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일반소설

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1,082,583
추천수 :
33,838
글자수 :
1,875,939

작성
23.09.15 23:55
조회
1,065
추천
45
글자
22쪽

187. 새로운 국면 (5)

DUMMY

“진정한 리더는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다고 하죠? 그가 오기 전까지 제 의견은 철저히 묵살당하기만 했습니다. 블랜차드와 패터슨을 적극적으로 추천해도 그들이 한동안 리저브에서만 맴돌았던 이유였죠. 제가 힘이 있었다면 그들은 더 일찍 데뷔할 수도 있었어요. 권력보다 능력을 알아주는 리더가 오면서 비로소 모든 게 정상적으로 돌아간 거죠. 심지어 나이를 불문하고서 인재를 기용하는 건 아무나 못 할 겁니다. 아, 이건 제 얘기가 아니에요. 물론 저도 그의 추천으로 중책을 하나 맡게 됐지만, 어리고 성격이 유별나다는 이유로 말단 스카우트에 머물러서 푸대접만 받다가 능력을 인정받은 친구가 한 명 있거든요. 그가 누구를 영입하는 데 도움을 줬는지 알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 유소년 총괄 책임자 ‘케빈 호프(Kevin Hope)’ -


*******


< 15-16 Scottish Premiership 16 Round >

로스 카운티 : 마더웰

2015년 12월 5일 (토) 15:00

햄던 파크 (관중 수 : 43,465명)



[로스 카운티 / 4-1-2-3]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 필립 로스

CM : 제임스 블랜차드 / 대런 케틀웰

DM : 알렉산더 캐리

DF : 고든 스미스 / 대니 패터슨 / 스콧 보이드 / 스티브 샌더스

GK : 마크 브라운



조지 맥도넬의 펍.


“오늘은 골 잔치구먼.”


“그러게. 실점을 내준 건 좀 짜증 나지만, 볼거리가 많아서 즐겁긴 했어.”


여느 때처럼 경기를 시청 중인 주인장과 술집에 모여든 관중들.


후반전 70분이 넘어가는 시각, TV가 비추는 전광판에는 4 : 2의 숫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여섯 골, 그들의 말대로 많은 득점이 나왔던 공방전.


첫 신호탄을 터뜨렸던 건 의외로 마더웰이었다.


멀리서 올린 얼리 크로스를 보이드 앞에서 잘라먹는 헤더 슛으로 연결하면서 기습적인 선제골.


이후엔 스미스 쪽이 돌파로 뚫리면서 이를 수습하려던 패터슨이 태클을 시도하다가 페널티 킥을 헌납하며 추가 점수까지 내줬다.


두 점 차 리드. 아무도 제지 못 할 것 같았던 로스 카운티의 고공 행진이 허무하게 막을 내리나 싶었지만, 앞서 본 스코어대로 마더웰은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에 실패하고 말았다.


상황을 뒤집어 버린 건 로스 카운티의 7번이었다.


유리함을 가져온 마더웰이 집중을 놓아버린 탓인지, 워낙 궤적이 예리해서 잡을 수가 없었던 건지.


앞으로 기습적으로 보낸 롱패스가 그에 맞춰 침투한 필립 로스에게 정확히 도달했고, 낙하하는 볼을 받아 옆으로 보낸 땅볼 크로스는 잭 마틴이 깔끔하게 받으면서 추격 골을 밀어 넣었다.


이어서 얻은 우측 코너킥에서 올린 볼은 수비가 먼저 걷어냈으나, 박스 바깥에 있던 케틀웰이 루즈볼을 잡아 다시 캐리에게 건네주었고.


캐리는 왼발로 감아 차는 아웃프런트 킥으로 문전에 크로스를 붙여주는 기교를 보여주면서 마틴의 멀티 골을 어시스트했다.


그의 왼발 마법은 동점으로 그치지 않았다.


오른쪽 박스 외곽 가까운 거리에서 프리킥을 얻은 캐리는 수비벽을 살짝 넘기는 슛으로 키퍼가 반응하지 못하는 우측 상단 구석에 꽂아 넣으며 기어이 역전까지 해내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얻은 코너킥. 키퍼가 나와 펀칭한 것이 비껴 맞아 아래로 떨어졌고, 박스 안에서 벌어진 난전 도중 보이드가 먼저 발로 차 넣으면서 로스 카운티의 두 점 차 리드. 양 팀의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오늘 네 개의 골에 전부 관여한 프리미어십 최고의 레지스타, 알렉산더 캐리가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나갑니다.]


