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일반소설

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1,082,606
추천수 :
33,838
글자수 :
1,875,939

작성
23.05.07 18:54
조회
1,369
추천
50
글자
27쪽

179. 지상 최고의 팀

DUMMY

“제임스가 감독님을 그렇게 착실히 따르는 이유요? 사실 우리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건 확실해요. 스물두 살이 되도록 선수로서 빛을 못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요. 우리는 그렇게 대단한 녀석이 아래에서 썩고 있는 줄도 몰랐어요. 언젠가 제임스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선수 생활을 접을 생각이었다고. 자신이 축구에 재능이 없는 줄 알았다네요. 이 팀의 10번을 달고 에이스 노릇을 하고 있는 지금은 참 우스운 얘기죠. 자기 자신에게 확신도 없었고, 직접 가서 항변하는 것도 워낙 귀찮아하는 성격이니 그냥 될 대로 되라 넘어가면서 그 상태로 세월이 흘러가 버린 겁니다. 그리고 그만둘까 하던 차에 지금 감독님이 부임한 거죠. 어떻게 보면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셈이니 그럴만하다 싶으면서도 참 신기하긴 해요. 우리도 감독님을 향한 존경심은 못지않다고 생각하는데 제임스는 그걸 넘어서 거의 집착에 가까우니까요. 감독님이 없으면 그 녀석은 뒤따라서 은퇴까지 해버릴지도 모릅니다.” - 로스 카운티 미드필더 ‘리차드 브리튼(Richard Brittain)’ -


*******


조지 맥도넬의 펍.


“손님도 꼭 한 번 찾아보세요. 정말 대단했다니까요?”


이곳의 주인장은 아침부터 블랜차드가 얼마나 환상적인 골을 넣었는가에 대하여 한창 열변을 토하는 중이었다.


“어떻게 그걸 그렇게 띄워서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발등에 딱 얹는 슛을 할 수 있는지. 소위 월드클래스 선수들이나 가능할 법한 그런 골을 넣어버린 게 아니겠소?”


“하하······.”


요즘 그의 가게는 연고지 팀의 축구를 응원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만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랬어도, 현재는 술집 자체가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호기심에 새로 발길을 들인 주민들이 제법 늘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꼬드기면서 로스 카운티 팬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최근 맥도넬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국가대표 경기는 챙겨본다고 하셨지? 그 이번에 활약한 앤드류 톰슨하고 리차드 브리튼 있죠? 그 선수들이 로스 카운티에 있다니까? 손님도 아까 브리튼이 맘에 든다고 하셨잖소?”


“그렇긴 한데······.”


“프리미어십은 아예 안 보고 사셨나 보네. 요즘 로스 카운티는 그 예전의 로스 카운티가 아니라오.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니까? 그래도 작년에 셀틱을 누르고 우승한 건 손님도 아시지 않나?”


“들어본 것 같기는 해요.”


“안 들어봤을 리가 없지. 작년에 얼마나 이곳이 떠들썩했었는데.”


“으음······. 그런데 말씀하신 그 경기는 이긴 건가요?”


“······.”


그 말에 맥도넬은 잔을 닦던 손을 멈추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어깨는 미세하게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아······ 혹시 졌나요?”


무안해진 손님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묻자, 맥도넬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천천히 대답했다.


“사실은······.”


“네······.”


“이겼다오.”


“······네?”


“이겼단 말이오. 그것도 삼 점 차로!”


자세히 보니 고개를 들어 올린 그의 얼굴은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아 상기된 듯한 모습이었다.



=============================

< 로스 카운티 3 : 0 셀틱 >

제임스 블랜차드(65‘)

알렉산더 캐리(70‘)

앤드류 톰슨(76‘)


=============================



블랜차드의 말도 안 되는 골이 들어간 이후, 분위기는 급격하게 변했다.


다시 비슷한 상황에서 공중볼을 잡는 블랜차드가 어지간히 무서웠는지 수비가 위험한 위치에서 불필요한 파울을 범했고.


이후 왼쪽 영역에서 찬 캐리의 왼발 프리킥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골문 우측 상단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쐐기를 박는 세 번째 골은 캐리의 전환 패스로 이루어졌다.


로스 카운티의 패스 플레이에 셀틱 진영이 한쪽으로 쏠린 틈을 타 기습적으로 터치라인을 타며 올라간 델샤드.


