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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뇌 동기화 FPS : 프로젝트 BTG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Ivar
작품등록일 :
2020.09.13 16:27
최근연재일 :
2021.02.24 23:55
연재수 :
117 회
조회수 :
17,978
추천수 :
993
글자수 :
731,819

작성
20.10.20 22:25
조회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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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첫 휴가(4) - Turning Point (수정완료)

DUMMY

# 33



사냥 준비를 마친 리안은 레이첼을 데리고 자신이 보여주고자 한 유적지를 향해 그녀와 함께 출발했다.


자신들이 잠시 머물던 산을 내려가자, 실로 거대한 규모의 묘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 광활한 모습에 압도당한 레이첼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여긴···. 공동묘지잖아? 되게 유서 깊은 곳으로 보여.”


흐린 날씨에 안개가 자욱이 낀 이 넓은 부지는 오묘한 신비로움이 느껴져 레이첼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었다.

묵직한 느낌의 날씨와 어울리는 엄숙한 기운이 이 일대를 지배한다.


“정말 크다···. 예전 우리가 파리 맵에서 퀘스트를 했을 때 봤었던 분위기완 좀 다른 것 같아. 저 건물의 모양도 독특하고 새로워.”

“여긴, 한반도니까. 아무래도 그 형태가 많이 다를 거야. 이곳은 예전 한국이라는 나라에 존재했던 성지 중 하나야.”


리안이 대전을 가는 길에 습격을 받았던 곳은 바로, 한반도 서남부에 위치한 지방도로였다.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표지판을 보고야 기억할 수 있었어. 이곳은 임실이라는 곳이야.”

“임실···?”


정확히 가늠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오래 전에 사라져버린, 리안의 조상의 나라 한국의 공휴일, 6월 6일 현충일.


리안이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진 날이기에 곧바로 기억해내진 못했지만, 휴머노이드들에게 습격을 받았던 곳은 바로 이 임실을 지나 대전으로 이어진 지방도였고.


그 덕분에 리안은 그 자신에게도 매우 의미가 깊은 이 날과 장소의 존재를 기억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리안은 말했다.


“이곳은 바로 ‘호국원’이라는 곳이야. 한때 한국을 수호했던 영웅들이 안장되어 있는 곳이지.”

“그렇구나. 미국에도 그 유적지가 남아있어. 통제지역이라 일반인은 갈 수 없지만. 알링턴 국립묘지(Arlington National Cemetery)라는 곳이야.”

“통제구역에 위치한 건 프로방스A(북미지역)도 똑같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리안은 설명을 계속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오늘은 옛 한국의 공휴일이었던 현충일이야. 미국의 메모리얼데이와 비슷한 날이라고 이해하면 편할 거야. 그리고···.”

“그리고?”


“근고대 시대, 통일 전에 6.25라는 큰 전쟁이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이곳엔 그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분들도 묻혀계셔. 또, 당시 미국이 혈맹으로써 우리나라를 돕기도 했지. ”

“내 조상들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곳이구나···.”


레이첼은 사람의 손길이 더 이상 닿지 않아 긴 잡풀이 가득했고, 많은 곳이 파손되고 무너져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그 위엄을 잃지 않고 있는 호국원의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렇다면···.”

“응?”


“오늘 대전에 가지 못한 게 오히려 다행인 셈이야. 정말 의미가 깊은 날에 그 기억이 새겨진 곳을 오게 됐으니.”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고마워.”


레이첼은 리안의 말에 천천히 묘비가 늘어선 곳으로 걸어가더니, 잡초들 사이로 피어난 꽃들을 꺾어 모았다.

그리고 자신의 부근에 있는 한 묘비 맡에 그 꽃을 조용히 놓았다.


이 용사의 묘비에 꽃이 놓인 것은 얼마만일까?

수십 년? 수백 년? 알 수 없다.


“너무도 많은 분들이 이곳에 묻혀 계셔서 모두에게 헌화하진 못하겠지만···. 시대와 나라를 막론하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이분들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싶어.”


레이첼은 자신의 뒤편에 조용히 서 있는 리안을 한결 깊어진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잠깐이라도 좋으니 묵념하고 갈까, 우리?”

"응, 좋은 생각이야."


