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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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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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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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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192. 캡틴 잭

DUMMY

“감독님은 뜬금없이 혼잣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있을 때도요. 보통 회의 때 자주 그러시죠. 마치 저희가 눈앞에 없는 것처럼요. 아니면 대화의 맥락과 상관없는 주제를 갑자기 꺼내기도 하고요. 물론 우리는 그 상황에 익숙해요. 왜냐하면 그만의 정신세계에 잠시 들어갔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보통 그 시간이 끝나면 뭔가 아이디어가 나오기 때문에 누구도 감히 방해할 수 없죠.” - 골키퍼 코치 ‘스탠 윈터번(Stan Winterburn)’ -


*******


안토니오 델 레오네.


로스 카운티의 전례 없는 역대 최고의 감독이자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역사를 통틀어서도 다섯 손가락을 꼽는 반열에 진입하기 일보 직전인.


예정된 레전드.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데일리 메일 소속 기자 마이클 길버트는 이탈리안을 칭송하는 또 다른 기사를 불만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물론 그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언론들이 죄다 그 감독 앞에서 딸랑대는 건 당연한 일이다. 흠잡을 거리가 없는 건 둘째 치고, 감정을 배제하고 보면 확실히 대단한 인물이긴 하니까.


델 레오네는 일개 감독을 넘어서 프리미어십의 철학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고, 그의 정신은 새로운 이념이 되어 빠르게 뿌리 뻗는 중이다.


축구 내적으로 기여한 것뿐만 아니라 스코틀랜드 국가대표팀의 전력 향상, 자국민들 사이에서 올라간 프리미어십 인기, 유로파 리그 우승으로 인한 관광 수입이 늘어나는 등 외적으로도 국가에 끼치는 영향력이 엄청나니 사실상 먼 나라에서 온 영웅 취급이다.


그건 길버트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감정의 골은 파일 대로 파인 상태고, 델 레오네를 호평하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속이 뒤집힐 것 같은데.


일단 숨죽인 채 미끄러지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로스 카운티는 작년보다 더 잘나가는 중이고 저 망할 이탈리안의 주가는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끝도 없이 치솟아 오르는 날개를 맞혀 떨어뜨리려는 시도는 몇 번 있었다.


‘더 선 스코틀랜드’ 소속 기자 노먼 그리드(Norman Greed)는 축구 쪽보다 사생활을 깊이 파헤쳐서 흠집을 내려 했었다.


사생활? 그건 길버트도 노린 적 있었다. 이렇게나 생활 패턴이 끔찍하도록 단조로운 인간은 또 없을 거라는 걸 깨닫고는 포기한 것뿐이다.


미혼이라 불륜으로 엮을 거리도 없었고, 어디 특정한 곳을 나다니는 타입도 아니었으니까. 일, 그리고 일, 오로지 일이 다였다.


어떨 때는 퇴근도 안 하고 클럽 하우스에 처박혀서 나오질 않으니 미행할 파파라치를 붙여봤자 얻을 게 없었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그리드는 길버트보다 좀 더 악질이었다.


그는 도저히 캐낼 게 없자 비슷한 체격의 남자를 델 레오네라 속이며 비밀스러운 유흥 파티에 참석하는 걸 포착한 것처럼 보도하는가 하면, 도박 의혹에 연루되었다는 기사까지 내보내면서 무리한 흔들기를 시도했었는데.


곧이어 구단 직원들이 나서며 알리바이를 증언해 주었고, SNS 유저들은 그 기사의 날조를 파악한 자료를 올리면서 빠르게 진압되었다.


그리드는 하일랜드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분노한 사람들에게 얻어맞을 뻔하기도 했다.


끝내 결말은 퇴출. 순식간에 신성불가침을 건드린 죄인이 되고만 그를 더 선조차 방관할 수 없었는지 급히 사과문을 올리면서 해고를 통보했다.


어지간해선 꿈쩍도 안 했을 황색 언론일 텐데, 그들이 여론을 의식하여 고개를 숙인 셈이다.


길버트를 비롯하여 델 레오네를 아니꼽게 여기던 일부 기자들이 더 소극적으로 움츠러들게 된 사건이었다.


