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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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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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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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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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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미국의 영화시장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산업적으로 오래됐으며 메이저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1930년대까지 미국의 스튜디오 시스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수직계열화 및 독점적 구조였다.

제작·투자·배급·상영은 물론이고 인기감독과 배우들까지 독점 계약을 통해 스튜디오에 묶어두는 등 사실상 영화산업 전반을 마음대로 운영했다.

당시에 메이저 스튜디오들끼리 경쟁은 없었다.

친하게 지내며 담합을 서슴지 않았다.

당연히 그 체제로부터 소외된 업계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마침내 1938년부터 1948까지 10년 간 스튜디오의 독점 횡포에 대한 재판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유명한 패러마운틴 판결이라고 불리는 판례가 나오면서 스튜디오 시스템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당시 미국 정부는 영화산업의 전반을 마음대로 주무르던 메이저 스튜디오들을 반독점법을 근거로 고소했다.

메이저 스튜디오들끼리 ‘티켓 가격 담합, 극장이 흥행이 유력한 영화와 실패할 것 같은 영화를 패키지로 계약하는 끼워팔기 행위 등 온갖 법률 위반 행위를 자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스튜디오와 극장을 강제로 분리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스튜디오와 극장을 분리시켜놨더니 영화산업을 위협할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바로 텔레비전과 비디오다.

미국의 영화산업은 그 둘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영화산업의 부흥을 위해 시네마스코프, 65mm, 스테레오 서라운드 등 온갖 방법들이 개발되었다.

마치 텔레비전 채널처럼 한 곳에서 다양한 영화를 취향에 맞게 선택해 볼 수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더 거대한 스크린, 더 뛰어난 음향시스템, 더 많은 스크린을 갖추기 위해 거대 자본이 필요해지게 됐다.

미국 정부는 1985년에 패러마운틴 판결을 사실상 철회하고, 1990대 중반에 가서 미국 대법원에서 사실상 사문화됐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메이저 스튜디오가 극장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장에 극장을 소유할 것 같았던 메이저 스튜디오는 전혀 다른 분야에 돈을 쏟아 부었다.

바로 케이블TV다.

애초에 메이저 스튜디오가 극장을 소유했던 것은 가격 담합이나 끼워팔기 같은 독점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걸 할 수 없게 됐고 필요도 없는데 뭐 하러 직영 극장을 다시 가질까.

사실 패러마운틴 판결이라 불린 재판이 벌어질 당시에도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직영하는 극장의 점유율은 전체에 20%를 겨우 차지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철퇴를 맞았었다.

류지호가 기억하는 한국의 대기업이 소유한 멀티플렉스 체인 점유율은 무려 90%였다.

한국의 관객들은 대기업 소유 멀티플렉스의 티켓값과 서비스에 대한 스트레스만 받는다.

정작 중요한 문제는 과거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했던 짓을 한국의 대형 멀티플렉스들이 똑같이 하고 있음에도 그랬다.

류지호가 알기로 영화인들도 다 알았다.

정치인들과 관료들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한국에서 패러마운틴 판결이 나올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대기업들이 지금 만큼의 투자를 하지 않을 거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 시기 한국 영화시장의 자생력은 대중들이 아는 것보다 훨씬 취약했다.

그것은 20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투자의 축소는 한국영화에 심각한 상황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지레 겁을 먹는 것이다.


“암튼 옆길로 샜는데.... 결국 내 생각의 핵심은 뭐냐면, 기존 미국의 빅 세븐은 절대 대형 멀티플렉스를 직영으로 운영하지 않을 거라는 거야.”

“그래서 스튜디오들이 영화시장의 확대를 명목으로 대형자본이 필요한 몇 개 메이저 멀티플렉스에 투자하는 형태가 된 거군요.”

“그조차 소닉/워너-타임이 Loews Cineplex를 말아먹으면서 쫑 쳤지만.”

“괜히 북미 대형 멀티플렉스를 인수한 거 아닙니까?”

“트라이-스텔라와 GOM을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두 회사가 끼워팔기를 할 리도 없고, 티켓 가격 담합은 더 말이 안 되고, 기타 반독점법 위반 소지가 있는 행위를 할 건덕지가 없잖아.”

“WaW 픽처스 영화를 Loews에서도 상영하게 될 텐데요?”

“직배로? 아니잖아. ParaMax나 디멘션이 배급하잖아. 결국 미국 정부가 WaW에 반독점법을 들이댈 순 없어.”

“그렇군요.”


