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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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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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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08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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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6쪽

189. 계몽의 시대 (2)

DUMMY

“신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죠. 감독님은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아요. 구단주의 신뢰를 얻어 전권을 부여받았지만 언제나 겸손하죠. 청소부나 잔디 관리인 등 접점이 많지 않은 직원들을 봐도 먼저 다가가서 반갑게 인사를 건네거든요. 이름도 하나하나 전부 기억하고 있고요. 그 덕에 선수부터 직원까지 전부 하나 된 마음으로 구단을 위해 일하고 있어요. 남들에게 존경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우러러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사람인 거죠.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이는······ 아니, 완벽한 위인이에요.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아니냐고요? 음, 그게······ 아니에요. 그런 거 없어요. 헤헤.” - 홍보 매니저 ‘마리 코넬(Marie Connell)’ -


*******


아서 마틴이 왔다 간 뒤, 폴 몽고메리는 감독으로부터 바로 호출을 받았다.


“결정을 내렸습니다. 코너 단장님과 함께 속히 추진해 주시길.”


“오, 영입하기로 하신 겁니까?”


“스카우트 팀이 만장일치로 추천하는 선수라면 망설일 필요가 없겠지요.”


곱슬머리 청년은 라이언 잭에 관해 합격점을 주며, 이런 평가를 남겼다.


‘안정적으로 수비 밸런스를 잡아줄 수 있고, 다재다능해서 무조건 팀에 도움 될 자원이에요. 중앙은 물론이고, 풀백을 대신 뛸 수도 있을 정도니까요.’


‘창의적인 패스에 능한 건 아니지만, 대체로 선택지가 깔끔해요. 주변 동료 위치를 미리 파악하는 습관이 잘 되어 있다는 거죠. 원터치 플레이도 곧잘 구사하니 그 정도면 3선으로서의 기본은 충분해요. 갖추고 있는 능력 요건이 딱 브리튼의 후계자로 적합해 보여요.’


몽고메리는 처음에 맥긴을 영입 대상으로 제시했을 때, 그가 브리튼의 자리를 이어받기에 적격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막상 데려와 보니 그 부분에는 좀 미흡한 면이 있었다. 활동량으로 전방 압박을 가하는 건 손색이 없었으나, 후방에 자리 잡고 저지선 역할을 하는 것에는 한계가 보였기 때문이다.


수비 방식이 달려들어서 몸을 거칠게 부딪치고 보는 스타일이라 경고 카드도 자주 받는 편. 뒤를 맡기기에 이상적인 3선은 아니었다. 합류하자마자 팀의 핵심으로 정착했음에도 그가 케틀웰의 공백을 메울 수 없는 이유였다.


굳이 따지면 맥긴의 포지션은 브리튼보다 유형이 다른 캐리에 가까웠다.


의도와 달리 잘 풀리긴 했어도 몽고메리의 분석이 엇나갔다는 것인데, 베테랑도 모든 걸 맞출 수는 없다. 이전 팀에서 맡았던 역할과 환경, 선수의 성장 방향 등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변칙 요소들이 존재하니까.


오직 한 명, 아서 마틴만은 이때까지 제공했던 정보가 크게 틀린 적이 없었다. 그 특급 스카우트가 브리튼의 후계자로 공식 도장을 찍은 셈이었다.


“참으로 옳은 선택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몽고메리가 말했다.


“아시다시피 라이언 잭은 현재 애버딘의 척추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이 쉽게 내줄 생각은 없을 겁니다. 더군다나 여름도 아닌 시즌 후반기 중도에 데려오려 한다면······.”


“상당한 지출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겠죠. 당연한 일입니다.”


애버딘은 현재 6위, 5위인 킬마녹과 1점 차로 치열한 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세인트 미렌과 인버네스 CT 등 작년에 좋은 성적을 거뒀던 팀이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올해 프리미어십에서 꿋꿋이 상위권을 지킬 수 있는 건 역시 잭의 존재가 컸다.


최근 그들은 셀틱과 극적인 3 : 3 무승부를 거두기도 했는데, 여기서 동점 골을 넣으며 지대한 공헌을 했던 것도 라이언 잭이었다.


