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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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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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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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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5쪽

202. 공간 싸움 (3)

DUMMY

“세르히오 부스케츠가 펩 과르디올라의 눈에 띄지 못했다면 어땠을까요? 토마스 뮐러가 루이스 판 할을 만나지 못했다면요? 아마도 당시 뮌헨 감독이었던 위르겐 클린스만에 의해 호펜하임으로 팔려나갔겠죠? 물론 그들의 클래스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증명해 냈을 수도 있지만······ 두 은사가 있었기에 더 빨리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죠. 저는 이런 사례가 스포츠 판에서 적지 않다고 생각해요. 세계 곳곳에 존재하죠. 스코틀랜드도 다르지 않아요. 로스 카운티에서는 제임스 블랜차드와 앤드류 톰슨이 그런 선수들입니다. 만일 델 레오네가 부임하지 않았다면······ 지금 세계적인 명성까지 얻어나가는 중인 그들이 어쩌면 빛을 제대로 못 본채 그저 그런 스코티시 리그의 선수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참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죠.” - 스코티시 스포츠 해설자 ‘롭 맥케나(Rob McKenna)’ -


*******


“아니······ 저건······.”


닐 스튜어트는 방금 일어난 일을 목격하고도 눈을 의심했다.


당황하여 감독을 쳐다보니 그 또한 살짝 놀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그의 얼굴에 감정이 도드라지게 나타난 건 오랜만인 것 같았다.


“감독님······ 앤드류, 저 녀석이 지금 단독으로······ 저 수비진을 뚫고서 골까지 넣은 게 맞는 겁니까?”


의미 없는 질문이었지만, 그만큼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알라바와 비달을 차례대로 빠르게 제치더니, 보아텡과 키미히 사이를 양발 드리블로 비집고 들어가 박스 안에서 직접 마무리를? 앤드류 톰슨이? 그것도 바이에른 뮌헨 수비진을 상대로?


“보이는 그대로야.”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저 선수들이 앤드류 앞에서 도미노처럼······.”


“본능이 발동한 거겠지.”


감독이 말했다.


“세계적인 수비수들과 부딪치면서 받은 자극, 경기장 분위기로 인해 올라간 고양감, 골을 넣기 직전에 한 건 해내면서 붙은 자신감, 그리고 이때까지 노력해 왔던 결실. 모든 게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녀석을 가두고 있던 껍질이 마침내 깨진 모양이로군.”


“뮌헨을 만나면서 각성한 걸까요?”


“저번에 말했듯 앤드류는 역경과 고난이 덮쳐올수록 강해지는 타입이야. 내부의 경쟁자와 외부의 라이벌에게 영향을 받기 시작하면서 가파른 성장세를 그렸었지. 그런 면에서······ 뮌헨은 꽤 훌륭한 선생님이라 할 수 있네.”


동 포지션의 로번과 리베리가 보여주는 뛰어난 기술, 막아서는 수비수들의 높은 수준. 확실히 자극받을 요소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아득한 클래스와 마주치면 벽을 느끼고 무너져 내려야 하지만, 그럴수록 더 불타오르는 부류도 있게 마련. 감독이 톰슨에 빗대어 말했던 맹금류 또한 대개 용감한 특성을 지녔다.


“어쨌거나 우리도 뮌헨전에서 얻고 가는 게 있군.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 않은가? 그토록 바라마지않던 포식자의 활공을 잠시나마 볼 수 있었으니.”


“감독님은 전부 예상하신 겁니까? 앤드류가 이 정도의 플레이까지 해낼 거란 걸······.”


“닐, 축구에서 가장 재밌는 순간이 뭔지 아나?”


이탈리안이 대답했다.


“바로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굉장한 일이 일어났을 때야.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지.”


“······그렇군요.”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울리는 종료 휘슬. 내내 필드만 주시하던 그의 얼굴이 스튜어트 쪽으로 향했다.


