프리미어십에서 델 레오네와 지략 대결을 펼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인 것 같아요. 블랜차드가 투입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공격수를 빼고 미드필더를 넣으면서 포메이션을 변경하는 거 보고, 보통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 변화에 즉각 대응할 줄 아는 거죠” - 스코티시 스포츠 해설자 ‘롭 맥케나(Rob McKenna)’ -


이탈리안이 초장부터 그를 경계했던 이유가 서서히 밝혀지는 중이었다.



[ Daily Mirror ] 고드프리, 델 레오네를 향한 스코틀랜드의 대답?



클라크가 쓰러지고 난 뒤 로스 카운티와 갈등을 빚어줄 만한 대상이 사라진 걸 아쉬워했던 언론들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두 팀은 딱히 라이벌리 관계로서 접점이 없었음에도 감독 하나의 존재가 서로 간에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일단은 접어두고, 곧 다음 대결에 모두 이목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그들도 건재하기 때문이다.



[ Scottish Sports ] 올 시즌 세 번째 언코 펌, 리그 컵 결승에서


[ Dingwall Football Press ] 놀랍게도 델 레오네 체제에서 리그 컵 결승은 처음


[ Daily Mail ] 셀틱은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



리그 컵 결승전. 전 시즌, 이 대회 챔피언이었던 셀틱과 첫 결승전 무대에 올라온 로스 카운티의 맞대결.


프리미어십에서는 처참하게 밀렸던 셀틱이어도 다른 환경의 대회인 만큼 경험과 동기부여가 다를 테니, 흥미진진한 흐름이 될 거라 기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거기에다 하나의 작은 해프닝 또한 경기 전 분위기를 달구는 요소가 됐는데, 리그 컵의 준결승전과 결승전을 햄던 파크에서 하는 것에 관해 셀틱 감독이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이었다.


“왜 중요한 단판 승부를 로스 카운티의 홈에서 해야 하는 거죠? 그들이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어쨌건 햄던 파크가 올해 홈으로 지정됐으면 바꿔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별말 없이 진행했던 던디 유나이티드의 피터 휴스턴과 다르게, 마틴 오닐은 이 부분을 쉬이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트로피가 걸려 있으니 사소한 요소도 다 따져보려는 속셈이었다.


그래도 일 리가 있어 스코티시 리그 사무국에서도 그 의견을 받아들였지만, 문제가 있었다.


햄던 파크를 안 쓰는 대신 그에 버금가는, 최소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곳으로 변경해야 하는데. 그런 경기장은 스코틀랜드 내에서 딱 세 군데 존재한다.


셀틱 파크와 아이브록스 스타디움, 그리고 머레이 필드 스타디움.


우선 셀틱 파크는 중립 장소에서 해야 한다는 오닐의 주장에 의해 당연히 제외, 머레이 필드 스타디움은 본래 럭비팀이 사용하는 경기장인 데다가 하필 그때 일정까지 잡혀 있어서 불가능.


그러면 남은 건 아이브록스 스타디움뿐이다. 하지만 빌려주겠는가? 그곳을 소유한 팀은 로스 카운티보다 한참 오래전부터 숙적이었던 레인저스인데.


“셀틱이 우리 구장에서 결승전을 치르는 꼴을 볼 일은 없을 겁니다.”


레인저스 회장이 직접 공식 발표로 완강하게 반대하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규모가 작은 경기장으로 가는 건 흥행을 포기하라는 억지 주장에 지나지 않으니, 결국 햄던 파크에서 치르는 걸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불리하다고 느껴지면 그런 주장을 할 수도 있겠죠. 다만 우리가 햄던 파크를 홈구장으로 삼으면서 취한 이득은 더 많은 축구팬이 직관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매번 원정길에 가까운 거리를 오가고 있죠. 그동안은 아무 말 없다가 갑자기 이러니 조금 당황스럽긴 하군요.”


델 레오네가 맞받아치면서 논란은 종결되었지만, 두 감독 사이의 불꽃은 더욱 활활 타오르는 계기가 되었다.



[ Scottish Sports ] 오닐 “리그와 컵 대회는 다르다. 델 레오네는 논지를 흐리고 있어.”


[ The Scotsman ] 델 레오네 “유럽 대항전은 누군가의 홈구장에서 결승전이 치러지더라도 장소를 변경하지 않는다.”


[ Glasgow Press ] 오닐 “유럽 대항전과 국내 대회를 같은 수준으로 보는가?”


