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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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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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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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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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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188. 계몽의 시대

DUMMY

2015년 12월 14일, 구단주실.


“매번 떨리는 순간이지만······ 구단주로서 아니, 로스 카운티의 팬으로서 안 볼 수는 없지.”


로이 베넷은 길게 심호흡하며 TV를 켰다.


[챔피언스 리그 16강 조 추첨을 위해 찾아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마침 시작된 방송. 회장 출마를 앞둔, FIFA 사무총장 잔니 인판티노(Gianni Infantino)가 밝은 얼굴로 맞이한다.


[이제 누가 누굴 꺾고 올라갈지, 어느 팀이 결승전까지 도달할지 예상하는 건 불가능할 겁니다. 16강까지 온 시점에서 말이죠. 쟁쟁한 팀들만이 살아남아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형식적인 멘트겠지만, 베넷은 다시금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그 쟁쟁한 팀 중에 로스 카운티가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니.


[그러면 오늘 추첨식에 참여할 열여섯 팀의 간단한 소개부터 보고 가시죠.]


인판티노의 말이 끝나자, 화면이 전환되며 각 16강 팀의 조별 단계 대표 활약상을 짧게 편집한 영상이 나왔다.


로스 카운티의 차례가 되자 레알 마드리드 2차전에서 나왔던, 제임스 블랜차드의 감각적인 원터치 패스를 받아 들어간 앤드류 톰슨의 골이 재생된다.


“하······ 다시 봐도 정말 환상적인 장면이야.”


영상이 끝난 뒤에는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에서 무려 858경기를 소화하고 은퇴한 살아있는 전설, 하비에르 사네티(Javier Zanetti)가 특별 추첨자로 등장하는 시간을 거쳐 가벼운 규정 설명까지 진행되었다.


[자, 그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올라온 16강. 시드 팀 그룹과 비시드 팀 그룹은 다음과 같습니다.]



< 시드 팀 그룹 - 조 1위 >

맨체스터 시티

AT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레알 마드리드

파리 생제르맹

바이에른 뮌헨

레버쿠젠


< 비시드 팀 그룹 - 조 2위 >

PSV 에인트호번

유벤투스

AS 로마

올랭피크 리옹

로스 카운티

아스날

헨트

벤피카



베넷의 시선이 시드 팀 그룹 명단으로 향했다.


같은 조에 속했던 레알 마드리드를 제외하면 일곱 팀. 저 중에 로스 카운티의 상대가 있다.


어느 하나 만만한 곳이 없다.


그나마 나은 데를 고른다 해도 마찬가지.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작년 유로파 리그 4강까지 올라왔던 팀이다. 아니면 레버쿠젠? 현 분데스리가 3위에 위치한 전통 명문 팀,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대진이라도 이루어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 추첨을 시작해 보죠. 과연 올해 챔피언스 리그 결선 토너먼트의 본격적인 막을 열게 될 첫 순번의 팀은 어떤······ 오우.]


챔스 공인구로 만들어진 추첨 볼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인판티노가 카메라를 향해 접힌 종이를 펼쳐 내보였다.


[로스 카운티입니다.]


“아······.”


[최근 가장 뜨거운 팀이죠. 작년에는 구단 창단 이래 첫 출전한 유로파 리그에서 우승하는 대기록을 달성. 마찬가지로 올해는 구단 역사상 최초로 출전하는 챔피언스 리그에서 첼시를 누르고 16강에 올라오는 저력을 보여줬습니다. 그들이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나와 버린 이름. 베넷은 숨죽이며 TV 화면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괜찮아. 오히려 첫 번째로 나와서 선택의 폭은 넓어졌어.”


[그럼 상대할 팀을 뽑을 차례네요. 로스 카운티와 성사될 대진은······.]


“강적들만 남은 상태에서 뽑히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게······.”


[파리 생제르맹입니다.]


“······.”


[파리 생제르맹이 유럽 대항전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1995년 UEFA 컵 위너스 컵에서 우승했던 게 최근이었습니다. 대외 경쟁력을 꾸준히 키워온 그들은 올해 챔피언스 리그에서 성과를 이루기 위해······.]