“후······.”


절로 한숨이 나왔다. 수렁으로 끌어내리고 싶지만, 너무 강력한 존재. 때로는 거대한 장벽에 부딪혀 승산 없는 싸움을 하는 기분이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선수를 대상 삼아 무의미한 루머를 뿌려대는 정도. 이제 그것 역시 사람들에게 잘 먹히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지금도 길버트는 잭 마틴을 주제로 모니터 앞에서 고민 중이었다.


끊임없이 들쑤셔도 팀에 대한 충성심이 여간 두터운 게 아니라서 한 번도 휘둘리지 않은 선수. 그러나 한편으론 주전급 레벨에서 유일하게 선발 출장이 들쑥날쑥하여 그나마 로스 카운티를 흔들 수 있는 요소.


초반에는 윙 포워드로 본격적인 자리를 잡는 듯했지만, 최근에 블랜차드, 맥긴 등과 나누어 출장하면서 벤치에 앉는 시간도 늘어났다.


예전에는 마틴의 심리를 흔들어서 이적 요청까지 가는 불화를 일으키려 했었지만, 이젠 선수를 직접 노리는 게 헛짓거리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길버트는 방향을 살짝 틀었다. 칼럼을 위장해서 잭 마틴의 선발 보장에 관한 여론 조성을 하는 것.


마침 그는 셀틱의 리 그리피스와 치열한 득점 선두 경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아직은 1위를 지키고 있지만, 작년 이맘때도 그랬다. 득점 단독 선두를 달리다가 주전 자리를 밀려나면서 애버딘의 아담 루니에게 득점왕을 내준 사례가 있었다.


“선수를 흔들 수 없다면 선발권에 대한 압박이라도 가하겠어.”


그동안 해왔던 것에 비하면 소심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길버트로선 최선의 발악이었다.


[ 잭 마틴은 2013/14 시즌에 고작 세 골 차로 폴 헤퍼난에게 득점왕을 밀렸고, 2014/15 시즌에는 두 골 차로 아담 루니에게 득점왕을 빼앗겼다. 그리고 현재, 그는 리 그리피스에게 선두를 위협받고 있다. 득점왕을 코앞에서 놓치는 악몽이 계속될 것인가? 만일 그가 좀 더 많은 경기 수를 보장받았다면 삼 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을지도 모른다. ]


득점왕을 놓치니 스코티시 프리미어십 올해의 팀에도 계속 빠질 수밖에. 잭 마틴이 개인 수상을 하지 못하는 건 감독이 꾸준히 선발 보장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걸 피력하는 거다.


그리고 이건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 감독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이들도 마냥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만일 마틴이 또 선두에서 미끄러진다면 팩트에 기반을 둔 칼럼이 되는 거고, 감독이 의식하여 선발을 늘린다면 적어도 그 인간의 선택권을 쥐고 흔들었다는 정신적 우월감이라도 취할 수 있다.


조금 유치하면서 추잡한 방식이긴 해도 로스 카운티를 깎아내릴 수만 있다면 길버트는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선수 본인에게도 영향이 간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도 득점왕이라는 타이틀에 아무 욕심이 없는 것 같지는 않으니.


“제아무리 잭 마틴이라도 세 번 연속 수상에 실패하면 뭔가 감정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겠지?”


그게 직접적인 불만으로 발현되진 않겠지만, 약간의 아주 미세한 균열이라도 줄 수 있다면 만족이었다.


길버트는 다시 희망 한 줄기를 잡은 표정으로 기사를 써나갔다.



[ Daily Mail ] 선발 자리가 불안정한 잭 마틴, 또 득점왕 빼앗기나?


*******


< 15-16 League Cup Semi-finals >

로스 카운티 : 던디 유나이티드

2016년 1월 30일 (토) 13:00

햄던 파크 (관중 수 : 48,502명)



[로스 카운티 / 4-2-3-1]

FW : 리암 보이스

AM : 필립 로스 / 제임스 블랜차드 / 앤드류 톰슨

CM : 라이언 잭 / 데미안 생클랜드

DF : 고든 스미스 / 대니 패터슨 / 스티브 샌더스 / 딜런 갈브레이스

GK : 데이비드 밀스



“제기랄.”