꾸준히 좋은 활약을 유지하던 그였지만, 오늘은 흐름을 지배했다는 표현이 무척이나 어울렸다.


[마더웰의 공격입니다. 측면에서 좁혀 들어오는 라이오넬 아인워스으! 아앗, 예리한 직선 중거리 슛이 브라운 키퍼를 꿰뚫습니다!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는 마더웰! 서둘러 볼을 주워 들며 추격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상대도 만만치 않았다.


“에이, 슛 각을 너무 쉽게 내줬어.”


“이번 경기는 브라운이 꽤 고생하는걸.”


이렇게 된 원인은 역시 주전 수비진이 휴식으로 빠진 탓이 클 것이다. 로스 카운티가 견고한 요새로 거듭날 수 있던 건 폰투스 얀손의 제공권과 아메드 델샤드의 철벽 수비, 이 둘의 지분이 매우 클 테니까.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경기였다.


그럼에도 지켜보는 사람들은 조급해 보이지 않았다. 평소 호들갑을 잘 떨던 맥도넬조차 평온했다.


왜냐하면 그동안 승점을 많이 벌어놓은 덕에 당장은 큰 위협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판을 지더라도 셀틱에 순위를 역전당하진 않는다.


아니, 애초에 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장소는 무수한 홈팬들이 성원을 보내주는 햄던 파크, 주전이 대거 빠져도 네 골의 화력을 퍼부을 수 있는 선수들.


무엇보다 감독이 안토니오 델 레오네인데 왜 걱정을 해야 하는가?


“하······ 세 골이나 내주다니. 이건 좀 아닌데.”


시즌 최소 실점 기록 달성에 집착하고 있던 케니 풀러는 좀 초조해 보이긴 했지만.


[마더웰의 골킥. 중앙에서 치열한 싸움. 볼을 뺏는 대런 케틀웰! 바로 앞으로 보내는 로빙 패스! 블랜차드가 올라가 있습니다!]


[블랜차드와 부딪쳤던 수비가 균형을 잃고 무너졌어요!]


“저 녀석의 힘은 진짜야!”


“가자고! 부숴버려!”


[무리하게 발을 뻗다가 맞이한 위기! 물러서는 최종 수비수와 일대일! 볼을 몰며 들어갑니다! 블랜차드! 제임스 블랜······ 아앗! 앞으로 밀어주는 패스!]


“엉?”


[수비의 시선을 피해 들어간 잭 마틴! 달려드는 키퍼의 옆으로 침착하게 굴려 넣는 고오오오올! 해트트리익! 숫사슴 군단의 킬러가 마더웰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달성합니다!]


[그보다 뒤에서 달려오던 마틴을 대체 어떻게 본 거죠? 등 뒤에 눈이라도 달렸나요?]


“어쩐지 오늘 마틴의 폼이 예사롭지 않더라니까!”


“패스가 정말 좋았어. 정확히 침투하는 타이밍에 받기 좋게 넣어주잖아. 첼시전도 블랜차드가 저렇게 맥긴한테 패스하면서 골을 만들었었다고.”


잘 나가는 연고지 팀 덕에 펍 내부는 매주 잔치를 즐기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후반 80분에는 팬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피치를 나오는 잭 마틴을 대신해 리암 보이스가 투입되었다.


해트트릭을 이룬 영웅에게 환호를 보내주기 위한, 동시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마무리하기 위한 목적의 교체였겠으나.


[로스 카운티, 여유롭게 볼을 돌립니다. 급해진 건 마더웰 쪽이죠. 블랜차드의 패스가 측면의 스미스에게. 스미스, 길게 얼리 크로스. 헤더어어! 고오오올! 리암 보이스의 헤더 슛이 키퍼의 손을 피해 들어갑니다!]


“이야!”


“저 친구도 해냈어!”


증명에 목말라 있던 선수는 그런 역할로 끝마치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고개를 떨어뜨리는 빌 매칼리스터 감독. 도저히 방법을 못 찾겠다는 표정이네요. 패배를 인정하고 맙니다.]


대담한 공격 축구로 사고 한 번 크게 칠 뻔했던 마더웰이었으나, 끝내 저력에서 밀려나고 만 셈이었다.