캐리의 패스를 받은 그의 오버래핑은 이사기레를 끌어들였고, 그 결과 셀틱은 대각선을 가로지르며 박스 안으로 파고드는 톰슨을 놓치고 말았다.


델샤드의 침착한 패스가 이사기레를 스치며 노마크의 톰슨에게 들어갔고, 낮게 깔아서 찬 슛은 황급히 몸을 던지는 고든 키퍼의 옆구리 아래로 빠져나가며 그물을 흔들었다.


“정말 대단했지! 셀틱까지 그렇게 압도해 버릴 줄 누가 알았겠소? 삼 점 차로 이긴 건······ 처음이오. 그것도 무실점으로! 어제 일만 생각하면 몸이 떨려서 주체가 안 돼!”


“셀틱을 상대로 대승이라니. 대······ 대단하긴 하네요.”


“그렇지? 내 말이 그 말이오! 손님도 괜히 추천하는 게 아니란 걸 느끼셨을 거야. 다음 주 수요일에 엄청 거대한 시합 하나 잡혀있으니까 속는 셈 치고 한 번 봐 봐요!”


로스 카운티가 셀틱을 큰 점수로 이겼던 건 이전 시즌 마지막 시합에서 나온 2 : 4였을 때.


삼 점 차, 무실점으로 3 : 0 완파를 해버린 건 최초였다.


이를 지켜보던 마틴 오닐의 얼굴은 펄펄 끓는 기름 솥처럼 붉으락푸르락한 몰골이 되었고, 선수들은 내내 절망적인 낯빛으로 경기에 임했다.


셀틱팬들은 머리를 움켜쥔 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셀틱을 되살려 줄 구원자, 로스 카운티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심판자. 위기에 나타난 영웅인 줄로만 알았던 오닐이 앞선 전임자들도 겪지 않았던 대패를 당해버렸다. 정신이 아득해질 수밖에.


햄던 파크에 울려 퍼졌던 조롱 챈트는 그 골이 들어간 이후 귀신같이 쏙 들어갔다.


톰슨의 세 번째 골이 들어간 이후, 로스 카운티는 델샤드를 빼면서 딜런 갈브레이스를 투입했는데.


별다른 의도가 있다기보다는 최근 연속으로 풀타임을 뛰었던 델샤드를 쉬게 해주려는 게 목적이었겠으나, 설령 그렇다 해도 셀틱에 충분히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만일 경기가 팽팽했다면 경험도 부족한 어린 선수 하나 넣자고 델샤드를 뺄 여유가 없었을 테니까.


급기야 도중에 셀틱팬들이 경기장을 나가는 사태까지 터지고 말았다.


프리미어십의 절대 강자로 군림해 왔던 그 팀의 팬들이 졸전에 실망하여 미리 경기장을 떠난다니. 예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셀틱 쇼크라 이름 붙여도 이상할 게 없었다.


경기 전만 해도. 아니, 전반전까지만 해도 분명 대등한 눈높이에서 싸웠던 것 같은 흐름이 한순간에 뒤집혀 버렸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야 있겠지만. 블랜차드 효과, 역시 그게 제일 컸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그가 피치에 들어선 뒤로 세 골이 터졌다.


전반전은 내내 소강상태에 가까운 양상이었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어울리는 그런 경기였는데.


한 선수가 개입하고 나서 아예 공기가 바뀌었다.


팽팽하던 균형을 깨뜨린 어마어마한 중거리 골과 캐리의 프리킥 골이 들어가기 전 얻어낸 파울까지 해서 1골 1어시스트. 눈에 보이는 영향력만 봐도 명확히 달랐다.


내심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다.


‘블랜차드 공백이 거의 안 느껴지는데, 팔아도 됐던 거 아닐까?’


그가 없는 두 달간 로스 카운티는 리그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데다 경기력도 압도적이었다.


올 시즌에 합류한 존 맥긴이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면서 훌륭하게 그의 자리를 메웠고, 왼쪽 공격수 자리 또한 잭 마틴이 잘 적응하여 벌써 7골이나 넣지 않았는가?


차라리 블랜차드를 맥긴으로 대체한 뒤 드리블이 좋은 좌측 윙 자원을 하나 더 보강해서 잭 마틴과 다른 스타일의 옵션을 추가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의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깨닫게 만드는 데는 30분이면 충분했다.


숫사슴 군단의 에이스, 로스 카운티의 10번은 아무나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그렇게 대단한 미사여구도 필요 없었다.


