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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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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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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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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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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200. 공간 싸움

DUMMY

다시 바이에른 뮌헨의 진영으로 볼이 돌면서 로스 카운티가 압박하는 양상.


블랜차드가 알론소에게 달라붙으며 돌아서지 못하게 만들고, 뒤에서는 일자 라인으로 방어하는 대형이 잘 훈련된 듯 정교하게 갖춰져 있다.


그러나 블랜차드를 등진 알론소의 원터치 패스를 거치더니 부드럽게 중앙선을 통과하는 뮌헨. 압박이 풀리며 또 급격히 후퇴하는 구도로 접어든다.


기습적으로 리베리를 향해 뻗어나간 롱패스는 델샤드가 먼저 헤더로 끊어내며 간신히 터치라인 바깥으로 걷어낸다.


저 단계에서 로스 카운티가 허점을 보이진 않았다. 뮌헨보다 더 낮은 전력의 팀이었다면 분명 먹혀들 만큼 짜임새도 있었다. 정작 개인 기량 차이로 벌어진 상황 또한 아니었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


저 어딘가 생소한 시스템. 아직 선수들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저 형태가 결정적 원인이니까.


“확실해. 인버티드 풀백이 맞아.”

뮌헨전 1.jpg

원래대로라면 필리프 람과 데이비드 알라바는 측면에서 센터백과 동일 선상을 유지하거나 더 높이 올라가 터치라인 부근에서 볼을 받아야 한다. 그게 풀백이 수행해야 할 기본 역할이다.


하지만 그 둘이 중앙으로 좁혀 들어오면서 알론소와 비슷한, 아니 오히려 그보다 좀 더 위쪽 자리로 올라간다. 마치 미드필더처럼.


뮐러와 비달이 도와주러 내려가지 않는 이상 알론소 혼자만 남아 있어야 할 공간에 무려 세 명이나 위치하게 된 거다.


예상치 못한 중앙 숫자가 늘어나면서 맥긴과 딩월은 딜레마를 떠안게 된다.


람과 알라바를 놔둘 수 없다고 쫓아가면 로번과 리베리, 저 위협적인 듀오가 협동 마크에서 자유로워진다.


분데스리가 상위권 팀은 물론,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서도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 왔던 저 월드클래스 윙들을 경기 내내 일대일로 대치하면서 단 한 번도 안 뚫릴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제로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측면 방어 태세를 유지하자니, 람과 알라바가 합세한 후방 빌드업을 전혀 제어할 수 없게 된다.


전개의 핵심인 알론소가 풀려나는 순간부터 뮌헨의 페이스대로 주도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과르디올라가 원하는 그림대로 끌려가는 꼴이다.


거기에 람과 알라바 또한 전개에 일가견이 있는 선수들. 설령 블랜차드가 알론소를 철저히 막아도 좁혀 들어온 둘까지 감당할 수 없으며, 수비진이 최대로 집중력을 발휘해도 뮌헨 공격수들에게 배급되는 정교한 패스를 끝까지 틀어막을 수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냥 저 후방 빌드업은 막아낼 방법이 안 보여.”


극단적 예시로 저 후방의 셋을 꽁꽁 묶고, 로스 카운티 풀백들이 로번과 리베리를 완벽하게 봉쇄했다고 쳐보자. 그래도 결국엔 균열이 일어난다.


과르디올라의 뮌헨은 골키퍼까지 필드 플레이어처럼 사용하며 빌드업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무나 따라 하지 못하는 ‘스위퍼 키퍼’의 역할을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현역 최고의 골리 마누엘 노이어가 바이에른 뮌헨의 골문 앞에 버티고 서 있다.


노이어를 중심으로 센터백이 넓게 퍼져서 대형을 갖추니, 제아무리 톰슨의 발이 빠르다 한들 그들 셋에게 둘러싸여 놀아날 뿐.