인판티노의 설명과 함께 로스 카운티 측을 비추는 카메라. 아무 생각이 없는 듯 해탈한 얼굴의 대런 코너 단장과 그와 함께 대동하여 심각한 표정으로 볼펜 끝을 물고 있는 마리 코넬의 모습이 보였다.


“하하하.”


[로스 카운티와 파리 생제르맹. 상당히 기대되는 매치업인 것 같네요.]


“히히.”


베넷은 그냥 웃어버렸다. 그리고 몸에 힘이 빠졌는지 의자 뒤로 몸을 눕히며 천장을 쳐다보았다.


“······근데 뭐, 긍정적으로 보면 못 받아들일 것도 아니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팀에 과분하다 못해 넘치는 실력자, 안토니오 델 레오네. 만일 이 순탄치 않은 대진운이 그 사람을 얻은 대가라고 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다.


첼시와 레알 마드리드가 낀 죽음의 조에서도 통과 못 할 거라던 모두의 전망을 보란 듯이 깨뜨리고 헤쳐 나왔는데, 까짓것 무슨 상관일까?


생각해 보면 끝난 뒤 언제나 웃는 건 로스 카운티였는데 말이다.


“다 필요 없고, 그냥 토니만 믿으면 돼.”


그렇게 생각하자 베넷은 다시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었다.



< 챔피언스 리그 16강 추첨 결과 >

로스 카운티 vs 파리 생제르맹

PSV 에인트호번 vs 바르셀로나

SL 벤피카 vs 바이에른 뮌헨

KAA 헨트 vs 맨체스터 시티

올랭피크 리옹 vs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AS 로마 vs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아스날 vs 레알 마드리드

유벤투스 vs 바이어 04 레버쿠젠


*******


< 15-16 Scottish Premiership 17 Round >

로스 카운티 : 던디 유나이티드

2015년 12월 15일 (화) 20:00

햄던 파크 (관중 수 : 46,927명)



[로스 카운티 / 4-1-2-3]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존 맥긴 / 리차드 브리튼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대니 패터슨 / 폰투스 얀손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조지 맥도넬의 펍.


“난 개인적으로 델 레오네 감독에게 고마운 부분이 있어.”


경기 전 크레이그 던컨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우리 팀을 좀 먹던 얼간이들을 죄다 쫓아버리고 휴스턴을 다시 돌아오게 해줘서 말이네. 요새 유나이티드의 경기력이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걸 알고 있나?”


현 던디 유나이티드의 감독 피터 휴스턴. 시즌 초반에 로스 카운티를 만났을 때는 속수무책으로 패배하긴 했지만, 그 이후로 안정적인 4위권에 들며 팀을 잘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중이었다.


승승무무승, 최근 5경기 성적. 특히 마더웰에 세 골을 내리 내줬다가 끝까지 추격하여 4 : 4로 만들어 낸 경기는 명승부로 회자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뿐만 아니라 즐거운 경기력. 그간 팀의 행보에 실망하여 등을 돌렸던 던디 유나이티드 팬들도 상당수 돌아오게 할 만한 수준이었다.


지금 싱글벙글하고 있는 던컨처럼 말이다.


“질 판도 비기는 저력을 보여주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 짐 맥클린의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려는 조짐이 보여.”


확실히 과거에 이뤘던 커리어가 말해주듯, 휴스턴은 난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 셈이다.


던컨은 전임 감독 알란 윌슨이 경질되지 않고 계속 던디 유나이티드를 맡았다면 무조건 강등당했을 거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건 나름대로 신빙성 있는 얘기였다.


그 형편없는 졸장을 ‘던디 쇼크’ 사건으로 보내버린 게 델 레오네였으니 고맙다고 말한 것이다.


“로스 카운티는 영원히 내 세컨드 팀으로 남아 있을 거고, 언제나 응원할 생각이네. 하지만······.”


“알고 있습니다, 어르신. 오늘은 유나이티드 편에 서시겠다는 거지요?”


“······지치고, 지치고, 지쳐서 외면하다가도 어느새 또 바라보게 되더군. 팬의 마음이라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야.”