“좀 늦은 감이 있다는 정도일까? 좀 더 일찍 터졌으면 좋았을 텐데.”


경기가 끝나자마자 허리가 꺾이며 양쪽 무릎을 짚는 톰슨. 스튜어트는 그 모습을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단순히 오늘 경기의 시간만이 아닌, 시기의 문제를 얘기하는 걸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


경기 이후의 파급력은 엄청났다.


블랜차드의 골도 흥미로운 이슈였지만, 톰슨이 막판에 펼친 원맨쇼는 스코틀랜드 전역에 충격을 몰고 왔다.


뮌헨전에서 뭔가 변수를 터뜨린다면 그 중심에 톰슨이 있을 거라는 예상은 많았지만, 그들조차 이런 그림을 상상하진 못했을 테니까.


이제껏 로스 카운티의 11번이 보여준 놀라운 퍼포먼스들은 직선으로 주파하며 상대를 순수하게 스피드로 눌러버리는 위주였다. 현란한 발재간으로 진영을 헤집어 놓는 유형까진 아니었다.


몇 번 그런 낌새가 있기는 했지만, 챔피언스 리그보다 한참 낮은 수준의 프리미어십에서 보여준 게 전부.


그랬던 선수가 어중간한 레벨도 아닌, 유럽 최강을 다투는 바이에른 뮌헨의 수비진을 갑자기 초토화해 버렸다. 이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앤드류 톰슨 자체의 인식이 흔들릴 만큼 대단한 사건이었다.


영국 언론들은 물론, 독일 언론들까지 나서서 관련된 기사를 쏟아낼 만한 그런 이슈. 딩월과 블랜차드를 주목하며 맞춰졌던 로스 카운티의 초점이 단숨에 톰슨 쪽으로 향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던 의견들이 차츰 바뀌기 시작했다.



[ Scottish Sports ]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발견한 작은 희망



경기 내내 자욱하게 깔렸던 짙은 안개가 걷히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6분.


두 골. 극도로 불리한 흐름에서 막판에 겨우 집어넣은 모양새긴 했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로는 한 골 차. 총합 스코어가 밀려도 나중에 가서 원정 다득점 원칙의 변수가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극소수의 전문가들은 벌써 로스 카운티의 4강 진출을 예견하기도 했다.


바이에른 뮌헨이 여전히 강력하긴 하나, 2차전은 스코틀랜드의 성지 햄던 파크. 거기에 기적을 몇 번씩이나 써봤던 감독이 있으니,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져도 무리가 아닐 거라면서.


제정신이면 믿지 않을 얘기지만, 이 터무니없는 주장에도 사람들이 무모한 꿈을 꾸는 건 확실히 안토니오 델 레오네란 존재 때문일 것이다.



“자네도 이렇게 생각하나?”


다음 날, 아침 일찍 불려 간 스튜어트는 다짜고짜 질문을 받았다.


감독이 내보인 신문의 1면에는 ‘유리한 위치에 오르다.’란 제목으로 톰슨의 득점 장면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형편이 좀 나아지긴 했지만, 절대로 방심해선 안 되겠죠.”


“너무 빤한 답이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들고 있던 신문을 반으로 접어 책상 위로 던졌다. 드립 머신에 미리 내려놓은 원두커피가 잔을 채우며 모락모락 김을 피우고 있었다.


“6분의 임팩트가 나머지 84분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어. 경기 시간은 90분인데 말이야.”


“그만큼 대단한 장면이긴 했습니다.”


“대단이라······ 그래, 대단하긴 했지. 온전히 제임스와 앤드류의 힘으로 만들어낸 결과니까.”


스튜어트는 커피잔을 조심스레 받아 들었다.


“반대로 말해서 그 둘이 해내지 못했다면 무기력하게 세 골 차인 상태로 2차전을 맞이했을 테고.”


“그건 끝날 때까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아니, 분명한 사실이야.”


