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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님의 서재입니다.

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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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최근연재일 :
2024.04.07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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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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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81. 지상 최고의 팀 (3)

DUMMY

“세비야전이요? ······솔직히 말해서 그때로 돌아가면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우리도 어떻게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요. (웃음) 어떻게 세비야를 상대로 그런 경기를 하고, 승리하고, 우승까지 할 수 있었는지. 물론 감독님의 뛰어난 지도력 덕분이었죠. 하지만 그날 우리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뛰었던 것 같아요. 또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물으면 확신이 안 드네요.” - 로스 카운티 풀백 ‘아메드 델샤드(Ahmed Delshad)’ -


*******


“······여기가 그 베르나베우인가?”


브리튼은 빼곡하게 들어선 관중들을 둘러보며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모든 준비는 마쳤다. 라커룸에서 감독의 최종 브리핑도 들었다.


하지만 그는 터널을 나와 피치 안에 들어서는 순간 강하게 옥죄어 오는 위압감에 숨을 죽여야만 했다.


아직 경기를 뛰기 전이었음에도 손에서는 땀이 배어 나왔고, 가슴은 미칠 듯이 뛰었다. 긴장한 몸은 돌처럼 뻣뻣하게 굳어진 느낌이었다.


챔피언스 리그의 장엄한 주제곡은 예전보단 그래도 익숙해졌다. 떨리는 원인은 음악과 무대보다 장소 그 자체에 있었다.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Estadio Santiago Bernabeu).


최고의 경기장 중 하나인 이곳의 잔디를 밟는 것.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만 수천의 축구 선수 중 몇 명이나 그 특권을 누릴 수 있을까?


기껏해야 TV로나 볼 수 있었던 베르나베우. 자신은 영영 입장할 일이 없을 거라 여겨왔던 환상의 경기장. 지금 그 위에 직접 서 있다니.


로스 카운티를 이끄는 강인한 캡틴이지만, 한평생을 스코틀랜드 안에서만 살아온 그로선 좀처럼 겪어볼 수 없는 경험이었다.


물론 유명한 경기장을 이번만 방문한 건 아니다. 최근엔 첼시의 스탬퍼드 브리지 원정도 가봤고, 유로파 리그 결승전 때는 스타디온 나로도비 같은 5성 경기장에서 뛰어보기도 했었다.


게다가 올 시즌은 스코틀랜드 축구의 성지로 불리는 햄던 파크를 빌려서 홈구장으로 쓰고 있지 않은가.


전부 흠잡을 데 없이 좋은 곳들이다. 단지 베르나베우의 위용이 그것을 초월할 뿐.


원대한 꿈을 품은 축구 선수라면 한 번쯤 이곳에서 백색 유니폼을 입고 필드를 누비는 상상을 해보기 마련이니까.


브리튼은 킥오프 전 주변을 둘러보며 팀원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 81,044석을 수용할 수 있는 웅장한 스탠드는 하얀 물결로 일렁이고 있었다.


놀라운 건 이에 저항하려는 군청색의 파도 또한 반대편에서 넘실대는 중이었다. 홈팀에 성원을 보내는 무수한 함성 속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카운티의 구호.


“······좋아. 집중하자.”


브리튼은 다시 정면의 상대 팀을 바라보며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 15-16 UEFA Champions League ‘Group E’ Match >

레알 마드리드 CF : 로스 카운티

2015년 11월 3일 (화) 20:00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관중 수 : 77,689명)



[레알 마드리드 / 4-1-2-3]

FW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 카림 벤제마 / 이스코

CM : 루카 모드리치 / 토니 크로스

DM : 카세미루

DF : 마르셀루 / 세르히오 라모스 / 라파엘 바란 / 다닐루

GK : 케일러 나바스


[로스 카운티 / 4-3-3]

FW : 제임스 블랜차드 / 에이든 딩월 / 앤드류 톰슨

MF : 알렉산더 캐리 / 대런 케틀웰 / 리차드 브리튼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스콧 보이드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조지 맥도넬의 펍.


