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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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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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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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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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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쪽

203. 공간 싸움 (4)

DUMMY

“이봐, 조지! 월리스가······ 빠진 거 같은데?”


“뭐? 그러면 누가 나왔는데?”


해리 윌슨의 외침에 조지 맥도넬은 허둥지둥 지하 저장고에서 뛰쳐나와 TV를 쳐다보았다.



[로스 카운티 선발 라인업]

브라운, 델샤드, 얀손, 패터슨, 샌더스, 잭, 캐리, 블랜차드, 톰슨, 딩월, 마틴



“샌더스? 샌더스라고?”


맥도넬의 반응과 동시에 바깥에서도 웅성거림이 크게 들려왔다.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경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각. 펍 주변으로 잔뜩 몰려든 사람들 모두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월리스가 없으면······ 측면 공격이 안 되잖아?”


월리스의 부재는 풀백을 통한 오버래핑 공격을 포기했다는 의미. 1차전에서도 거의 올라가질 못하고 수비만 했었으니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그런데 이건 그 측면 공간을 대신 뛰어줄 자원도 없는 구성이지 않나? 왼발의 존 맥긴이 나왔다면 이해라도 하겠으나, 잭 마틴은 태생이 전방 공격수라서 터치라인에 가까이 붙을수록 영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선수인데.


게다가 보이드만큼은 아니어도 샌더스 역시 발이 빠른 편은 아니다. 일단은 내려앉아서 역습으로만 운영하겠다는 걸까? 이번 경기는 홈이고, 한 골만 넣어도 승부를 가를 수 있으니까?


“조지. 샌더스 저 녀석, 챔피언스 리그 선발은 한 번도 나온 적 없지 않아?”


“맞아, 케니. 교체로는 몇 번 들어왔었지만······ 설마 첫 선발이 뮌헨전이 될 줄이야.”


전문가들이 경기 하루 전에 내놓았던 예상 라인업이 전부 오답으로 되어버렸다. 어느 누가 샌더스의 선발을 예상했겠는가?


너무 느닷없어서 그런지 주요 언론들은 제각기 다른 포메이션으로 정렬하면서 이탈리안의 속셈을 열심히 유추해 내고 있었다.



[ Scottish Sports / 4-1-2-3]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제임스 블랜차드 / 라이언 잭

DM : 알렉산더 캐리

DF : 스티브 샌더스 / 대니 패터슨 / 폰투스 얀손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 Sky Sports / 3-4-3]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MF : 제임스 블랜차드 / 알렉산더 캐리 / 라이언 잭 / 아메드 델샤드

DF : 대니 패터슨 / 폰투스 얀손 / 스티브 샌더스

GK : 마크 브라운



[ The Sun / 5-3-2]

FW : 잭 마틴 / 앤드류 톰슨

MF : 제임스 블랜차드 / 알렉산더 캐리 / 라이언 잭

WB : 에이든 딩월 / 아메드 델샤드

DF : 대니 패터슨 / 폰투스 얀손 / 스티브 샌더스

GK : 마크 브라운



“아니, 아무리 그래도 딩월을 윙백으로 세우겠냐고. 블랜차드가 더 그럴듯하겠다.”


“녀석이 정통 공격수론 부족하다지만, 수비까지 내리는 건 너무하잖아. 챔스에서는 그래도 세 골이나 넣었는데.”


“그리고 무슨 5-3-2야. 이탈리안 감독이니까 카테나치오라도 생각한 거야?”


저마다 폰을 꺼내 들고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보면서 떠드는 사람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느 곳의 포메이션이든 뭔가 어색한 면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떻게 나올 것 같나, 조지?”


크레이그 던컨의 물음이었다.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샌더스가 월리스 자리에서 뛸 것 같기도 한데······ 이 감독이 우리를 당혹게 만든 것이 한두 번도 아니고. 다만······.”


사실 이 상황은 꽤 익숙했다. 작년 유로파 리그 결승전도 딱 이러지 않았던가? 톰슨이 갑자기 빠지고, 잭 마틴이 선발로 출전했던.