[블랜차드, 그가 돌아왔습니다.]


해설자의 짧은 한마디. 그것만으로도 모든 게 전달되었다.


제임스 블랜차드, 그가 돌아온 거다. 수술 후유증 따윈 없다는 듯 완벽한 복귀전을 치르면서.


“팔아도 된다는 건 정신 나간 소리지. 그런 말을 하는 놈들은 정말 로스 카운티 팬이 맞는지 의심해봐야 해!”


손님이 가고 난 뒤, 맥도넬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또 한 명을 ‘숫사슴들’의 길로 전도하는 데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는 예전부터 꿋꿋이 블랜차드를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만 한다고 주장하던 쪽이었다.


“왜냐하면 그 녀석은 언터처블이니까.”


이른 아침이었기에 아직 맥도넬의 말을 들어줄 사람은 없었지만, 만일 있었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동조해 줬을 것이다.


분명 다들 같은 마음일 테니까.


그래서인지 추후 언터처블랜차드(Untouchablanchard)란 단어를 합성해서 만든 별명이 팬들 사이에서 생겨나게 되는 데, 그건 조금 더 나중의 일이다.


*******


“이게 이렇게 되나?”


“그러게.”


“······.”


2015년 10월 20일.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마운트 플로리다, 햄던 파크.


챔피언스 리그 경기 하루 전날.


로스 카운티와 일전을 치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온 원정팀의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스페인의 프리메라 리가 팀, 매년 세계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겨루는 최상위 클래스, 또한 20세기 최고의 축구 구단으로 선정된.


전 세계의 특급 슈퍼스타들을 모아 거대한 은하수를 만들겠다는, 감히 아무나 실행하지 못할 갈락티코스(Galacticos) 정책으로 유명한.


초호화 정예 군단,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 CF).


클럽 이상의 클럽이자 선수들의 꿈으로 일컬어지는 지상 최고의 축구 집단.


회견장의 웅성거림은 그 찬란한 위용을 보고서 흘러나온 감탄사도 섞여 있었으나, 실은 앞에 앉아 있는 감독이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 중이었다.


이미 로스 카운티, 안토니오 델 레오네와 대면하여 치열하게 맞붙었던 전적이 있는 남자였기 때문이다.


씁쓸한 패배까지 맛보며 퇴장했던 그가 더 굉장한 전력을 이끌고 다시 나타날 줄이야.


물론 저쪽도 예상했던 일은 아니었겠지만 말이다.


“본의 아니게 리벤지 매치가 됐네요.”


“······.”


기자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문 채 넓은 이마부터 거뭇거뭇한 콧수염까지 한 손으로 쓸어내리는 남자.


전 나폴리, 현 레알 마드리드 감독 라파엘 베니테스(Rafael Benitez)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러네요.”


전임자 카를로 안첼로티의 저조한 성적으로 작년 시즌에 아무런 트로피도 들어 올리지 못했던 레알 마드리드는 그와 결별하면서 때마침 나폴리와 계약이 만료된 베니테스를 선임했다.


팬들의 반응은 최악이었다. 최근 그의 좋지 않은 행보를 알고 있었기에 달가워할 수 없었고, 안첼로티 체제를 유지하는 것보다 못한 선택이라며 혹평을 쏟아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니테스는 다가온 손길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선수 시절,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 출신이기도 했던 그는 고향 팀에 돌아온 게 꿈만 같다며 취임식에서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지휘봉을 잡은 뒤로 아직은 별다른 사고 없이 리그 1위 선두를 유지하며 괜찮은 성적을 내는 중이었다.


그리고 로스 카운티를 만났다.


자신을 8강에서 고꾸라뜨렸던 스코티시 팀, 역사에 남을 기적의 희생양이 되는 끔찍한 기억을 안겨줬던 그 팀이 챔피언스 리그까지 쫓아왔다.


베니테스,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습니다.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하길 바랍니다.”


은근슬쩍 던지는 유도 질문에도 델 레오네를 직접 언급하는 걸 회피하려는 모습. 당한 전례가 있어서인지 나폴리에서 인터뷰했을 때보다 조심스러운 것 같았다.


‘저번처럼 불붙이는 건 어렵겠군.’


당장은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한 기자들은 빠르게 포기하며 감독과 함께 컨퍼런스에 참석한 선수 쪽으로 타깃을 선회했다.