=============================

< 로스 카운티 6 : 3 마더웰 >

잭 마틴(22‘, 36‘, 77‘)

알렉산더 캐리(50‘)

스콧 보이드(57‘)

리암 보이스(86‘)

+++++++++++++++++++++++++++++

존 서튼(7‘)

스콧 맥도날드(PK 15‘)

라이오넬 아인워스(73‘)


=============================


*******


다음 날.


기분 좋은 승리를 추가했음에도 감독과 수석코치의 낯빛은 어두워 보였다.


“빠르면 두 달 남짓, 적어도 석 달 정도는 잡고 보는 게 편할 겁니다.”


대런 케틀웰의 검사를 마친 팀 닥터의 진단 결과는 무릎 부상.


발단은 마더웰 선수들과 잦은 몸싸움을 벌이던 중 문제가 발생한 것으로 추측. 이로써 모든 것이 좋게 끝난 경기는 아니게 되었다.


“골치 아프군.”


감독실로 돌아온 델 레오네는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비록 주전에서 밀려났어도 케틀웰이 맡아온 역할은 절대 작지 않다. 3~4일 간격으로 계속 경기를 치러야 하는 일정 속에서 선수들이 체력 관리를 할 수 있던 건 서브 멤버들이 잘 받쳐준 덕분.


특히 리차드 브리튼의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건 케틀웰이 유일하다. 이 말은 수비 밸런스를 책임질 3선 자원이 브리튼 하나만 남았다는 얘기다.


블랜차드에게 임시로 그 역할을 맡길 수는 있겠지만, 재능 낭비일뿐더러 잘 수행해 낼 거란 보장도 없다.


그가 작년에 케빈 더브라위너나 에베르 바네가를 잘 괴롭히긴 했으나, 그건 넘치는 승부욕으로 거머리처럼 달라붙었던 것이지 구역을 지키는 수비 기술 자체가 뛰어난 선수는 아니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닐 스튜어트가 조심스레 물었고, 감독은 천천히 입을 뗐다.


“대런은 돋보이진 않았지만, 우리에게 정말 고마운 존재였지. 작년에도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 공백을 훌륭히 메워주었고 말이야.”


핵심이던 알렉산더 캐리가 삼 개월 부상으로 이탈했을 때, 로스 카운티는 4-2-3-1 시스템으로 급변하여 난관을 극복했었다. 당시 케틀웰이 브리튼의 파트너로 뛰면서 잘 버텨준 덕분이었다.


그런 활약을 눈여겨본 몇몇 구단이 케틀웰을 원하기도 했는데, 그는 올해에도 잔류를 선택했다. 그저 로스 카운티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부상당한 적도 거의 없어서 벤치에 두기만 해도 든든한 전력이었는데, 이번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셈이다. 선수도 구단도 모두.


“이대로 가면 박싱 데이까지는 어찌해서 버틴다 해도, 이후에 무너져 내릴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겠지.”


브리튼의 나이도 이젠 32세. 서른 줄에 접어든 노장에게 모든 걸 떠맡기는 건 위험부담이 크다. 당장은 그가 주전으로 뛰니 두드러지지 않아 보인다 해도 방치하고만 있을 수 없는 문제다.


자칫하다 그마저 일정을 버티지 못하여 쓰러진다면 3선은 저지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유리한 고지에 올라서 있는 로스 카운티지만, 아래에서 악착같이 쫓아오고 있는 팀들이 있다. 미끄러지면 발목을 잡히는 건 순식간.


“데미안 생클랜드······ 그 녀석을 믿어봐야 할까요?”


스튜어트의 말에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데미안은 내 기대치만큼 해주고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섣불리 등 떠밀었다가 성장을 망쳐버릴 수도 있네.”


“그러면······.”


“1월에 겨울 이적 시장이 존재하는 건 이런 때를 위한 것이겠지.”


“영입으로 보강하겠단 말씀입니까?”


이탈리안은 눈을 감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런이 돌아올 때까지 버티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닐 것 같군.”


그가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닐, 아마도 올해부터 몽고메리 씨가 꾸준히 추적하고 있는 애버딘 선수가 한 명 있을 것이네. 그 프로필을 지금 정리해서 가져와 달라고 전해주겠나?”


“애버딘······ 예, 알겠습니다.”


임무를 받은 스튜어트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허둥지둥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감독은 혼잣말하듯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3선이 노쇠화 되어가고 있던 참이었으니, 슬슬 미래를 준비해 둘 필요는 있겠지.”


*******


2015년 12월 7일.