그래서일까? 불안하지는 않았다. 불안함보다는 그저 순수한 궁금증이 더 컸다. 혼란스럽지만 의심스럽지는 않은 그런 감정이었다.


왜냐하면 이 선택을 내린 게 안토니오 델 레오네니까.


“다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할 뿐이죠. 그는 항상 옳았으니까요.”


*******


< 15-16 UEFA Champions League Round of 8, 2차전 >

로스 카운티 : 바이에른 뮌헨 FC

2016년 4월 6일 (수) 19:45

햄던 파크 (관중 수 : 50,608명)



감독이 스튜어트와 함께 라커룸의 문을 열고 들어온 건 곧 입장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때였다.


지금은 선수들끼리 모인 공간에서 유대감을 형성하고 전의를 다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도 몰랐다.


어차피 뮌헨전 대비 전술을 비롯한 사전 준비는 철저히 해왔으니까. 이제 와서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도 없었다.


선수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한곳으로 시선을 주목했고, 감독은 그들의 중심에 서서 뒷짐을 진 채 좌우를 돌아보았다.


“볼프스부르크전.”


천천히 그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늑대가 사슴을 잔혹하게 물어뜯을 거라 얘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로스 카운티의 승리.”


“······.”


“나폴리전. 사람들은 원정팀에 세 골을 내준 적이 없는 스타디오 산 파올로를 끝내 무너뜨리지 못해서 결국 삼지창에 꿰뚫리게 될 거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로스 카운티의 승리.”


경청할수록 선수들의 눈빛은 점점 타오를 듯 뜨거워져 갔다.


“세비야전. 사람들은 유로파 리그의 디펜딩 챔피언만큼은 꺾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했지.”


단지 설득력 높은 중저음의 목소리와 카리스마 넘치는 언변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모든 것들은 현재 듣고 있는 선수들이 다 제 손으로 이루어냈던 업적.


“올 시즌도 마찬가지. 첼시와 레알 마드리드가 속한 죽음의 조를 벗어나긴 힘들 거라 얘기했고, 파리 생제르맹에 막혀 16강의 벽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거라고들 얘기했다. 하지만 결과는? 뭐, 알다시피······.”


이탈리안 감독은 그 발자취를 다시 되짚어 나가면서 가슴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세계 패권을 쥐고 다투는 최정상급 팀 바이에른 뮌헨을 만나 이번에야말로 쓰러질 수밖에 없을 거라고 얘기하는 중이다. 이에 대한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자네들에게 달렸지.”


그가 말을 마치자 아주 잠시 정적이 흘렀고.


“로스 카운티가 승리할 겁니다!”


먼저 발을 내디디며 대답한 폰투스 얀손을 시작으로 모든 팀원이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외쳤다. 반대편에 있는 뮌헨 선수들의 라커룸에도 들릴 만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과연 불굴의 투지를 보여주었던 하일랜더 전사들의 후예를 보는 듯한 기세였다.


그 모습을 본 감독은 흡족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뜨더니 라커룸의 문을 열어 주었다.


“가서 후회를 남기지 말고 모든 걸 쏟아부어라.”


*******


“아니, 잠깐! 저거 봐!”


“뭐야? 저거 맞아?”


중대한 일전을 앞두고 시작 전부터 선발 라인업만으로 전 세계 축구인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로스 카운티.


모든 입장 절차를 마치고 선수들이 각자 포지션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또 한 번 놀라야만 했다.


“샌더스가 오른쪽이라고? 그러면······.”


“델샤드가······ 왼쪽?”


월리스가 빠진 레프트백의 자리를 대체한 건 샌더스가 아니라 델샤드였다.


샌더스도 왼쪽에 선 경험은 없었기에 어떤 식으로 가든 이상한 그림이었겠으나, 오른쪽에서 기복 없이 발군의 활약을 펼치던 최고의 수비수를 굳이 옮긴다고?


델샤드에게 레프트백 경험이 아예 없지는 않다. 보르스클라 폴타바에서 뛰던 시절에 한해서. 로스 카운티에 와서는 한 번도 뛴 적이 없다.