표정 관리를 하고는 있지만, 딱딱하게 굳은 것이 어딘가 살짝 언짢아 보이는 듯한 얼굴.


첼시의 조제 무리뉴처럼 그와의 인터뷰는 언제나 얻을 것이 많았다.


“로스 카운티는 앞서 슈퍼컵에서 바르셀로나를 상대했었습니다. 바르셀로나는 그들을 4 대 3으로 이겼죠. 이번엔 레알 마드리드가 붙을 차례인데요.”


“······.”


“리오넬 메시는 2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슈퍼컵 우승에 일조했었습니다.”


순간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던 포커페이스가 일그러진다.


“당신은 로스 카운티를 상대로 어떨 것 같나요? 메시보다 더 나은 활약을 할 자신이 있나요?”


“······.”


그 선수가 천천히 상체를 앞으로 내밀며 입을 마이크에 가져다 댄다.


오만한 어조에 자신감 넘치는 자세.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몸 상태는 최고입니다. 그리고 난 말로만 떠드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오로지 기록으로 말할 뿐이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의 대답이었다.


리오넬 메시(Lionel Messi). 역대 최고 반열을 다투는 레벨이었기에 현역 그 누구도 비교 대상으로조차 놓일 수 없는 선수.


그러나 단 한 명만은 예외였는데, 바로 지금 보이는 포르투갈 출신 슈퍼스타가 그 장본인이었다.


한 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유일무이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상, 발롱도르(Ballon d'Or) 3회 수상자.


현재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통산 310경기 322골 9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경기당 1골 페이스를 넘겨버린 득점 기계.


유럽 최고의 무대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기록만 봐도 65경기 67골 18어시스트. 압도적인 수치다.


그런 경악스러운 기록을 보유했음에도 세간에서는 메시에게 밀려난 이인자라는 이미지가 강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 평생에 한 번 받기도 어려운 발롱도르를 세 번이나 수상했지만, 메시는 무려 4회 수상자. 바르셀로나가 작년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하면서 또 한 번 받을 게 유력해졌으니 사실상 5회 수상이나 다름없었다.


비교 대상으로 놓일 만한 실력자인 건 분명하나, 한편으로는 메시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존재. 나아가 본인에게 있어서 메시는 경쟁심, 심하게는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


마치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갈등을 현실에 풀어놓은 듯한 관계였다.


아마 그의 머릿속에 로스 카운티 자체는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상대하느냐보다 어떻게 메시보다 더 잘하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테니까.


그 경쟁심과 지나친 승부욕이 오늘날의 호날두를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미 올해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샤흐타르를 상대로 두 골, 첼시에도 한 골을 넣었어요. 누가 뭐라고 떠들든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죠.”


“하지만 로스 카운티의 감독은 상대 팀 에이스를 잠재우는 데 재주가 있는 사람이에요. 당신을 막아낼 방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에 대한 걱정은 안 드는지?”


“선수 생활 동안 피치 위에서만큼은 걱정 따위의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그런 상황은 오히려 날 불타게 할 뿐입니다.”


확실한 건 그가 마냥 허언을 늘어놓는 타입은 아니었다. 뱉은 말을 스스로 증명할 줄 알고, 또 그럴 만한 실력도 갖춘 선수.


“나는 몇 년간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예요. 내 기록이 그걸 말해주고 있죠.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또 다른 기록을 세워나갈 겁니다.”


호날두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는 끝났어요. 지켜보면 다들 알게 되겠죠.”


회견장을 나가는 그의 걸음걸이는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와 벌써 승리라도 거머쥔 듯한 자신만만함을 내비치고 있었다.



[ BBC ] 산 파올로의 기적, 라파엘 베니테스와 재회하다


[ Daily Mirror ] 호날두 “델 레오네의 수법, 안 통해.”


[ Scottish Sports ] 델 레오네 “막을 방법이 있어도 공개하진 않을 것.”