샌더스는 두 주먹을 움켜쥐며 분노에 떨었다.


스스로를 향한 분노였다.


0 : 3. 햄던 파크에서 일어난 처참하고도 놀라운 상황.


최정예 멤버가 전부 출격한 던디 유나이티드와 대부분 후보로 구성된 로스 카운티가 맞붙은 결과. 그렇다 해도 용납하긴 어려운 스코어였다.


전반전에만 내리 세 골을 내준 건 명백한 수비진의 실책이고, 거기서 제일 큰 지분을 차지한 건 자기 자신이었다.


제법 팽팽하게 진행되던 경기는 패터슨을 맞고 굴절된 중거리 슛이 밀스 골키퍼의 반대 방향으로 꺾여 허무하게 들어가면서 변질되었다.


마가 낀 듯한 흐름. 그 과정에서 샌더스는 뒷공간을 파고든 공격수를 놓치고, 몇 분 뒤 코너킥에서 마크해야 할 상대까지 놓치며 두 골을 내줬다.


전반전이 끝나고 블랜차드가 라커룸에서 벗어든 상의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불만을 표출했지만, 조용히 고개를 떨어뜨려야 했다.


대량 실점의 주범이 자신인 건 명백했고, 교체당해도 할 말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감독은 벤치에 스콧 보이드가 대기하고 있었음에도 변화를 주지 않았다.


“자네는 이 정도가 아니잖나?”


단지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그게 어느 정도 동기부여가 되었는지 후반전에는 큰 실수 없이 집중력을 발휘하며 좋은 수비를 연달아 보여주고 있었지만, 문제는 점수가 그대로라는 거였다.


입술이 떨려왔다. 결국 자신 때문에 패배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최근 리그에서도 꾸준히 교체로 쓰며 경험을 쌓게 해주는가 하면, 이 지경까지 왔음에도 끝까지 믿으면서 경기장에 내보내 줬다.


감독은 꾸준히 신뢰를 보내주는데, 기회를 이렇게나 받는데. 결국 또.


‘멍청이 같은 놈.’


작년 리그 컵과 스코티시 컵이 떠올랐다. 셀틱과 인버네스 CT를 만나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그때와 다를 게 없다.


4강의 문턱에서 또 마침표를 찍는 건가? 그것도 자신 때문에. 샌더스는 미칠 지경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끝나면 결국 자비로웠던 감독의 인내심도 끝이다. 아마 맷슨 클락, 그 녀석처럼 실격 처리되어 더 기회를 받긴 어려울지도.


그동안 사고 없이 꽤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안도감이 안일하게 만든 걸까? 로스 카운티의 진짜들이 이끄는 무패 행진에 동화되어 자신도 그 수준에 도달했다고 착각했던 건가?


‘실은 현 로스 카운티의 엠블럼을 가슴에 달 자격도 없는 놈인데.’


그때 주심이 교체 사인을 하며 휘슬을 불었다. 끝내 불려 나가는 것인 줄 알았으나 이번에도 자신은 아니었다.


데미안 생클랜드와 필립 로스의 아웃. 그들을 대신해 잭 마틴과 알렉산더 캐리가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마법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철썩 -


들어간 지 몇 분도 안 되어 터진 만회 골.


박스 외곽 좌측 부근에서 얻은 프리킥 상황. 캐리의 크로스와 마틴의 뛰어드는 헤더 골이 만든 합작품이었다.


“······.”


희망의 불씨를 살린 해결사는 곧장 볼을 주워 중앙선으로 달려왔고, 킥오프가 재개되었다.


점점 거세지는 로스 카운티의 공격. 긴급 투입된 지원군의 파괴력은 생각 이상이었다.


뻥 -


라이언 잭의 중거리 슛이 일직선으로 날아갔고, 순간적인 기습에 당황하며 간신히 막아내는 골키퍼.


그러나 미처 잡지 못해 흘러나온 볼은 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수비보다 먼저 움직인 골잡이가 밀어 넣으며 그물을 흔든다.


와아아 -


가망이 없다고 여겨지던 스코어의 격차가 어느새 1점으로 줄어들자 침울해 있던 햄던 파크가 크게 진동했다.