거의 삼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중요한 순간에 감독은 그를 레프트백으로 내세운 것이었다.


대담한 건지 무모한 건지 모를 이 놀라운 선택에 다들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햄던 파크에서 직관 중인 관중들, 그 속에서 챈트를 열창하던 블랙과 홉킨스의 숫사슴들, VIP석에서 경기를 기다리던 로이 베넷 구단주와 대런 코너 단장, 이들의 고향 하일랜드에서 응원을 보내던 수많은 인파, 그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중계를 지켜보던 맥도넬의 친구들까지 모두.


오직 펩 과르디올라만이 상황을 얼추 이해했다는 듯 눈썹을 미세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우리와 해보려는 건가?”



[로스 카운티 / 4-1-2-3]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제임스 블랜차드 / 라이언 잭

DM : 알렉산더 캐리

DF : 아메드 델샤드 / 대니 패터슨 / 폰투스 얀손 / 스티브 샌더스

GK : 마크 브라운


[바이에른 뮌헨 / 4-1-2-3]

FW : 프랑크 리베리 /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 아르연 로번

CM : 토마스 뮐러 / 아르투로 비달

DM : 사비 알론소

DF : 데이비드 알라바 / 제롬 보아텡 / 하비 마르티네스 / 필리프 람

GK : 마누엘 노이어



“설마 로번을 막으려고?”


존 프리먼 역시 미처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로스 카운티를 크게 애먹였던 아르연 로번을 향한 대응책.


델 레오네는 월리스만으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고, 저 네덜란드 특급 날개를 막기 위해 맥긴으로 과속방지턱을 설치하면서 패터슨으로 보조까지 해주는 구조를 세웠었다.


하지만 로번은 그 이상으로 강력했다. 삼중 보안은 너무나도 손쉽게 해체됐고, 좌측 수비 전선이 붕괴되면서 바이에른 뮌헨이 원하는 페이스대로 휘둘리고 말았다.


저번 경기는 확실히 로번을 막지 못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패배였다.


그래서 일대일 수비에 강한 델샤드를 붙였다면 이해는 된다. 그러나 이걸로 충분할까? 반대편 윙도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닌데.


“이전에 리베리의 활약이 미미했던 건 델샤드가 어느 정도 억제해 준 덕분이지 않았나?”


뮌헨 진영에서 이루어지는 빌드업 단계. 우선 센터백을 무리하게 압박하지 않는다. 중앙 간격을 좁혀 알론소를 비롯한 주변 미드필드진을 둘러싸며 공간을 틀어막는다. 1차전과 같은 수비 방식이다.


자연스럽게 알론소를 최후방으로 내리면서 천천히 압박을 푸는 뮌헨. 볼이 중앙선을 넘어 리베리 쪽으로 향하자 변화를 즉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엔 반대로 삼중 보안인가?”


그대로 윙백처럼 내려오며 리베리에게 붙는 톰슨. 동시에 잭과 샌더스가 빠르게 우측으로 이동하면서 순식간에 세 명이 에워싼다.


볼이 뒤로 후퇴하자 다시 중앙 밀집 형태로 빠르게 전환하는 선수들.


맥긴과 월리스가 거리를 두고 견제하면서 패터슨이 뒤를 받쳐주던 저번과 달리 수비 형태가 일그러지더라도 벌 떼처럼 몰려간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잭이 측면으로 붙으면서 생기는 위험 공간을 딩월이나 블랜차드가 빠르게 메워주는군.”


안정적으로 균형을 맞추기보다는 자원을 상당수 투자해서 수비를 두껍게 한다는 것인데. 이렇게 한쪽으로 몰리면 다른 한쪽은 크게 열리기 마련.


반대편으로 전환하는 알라바의 로빙 패스. 단순한 대치 상황일 뿐인데도 햄던 파크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아르연 로번과 아메드 델샤드의 일대일 구도.


오오 -


먼저 시동을 걸며 안으로 파고드는 로번, 바짝 따라붙는 델샤드. 슛 각을 보다가 안 되겠는지 뒤쪽의 알론소에게로 볼을 넘긴다.


“······숨 막히는 줄 알았네.”