그렇게 그들은 누구도 오지 않았던 긴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이곳의 호국영령들을 정말 오랜만에 방문한 인류가 되었다.



#



- 사삭, 사라락···.

수풀이 신발에 스치는 소리가 작게 난다.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기도비닉을 유지하며 리안은 사냥감을 찾기 위한 추적술을 펼치고 있었다.

잠시 손을 들어 올려 풍향을 가늠하던 리안은 레이첼에게 말했다.


“짐승의 후각은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추적함에 있어 맞바람을 맞으며 가야해. 바람을 등지면 인간의 냄새를 미리 맡고 도망가 버리거든.”

“어머, 그래?”


손을 입술에 대며 그 시원시원한 눈을 커다랗게 뜨곤 신기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레이첼을 향해 리안은 미소지어주곤 다시 산을 올랐다.


야생짐승의 감각이 인간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 짐승을 맨손으로 잡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결국 인간의 예로부터 쌓아온 지혜와 기술, 그리고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한참동안 땅을 보며 짐승의 흔적을 찾아나가던 리안의 눈에 뭔가가 눈에 띄었다. 그는 뒤편에서 조용히 자신을 뒤따라오던 레이첼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며 정지신호를 보냈다.


“잠깐,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사냥감이 있을 거야.”

“어디 어디?”


“자, 여길 보면 풀이 뜯긴 흔적이 비정상적으로 나 있지? 그리고 강한 암모니아 냄새가 나고 있어. 이곳을 지난 지 30분? 그 정도도 안됐을 거야.”

“그럼 이제 말소릴 줄여야 겠네?”

“응 지금부터 좀 소리를 낮춰서 대화하자.”


리안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세세히 설명해줌으로써 레이첼이 자칫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는 사냥에 흥미를 가지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그렇게 목표에 대한 감을 잡곤 곧이어 발견한 발자국을 따라 추적을 이어나가자, 얼마 지나지 않아 40여 미터 떨어진 공터에 목표가 드디어 포착됐다.


리안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산토끼였네. 소변 냄새가 강할 때 알아챘지. 딱 먹기 좋은 크기야.”

“······.”


그런데 레이첼이 얼굴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말이 없어졌다.


“왜 그래?”

“저, 저기···. 다른 거 사냥하면 안 될까? 저 귀여운 걸 어떻게···.”


“너, 아까 네 뱃속에서 식충이가 밥 달라고 우렁차게 외치던 건 까먹었냐?”

“으···. 그건 그거구···.”


“어쩔 수 없어. 내일 아침에나 구조요청이 가능할 텐데, 기온이 내려간 밤을 버틸 에너지가 필요해. 난 널 몸 성히 귀가시킬 책임이 있다고.”

“······.”


머리론 납득을 한 모양이지만 왠지 꿍해 보이는 얼굴을 한 레이첼을 보며 웃던 리안은 자신이 준비한 사냥도구를 꺼내들었다.


아틀라틀(Atlatl)이라 불리는 이 갈고리 모양의 투창기는, 화살보다 육중한 투창을 투석기와 같은 원심력을 이용해 시속 100km에 달하는 속도로 던질 수 있는 강력한 성능을 자랑했다.

게다가 제작과정도 간단해 리안은 챙겨운 나이프로 능숙하게 나무를 깎아 이 아틀라틀과 투창을 눈 깜짝할 새에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총으로 사냥하기엔 비싼 펄스탄도 아깝고, 굳이 총성을 온 산에 울리기도 싫었기에 조용한 사냥을 위해 준비한 도구다.


“자, 그럼 녀석을 사냥해볼까?”


리안은 아틀라틀의 끝부분의 고리에 엄지와 검지를 끼우고, 투척준비를 했다.


“아, 안 돼! 아이 참···.”


그런데 갑자기 레이첼이 급하게 리안의 팔뚝에 매달려온다. 고 기집애 참 마음도 약하지.

리안은 사냥을 필사적으로 막는 레이첼을 난처한 표정으로 뿌리치려다 매달리던 그녀의 뒤쪽을 보더니 갑자기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저···저건···!”

“어? 어어? 리안···?”


갑자기 리안의 눈이 한껏 커지더니 레이첼의 뒤쪽 어딘가를 한껏 경악한 얼굴로 바라보자 그녀는 순간적으로 그의 시선을 따라 몸을 돌렸다.