샌더스는 이 상황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아직 기뻐하긴 일렀지만, 마음속에 무언가가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실속 없이 점유율만 높던 아까 전과는 판이할 정도의 축구. 공격 한방 한방이 상대의 급소를 날카롭게 찌르는 느낌.


던디 유나이티드의 상태만 봐도 느낄 수 있었다. 페이스를 유지한 채로 큰 리드를 차분하게 지키던 그들이 지금은 급격히 밀려나 막기에도 버거운 모양새였으니까.


두 명이 합세했을 뿐인데 경기력이 이렇게나 달라지다니.


그 차이점이 가장 두드러진 곳은 측면이었다.


수비가 진형을 다 정비하고 나서 뒤늦게 볼을 전달해 주는 것과 그 전에 곧바로 보내주는 뛰어난 패서가 존재할 때의 차이는 이 정도인가? 톰슨이 살아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캐리의 롱패스가 던디 미드필드진을 훌쩍 넘기며 다시 우측에 도달했고, 오늘 처음으로 만들어진 듯한 톰슨과 수비의 일대일 대치 상황.


와아아 -


한발 빠르게 수비의 다리를 피하며 치고 나가는 돌파에 함성이 크게 일었고, 뒤늦게 쫓아와 방해하려는 후속 수비와의 어깨싸움까지 이겨내며 달려 나가는 질주에 또 한 번 홈 스탠드가 폭발한다.


두 명을 제치고 대각선으로 좁히며 박스 부근까지 달리는 톰슨.


엔드라인에서 가볍게 찍어 올린 크로스는 쇄도하는 잭 마틴과 그의 위험성을 감지하여 달라붙은 수비수의 키를 넘기며 노마크 상태인 보이스에게로 향했다.


그러나 몸보다 뒤쪽으로 떨어지면서 헤더 슛을 시도하기는 어려운 상황. 오히려 그 덕분에 이 심상찮은 흐름에 가장 어울리는 아크로바틱한 장면이 터지고 말았다.


우와아아아 -


몸을 완전히 공중으로 띄우며 볼을 발에 맞춘 바이시클 킥이 골키퍼의 손을 벗어나 좌측 상단 구석으로 강렬히 꽂힌 것이다.


“미친.”


샌더스는 다리에 힘이 풀리며 주저앉고 말았다.


3 : 3 동점. 60분이 넘도록 패색이 짙어가던 흐름 속에서 상상조차 못 했던 시나리오. 던디 유나이티드의 선수들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야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샌더스에게는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하지만 로스 카운티의 공세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스미스의 얼리 크로스로 시작되어 일어난 박스 주변에서의 난전. 수비가 머리로 다급히 걷어내려던 게 정수리를 맞아 튀어 올랐고.


블랜차드가 다시 머리로 욱여넣으며 볼은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던디 진영에서 이루어지던 공중전 랠리가 블랜차드의 스매시로 끝날 거라 예상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타이밍 맞춰 수비 뒤를 교묘히 빠져나가면서 볼을 받는 공격수.


철썩 -


잭 마틴의 슛이 키퍼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며 그물을 흔들었고, 곧장 햄던 파크가 쩌렁쩌렁 울렸다.


대역전을 달성한 본인도 격양되었는지 평소보다 더 과격한 몸동작으로 셀레브레이션을 펼치며 내달렸다.


일제히 모든 팀원이 기뻐하며 해트트릭의 영웅에게 달려갔다. 샌더스도 이번엔 주저하지 않고 그들 속에 섞였다.


그저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생각할 필요도 없었고 말이다.


우선은 이 행복을 만끽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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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4 : 3 던디 유나이티드 >

잭 마틴(65‘, 72‘, 88‘)

리암 보이스(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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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스톡스(13‘)

빌리 맥케이(21‘)

션 딜런(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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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대단한 시합이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이 해낸 위대한 성과입니다.”


경기 후 인터뷰에 응한 델 레오네도 목소리가 살짝 고조되어 있었다.


차분한 포커페이스의 달인조차 평정심이 흐트러질 정도면 오늘 시합의 승리는 그의 예상 범주에도 감지되지 않았던 확률이 터졌다는 얘기.