던디 유나이티드를 한동안 덩 유나이티드(Dung : 똥)로 부르며 애증 어린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던 그였지만, 역시 한번 선택한 팀을 저버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어렸을 적부터 봐왔던 연고지의 팀이라면 더더욱.


맥도넬 또한 로스 카운티가 하부 리그에서 한창 뒹굴 때부터 응원해 왔기에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껏 응원하십쇼. 하지만 그렇다고 저희가 승리를 양보할 일은 없을 겁니다. 레오가 휴스턴에게 질 리 없을 테니까요. 괜한 기대는 안 하시는 걸 추천해 드리죠, 하하.”


“후후, 자네도 달라진 유나이티드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나 말게.”


*******


[고오오오올! 어메이징! 좌측 하단으로 잔디를 가르며 들어가는 존 랜킨의 날카로운 중거리 골입니다! 두 점 앞서는 던디 유나이티드! 이거 휴스턴이 제대로 일을 내나요?]


“그렇지! 이거라고!”


주먹을 쥐며 기뻐하는 던컨. 내내 주도권을 밀리다가 앞서가는 리드였기에 더 의미 있는 골이었다.


첫 번째 골은 상당한 행운이 따라줬다. 델샤드를 피해 멀리서 올린 얼리 크로스가 밀집되어 있는 수비진을 넘어 박스 외곽 부근에 혼자 서 있던 빌리 맥케이를 향해 날아갔고.


정수리를 맞아 떠오른 볼은 브라운 키퍼의 키를 넘겨 밖으로 나가버리는 줄 알았으나, 절묘하게 곡선을 그리더니 골문 안으로 떨어졌다.


이후 로스 카운티의 공세를 연거푸 버텨낸 그들은 랜킨의 중거리 골로 한 점 더 달아난 것이다.


“어떤가? 저번에 붙었을 때와 다르지 않나?”


“확실히 팀의 완성도가 올라갔군요. 수비도 더 단단해진 느낌입니다.”


맥도넬은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심할 때는 아니죠, 어르신. 로스 카운티가 어떤 팀인지 아시지 않습니까? 이런 흐름 속에서도 기어코 흔들림 없이 승부를 뒤집어 내는 데 통달한 선수들입니다.”


이번엔 케니 풀러의 말이었다.


“모를 리가. 단지 현재를 즐기라는 말에 충실해지려는 것뿐이야. 당장 햄던 파크에서 로스 카운티를 상대로 두 골을 먼저 넣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기분을 느껴보겠나?”


점수를 지킨 채 전반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던디 유나이티드.


그리고 후반 50분.


[존 맥긴, 중앙에서 볼을 받아 등진 채로 두 명 사이에서 버팁니다. 틈새로 빼주는 패스. 딩월의 리턴. 주고받으며 왼쪽으로 완전히 빠져나오는 맥긴!]


“미쳤다!”


“이런, 다 한쪽으로 쏠려 버리면 어떡해!”


[맥긴! 저돌적으로 전진합니다! 찔러주는 패스! 좌측 월리스가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수비의 태클을 간발의 차로 피하며 박스 진입!]


“그렇지!”


“아, 그런 태클은!”


[고오올! 월리스의 왼발 마무리가 통합니다! 후반전 이른 시간에 추격에 성공하는 로스 카운티! 잘 버텨내던 수비진에 균열이 일어납니다!]


“나이스! 이게 레인저스에서 데려온 특급 풀백이지!”


“음······ 이건 좀 아닌데.”


현재를 즐길 필요가 있다는 던컨의 생각은 옳았다. 완벽히 로스 카운티의 페이스로 넘어간 후반전은 전반전보다 더 매서운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었다.


특히 월리스는 제대로 불이 붙은 모양이었다.


[캐리, 내려와서 받아줍니다. 돌아서며 직선 패스. 맥긴이 받아서 측면의 월리스에게. 월리스, 앞으로 내주며 달리고. 마틴이 다시 뒤로. 맥긴이 원터치로 찍어 넘기는 로빙 패스! 월리스가 아까 전부터 달리고 있었죠!]


던디의 압박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로스 카운티의 삼각 패스 플레이.