특히 노이어와 보아텡은 다른 뮌헨 선수들 못지않게 빌드업을 주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마크맨이 없는 보아텡이 볼을 몰고 올라가는 순간 로스 카운티의 압박 체계는 붕괴되며, 단숨에 불리한 구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더 심각한 건 굳이 그렇게 최종 수비수가 올라갈 필요도 없이 람과 알라바 선에서 끝내버릴 수 있다는 점이지만.


“로스 카운티의 최대 강점이 무력화되어 버린 셈인데······.”


그동안 델 레오네는 특정 영역에서 상대보다 수적 우위인 상황을 만들어낸 뒤 그 유리함을 이용해 공략하는 방식을 즐겨 쓰곤 했다. 그게 숫사슴 군단의 주력 무기 중 하나였다.


과르디올라는 역시 만만치 않은 감독인가? 프리먼은 처음으로 숫자 싸움에서 로스 카운티가 밀리는 상황을 보는 것 같았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이건 단순히 뮌헨이 강력해서 벌어진 문제가 아니다. 저 독특한 풀백 운용법으로 만들어진 흐름이다.


인버티드 풀백(Inverted Full-back). 최근 축구계에서 새로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 흐름.


사전적 의미로는 역방향, 즉 위치상 정발이 아닌 역발을 가진 풀백을 뜻한다. 그러나 세세하게 따지면 단지 그 의미에만 국한해서 볼 건 아니다.


“이걸 궤변이라 해야 할지, 고정관념을 탈피했다고 해야 할지.”


보통 풀백의 역할이라 하면 직선을 열심히 오르내리며 측면을 방어하고, 오버래핑을 통해 윙을 지원해 주는 것이 기본.


그래서 현대 축구 전술은 그 오버래핑의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윙이 안쪽으로 파고들어 수비를 유인하고, 풀백이 올라갈 측면 공간을 넓게 만들어주는 형식으로 발전해 왔다.


그 과정에서 직접 슛을 노리기 좋은 역발 윙이란 개념이 정립되었고, 이제는 보편화되어 정석처럼 굳혀진 게 요즘 추세였다.


그래서 어찌 보면 저건 참 역설적인 장면이다. 반대로 풀백이 안으로 들어가고, 윙이 좌우 끝자락에서 와이드하게 플레이하고 있으니.


저렇게 진형을 형성한 이유? 점유율을 반드시 압도해야 하는 과르디올라의 철학에서 비롯된 거다.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의 전설인 요한 크루이프가 자신의 스승인 리누스 미헬스의 토탈 풋볼 정신을 이어받아 정착시킨 사상, 크루이프이즘.


축구 경기 90분 중 70분을 지배할 수 있으면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이 철학은 크루이프가 팀을 지휘하던 시기에 선수로 뛰었던 과르디올라가 감독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가며 그대로 계승하였다.


크루이프이즘의 핵심은 점유율, 그리고 점유율의 핵심은 빌드업.


상대 진영에 부정확한 롱볼을 욱여넣는 걸 최대한 절제하고, 짧은 패스를 통해 후방에서부터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것이 크루이프이즘의 기조.


과르디올라는 경기를 지배하려면 중앙의 통제력을 잃지 않는 게 필수라 여겼고, 그 연구 과정에서 나온 게 바로 인버티드 풀백일 것이다.


혼자서도 수비를 부술 수 있는 윙어들이 포진했는데. 굳이 그들을 안으로 넣고, 풀백이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올라가야 할까? 아마도 이런 접근법으로 풀어나갔을 가능성이 높다.


“하긴,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는 게 주 임무였던 클래식 윙어들이 점점 사라지면서 인버티드 윙어가 성행한 것도 당시엔 파격적이었지.”


그것이 이제는 보편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던 현대 축구였다. 과르디올라는 갑자기 역행하여 다시 윙어를 넓게 펼쳐놓은 셈이다.