[ The Scotsman ] 존 맥긴과 스콧 보이드의 레알 마드리드전 복귀, 그러나 선발인지는 불투명


[ Onda Cero ] 이번 경기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안토니오 델 레오네


[ Marca ] 팬클럽 마드리디스타는 베니테스가 또다시 델 레오네에게 꺾이지 않을까 불안해하는 중이다


*******


< 15-16 UEFA Champions League ‘Group E’ Match >

로스 카운티 : 레알 마드리드 CF

2015년 10월 21일 (수) 20:00

햄던 파크 (관중 수 : 49,696명)



[로스 카운티 / 4-3-3]

FW : 제임스 블랜차드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MF : 알렉산더 캐리 / 대런 케틀웰 / 리차드 브리튼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대니 패터슨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레알 마드리드 / 4-1-2-3]

FW : 헤세 로드리게스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루카스 바스케스

CM : 루카 모드리치 / 토니 크로스

DM : 카세미루

DF : 마르셀루 / 세르히오 라모스 / 라파엘 바란 / 다닐루

GK : 케일러 나바스



[로스 카운티가 천하의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한계는 대체 어디까지인 걸까요?]


축구계에서 항상 정점의 자리를 다퉈왔던 레알 마드리드. 햄던 파크 원정길이라지만, 그들조차 이런 양상이 될 거라 예상하진 못했을 것이다.


며칠 전, 비슷한 위상의 샤흐타르 도네츠크를 만나서는 힘들이지 않고 대승을 장식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로스 카운티는 그들과 다르다는 걸 입증하려는 듯 일방적인 흐름이 되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보여줬던 초반 13분보다 임팩트가 크진 않아도, 전반 25분이 흘러가는 현재까지 수그러들지 않는 기세.


스코티시 해설자들이 흥분하면서 중계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선제골까지.


레알 마드리드의 깊숙한 진영에서 시작된 로스 카운티의 공격은 스로인을 받은 톰슨이 델샤드에게 돌려주고, 델샤드의 크로스, 수비의 클리어, 세컨드 볼을 잡은 브리튼의 중거리 슛으로 이어졌다.


수비 몸을 다시 맞고 나왔지만, 이어서 볼을 잡은 캐리가 가볍게 찍어 차며 감각적인 패스를 박스 안에 띄워 넣었고.


침투하여 받은 블랜차드의 헤더 슛은 골대를 강타했지만, 크로스바를 맞고 잔디에 바운드 된 볼을 딩월이 엎어지듯 몸을 날리며 이마로 밀어 넣었다.


중계 화면은 딩월의 경박스러운 셀레브레이션 이후 미간이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베니테즈를 연이어 클로즈업해 주었다.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시합이군.”


존 프리먼은 노트북 키보드에서 손을 떼며 경기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더 자세히 뜯어보면 나올 건 많겠지만, 단순히 육안으로도 파악이 쉽게 되는 시합이었다.


우선 첫째로 상대는 온전한 스쿼드가 아니다.


카림 벤제마는 허벅지 염좌, 가레스 베일은 근육 손상, 다니엘 카르바할은 발목 부상으로 결장.


그래도 여전히 강력한 레알 마드리드였지만, 주력 세 명이 빠졌으니 100%라 할 순 없다.


둘째는 그런 상태에서 제대로 된 수습이 되지 못했다는 점.


벤제마의 부재로 호날두가 홀로 최전방을 서고 있는데, 저건 임시방책일뿐더러 최선의 형태도 아니다.


그는 좌측에서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능력으로 방점을 찍은 선수이지, 벤제마처럼 중앙에서 볼을 지키면서 연계의 중심이 되는 데 능숙하진 않으니까.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한 적도 있지만, 그때는 언제나 투 스트라이커 체제로 조력자가 될 파트너가 옆에 존재했었다.


“수준 차이가 좀 크긴 하지만, 잭 마틴도 저런 타입이지.”


한마디로 마틴을 위에 올려놓고, 딩월의 역할을 요구하는 느낌.


전반 10분이 지나고 안 풀리는 걸 깨달았는지 헤세 로드리게스와 지속적인 스위칭을 하면서 교란을 주려고도 해보았으나, 딱히 효과는 못 보고 있었다.


주전 라이트백인 카르바할이 빠진 것 또한 치명적이었는데, 부진한 실력으로 팬들에게 비판 세례를 받고 있던 다닐루를 대타로 세우면서 우측면이 시종일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는 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레알 마드리드이지 않은가? 스코틀랜드 팀에게 휘둘릴 레벨이 아닌데, 전력 누수의 핑계를 대기도 뭐할 만큼 방치에 가까운 운영.


팬들이 감독에게 책임을 안 물을 수가 없는 경기력이다.


다음 문제 역시 비슷한 이유의 연장선상이었다.