이제 보니 약간 기형적인 구조다. 샌더스 쪽은 수비적으로 단단한 잭과 부지런히 내려와서 도와줄 수 있는 톰슨이 존재한다. 반면 델샤드 쪽은 거의 전방에 포진한 마틴과 저지력에서 약점을 보이는 캐리.


조합도 불균형인데, 심지어 무게조차 옆으로 더 기울어진 느낌이다.


우측은 숫자 싸움을 유리하게 가져가며 진영 사수, 좌측은 기껏해야 패터슨의 보조 정도. 사실상 델샤드에게 모든 걸 내맡긴 셈이다.


다시 말해 그가 로번을 반드시 봉쇄해 주어야만 하는 작전.


이론상으로는 최적이긴 하다. 델샤드가 팀 내 최고의 철벽을 자랑하는 방패인 걸 떠나서 우선 오른발잡이 수비수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잘 쓰는 발의 방향으로 내딛기 편한 사람의 인체 구조상, 로번처럼 안으로 파고들어 날리는 슛이 위협적인 선수를 쫓아가 막는 데는 의외로 델샤드가 적격일 수 있다.


그러나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 생각한 대로 다 되면 세상 모든 일이 간단하게 풀릴 것이다.


“쉽지 않아. 로번을 혼자서 막는다는 것은······.”


볼을 돌리며 기회를 살피던 뮌헨. 마르티네스가 방향을 틀더니 직선으로 롱패스를 보낸다. 등지고 있던 로번을 겨냥한 패스였으나 그의 뒤로 밀착한 델샤드가 먼저 발을 내밀어 끊어낸다.


이후 스로인을 가져가며 다시 전열을 가다듬는 흐름. 알라바와 횡패스를 주고받던 람이 측면으로 강하게 찔렀고, 볼을 잡으려던 로번보다 먼저 달려든 델샤드가 슬라이딩 태클로 저지한다.


“흠······ 아직까진 괜찮은데.”


반대편에서 계속되는 뮌헨의 공격권. 중앙에서 볼을 받아준 뮐러가 빠른 템포로 패스를 이어주고, 리베리가 잡자마자 약속한 것처럼 몰려가 협동으로 압박하는 선수들.


잭과 샌더스 사이로 교묘하게 땅볼 크로스가 빠져나갔지만, 박스 안에서 길목을 지키고 있던 얀손이 걷어내며 방어에 성공한다.


“수비진 집중력도 좋고.”


다시 뒤에서 천천히 볼을 돌리며 시작하는 빌드업. 보아텡의 패스가 공중을 가로지르며 측면으로 나아갔고, 델샤드와 두 번째로 대치하는 로번.


이번엔 정면을 살피다가 몸을 꺾으며 뒤로 빠진다.


“초반이니 무리하지 않는 건가?”


그런 줄 알았으나 직접 반대편으로 크게 전환하는 로빙 패스. 엔드라인으로 나가기 직전의 볼을 리베리가 맹렬히 달려가더니 발리로 차올리며 위협적인 크로스로 이어졌고.


오우 -


패터슨과 경합한 레반도프스키의 헤더 슛이 브라운 키퍼의 정면으로 향하면서 위기를 모면한다.


“잠깐의 방심도 허용치 않는구나. 괜히 로베리가 아니야.”


각자 수비를 부수는 파괴력도 갖췄지만, 저 양 날개가 진정으로 무서운 부분은 서로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도 방금 같은 콤비 플레이가 언제 어디서든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그나저나······ 드디어 우리 차례인가?”


수차례 뮌헨의 공세를 버텨내고 처음으로 골킥을 얻으며 로스 카운티가 공격권을 가져온 상황.


델 레오네의 계획은 무엇일까? 프리먼은 이것이 제일 궁금했다.


1차전은 장소가 알리안츠 아레나임을 고려해 역습 위주의 소극적인 운영을 펼쳤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한 골 뒤처진 점수 차. 햄던 파크에 운집한 스코틀랜드 국민의 성원을 등에 업고서 승부수를 띄워야만 할 때.