풀백이 안으로 좁혔으니 비어있는 측면 공간은 윙어들이 점령한다. 자연스러운 현상이긴 하지만, 과거의 클래식 윙어와는 크게 다른 점이 있다.


그건 뮐러와 비달, 두 메짤라를 연관 지어서 봐야 한다.


예전의 축구는 경기장을 가로로 삼등분하여 수비 지역, 중간 지역, 공격 지역으로 나누었다. 사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상식이었다.


세상의 변화는 그런 상식을 깨뜨리는 사람들이 불러일으킨다고 하던가?


독일의 일개 축구 전술 블로거였던 레네 마리치(Rene Maric)는 이 지극히도 당연했던 걸 재해석하여 다른 시각으로 본 최초의 인물이었다. 경기장을 가로가 아닌 세로로 돌려놓고, 삼등분이 아닌 오등분으로 나눈 것이다.


그는 좌우 측면 영역과 중앙 영역. 그리고 이 측면과 중앙 사이의 공간, 쉽게 말해 백포 기준으로 풀백과 센터백 사이에 벌어진 틈새를 눈여겨보았다.


이 사이 공간은 독일 축구 관계자들에게 신개념의 발견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곧 정식 명칭으로 ‘Halbraum’이라 명명하게 되었다.


이후 과르디올라가 독일로 건너가 이 개념을 접한 건지, 본인이 연구하면서 터득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해당 영역을 뮌헨에서 본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차 널리 알려졌고 대중화되기에 이르면서 독일 밖,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 축구가 나아가야 할 다음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 독일어로만 쓰이던 Halbraum을 영어로 바꾸어 쓰면서 정착된 용어는 하프 스페이스(Half-Space).


좌우 윙을 넓게 배치한 뒤 로스 카운티의 풀백들을 바짝 유인한다. 그리하여 풀백과 센터백 사이에 벌어지는 공간, 하프 스페이스를 공략한다.


비달과 뮐러가 말이다. 두 메짤라로 하여금 윙어들이 만든 수비진의 균열을 파고드는 것이다. 저게 바로 바이에른 뮌헨이 구축해 놓은 메인 시스템.


공격에 투자하면서 부실해진 후방은 풀백이 안으로 좁혀서 올라간 두 미드필더의 자리를 채운다. 인버티드 풀백은 과르디올라의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었다.


와아아 -


로스 카운티를 완전히 그들 진영으로 밀어내고서 공격을 주도하는 뮌헨.


로번이 월리스를 끌어들인 뒤 뒤쪽의 비달과 원투패스를 하면서 순간 안으로 파고들었고, 중앙으로 이동한 뮐러에게 볼을 내준다.


오른발 인사이드로 원터치 패스를 내주는 뮐러. 패터슨과 얀손의 사이로 빠져나간 볼은 교묘하게 뒤로 침투한 레반도프스키가 받아낸다.


“아.”


정상급 골잡이다운 결정력으로 그물을 흔들어내는 걸 보며 프리먼은 탄식을 흘렸지만,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간발의 차로 오프사이드였어.”


하지만 잠시 위기를 모면한 것뿐, 주도권은 심각하게 밀려 있는 상태. 반격에 나서본 로스 카운티였으나, 딩월이 볼을 소유하지 못하고 알라바에게 뺏기면서 뮌헨의 공격이 이어진다.


소유권을 가져오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넓게 퍼지는 윙어들. 그리고 기계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미드필더진.


그래도 카테나치오의 나라 출신 감독 밑에서 배운 선수들답게 크게 흐트러지지 않은 진형으로 맞서며 어떻게든 버티고는 있다.


또 한 번 로번에게 볼이 도달하자 월리스가 자세를 낮추며 대치하고, 맥긴이 빠르게 달려와 돕는다.


이에 기다렸다는 듯 여유롭게 볼을 뒤로 빼는 로번. 맥긴이 따라붙었다는 건 람을 포기하고 내려왔다는 얘기다.


