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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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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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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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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류지호 사단. (5)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로서는 베테랑의 포스를 풀풀 풍기는 송미선이 적응되지 않았다.

그래도 WaW를 나가서 잘 지내는 것 같아 다행이랄까.


“영화 톤하고 맞는 것 같아요?”

“아무리 예쁜 포스터라고 해도 메시지가 관객들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포스터의 미적인 부분을 신경 써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미를 위해 이야기를 버리는 건 아니라고 봐요. 그런 측면에서 감독님의 카피가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글쎄...

좋은 포스터는 그냥 보면 좋은 걸 안다.

잘 만든 포스터에서는 영화를 감싸는 공기와 온도, 주제를 말하는 어조, 심지어 감독의 취향까지 느껴진다.

그런 것들을 구구절절 묘사한 포스터는 결코 매력적인 포스터가 아니다.

상징적이면서 간결한 표현력이 좋은 포스터를 만든다.

류지호는 어설픈 영화광고 지식자랑을 삼갔다.

대신 송미선이 어떻게 먹고살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주로 WaW 영화만 받아서 하고 있어요?”

“그렇진 않아요. 직배사 영화도 간간이 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잘 나가는 모양이네요?”

“그러면 뭐해요? 전반적으로 광고쪽 퀄리티가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에요. 전체 예산 비용이 낮아지고 있거든요.


사적인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는 모양인지, 송미선은 줄곧 일 이야기만 했다.


“예전에는 포스터 촬영을 2~3일에 걸쳐 했는데, 요새는 하루에 몰아서 찍는 영화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티저 포스터, 본 포스터를 하루에 모두 소화하는 거죠.”


류지호가 알기로 한국영화 마케팅비와 배급비를 포함하는 P&A(Print and Advertisement) 비용이 꽤나 많이 올랐다.

저예산영화는 최대 4억 원 안팎.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의 영화는 대략 9억 원 내외.

개봉 후 흥행가도를 제대로 탄 영화는 15억 정도.

<친구>, <무사>, <복수의 꽃>의 경우는 20억 원 안팎으로 P&A 비용을 썼다.


“광역개봉으로 프린트 비용과 홍보비만 올랐어요. 대행사 페이나 홍보진행비는 그대로에요. 광고와 홍보 할 곳은 늘어 가는데.....”

"그렇군요..."

“좋은 것도 있어요. 한때는 보도자료를 고급스럽게 양장제본으로 만들곤 했는데 이제는 그런 거품이 빠지는 추세에요.”

“그런 부분은 좋은 현상이네요.”

“감독님이 하지 말라고 해서 WaW가 안하기 시작한 거잖아요.”

“그랬어요?”

“보도자료에 금박 하나 더 박는다고 해서 영화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고. WaW 기획실에 있을 때 기자들한테 얼마나 눈총을 받았는지.... 그런 것들을 빼다보니, 전보다 전반적으로 홍보비를 제대로 쓸 수가 있게 됐어요. 괜히 충무로 홍보맨들이 연예부기자를 기레기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니까요. 기레기란 말을 처음 쓴 게 감독님이시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쓰지 마세요. 괜히 기자들에게 밉보여서 골질 하기 시작하면 감당 안 되니까.”

“옛날하고 달라서 마케팅 분야가 다양해졌어요. 예전처럼 스포츠신문 연예면 기사로 영화 띄우던 홍보는 한물갔다고 보심 되요. 요새 관객들 스포츠신문 보고 영화 안 봐요.”


영화관을 주로 찾는 연령대는 스포츠신문 자체를 안 본다.

일간신문에 극장 광고하던 것도 없어진지 오래다.

인터넷이 영화관람 정보를 얻는 주요 통로로 자리 잡았다.


“WaW와 일하는 건 어때요?”

“최고죠. 다들 WaW처럼 하면 좋은데.... 저희도 한 프로젝트 말아먹으면 다음 WaW 일감을 따낼 수 있을지 장담 못해요. 다들 WaW와 일을 하고 싶어 해서. 한 번 밀리면 그걸로 끝이거든요.”


WaW Entertainment가 매년 다루는 영화가 30편이 넘는다.

자체적으로 홍보마케팅을 하는 영화는 다섯 편도 안 된다.

대부분 외주를 주는데, 한 개 홍보대행사와만 독점적으로 일하지 않는다.