그런 핵심 선수를 시즌 중반에 데려오려면 클럽 최고 레코드를 세워서 영입했던 맥긴보다 더 많은 액수를 투자해야 함을 의미한다.


“어느 정도로 예상하십니까?”


“적정가는 3m 파운드(약 52억 원)로 평가되고 있지만, 겨울 이적 시장이라는 점까지 고려해서 3.5m 파운드(약 60억 원)로 시작해야 협상 테이블에 앉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케틀웰의 부상으로 우리 팀이 처한 사정을 잘 알고 있을 테니, 더 뜯어내려 할지도 모르겠군요.”


감독이 턱을 천천히 쓸며 말했다.


“그래도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일단 데려오기만 한다면 팀에 득이 될 테고, 장기적인 측면에서도 좋은 영입이니 추진하도록 하지요. 베넷 씨도 그 정도는 기꺼이 지원해 주실 겁니다.”


망설임 없는 대답. 그동안은 쓸데없는 지출을 굳이 안 하려고 인색한 모습을 보였던 것일 뿐, 영입하기로 한번 결정하면 이탈리안은 누구보다 강단 있는 선택을 내릴 줄 알았다.


*******


[ Scottish Sports ] 로스 카운티는 케틀웰의 공백을 애버딘에서 메울 계획


[ The Scotsman ] 델 레오네, 오래 주시해 온 라이언 잭을 영입하길 원함



로스 카운티는 친분을 쌓은 몇몇 담당 기자에게 알려줌과 동시에 바로 애버딘과 거래 작업에 들어갔다.


소스를 제공받은 쪽에서 첫 기사를 내보내자 떨어지는 콩고물만 기다리던 나머지 언론들까지 달려들며 이적설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 Aberdeen Citizen ] 라이언 잭은 Not for Sale이 아니지만, 몸값 이상의 거금을 받아야 보내줄 것이다



애버딘의 지역지에서는 즉각 판매자의 의도를 전달받아 보도했다.


사실 선수 본인이 팀에 계속 잔류할 의지가 없는 터라 그들도 절대 사수하겠다는 입장은 아니었다.


2016년 여름에 만료되는 라이언 잭의 계약일. 어떻게 잘 설득해서 1년을 더 연장하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고는 있지만, 그런다 해도 2년도 채 남지 않은 기간이다.


핵심이긴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질 것이기에 비싸게 팔 수 있을 때 파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대신 그건 만족할 수 있는 금액을 받을 때의 이야기. 애버딘은 적어도 5m 파운드(약 86억 원)를 받길 원했다. 물론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액수를 요구할 생각이었다.


한창 순위 경쟁을 하는 도중 팀의 중심을 파는 건데 그 정도의 이득은 얻어야 수지 타산이 맞을 테니까. 못 내겠다면 차라리 붙들고 있는 게 훨씬 나은 계산이었다.


여차하면 단호하게 거절하고 여름에 제대로 협상 판을 열어 다른 구단과 경쟁을 붙일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급한 건 로스 카운티, 어디까지나 갑의 위치는 애버딘 쪽이니까. 판매자로서 타당한 요구를 하는 것뿐이었다.


설마 여기서 뜻밖의 변수가 터질 줄은 몰랐겠지만.



[ Scottish Sports ] 라이언 잭, 로스 카운티로 이적을 열망



선수가 직접 영입 링크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라이언 잭은 즉시 애버딘의 감독과 보드진을 찾아갔고, 좋은 관계로 구단에 돈을 안겨준 뒤에 마무리 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중한 태도로 한 부탁이었으나, 어떻게 보면 일종의 압력이기도 했다.



[ The Scotsman ] 라이언 잭의 1년 연장 계약 협상이 불투명해지다



선수가 이적을 원하면, 그것도 계약 만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 구단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은 극히 약해진다.


만일 잭이 연장 계약을 취소하면 그는 6개월 뒤에 FA 신분, 더 이상 애버딘 소속이 아니게 된다.


계약일이 6개월 미만인 선수는 다른 구단과 자유롭게 개인 협상을 할 수 있고, 계약 기간이 끝나는 즉시 이적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 만들어진 보스만 룰이 적용된다.