감독이 딱 잘라 말했다.


“과르디올라에게 완패한 시합이었어. 시스템, 전술 대응, 경기 운영. 그가 나보다 몇 배는 월등한 수준을 보였네. 로스 카운티와 바이에른 뮌헨의 전력 차로만 치부할 게 아니었지.”


“······.”


스튜어트는 더 받아칠 수 없어 이내 침묵하고 말았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 역시 몸소 느꼈었으니까. 비단 감독뿐만 아니라 선수 쪽에서도 상대의 극명했던 레벨을 체험할 수 있었다.


아르연 로번이 측면을 내내 유린하던 그 공포스러운 광경은 아직도 눈에 아른거릴 지경이다.


감독은 창가에 서서 뒷짐을 진 채로 바깥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유럽 최고의 무대 챔피언스 리그. 거기서 매년 우승 후보로 꼽히는 팀에 진다고 크게 탓할 사람은 없을 터인데. 필요 이상으로 지나친 책임감을 짊어진 것만 같았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닐, 그대로 간다면 우리는 무조건 지게 될 거야.”


누군가에게 굴복하는 모습 따위를 상상하기도 어려운 남자가 내뱉은 충격적인 발언. 그렇기에 오히려 놀랍지 않았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이길 확률이 높다고 보장할 순 없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변화가 없으면 승산도 없다는 것. 불안정하더라도 승부를 걸 수밖에.”


어쩔 수 없다는 명목으로 패착인 시스템을 고집하는 것은 이탈리안이 싫어하는 행위 중 하나다. 그는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려면 코치진이 계속해서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하게 설파하곤 했다.


“어떤 변화를 줄 생각이십니까?”


“과르디올라는 뼈아픈 패배의 치욕을 선사해 주었지만, 동시에 많은 영감도 주었지. 그는 배울 게 많은 사람이야.”


감독이 몸을 돌려 스튜어트를 보았다.


“현대 축구 전술에 혁신을 가져온 철학자는 확실히 다르더군. 철저히 파헤쳤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만든 구조는 예상보다 더 탄탄했어.”


“저도 느꼈습니다. 이제껏 만나온 이름값 좀 하던 감독들과 비교해서도 뭔가 더 한 차원에 있는 듯한······.”


“뮌헨의 시스템이 참으로 까다로운 점이 뭔지 아나? 상대적 약팀이 강팀에 저항할 수 있는 수단을 봉쇄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는 거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 그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알론소와 함께 올라간 람, 알라바를 이용해서 능숙한 전환을 사용해. 좌우를 연달아 흔들면서 밀집한 수비 진형을 분쇄하지. 측면을 방어하기 위해 딸려 나가면 그 틈새로 벌어진 공간을 날카롭게 파고들어.”


“뮐러가 왜 공간 침투에 통달했다는 평가를 받는지 알겠더군요.”


“공격 과정에서 소유권을 잃더라도 체계적인 압박을 통해 바로 볼을 빼앗거나 수비가 급하게 처리하도록 만들어서 루즈볼을 쉽게 가져가지. 그 흐름이 반복되면 우리 진영에서 내내 가둬지는 현상이 일어나.”


“이렇게나 역습이 힘든 상대는 처음이었습니다.”


“가까스로 벗어나 상대의 뒷공간을 찔러도 광범위한 영역을 커버하는 노이어가 나와서 차단하지. 그들은 스위퍼 키퍼를 전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잘 쓰는 팀이니까. 선 수비 후 역습 전략은 불리한 측에서 이변을 일으킬 수 있는 좋은 수단이지만, 뮌헨에겐 잘 통하지 않는 게 문제야.”


“저도 같은 생각······.”


“결국 이런 흐름을 깨뜨리려면 강하게 윗선부터 치고 나가야만 하는데, 하필 저쪽의 양 날개가 속공에 특화된 리베리와 로번이라는 거지. 압박을 가하려 라인을 올릴수록 그들에게 위험이 노출될 가능성도 높아져. 올려도, 내려도 골치 아프긴 마찬가지. 이도 저도 못한 상황이 되면서 뮌헨의 페이스대로 끌려가게 되는 거고.”