흐, 팔뚝에 힘껏 매달리던 팔이 곧바로 떨어지는구만.


“후웃!”


리안의 페이크에 걸린 레이첼이 그를 제지하는 것을 잠시 멈추자마자 그는 빠르게 아틀라틀에 걸린 투창을 뿌리듯 던졌다.


- 키익!

“꺄악!”


투창은 쏜살같이 날아가 토끼의 몸통을 정확히 관통했다.

리안은 재빨리 달려가 난데없이 치명상을 입고 미약한 숨을 가쁘게 쉬는 토끼의 척수에 나이프를 꽂아 넣었다.


일견 잔인해 보일 수도 있지만, 고통에 신음하는 사냥감의 목숨을 빠르게 끊는 것은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게 된 동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리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



“이제 기분이 좀 풀렸어?”


리안은 자신을 슬쩍 속이곤 기어이 산토끼를 사냥하자 결국 토라져버린 레이첼을 달래느라 진땀을 뺐다.

어떻게 저 귀여운 걸 죽이냐, 안 먹어 이 야만인아, 너나 실컷 먹어라 등등 별의별 소리를 다 들어 퍼먹었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진 않았다.


레이첼은 조금 처연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결국은 날 위해서 리안에 그렇게나 애써주는 거잖아. 아깐 너무 놀래서 그랬어. 이젠 괜찮아, 오히려 고마운 걸···.”


사냥한 토끼를 들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는 길.


“와아, 여긴 어디야? 정말 멋져!”


풀이 잔뜩 죽어있었던 레이첼의 얼굴에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

바로, 그녀의 눈앞에 이름모를 아름다운 계곡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워티움을 제외한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 대한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작금에 있어, 이런 천연 그대로의 멋진 풍경을 가까이서 본다는 것은 정말 귀중한 경험이다.


상쾌하게 코에 맴도는 숲의 나무 향과, 어떤 인간의 손길도 거치지 않은 아름다운 계곡.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감탄사를 내는 레이첼을 보며 리안은 말했다.


“그럼 우리, 여기서 조금 쉬고 갈까?”

“응.”


아까 사냥 때문에 가라앉은 마음이 대번에 풀어진 레이첼은 기쁘게 고갤 끄덕였다.


“후우···.”


리안과 레이첼은 산을 타느라 거칠어진 호흡을 진정시키고, 평평한 바위위에 나란히 앉았다.


- 쏴아아아···.


큰 소리를 내며 흐르는 맑은 물소리를 들으면서 거칠어졌던 호흡을 가라앉히자, 덩달아 리안과 레이첼 사이의 분위기도 빠르게 차분해져 갔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대화를 멈추곤 각자의 상념에 빠져 들어갔다.


"······."


리안은 이제 때가 왔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이 레이첼에 대해 갈피를 못 잡고 끌어왔던 지난 시간들.

오늘 결국, 그런 자신의 복잡한 심경 때문에 일에 전혀 집중하지 못했고 휴머노이드의 급습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실수는 레이첼의 목숨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


아까의 사건 이후 완전히 굳히게 된 결심을 허심탄회하게 말할 시간이 왔다.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계곡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며 한참 생각에 잠겨있던 리안은 천천히 입을 뗐다.


“···레이첼.”

“응?”

“정말 미안해.”


멍하니 계곡을 바라보던 리안이 갑자기 사과를 해온다.

레이첼은 그런 그의 사과에 손 사레를 치며 쾌활하게 대꾸했다.


“정말~ 너 몇 번을 사과하는 거야? 아까 습격당한 것도 잘 넘어갔구, 오늘 정말 너무 즐거웠는걸? 오히려 고마워. 멋진 유적지와, 지금 이곳도···.”

“아니, 그걸 말하는 게 아냐.”


“응? 그럼?”

“···그 동안 알게 모르게 조금씩 널 피해왔었지. 그간의 그런 내 행동에 대한 사과야.”


순간 쾌활하게 그에게 말을 걸어오던 그녀의 말이 뚝 끊겼다.


“······.”

“그런 내 행동 때문에 네가 그 동안 심적으로 편치 않았을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어. 다 알고 있었으니까.”


리안의 재차 이어진 사과에 한동안 말이 없던 레이첼은···.