이 정도의 반응을 보인 건 산 파올로의 기적 이후 처음이었다.


“감독님이 꺼낸 교체 카드가 제대로 적중했는데요. 잭 마틴과 알렉산더 캐리가 들어가면서 경기 양상이 아예 달라졌습니다.”


“제가 한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저 터치라인에서 격려하며 등을 살짝 밀어준 것뿐이죠. 이 시합의 공은 전부 선수들이 가져가야 합니다. 감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선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근데 저희가 받은 인상으로는 컵 대회에서 유독 주전을 아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요. 사실 작년도 제대로 된 전력으로 나왔다면 진작 4강 이상으로 갔을 거란 의견들이 많습니다.”


“그랬을 수도 있겠죠. 반대로 유로파 리그에서 벌어졌던 이변들이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역시 체력 안배 목적이 컸군요.”


“스쿼드 관리는 감독의 의무입니다. 단지 그것 말고도 저는 1군에 포함된 모든 선수가 로스 카운티의 일원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전으로 따낸 승리보다 오늘 일궈낸 결과가 갑절은 더 기쁠 수밖에 없지요.”


인터뷰는 물 흐르는 듯 진행되었고, 마지막 주제로 남겨놓은 얘기를 꺼낼 차례였다.


“어쨌거나 이번 승리의 수훈은 환상적인 해트트릭을 기록한 잭 마틴에게 가야 하는 게 마땅하겠죠. 대체 그는 왜 그렇게 골을 잘 넣는 걸까요? 심지어 교체로 도중에 들어와서도 팀을 승리로 이끄는 골을 자주 넣었잖아요?”


“해결사의 본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경기장 위에 있는 모든 선수가 멈춰있는 그 순간에도 움직이고 있는 유일한 선수니까요. 그는 골 냄새만 잘 맡는 게 아닙니다. 그 냄새를 쫓아 부지런히 움직이죠.”


“그렇군요. 음······ 크게 떠들썩한 건 아니지만, 감독님이 알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이런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요. 마틴의 출전 횟수가 적어서 득점왕을 계속 놓친다는 거죠.”


“······.”


“3년 연속 득점왕도 할 수 있었던 선수인데, 아쉽게 계속 선두에서 미끄러지는 건 경쟁자들보다 경기를 많이 뛰지 못해서란 얘기가 있습니다. 이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이 궁금한데요.”


“뭐, 틀린 말은 아니라고 봅니다. 마틴은 타고난 골잡이고, 득점왕을 거머쥘 자격이 있는 선수죠. 하지만 동시에 그는 프로페셔널의 표본입니다. 개인 기록보다 팀의 승리를 우선시하니까요.”


이탈리안은 거슬릴 수 있던 질문을 쿨하게 인정해 버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그와 자주 대화를 나눕니다. 작년에 전술적 이유로 중용하지 못했기에 항상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죠. 한 가지 확실히 하고 싶은 건 감독으로서 그를 무척이나 아낀다는 것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분명히 밝히고 싶군요.”


“오, 이 말을 듣고 다른 선수들이 질투하는 거 아닌가요?”


“마틴은 설령 제가 편애하더라도 불만이 나오지 않을 몇 안 되는 선수입니다. 이제 전성기에 접어든 나이지만 라커룸 내에서는 베테랑,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는 존재니까요. 모두의 멘토로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요.”


“하하, 네. 기탄없는 의견 감사합니다.”


“하나 더 말하자면······ 올 시즌은 아마 이루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델 레오네는 턱을 쓸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에게 어울리는 타이틀 말이죠.”