[볼을 받아 전진하는 리 월리스! 중앙으로 횡패스! 딩월이 받아 돌아서며 오른쪽으로 열어줍니다! 수비를 앞지른 톰슨에게 도달하는 볼! 톰슨! 고오오올! 동점 골이 터집니다!]


예에에 -


펍에 모인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소리를 내지 못하는 건 한 사람뿐이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가.”


멍하니 경기를 지켜보던 던컨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압도하는 그림은 아니었지. 요행으로 만들어 낸 리드를 유지하긴 어려울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막상 겪으니 가슴이 아려오는군.”


[로스 카운티, 여세를 몰아 퍼부으려 하나요? 지쳐있는 맥긴을 빼고, 블랜차드가 투입될 준비를 하는데요.]


“······저기, 조지?”


“예.”


“우리 그냥 사이좋게 비기는 건 어떤가?”


평화를 제안하는 던컨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TV 화면에 보이는 건 군청색의 숫자가 서서히 주황색을 집어삼키는 모습뿐이었다.


[던디 진영에서 가둬놓고 볼을 돌리는 로스 카운티. 델샤드까지 올라왔습니다. 톰슨, 델샤드, 이번엔 중앙의 브리튼. 얼리 크로스! 문전으로 파고드는 블랜차드를 향해!]


“아, 안 돼!”


[옆으로 내주는 헤더! 잭 마티인! 역전 고오오오올! 블랜차드의 패스를 받아 이마로 밀어 넣은 마틴의 골이 던디 유나이티드를 무너뜨립니다!]


[블랜차드에게 제공권을 내주면 큰일 날 거라고 얘기했었는데요. 물론 주의한다고 막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긴 합니다.]


던컨은 끝내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응원할 때는 잘 몰랐는데, 블랜차드 저놈을 상대로 마주하니 정말 소름 끼치는구먼. 백병전 도중에 탱크 하나가 난입한 기분이야.”


“저도 그래서 블랜차드가 셀틱과 엮였을 때 길길이 날뛴 겁니다.”


“블랜차드는 정말 적으로 보고 싶지 않은 선수죠.”


맥도넬과 풀러는 웃으며 한마디씩 대꾸했다.


역전에 만족하지 않고 끝까지 공격을 퍼붓는 로스 카운티. 결정적인 침투에 성공한 월리스의 컷백 패스를 받은 딩월이 마무리를 지으며 두 점 차 점수를 반대로 뒤집어 내고야 만다.


[오늘은 되는 날인가요? 딩월이 발로 침착하게 받아서 굴려 넣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발등 중앙이 아니라, 약간 슛이 빗맞으면서 굴러갔어요. 결과적으로 보면 되는 날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승부는 결정 난 셈이었다.


“끄응.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군. 로스 카운티는 말도 안 되게 강해.”


“그래도 힘들었던 경기였습니다. 던디 유나이티드도 작년에 비하면 몰라볼 만큼 좋아졌네요.”


“그렇지? 휴스턴이 단기간에 팀을 잘 정비해 줬어.”


맥도넬의 말에 던컨이 웃으며 말했다.


“조만간 뒤쫓아 가주지. 앞지르진 못할 것 같고······ 딱 로스 카운티 발밑까지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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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4 : 2 던디 유나이티드 >

리 월리스(52‘)

앤드류 톰슨(66‘)

잭 마틴(73‘)

에이든 딩월(81‘)

+++++++++++++++++++++++++++++

빌리 맥케이(25‘)

존 랜킨(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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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ottish Sports ] 16승 1무, 아직도 패배가 없는 로스 카운티



“대체 왜 이리 센 거죠? 소피앙 부팔과 에드빈 데 루어가 나가고 윙 보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작년만큼 성과를 내긴 어려울 거란 의견도 분분했었는데요. 프리미어십은 정말로 적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 풋볼 전문가 ‘마이클 포드(Michael Ford)’ -



[ Daily Mirror ] 패배를 인정하는 피터 휴스턴 “로스 카운티에는 배울 점이 많아.”