[카림 벤제마가 복귀하면서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은 1차전보다 강한 화력을 낼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가레스 베일은 아직 부상에서 복귀하지 못했습니다.]


[벤제마(Benzema), 베일(Bale), 크리스티아누(Cristiano). 소위 이 셋을 통틀어 BBC 라인이라 부르죠. 가공할 위력을 보여주던 삼각 편대를 볼 수 없는 게 축구팬으로서는 아쉬운 일입니다. 저번 슈퍼컵에서 바르셀로나와 붙었을 때도 네이마르가 결장하면서 MSN 라인을 볼 수 없었죠.]


“축구팬은 아쉬울 수 있어도, 로스 카운티 팬은 전혀 아쉽지 않아.”


맥도넬의 말에 케니 풀러가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래. 우리로선 천만다행이지. 전력으로 저들과 맞서보고 싶다 말하는 건 솔직히 허세라고. 나는 상대가 더 약한 상태로 나와서라도 이 팀이 더 높이 올라가는 걸 보고 싶을 뿐이야.”


펍은 거의 몸을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붐비고 있었다.


모두 경기를 보기 위해 찾아온 손님. 이곳 하이 스트리트가 한산하고 따분한 거리라는 건 어느 순간부터 옛말이 되었다.


로스 카운티는 딩월시의 상징이 되었고, 딩월시는 하일랜드의 주요 관광 명소로 떠오르는 중이었으니까.


그렇다곤 해도 오늘 이 가게 안팎으로 몰려든 어마어마한 인파는 드니프로전 당시 맥도넬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그때와 비슷한 체감이었다.


[전반전 킥오프! 주심의 휘슬이 울리며 경기 시작합니다!]


“가자!”


“이번에도 좋은 플레이 보여줘!”


경기는 챔피언스 리그,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 장소는 베르나베우 원정. 도무지 열광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긴 했다.


그러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유명한 건 다 이유가 있는 법.


[홈팀의 계속되는 공격. 벤제마가 전진 패스를 받습니다. 수비를 등진 채 지켜내는 볼. 뒤로 빼주고, 모드리치가 바로 측면 전개. 다닐루가 빠르게 올라왔습니다!]


[어엇, 위험합니다!]


[철썩 -]


“······어?”


“아니······.”


[들어갑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3분 만에 터진 레알 마드리드의 이른 선제······ 아, 부심의 깃발이 올라갔네요. 득점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호날두,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십니다.]


“오······. 어휴, 다행이야.”


간발의 차로 걸린 오프사이드에 펍 안은 안도의 한숨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었다.


[우측으로 열어주는 토니 크로스. 아, 얀손을 따돌리며 들어가는 이스코! 위기! 브라운이 박스 바깥까지 다급하게 달려 나왔지만, 차단 실패! 이스코가 먼저 볼을 잡습니다!]


[위험합니다! 골문이 비어 있어요!]


[빈 골문에 띄워 넣는 볼! 델샤드가 빠르게 뛰어들어 머리로 막아냅니다! 밖으로 나가며 레알 마드리드의 코너킥!]


“워어······.”


[토니 크로스가 코너킥을 준비합니다. 올리는 볼. 카세미루우! 헤더 슛이 좌측 골대에 서 있던 월리스의 몸을 맞습니다! 황급히 걷어내는 월리스!]


“······.”


상대의 공세가 매섭게 지속되자 펍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고 있었다.


얼마 만이지?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경기를 했던 게.


[1차전에서 로스 카운티는 분명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건 분명 찬사를 보낼 만했죠. 하지만 역시 다릅니다. 기존도 확실히 강하지만, 베르나베우의 레알 마드리드는 다른 개념이에요.]


유로파 리그 트로피를 놓고 치열하게 사투를 벌였던 그 세비야조차 고작 1945/46 시즌 이외에는 한 번도 우승해 본 적 없는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 그런 무대에서 최다 우승 보유 기록을 가지고 있는 팀.


그들의 홈그라운드에 발을 들인다면 어느 팀이든 주눅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브리튼, 전방으로······ 아, 패스 미스.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 모드리치의 찔러주는 패스! 우측으로 빠진 호날두! 호날두우우! 강력한 슛이었지만, 다행히 브라운 키퍼의 정면이었습니다!]