“그······.”


“앞서 말한 방식이 통하려면 그 분야에서 정점에 오를 정도는 되어야 해. 이를테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수비 조직력······ 혹은 도르트문트 특유의 압박과 카운터. 객관적으로 따져봤을 때 우리 팀이 그 수준까지 도달했다고 보긴 어려워.”


아예 의자 뒤로 고개를 젖힌 채 천장을 보며 중얼거리는 델 레오네. 거의 혼잣말을 읊조리는 것처럼 되어버리자, 스튜어트는 그냥 얌전히 듣기만 하기로 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열변,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푸석푸석해 보이는 눈. 밤새 그가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알게 해주는 듯했다.


“그래서······ 우리처럼 저들에게 맞서 싸울 무기가 마땅치 않은 팀은 오히려 맞불을 놓는 게 최선일 수도 있네. 역설적이게도 말이야.”


감독이 다시 스튜어트를 마주 보며 말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중앙과 승부를 거는 것. 이긴다면 좋고, 최소한 밀리진 않아야 해. 허리를 장악하고, 그걸 기반으로 홈의 이점을 활용해 몰아치며 공격한다. 그게 적은 확률의 승리라도 기대해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내가 내린 결론이지.”


“하지만······ 가능한 일일까요? 뮌헨을 상대로 중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게······.”


한동안 델 레오네의 말에 토를 단 적이 없었던 스튜어트였으나, 이번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르디올라의 바이에른 뮌헨이다. 심지어 1차전에서는 그들에게 대패할 뻔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떻게 중앙 싸움을 이기겠다는 걸까?


“물론 정면으로 대결하면 처참히 박살 날 거야.”


그가 말했다.


“맞불을 놓되, 전체를 노리진 않는다.”


“예?”


“최근 축구가 경기장을 가로보단 세로로 놓고 보기 시작했다지? 나도 그 흐름에 긍정적인 편이거든. 전체를 장악할 필요는 없어. 일부만 점령해도 연쇄 작용으로 인해 균형이 깨지기 마련.”


“제가 이해를 못 해서, 좀 더 설명해 주시면······.”


“아직은 좀 더 검토해 볼 게 남았네. 아서, 그 유능한 친구에게 추가 보고서를 요청했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몇 가지만 확인이 되고 나면 즉시 회의를 소집하도록 하지.”


스튜어트는 더 물어보는 게 의미 없다는 걸 깨달았다.


“리차드 건은 어떡할까요? 2차전 징계로 출전이 불가능해졌으니······ 이번에 대런이 복귀했다지만, 바로 뮌헨전에 내보내기는 부담이 클 겁니다. 근데 라이언도 유럽 대항전 경험이 부족해서······.


“어느 쪽이든 달갑진 않다만, 어쩌겠나. 뭐, 이번 작전에 누가 더 적합할지 얼추 그림이 나온 것 같긴 한데. 우선 다가오는 셀틱전을 지켜보고 판단할 문제 같군.”


두 사람은 이전 경기에 관한 피드백을 쉬지 않고 주고받았다. 그만큼 할 얘기가 많았다.


그리고 비책을 가지고 있는 듯한 감독의 언급 때문일까? 대화를 나눌수록 뭔가 주체할 수 없는 의욕이 들끓었다. 그는 언제나 보여줬고, 증명했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수 있는 것일까?


어느새 잔의 커피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스튜어트는 복받치는 감정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감독님. 우리는 정말로 잘 싸웠습니다. 그리고 전 앤드류가 보여준 마법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앤드류 그 녀석이, 우리 선수들이 한 번만 더 힘을 내준다면 아직 결과는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난 앤드류가 이번을 계기로 눈을 완전히 떴다고 생각하진 않아.”