로스 카운티는 선발로 쭉 나왔던 마틴 대신 블랜차드를 왼쪽 공격수로 세웠다. 그리고 블랜차드와 딩월이 안으로 좁혀 3선을 압박하면서 중앙을 장악하고 있었다.


산 파올로에서 2 : 4의 수적 우위와 스코어를 만들었던 그 당시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당하는 건 안일하다고 밖에 설명이 안 돼.”


인식을 아예 못 한 건지, 나폴리보다 몇 차원 우월한 레알 마드리드의 미드필더진이라면 저 사각형을 손쉽게 파괴할 거라 믿었던 건지. 아니면 그땐 가비디아니 선발로 4-4-2에 가까운 진형이었기 때문에 그르친 거고, 3 대 4 싸움 정도는 이길 거라 생각한 건지.


어느 쪽이든 오판이다. 델 레오네는 수적 우위의 유리함을 잘 이용할 줄 아는 감독. 저것만큼은 조치했어야 했다.


세 번째는 반대로 그런 환경들을 이용한 델 레오네의 대응.


물론 이 부분은 어느 정도 짚고 가야 할 필요가 있다.

레알전.jpg

우선 이탈리안은 브리튼을 월리스와 함께 좌우 측면으로 넓히면서 바르셀로나전과 엇비슷한 3-4-3 형태를 지속적으로 만들었는데.


델샤드의 오버래핑을 제한하고, 백스리의 오른쪽 수비로 고정시키면서 활용되지 못하는 공간을 브리튼으로 메우기 위함이었다.


우측면을 비워둬선 안 되는 이유는 걸출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월드클래스 풀백 마르셀루(Marcelo)의 오버래핑을 견제해야 하기 때문이고.


굳이 브리튼을 측면에 두려는 이유는 톰슨이 뒷공간 공략에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준 것.


델 레오네가 자주 즐겨 쓰는 수법이다.


“마르셀루를 막는 데에 톰슨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으면서, 역으로 마르셀루가 비워둔 측면을 파고드는데도 용이하지.”


또한 이번 경기에서 델샤드가 센터백에만 충실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호날두는 헤세와 스위칭하는 플레이 외에도 좌측으로 빠져나가는 습관적인 움직임을 보이면서 델샤드와 잦은 충돌이 일어났는데.


호날두가 중앙으로 파고들 때도 델샤드가 붙어서 쫓아가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중이었다.


그의 수비 능력과 최근 물오른 기량을 믿고 호날두를 전담 마크하는 중책을 맡긴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자유로워진 헤세를 패터슨이 대신 마크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처럼 수비 쪽에서도 유기적인 스위칭이 일어나는 흥미로운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저 조직력은 매번 볼 때마다 감탄스러워.”


호흡이 어긋나기라도 하면 공간의 균열이 심각하게 벌어질 수 있는데도, 수비진의 움직임이 매끄럽다.


뛰어난 지도와 반복된 연습 없이 결코 실행할 수 없는 방식.


호날두는 본인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서 뛰지 못하더라도 기회가 나면 즉시 골을 터뜨릴 수 있는 선수다.


그에게 델샤드를 붙여놓은 건 탁월한 선택으로 보인다. 벌써 다섯 번의 슛을 가했지만, 유효 슈팅은 단 하나.


델샤드가 철저하게 막아서며 위험한 슛 각을 내주지 않은 덕분이다.


골문을 정확히 조준하지 못하고 난사만 하는 흐름, 경기가 안 풀릴 때의 전형적인 호날두의 패턴.


프리먼은 중앙 지역으로 눈을 돌렸다.


산 파올로의 기적 그 당시 3선 압박은 로스 카운티의 네 명이 나폴리의 두 명을 에워싸는 그림이었지만 지금은 약간 달랐다.


레알 마드리드의 볼 배급 중심인 토니 크로스(Toni Kroos)와 루카 모드리치(Luka Modric).


크로스 쪽은 궂은일에 약한 캐리를 도와 블랜차드가 협동으로 견제하면서 상황에 따라 월리스까지 압박에 가담하고 있었다면, 모드리치 쪽은 아예 딩월이 찰싹 달라붙어 집요하게 마크하고 있었다.


평소 광활한 범위를 뛰어다니던 그 스태미나를 전부 모드리치 괴롭히기에 쏟아붓는 듯했다.


대신 케틀웰은 붙지 않고 뒤로 물러서서 길목을 지킨다.