[좀처럼 쉽게 나가지 못하는 로스 카운티인데요. 레알 마드리드가 강한 것도 있지만, 선수들이 전체적으로 위축된 것 같아요.]


[델 레오네 감독이 터치라인까지 나와서 선수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다그칩니다. 평소 차분한 모습의 그도 현재 흐름이 마음에 안 든다는 거죠.]


그간 유명세 있는 강팀과 맞붙을 때면 제법 팽팽한 싸움을 펼치거나 나중에 밀리더라도 전반에는 몰아붙이는 양상을 보이곤 했었다.


로스 카운티 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나폴리전이 그랬고, 결승에서 만난 세비야전이 그랬으며, 슈퍼컵의 바르셀로나전, 최근 레알 마드리드와 햄던 파크에서 붙었던 1차전도 그랬다.


그런데 오늘은 십 분이 되어가도록 레알 마드리드의 골문을 전혀 위협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드리치, 전방으로 길게. 얀손이 머리로 끊어냅니다. 그러나 이스코, 볼을 잡고 벤제마에게. 패스를 받아 매끄럽게 돌아서며 보이드를 떨쳐내는 벤제마! 좌측으로 열어주는 패스!]


[호날두의 찬스입니다!]


[대각선으로 쇄도하는 호날두! 이번엔 좌측에서! 호날두! 슛! 델샤드가 슬라이딩하며 몸을 던져 다리로 막습니다! 다시 한번 코너 아웃!]


“벤제마가 중앙에서 정말 잘 지탱해 주는구먼.”


집중해서 시청하던 크레이그 던컨이 말했다.


“호날두를 가운데에 뒀던 저번과 달라. 벤제마의 존재 하나로 레알 마드리드 공격진에 더 무게감이 실렸어.”


“계속 휘둘리니 아찔합니다. 베일까지 나왔으면 어찌 되었을지······.”


맥도넬은 말끝을 흐리며 다시 TV 화면을 보았다.


[중앙에서 받는 이스코. 브리튼을 무너뜨립니다! 측면으로 빠져 있는 벤제마에게 패스! 벤제마의 크로스! 자리를 선점한 보이드가 간신히 걷어냅니다!]


[오늘은 베니테스 감독이 준비를 잘해온 것 같습니다. 복귀한 벤제마가 중앙에서 버텨주면서 연결고리의 중심이 되어주는 효과도 크지만, 이스코가 지금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거든요.]


[확실히 그의 발에서 찬스가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중계 해설진도 세세한 분석에 들어가고 있었다.

레알 2차전.jpg

[활동 영역이 제한적이었던 헤세, 바스케스와 달리 이스코는 좌우, 중앙을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수비진에 교란을 줄 수 있는 자원입니다. 지금도 캐리와 케틀웰의 사이로 교묘하게 들어가 있어요.]


[이스코에게 전달되는 패스. 얀손이 과감히 달려 나와 볼을 낚아챕니다! 좋은 수비! 전방으로 연결. 단번에 톰슨을 겨냥한 패스였지만, 라모스가 읽고 있었습니다. 볼의 소유권은 다시 레알 마드리드 쪽으로.]


[수적 우위를 만들어 중앙을 장악하는 로스 카운티의 수법이 통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스코 때문에 진형이 흔들리면서 다른 쪽, 특히 3선 마크까지 느슨해지고 있거든요.]


[거기에 모드리치가 수시로 전진해 올라오니까 더 버거운 것 같아요.]


[모드리치를 쫓아서 딩월이 내려오니 전방에 공격수가 줄어들죠. 전진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블랜차드의 체격을 이용해 직선으로 연결하는 패턴을 쓰고 있지만, 그마저도 카세미루가 잘 막고 있어요.]


[딩월의 공격 가담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모드리치를 가만히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인데요. 브리튼을 다시 중앙에 배치해야 할까요?]