저 이탈리안은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틀에 박힌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집불통 감독들과 다르게 언제나 예상 못 한 방식을 고안해 나와서 결과를 내곤 했으니까.


당장 델샤드의 반대편 기용이 그걸 증명한다. 경기 전부터 그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기대감을 한껏 드높였다. 또 한 번 말이다. 언제나 그래왔다.


프리먼처럼 그 과정을 처음부터 쭉 지켜봐 온 이들은 전부 그의 열렬한 신봉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응? 저건······.”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측면으로 빠지는 캐리의 움직임이었다.


“캐리 시프트?”


압박하기 까다로우면서 놔두면 후환이 되는, 그런 어중간한 위치에 놓고 상대의 체계를 교란하는 작전. 유로파 리그 챔피언 세비야를 꺾었으며, 레알 마드리드마저 곤경에 처하게 만들었던 그 패턴.


“또 측면 레지스타 활용법으로 활로를 뚫어볼 생각인가?”


그러나 뮌헨은 팀 단위 압박이 고도로 잘 훈련되어 있다. 애당초 반코트 게임으로 무자비하게 찍어 누르는 걸 목표로 하는 팀이기에 람을 과감히 올려서 압살하려 들 것이다.


게다가 유럽에서 한동안 꽤 떠들썩했던 이 시스템, 과르디올라가 생각 안 하고 나왔을 리 없다.


물론 델 레오네 역시 그 모든 걸 염두에 두고 나오는 철두철미한 인물로 유명하다.


“······재밌네.”


프리먼은 무언가를 발견하곤 짧은 웃음을 내뱉었다.


패터슨과 얀손, 샌더스가 나란히 서 있는 대형. 이제는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할 만한 로스 카운티의 메인 시스템.


이탈리안이 스코틀랜드로 건너와 이식한 저 백스리 빌드업 구조는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게 조명되면서 최근 프리미어십에서도 따라 하려는 감독들이 하나둘 생겨나는 추세다.


킥 앤 러시에만 익숙해져 있던 스코티시 리그가 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인데, 마찬가지로 델 레오네는 과르디올라의 영향을 받은 걸까?


본래 주전 편성대로 나왔다면 델샤드가 좁혀 들어와 우측 스토퍼 자리를 맡고, 월리스는 윙처럼 측면 공간을 점유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샌더스가 우측 스토퍼를 대신하는 중이다. 델샤드는 월리스만큼 공격적인 풀백이 아닌 데다가 주발이 반대쪽이기 때문에 측면 크로스를 원활하게 올릴 수도 없다.


그래서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한 칸 올려서 중앙에 배치하는 발상이.

203. 전술 이미지 (바이에른 뮌헨전).jpg

델샤드가 아예 3선처럼 올라가서 라이언 잭과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치 미드필더처럼.


그렇다. 저건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인버티드 풀백······.”


바이에른 뮌헨이 로스 카운티를 숨 쉬지도 못하게 몰아붙일 수 있었던, 과르디올라의 전술을 델 레오네가 차용해 온 것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로번을 막기 위한 용도뿐만이 아니라 인버티드 풀백으로 쓰기 위해서 왼쪽에 배치했다는 건가?


뮌헨이 사용하는 걸 보고서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전술을 바로 실전에서 시도한다고? 일을 그르치면 끝나버릴 수 있는 이 중요한 기로에서?


안토니오 델 레오네, 대체 얼마나 강심장인 걸까? 이건 확신과 용기 없이는 불가능한 행동이다.


“용기 이전에 확신을 가졌다는 얘긴데······.”


브라운에게 볼을 건네받은 얀손이 곧장 캐리 쪽으로 깔아주고, 이에 반응한 로번이 빠르게 쫓아가 붙는다.


볼을 발바닥으로 부드럽게 당기면서 로번을 피해 뒤로 패스하는 캐리.


패터슨이 잡자 레반도프스키가 압박을 들어오고, 옆으로 볼을 빼니 얀손이 노마크가 되어 앞으로 전진 한다.


뺏으려 달려드는 비달. 접촉하기 전에 곧장 캐리에게 밀어주는 얀손.