이탈리안이 대답했다.


“예상치 못한 선수의 동기부여가 맞아떨어져서 나오는 슈퍼 플레이. 축구판에서는 제법 흔한 일이지. 그게 지속될 수 있느냐, 평소의 플레이와 얼마나 차이를 좁힐 수 있는가가 클래스를 결정짓는 것이고.”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껍질은 깨졌지만, 힘으로 부수고 나오는 건 본인의 몫이야. 좀 더 지켜봐야 할 과제지. 앤드류의 플레이는 계획 밖으로 두고 진행하는 게 나을 걸세.”


“예, 알겠습니다.”


“그래도······ 일단 깨졌다는 게 중요하긴 해.”


그가 옅은 미소를 띠었다.


“의외성의 힘은 꽤나 강력하지. 나도 일말의 기대는 하고 있어.”


그 말에 스튜어트는 같은 웃음으로 호응하며 감독실을 나왔다.


*******


< 15-16 Scottish Premiership 33 Round >

로스 카운티 : 셀틱

2016년 4월 2일 (토) 15:00

햄던 파크 (관중 수 : 48,927명)



[로스 카운티 / 4-1-2-3]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대런 케틀웰 / 리차드 브리튼

DM : 라이언 잭

DF : 리 월리스 / 대니 패터슨 / 스콧 보이드 / 스티브 샌더스

GK : 마크 브라운


[셀틱 / 4-2-3-1]

FW : 스티븐 플레처

AM : 제임스 매클린 / 칼럼 맥그리거 / 제임스 포레스트

CM : 니르 비톤 / 스콧 브라운

DF : 키어런 티어니 / 셰인 더피 / 데드리크 보야타 / 미카엘 루스티그

GK : 크레이그 고든



어수선한 언코 펌.


현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의 최대 매치업으로 급부상했지만, 오늘은 묘한 분위기가 경기장을 휘감았다.


자국 내 최고로 뜨거운 대결답게 관전할 포인트는 많았다.


큰 부상으로 이탈해 있던 대런 케틀웰의 정식 복귀전이라든가, 마틴 오닐과 불화설이 두드러지며 벤치에 앉게 된 리 그리피스, 그로 인해 주전 자리를 꿰찬 제임스 매클린의 활약 여부 등.


무엇보다 안토니오 델 레오네의 부임 이후 차근차근 쌓아온 두 팀 간의 앙금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상태.


경기 전에 있던 감독들의 신경전도 무척 치열했다.


“몇 년만 지나 보시죠. 그때가 되면 언코 펌이라는 말을 붙이기도 민망할 겁니다. 당신들은 셀틱과 비교해서 격이 한참 떨어지는 구단을 두고 거창한 명칭까지 붙이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 거예요.”


오닐은 강한 발언으로 로스 카운티 팬들의 심기를 건드렸고.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다고 셀틱 왕조가 로스 카운티에 의해 붕괴했던 역사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언코 펌은 전 세계 축구팬들이 그걸 평생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며, 셀틱으로선 영영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되겠죠.”


델 레오네 역시 세게 나오며 도발에 응수했다.


각 수장들의 장외 싸움, 각종 이슈, 좌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셀틱전은 생각보다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원인은 바이에른 뮌헨전이었다. 며칠 내내 떠들썩할 수밖에 없는 그 경기 때문에 영국 언론들의 메인 페이지는 아직도 챔피언스 리그가 대부분을 장식하여 일개 프리미어십이 낄 자리가 도무지 없었던 것이다.


양 팀의 라이벌리를 조성해 줘야 할 언론들부터 이러니 대중들의 관심사도 다른 곳에 가 있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스코티시 최강자로 군림해 왔던 셀틱이 국내에서도 뒷방 신세로 전락한 셈이었으니.