[브리튼을 중앙으로 좁히면 마르셀루가 풀려납니다. 톰슨이 결국 오버래핑을 견제해야 하고, 후방으로 내려와야 해요. 그러면 톰슨으로 마르셀루의 뒤를 공략하려는 처음의 계획이 전부 틀어지게 되는 거죠.]


[게다가 모드리치를 봉쇄한다는 보장도 없겠고요. 상당히 골치 아픈 상황의 로스 카운티입니다.]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맥도넬은 해설진의 설명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베르나베우 원정인 만큼 일단은 수비적으로 임할 요량으로 1차전에서 통했던 방식을 그대로 들고나온 로스 카운티였지만, 벤제마의 복귀와 이스코 선발이라는 변수가 판을 뒤집어 놓은 셈이었다.


단지 레알 마드리드의 드높은 명성과 베르나베우 원정이라는 이유만으로 해석될 경기력은 아니라는 얘기.


[그리고 이스코로 인해 자연스러운 스위칭이 이루어지면서 호날두가 우측으로 간간이 빠지고 있죠? 이러면 그가 델샤드의 끈질긴 대인 마크를 벗어나는 효과도 받게 되거든요.]


[그렇습니다. 1차전에서는 계속 델샤드에게 고전했던 호날두였는데요. 지금은 침투할 수 있는 루트가 다양해지면서 로스 카운티를 애먹이고 있네요.]


베니테스도 이곳 베르나베우에서 패배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기에 깊이 연구하고 나온 모양이었다.


[이스코, 화려한 발재간으로 측면을 휘젓습니다.]


[이 선수를 막지 못하면 로스 카운티, 힘들 겁니다.]


[이스코, 밀어주는 볼. 아, 어느새 앤드류 톰슨이 쫓아와서 마르셀루로 향하는 볼을 차단합니다! 결국 내려왔는데요. 델샤드의 패스가 중앙으로. 캐리가 즉시 전방으로 길게 로빙 패스!]


“그렇지!”


“반격 시작이다!”


[캐리의 볼이 블랜차드에게. 파울입니다! 프리킥을 얻습니다.]


[볼을 잡자마자 180도 턴으로 두 명의 틈새를 빠져나가는 좋은 시도였는데 카세미루가 발을 걸었네요. 운 좋게도 카드는 받지 않습니다.]


“역시 우리가 흐름을 바꿀 땐 항상 블랜차드가 있었지!”


“블랜차드가 해줄 거야!”


[캐리의 프리킥. 직접 골을 노리기엔 모호하지만, 올려주기엔 좋은 위치. 캐리의 왼발! 아앗! 아아, 딩월의 슛! 무지막지하게 벗어나고 맙니다!]


“아악! 딩월, 이놈아!”


[쇄도하는 얀손과 보이드에 시선이 끌린 사이 뒤에 처져 있던 딩월을 겨냥해서 허를 찌르는 크로스였는데요. 발에 맞추긴 했지만, 옆으로 너무 크게 빗나갔습니다. 마치 열차가 선로를 이탈한 것 같은 슛이었어요.]


“하······.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좋은 장면 하나 만들어 냈으니까······.”


맥도넬은 담담하게 한숨을 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레알 마드리드의 급소를 노렸던 공격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로스 카운티의 경기력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었다.


[케틀웰의 볼 차단. 캐리의 전진 패스. 블랜차드가 받고 딩월에게. 딩월의 패스는 좁혀 들어온 톰슨이 받습니다. 톰슨, 앞으로 찍어 차올리는 볼. 블랜차드, 발뒤꿈치로 원터치 패스! 월리스가 질주하는 측면으로 열어줍니다!]


“오오!”


[기술적인 패스를 받아 측면을 파고드는 월리스! 다닐루가 비워둔 측면을 바란이 커버합니다! 박스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라파엘 바란! 월리스, 수비를 피해 옆으로 내주는 볼! 블랜차드! 슈우웃! 매서웠지만, 옆 그물을 맞습니다!]


“여······ 역시 블랜차드야!”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잖아! 이렇게만 해보자고!”