WaW 내부 직원과 대행업체 간의 짬짜미를 방지할 겸 홍보대행사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대행사 간 경쟁체제를 유도하고 있다.


“근데 감독님... <복수의 꽃>은 할리우드 스타일로 포스터를 찍었는데, 이번 영화는 왜 노멀하게 가시려고 하는 거죠?”

“<민중의 적>은 해외 영화제에 출품하지 않았으니까요.”

“아, 직관적이지 않아서 한국 관객들이 낯설어 할 까봐 그러시는구나.”


영화 마니아는 외국영화 포스터 스타일을 좋아하겠지만, 일반 관객들은 포스터를 보고 누가 나오고 무슨 내용인지 쉽게 유추할 수 있는 포스터를 선호한다.

감독의 마니아층이 생겨나는 경우도 있는데, 류지호 역시 마니아층이 따로 있다.

그들을 타깃으로 포스터를 제작하면 영화의 세계관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날지 모르나, 대중에게는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류지호 팬층을 위해 할리우드 독립영화 스타일의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표현기법이 가미된 포스터를 따로 제작하기로 했다.

또한 류지호의 마니아층을 위해 영화 제목 바로 옆에 류지호의 이름을 표기한 방식의 포스터도 선보일 예정이다.

키 아트 디자이너 송무영이 물었다.


“수출용에는 똑같이 키 아트만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모르죠. WaW 해외사업팀이 알아서 하지 않겠어요?”


할리우드 영화는 해외로 듀프네가 필름을 보낼 때 포스터와 팸플릿에 쓰일 메인비주얼인 키 아트도 함께 보낸다.

한국에서는 거기에 타이틀만 한글 디자인으로 바꾸는 식이다.

가끔 키 아트가 없거나 그것이 국내 정서와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디자인 업체가 새롭게 키 아트를 디자인하기도 한다.

한국영화는 수출용 영화가 극소수였기 때문에 할리우드처럼 필름, 사운드, 상영 매뉴얼, 키 아트 등의 수출용 패키지 개념이 없었다.

한국에서 패키지를 처음 시작한 것이 WaW였다.

최근에는 한국영화 완성도도 많이 올라오고 영화 수출 편수도 늘어난 덕분에 수출용 영화 패키지를 따로 구성해서 해외로 보내는 추세다.


“혹시... 시안 보셨습니까?”


할리우드에서는 감독이 포스터 시안까지 확인하고 확정하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의 영화감독은 오만가지에 관여한다.

류지호가 보기에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감독은 영화의 기획부터 시작해서 편집본까지 관여 한 사람이다.

때문에 이야기 속에 너무 빠져 있을 수 있다.

관객 입장에선 잘 안 보이는데 자신은 모든 걸 안다. 대중의 취향과 요구가 무시될 여지가 있다.

또한 제작사는 상업적으로만 흐를 수 있고 트렌드에만 집착할 수 있다.

그래서 마케터의 안목과 실력이 중요하다.

영화를 대중에게 알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대중의 시선에서 보는 사람들이니까.

마케터가 디자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매력을 못 느끼면 실제로 별로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감독은 만능이 아니다.

모든 걸 감독이 결정할 순 없다.


“포스터 속에서 해석이 필요한 요소가 조금 있네요?”

“제가 경지가 더 높았다면 이렇게 복잡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한데.... 감독님 영화가 은근히 함의가 많은 것 같아서... 이 버전에서 현장 스틸 컷들에서 따와서 합성할 것들이 조금 있는데 영화 속 상황을 너무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타이포나... 타이포가 뭐냐면....”

“압니다. typography.”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인에 있어서 활자의 서체나 글자 배치 등의 구성 및 표현을 일컫는다.


“아, 예. 암튼 크고 작은 요소들을 배치해서 전체적인 뉘앙스로 풍기려고 합니다. 인물의 구도부터 곳곳의 힌트들까지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보시면 아 그래서 이런 게 있었구나 싶게요.”

“미안한데 심플하게 갑시다.”

“....예?”

“포스터 어렵게 가지 말자구요.”

“......”

“<세븐>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은데.... simple is best. 복잡한 플롯이나 반전이 있는 영화도 아닌데 굳이 포스터까지 해석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주인공과 악역 얼굴 두 개 넣어 달라.

두 사람을 5:5 비율로 넣어 달라.

그런 피드백은 게으른 거다.

잘 됐던 사례들만 반복적으로 따라하는, 그래서 고유성이나 개별성을 다 버린.