“여기서 주축이 더 빠져나갔어도 분명 위기를 넘겨냈을 거예요. 로스 카운티에 시련이 찾아오는 날이 있다면 그건 델 레오네가 이 팀의 감독직을 내려놓을 때일 겁니다.” - 축구 평론가 ‘에릭 프레스턴(Eric Preston)’ -



[ The Scotsman ] 경기가 끝난 후 사람들은 레오의 이름을 연호했다



“언제쯤부터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레오라는 이름이 로스 카운티 팬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퍼져 있더군요. 알고 보니 델 레오네 감독의 별명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굉장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원래 부르던 토니도 나쁘지 않지만, 레오는 더 강인하면서 특별함이 느껴지니까요.” - 스코티시 스포츠 해설자 ‘롭 맥케나(Rob McKenna)’ -



[ Glasgow Press ] 충격, 막바지에 골을 내주며 킬마녹과 비긴 셀틱


[ Daily Telegraph ] 크레이그 레빈, 셀틱의 발목을 잡다



“다들 로스 카운티의 대단함만을 얘기하기 바쁜 것 같은데, 전 다른 게 더 눈에 들어옵니다. 킬마녹을 보고 혹시 느껴지지 않던가요? 요즘 프리미어십 팀들은 셀틱을 예전만큼 두려워하지 않아요.” - 반 셀틱 평론가 ‘딘 맥팔랜드(Dean McFarl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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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6 Scottish Premiership 18 Round >

로스 카운티 : 인버네스 CT

2015년 12월 20일 (일) 15:00

햄던 파크 (관중 수 : 44,520명)



[로스 카운티 / 4-1-2-3]

FW : 존 맥긴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제임스 블랜차드 / 리차드 브리튼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스콧 보이드 / 폰투스 얀손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표면적인 요인을 분석하는 사람들은 많으니, 전술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겠지.”


존 프리먼은 칼럼니스트로서 이 부분에 제법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언제나 로스 카운티 축구는 그럴 만한 가치를 느끼게 해줬으니까. 지금도 그러했다.


“이게 델 레오네가 하려던 축구일까?”


올해 이탈리안이 구성한 시스템은 작년에 알렉산더 캐리가 부상으로 아웃되지 않았으면 어떤 팀을 만들었을지 알려주는 듯했다.


캐리 시프트(Carey Shift).


저 레지스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로스 카운티의 패턴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알 수 있었다.


먼저 이전의 던디전. 피터 휴스턴은 라인을 올렸지만, 팀 단위 압박만을 가했다. 그러자 델 레오네는 캐리를 정중앙으로 내리는 라볼피아나로 빌드업의 중심을 잡으며 상대를 끌어들이고 벌어지는 공간을 공략했다.


현재 인버네스전. 스티브 클라크는 압박을 가하면서 에너지 넘치는 미드필더 압둘 오스만을 캐리에게 붙였다. 조제 무리뉴가 했던 것처럼 마크맨을 달아놓는 작전이다.


이에 델 레오네는 또다시 캐리를 좌측으로 빼는 변형 라볼피아나로 응수하고 있다. 오스만을 측면으로 유인하면 그가 본래 위치해야 할 중앙에 커다란 공간이 생겨난다.


빌드업 리더인 캐리를 잡는 게 로스 카운티의 필수 상대법이지만, 그 캐리를 잡을 수가 없다. 여기서 게임은 끝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프리먼은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후방 라인의 유동적인 스위칭이었다.


일전에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월리스가 백스리에 자리하면서 어느 정도 좌측 스토퍼의 기능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었다.


선제골도 월리스가 내려가고 캐리가 측면으로 빠지면서 아주 잠깐 프리한 상황이 만들어진 틈을 타서 나왔다.


캐리의 반대편 우측 전개, 톰슨의 돌파 후 크로스. 로스 카운티의 주요 패턴을 제어하지 못한 인버네스는 쇄도하는 딩월의 헤더 슛에 무너졌다.


그 외에도 델샤드가 백스리에 위치하다가 캐리가 내려가면 과감하게 오버래핑해 올라가는 등.


대형이 시시각각 변화하면서 상대는 쉽게 대처하지 못한다. 매번 빌드업에서 공격 작업 단계까지 제어 당하지 않고 수월하게 넘어가니 무지막지한 화력의 근원은 거기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후방의 선수들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압박을 풀어가는 형태. 이게 델 레오네가 최종적으로 구상했던 그림일까? 적어도 프리미어십에서 이 정도 체계적인 패턴을 사용할 수 있는 팀은 로스 카운티밖에 없다.


