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난정(蘭亭)서재입니다~

비밀 낙서첩

웹소설 > 작가연재 > 시·수필

난정(蘭亭)
그림/삽화
nanjung
작품등록일 :
2015.06.21 08:53
최근연재일 :
2017.04.05 15:48
연재수 :
379 회
조회수 :
125,949
추천수 :
1,653
글자수 :
165,582

작성
16.05.20 16:01
조회
343
추천
3
글자
4쪽

[손톱끝에 울음이...] 시인의 말

DUMMY

시인의 말




난정뜨락에 오시면 보실 수 있는《베짜는 여인》.

바닥이 무슨 색깔인지 모를 정도로 빼곡 수놓인 한 점의 액자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완성한 날은 1999년 8월28일인데, 당시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맞이한 김에 제가 하는 일의 교통정리를 하느라고 수놓기를 일단락 지었던 거죠. 그렇게 알고 보면 베 짜는 여인은 미완성입니다. 여덟 폭 짜리의 한 폭이라 나머지 일곱 폭을 마저 수놓아야 병풍 한 벌이 되기도 하고요.


대학이란 델 들어가고 보니 파야 할 우물이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병풍 한 폭이나마 완성한 것만 해도 기적 같았습니다. 대학생활은 꿈도 안 꾸고 있었던 95년 가을에 시작하여 햇수로 4년째에 한 폭이나마 마쳤던 것인데, 나머지 폭은 대학 졸업하고 수놓으면 되는 일이라고 계획을 잡는 수밖에 없었던 거죠.

아니 그런데 계획에 차질이 왔지 뭡니까?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엘 들어가고, 들어간 것까진 좋았는데, 석사과정만 마치면 되는 거지 어인 박사과정까지 한다고 덤비다니······


토요일에 이어 온종일 그림에만 매달려 있던 어느 일요일. 세수도 이틀 치를 합쳐서 저녁 6시 무렵에야 한 날이었습니다. 가끔 그런 날에 뜬금없는 손님 오시면 큰 낭패지만, 어쨌든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상쾌하다고 느끼면서 드러누워 텔레비전을 보는데, 아니 세상에 저럴 수가······ 샤프심으로 별의별걸 10원짜리 동전보다 작게 만들다니!

‘저것에 비하면 수놓기는 누워서 떡먹기야!’

저는 벌떡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는 아내 공부시키는 맛에 사는 남편에게 눈을 부라렸지요.


“나, 수놓을 거얏!”

남편이 핑하니 콧방귀를 날렸습니다.

“박사 따는 숙제나 끝내고 해~”

아뜩하더군요. 저는 풀이 죽었지만 할말은 하고 넘어가자 싶었습니다.

“숙제 다 하고나서 과제 하라고? 그 때쯤이면 눈이 영영 안보여서 못할 건데?”

제 열망이 몸살을 피우며 이를 갈았습니다.

“죽기 전에 수 다 놓고 죽을 거야.”


불가능일거라고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습니다. 원래부터 좋지 않은 시력인데, 잘 보전하여 죽을 때 가져가면 무얼 하느냐, 이나마 실컷 써먹고 가자. 그게 제 신조입니다. 게다가 수놓을 때는 늘 안경을 벗어야만 했지요. 우리 육체의 눈이 아무리 나빠도 인공의 안경보다는 훨씬 정밀해서일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노안으로 접어들었으니 수놓기가 책 읽기 못지않게 힘들어졌군요. 돋보기로 가능할 일도 아니라는, 지금도 그 걱정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데, 하루가 시급한데, ‘박사 따고나서? 차라리 내일쯤 죽을라요. 나 죽고 나면 후회나 실컷 하시오.’

말은 그렇게 해도 지금 죽을 수는 없다는 그 사실을 안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여자 하나가 이렇게 구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를 좀 했습니다.


늘 보고픈 당신, 어디 계시든 간에, 한 십년 뒤에라도 제가 병풍 한 벌의 수를 다 마쳤다는 소식 들리면 한달음에 달려오셔서 저를 꼭 껴안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살아있든 죽어있든 상관없이······




―깨부수어도 사라지지 않을 용인골 난정뜨락에서

2006년 4월, 난정 주영숙 올림

꾸FDA7~1.JPG

꾸0D57~1.JPG

나3_1_~1.JPG

손톱끝~1.JPG

수_010~1.JPG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비밀 낙서첩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21 재회 +4 16.05.29 322 6 1쪽
320 아버지 +4 16.05.29 330 5 1쪽
319 숲길 터널 +2 16.05.29 417 4 1쪽
318 작은 몸의 비애 +2 16.05.28 358 4 1쪽
317 동병상련에 빠져 +2 16.05.28 268 3 1쪽
316 고물자동차와 무면허사내 +2 16.05.27 389 3 1쪽
315 연못 위에 모과꽃이 +2 16.05.27 435 3 1쪽
314 묵모란 +2 16.05.27 338 3 1쪽
313 떠나가는 섬 +5 16.05.25 385 3 1쪽
312 꽃, 그 놀빛 언어 +8 16.05.25 517 3 1쪽
311 네 수신음조차 묻어버렸다 16.05.24 411 2 1쪽
310 봄, 기지개 +4 16.05.23 396 2 1쪽
309 고흐의 소용돌이치는 노란 색깔 +2 16.05.23 407 2 1쪽
308 손톱 끝에 울음이… +2 16.05.22 540 3 1쪽
307 내 그림의 파편 하나 +4 16.05.21 510 3 1쪽
306 [평시조] 두 번째 이승을 수놓으며 +4 16.05.20 264 3 1쪽
» [손톱끝에 울음이...] 시인의 말 +4 16.05.20 344 3 4쪽
304 136. 희생이 있어야 참사랑(신작시집을 여기서 마칩니다.) +3 16.05.20 388 4 1쪽
303 135. 황진이 돌아오다 +3 16.05.19 450 3 1쪽
302 134. 환상체험이 걸린 벽은 16.05.18 453 2 1쪽
301 ***꿈속에 사랑이(악보 포함) +2 16.05.18 509 3 1쪽
300 ***너의 꽃으로 남고 싶다(악보 포함) +4 16.05.18 436 3 1쪽
299 133. 허수아비 +8 16.05.17 368 4 1쪽
298 132. 행복이 깃든 하늘나라 천사 있는 곳 +5 16.05.16 501 4 1쪽
297 ***그냥(프로필사진 관련) +4 16.05.16 469 3 1쪽
296 131. 행복은 여기 있지 +2 16.05.16 244 3 1쪽
295 130. 햇빛은 봄이라 나뭇가지 간질이고 +2 16.05.15 471 3 1쪽
294 129. 해골 물 먹고 16.05.15 526 2 1쪽
293 128. 함초롬히 피어나 +5 16.05.14 466 4 2쪽
292 127. 한바다 저 무인도에서 나 혼자 버티기 +4 16.05.14 370 5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