결국 공장처럼 돌리는 디자인은 영화 홍보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망치는 것이다.


“시안은 몇 가지나 만듭니까?”

“마음에 드실 때까지.....”

“B컷은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래도 클라이언트들이 더 풍성한 작업물을 원하시기에 요구한 것보다 두 배 정도 작업할 때도 있습니다.”


시안을 많이 만든다고 해서 좋은 디자인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충무로 일하는 것 보면 허수가 너무 많았다.


“현재 한국영화 기록용 스틸컷이 몇 장이나 됩니까?”

“대략 1만 장... 그 정도 됩니다. 감독님 영화나 블록버스터 몇 편이 100만 장까지도 찍은 것으로 압니다.”


키 아트 디자이너는 그 스틸컷을 일일이 확인하고, 또 스튜디오에서 따로 촬영한 스틸컷까지 받아서 각종 디자인을 한다.

이전 삶의 2010년대 중반부터 영화 한 편에 포스터부터 팝콘통까지 400종 가량의 작업물을 디자인했다.

영화는 크게는 20억까지 홍보비용을 단기간에 집행하게 된다.

포스터는 기본이고 스태프 티셔츠, 제작보고회 현수막, 매표소 상단에 계속 돌아가는 제작물, 프레스 시사회 때 기자들이 받는 주차장 티켓, 버스 광고, 굿즈까지 온갖 디자인이 필요하다.

WaW 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영화의 경우 아네모네 프랜차이즈에서 홍보용으로 들어가는 서빙쟁반 위의 종이까지 디자인이 필요할 때가 있다.

홍보 영역이 워낙 넓고 두루뭉술하다보니 작업할 게 많을 수밖에 없다.

이 시기는 그 정도까지 키 아트 디자이너가 해야 할 작업물이 많진 않았다.

그럼에도 WaW 엔터테인먼트는 분기별로 새로운 마케팅 영역이 발굴되고 있어서 영화마케팅 키 아트, 비주얼아트 분야에서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고 있다.


“솔직히 대기업 배급사 홍보맨들은 제 색깔에 대해 아무도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게 정해져 있는, 그래서 누가 해도 괜찮은 작업만 해오라고 지시를 하거든요.”

“요즘 신생 스튜디오가 많이 생긴다면서요?”

“손이 많이 필요하니까요. 그게 전부입니다. 크리에이티브가 들어갈 공간이 없습니다. 한쪽으론 그런 작업들을 하면서 다른 한쪽으로 수익은 안 되더라도 제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걸 해야 하죠. 그걸 또 열심히 알려야 하고....”

“전문가한테 어쭙잖은 조언일 수도 있겠지만... 비주얼아트 디자이너도 마케터 마인드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술적 접근도 좋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욕망이 뭔지 디테일하게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류지호는 송무영이 작업한 시안 가운데 몇 가지를 예를 들어가며 영화에 대해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을 바로잡아 줬다.

할리우드에서 공식 이미지가 인쇄된 포스터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오리지널 포스터라 함은 영화가 개봉할 즈음에 영화 홍보와 극장에 걸 목적으로 영화사나 배급사 혹은 미국의 스크린 서비스(NSS)라는 곳에서 생산한 포스터들을 일컫는다.

트라이-스텔라의 경우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포스터가 있고 따로 NSS에 의뢰하는 영화도 많다.

일반적인 크기는 68cmX101cm다.

용도에 따라 더 크게 제작되기도 한다.

배급사나 NSS의 포스터들은 영화 홍보를 위해 공식적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인쇄 품질이 좋다.

영화의 배급 규모에 따라 수백에서 수천 장의 오리지널 포스터가 제작된다.

개봉 시즌에만 인쇄를 하고 더 이상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희소성은 커진다.

작품이 유명해지거나 포스터가 특출하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가격이 오른다.

수집가들 사이에서 굉장히 비싸게 거래된다.

오리지널 외에 리프린트 포스터(Reprint Poster)라는 것이 있다.

공식 포스터를 재인쇄할 수 있는 저작권을 취득한 포스터 회사들이 판매를 위해 만든 포스터다.

여러 회사에서 제작해 만들기 때문에 같은 이미지의 포스터일 지라도 품질의 차이가 있다.

오리지널 포스터보다 작지만 디자인이 다양한 것이 장점이다.

포스터의 오리지널과 리프린트의 구분이 생긴 것은 할리우드의 산업 구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대행업체에 맡겨서 포스터를 생산하지 않는다.