아무도 안 붙은 람이 몸을 틀며 반대편으로 볼을 전환하고, 롱패스를 받은 리베리와 델샤드가 일대일로 대치한 상황.


오른발로 들어가려는 척하다가 왼발로 치고 나가며 제치는 리베리. 잠시 휘청거리며 놓쳤지만, 끝까지 쫓아가 엔드라인에서 슬라이딩 태클로 볼을 쳐내며 간신히 막아내는 델샤드.


짧은 시간에 일어난 두 선수의 치열한 경합에 더욱 뜨거워지는 알리안츠 아레나. 그러나 프리먼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저게 문제야.”


아무리 견고한 수비 블록을 쌓아놔도 깨부술 방법은 존재한다. 하프 스페이스 공략 역시 그런 수단 중 하나.


방금 나왔던 것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꽤 익숙하기까지 한 장면이다.


“밀집과 전환.”


의도적으로 왼쪽 구역에 밀집해 상대 진영을 딸려 오게 만든 뒤, 반대편으로 전환하여 톰슨과 수비의 일대일 구도를 만들던 로스 카운티의 주요 수법.


사실 이건 앞서 언급했던 것들보다 한참 전부터 축구 전술의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던 패턴이다.


당시엔 확실한 명칭이 없어서 표현하는 법이 서로 달랐고, 스코틀랜드 전문가들은 로스 카운티의 플레이를 처음 접하고서 밀집과 전환이라는 말을 사용했었다.


하지만 이 역시 현대 축구를 정의함에 있어 중요한 하나의 줄기로 자리 잡아가자, 최근에는 ‘한쪽에 과부하를 준 뒤, 고립된 곳으로 보낸다.’는 의미로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트(Overload to Isolate)라 불리게 되었다.


프리먼은 그런 흐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과르디올라가 이 패턴의 귀재라는 것 또한.


‘축구 전술은 짧은 담요와 같습니다.’


2010 FIFA 남아프리카 공화국 월드컵 4강 진출, 2011 코파 아메리카 우승의 업적을 거둔 우루과이 대표팀 감독 오스카르 타바레스(Oscar Tabarez)는 그런 말을 했었다.


짧은 담요는 몸을 전부 덮을 수 없다. 한쪽을 덮으면 반드시 한쪽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축구에서 라인을 올리면 뒷공간이 노출되고, 내리면 주도권을 뺏기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모든 게 완벽한 전술은 없다는 걸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 얘기는 과부하와 고립에도 충분히 통용된다. 한쪽 측면에 수비 대형이 쏠리면 한쪽은 넓은 공간이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까.


1970~90년대가 현대 축구 전술의 태동기이자 성장기였다면, 2000년대 이후로는 번영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과거에는 특정 혁명가들만이 토탈 풋볼을 뿌리 삼아 발전시키고 나머지는 우러러보기만 하는 경향이었지만, 지금은 모두가 그것을 공유하고 있으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만들어가는 시대다.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공간론의 가치가 더욱 높아진 것도 지금. 2010년대에 들어 명장이라 불리는 감독들은 언제나 공간을 눈여겨본다.


공간을 활용해야 함을 알고, 잘 활용할 줄 안다. 그런 공간을 막아야 함을 알고, 잘 막을 줄 안다.


인버티드 풀백, 하프 스페이스, 오버로드 투 아이솔레이트. 이 모든 것이 공간의, 공간에 의한, 공간을 위한 연구의 결과물. 현대 축구의 전술은 공간 싸움의 디테일인 셈이다.


델 레오네도 그랬다. 톰슨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목적이라곤 하나, 과부하와 고립이란 정의가 제대로 세워지기 전부터 밀집과 전환 기술을 이용했고.


작년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볼프스부르크의 케빈 더브라위너를 하프 스페이스에 놓고 맹활약하게 만들었던 디터 헤킹 감독의 혜안이 재조명되면서 델 레오네가 이를 간파하고 블랜차드를 통해 그 공간을 틀어막았다는 것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현대 축구의 번영기. 그리고 2013년, 그 번영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전술가.