그래서 사각형의 형태가 반듯하기보다 비대칭처럼 늘어져 있었다.


“그대로 똑같이 하면 큰일 나겠지.”


상대 3선, 특히 모드리치는 발재간을 이용한 탈압박이 매우 뛰어난 선수. 나폴리의 다비드 로페스를 상대하는 것처럼 달려들었다면 호되게 당하는 건 로스 카운티 쪽이었을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3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전 상대와 다르게 매서운 로스 카운티의 압박을 계속 빠져나오며 빌드업을 풀어나가고 있었다.


그나마 크로스는 블랜차드의 몸으로 들어오는 거친 경합에 종종 고전했지만, 모드리치는 딩월을 농락하는 유려한 드리블을 몇 번 선보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저들이 치명적인 찬스를 공격진에 전달하지는 못했단 사실이다. 예리한 전진 패스보단 횡패스의 횟수가 더 많았으니까.


무력화시키지 않아도 된다. 완전히 뚫려서 오픈 찬스만 내주지 않으면 된다. 어쨌거나 마무리는 보통 공격진의 몫이니까 말이다.


그 공격진이 부진한 상태라면 더더욱 효과적. 3선이 날고 긴다 한들 전방이 잠잠하면 골은 터지기 쉽지 않다.


얼핏 보기엔 휘둘리는 것 같지만, 블랜차드와 딩월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이 모든 걸 종합해서 막상막하의 경기력이 나오는 거지.”


간단히 정리하면 뼈아픈 주전의 이탈,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철저히 준비하고 나온 델 레오네에 비해 베니테스는 그저 방관하고 있다는 것.


하나로 요약하면 감독 차이.


축구는 감독 놀음이라는 걸 확고히 해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경기였다.


베니테스가 왜 레알 마드리드 팬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지도.



과정이 감독 차이로 요약된다면, 결과는 결정력의 차이였다.


이 경기는 로스 카운티가 정말로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


그러나 딩월이 결정적인 찬스 두 번을 허공에 날려버리면서 흐름이 뒤바뀌고 말았다.


안으로 볼을 몰며 수비의 시선을 끌던 톰슨이 보기 드물게 아웃프런트로 찔러 준 스루패스를 박스 안에서 받아 관중석으로 날려버린 데 이어.


블랜차드가 다닐루와의 공중볼 경합을 승리하면서 따낸 헤더가 수비 뒤쪽으로 크게 넘어가며 잡아낸 단독 찬스마저도 나바스의 정면에 안겨주는 시시한 슛으로 그쳤다.


기회를 놓치면 상대에게로 턴이 넘어가는 법.


레알 마드리드는 코너킥 상황, 라모스의 헤더 슛을 브라운 키퍼가 선방한 뒤에 벌어진 박스 안 난전 속에서 세컨드 볼을 밀어 넣는 동점 골에 성공했다.


득점자는 교체로 들어온 이스코였다.


모드리치를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귀중한 선제골까지 넣었음에도 딩월이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되지 못할 이유였다.


여차하면 해트트릭까지 달성할 기회가 있었으나, 결국 그는 전반전의 활약을 참작하여 간신히 워스트로 뽑히는 걸 면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딩월이 있어서 레알 마드리드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지만, 딩월 때문에 비긴 경기인가.”


프리먼은 헛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최종적인 정리를 마쳤다.



=============================

< 로스 카운티 1 : 1 레알 마드리드 >

에이든 딩월(25‘)

+++++++++++++++++++++++++++++

이스코(75‘)


=============================


작가의말

날씨는 풀렸는데 이제 모기가 슬슬 보이려 하네요.

모기 없는 쾌적한 한 주가 되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2015/16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스포일러 주의) 23.01.14 559 0 -
공지 2014/15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스포일러 주의) +4 18.09.04 2,082 0 -
공지 연재 주기에 관한 공지입니다 +4 18.04.11 3,272 0 -
공지 독자분들께 공지 하나 드립니다 +11 18.02.08 5,472 0 -
공지 2013/14 로스 카운티 선수 명단 +9 17.12.19 18,424 0 -
203 203. 공간 싸움 (4) +5 24.04.07 481 36 25쪽
202 202. 공간 싸움 (3) +6 24.03.18 576 35 25쪽
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644 39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1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8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8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5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4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5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8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8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2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71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3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6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5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7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6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2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8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9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2 50 24쪽
»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70 50 2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