뺏으려 해도 공기를 잡는 것처럼 빠져나가 버리는 빌드업.


홀린 듯이 딸려 오는 인버네스 선수들의 키를 넘기며 횡패스를 전달하는 캐리. 그 볼을 받은 건 폰투스 얀손이었다.


갑자기 위로 올라온 센터백의 기습에 당황했는지 가까이에 있던 제임스 빈센트가 허둥지둥 달려들었지만, 힘에 밀려나며 뚫리고 만다.


중앙선까지 넘어서 저돌적으로 나아가는 얀손.


그의 패스가 딩월을 거쳐 측면으로 올라온 델샤드에게 전달되었고, 델샤드는 앞을 보더니 가볍게 찍어 차올린다.


“어? 얀손이 아직 안 내려갔······.”


델샤드가 겨냥한 곳도 박스 외곽까지 도달한 센터백의 머리인 듯했다. 크로스를 받아낸 얀손은 고개를 살짝 돌리는 헤더로 볼을 밀어 넣었고.


얀손의 거구와 볼의 궤적만 멍하니 바라보던 수비수들은 뒤로 몰래 빠져나가는 블랜차드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다.


“정말 침착하군. 원래도 그랬지만, 더 노련해졌어.”


프리먼은 한번 슛하는 척 키퍼의 균형을 흐트러뜨린 후 뒤늦게 달려드는 수비수의 슬라이딩까지 옆으로 벗기고 나서 골문 안에 굴려 넣는 블랜차드의 마무리를 보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벤치 쪽으로 눈을 돌려 두 감독을 보았다.


“최근 저조한 성적으로 비판을 받던 것 치고, 이번 경기는 제법 잘 준비해서 나온 것 같았는데.”


클라크를 보며 한 말이었다. 한때는 이탈리안의 행보에 제동을 걸만한 유력한 인물로 평가됐던 그였으나, 끝도 모르고 치솟는 한쪽과 다르게 확실히 예전의 명성보다는 위협적이지 않아 보였다.


물론 클라크가 하락세를 타고 있는 것과 별개로 이건 델 레오네를 더 칭찬해야 할 부분이다.


미끼를 던져서 끌어오고 얀손의 전진으로 압박 체계를 박살 내다니. 로스 카운티는 이제 캐리 하나만 막으면 되는 그런 팀이 아니게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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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2 : 0 인버네스 CT >

에이든 딩월(39‘)

제임스 블랜차드(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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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6 Scottish Premiership 19 Round >

세인트 미렌 : 로스 카운티

2015년 12월 26일 (토) 15:00

세인트 미렌 파크 (관중 수 : 6,820명)



[로스 카운티 / 4-1-2-3]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 필립 로스

CM : 제임스 블랜차드 / 리차드 브리튼

DM : 알렉산더 캐리

DF : 고든 스미스 / 대니 패터슨 / 폰투스 얀손 / 스티브 샌더스

GK : 마크 브라운



후반 65분, 스코어는 0 : 0.


세인트 미렌은 생각보다 잘 싸우고 있었다.


그들은 홈의 이점과 상관없이 비기는 걸 목적으로 나온 것 같았다. 그건 상대가 안 되면 웅크리고 보자는 콜린 레논 감독의 특성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방법이 최근 로스 카운티를 상대한 프리미어십 팀들 중 가장 효과적인 모습을 보이는 중이었다.


이길 확률은 적어도 비길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


대단한 수비진은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집중력이 높아 보이는 건, 강등권에서 벗어나고픈 의지로 선수들의 동기부여가 충전된 까닭이었다.


딩월이 결정적인 찬스를 세 번이나 놓치는 자비로움을 보여준 것도 컸다.


로스 카운티는 공간 활용에 뛰어난 팀이지만, 상대가 득점을 아예 포기하고 전부 내려앉아 그 공간을 틀어막아 버리면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이럴 땐 제공권으로 찍어 누를 필요가 있는데, 그게 가능한 공격진은 블랜차드가 유일. 여기저기 균열이 난 상태에선 블랜차드가 공중볼을 장악하기 쉽지만, 수비진이 작정하고 눌러앉아 그를 견제하면 고립될 수밖에 없다.