좋게 이별하면서 적절한 값을 받을지, 올 시즌까지 버티다가 아무것도 받지 않고 풀어줄지. 잭이 개입하면서 졸지에 애버딘이 선택의 기로에 놓인 상황으로 바뀌어 버렸다.


최악의 경우, 관계가 틀어져서 마음이 떠난 선수의 폼이 급격하게 하락해 팀의 성적에도 영향을 끼치는 사태까지 터질 수도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였다. 스코틀랜드 주요 도시 중 하나인 애버딘을 버리고 굳이 촌구석으로 기어들어 가려 한다니.


리그 성적도 좋지만, 그들이 수년간 셀틱을 누르고 정상에 군림할 거란 보장은 없는데. 보통 선수에게는 자신이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도시 환경도 클 텐데. 그저 프리미어십을 독주하는 현재만 바라보고 가려는 건가?



[ Scottish Sports ] 잭이 이적을 원하는 이유는 단 하나, 델 레오네 때문


[ Aberdeen Citizen ] 라이언 잭은 델 레오네 밑에서 배우고 싶어 한다



비슷하지만 약간 달랐다. 이적을 열망하는 건 독보적인 프리미어십의 챔피언, 그 로스 카운티를 만들어 낸 장본인의 선수로 뛰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열악한 시설, 대도시와 동떨어진 지역, 구장 증축으로 인한 교통의 불편. 이 모든 걸 감수하더라도 오직 감독만 보고서 가겠다는 얘기.


이런 사례는 존 맥긴에 이어서 두 번째다.


비범한 이탈리안은 어느새 프리미어십 선수들 모두가 동경하는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 모양이었다.


흐름이 이러하니 애버딘은 결국 둘 다 루즈-루즈한 것보다 그나마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만 했다.



[ The Scotsman ] 빠르게 진척되는 협상, 3.8m 파운드(약 66억 원)에 마무리될 듯


[ Scottish Sports ] 라이언 잭의 이적료, 2007/08 시즌 선덜랜드로 이적했던 러셀 앤더슨의 1.1m 파운드를 넘기며 클럽 레코드 갱신 임박


*******


[ Daily Mirror ] 물러설 수 없는 셀틱, 또 한 번의 6점 경기를 앞두다


[ Glasgow Press ] 마틴 오닐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한편, 다가오는 언코 펌 더비를 앞두고 셀틱은 하루하루를 분주하게 보내고 있었다.


가장 절실한 건 마틴 오닐일 것이다.


부임 당시, 셀틱의 돌아온 전설이자 구세주로 떠받들어 주던 사람들이 점점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상황.


로스 카운티에 당한 충격적인 3 : 0 패배 이후 갈아엎은 포메이션과 선발 멤버만 봐도 그의 초조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작년에 데뷔해 인상 깊은 활약을 보인 키어런 티어니는 그렇다 쳐도, 전임 감독 로니 데일라 체제에서 간간이 기회를 받았던 칼럼 맥그리거(Callum McGregor)가 주전을 꿰찰 줄은 아무도 예상 못 했을 테니까.


어린 선수기용에 소홀하기로 유명한 감독이 부임한 이상, 유망주티를 갓 벗은 22세의 맥그리거를 쓸 일은 희박하다는 전망이 유력했었다.


그러나 오닐은 자신이 데려온 제프 헨드릭의 부진을 결국 인정하고 벤치에 앉히면서 그를 중용하기 시작했다.


셀틱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재능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핵심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맥그리거는 몇 번 오닐을 패배에서 구해주는 활약까지 펼치면서 완벽히 감독의 신뢰를 얻었다.


물론 선수와 전술은 별개의 이야기. 애버딘, 킬마녹과 연달아 비기면서 오닐에 대한 비판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중이었다.


그래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는 그의 발언이 틀린 건 아니었다.


최근 삐걱거리긴 했지만, 다시 재정비하여 마더웰을 잡아내고, 한창 주가가 오르고 있던 라이언 고드프리의 세인트 존스톤전에서 가까스로 승리를 얻어내며 반등의 기회를 노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것 역시 맥그리거의 예리한 중거리 슛 결승 골 한 방 덕이었다.