[ Daily Telegraph ] 델 레오네 “유럽 대항전 경험을 한 지 오래되었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 Daily Mail ] 오닐 “로스 카운티는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는 중.”


[ Daily Mirror ] 델 레오네 “양보를 해줘도 대체 경기장을 못 구한 쪽은 셀틱.”



그들 사이에서 부지런히 받아 적어 기사를 올리는 언론들은 그저 쏟아지는 소스에 신날 뿐이었다.


그러나 저 격렬한 기 싸움 뒤에서는 양 팀 내부의 온도 차가 극심할 지경에 이르는 중이었다. 그 사실을 알았다면 기자들은 겉으로 보이는 논쟁에만 한눈팔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


경기 하루 전날 컨퍼런스를 끝낸 뒤 마틴 오닐은 항변하러 감독실에 찾아온 셀틱 선수와 실랑이를 벌이기에 바빴다.


“또 왼쪽으로 출전하란 얘깁니까? 전 공격수라고요. 윙에서 제대로 뛰어본 적이 없어요.”


“제기랄, 감독은 나야! 넌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델 레오네와의 말다툼으로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으니 평소에도 잘 통하지 않았던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었다.


“왼쪽으로 옮긴 뒤로 득점을 계속 못 하고 있잖아요! 멀쩡히 공격수 자리에서 득점 선두 경쟁을 하고 있었단 말입니다!”


“왼쪽에서 못하는 건 핑계에 지나지 않아! 네 실력을 탓해야지!”


“감독님도 억지 부리는 거잖아요! 결국 당신이 데려온 공격수 때문에 제가 밀려난 것 아닙니까?”


“그 입 닥치지 못해? 지금 내 권위에 도전하는 거냐?”


벌떡 일어나 책상을 세게 내려치며 눈을 부라리는 오닐. 선수 또한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물러서려는 기색이 없어 보였다.


갈 데까지 간 듯한 불화의 조짐. 감독과 감정의 골이 깊게 팬 듯한 이 선수는 리 그리피스(Leigh Griffiths)였다.


데일리 메일과 일부 언론이 잭 마틴의 선발 문제로 인한 득점왕 수상 여부를 진지하게 다뤘었는데, 정작 더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초반에는 영입생 스티븐 플레처와 함께 둘을 공존시키고자 4-4-2를 사용했던 오닐이었지만, 시즌을 치를수록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고 결국 4-2-3-1로 시스템을 변경하면서 발생한 문제였다.


아마도 로스 카운티가 잭 마틴을 왼쪽으로 옮기면서 성공을 거둔 걸 모티브 삼아 실행한 듯했지만 가장 중요한, 선수를 설득하는 접근법이 달랐다.


그리피스 쪽에선 득점수도 본인이 더 높은데 타당한 이유도 없이 그저 플레처를 뺄 수 없어서 대신 밀려났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스트라이커 자리를 안 주면 저도 활약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협박까지 해? 나가지 마! 네놈 아니면 내보낼 사람이 없는 줄 알아?”


서로 한 발짝만 물러섰다면 쉽게 해결할 수도 있었던 일이었지만, 이미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모양새였다.


*******


같은 시각, 델 레오네도 누군가와 대화를 진행하고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감독의 호출을 받고 온 것은 스티브 샌더스였다.


“컨디션은 어떤가?”


“최고입니다.”


“그렇게 보이는군. 거기 앉게.”


날카로운 이까지 드러내던 신경전과 상반될 정도로 온화한 분위기. 샌더스는 한때 이탈리안의 부임을 못마땅해했고, 셀틱을 꺾겠단 야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쪽이었다. 그의 충실한 선수로 전향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작년엔 형편이 썩 좋은 편은 아니어서 어쩔 수 없었으나······ 올해는 꽤 기회를 줬다고 생각하네.”


감독이 말했다.


“컵 대회는 물론, 정규 리그도 꼬박꼬박 교체 투입을 해줬으니까 말이지. 챔피언스 리그 경험은 말할 것도 없고.”


“알고 있습니다.”


“내일 자네들로서는 한 여정의 마무리를 짓는 셈인데, 셀틱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야. 결승전이기에 마음가짐도 단단히 무장해 올 테고. 모두의 역할이 중요하겠지만, 승부처는 결국 수비에서 갈리게 되겠지. 즉, 스티브 자네가 열쇠를 쥐고 있단 얘기네.”


