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허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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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참, 비스듬히 하강하다말고 재빠르게 날아오르는
허허허, 저놈들이 이젠 귀엽기까지 하다.
수수방관했다간 콩알 하나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아서
수수밭에 치려던 망을 콩밭에 쳤더니 그래도 옆으로 들어가기에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별의별 주문을 다 읊다가 문득
수채 옆에 모아두었던 헌옷들로 허수아빌 세웠다.
아이고, 저저 저것들 좀 보아.
아침도 되기 전에 몰려와 일일이 콩을 파먹던 저것들이
아이고, 날개야 날 살려라~ 다급히 후퇴하더니
비비비, 짹짹짹, 가쁜 숨 몰아쉬며 뽕나무 숲에서
비, 비, 비, 허수아비 화장실 갈 틈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비로소 꿀잠에 빠져 잠꼬대를 한다.
히히히, 야속타 마라. 말뚝 박혀서 화장실도 못 가······
- 작가의말
허수아비
국가유공자 우리 할아버지가
흙에서 물고기를 잡으시려나.
순 흙밭 위에다 그물 쳐놓고
꼼짝없이 도랑에 숨으셨어요.
어디선가
참새 까치 비둘기들이 날아와서
터진 그물 옆으로 흙밭에
뒤뚱뒤뚱 아장아장 들어가더니
콕콕 부지런히 땅을 쪼아요.
아하, 그러고 보니
물고기 잡는 새를 잡으려고
그물을 치신 모양인데
훠이, 훠이, 저리 가! 훠이!
할아버지는 오히려
발을 동동 구르며 목이 터져라
새들을 쫓아내셔요.
아이고, 아까워라 안타까워라
그물을 탁 내려덮어서
그리 간단히 새를 잡으시라고
아무리 귀띔해도
귀를 닫아버리시고
이번엔 뚝딱 뚝딱
십자모양 말뚝만 세 개 만드셔서
후딱 후딱 이 사람들 옷 좀 입히라고
할머니를 들들 볶으셨지요.
우리 삼남매 입다 입다가 버린 옷들이
철철이 재활용품 상자에 처박혔다가
말뚝이들 몸으로 다시 살아났는데
삼촌 입던 귀신 잡는 해병대
빨간 체육복을 입은 말뚝이는
전에 엄마가 쓰다 버린 빨간 운동모를 쓰고
하얀 태권도복을 입은 말뚝이는
할머니의 알록달록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룩덜룩 야전잠바를 입은 말뚝이는
삼촌의 귀신 잡는 해병대 팔각모를 쓰고
그렇게 완전무장들을 하고서
흙 밭의 동쪽 서쪽과 가운데에 섰어요.
독도 지키는 군인아저씨들처럼
아이고,
저놈들 봐라.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녀.
새벽부터 몰려와 귀신같이 사냥하더니
이제는 날개야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 치고 있다. 좀 봐라
그물 걷어버린 흙투성이 밭으로
스윽 스르렁 날개를 쫙 펴고
미끄럼 타기로 내려오다가
말뚝이들을 보고 화들짝 놀라
공중에서 딱 얼었다가 바로
해동되어 달아나는
새들이 너무 귀엽다면서
할아버지는 하하하하
허리를 잡고 웃으셨어요.
허겁지겁
뽕나무 숲에 모여든 새들은
구 구 구구, 비쫑 삐쫑, 짹짹짹,
꽁알거리며 눈이 튀어나오게
말뚝이아저씨 화장실 갈 틈만 노리고
오랜만에 꿀잠에 빠지신 할아버지는
히히히, 욕하지 마라,
말뚝 박혀서 화장실도 못 가······
콩 농사짓느라 말뚝 박혀서
단 하루 여행도 못 떠나시는
월남 참전용사 우리 할아버지의
행복한 잠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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