현재 직면한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과거의 역사나 사례를 뒤져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영화시장의 산업화에 있어 걸음마 단계인 한국영화계는 미국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정도의 사례를 참조하면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 할 수가 있다.


“아들러씨도 그렇고, 많은 할리우드 영화인들이 80년대 말부터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어. 영화에 대한 애정은커녕 이해도조차 없는 그저 숫자가 적힌 장부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할리우드를 잠식하게 되면, 문화산업의 측면에서 결코 긍정적이지 않으니까.”


광역개봉으로 초반에 크게 휘몰아치고 빠지는 배급 방식을 할리우드도 즐겨 사용한다.

다만 미국은 배급사와 극장의 다양한 계약방식으로 장기상영, 재상영 등이 매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반면에 한국영화계는 천만 영화라고 해도 상영되는 기간이 보통 2개월, 길어도 3개월을 넘기지 않게 된다.

관객 점유율이 낮은 다양성 영화나 배급사의 힘이 약한 영화는 금방 상영을 종료한다.

할리우드는 잘 된 영화의 생명을 어떻게든 연장하려고 애를 쓴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흥행작이라고 해도 문화적 가치가 오래 유지 못하고 쉽게 잊힌다.

이런 상황에서 오랫동안 기억되는 클래식이 나오기 어렵고,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시리즈물이 나오기도 힘들다.

한국영화의 치명적 문제 중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다.


“한국영화 산업을 망치는 것이 꼭 대기업만의 책임이라고는 못하겠지. 관객도 영화관람 태도를 조금이라도 바꿀 필요가 있어. 너무 개봉 초기에 관객이 몰리는 성향이 강하거든. 재미있다는 영화는 남들 볼 때 봐야 하는 그런 게 좀 강하지.”

“미국처럼 땅 덩어리가 넓은 것도 아니고, 개봉하고 다음 날 바로 스포일러가 풀리지 않습니까? 게다가 우리나라는 국산영화가 잘되는 편이라서 한 해 개봉하는 영화 숫자가 미국이나 일본에 맞먹을 정도입니다.”


이 시기 기준 총 스크린 수 1,300여 개, 총 관객 1억 명의 시장규모인데, 한해 개봉영화 편수는 최대 500편에 다다른다.

이전 삶에서 멀티플렉스가 포화상태가 되었을 때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총 편수는 1,200편을 가볍게 넘기도 했다.

영화의 홍수 속에 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영화 배급사를 우리가 컨트롤 할 수는 없고, GOM Cinemas가 영화를 잘 선별해서 상영 프로그램을 짜야겠지.”


류지호는 극장업계의 세세한 부분까지는 모른다.

다만 2010년대를 경험했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과거로 돌아와 경영 마인드는 물론이고 사고까지 깊어졌다.

향후 극장업계가 맞이할 다양한 상황들에게 대해 대략적인 흐름을 일러줄 순 있다.

지금까지 류지호가 한 말 중에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오동석은 말 한 마디라도 놓칠 새라 집중해서 들었다.


✻ ✻ ✻


Loews Cineplex는 법정관리 기간 동안 많은 자산을 처분하고 극장을 폐쇄하는 과정에서 임대료가 비교적 부담 없는 뉴욕 외곽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여러 부서들이 뉴욕 시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GOM Cinemas가 인수한 후 아메리카 대륙을 관장하는 헤드쿼터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해 뉴욕의 맨해튼, LA의 Playa Vista, 토론토 등으로 의견이 갈렸다.

때마침 GARAM Invest가 매입한 맨해튼의 원 타임 스퀘어 빌딩에 공실이 많이 발생했고, 뉴욕시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구 Loews Cineplex 부서들을 한곳으로 불러 모으며 헤드쿼터를 새롭게 만들 수 있었다.

그와 함께 소닉이 앉힌 경영진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캐나다 멀티플렉스 갤럭시 엔터테인먼트로 독립했던 이전 경영진을 불러들여 물갈이 작업에 착수했다.

기업결합에 관한 승인은 빨라야 두 달이다.

Loews Cineplex 건은 이례적이라고 할 정도로 이른 시일에 주요 국가들에서 승인이 났다.

그에 따라 오동석이 지휘하는 정밀실사팀이 Loews Cineplex를 꼼꼼히 파악하기도 전에 새로운 경영진을 임명하게 됐다.


“오피스로 사용하기에 많이 불편할 겁니다.”