3위의 세인트 존스톤과 치른 6점짜리 경기, 성공적인 순위 방어. 그리고 또다시 치르게 될 1위 로스 카운티와의 6점짜리 승부.


델 레오네만 잡아내면 오닐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


< 15-16 Scottish Premiership 20 Round >

셀틱 : 로스 카운티

2015년 12월 29일 (화) 19:30

셀틱 파크 (관중 수 : 60,355명 / 매진)



[셀틱 / 4-4-2]

FW : 리 그리피스 / 스티븐 플레쳐

MF : 제임스 매클린 / 칼럼 맥그리거 / 스콧 브라운 / 제임스 포레스트

DF : 키어런 티어니 / 셰인 더피 / 데드리크 보야타 / 미카엘 루스티그

GK : 크레이그 고든


[로스 카운티 / 4-1-2-3]

FW : 잭 마틴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CM : 존 맥긴 / 리차드 브리튼

DM : 알렉산더 캐리

DF : 리 월리스 / 스콧 보이드 / 폰투스 얀손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조지 맥도넬의 펍.


“이게 셀틱이야, 세인트 미렌이야?”


답답함을 견디다 못한 케니 풀러가 한마디 내뱉었다.


극단적인 방어 태세로 임하는 그들을 보고서 한 말이었다. 저번에 만난 세인트 미렌이 연상될 만큼 지나치게 가라앉아 버린 수비 라인.


다른 점이 있다면 셀틱이 점수 하나를 챙겨간 상황이다.


티어니의 오버래핑 후 예리한 크로스로 시작되었던 공격. 양 팀 선수들이 엉키는 혼전을 틈타 불쑥 나타난 맥그리거가 하단으로 깔아 차면서 넣은 선제골이었다.


박스 주변에서 세컨드 볼을 재빨리 포착해 기습적인 슛을 날리는 것은 올 시즌 맥그리거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플레이. 로스 카운티도 그 패턴에 당하고 만 것이었다.


이후 오닐은 소극적인 운영으로 전환하며 점수를 지키는 방향을 택했고, 지금까지 꽤 잘 먹혀들어 가고 있었다.


“셀틱이란 이름이 아깝다, 아까워! 자기들 홈인데 수비만 하는 게 맞아?”


풀러의 반응만 봐도 그랬다.


“차라리 이게 현명한 판단이긴 해.”


해리 윌슨이 대꾸했다.


“세인트 미렌이 실제로 효과를 볼 뻔하긴 했잖아? 용감하게 앞으로 나왔던 팀들은 죄다 박살 났는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셀틱이 이런 축구를 한다고? 나 젊었을 때는 진짜 상상도 못 하던 일이라고, 해리.”


“그만큼 로스 카운티가 엄청난 팀이 되었으니까. 셀틱조차 전진할 엄두를 못 낸다는 거지.”


윌슨의 말대로였다.


마틴과 톰슨에게 뒷공간을 내주지 않으려는 전술적 이유도 있겠지만, 셀틱은 로스 카운티를 두려워하는 게 분명했다.


컵 대회를 제외하면 이 팀을 이겨본 게 벌써 몇 년 전. 믿기지 않겠지만, 이탈리안이 부임해서 치렀던 첫 개막전 이후 리그에서는 단 한 번의 승리도 거두지 못했다.


그걸 직접 겪어온 셀틱 선수들에겐 생각 이상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내 생각엔 이 경기도 이길 것 같아.”


서점 주인 마크 비어드가 끼어들며 말했다.


“저거 봐. 점점 힘에 부치는 게 보이잖아.”


어느덧 경기는 로스 카운티가 몰아붙이는 양상이 되었고, 셀틱은 연달아 닥쳐오는 위기를 막아내느라 고전하고 있었다.


[톰슨! 치고 나가지만, 티어니가 바짝 붙어서 쫓아갑니다! 두 선수의 빠른 속도 경합! 크로스 차단. 아직까진 티어니가 톰슨을 잘 제어하고 있네요.]


그나마 셀틱으로서 다행인 점은 톰슨이 크게 힘을 쓰지 못한다는 정도. 평소처럼 그가 측면을 헤집어놨다면 진작 실점했을지도 모른다.