챔피언스 리그 마지막 조별 경기 전, 샤흐타르 도네츠크 측 컨퍼런스.


“햄던 파크를 방문한 소감이 어떤가요?”


“편안합니다.”


“편안하다고요?”


“네. 우리는 원정이 더 편하니까요.”


샤흐타르 도네츠크의 감독, 미르체아 루체스쿠(Mircea Lucescu)는 그렇게 답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로스 카운티를 향한 도발도, 자신감을 내비친 발언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원정이 더 편하다고 한 것뿐이었다.


본래 홈구장이었던 돈바스 아레나에서 쫓겨난 지도 어언 1년.


친러시아 반군과 우크라이나 정부군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에 휘말리면서 강제로 연고지를 벗어나야 했던 그들은 아레나 리비우를 임시로 사용하게 되었는데.


하필 그곳은 라이벌 팀 디나모 키이우의 땅이었고, 샤흐타르는 홈구장에서 야유에 시달리는 수모를 겪는 중이었다.


졸지에 피난민의 신세가 되어버린 가엾은 선수들이었지만, 서로 앙숙이었던 관계는 이런 상황에서도 가차 없는 모양이다.


작년에는 그래도 챔피언스 리그 16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으나, 올해는 4위로 마감하며 조별 단계 탈락 확정. 희망을 품으며 바라던 종전은 기약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돈바스에서 1,000km나 떨어진 곳을 매번 이동해야 하면서도 끝끝내 홈팬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비극적인 처지.


구단 증축으로 인해 홈구장으로 가는 거리가 늘어난 건 로스 카운티도 마찬가지였으나, 햄던 파크는 숫사슴들의 힘찬 응원가가 울려 퍼진다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똑같이 빌려 쓰는 경기장, 그러나 대조되는 분위기.


“더 궁금한 점이 있나요?”


“······.”


그리고 편히 내려놓은 듯한 샤흐타르 감독의 반응에 스코틀랜드 기자들은 차마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엄두를 내지 못했다.


*******


< 15-16 UEFA Champions League ‘Group E’ Match >

로스 카운티 : 샤흐타르 도네츠크

2015년 12월 8일 (화) 19:45

햄던 파크 (관중 수 : 46,596명)



[로스 카운티 / 4-1-2-3]

FW : 존 맥긴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제임스 블랜차드 / 리차드 브리튼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스콧 보이드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샤흐타르 도네츠크 / 4-2-3-1]

FW : 에두아르도 다실바

AM : 베르나르드 / 알렉스 테이셰이라 / 마를로스

CM : 타라스 스테파넨코 / 프레드

DF : 이스마일리 / 올렉산드르 쿠체르 / 이반 오르데츠 / 다리요 스르나

GK : 안톤 카니볼로츠키



미스터 딩월 -


“더 크게!”


미스터 딩월 -


“리듬에 맞춰서! 한 번 더!”


햄던 파크에 모여 열정을 쏟아붓는 데 한창인 숫사슴들. 그들의 응원단장인 피터 블랙이 앞선에서 북을 열심히 두드리며 목이 터져라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지금 그들이 힘껏 소리 내고 있는 건 에이든 딩월을 향한 콜네임. 그가 멋들어지게 선제골을 넣은 것에 대한 화답이었다.


좌측으로 치우쳐진 간접 프리킥 위치. 캐리의 감아 찬 크로스가 파 포스트로 쇄도하는 블랜차드의 발에 닿았고 키퍼가 반사적으로 쳐냈지만, 세컨드 볼을 향해 달려드는 딩월의 다이빙 헤더 슛까지 막을 순 없었던 것이다.


응원 소리를 제대로 들었는지 딩월은 숫사슴들이 있는 스탠드를 쳐다보며 두 팔을 열심히 흔드는 제스처를 보여주었다.


“핫, 정말 긍정적인 에너지로 똘똘 뭉친 녀석이야.”


그 모습에 블랙은 북을 두드리다 말고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무난한 흐름. 로스 카운티는 레알 마드리드, 첼시와 호각세를 다퉜던 팀답게 홈에서 주도권을 잡아나가며 승기를 굳히는 중이었다.


햄던 파크에 모인 관중들은 저번 마더웰전과 판이한 수준의 수비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휴식한 델샤드가 얼마나 공격수 입장에서 두려운 존재인지 알 수 있는 경기였다. 1차전에서 부진했던 타이송을 대신해 베르나르드가 출전했음에도, 그조차 필드에서 지워져 버리고 말았으니까.