“저 감독이 아무런 대처도 안 하고 나왔을 리 없어.”


프리먼은 벤치에서 일어나 터치라인으로 걸어가는 이탈리안을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상대가 누구든 밤까지 새가면서 철저하게 분석하는 그가 분데스리가에서 핫하던 과르디올라의 인버티드 풀백을 모를 수가 없다.


델 레오네가 한 팔을 들어 무언가 지시를 내렸고, 프리먼은 재빨리 필드로 동공을 돌렸다. 동시에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우선은 견제하기로 한 건가?”


맥긴과 딩월을 중앙으로 좁혔다. 뮌헨의 윙어들보다 1차 빌드업이 더 위협 요소라 판단한 듯하다.


다만 압박 방식은 아까와 좀 달랐다.

뮌헨전 2.jpg

톰슨은 최후방 수비진 압박을 포기했고, 블랜차드는 알론소를 향한 집중 마크를 풀었다. 대신 둘은 나란히 대열을 유지하여 뮌헨 선수의 사이사이로 들어갔다. 맥긴과 딩월 역시 인버티드 풀백에 붙었지만, 밀착하기보다는 다른 쪽으로 패스하기 어렵게 방해를 최우선으로 하는 느낌.


볼을 뺏는 목적의 압박이 아닌, 말 그대로 빌드업 방해. 사람보다는 공간을 점유한 압박에 초점을 두었다.


다만 캐리와 브리튼은 비달과 뮐러를 주시하고 있고, 위험한 공간을 비우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전담 마크를 수행한다. 간단하게만 보면 뮌헨의 오각형이 로스 카운티의 육각형에 싸 먹힌 듯한 모양새다.


“우선 길목을 틀어막고 볼을 잡아 전진하려 하면 순간적으로 다인 압박까지 가능한 구조.”


팀원 간의 합이 맞지 않으면 되레 붕괴하기 쉬운 진형이지만, 이탈리안 밑에서 배운 로스 카운티 선수들은 어설픈 빈틈을 잘 보이지 않는다.


맥긴과 딩월은 측면과 중앙을 미친 듯이 뛰어다녀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그들만큼 이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선수도 얼마 없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둘의 에너지만큼은 뮌헨 선수들에게 꿀리지 않는, 오히려 능가할 수도 있는 분야니까.


프리먼은 터치라인으로 나와 무언가 지시하는 과르디올라를 보았다. 그도 빠르게 대응하려는 것 같았다.


“알론소를 뒤로 빼는 건가?”


알론소를 후퇴시켜 라볼피아나 형태를 만들고, 우선 압박에서 자유롭게 한다. 마크맨이 저기까지 따라붙으면 육각형으로 에워싼 공간 점유도 흐트러지니 나쁠 건 없다.


이에 질세라 바로 선수들을 향해 크게 외치며 응수하는 델 레오네.


“따라가지 않는군. 과르디올라가 의도한 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알론소가 후퇴하자 블랜차드와 톰슨이 람과 알라바에게 붙는다. 최후방에서 볼을 돌리는 건 몰라도 인버티드 풀백을 통해 들어오는 건 어떻게든 막겠다는 의지.


오히려 알론소가 빠진 걸 이용해 맥긴과 딩월을 도로 측면으로 넓히며 4-4-2 구조를 만든다. 풀백들과 협동 압박할 태세를 갖추면서 센터백이 볼을 몰고 올라오는 공간도 축소시키려는 속셈이다.


그러나 상대는 바이에른 뮌헨. 로스 카운티가 어설픈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곤 했지만, 뮌헨은 그런 빈틈없는 곳에 균열을 낼 줄 아는 선수들이 있다.


알론소가 직선으로 롱패스를 찔렀고, 브리튼을 따돌리며 내려가 일순간 발생한 공간으로 진입한 뮐러.