샌더스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런 말을 하면 안 좋아하실 건 알지만······ 제가 그 정도 짐을 질 만한 수준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저번 던디 유나티이드전에서도 공격진이 역전해 주지 못했다면 탈락했을······.”


“그래. 그래서 부른 거야.”


이탈리안이 말을 끊으며 샌더스를 마주 보았다.


“최근 4강전, 그리고 작년에 연달아 탈락했던 4강전이 계속 눈에 아른거리겠지. 패배의 주범이 꼭 자기 자신인 것 같을 테고.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야. 그런데, 자네는 좀 더 믿을 필요가 있어. 스스로를 말이지.”


그가 계속 말했다.


“내가 왜 기회를 주는 것 같나? 불쌍해서? 난 감독이야. 승패를 책임져야 하는 감독. 자선 사업하는 것도 아닌데 그럴 이유가 전혀 없지. 그냥 간단하게 그럴 만한 가치가 있어서. 그뿐이야.”


샌더스는 여전히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눈치다.


“이거 이 기회에 제대로 이해시켜야 되겠군.”


델 레오네는 잠시 멈추고 스푼으로 커피잔을 휘젓더니 향을 음미했다.


“내가 왜 알렉스를 불러들일 때마다 자네를 넣는지 아나? 빌드업 구조를 잘 이해하고 있어서 시스템의 변화 없이도 그 자리를 알렉스 다음으로 소화해 낼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야.”


“······.”


“또한 자네는 아메드를 대신해서 풀백 겸 우측 스토퍼, 그 까다로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이기도 하지. 스콧을 대신해서 볼 줄기를 잡는 센터백의 중심에 설 수도 있고.”


“······이곳저곳에 쓰일 수 있다는 얘기군요.”


이탈리안은 가볍게 혀를 찼다.


“사람들은 다재다능함의 가치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어. 자네의 반응만 봐도 그렇지. 보통은 한 포지션의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걸 꿈꾸겠지만, 관점을 달리했으면 좋겠군. 어느 곳에 서든 일 인분을 해내는 능력 역시 아무나 가능한 게 아닌 스페셜리스트의 영역이라고 본다면 어떤가?”


“······.”


“유틸리티 플레이어가 괜히 구단의 소중한 자산이고, 감독에게는 보물로 여겨지는 게 아니거든.”


“말씀은 감사하지만, 그것도 제구실을 해야 통하는 얘기죠. 전 센터백에 서서 실점의 빌미를 제공하고, 패배로 몰아갔었고, 이번에도 패배로 몰아갈 뻔했어요.”


“자네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진부한 대사는 하지 않겠네. 엄밀히 따지면 센터백의 실책이 제일 컸지. 통계만 대충 훑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야.”


감독은 짧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답답하다는 것이네. 왜 저렇게밖에 못하는 걸까? 내 판단대로라면 분명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그래서 자신을 좀 더 믿어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경기를 앞두고 단순히 기를 살려주려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자신을 뚜렷이 바라보는 감독의 눈에서 진지함이 느껴졌다.


“난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아. 앤드류나 자네나 자신감이 너무 부족해. 실력이고 뭐고 그게 가장 큰 문제야.”


“······.”


“자네는 시즌 시작 전부터 휴식을 반납하면서까지 신체를 단련했고, 훈련도 누구보다 열심히 임했어. 교체로 투입될 때마다 늘 제 몫을 다했지. 딱 하나, 컵 대회에서 주전으로 나갈 때만 달라져. 웃기지 않나? 프리미어십에서 던디 유나이티드를 상대할 때는 잘하던 친구가 왜 리그 컵에서 똑같은 팀을 만났는데 폼이 달라질까?”


샌더스는 속마음을 밖으로 꺼내려다 그만두었다. 그러면 감독이 정말로 화를 낼지도 모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보여, 스티브.”


이미 들킨 것 같았지만.


“선발과 교체의 차이는 아무 상관 없어. 3선으로 출전했든, 센터백으로 출전했든 그런 것 따위로 재단할 부분 또한 아니지. 내가 말했듯 어디서 뛰어도 일 인분을 해내는, 자네가 그런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의 자각조차 없어서. 그리고 선발로 나가면 팀을 책임질 자신감이 없어서 생겨나는 일이야.”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 아니지!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니잖나.”


감독은 미간은 살짝 찌푸리며 스푼을 커피잔에 두드렸다. 청아한 소리가 샌더스 귀를 간지럽혔다.


“그래. 내일이 자네가 그토록 우려하던 최종 시험의 날이 되겠지.”