상대하는 프리미어십 풀백들이 매번 톰슨의 폭주에 맥을 못 추고 나가떨어졌던 걸 생각하면 티어니는 대단한 수비를 보여주는 중이었다.


그러나 풀백 한 명이 이어진 코너킥까지 어떻게 해줄 수는 없는 노릇.


[들어갑니다! 폰투스 얀소오오온! 찍어 누르는 파워풀한 헤더로 동점 골을 만듭니다!]


“이거지! 우리 수비수들이 골 맛을 볼 때가 되긴 했어!”


“공중볼의 얀손은 최강이라고! 감히 마크를 안 해?”


전반전은 그렇게 1 : 1로 마무리.


승부가 원점이 되었음에도 오닐은 전진하기를 주저했고, 풀러가 다시 불만을 터뜨릴 만큼 수비에만 일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정적인 진형을 유지하다가 후반부에 한 방을 노려볼 모양이었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으나 너무 거센 공세를 버티느라 선수들의 부담이 가중된 탓일까.


후반 65분. 일순간 올라온 라인을 포착한 캐리의 기습적인 뒷공간 패스가 일직선으로 나아갔고, 사건은 중앙으로 몰래 들어온 톰슨이 라인 브레이킹을 시도하면서 터지고 말았다.


주심의 휘슬. 그리고 셰인 더피를 향한 레드카드. 다급하게 잡으려다 백태클을 걸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아, 남은 시간 동안 열 명으로 버텨야 하는 셀틱. 후반을 노리려던 오닐의 계획이 틀어집니다.]


“하핫,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못 버티는 게 훤히 보이더니만, 이래서 전혀 조급할 필요가 없는 거야!”


“케니······.”


“왜?”


“아냐.”


윌슨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더피를 대신해서 암브로스가 준비하는데요. 오히려 교체는 로스 카운티 쪽이 더 빠릅니다. 잭 마틴 자리에 투입되는 제임스 블랜차드.]


[수적으로 불리해진 셀틱이 뒤로 물러서면 침투할 공간이 더 부족해지죠. 잭 마틴보다는 블랜차드가 저 밀집 대형을 상대하기 좋겠네요.]


전술 변화조차 앞서가는 델 레오네. 흐름은 완전히 로스 카운티의 것이었다.


[톰슨. 재차 중앙으로 빠져들어 가려 시도하지만, 이번엔 티어니가 쫓아와서 견제합니다. 브리튼의 패스는 우측으로. 톰슨과 티어니가 비워둔 측면에 딩월이 있습니다! 올리는 크로스!]


[블랜차아아아드!]


“나이스으으!”


“우리 블랜차드만 보면 야유하더니, 셀틱 놈들 꼴좋다!”


[딩월의 크로스를 받아 구석으로 넣은 헤더 골! 블랜차드가 저번에 이어 또 한 번 셀틱 팬들에게 비수를 꽂습니다!]


셀틱 측 스탠드를 보며 숫사슴의 로고가 그려진 엠블럼에 입을 맞추는 블랜차드와 착잡한 얼굴로 고민에 빠진 오닐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카메라.


[셀틱이 크게 동요합니다. 선수들이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역전을 당한 이후 홈팀의 경기력은 급격히 저하되었다. 공황에 빠진 감독의 심리 상태가 고스란히 필드에도 영향을 끼치는 듯했다.


그건 꾸준하게 단단한 수비를 보여주던 티어니도 마찬가지였다.


스티브 샌더스가 캐리와 교체되어 들어간 후반 80분.


점수를 쫓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올라온 셀틱의 뒤로 샌더스의 롱패스가 들어갔고, 톰슨이 침투에 성공하며 단독 찬스를 맞았다.


티어니가 사력을 다해 쫓지만, 좁혀지지 않는 간격. 무시무시하게 내닫는 스피드에 차마 달려 나오지도 못하는 골키퍼의 반대편으로 차 넣는 쐐기 골.


계속 잘 틀어막다가 한 번 놓쳐버리니 순식간이었다.


펍 안의 사람들은 소리 지르며 환호했다.