상대가 샤흐타르라서 더 투지를 발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볼 때 델샤드는 다음 시즌이 고비야.”


토드 홉킨스의 말이었다.


“다른 팀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거든. 생각지도 못한 큰 곳에서 눈독 들이고 있을지도.”


“델샤드뿐이겠어? 챔피언스 리그 16강 진출은 거의 코앞이고, 이런 기세면 선수들 전부 몸값이 더 치솟아 오르겠지.”


블랙이 말했다.


“챔피언스 리그 16강······ 하! 참, 이렇게 쉽게 얘기할 거리가 아닌데. 이 조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고. 근데 더 신기한 건 뭔지 아나, 토드? 다들 쉽게 수긍하고 있다는 거야. 심지어 우리조차도. 이 팀이 그동안 정신 나간 일들을 여간 벌여온 게 아니란 얘기지.”


“로스 카운티라면 가능하다, 혹은 당연하다 여겨지게 되었다는 거니까.”


두 사람은 흡족한 얼굴로 경기를 마저 지켜보았다.


샤흐타르의 코너킥 상황.


만회 골을 노리고 센터백까지 올라온 그들이었지만, 브라운 키퍼가 재빨리 뛰어들어 간발의 차로 공중볼을 낚아챈다.


측면을 보더니 주저하지 않고 길게 볼을 내던지는 브라운. 톰슨이 서서히 시동을 걸며 나아가고 있었다.


“가라, 톰슨!”


주먹을 쥐며 외치던 블랙은 그대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가로막아 선 이스마일리를 두고 길게 치면서 질주를 시작하는 톰슨. 마찰하는 두 어깨. 그것도 잠시, 몸싸움을 버텨낸 그가 앞으로 빠져나가며 두 선수의 거리가 순식간에 벌어진다.


최후방에 자리 잡고 있던 스테파넨코가 몸을 날렸지만, 한발 빠른 터치로 또다시 치고 나가며 허공에 슬라이딩 태클을 하는 꼴이 되고 만다.


수비가 아무도 남지 않은 샤흐타르의 진영.


와아아 -


쏟아지는 함성을 들으며 무시무시한 속도로 골문까지 다다르는 톰슨. 달려오는 골키퍼마저 옆으로 따돌리고는 빈 골대에 굴려 넣는 마무리로 추가 골을 기록한다.


“저 녀석은 나날이 대단해지는 것 같아.”


블랙은 감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측면으로 빠질 줄밖에 모르던 놈이 올해는 자신감이 붙은 건지, 감독이 지시를 내린 건지 중앙으로 파고드는 횟수도 많이 늘었고. 저렇게 과감하게 마무리하는 능력도 점점 좋아지고 있단 말이지.”


“단순히 스피드뿐만 아니라 상대 수비수와 경합을 이겨내고 전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의미가 크지.”


“내 말이 그거야. 발은 그대론데 몸싸움이 정말 많이 늘었어. 작년만 해도 툭 치면 픽하고 나가떨어지던 종잇장 같은 놈이었는데.”


“요즘은 톰슨의 성장을 보는 게 또 하나의 낙이 되었네.”


홉킨스가 말했다.


“단순히 속공의 용도로만 쓰이는 게 아니라 팀의 돌격대장으로서 걸맞은 모습이 되어가는 걸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재미가 있거든.”


블랙 또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나도 자네의 말에 동감해.”



=============================

< 로스 카운티 2 : 1 샤흐타르 도네츠크 >

에이든 딩월(55‘)

앤드류 톰슨(68‘)

+++++++++++++++++++++++++++++

다리요 스르나(81‘)


=============================



이미 탈락을 선고받은 샤흐타르였지만, 그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스르나는 팀의 주장으로서 그 모범을 보여주었다.


프리킥에서 브라운 키퍼가 닿을 수 없는 완벽한 구석에 꽂아 넣으며 만회 골을 기록했고, 이어서 예리한 회심의 크로스를 올려서 동점 골을 만들 뻔하기도 했다.


델샤드가 공격수보다 먼저 앞으로 나가 헤더로 자르지 않았다면 아마 그랬을 것이다.


알바니아산 수비수는 끝까지 악몽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경기가 끝나자, 벤치에 있던 선수들과 코치진들까지 전부 피치로 들어와 16강을 자축했다.


“수고했어, 아메드.”