갑자기 한껏 날이 선 말투로 대꾸했다.

곪았던 그 속내를 이제야 드러내듯이.


“그래, 맞아. 그동안 네 행동에 상처를 많이 받아왔어. 그걸 보다 못한 제나가 이렇게 너와 함께 할 기회를 만들어 준거고. 왜 그렇게까지 행동했던 거야!?”


처음엔 사납게 대꾸해오던 레이첼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어쩜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어? 넌 쭉 모른 척 해왔지만, 알잖아···. 내 마음이 어떤지, 널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


이번엔 그녀에 대한 미안함에 리안의 말이 끊겨 버렸다.

이렇게까지나 레이첼이 상처를 받고 있을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확실히 행동했어야 했다.

친구의 사랑을 응원할 결심이었다면.


마음 속에 레이첼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기라도 했던 것이었나?

대체 왜 어중간한 태도로 서로에게 고통이 되는 시간만 길어져 버리게 한건지···.


···순간 리안의 뇌리에 감정을 억눌러가며 옛 자신의 사랑을 끝까지 응원해주던 건웅의 얼굴과.

오늘 아침에 큰 실망감을 안고도 고개를 끄덕이며 스캐빈징을 잘 다녀오라는 미소를 지어주던 건웅의 표정까지 동시에 겹쳐보였다.


리안은 결심했다.

그간 해결하지 못했던 자신의 망설임을 끊어버림과 동시에, 레이첼에 대한 감정을 확실히 정리하기로.


생각을 정리한 리안은 레이첼에게 말했다.


“네 그 마음, 알고 있었어. 그리고 누가 날 좋아해준다는 거, 한 사람의 마음이 날 향한다는 게 싫을 리가 없지. 그래서 고민도 많이 했고.”

“그렇다는 건···?”


“하지만 내가 너에게 품은 감정은 결국 이성으로써 바라 본 그런 것이 아니었던거야. 그동안 곰곰히 생각했지만.”

“······.”


리안은 슬며시 눈을 내리깔고 슬픈 눈으로 말을 이어갔다.


“난 고아로 태어나 가족에 대한 기억이란게 전혀 없어, 철저하게 혼자였지.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처럼 따르던 은사님과 형제와 같은 건웅이 녀석을 만나기 전까진.”


리안은 자신과 꼭 같은 슬픈 눈으로 말없이 바라보는 레이첼과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가족에 대한 동경. 지금은 그것만이 내 마음 속에 꽉 들어차 있는 것 같아. 그리고 내가 은사님이나 건웅을 만났을때 느낀 그 감정. 그 따뜻함을 널 처음봤을 때도 느꼈지. 내가 평생 동경했던 그 따뜻함을.”

“······.”


속마음과 다른 말을 하는 것은 이렇게나 힘들구나.

그래도 독하게 마음먹고 결심했다면, 그 결심한 바를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당초부터 마음먹었던, 친구를 위한 스스로와의 약속이기도 했으니까.


“이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넌 내가 진심으로 아끼는 사람 중 하나로 마음 속에 자리잡아 있다는 걸. 건웅과도 비교할 수 있을 정도로, 가족과도 같은 소중한 사람으로.”


···그래도 마지막 말 만큼은 완전한 자신의 진심을 말한 것 같다.


레이첼이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리안은 호소하듯 말했다.


“···이런 내 심정을 이해해 줄 수 있을까?”


- 쏴아아···.


계곡물이 흐르는 소린 여전하다.

리안의 말을 끝으로,

한참동안, 또 한참동안 서로는 말이 없었다.


“···부탁 하나만 할게.”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레이첼이 입을 뗐다.


“무슨?”


반문하는 리안의 말에 그녀의 대답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지금부터···움직이지 말아줘.”


그러더니 레이첼은 자신을 바라보던 리안에게 다가가,

···그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왔다.


“···!”


생각지도 못했던 그녀의 행동에 깜짝 놀란 리안이 몸을 움찔거리며 그녀를 떼어 내려던 그 순간,

자신의 뺨에 뭔가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바로 자신의 뺨을 타고 내리는 레이첼의 눈물이었다.

그녀의 키스와 그 눈물에서 정말 많은 의미가 느껴졌다.


그 동안 리안의 벽을 치는 태도로 받아왔던 상처로 인한 아픔.