삼각 패스 플레이가 빠른 템포로 진행되고, 캐리에게 볼이 되돌아가자 람이 바짝 달라붙는다.


받자마자 원터치로 짧게 횡패스를 내주는 캐리. 얀손을 잡으려고 비달이 전진하면서 생긴 공간에 델샤드가 서 있다.


이를 간파한 알론소가 잽싸게 붙으면서 방해하려 했으나, 오른발 끝으로 툭 건드리며 똑같이 원터치 패스를 비스듬히 보내는 델샤드.


알론소의 옆으로 스쳐 지나간 볼을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의 블랜차드가 잡아서 부드럽게 돌아선다.


“오.”


그와 동시에 일제히 퍼지며 전방으로 내달리는 마틴, 딩월, 톰슨의 삼각 편대. 살짝 벌어진 우측의 틈새로 스루패스를 찔렀으나, 몸을 날리며 다리를 뻗은 알라바에게 막혀 터치라인 바깥으로 나간다.


“방금 굉장한 플레이가 나왔던 거 같은데.”


뮌헨을 상대로 후방에서 물 흐르는 듯한 연계라니. 압박이 약했던 것도 아닌데 그걸 자잘하게 주고받으며 풀어 나온 장면이었다.


빈틈없던 뮌헨 선수들이 어수선해지고 있다. 저쪽에서도 상당히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설마 로스 카운티가 자신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것을 가지고 나올 줄 누가 알았겠냐고.”


벤치에서 급히 달려 나온 과르디올라가 크게 소리를 질렀고, 그 지시를 본 뮌헨 선수들이 압박 대형을 살짝 뒤로 물리기 시작한다.


현역을 대표하는 불세출의 명장다운 대처 속도. 델샤드를 올려서 중앙 숫자를 늘리는 깜짝 패턴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르디올라에게 읽힐 것이다.


고작 델샤드를 올리는 걸로만 끝이 난다면 말이다. 프리먼은 델 레오네가 그럴 인물이 아니란 걸 잘 안다.


“람이 좀 더 측면으로 붙는군.”


캐리를 더 확실히 잡아두기 위한 움직임.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유의미한 효과를 어느 정도 거둘 수 있다. 계속 저기로 끌어당기면 뮌헨이 구사하는 좌우 인버티드 풀백의 균형이 흔들릴 테니까.


“빌드업할 때는 람이 다시 중앙으로 들어가긴 하겠지만, 계속 캐리가 거슬리겠지. 그거로도 충분해. 중간에서 볼이 끊기는 혼전 상황에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고.”


다시 볼이 아래로 내려오면서 진행되는 로스 카운티의 후방 빌드업. 아까와 다르게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거리를 둔 채 길목을 지키는 뮌헨 선수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대형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탈리안이 그렸던 청사진이 한눈에 드러나는 광경이었다.


“곳곳에 족쇄들이 있어.”


자칫하면 캐리는 처참히 뭉개질 수도 있었다. 뮌헨에는 딩월에 버금가는 하드워커, 아르투로 비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달이 빠르게 합세하면서 람과 함께 양각으로 싸 먹는 구도. 첼시전에서 오스카와 윌리안에게 당했던 그 끔찍한 상황이 재연출되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뮌헨 상대로 이 방법은 발칙하기 짝이 없는 짓거리에 가까웠다.


그러나 비달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델샤드가 그의 발을 묶고 있으니까. 캐리 쪽으로 움직이면 중앙에 한 명을 무방비로 두게 되는 꼴이니까.


또한 전방에는 마틴과 톰슨이 위에 걸쳐 있다. 뒷공간을 신경 쓰이게 만들어 상대 수비진을 뒤로 물리게 만드는 건 로스 카운티가 즐겨 쓰는 방식이다.


마틴은 마르티네스의 발목을 잡고, 톰슨은 반대편에 포진하여 알라바에게 족쇄를 건다. 마틴과 톰슨이 좌우로 넓게 벌리면서 생긴 중앙의 틈새로 딩월이 침투할 우려가 있으니, 보아텡이 내려가 채워줘야 한다.