주장 브리튼은 먼저 델샤드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후반전 막판의 그 크로스를 막지 못했다면 흐름이 이상해질 수도 있었다. 만일 비겼다면 첼시의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도 있었다.


“······.”


승리에 공헌한 철벽의 수비수는 허리춤에 두 손을 올려놓고 진출을 기뻐하는 팀원들을 조용히 관망했다. 아무 상관도 없는 구경꾼처럼.


그러던 중 어떤 그림자가 델샤드의 등 뒤로 다가왔고, 인기척을 느낀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스르나가 그를 향해 손을 건네고 있었다.


“환상적인 수비였다. 당신의 플레이에 경의를 표하지.”


“고맙군.”


스르나의 손을 맞잡는 델샤드.


그리고 두 노장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깊은 포옹을 나누었다.


그걸 발견한 카메라맨은 재빨리 그 둘의 모습을 클로즈업하여 전 세계에 방영했고, 샤흐타르전 뉴스를 장식하는 메인 사진의 모델은 델샤드와 스르나가 되었다.


*******


한편, 런던의 스탬퍼드 브리지.


전광판의 스코어는 1 : 1.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선전하고 있는 첼시였지만, 무리뉴의 표정은 심각해 보였다.


로스 카운티의 소식을 접한 게 분명했다.


[무리뉴가 좌절합니다. 여기서 레알 마드리드를 이긴다 해도 1점이 모자라요! 햄던 파크의 패배가 끝내 그를 수렁으로 빠뜨리고 맙니다! 첼시가 조별 단계에서 결국 무너집니다!]


무조건 탈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챔스 조별 순위.jpg

[ BBC ] 첼시가 결국 E조의 희생양이 되다


[ The Guardian ] 로스 카운티,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기적을?


[ Sky Sports ] 조제 무리뉴 “첼시의 조별 리그 탈락은 이변이 아니라 예정된 일이었어.”


[ The Sun ] 첼시의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무리뉴를 내치고 델 레오네를 선임할지 고민 중


[ Scottish Sports ] 로스 카운티의 유럽 여정은 언제나 짧게 끝나지 않는다



“첼시가 탈락한 이유요? 저번에도 누차 얘기한 겁니다. 로스 카운티가 4 포트로 들어가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유로파 리그 챔피언이었습니다. 아무리 리그 랭킹을 따진다지만, 챔피언을 4 포트에 넣다니요? 융통성이 없어도 너무 없는 결정이었어요. 로스 카운티가 제대로 된 배정을 받았다면 첼시가 떨어질 일도 없었겠죠. 그런 점에서 무리뉴는 잘못된 조 편성의 피해자라고 봐야 합니다.” - 스카이 스포츠 해설 및 축구 평론가 ‘제이미 캐러거(Jamie Carragher)’ -


캐러거의 발언이 직접적으로 작용한 건 아니겠지만,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여론이 높아지면서 UEFA 측을 압박하기 시작했고.


결국 UEFA는 다음 해인 2016/17 시즌부터 유로파 리그 우승팀에게 톱시드를 부여하는 룰 개정을 하기에 이른다.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을 넘어 축구계 전체에 로스 카운티의 영향력이 끼치게 된 셈이었다.


작가의말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께는 감사할 따름이고

그렇지 못한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진도에 대한 독자분의 불만도 이해합니다.

다만 제 글이 본래 호흡이 빠른 편은 아니었고

갑자기 템포를 바꾸면 흐름이 꼬일 수도 있어

이 점에 대해선 너른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연재 속도에 대한 부분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사실 그것만 되어도 어느 정돈 해결될 텐데

답답하게 만들어 드려서 죄송합니다.


즐거운 주말이 되시길 바라며

다시 한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jjkwjwxi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7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015/16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스포일러 주의) 23.01.14 559 0 -
공지 2014/15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스포일러 주의) +4 18.09.04 2,082 0 -
공지 연재 주기에 관한 공지입니다 +4 18.04.11 3,272 0 -
공지 독자분들께 공지 하나 드립니다 +11 18.02.08 5,472 0 -
공지 2013/14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9 17.12.19 18,424 0 -
203 203. 공간 싸움 (4) +5 24.04.07 481 36 25쪽
202 202. 공간 싸움 (3) +6 24.03.18 575 35 25쪽
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644 39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1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8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8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5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4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5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8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8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1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71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2 42 26쪽
»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6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4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7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6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2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8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9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2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69 50 2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