샌더스는 흠칫 놀라는 걸 숨길 수 없었다. 속으로만 생각하던, 주변의 친한 동료한테만 털어놓던 얘기였는데 애당초 감독은 죄다 꿰뚫어 보고 있었다.


“배려는 충분히 한 것 같군. 준비와 성장, 모든 절차가 끝났어. 이제 결과물을 확인할 일만 남았는데. 껍질을 깰 것인지, 막바지에 다다라서도 끝끝내 나오지 못할 것인지. 선택은 본인의 몫이야.”


“······.”


샌더스는 고개를 잠시 숙이다가 묵례하며 천천히 일어났다.


“내가 이때까지 자네에게 한 말들을 곱씹어보길 바라네. 답은 멀리 있지 않으니까.”


감독은 끝까지 당부하는 걸 잊지 않았다.


*******


< 15-16 League Cup Final Round >

셀틱 : 로스 카운티

2016년 3월 12일 (토) 15:00

햄던 파크 (관중 수 : 52,100명) / 매진



경기 직전, 라커룸으로 들어온 감독은 집결해 있는 선수들을 아무 말 없이 둘러보았다.


컵의 사나이란 호칭이 붙을 만큼 득점 감각이 물오른 리암 보이스.


눈에 안 보이게 천천히 성장하면서 정규 리그에서도 적재적소 도움을 주기 시작한 필립 로스.


처음에는 엉성했지만, 어느새 이 그룹에서 자리 잡아가기 시작한 데미안 생클랜드와 큰 실수 없이 컵 대회에서 잘 뛰고 있는 딜런 갈브레이스.


종종 불안한 수비를 보이긴 해도 작년에 비해 많이 성장한 게 보이는 고든 스미스와 무난하게 받쳐주는 골리 데이비드 밀스.


감독의 말을 빌려 아직은 예비 주전의 위치에 있는 그들이지만, 예열한 채 출격만 기다리는 모습은 전사 하일랜더의 명성에 걸맞은 듯했다.


마지막으로 눈길이 닿은 선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뇌의 고뇌를 거치고서 마침내 결심한 얼굴. 이전의 부담감이 뒤섞여 혼잡했던 몰골과 사뭇 달랐다.


확인은 끝낸 그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다가 단 한마디로 브리핑을 마쳤다.


“가자. 결실을 거둘 시간이다.”



[셀틱 / 4-2-3-1]

FW : 스티븐 플레처

AM : 제임스 매클린 / 칼럼 맥그리거 / 제임스 포레스트

CM : 니르 비톤 / 스콧 브라운

DF : 키어런 티어니 / 셰인 더피 / 데드리크 보야타 / 미카엘 루스티그

GK : 크레이그 고든


[로스 카운티 / 4-2-3-1]

FW : 리암 보이스

AM : 필립 로스 / 제임스 블랜차드 / 앤드류 톰슨

CM : 라이언 잭 / 데미안 생클랜드

DF : 고든 스미스 / 대니 패터슨 / 스티브 샌더스 / 딜런 갈브레이스

GK : 데이비드 밀스



명색이 결승전인 만큼 기자들은 사소한 이슈도 놓치지 않을 기세였다. 선수들이 터널에 모여 대기할 동안 양 팀 감독은 짧은 인터뷰를 응해야만 했다.


“오늘 왜 그리피스가 빠진 거죠? 선발도 명단에도 없는 것 같은데요?”


“전술적인 문제로 내린 결정입니다.”


“전술적이요? 팀 내 최다 득점자를 제외할 정도인가요? 아무리 그래도 벤치에도 없는 건······.”


“그냥 여러 가지 이유가 얽혀 있어요. 다른 질문만 받겠습니다.”


오닐은 굳은 얼굴로 얼버무렸고.


“혹시나 했는데 또 후보 선수들을 선발로 내세우셨네요? 셀틱은 거의 주전이 나온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결승전까지 오른 것은 오늘 나가는 선수들이 해낸 업적입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끝까지 그들을 믿어볼 생각입니다.”


델 레오네는 느긋한 어조로 신뢰를 보냈다.



그리고 시작된 경기.


치열한 난타전을 기대했다면 실망스럽고, 팽팽한 줄다리기 싸움을 예상했다면 볼 만한 그런 흐름이 지속되었다.


한편으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로스 카운티가 이번에도 후보들을 내보낸다면 주전을 가동한 셀틱에 무너질 거란 사람들의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기 때문이었다.