거의 일방적인 경기 내용과 1 : 3을 표시하는 전광판의 스코어. 이 모든 게 셀틱 파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힘을 실어주기 위해 쉬지 않고 부르던 홈팬들의 챈트도 끝내는 멈춰버리고 말았다.


“난 기쁘기도 하지만, 뭔가······ 오묘한 감정이 들어.”


맥도넬이 말했다.


“레오가 막 부임했을 때 치렀던 개막전에서는 우리가 선제골로 앞섰다가 세 골을 내주고 졌었거든. 셀틱의 거대한 벽을 느낀 경기였었는데······.”


그 스코어의 반대, 심지어 선제골을 내주고 세 골로 역전하는 것까지 똑같은 과정을 목격하는 날이 오게 되다니.


수년간 리그를 지배해 온 양강, 올드 펌 중 하나인 셀틱. 그 막강한 권세에 짓눌려 다들 이곳의 섭리인 양 순응해 왔다. 맥도넬도 그중 하나였다.


물론 이제 그들에게 움츠러들지 않게 된 지는 꽤 오래됐다.


그런데 오늘은 과정도 그렇고 둘의 위치가 명확히 뒤바뀌었다는 느낌을 강렬히 안겨주는 시합을 본 것 같았다.


이전에 셀틱을 3 : 0으로 완파하긴 했었다. 그래도 그때는 장소가 햄던 파크, 골이 터지기 전까진 팽팽하게 주고받는 흐름이라도 있었다.


처음부터 한 수 접고 홈에서 내려앉는 셀틱을 본 것도, 그럼에도 무자비한 화력을 내뿜는 로스 카운티를 보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셀틱 팬들은 어떤 마음일까? 저들도 로스 카운티에 벽을 느끼는 중일까?


맥도넬은 그렇게 생각하며 남은 맥주잔을 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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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틱 1 : 3 로스 카운티 >

칼럼 맥그리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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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투스 얀손(33‘)

제임스 블랜차드(75‘)

앤드류 톰슨(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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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ily Mail ] 마틴 오닐의 경기 운영이 자초한 패배



충격적인 경기 이후 분위기는 급격히 싸늘해졌다.


셀틱 팬들이 오닐을 환영했던 이유는 그가 델 레오네를 깨부술 유일한 희망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번과 오늘의 참패를 보면서 상대도 되지 못한다는 것만 확인하고 말았다.


거슬리는 눈엣가시 수준을 넘어 셀틱의 자연재해가 되어버린 저 빌어먹을 이탈리안을 오닐로는 도저히 이길 방도가 없어 보였다.


이번 패배로 인해 두 팀의 격차는 12점. 아직 겨울 이적 시장이 시작하기 전인데도 눈에 띄게 벌어진 승점이 그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셀틱이 예전 같지 않은 걸까요? 로스 카운티가 무적인 걸까요? 아마 둘 다 해당되는 얘기겠죠. 스코티시 프리미어십의 역사를 크게 나눈다면 오늘날 일들이 한 파트로 묶여서 후대에 전해질 겁니다. 애버딘과 던디 유나이티드가 올드 펌에 대항했던 시절처럼요. 여러분은 역사적인 광경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는 겁니다.” - 축구 평론가 ‘에릭 프레스턴(Eric Preston)’ -


악화되는 여론, 이곳저곳에서 나오기 시작하는 비판. 실로 오래간만의 스포트라이트였으나, 차라리 안 받는 게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프레스턴이 꺼낸 ‘역사적인 광경’이라는 건 단순히 셀틱의 패배에만 초점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다.


“요새 프리미어십의 기류가 굉장히 이상합니다. 셀틱을 무서워하는 팀이 없어요. 아니, 그 뜻이 아니에요. 당연히 프로팀이 시작부터 지는 걸 깔고 가는 건 문제가 있죠. 그러니까 제 말은 경기할 때가 아니라······ 너도나도 셀틱의 위상을 노리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겁니다.” - 스코티시 스포츠 해설자 ‘롭 맥케나(Rob McKenna)’ -