여전히 프리미어십에서는 강팀이고, 2위를 아득바득 지키면서 열심히 선두를 쫓고 있는데. 10점의 격차를 잘만 하면 7점 차로 줄일 수 있고, 성공한다면 수치상으로는 역전도 노리는 게 가능한 상황인데.


도박사들이 내건 배당률은 압도적으로 기울어졌고, 그만큼 결과가 빤해서 굳이 볼 것도 없다는 반응들.


로스 카운티의 우승은 이미 정해졌으며, 이제 무패 기록으로 시즌을 마감할 수 있느냐 못하느냐의 여부에만 죄다 관심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물론 이런 사태를 만든 건 오닐의 지분이 컸다. 델 레오네와 치열하게 벌이는 말다툼을 정작 피치 위에서는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탓이었다.


구세주일 줄 알았던 그가 연달아 로스 카운티에 깨지는 걸 보면서 셀틱팬들은 기대감을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오죽하면 부담감을 못 이기고 지휘봉을 반납했던 전임자의 재평가가 나오기 시작했을까.


리그 레이스 막판까지 우승권을 다퉜던, 1승 3무 1패로 저 무지막지한 이탈리안과 비등비등한 상대 전적까지 남겼던 로니 데일라가 정말 잘 싸웠던 것이었다며 그를 그리워하는 여론이 커지기에 이르렀다.


희망과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오닐은 리그는 고사하고, 주전이 대거 빠진 컵 대회에서조차 이탈리안을 꺾지 못하여 전패를 기록 중이니, 팬들의 심정도 이해될 만했다.


게다가 질투의 대상이 된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수년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까닭에 로스 카운티를 향한 열등감 또한 점점 부풀어질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로 팽팽한 접전이 벌어졌다.


일정이 여유로운 셀틱에 비해 더 많은 경기를 소화한 여파도 있을 테고, 그로 인해 핵심 몇 명이 결장한 요인도 무시할 순 없을 것이다.


특히 오늘 측면에서 영 재미를 못 보고 있었는데. 뮌헨전에서 모두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던 앤드류 톰슨은 키어런 티어니에게 고전하는 중이었다.


이전의 번득임을 다시 보고 싶어서 왔다가 실망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단지 톰슨만의 문제로 보기엔 좀 가혹했다.


캐리와 더불어 블랜차드와 맥긴도 없는 선발 스쿼드. 게임을 조립하고, 퀄리티를 상승시켜 주는 인원들이 전부 빠지면서 톰슨이 모든 걸 짊어진 상황이었으니까.


어찌 보면 체력 관리란 명목으로 감독이 일부러 그런 환경을 만들어 시험하는 모양새로 보이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키커로 나선 브리튼의 직선 프리킥, 골키퍼의 선방으로 튕겨 나온 세컨드 볼을 차 넣은 스콧 보이드의 선제골.


측면 깊숙이 침투한 티어니의 예리한 크로스를 이마로 받아 넣은 스티븐 플레처의 동점 골.


이후 경기는 소강상태로 흘러가며 서로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는 흐름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역시 말씀하신 대로 당장 각성하는 모습은 어려웠던 걸까요.”


스튜어트의 푸념에 감독은 조용히 필드만 주시할 뿐이었다.


70분을 가리키는 전광판의 시계. 교체 카드를 써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나서야 그는 후반전 시작하고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에이든과 리암을 교체하지.”


“제임스나 존의 투입은 언제쯤으로 할까요?”


“오늘은 어지간하면 휴식을 주는 걸로 하자고, 닐. 알렉스도 마찬가지야.”


“그런······ 알겠습니다.”


에이든 딩월의 자리에 리암 보이스가 들어간 이후 감독은 더 이상 교체 카드를 쓸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그로부터 몇 분이 지나.


와아아 -


뒤쪽으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샌더스의 롱패스를 잡기 위해 쫓아가는 톰슨과 티어니의 격렬한 경합에 함성이 고조되고.


먼저 볼을 잡은 톰슨과 티어니의 대치가 이루어지는 것도 잠시.