결승전이란 동기부여가 제대로 장착되었는지 작년 4강에서 무기력하게 패배하던 그 선수들이 맞나 싶은 정도였다.


특히 스티브 샌더스의 활약은 가장 돋보였다.


플레처에게서 제공권을 쉽게 내주지 않았고, 위협적으로 들어온 스루패스를 세 번이나 차단하는 활약까지.


전반전이 끝나가 집중력이 흐트러질 무렵, 스미스가 포레스트를 놓치면서 발생한 위기 또한 샌더스의 호수비로 무마할 수 있었다.


포레스트의 땅볼 크로스를 받은 매클린의 슛이 정확하게 구석으로 향했지만, 샌더스가 몸을 던지며 키퍼 대신 들어갈 볼을 막아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좋은 패스도 여러 번 보여주면서 공격적인 부분에도 기여하고 있었다. 이대로 끝난다면 맨 오브 더 매치가 유력한 수준이었다.


물론 셀틱도 정신 무장은 제대로 된 상태였다.


키어런 티어니는 내내 측면에서 앤드류 톰슨과 불꽃 튀기는 경합을 보이며 뒤를 쉽게 내주지 않았고, 실패한 영입 6위에 올라 비판을 받아왔던 셰인 더피도 오늘만큼은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주고 있었다.


승부차기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승부가 갈린다면 한방 싸움이 될 법한 분위기였다.


그 한방은 뜻밖의 상황에서 나왔다. 어쩌면 델 레오네도 차마 계산하지 못했던 시나리오였을지도 모른다.


좌측으로 치우쳐진 외곽에서 얻은 프리킥. 블랜차드가 직접 골문을 노리는 오른발 슛을 날렸고, 먼저 발을 갖다 대려는 보이스와 간신히 손으로 쳐낸 골키퍼가 얽히면서 볼이 뒤로 흘렀다.


그리고 세컨드 볼을 잡은 선수가 인사이드로 찬 슛이 그물에 꽂힌다.


89분 결승 골의 주인공은 스티브 샌더스였다.


“으아아! 으아아아아!”


샌더스는 거의 짐승이 울부짖는 포효를 내지르면서 관중석으로 달렸다. 그동안의 설움과 죄책감 등 복합적으로 뭉쳐있던 감정을 토해내는 듯한 셀레브레이션이었다.


코너 플래그에 도달해 고개를 숙이며 털썩 무릎을 꿇는 샌더스. 쫓아온 스미스가 그를 뒤에서 안아주었고, 동료들이 하나둘 그에게 모여들어 함께 기쁨을 공유했다.



삑 - 삐익 -


이후 경기는 반전 없이 종료되었고, 팔까지 걷어붙이며 분노를 삭이지 못하던 오닐은 잔디를 발로 차며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오므린 입술 모양과 부들거리는 손으로 그 입을 감싸며 쓰다듬는 동작. 오늘 셀틱 선수들은 라커룸에서 된통 깨질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반면 델 레오네는 팔짱을 낀 채로 터치라인에 서서 평온하게 선수들을 관찰했다.


끝나자마자 다시 한번 축하를 받는 건 역시 샌더스였다. 스미스를 시작으로 한 명씩 다가와 오늘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였던 수비수와 포옹을 나누었다.


그리고 뒤에서 살며시 어깨에 손을 얹는 누군가. 샌더스가 돌아보자, 블랜차드가 어색한 얼굴로 뭐라 말하더니 엄지를 내보였다. 칭찬에 인색하기로 소문난 그가 인정할 만큼 대단한 활약이었던 모양이다.


이어서 오늘 출전도 안 한 딩월이 어느새 피치 안에 들어가 축하해 주고 있었고, 무슨 말을 한 건지 샌더스가 웃음을 터뜨린다.


희미하게 미소 짓는 블랜차드와 어깨동무하는 딩월 사이에서 행복해 보이는 샌더스. 비로소 완벽한 로스 카운티의 일원이 된 것 같았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이탈리안은 이내 표정을 바꾸면서 다음 태세로 돌입할 준비를 마쳤다.


“좋아. 이제 프랑스로 갈 일만 남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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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틱 0 : 1 로스 카운티 >

스티브 샌더스(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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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최근 속도 좀 붙나 싶었는데 쉽지 않네요ㅠ

그럼에도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주말 즐겁게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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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1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8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9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5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4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5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9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8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2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71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3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6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5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7 45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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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2 56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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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9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3 5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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