그리고 떨어지기 싫은 것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는 몸부림까지.

그런 레이첼의 심정이 리안의 마음에 깊이 전해져 온 것이다.


‘건웅아, 미안하다···. 이것만은···이해해주길 바란다.’


결국 리안은 레이첼의 그런 진심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그녀의 부탁대로 가만히 눈을 감았다.


···.


잠시 후, 레이첼은 리안을 바라보며 쑥스럽게 웃었다.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진 듯한 그 미소.

하지만 아직도 흐른 눈물이 채 마르지 않아 그녀의 눈가를 여전히 적셔놓고 있었다.


“방금 그건···. 내 슬펐던 시간와의 작별이라고 생각해줘. 그 동안 리안이 날 너무 아프게 했으니, 그냥 끝내 버리긴 정말 싫었어. 그러니까···.”


잠시 말을 흐리던 레이첼은 이윽고 아직 마르지도 않은 눈을 들어보이며 개구장이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이윽고 애써 힘내려는 듯, 조금 거칠게 리안에게 말했다.


"네가 이제껏 쭉 날 열받게 했으니까, 이 정도는 양보하라구. 알겠어?"


리안은 그런 레이첼의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마웠다.

많이 아팠을텐데, 속상하기도 많이 속상했을텐데.

결국 이렇게 힘을 내곤 긍정적인 마음을 한껏 전달해준다.


레이첼은 자신을 희미한 미소와 함께 바라보는 리안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리안의 마음을 이젠 잘 알았어. 그래도 그 동안 날 미워해서 밀어낸 것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서 다행이야.”

“만에 하나라도 그럴 리가 없잖아. 다만 내 스스로 갈피를 못 잡았던 것뿐이지."


아름다운 숲 속 계곡을 배경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미소에는 각자의 슬픔이 어려 있었다.

한쪽엔 부정에 대한 슬픔. 한쪽엔 포기에 대한 슬픔.


하지만 천사 같은 레이첼은,

그 슬픔의 끝까지 좋은 기억으로써 리안의 마음에 각인시켜 주었다.


이젠 나아질 일만 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의 마음과 상처가 깊어졌던 이전과 달리, 서로의 기분을 허심탄회하게 드러낸 앞으로의 시간은 이제 서로의 치료약이 될테니.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서로가 예전처럼 마음껏 웃을 수 있다.


결국 여기까지지만,

마침내 이들은 그들만의 반환점(Turning Point)에 도달 한 것이다.


···.


시간은 빠르게 지나 밤이 되고, 산중에 어둠이 찾아왔다.

흐린 날씨의 오후보다도 훨씬 공포를 느낄 법한 시간임에도 아까완 달리 따스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 타닥, 타닥.


아마 간이 대피소를 지붕 삼아 앉아있는 레이첼과 리안 앞에서 타고 있는 이 모닥불 덕분일 것이다. 한 번씩 불똥 튀는 소리가 포근한 느낌을 배가시켜주었다.


그리고 그 모닥불 위엔 리안이 아까 사냥해 온 산토끼 하나가 먹음직스럽게 구워져 있었다.


예저녁에 그 구수한 냄새에 홀려버린 레이첼은 다 구워졌다는 리안의 말에 진심 걸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구운 고기를 죽 뜯더니 허겁지겁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와 진짜 배고팠나보네, 흡입 속도가 어마무시하다.


“···야, 레이첼.”

“쩝쩝, 왜?”


“내 몫은 좀 남겨주지 그러냐? 눈 깜빡하니까 고기 반이 순식간에 날아가 버렸네.”

“헤, 원래 빨리 먹는 사람이 임자라구. 억울하면 손 좀 빨리 놀리는 게 어떠니?”


장난스레 말하는 레이첼의 응수에 리안이 검지를 치켜올리며 말했다.


“그게 문제라는 거야.”

“응? 뭐가? 우걱우걱.”


“너 아까는 저 귀여운 걸 어떻게 잡아 죽이냐고, ‘이 야만인아 안 먹는다’고 쌩 난리를 피우지 않았냐? 사냥도 마구 방해하고. 큭큭.”

“헤헤, 지난 일은 그냥 잊는 게 어때? 이렇게 맛있을 줄 알았나? 뭐···.”


