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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정(蘭亭)서재입니다~

비밀 낙서첩

웹소설 > 작가연재 > 시·수필

난정(蘭亭)
그림/삽화
nanjung
작품등록일 :
2015.06.21 08:53
최근연재일 :
2017.04.05 15:48
연재수 :
379 회
조회수 :
126,578
추천수 :
1,653
글자수 :
165,582

작성
16.05.12 10:44
조회
514
추천
5
글자
4쪽

126. 태양의 딸

DUMMY

-금와왕 왈(曰)




태백산 남쪽에서 만난 그녀 이야기이다.

어느 해 동부여에는 괴이한 일이 생겼었지. 한 어부가 ‘우발수’에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고, 처음에는 그냥 넘겼으나 여러 날이나 아침에 가서 그물을 올려 보면 아무것도 없었더라고.

이런 일 여러 날 거듭되자 이상한 소문이 퍼졌더란다.


“우발수에 큰 용이 나타나서 물고기가 안 잡힌다며?”

“용이 아니라 물귀신이 나타나서 방해를 한다는구먼!”

“용왕제 올려보든지 귀신을 몰아내든지, 아무튼 무슨 액막이라도 해야지. 궁금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소문은 궁궐의 높다란 담을 넘어 나 금와왕 귀에까지 들어왔어.

“여봐라. 그 소문이 더 번지기 전에 진원을 알아보도록 하라.”

관원들이 출두하여 우발수 못은 물론이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도무지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고,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소문은 들불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더란다.


“군졸을 풀어 사람의 통행을 금하고 샅샅이 살피도록 하라.”



양지쪽이건 음습한 곳이건 가릴 것 없이

쇠그물로 물속을 뒤진다 어쩐다하며 군졸들이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날 밤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단다. 요괴인지 뭔지가 쇠그물도 벗어나버린 거였지. 소문은 이윽고 호기심에서 두려움으로 바뀌었고, 하는 수, 하는 수 없이 내가 직접 현장 답사하였어.


군졸들과 함께 수색을 벌이다가 발견한 중년부인은

임신을 해서 배가 불룩했는데도 얼굴에 귀태가 흐르더군. 햇살이 그녀의 얼굴과 배를 비추자, 화사한 얼굴이 태양처럼 눈부셨지. 그런데 “보아하니 귀부인 같은데 왜 남의 고기를 훔쳤는가?”

아무리 그리 물어도 부인은 도통 입을 열지 않더라.


궁궐에 붙들려온 부인에게 심문을 시작했지.

전설에 있다시피, “그 여자의 입을 잘라라!”고 하는 세 단계의 고문이 시작했더니

아무리 입이 무겁다 해도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나봐.


“임신한 몸이다. 함부로 다루지 마라.”

“도대체 어느 누구의 자식을 임신했는가?”

“아무튼 인간은 아니니라. 내 몸에 손대면 천벌을 받을 터!”


부인은 이제 물고기 도둑이 아니라

누구의 자식을 잉태했는지가 문제였어.

인간이 아니라면 산신이란 뜻인가?

용왕이란 의미인가?

아니면 귀신의 자식을 잉태했단 말인가?


의심의 눈을 어쩌지 못하고 그녀의 겉옷을 벗겼어.

알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뿐,

그녀가 입을 여는 것은 불가항력이었어.

“이 몸은 해의 아들을 잉태했노라. 물러나라. 햇빛을 막지 말라.”

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사람들이 썰물처럼 물러섰지.


‘해라니?’ 나는 문득 해부루 왕이 떠올랐지.


“임신한 몸이니 죄를 묻지 않겠노라. 밖으로 내보내라.”

부인이 가는 곳곳마다 백성이 모여들어 경배를 올렸다더군. 해씨가 누구인가를 잘 아는 백성이기에 정성이 지극했던 게야. 멀리에서까지 부인을 보호하려는 자들이 모여들었는데, 어디서 온갖 새들이 날아와 그 알을 보호했다는 전설과 같았지.


나는 다시 부인을 불러들였어.

그대로 두었다가는 큰 변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그녀의 입을 세 번째로 잘라라.”하고 명령했어.

그 순간 귀를 울리는 해를 부르는 소리,

사람들의 외침소리

“해부루! 해부루! 해부루!”

그랬어, 햇살이 쏟아지면서 부인을 비췄던 거야.


백성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동안, 부인은 아들을 낳았어.

오색찬란한 햇살이 부인을 어루만지더니

갓 태어난 아들을 따사롭게 감싸 주더라.

“모두들 경배 하여라! 해가 다시 떠올랐도다!”


딸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는데 아들이었어.

하지만 인정할 건 하고 넘어가야지. 일찌기 만백성의 관심과 만백성의 함성 속에 태어난 인물은 없었는데, 이 아이야말로 태양의 아들임에 틀림없었던 거야. 해를 부르는 해부루의 혼령이 죽어 다시 태어난 것이었지. 마지막 입이 잘릴 위기에 몰리자 유화부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던 거야.

“이 몸은 태양의 딸이니라, 하백의 딸이기 전에......”


작가의말

126. 태양의 딸

-금와왕 왈()

 

 

백산 남쪽에서 만난 그녀 이야기이다.

어느 해 동부여에는 괴이한 일이 생겼었지. 한 어부가 우발수에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고 있었는데,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고, 처음에는 그냥 넘겼으나 여러 날이나 아침에 가서 그물을 올려 보면 아무것도 없었더라고.

이런 일 여러 날 거듭되자 이상한 소문이 퍼졌더란다.

 

우발수에 큰 용이 나타나서 물고기가 안 잡힌다며?”

용이 아니라 물귀신이 나타나서 방해를 한다는구먼!”