[걷어내는 레알 마드리드. 얀손이 받아서 최후방의 보이드에게. 보이드, 델샤드에게로. 델샤드, 직선 패스. 톰슨이 받아 딩월과 볼을 주고받습니다.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톰슨! 브리튼에게 주면서 한 번 더 리턴 시도! 아, 라모스에게 막힙니다!]


“저것만 통과했으면 좋은 기회가 나올 수 있었는데!”


[불안정하던 로스 카운티의 빌드업에 안정감이 생겼어요. 선수들의 몸이 좀 풀린 것 같습니다.]


잠잠하던 펍의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블랜차드와 톰슨이 연달아 보여준 플레이는 강적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던 로스 카운티가 되살아난 듯했다.


[이스코가 넘어집니다. 브리튼을 뚫지 못했지만, 파울을 얻어내는군요. 아까 캐리가 찼던 곳과 비슷하게 치우쳐진 위치에서 프리킥을 차게 되는 레알 마드리드.]


“괜찮아. 막아내고 제대로 역습 한 번 가보자!”


[모드리치가 킥을 준비합니다. 모드리치, 올리는 볼. 어? 아아!]


[철썩 -]


“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헤더 골! 부심의 깃발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호날두, 검지를 휘두르며 터치라인의 관중석을 향해 내달립니다!]


공중을 날듯 뛰어올라 회전하며 착지하자마자 양팔을 힘껏 펼치는 호날두.


[Siuuuuuuuuuu -]


포효와 함께 그의 셀레브레이션에 호응하며 경기장을 뒤흔드는 베르나베우 관중들.


[월리스를 따돌리며 정확히 이마로 찍어 누르는 헤더 슛이었습니다. 브라운 키퍼가 꼼짝도 못 하고 당했어요.]


다시 침묵에 빠져버린 펍 안.


[홈팀의 공세가 끊이지 않습니다. 호날두, 좌측에서 모드리치에게. 모드리치, 마르셀루, 호날두, 모드리치, 삼각패스 이후 중앙으로 가는 볼.]


[로스 카운티가 다시 흔들리고 있어요.]


[이스코가 받아서 측면의 호날두에게 찔러줍니다! 호날두! 호날, 아앗! 델샤드를 제치고 슈웃! 아슬아슬하게 크로스바를 스치며 골라인 아웃!]


[호날두의 기세가 무섭습니다. 방금 힐 찹(Hill Chop), 그의 고유 기술까지 나왔죠. 꾸준히 잘 막던 델샤드조차 손 쓸 도리 없이 당해버렸네요.]


직선으로 속력을 내다가 발뒤꿈치로 볼의 방향을 전환하며 수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개인기. 호날두의 전매특허 플레이가 나왔다는 건 그의 컨디션이 최고조이며, 로스 카운티가 그를 전혀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


침묵을 깬 건 힘없는 한숨 소리였다.


흐름을 가져오나 싶더니 선제골을 내주며 도로 페이스를 잃어버린 모습.


[모드리치, 옆으로 짧게. 크로스의 측면 전개. 이스코가 받아서 볼을 지켜냅니다. 찔러주는 패스가 올라온 마르셀루에게로. 수비 둘이 붙어도 뺏기지 않습니다. 마르셀루! 그대로 직선 돌파!]


[한 명에게 너무 쏠렸어요!]


[컷백으로 내주는 마르셀루! 이스코의 슛! 골대! 골대를 맞고! 세컨드 볼은 얀손이 헤더로 처리합니다! 코너 아웃!]


[브라운의 손가락 끝을 스치면서 골대를 맞았네요. 좋은 세이브입니다!]


“벌써 몇 번째 코너킥인지······.”


수비진이 고군분투하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지켜보는 펍 안 관객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계속 이런 장면만 반복되고 있으니, 또한 내내 이런 흐름으로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기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은 30분이 지나도록 어긋나지 않았다.


[호날두, 슈웃! 옆으로 빗나갑니다. 너무 꺾어 찼네요.]


[하지만 호날두에게 너무 많은 기회를 내주고 있습니다. 좋지 않아요.]


안토니오 델 레오네가 로스 카운티에 부임한 후 이 정도로 심하게 반코트 게임을 내준 적이 있던가?