메이저 배급사가 직접 제작하거나 영화 포스터만을 위한 협회가 독점적으로 생산을 한다.

영화 홍보를 위해 내부적으로 소량 생산한 포스터를 오리지널로 보고 가치를 만들어냈고, 영화와 관련한 모든 것을 상품화 하는 할리우드 비즈니스로 인해 판매용 포스터 시장이 따로 형성됐다.

포스터가 오리지널인지 리프린트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포스터 하단에 NSS의 일련번호나 GAU 포스터 연합의 로고를 확인하면 된다.

모든 오리지널 포스터가 일련번호나 로고가 기재되어 있진 않다.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직접 제작한 오리지널 포스터에는 이런 표식이 없을 수도 있다.

더 확실한 방법은 양면 프린트다.

뒷면이 보통 흰색인 리프린트와 달리 오리지널은 뒷면에 포스터 이미지가 좌우로 뒤집어진 채로 인쇄되어 있다.

포스터가 어디서든 선명하게 보일 수 있도록 뒷면까지 인쇄한 것이다.

양면인쇄는 1988년부터 시작됐다.

극장에서 보통 조명이 들어오는 액자에 포스터를 넣어두기 때문에 빛이 뒤에서 비추더라도 잘 보이기 위해 채택한 방법이다.

단, 뒷면은 앞면보다 색채를 30~40%를 감소시켜 인쇄한다.

이러한 양면 인쇄는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지만, 그 만큼 제작과정에서 큰 비용이 든다.

따라서 저예산 영화는 오리지널 포스터에 양면 인쇄를 포기하고 단면만 인쇄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는 오리지널 포스터 수집가 시장이 따로 있다.

일부 영화의 오리지널 포스터는 매우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포스터의 역사성, 흥행 영화, 품질, 특별한 일련번호, 제작 스튜디오 등이 리프린트 포스터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말 그대로 오리지널이란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전 삶에서 SF 영화의 효시이자, 무성영화의 걸작으로 알려진 영화 <메트로폴리스>는 무려 85만 달러(약 10억)의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0년대에 가면 한국영화팬들 사이에서 오리지널 포스터 수집가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한국영화에도 오리지널 포스터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충무로는 그런 팬들의 요구를 생까지. 극소수의 수요를 위해 비용을 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서구권에서는 흥행영화의 수명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작은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영화 자체가 훌륭해야 하지만, 작은 부분들이 모여 영화라는 콘텐츠 자체를 살찌우고 그것이 스튜디오의 이익으로 돌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포스터는 영화의 첫 인상이지만, 한편의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개봉 첫 주에 스코어를 확 끌어올린 다음에 조금 있다 금방 빠지는 경우에는 포스터와 예고편의 역할이 중요해지겠지만, 장기적으로 오래 가는 경우에는 영화 자체의 힘으로 간다.

포스터와 예고편의 역할을 보통 개봉 첫 주까지다.


짝짝짝!


스튜디오 준 안에서 박수가 터졌다.

<민중의 적> 포스터 촬영을 무사히 마쳤다.

류지호는 수고한 배우와 스태프들과 인사를 나눴다.

포스터 촬영에 참여한 스태프 대부분은 WaW와 가온웨딩 초창기 멤버들이다.

류지호가 예전부터 뿌려놓은 씨앗의 일부였다.

류지호 사단이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은 이들이다.

배우들은 몰라도 스태프들은 류지호가 부른다면 언제든지 달려와 함께 일을 해줄 사람들이다.


“수고했어. 김 작가.“

“수고는 뭘....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사진을 찍고 있는 김준우의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귀국한 후 상업 사진 작가로 활동한 지는 반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목받는 사진가로 급부상 중인 김준우다.

국내의 유명 패션 잡지에 화보와 인터뷰 사진 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어서 잡지 사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김준우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난 뻔하고 재미없는 사연의 주인공이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인문계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것 정도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랄까. 어릴 때부터 사진 외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독일 유학길에 올랐는데, 그곳 수업 분위기가 내가 상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결국 학교 밖으로 관심을 돌렸고, 운 좋게도 유럽 메이저 잡지에 내 사진이 실리는 행운도 얻었다. 그게 전부다. 한 동안 외국에서 지내다가 한국에 돌아오니 서른한 살이 되어있었다.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이것저것 작업을 하자는 곳들이 있어 요즘은 즐겁게 일하고 있다.]