“우왓!”


스튜어트는 육성으로 감탄사를 내질렀다.


마치 뮌헨전에서 봤던 로번의 드리블처럼 반박자 빠르게 안으로 파고들더니 후속으로 달려드는 더피의 발을 피하며 두 사람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톰슨의 돌파에 소리를 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숨에 셀틱의 측면을 허물면서 박스 안까지 들어가는 톰슨. 황급히 달려오는 보야타까지 옆으로 슬쩍 벗겨내면서 낮게 깔아 찬 크로스가 쇄도하는 보이스의 발에 정확히 도달했다.


“해······ 해냈습니다! 앤드류가! 또 한 번!”


날렵한 움직임으로 무려 세 명이나 쓰러뜨리면서 어시스트까지 기록하는 장면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오닐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잔디를 걷어찼고,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델 레오네는 마침내 웃음을 지었다.


“이제야 좀 드리블러다운 면모를 갖춰가는군.”


그가 말했다.


“닐, 딜런과 필립을 준비시켜 주게. 잭과 스티브를 불러들일 거야.”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슬슬 머릿속의 난잡하던 퍼즐이 다 맞춰져 가는 것 같군. 내일 바로 회의를 소집해 주게나. 앞으로 해야 할 게 좀 많을 테니.”


그 말을 끝으로 감독은 다시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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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2 : 1 셀틱 >

스콧 보이드(13‘)

리암 보이스(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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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플레처(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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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이른 시간 빅토리아 파크 훈련장에서는 소수의 코치들만 남아서 선수들을 지도했다.


셀틱전이 끝나고 라커룸에서 감독은 내일 회의가 상황에 따라 길어질 수도 있을 거라 미리 얘기했었다.


“무슨 회의길래 이렇게 늦는 거야?”


“전술 회의겠지. 가끔 이럴 때 있었잖아. 작년에 나폴리랑 하기 전에도 그랬었고.”


“그건 알지. 하지만 그때도 이만큼 늦진 않았던 거 같은데.”


주장과 부주장의 대화가 오가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도 회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감독이 코치진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건 점심시간이 끝나고 한 시간이나 더 흐른 뒤였다.


그는 훈련장에 들어서자마자 월리스를 부르더니 그의 어깨에 친근하게 팔을 감싸면서 무언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가끔 감독은 일부에게 아예 며칠 전부터 선발임을 알려주고 맞춤 전술을 훈련에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리는 무조건 출전일 테니까, 선발 통보는 아닐 거고. 그냥 전술 설명인가?”


멀리서 지켜보던 스티브 샌더스는 작게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감독의 말을 듣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월리스.


그런데 어쩐지 끄덕이면서 짓는 표정이 영 밝아 보이지 않았다. 수긍은 하지만,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듯한.


위로차 등을 토닥여주는 걸로 보아 확실했다.


“설마······ 선발이 아닌 건가?”


구경꾼이 되어 흥미진진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샌더스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월리스와 대화를 마치고 발걸음을 옮긴 감독이 자신을 향해 오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이쪽으로 오는 게 맞았다.


“자, 스티브. 오늘부터 내가 정해준 세션과 멤버끼리 훈련에 임하도록 해. 자네의 역할이 제법 중요할 거니까.”


“······네?”


상황을 미처 이해하지 못한 샌더스가 반문했고,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재차 대꾸해 주었다.


“자네가 2차전 선발 멤버로 나가게 될 거야.”


작가의말

요새 또 왜 이러는지...

계속해서 기다림만 드리게 되네요.

이런 글쟁이라 죄송합니다.

어떻게든 끝까지 가는 것.

제가 유일하게 약속드릴 수 있는

이것 하나만 바라보면서 써나가겠습니다.

항상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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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199. 대립 +5 24.01.25 788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8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5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4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5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8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8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1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71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2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6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4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7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6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2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8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9 39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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