뮌헨 수비 세 명이 후방에서 발이 묶이고 자연스레 간격이 벌어지면서 압박이 헐거워진다. 거기에다 비달마저 위치 고정이 강제되었으니 캐리를 이용해서 계속 전개를 해나갈 수 있다.


“람이 만만한 수비수는 아니라서 마구 날뛰긴 어려울 것 같지만.”


잭이 뮐러의 압박을 피해 샌더스에게 전달하고, 우측에서 좌측으로 이동하는 볼. 뮌헨 선수들의 대형도 점차 좌측으로 쏠린다.


터치라인까지 붙은 패터슨이 볼을 받지만, 캐리로 향하는 경로를 막아선 로번을 보고서 다시 얀손에게 패스를 되돌려준다.


순간, 델샤드가 오른쪽으로 빠지는 움직임이 포착되었고, 비달이 그의 뒤를 쫓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직선으로 찌르는 얀손의 패스.


“오.”

203. 전술 이미지 2 (바이에른 뮌헨전).jpg

다이렉트로 뚫리는 뮌헨의 포위망. 블랜차드가 볼을 받아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서지만, 알론소가 발을 건드리며 고의적인 파울을 저지른다.


조금만 늦었다면 돌파를 허용하거나 옐로카드를 받을 수도 있었다.


“와.”


프리먼은 감탄사만 연신 내뱉었다. 오늘 몇 번이나 내뱉을지 예측조차 되지 않았다.


델샤드가 움직이면서 앞을 가로막던 비달을 옆으로 치웠고, 동시에 블랜차드가 직선 패스를 받을 수 있는 위치로 이동해서 뮌헨의 압박을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설령 비달이 쫓아가지 않았다 해도 문제없다. 그대로 마크가 풀린 델샤드가 받아서 다음 수를 두면 될 일이니까. 델 레오네는 그게 가능한 감독이다.


풀백 하나를 중앙에 놓은 것만으로도 이런 다채로운 상황들이 나오다니. 캐리를 옆으로 빼서 람을 끌어들인 건 단지 빙산의 일각이었다.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약속 플레이 같은데. 얼마나 더 많은 패턴이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아.”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만큼 매끄러운 패스가 된다는 게 신기했다. 거의 바이에른 뮌헨 급은 되어야 할 법한 플레이를 로스 카운티가 보여주고 있다.


어지간한 강팀들조차 과르디올라의 강도 높은 압박을 풀어낼 자신이 없어서 차분한 빌드업을 포기하고 롱볼 위주의 전개를 채택하는데, 변방의 스코티시 팀이 잘게 썰어 나가는 걸 보여주고 있다.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흐를 동안 로스 카운티는 핵심 전력을 최대한 뺏기지 않고 지켜냈다. 충성심을 보이며 잔류한 선수들은 삼 년간 꾸준히 배워나가면서 감독의 철학에 걸맞은 형태로 성장했다.


그 결과, 이런 고난도 빌드업 플레이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인가.


기류가 변하기 시작했다. 초반만 해도 뮌헨이 찍어 누를 것 같은 일방적인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팽팽한 공방전이 일어날 듯한 조짐이 느껴졌다.


계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델샤드의 변칙적인 배치와 그로 인해 발생한 균열. 이탈리안이 설계한 작전으로 흐름을 가져온 거다.


“과르디올라도 뭔가를 보여주겠지.”


로스 카운티의 팬인 건 둘째 치고, 세계 정상급 감독과 현재 가장 뜨거운 신예 감독 간의 전술 대결. 칼럼니스트로서 심장이 미치도록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더욱 흥분되는 건 이 모든 것들이 고작 7분밖에 흐르지 않은 시간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치열하게 주고받을 건 당연한 거고, 어쩌면······ 역사에 남을 명경기가 또 하나 탄생할지도 몰라.”


이런 부분에서 프리먼의 예감이 빗나간 적은 없었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매번 잊지 않고 찾아와 주시는 모든 분들께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kkatnip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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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648 39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5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92 34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43 36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6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9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5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5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6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9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8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3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72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3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6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6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7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6 40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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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9 3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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