델 레오네는 유난히 부진했던 딩월을 빼고 리암 보이스를, 로스를 불러들이고 앤드류 톰슨을 투입했다.


그리고 후반 85분.


한순간에 일어난 일.


중앙선을 넘어 좌측 터치라인 부근까지 올라가 볼을 받은 캐리가 바나나처럼 크게 휘어지는 얼리 크로스를 올렸고.


투입된 보이스가 지쳐 있는 수비수 어깨 위로 훌쩍 뛰어오르며 볼을 머리에 맞췄다.


철썩 -


그것이 결승 골이었다.


로스 카운티의 컨디션이 평소보다 저조했던 타이밍에 운 좋은 승점을 나눠 가질 수 있었던 세인트 미렌이었지만, 교체로 들어온 공격수에게 한 방을 얻어맞으며 그 꿈이 무산되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보이스는 오늘처럼 잘 풀리지 않아 색다른 루트가 필요할 때 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옵션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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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인트 미렌 0 : 1 로스 카운티 >

리암 보이스(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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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어서 오게.”


델 레오네는 감독실에 들어선 이를 보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요새 제가 하는 일에 벽을 느끼고 있어요.”


방문자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투덜대기 시작했다.


“감독님 때문에요. 자료를 수집하는 건 항상 즐겁기만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요구하시는 조건에 부합하는지 신경 쓰느라 까다로워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니까요?”


그저 웃기만 하는 델 레오네. 이렇게 대놓고 감독에게 불만을 늘어놓을 수 있는 건 특급 스카우트 아서 마틴의 특권이다.


“그 때문에 요즘은 도감에 등록도 많이 못 하고 있다고요.”


곱슬머리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감독님이 정해주신 허들이 너무 높아진 것 같아요.”


“그만큼 이 팀의 퀄리티가 많이 올라갔다는 거지.”


감독이 커피잔을 건네주며 대답했다.


“자네 덕분에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거고.”


“······.”


잔을 받아 든 마틴은 조용해졌다. 그래도 맡은 일이 싫진 않은 모양이었다.


수석 스카우트 폴 몽고메리 주도하에 영국 내에서 인재를 물색하는 스카우트 팀과 별개로 마틴은 단독으로 영국 밖을 돌아다니며 감독의 요구조건에 부합하는 알짜배기를 찾아낸다.


올해는 딱히 대단한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있지만, 월리스와 얀손, 델샤드, 부팔을 데려오는 데 일조한 그의 공로가 폄하될 일은 없을 것이다.


가끔 감독이 먼저 요청하면 국내 선수를 따로 조사해서 보고서를 만들어 주기도 했는데, 처음으로 그에게 합격점을 받은 건 리암 보이스였다.


“그래. 어떤가?”


“보내주신 그 선수 말이죠?”


마틴은 메고 온 크로스백을 뒤적거리더니 서류 하나를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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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잭(Ryan Jack)

포지션 : CM / DM

국적 : 스코틀랜드

소속 : 애버딘

나이 : 23

신장 : 182cm

체중 : 7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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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메리가 직접 나서서 계속 지켜보고 있던 젊은 재능. 감독은 그가 내놓았던 자료를 마틴에게 보내서 재분석을 부탁했었다.


때마침 오늘 잠깐 귀국하던 차에 이곳까지 들른 것이었다.


“스카우트 팀은 호평인 분위기고, 사실상 영입 절차를 밟는 단계까지 갈 듯하네. 하지만 마지막으로 자네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서 말이야.”


“케틀웰의 부상으로 긴급 수혈하는 선수라고 하셨죠? 뭐, 간단히 한마디로 말하자면요.”


마틴이 헝클어진 뒷머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저는 케틀웰이 다치지 않았어도 영입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작가의말

오늘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

이해해 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곧 추석인데 알찬 명절이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다크기사 님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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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1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8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8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5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4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5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8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8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1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71 39 26쪽
»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3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6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5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7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6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2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8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9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2 5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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