“압도적인 규모와 재정, 탄탄한 선수풀, 드높은 명성. 여기에 감히 누가 대적하려 했겠습니까? 저항하려던 소수는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죠. 셀틱을 넘어서지 못하는 건 자연스러운 이곳의 법칙이었어요. 한 이탈리안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죠.” - 축구 평론가 ‘그레이엄 파커(Graham Parker)’ -


“불가능이다? 비현실적이다? 다른 스코티시 팀이 올드 펌을 넘보는 자체만으로 그렇게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요? 정말로 일어난 일이잖아요? 팬들만 인식이 바뀐 게 아니에요. 구단들이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풋볼 전문가 ‘마이클 포드(Michael Ford)’ -


작년에 이루어졌던 셀틱의 폐위식 이후 지켜보던 수많은 구단 관계자의 머릿속에서는 이런 의식이 팽배했다.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못할 게 뭐지?’


까놓고 말해 로스 카운티는 강등권에서 허덕이고 있어야 할 수준이었다. 그런 팀이 유능한 감독 하나를 데려온 것만으로 탈바꿈을 하다못해 리그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았다.


그것도 모자라 올해는 아무도 범접 못 할 퍼포먼스를 보이면서 우승한 게 우연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밑바닥에 처박혀 있던 촌구석 팀도 해냈는데 그보다 더 형편이 좋은 자기들이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걸 제일 먼저 눈치채고 시류를 따라갔던 것이 세인트 존스톤이었다.


샘 라이트 감독을 경질했던 당시에는 주변에서 손가락질을 받았고, 주제파악 못 한다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라이언 고드프리라는 인물을 얻어 현재 3위를 달리고 있다.


세인트 존스톤 또한 이 흐름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선발주자마저 성공했는데 어찌 자극을 안 받을 수 있을까?


프리미어십 구단들의 인식 변화, 어쩌면 카운티 신드롬의 최종 단계가 될지도 모르는 현상이었다.



[ Scottish Sports ] 파틱 시슬, 아론 아치볼드와 결별



스타트를 끊은 건 파틱 시슬이었다.


델 레오네가 부임하기 전부터 프리미어십에 머물러 있던, 몇 년간 잘 버텨왔던 아치볼드의 경질 소식.


물론 올 시즌은 부진을 거듭하며 팀을 강등 위기에 빠뜨렸기에 잘려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다음 이루어진 선임 작업이 흥미로웠다.


예전이었다면 그 이상을 노리는 건 힘들어도 안정적인 잔류를 최우선시할 수 있는 적임자. 이를테면 알란 윌슨이나 잭 맥퍼슨 같은 경험이 풍부한 감독을 찾아 앉혔을 텐데.


그들은 뜻밖의 터무니없는 도박 수를 던졌다.



[ Scottish Sports ] 파틱 시슬, 스텐하우스뮈어의 레이 히긴스를 주시



스코티시 리그 원, 3부 리그의 팀 스텐하우스뮈어(Stenhousemuir)에서 유독 눈에 띄는 성적을 거두고 있던 레이 히긴스(Ray Higgins)를 물망에 올려놓은 것이다.


무대 레벨은 다르지만, 스텐하우스뮈어도 시즌 전엔 하위권이라 전망했던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선두를 달리고 있는 팀이었다.


3부 리그의 수준을 생각하면 당장 잔류부터 걱정해야 하는 파틱 시슬의 처지에 위험 부담이 상당히 큰 선임이었으나.


같은 3부 리그의 포퍼 애슬래틱(Forfar Athletic)에서 거둔 성과를 바탕으로 데려온 게 세인트 존스톤의 고드프리였기에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성공할지 여부는 장담할 수 없겠지만.



[ Scottish Sports ] 레이 히긴스, 파틱 시슬행 결정


[ Daily Telegraph ] 히긴스는 프리미어십 입성에 흥분 중이다



파틱 시슬의 결단을 기점으로 프리미어십 구단들은 저마다 야망을 품고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현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로스 카운티를 롤 모델 삼아 자기네 팀들을 더 높은 곳으로 올려놓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 있을 한글날까지 알차게 보내시고

기분 좋은 한 주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이 글이 작은 즐거움이라도 보탰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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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643 39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1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7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7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4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3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4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7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1 44 23쪽
»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71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2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5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4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7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6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1 56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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