[오래간만에 올라온 로스 카운티. 브리튼이 앞으로 전개. 톰슨이 받고, 델샤드까지 올라갑니다. 톰슨이 밀어주는 볼을 받아 크로스를 올리는 델샤드! 박스에 진입한 블랜차드의 발리슛! 수비 몸을 맞고 나옵니다!]


[상대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요.]


[세컨드 볼은 캐리에게. 재차 중거리 슛! 어? 핸들링? 라모스의 팔에 맞은 것 같은데요? 캐리가 자신의 팔을 두드리며 주심에게 강하게 어필합니다. 그러나 경기는 그대로 진행.]


“페······ 페널티 킥이잖아!”


“이걸 안 주고 넘어간다고?”


[모호하네요. 고의로 막아선 동작은 아니었어요. 주심의 재량에 따라야 할 판정인 것 같습니다. PK를 선언해도 이상하진 않았을 것 같긴 한데요.]


“어쨌든 팔을 맞았잖아!”


“동점 골 기회인데······.”


하지만 로스 카운티가 만들어 낸 위협적인 장면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후에도 주도권은 레알 마드리드가 잡아 나갔고, 로스 카운티는 간신히 1점만 내준 채로 전반전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핸들링 파울 의혹을 그냥 넘어간 것에 대해서 격분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이내 허탈감이 몰려왔다.


그 상황 하나에만 매달려야 할 만큼 로스 카운티는 제대로 된 공격을 보여주지 못했다.


평균 점유율은 70 대 30, 유효 슈팅은 0개. 처참하게 밀린 경기였다.


애초에 베르나베우 원정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그런 무모한 상상을 하진 않았으나, 그래도 유럽에서 이름 좀 떨친 팀들을 여럿 상대해 봤으니 일말의 기대심을 가진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막상 실제로 마주하니 거대한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심지어 저쪽의 감독은 유로파 리그에서 델 레오네가 최종적으로 완승을 거뒀던 베니테스인데. 이미 한 번 짓눌렀던 전적이 있는데.


같은 감독, 그러나 다른 차원의 팀, 충격적인 경기 내용. 바뀐 선수단의 체급은 역시 무시할 수 없는 건가?


이게 레알 마드리드인가? 이게 월드 클래스들이 모인 선수들과의 격차인가?


이게 지상 최고라는 팀의 저력이란 말인가?


“뭐, 후반전이 남았잖아. 믿어 봐.”


좌절하는 맥도넬과 풀러 옆에서 나지막이 말을 꺼낸 건 해리 윌슨이었다.


“하지만, 해리. 자네도 저들의 경기를 봤잖아.”


“그래. 조지 말이 맞아. 이건 좀······ 충격이 크다고. 딩월에 블랜차드까지 합세한 우리 팀 중앙이 아무것도 못 했어. 이런 적은 처음이야.”


“자네들은 나보다 한참은 축구를 오래 봤으면서도 잘 모르는 것 같아.”


윌슨이 대꾸했다.


“전반전과 후반전은 다른 게임이라는 사실을 말이야. 그 일희일비하는 습관 좀 고쳐.”


“그건 그렇지만······ 우리도 어지간하면 안 그러지. 그동안 겪어 온 게 있으니까. 근데 다른 팀이면 몰라도 상대가 레알 마드리드잖아. 저긴 베르나베우고······. 도무지 좋은 그림이 안 그려지는 걸 어떡해?”


“조지, 자네는 델 레오네를 못 믿겠다는 건가?”


“아니, 당연히 믿지!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 단지······.”


“그러면 그냥 믿어 봐.”


“······.”


“믿어보고, 후반전까지 확인한 뒤에 얘기해.”


“······그래. 믿어야지.”


말문이 막힌 맥도넬은 앞에 놓인 행주를 집어 들고, 바 테이블을 닦았다.


당연히 이탈리안 감독이 미덥지 않은 건 아니다. 그가 무언가 해줄 거란 기대는 언제나 품고 있다. 아니, 그걸 넘어서 신봉하고 있다.


