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난정(蘭亭)서재입니다~

비밀 낙서첩

웹소설 > 작가연재 > 시·수필

난정(蘭亭)
그림/삽화
nanjung
작품등록일 :
2015.06.21 08:53
최근연재일 :
2017.04.05 15:48
연재수 :
379 회
조회수 :
126,021
추천수 :
1,653
글자수 :
165,582

작성
16.05.17 21:02
조회
368
추천
4
글자
1쪽

133. 허수아비

DUMMY

허 참, 비스듬히 하강하다말고 재빠르게 날아오르는

허허허, 저놈들이 이젠 귀엽기까지 하다.


수수방관했다간 콩알 하나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서

수수밭에 치려던 망을 콩밭에 쳤더니 그래도 옆으로 들어가기에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별의별 주문을 다 읊다가 문득

수채 옆에 모아두었던 헌옷들로 허수아빌 세웠다.

아이고, 저저 저것들 좀 보아.

아침도 되기 전에 몰려와 일일이 콩을 파먹던 저것들이

아이고, 날개야 날 살려라~ 다급히 후퇴하더니


비비비, 짹짹짹, 가쁜 숨 몰아쉬며 뽕나무 숲에서

비, 비, 비, 허수아비 화장실 갈 틈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비로소 꿀잠에 빠져 잠꼬대를 한다.

히히히, 야속타 마라. 말뚝 박혀서 화장실도 못 가······


작가의말

허수아비

 

국가유공자 우리 할아버지가

흙에서 물고기를 잡으시려나.

순 흙밭 위에다 그물 쳐놓고

꼼짝없이 도랑에 숨으셨어요.

 

어디선가

참새 까치 비둘기들이 날아와서

터진 그물 옆으로 흙밭에

뒤뚱뒤뚱 아장아장 들어가더니

콕콕 부지런히 땅을 쪼아요.

아하, 그러고 보니

물고기 잡는 새를 잡으려고

그물을 치신 모양인데

 

훠이, 훠이, 저리 가! 훠이!

 

할아버지는 오히려

발을 동동 구르며 목이 터져라

새들을 쫓아내셔요.

아이고, 아까워라 안타까워라

그물을 탁 내려덮어서

그리 간단히 새를 잡으시라고

아무리 귀띔해도

귀를 닫아버리시고

 

이번엔 뚝딱 뚝딱

십자모양 말뚝만 세 개 만드셔서

후딱 후딱 이 사람들 옷 좀 입히라고

할머니를 들들 볶으셨지요.

 

우리 삼남매 입다 입다가 버린 옷들이

철철이 재활용품 상자에 처박혔다가

말뚝이들 몸으로 다시 살아났는데

 

삼촌 입던 귀신 잡는 해병대

빨간 체육복을 입은 말뚝이는

전에 엄마가 쓰다 버린 빨간 운동모를 쓰고

하얀 태권도복을 입은 말뚝이는

할머니의 알록달록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룩덜룩 야전잠바를 입은 말뚝이는

삼촌의 귀신 잡는 해병대 팔각모를 쓰고

그렇게 완전무장들을 하고서

흙 밭의 동쪽 서쪽과 가운데에 섰어요.

독도 지키는 군인아저씨들처럼

 

아이고,

저놈들 봐라.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녀.

새벽부터 몰려와 귀신같이 사냥하더니

이제는 날개야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 치고 있다. 좀 봐라

 

그물 걷어버린 흙투성이 밭으로

스윽 스르렁 날개를 쫙 펴고

미끄럼 타기로 내려오다가

말뚝이들을 보고 화들짝 놀라

공중에서 딱 얼었다가 바로

해동되어 달아나는

새들이 너무 귀엽다면서

할아버지는 하하하하

허리를 잡고 웃으셨어요.

 

허겁지겁

뽕나무 숲에 모여든 새들은

구 구 구구, 비쫑 삐쫑, 짹짹짹,

꽁알거리며 눈이 튀어나오게

말뚝이아저씨 화장실 갈 틈만 노리고

 

오랜만에 꿀잠에 빠지신 할아버지는

 

히히히, 욕하지 마라,

말뚝 박혀서 화장실도 못 가······

 

콩 농사짓느라 말뚝 박혀서

단 하루 여행도 못 떠나시는

월남 참전용사 우리 할아버지의

행복한 잠꼬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밀 낙서첩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1 재회 +4 16.05.29 322 6 1쪽
320 아버지 +4 16.05.29 330 5 1쪽
319 숲길 터널 +2 16.05.29 418 4 1쪽
318 작은 몸의 비애 +2 16.05.28 358 4 1쪽
317 동병상련에 빠져 +2 16.05.28 268 3 1쪽
316 고물자동차와 무면허사내 +2 16.05.27 389 3 1쪽
315 연못 위에 모과꽃이 +2 16.05.27 435 3 1쪽
314 묵모란 +2 16.05.27 338 3 1쪽
313 떠나가는 섬 +5 16.05.25 385 3 1쪽
312 꽃, 그 놀빛 언어 +8 16.05.25 517 3 1쪽
311 네 수신음조차 묻어버렸다 16.05.24 411 2 1쪽
310 봄, 기지개 +4 16.05.23 397 2 1쪽
309 고흐의 소용돌이치는 노란 색깔 +2 16.05.23 408 2 1쪽
308 손톱 끝에 울음이… +2 16.05.22 540 3 1쪽
307 내 그림의 파편 하나 +4 16.05.21 510 3 1쪽
306 [평시조] 두 번째 이승을 수놓으며 +4 16.05.20 265 3 1쪽
305 [손톱끝에 울음이...] 시인의 말 +4 16.05.20 344 3 4쪽
304 136. 희생이 있어야 참사랑(신작시집을 여기서 마칩니다.) +3 16.05.20 388 4 1쪽
303 135. 황진이 돌아오다 +3 16.05.19 451 3 1쪽
302 134. 환상체험이 걸린 벽은 16.05.18 454 2 1쪽
301 ***꿈속에 사랑이(악보 포함) +2 16.05.18 510 3 1쪽
300 ***너의 꽃으로 남고 싶다(악보 포함) +4 16.05.18 436 3 1쪽
» 133. 허수아비 +8 16.05.17 369 4 1쪽
298 132. 행복이 깃든 하늘나라 천사 있는 곳 +5 16.05.16 501 4 1쪽
297 ***그냥(프로필사진 관련) +4 16.05.16 469 3 1쪽
296 131. 행복은 여기 있지 +2 16.05.16 244 3 1쪽
295 130. 햇빛은 봄이라 나뭇가지 간질이고 +2 16.05.15 471 3 1쪽
294 129. 해골 물 먹고 16.05.15 526 2 1쪽
293 128. 함초롬히 피어나 +5 16.05.14 466 4 2쪽
292 127. 한바다 저 무인도에서 나 혼자 버티기 +4 16.05.14 371 5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