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끝에 울음이...]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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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난정뜨락에 오시면 보실 수 있는《베짜는 여인》.
바닥이 무슨 색깔인지 모를 정도로 빼곡 수놓인 한 점의 액자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완성한 날은 1999년 8월28일인데, 당시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맞이한 김에 제가 하는 일의 교통정리를 하느라고 수놓기를 일단락 지었던 거죠. 그렇게 알고 보면 베 짜는 여인은 미완성입니다. 여덟 폭 짜리의 한 폭이라 나머지 일곱 폭을 마저 수놓아야 병풍 한 벌이 되기도 하고요.
대학이란 델 들어가고 보니 파야 할 우물이 한두 군데가 아니어서, 병풍 한 폭이나마 완성한 것만 해도 기적 같았습니다. 대학생활은 꿈도 안 꾸고 있었던 95년 가을에 시작하여 햇수로 4년째에 한 폭이나마 마쳤던 것인데, 나머지 폭은 대학 졸업하고 수놓으면 되는 일이라고 계획을 잡는 수밖에 없었던 거죠.
아니 그런데 계획에 차질이 왔지 뭡니까? 대학 졸업과 동시에 대학원엘 들어가고, 들어간 것까진 좋았는데, 석사과정만 마치면 되는 거지 어인 박사과정까지 한다고 덤비다니······
토요일에 이어 온종일 그림에만 매달려 있던 어느 일요일. 세수도 이틀 치를 합쳐서 저녁 6시 무렵에야 한 날이었습니다. 가끔 그런 날에 뜬금없는 손님 오시면 큰 낭패지만, 어쨌든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상쾌하다고 느끼면서 드러누워 텔레비전을 보는데, 아니 세상에 저럴 수가······ 샤프심으로 별의별걸 10원짜리 동전보다 작게 만들다니!
‘저것에 비하면 수놓기는 누워서 떡먹기야!’
저는 벌떡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는 아내 공부시키는 맛에 사는 남편에게 눈을 부라렸지요.
“나, 수놓을 거얏!”
남편이 핑하니 콧방귀를 날렸습니다.
“박사 따는 숙제나 끝내고 해~”
아뜩하더군요. 저는 풀이 죽었지만 할말은 하고 넘어가자 싶었습니다.
“숙제 다 하고나서 과제 하라고? 그 때쯤이면 눈이 영영 안보여서 못할 건데?”
제 열망이 몸살을 피우며 이를 갈았습니다.
“죽기 전에 수 다 놓고 죽을 거야.”
불가능일거라고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습니다. 원래부터 좋지 않은 시력인데, 잘 보전하여 죽을 때 가져가면 무얼 하느냐, 이나마 실컷 써먹고 가자. 그게 제 신조입니다. 게다가 수놓을 때는 늘 안경을 벗어야만 했지요. 우리 육체의 눈이 아무리 나빠도 인공의 안경보다는 훨씬 정밀해서일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노안으로 접어들었으니 수놓기가 책 읽기 못지않게 힘들어졌군요. 돋보기로 가능할 일도 아니라는, 지금도 그 걱정에 가슴이 쿵 내려앉는데, 하루가 시급한데, ‘박사 따고나서? 차라리 내일쯤 죽을라요. 나 죽고 나면 후회나 실컷 하시오.’
말은 그렇게 해도 지금 죽을 수는 없다는 그 사실을 안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여자 하나가 이렇게 구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를 좀 했습니다.
늘 보고픈 당신, 어디 계시든 간에, 한 십년 뒤에라도 제가 병풍 한 벌의 수를 다 마쳤다는 소식 들리면 한달음에 달려오셔서 저를 꼭 껴안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살아있든 죽어있든 상관없이······
―깨부수어도 사라지지 않을 용인골 난정뜨락에서
2006년 4월, 난정 주영숙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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