하지만 맥도넬은 전반전 경기를 보면서 초자연적인 공포를 느꼈다. 겨우 한 골만 내줬을 뿐인데도 범접하기 어려운 클래스를 느꼈다.


레알 마드리드, 말 그대로 지상 최고의 팀. 20세기 최고의 팀으로 공식 선정된 집단.


작년에 상대하기 버거웠던 볼프스부르크, 나폴리, 세비야 같은 팀을 정말 ‘따위’로 치부할 수도 있는 그런 초월적인 존재 아닌가.


물론 한 번 이겨봤던 상대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어서 그런지 아예 불가능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올 시즌에 로스 카운티와 마주했던 프리미어십 팀 팬들 심정이 이랬을까?’


맥도넬은 이것저것 잡생각을 굴리면서 후반전을 얌전히 기다렸다.



[아, 경기 시작 전부터 이른 변화를 주네요. 대런 케틀웰을 불러들이고, 잭 마틴을 투입하는 로스 카운티입니다.]


[델 레오네 감독이 빠르게 칼을 빼 들었네요. 과연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될지. 팬들은 기대 반 걱정 반일 것 같습니다.]


“잭 마틴이라······.”


“그가 해결사가 되어 주길 바라지만, 전반전도 중앙 싸움에 밀려서 공격이 제대로 나가질 못했는데, 여기서 미드필더를 하나 더 빼면······.”


펍의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불안의 목소리.


어쨌거나 점수를 먼저 내준 마당이니 추격해야 하는 처지. 이해 못 할 교체는 아니었지만,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스코, 시작부터 프리킥을 얻습니다. 캐리의 파울이군요.]


“아······.”


[호날두 골이 들어갔을 때의 프리킥과 정확히 반대쪽에서 치우쳐진 위치입니다. 우측면인 만큼 오른발의 토니 크로스가 찰 확률이 높겠네요.]


“제발, 막아 줘······.”


[토니 크로스, 올립니다! 얀손의 클리어! 높이 떠오른 볼을 블랜차드가 2차로 멀리 걷어냅니다.]


“잘했어!”


[후방의 다닐루, 볼을 잡고 다시 전방으로 길게 붙여주는 롱패스. 그러나 로스 카운티 진영에서 나오던 딩월이 머리로 받아칩니다!]


[역습으로 바로 전개가 되겠는데요?]


[블랜차드의 원터치 패스! 브리튼이 좌측으로 전개합니다! 잭 마틴! 교체로 들어온 잭 마틴이 측면의 넓은 공간으로!]


“오?”


[아, 파울입니다. 다닐루가 뒤에서 마틴의 어깨를 살짝 잡아챘어요. 이건 카드가 나올 수밖에 없죠. 주심이 옐로카드를 꺼내 듭니다.]


“젠장, 퇴장을 주라고!”


“잘하면 골키퍼와 일대일까지 나올 수 있는 기회였는데!”


펍 안은 아쉬워하는 탄식으로 가득 찼고, 맥도넬 역시 입을 다문 채 한숨 섞인 콧바람을 불었다.


아까처럼 절망적인 심정으로 내뱉던 한숨과는 뭔가 달랐다.


묘한 기류. 느리게 뛰기만 하던 심장이 가슴을 점차 세차게 두드리기 시작한 걸로 보아 TV 화면 너머로 보이는 필드의 흐름이 뭔가 심상찮다는 걸 감지한 게 분명했다.


작가의말

전후반을 전부 묶어서 올리려다가

너무 급조된 전개가 되는 것 같아

나눠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독자분들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실망하신다면 죄송하여 드릴 말씀이 없고

재밌게 읽어주신다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언제나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야구는 제가 거의 아는 게 없는 문외한인지라

아마 야구 소설은 계획에 없을 것 같습니다.

쓰지 않는 게 아니라 쓰지 못하는 것이라...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우선은 그렇습니다.

글쓴이에 대한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모아두상 님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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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643 39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51 37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87 33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39 35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813 43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67 38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54 40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63 42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924 43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7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937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61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70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1,012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65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94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77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226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301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78 50 29쪽
»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69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82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69 50 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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