용왕제 올려보든지 귀신을 몰아내든지, 아무튼 무슨 액막이라도 해야지. 궁금해서 살 수가 있어야지.”

 

소문은 궁궐의 높다란 담을 넘어 나 금와왕 귀에까지 들어왔어.

여봐라. 그 소문이 더 번지기 전에 진원을 알아보도록 하라.”

관원들이 출두하여 우발수 못은 물론이고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도무지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고,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소문은 들불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더란다.

 

군졸을 풀어 사람의 통행을 금하고 샅샅이 살피도록 하라.”

 

 

지쪽이건 음습한 곳이건 가릴 것 없이

쇠그물로 물속을 뒤진다 어쩐다하며 군졸들이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날 밤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단다. 요괴인지 뭔지가 쇠그물도 벗어나버린 거였지. 소문은 이윽고 호기심에서 두려움으로 바뀌었고, 하는 수, 하는 수 없이 내가 직접 현장 답사하였어.

 

군졸들과 함께 수색을 벌이다가 발견한 중년부인은

임신을 해서 배가 불룩했는데도 얼굴에 귀태가 흐르더군. 햇살이 그녀의 얼굴과 배를 비추자, 화사한 얼굴이 태양처럼 눈부셨지. 그런데 보아하니 귀부인 같은데 왜 남의 고기를 훔쳤는가?”

아무리 그리 물어도 부인은 도통 입을 열지 않더라.

 

궁궐에 붙들려온 부인에게 심문을 시작했지.

전설에 있다시피, “그 여자의 입을 잘라라!”고 하는 세 단계의 고문이 시작했더니

아무리 입이 무겁다 해도 비명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나봐.

 

임신한 몸이다. 함부로 다루지 마라.”

도대체 어느 누구의 자식을 임신했는가?”

아무튼 인간은 아니니라. 내 몸에 손대면 천벌을 받을 터!”

 

부인은 이제 물고기 도둑이 아니라

누구의 자식을 잉태했는지가 문제였어.

인간이 아니라면 산신이란 뜻인가?

용왕이란 의미인가?

아니면 귀신의 자식을 잉태했단 말인가?

 

심의 눈을 어쩌지 못하고 그녀의 겉옷을 벗겼어.

알몸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뿐,

그녀가 입을 여는 것은 불가항력이었어.

이 몸은 해의 아들을 잉태했노라. 물러나라. 햇빛을 막지 말라.”

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사람들이 썰물처럼 물러섰지.

 

해라니?’ 나는 문득 해부루 왕이 떠올랐지.

 

임신한 몸이니 죄를 묻지 않겠노라. 밖으로 내보내라.”

부인이 가는 곳곳마다 백성이 모여들어 경배를 올렸다더군. 해씨가 누구인가를 잘 아는 백성이기에 정성이 지극했던 게야. 멀리에서까지 부인을 보호하려는 자들이 모여들었는데, 어디서 온갖 새들이 날아와 그 알을 보호했다는 전설과 같았지.

 

나는 다시 부인을 불러들였어.

그대로 두었다가는 큰 변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그녀의 입을 세 번째로 잘라라.”하고 명령했어.

그 순간 귀를 울리는 해를 부르는 소리,

사람들의 외침소리

해부루! 해부루! 해부루!”

그랬어, 햇살이 쏟아지면서 부인을 비췄던 거야.

 

백성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동안, 부인은 아들을 낳았어.

오색찬란한 햇살이 부인을 어루만지더니

갓 태어난 아들을 따사롭게 감싸 주더라.

모두들 경배 하여라! 해가 다시 떠올랐도다!”

 

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는데 아들이었어.

하지만 인정할 건 하고 넘어가야지. 일찌기 만백성의 관심과 만백성의 함성 속에 태어난 인물은 없었는데, 이 아이야말로 태양의 아들임에 틀림없었던 거야. 해를 부르는 해부루의 혼령이 죽어 다시 태어난 것이었지. 마지막 입이 잘릴 위기에 몰리자 유화부인이 마침내 입을 열었던 거야.

이 몸은 태양의 딸이니라, 하백의 딸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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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묵모란 +2 16.05.27 340 3 1쪽
313 떠나가는 섬 +5 16.05.25 386 3 1쪽
312 꽃, 그 놀빛 언어 +8 16.05.25 519 3 1쪽
311 네 수신음조차 묻어버렸다 16.05.24 413 2 1쪽
310 봄, 기지개 +4 16.05.23 398 2 1쪽
309 고흐의 소용돌이치는 노란 색깔 +2 16.05.23 409 2 1쪽
308 손톱 끝에 울음이… +2 16.05.22 541 3 1쪽
307 내 그림의 파편 하나 +4 16.05.21 511 3 1쪽
306 [평시조] 두 번째 이승을 수놓으며 +4 16.05.20 266 3 1쪽
305 [손톱끝에 울음이...] 시인의 말 +4 16.05.20 345 3 4쪽
304 136. 희생이 있어야 참사랑(신작시집을 여기서 마칩니다.) +3 16.05.20 389 4 1쪽
303 135. 황진이 돌아오다 +3 16.05.19 452 3 1쪽
302 134. 환상체험이 걸린 벽은 16.05.18 455 2 1쪽
301 ***꿈속에 사랑이(악보 포함) +2 16.05.18 511 3 1쪽
300 ***너의 꽃으로 남고 싶다(악보 포함) +4 16.05.18 437 3 1쪽
299 133. 허수아비 +8 16.05.17 370 4 1쪽
298 132. 행복이 깃든 하늘나라 천사 있는 곳 +5 16.05.16 502 4 1쪽
297 ***그냥(프로필사진 관련) +4 16.05.16 470 3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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