[ Scottish Sports ] 해결사 잭 마틴, 해트트릭으로 팀을 패배의 수렁에서 건져내다


[ The Scotsman ] 리그 컵 결승전에 진출하는 로스 카운티


[ Daily Mirror ] 델 레오네 “잭 마틴의 득점왕은 따 놓은 당상”

[ BBC ] 판타스틱, 잭 마틴의 활약에 뉴캐슬이 주시 중



[ SPFL Official ] 4경기 3골 1어시스트를 기록한 제임스 블랜차드, 1월의 선수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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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6 Scottish Premiership 25 Round >

던디 유나이티드 : 로스 카운티

2016년 2월 2일 (화) 19:30

태너다이스 파크 (관중 수 : 11,039명)



[로스 카운티 / 4-1-2-3]

FW : 제임스 블랜차드 / 에이든 딩월 / 필립 로스

CM : 존 맥긴 / 리차드 브리튼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스콧 보이드 / 폰투스 얀손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상당히 잘 버티는 던디 유나이티드. 휴스턴 감독, 오늘은 승리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것 같습니다.]


컵 대회에 이어 던디 유나이티드와 재차 만나게 된 2연전.


서로 많은 골을 주고받았던 저번과 달리 팽팽하게 진행되는 흐름.


양 팀 다 최상의 수비진을 꺼내 들어 그런 것도 있지만, 휴스턴이 신중한 운영을 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압박이 전혀 통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그는 현실과 타협하여 홈의 이점을 포기하면서까지 1점을 얻으려는 일념으로 준비해 나왔다.


확실히 지금의 로스 카운티를 상대로는 비기기만 해도 성공이긴 할 것이다. 컵 대회의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강한 팀이니까.


이대로 간다면 서로 승점을 나눠 가지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었다.


[아, 로스 카운티가 60분에 빠른 교체를 준비하는데요. 필립 로스가 나옵니다. 확실히 어려서 아직 경험이 부족한 모습이 많아요.]


이 선수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얼굴만 봐도 던디 유나이티드 팬들의 심장을 쫄리게 만드는 존재 말이다.


[그리고 잭 마틴이 투입됩니다!]


이어서 그를 위해 만들어 온 숫사슴들의 새로운 챈트가 기다렸다는 듯이 울려 퍼졌다.



Martin has appeared, Your defence is on edge -

(마틴이 등장했어, 너희 수비들은 긴장했네.)

Hi-ho, the derry-o, You've already conceded a goal -

(하이-호, 데리-오, 벌써 골을 내줬는걸.)



가사 내용대로 던디 유나이티드의 수비진들은 해트트릭의 악몽이 아직 눈에 선한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마틴이 왼쪽 윙 포워드 자리로 갑니다. 맥긴이 오른쪽 윙으로 옮기나요? 공세가 더욱더 매서워지기 시작합니다.]


다소 루즈했던 흐름이 또 변하기 시작하고, 로스 카운티가 던디 유나이티드를 최후 방어선까지 밀어붙이는 양상.


[월리스, 낮게 깔아 찬 크로스. 박스 안에 들어와 있던 블랜차드, 아앗!]


세 명이 에워싼 상황. 등진 채 왼발로 받더니 몸을 살짝 틀어 틈새로 짧게 빼주는 오른발 패스에 모든 수비진이 바보가 되어버리고.


절묘하게 오프사이드 라인을 걸쳐 있던 잭 마틴이 볼을 받아 밀어 넣는다.


[환상적인 패스와 깔끔한 마무리! 블랜차드와 마틴의 클래스 높은 플레이로 기어이 균형을 무너뜨리는 로스 카운티입니다!]


골을 넣은 마틴은 관중석을 향해 한 손을 들어 올리며, 다른 손으로는 숫사슴의 엠블럼을 잡고 입에 맞추었다.


절대 변하지 않는, 팀을 향한 애정을 어필하는 셀레브레이션.


그 모습을 지켜본 팬들은 챈트를 부르는 것만으로 견딜 수 없었는지 잭 마틴의 이름을 연호하며 열렬히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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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던디 유나이티드 0 : 1 로스 카운티 >

잭 마틴(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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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대회인 스코티시 컵을 앞둔 하루 전.


“선발 명단은 이렇게 정하도록 하지.”


감독이 건네준 명단을 받아 든 닐 스튜어트는 볼을 긁적이다가 물었다.


“이렇게 되면 주장은 누구한테 주는 게 좋을까요?”


주전들이 대거 쉬는 컵 대회 명단에서는 보통 연륜이 있는 대런 케틀웰이 완장을 차곤 했었다.