잠시 멋쩍게 헤벌쭉 웃더니 다시 고기를 마구잡이로 뜯어대는 레이첼을 보며 리안은 피식 웃었다.


‘그래, 너 다 먹어라.’


리안이 미소를 지우지 않고 품속에 하나 있던 에너지 바를 찾아 뒤적이는 그 순간이었다.


- 우우우우웅!


갑자기 무시무시한 기계음 소리가 들리며···.


-파앗!


그들의 전방 공중에서 강렬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리안과 레이첼은 갑자기 일어난 돌발 상황에 소리가 난 방향으로 급히 고갤 들어올렸다.


눈부시게 밝은 불빛이 안면에 정면으로 비춰져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무···무슨 일이지!?”


레이첼이 급작스러운 무언가의 등장에 잔뜩 놀라 소리쳤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Lv.26 gh******..
    작성일
    20.10.20 22:41
    No. 1

    표지, 제목, 필명 모두 바꾸신걸 보니까 본격적으로 하시려는 건가요? 화이팅 하십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Ivar
    작성일
    20.10.21 12:55
    No. 2

    소중한 격려말씀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3 개미산
    작성일
    21.01.12 20:45
    No. 3

    좋은 글임에 틀림 없습니다. 추천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Personacon Ivar
    작성일
    21.01.12 22:29
    No. 4

    현실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지칠 때가 많아지기에, 개미산님의 소중한 말씀이 더더욱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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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천수관음의 극락 마사지 20.11.17 96 7 14쪽
56 접점의 마무리 20.11.15 89 6 12쪽
55 부드러운 인수 합병 20.11.14 86 7 15쪽
54 편한 날은 어제까지였다 20.11.13 84 6 16쪽
53 온라인 지옥, 어비스(Abyss) +2 20.11.12 93 6 15쪽
52 리안과 건웅의 암묵적인 룰 20.11.11 94 6 14쪽
51 이단의 과거 20.11.11 95 6 15쪽
50 피해자 조사 +2 20.11.10 105 6 14쪽
49 미풍에 섞인 탄화(彈火)의 잔재(3) +2 20.11.08 100 7 13쪽
48 미풍에 섞인 탄화(彈火)의 잔재(2) +2 20.11.07 100 7 15쪽
47 미풍에 섞인 탄화(彈火)의 잔재(1) 20.11.06 107 7 14쪽
46 팔자에도 없던 입원 +2 20.11.05 107 5 15쪽
45 급격한 이상상태 20.11.04 122 7 13쪽
44 통화 +2 20.11.03 111 9 14쪽
43 Highway to hell (2) +2 20.11.01 114 7 12쪽
42 Highway to hell (1) +2 20.11.01 116 9 14쪽
41 프로젝트 중간보고 +8 20.10.31 133 8 12쪽
40 레이드 퀘스트, 코드명 네스트(6) +2 20.10.30 116 8 13쪽
39 레이드 퀘스트, 코드명 네스트(5) +3 20.10.29 119 8 12쪽
38 레이드 퀘스트, 코드명 네스트(4) +2 20.10.25 122 8 14쪽
37 레이드 퀘스트, 코드명 네스트(3) +2 20.10.24 123 7 13쪽
36 레이드 퀘스트, 코드명 네스트(2) +2 20.10.23 128 8 13쪽
35 레이드 퀘스트, 코드명 네스트(1) +2 20.10.22 143 10 13쪽
» 첫 휴가(4) - Turning Point (수정완료) +4 20.10.20 166 8 19쪽
33 첫 휴가(3) (수정완료) +2 20.10.18 166 11 15쪽
32 첫 휴가(2) +4 20.10.17 159 12 13쪽
31 첫 휴가(1) +4 20.10.16 170 11 14쪽
30 움베르토의 천적 +4 20.10.15 182 11 17쪽
29 BTG 중간결산 - 리저렉트 랭킹 +4 20.10.15 183 13 16쪽
28 성장하는 플레이어들 +2 20.10.13 198 13 15쪽
27 마음의 창은 단 하나 +2 20.10.11 201 14 18쪽
26 건웅의 추궁 +6 20.10.09 233 17 15쪽
25 코드명 제노사이드(6) +6 20.10.09 221 16 13쪽
24 코드명 제노사이드(5) +6 20.10.08 218 1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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