비달이 침투하는 걸 캐리가 쫓아가자 다른 공간이 생겨나고, 그 자리에 레반도프스키가 내려가 뮐러의 패스를 받아준다.


로번으로 향한 패스는 월리스와 맥긴이 에워싸며 한시름 덜었지만, 어느새 로스 카운티가 또 급히 밀려나는 상황. 자연스레 중앙선을 넘어온 뮌헨이 몰아넣고 두들기는 양상으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프리먼은 새로운 변화를 하나 더 발견할 수 있었다.

뮌헨전 3.jpg

“유사시에 더블 마크할 준비는 되어 있지만, 위치가 바뀐 것 같은데. 월리스를 맥긴이 돕는 게 아니라 맥긴을 월리스가 돕는······.”


자기들 진영에서 수비하는 흐름이 되자 맥긴이 윙백처럼 내려와 로번을 마크하고, 월리스는 좀 더 센터백처럼 들어간다. 반면 딩월은 측면이 아닌 중앙에 위치하면서 캐리, 브리튼과 함께 수비진 앞을 사수한다.


그러니까 포메이션으로 따지면 5-3-2의 수비 형태.


“하프 스페이스를 방어하려는 거구나.”


중앙에 백스리를 형성해 침투를 노리는 비달과 뮐러를 저지하고, 그 앞에도 세 명을 배치해 이중 블록을 쌓는다. 람, 알라바, 그리고 상황에 따라 알론소까지 깊숙이 들어오는 걸 방지할 수 있도록 숫자를 맞춘 셈.


확실히 저렇게 대형을 갖추니 뮌헨도 쉽게 비집고 들어오기 어렵다. 1차 압박을 풀더라도 그다음 단계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해 수비진에서 볼을 돌리는 U자 빌드업의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것뿐이라면······.”


당장은 효과를 본다 해도 뮌헨을 상대하면서 끝까지 버틸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 방패를 들고 웅크리기만 하는 상대는 전혀 무섭지 않다.


그런 와중에도 계속되는 뮌헨의 공격 작업. 레반도프스키가 다시 내려가 풀어보려 시도한다. 박스 안으로 침투하는 비달을 보며 찔러준 패스.


집중력을 잃지 않은 캐리가 미끄러지듯 태클하며 차단하고, 패터슨이 볼을 잡아 왼쪽으로 보낸다.


전방을 슬쩍 보더니 길게 차 넣는 맥긴의 패스. 거의 걷어내는 수준에 가까워 단순하기 짝이 없는 전개에 맥이 풀리려는 찰나.


높이 솟아올라 머리를 틀어 전방으로 보내는 블랜차드의 헤더가 톰슨이 달리는 쪽으로 정확히 날아갔고, 보아텡이 오버헤드킥 자세로 몸을 날리며 아크로바틱하게 위로 쳐올린다.


“오.”


호수비가 아니었다면 뒤로 빠져나가 역습이 통할 뻔했던 장면. 프리먼은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블랜차드 쪽을 살펴봤다.


“알론소랑 붙여놨구나.”


수비적으로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블랜차드를 전방에 남긴 이유. 그리고 톰슨은 우측 터치라인에 붙여놓았다. 강인한 신체로 부딪치며 뮌헨의 중추를 흔들어보려는 심산이다.


이게 참, 말이 안 되는 게 알론소도 힘에서는 잘 밀리지 않는 선수로 유명하다. 그런데 방금은 마치 미스 매치라도 이루어진 것 마냥 허무하게 공중볼을 내준 거다.


“알론소가 밀려? 저 몸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거야?”


뮌헨의 공격. 리베리가 레반도프스키를 겨냥해 얼리 크로스를 올리지만, 브라운이 먼저 낚아채고, 주저 없이 앞으로 힘껏 내던진다.


“이번에도 블랜차드?”