김준우가 최근 한 사진 관련 잡지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었다.

유학 전부터 숱한 경력을 쌓은 덕분인지 귀국 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여러 곳에서 작업 의뢰가 쏟아졌다.


“한국에서 또 언제 영화 찍냐?”

“글쎄.... 왜?”

“네가 찍는 영화 따라다니면서 사진 좀 찍어보려고.”

“영화 기록 스틸을 찍겠다고?”

“이번에 <민중의 적> 포스터 작업을 해보니까 촬영현장에서 네가 짠 프레임하고 다른 쇼트를 만들어보고 싶어졌어.”


자신에 대한 경쟁심인가 싶어 빤히 쳐다봤지만, 김준우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했다.

순수한 예술적 호기심인 모양이다.


“3~4개월 정도를 한 영화에 집중해야 한다면 포기해야 할 많은 기회비용이 있을 거야.”

“상관없어. 배우가 연기하는 진짜 순간을 필름에 담아볼 수 있다면.”

“스케줄이 되겠냐? 요새 작업의뢰가 쏟아진다며?”

“아무리 오랜 시간 고심해서 사진을 골라도, 월간지 화보는 어쩔 수 없이 생명력이 한 달인 것 같아. 영화 포스터는 그에 비해 생명력도 길고. 배우들과 일 해보니까 뭐랄까 모델과는 다른 움직임과 표정을 담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야.”

“이것도 저것도 마구 건드리면 네 사진의 정체성이 약해지지 않을까?”

“모델하고 배우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아. 당연히 일반인하고도 다르고. 배우가 자신이 연기하는 상황에 온전히 빠져 있는데... 그걸 작가가 찍었을 때. 그 사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힘. 뭐 그런.... 설 배우와 작업해 보니 그게 팍 오더라. 물론 설 배우는 모델로써는 꽝이지만.”


류지호가 킥킥거렸다.

연기에서는 순간적인 몰입과 무시무시한 집중력을 보여주지만, 사진 모델을 할 때는 어색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설형기 배우다.


“배우들하고 포스터 작업을 더 해보거나 현장 사진을 찍어보면 작가로서 감정이 막 꿈틀대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확실히 웨딩이나 화보 사진과는 달리 배우의 실제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래.”

“포스터 사진이나 현장 스틸은 네가 추구하고자 하는 사진과 다를 걸? 수익 면에서도 그렇고.”

“그럴까? 나는 만족도가 상당히 높을 것 같은데.... 마케터, 디자이너와 함께 시안을 상의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도 은근히 재밌더라고. 기회만 된다면 계속 다양한 영화 포스터를 찍어보고 싶어.”

“무브인이나 보석과 일하는 건 괜찮았어?”

“내 크리에이티브를 존중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어.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요구를 강요하지 않더라.”

“네가 김형만 작가 정도의 인지도는 없지만, 나름 신세대 유명 작가야. 당연히 네 작업에 터치할 수 없지.”

“그런 거였어?”

“독일에서 어떻게 작업했는지 모르지만, 네가 네임밸류가 올라갈수록 갑 중에 갑이 될 거다. 클라이언트 요구를 일방적으로 받는 입장에서 부탁을 들어주는 위치가 되는 거지.”

“요청이 아니라 부탁이라고?”

“이렇게 해 달라, 저렇게 해라가 아니라. 이런 것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런 소리를 듣게 되는 거지.”

“그건 겪어보면 알겠지. 그나저나 내년에 미국에서 영화 찍을 거야?”

“아마도.”

“대답이 미적지근하다?”

“찍어야 할 영화가 너무 많아서.”

“미국에서 찍을 때 나 좀 불러줘. 할리우드 배우들 좀 찍어보게.”

“당장은 안 될 걸?”

“함께 작업하는 전담 작가가 있어서?”

“넌 조합원이 아니라서 할리우드에서 고용을 못해.”

“가입하면 되잖아.”

“조건이 있을 걸? TV나 광고 같은 분야에서 몇 년 몇 작품 뭐 그런.”

“하긴 독일도 그러니까. 외국은 노동조합이 잘 돼 있지.”

“그냥 네 작업 잘 하고 있어. 한국에서 연출하게 되면 함께 해 보자.”


류지호는 활짝 웃는 김준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토닥토닥.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건 행복한 삶이다.