그러나 그는 부상으로 빠져 있는 상태. 브리튼, 보이드, 델샤드 등 평소 주장 역할을 수행해 왔던 선수들은 결정한 라인업에서 제외됐기에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새로운 주장을 뽑아야 했다.


“여기서 누가 될지 보이지 않나, 닐? 그래서 명단을 이렇게 정한 것인데.”


감독이 말했다.


“잭에게 완장을 주도록 해.”



< 15-16 Scottish Cup 5 Round >

에어 유나이티드 : 로스 카운티

2016년 2월 6일 (토) 15:00

서머셋 파크 (관중 수 : 6,582명)



[로스 카운티 / 4-2-3-1]

FW : 리암 보이스

AM : 잭 마틴 / 필립 로스 / 앤드류 톰슨

CM : 라이언 잭 / 데미안 생클랜드

DF : 고든 스미스 / 대니 패터슨 / 스티븐 샌더스 / 딜런 갈브레이스

GK : 데이비드 밀스



경기는 전방 공격수들이 골을 퍼붓는 무난한 흐름으로 진행되었다.


마틴은 로스의 스루패스와 측면을 헤집고 올린 톰슨의 크로스로 득점을, 보이스는 스미스의 크로스와 코너킥에서 톰슨이 올린 걸 헤더로 마무리하며 각각 두 골을 기록했다.


상대 팀에 퍼붓는 화력만큼이나 반응이 뜨거웠던 건 마틴의 팔에 둘러있는 완장이었다.


평소에도 성실하며 묵묵하게 자기 일을 수행해 타의 모범이 되어왔던 그가 차기 주장감으로 손색없다는 얘기가 나돌긴 했었지만, 감독이 오늘 제대로 명분을 제공해 준 셈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


삐익 -


톰슨이 수비를 돌파하여 박스 안으로 파고들면서 얻어낸 페널티 킥. 공격수 둘이 두 골씩 기록하여 해트트릭은 한 명만 가능한 상황.


마틴은 천천히 걸어가 볼을 주워 들더니 보이스에게 건네주었다.


당연히 마틴이 찰 거로 생각했던 보이스는 놀란 표정을 지었고, 마틴은 웃으며 보이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완장을 차면서 책임감이 생긴 것인지, 해트트릭을 이미 해본 경험자의 여유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가 한 팀의 주장으로 꽤 어울리는 남자라는 걸 느낄 수 있던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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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어 유나이티드 0 : 5 로스 카운티 >

잭 마틴(11‘, 35‘)

리암 보이스(23‘, 56‘, PK 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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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해당 경기는 팬들 사이에서 며칠간 떠들썩한 화제가 되었다.


조지 맥도넬과 그의 친구들, 피터 블랙과 토드 홉킨스의 숫사슴들. 그 외에도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재미있는 얘깃거리였다.


당연히 경기 결과보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상상만 했었는데, 주장 잭 마틴은 생각 이상으로 잘 어울렸어.’


‘브리튼과 보이드가 은퇴할 시점이 되면 그가 로스 카운티의 주장이 될 수도 있겠는걸.’


‘아마 월리스와 마틴이 차기 주장 후보로 경쟁할 거 같아. 월리스가 떠나지 않는다면 말이야.’


‘보이스에게 PK를 양보할 때 봤어? 같은 남자가 봐도 반할 뻔했다고.’



며칠간 지속되던 여론은 최근 그의 활약에 대한 칭찬을 이어 나가다가 ‘캡틴 잭’이라는 새로운 별명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 네티즌이 올린 글은 무수한 추천과 동의를 얻는 걸 넘어서 차후 잭 마틴을 향한 고유 챈트를 만드는 데 한몫하게 된다.



‘아마 전 세계에서 캡틴 잭이라 하면 잭 스패로우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적어도 하일랜드에서는 아니야. 우리의 캡틴은 잭 마틴뿐이니까.’


작가의말

지적과 의견 감사합니다.

연재 속도와 더불어 진도도 더뎌지지 않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행복한 주말이 되시길 바라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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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644 39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1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8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8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5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4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5 43 25쪽
» 192. 캡틴 잭 +3 23.11.10 879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8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2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71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3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6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5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7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6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2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8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9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2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70 50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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