볼을 받아 따라붙는 알론소를 등지며 버티는 블랜차드. 짧게 백패스를 내주고, 캐리의 스루패스가 좌측으로 뻗어나간다.


터치라인을 따라 질주하는 맥긴. 마르티네스의 슬라이딩 태클을 피하며 치고 나가자 원정팬들의 함성이 크게 일었고, 이어 빠르게 뒤쫓아간 람이 슬라이딩 태클로 끊어내자 이번에는 홈팬들의 함성이 폭발한다.


통한다. 블랜차드를 거치는 단순한 패턴이지만 거기에 뮌헨이 말려들어 가고 있다.


과르디올라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두 팔을 현란하게 휘저으며 위치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마르티네스를 붙이는군.”


눈엣가시인 블랜차드를 억누르기 위해 좀 더 몸싸움에 능한 190cm의 장신을 붙여놓았다. 그러면 알론소는?


아예 공격적으로 올려서 수비진을 지키는 세 명의 미드필더 앞으로 배치했다. 마르티네스가 블랜차드를 전담하고, 톰슨이 노리는 뒷공간은 보아텡이 커버한다.


공격과 수비 전부 숫자를 동일하게 맞춘 셈인데, 이러면 개인 기량이 앞서는 뮌헨이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래도 보통은 후방이 불안해져서 저렇게 하지는 못할 텐데, 과연 지배하는 축구에 진심인 감독······.”


로스 카운티 진영에서 뮌헨의 패스 플레이가 이루어지지만 쉽게 달려들어 끊어내지 못한다. 브리튼은 올라온 알론소를 막아야 할지 볼을 받아주러 내려온 레반도프스키를 막아야 할지 혼란에 빠진 모습.


일시적으로 숫자가 불리해지는 상황까지 나온다. 그걸 방지하겠다고 수비가 공격수에게 끌려가면 비워둔 공간에 침투를 허용할 위험이 크다.


라움도이터, 토마스 뮐러 앞에서 공간을 내준다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결국 이 같은 사태를 수습하고 싶다면 당장 허튼수작을 멈추고 블랜차드까지 내려서 막으라 강요하는 거다.


하지만 그걸 따르게 되는 순간, 내내 반코트 게임을 해야만 한다. 아마도 델 레오네는 내리지 않을 것이다.


로스 카운티가 바이에른 뮌헨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니까.


“수비진이 집중해서 막아주고, 한 번······ 딱 한 번의 기회만 온다면······ 어쩌면······.”


와아아 -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알리안츠 아레나를 뒤흔드는 함성. 측면에서 로번이 맥긴의 타이밍을 뺏으며 돌파에 성공한다.


월리스가 빠르게 붙어 막아서지만, 박스 외곽에 접근한 비달에게 횡패스가 전달되고, 이어서 짧게 밀어주는 비달의 패스. 로번은 이미 다음 동작으로 이어가며 월리스의 뒤를 파고드는 중이었다.


리턴 패스를 받아 박스에 진입한 로번의 컷백. 낮고 빠른 패스가 살짝 대각선으로 꺾이면서 패터슨의 발을 피해 지나갔고, 슛 동작을 가져가는 레반도프스키에게 정확히 배달된다.


퍽 -


울려 퍼지는 둔탁한 소리. 몸을 던진 얀손이 허벅지로 슛을 막아내고, 튕겨 나간 볼은 알론소에게로 흐른다.


힘껏 찬 중거리 슛은 브리튼이 달려가 몸을 틀면서 재차 막아낸다.


“하아······ 나이스 수비!”


블랜차드를 밀어내며 먼저 볼을 잡아낸 마르티네스가 람에게 패스를 보냈고,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뮌헨의 공세.


문전으로 날카롭게 붙이는 람의 얼리 크로스. 휘어진 볼의 궤적이 패터슨과 얀손의 머리 위를 넘어 반대편 파 포스트로 향한다. 기습적으로 쇄도하는 알라바를 보고서 올린 볼이었다.