세상의 절대 다수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삶을 세상살이에 맞춰 살아간다.

그에 비하면 김준우는 실로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다.

김준우는 유복한 집안에서 아쉬울 것 하나 없이 자랐다.

이전 삶에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일을 하며 살았다.

누구도 그의 꿈을 지지해주지 않았다.

친구들조차 도전하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류지호라고 다르지 않았다.

영화라는 먹고 살기 정말 힘든 직업에 종사하면서 친구까지 사진작가로서의 삶을 살라고 응원할 수 없었다.

이번엔 아니다.

김준우는 부모님의 반대 없이 사진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었다.

류지호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서울 올라가 봐야 돼?”

“특별한 스케줄은 없어. 술 한 잔 할까?”

“오랜만에 소래포구나 연안부두 가서 회에 소주 한 잔 할까? 애들도 불러서.”

“애들 누구?”

“철웅이 오늘 비번일 걸. 동창 애들 몇 명 부르고.”

“전화 한 번 해봐. 애들 얼굴 좀 보자.”


그날 저녁.

류지호는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였다.


“철웅이 너는 조폭한테 칼침 안 맞고 잘 살아 있냐?”

“몰라서 그러는데... 내가 인천 조폭들에게 저승사자야 인마~”


이철웅은 신포고 방송부 친구다.

고등학교 시절 공다연에게 사귀자고 했다가 보기 좋게 딱지를 먹은 적이 있는 바로 그 친구다.

작은 키였던 이철웅은 어느새 김재욱에게 밀리지 않는 체격을 자랑했다.

터프한 형사가 되어 있었다.

현재 남동경찰서 강력계 형사로 근무하고 있다.


“진짜 놀랐다, 야.”

“뭘?”

“이제 우리 같은 놈들 안 만나줄지 알았거든.”

“지랄 쌈 싸먹지 말고 네 앞에 그 회 장에 잘 찍어서 꼭꼭 씹어먹어 철웅아~”


재계 순위 15위 권 대기업 총수든, 대기업 비서든, 독일 유학파 사진작가든, 경호원이든, 강력반 형사든, 철도공무원이든, 주안 지하상가 점주든, 차이나타운 식당 주방장이든, 택시기사든.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학창 시절의 추억을 공유한 고향친구들일 뿐.

이전 삶처럼 아침 해가 뜰 때까지 달릴 순 없었지만, 류지호는 꽤나 오랜 시간 고향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며 옛일을 추억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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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 잘 됐으면 좋겠다. 다들! (1) +2 23.06.28 2,882 108 26쪽
538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3) +4 23.06.27 2,845 105 22쪽
537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2) +4 23.06.26 2,885 111 26쪽
536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1) +5 23.06.24 3,016 115 24쪽
535 전성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3) +9 23.06.23 3,030 116 27쪽
534 전성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2) +9 23.06.22 2,950 115 26쪽
533 전성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1) +5 23.06.21 2,971 124 24쪽
532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6) +8 23.06.20 2,993 108 24쪽
531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5) +3 23.06.19 2,987 118 25쪽
530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4) +3 23.06.17 3,000 117 25쪽
529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3) +4 23.06.16 2,960 123 26쪽
528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2) +5 23.06.15 2,963 115 24쪽
527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1) +2 23.06.14 2,943 113 23쪽
526 자기 사람은 진짜 잘 챙기는 것 같아. +5 23.06.13 2,981 116 26쪽
525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솔직히 잘 몰라요. (2) +3 23.06.12 2,923 119 24쪽
524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솔직히 잘 몰라요. (1) +8 23.06.10 3,054 115 26쪽
523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 (2) +3 23.06.09 2,972 112 24쪽
522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 (1) +2 23.06.08 2,969 109 23쪽
521 Zombie Apocalypse. (2) +4 23.06.07 2,905 110 23쪽
520 Zombie Apocalypse. (1) +6 23.06.06 2,962 108 23쪽
519 가진 것은 없어도 가치 있게 살아라. +10 23.06.05 2,979 107 24쪽
518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넘어진다. (2) +5 23.06.03 3,013 113 24쪽
517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넘어진다. (1) +4 23.06.02 3,042 105 24쪽
516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3) +6 23.06.01 3,045 109 26쪽
515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2) +4 23.05.31 3,131 110 25쪽
514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1) +5 23.05.30 3,176 109 23쪽
513 잘 참으셨습니다. +6 23.05.29 3,174 123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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