떨어지는 타점에 맞춰 헤더 슛을 시도하는 알라바. 브라운 키퍼 역시 같이 뛰어오르며 그의 머리보다 한 뼘 더 높은 위치에서 간신히 손끝으로 쳐낸다.


“짧아!”


힘이 실리지 않은 펀칭으로 멀리 나가지 못한 볼을 노리는 뮌헨의 하이에나들. 그러나 델샤드가 먼저 움직이며 박스 밖으로 걷어내는 데 성공한다.


이어지는 두 선수의 경합. 마르티네스가 블랜차드의 어깨를 짓누르며 헤더를 따낸다.


“아으, 역시 저 선수에겐 밀리나?”


마르티네스가 알론소를 보며 내준 볼을 잽싸게 끼어들어 헤더로 다시 토스하는 브리튼. 이번엔 블랜차드가 가슴으로 받아낸다.


그 순간, 프리먼은 뮌헨의 후방 숫자가 많이 부족한 것을 알아챘다.


알라바가 박스 안까지 들어가면서 벌어진 일이기도 했지만, 람이 공격에 치중하는 사이 몰래 역습으로 전환한 움직임이기도 했다.


마르티네스를 등지고 버티는 블랜차드의 좌우로 내달리는 두 선수. 맥긴과 딩월이 순식간에 올라오면서 수적 우위를 만든 것이다.


갑작스러운 2 대 4, 일시적으로 숫자를 늘리는 건 이 팀의 선수들 역시 도가 텄다.


몸을 시계 방향으로 틀며 맥긴에게 패스를 주려는 블랜차드. 이에 반응하며 움찔하는 마르티네스.


그리고 맥긴에게 주는 척 왼발 뒤꿈치로 올라오는 딩월에게 힐패스를 찍어 보내는 블랜차드.


“잠깐, 터치가!”


뛰는 도중 살짝 뜬 볼을 잡느라 딩월의 터치가 불안정하게 튀었고, 맥긴 쪽을 경계하며 뒷걸음질하던 보아텡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어쩌면 딩월이라서 가능했던 장면일지도 모른다. 그의 형편없는 터치를 보고서 보아텡이 방심을 하고 말았으니.


악착같이 달려가 슬라이딩하며 미세한 차이로 먼저 볼을 건드린 딩월.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스루패스가 되었고, 커트에 실패한 보아텡의 뒤로는 아무도 없는 상황.


그 뒤로 톰슨이 질주하고 있었다.


“그렇지!”


와아아 -


로스 카운티의 득점 공식이자 승리 공식이 성립된 순간. 장벽과도 같던 뮌헨의 포위망과 수비진을 뚫고서 기어코 단독 찬스를 만들어 내다니.


“가자! 톰슨, 너라면 충분······.”


그러나 최대치로 올랐던 프리먼의 도파민은 금방 식어버리고 말았다.


먼저 볼을 낚아채며 가속이 붙은 톰슨을 제쳐버리는 뮌헨 선수. 여유롭게 주위를 둘러보더니 황급히 내려온 람을 향해 패스를 건네준다.


뜨거웠던 숫사슴들의 함성이 뚝 끊겨버리고, 프리먼도 어안이 벙벙한 채 그 선수를 바라보았다.


“무슨······ 골키퍼가 왜······ 저기까지······.”


마누엘 노이어의 스위퍼 플레이.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응원하는 팀의 팬으로서 접해보니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한 회에 모든 걸 끝내기는 어려워서

최대한 빨리 써보려했는데 초조해지니 더 안 되네요.

시간을 들인만큼 볼만한 글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항상 찾아와주시는 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다가오는 설 연휴 행복하게 보내시고

나머지도 빨리 써서 올릴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kkatnip 님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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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199. 대립 +5 24.01.25 787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7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3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3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4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6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0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69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1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4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3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5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5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0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8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8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2 50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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