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진 미국법인장 이안 제이콥스(Ian Jacobs)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세계경제의 중심이라고 하는 맨해튼에서도 중심이지 않습니까. 이 빌딩이 한 때는 애물단지였지만 지금은 광고판으로 그 쓰임새가 바뀌어 새롭게 태어난 것처럼, Loews 또한 GOM이란 브랜드로 갈아입고 북미 최고 멀티플렉스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쫓겨나다시피 직장을 떠나야 했던 이안 제이콥스다.

몇 년 만에 다시 옛 직장에 그것도 최고경영자로 복귀하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극장 폐쇄가 아니라 매각이라고요?”

“12개 극장을 어뮤즈에 넘기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미국 법인 경영진은 경쟁에서 밀리는 지역들 가운데 12개 극장(46개 스크린)을 패러마운틴의 모회사 V&ACOM 계열의 극장사업자에게 매각하기로 했다.

미연방법원에서 해외 시장 진출을 적극 장려한다는 취지로 패러마운틴 판결을 철회하면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국내보다 해외 극장 사업자의 지분을 주로 사들였다.

소닉/워너-타임은 Loews를, 호주의 Hoyts theatre는 친 PARKs 계열이고, 영국의 멀티플렉스 체인 United Theatre International은 유니벌스 스튜디오가 포함된 UPI와 미국 최대 극장체인 AMT의 합작으로 탄생했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은 패러마운틴 판결이 철회되기 전부터 유럽에 적극적으로 멀티플렉스를 전파했다.


“좋은 소식이군요.”

“그만큼 매출이 줄어들 게 됐습니다.”

“덩치가 줄었다고 실망할 것 없습니다. 포화상태인 북미 시장보다 남미 시장을 뚫는 것이 앞으로 미국법인에서 할 일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기업문화는 반드시 변화해야 합니다. 영화 산업이 호황일 때 운영 미숙으로 인해 적자를 낸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의 극장 사업자들의 경영시스템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가족끼리 경영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책임을 따지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Loews Cineplex 이전 경영진들은 소닉과 워너-타임에게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무리한 확장을 거듭했다.

성과에 집착하다보니 은행권에서 마구 대출을 끌어다 멀티플렉스를 만들었다.

결국 파산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소닉의 인사도 문제였다.

Loews Cineplex의 전 소닉계 임원들은 파산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함에도 소닉-콜롬비아스 스튜디오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극장으로 자리를 옮겨 여전히 업계에 남아 있다.

류지호로서는 글로벌 기업 소닉의 경영상 단면을 확인했다.

다루기 쉽고 익숙한 사람들과만 일하는 방식이다.

해외 사업체에 권한을 이임하고 그 결과에 따른 책임을 철저히 묻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일본 본사에서 의논하고 결정을 내리는 구조도 문제고.

지나치게 중앙집권적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하부 조직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 당시만 해도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디지털 분야에서도 앞서 가는 국가다.

그런데 일본 본사 회장과 사장단은 기존의 잘 팔리는 아날로그 제품을 절대 포기하지 못했다.

한국이 발 빠르게 아날로그를 포기하고 디지털로 전환하는 것과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이다.

사실 소닉과 일본 기업들의 기업문화가 고루하든 말든 류지호가 상관할 바 아니다.

그들이 틈을 보이기는 이 시기 가온과 JHO가 그들이 선점하고 있던 분야를 잠식해 들어갈 기회였으니까.


“상영 라인업을 결정할 때 JHO와 WaW 영화에 얽매이지 마세요.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과 그걸 유통하는 것은 분리되어야 하니까. 의무적 혹은 모회사를 의식해서 내가 관련된 영화사 작품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요. 제이콥스씨는 오로지 GOM US 매출과 이익만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안심이 됩니다.”


더 많은 흥행영화를 상영한다면 분명 매출에 보탬이 된다.

하지만 극장은 영화로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다.

실제 극장 매출의 65%, 심지어 70%를 담당하는 것은 음료와 팝콘 같은 간식이다.

오죽하면 극장사업을 팝콘산업이라고 부를까.

관객이 많이 극장을 찾아야 그만큼 팝콘이나 음료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올해 라인업 한 번 볼 수 있어요?”


잠시 후, 최고운영책임(COO) 스티브 브라운이 2003년 미국과 캐나다 상영 스케줄을 가지고 왔다.

류지호는 한동안 스케줄을 확인했다.

펜을 꺼내 몇 편의 영화 제목에 마크를 해서 특별히 강조했다.

상영 스케줄 파일을 스티브 브라운에게 넘겨주며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이 두 편은 가볍게 다루지 마세요. 장기상영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겁니다.”


<니모를 찾아서>와 <부루스 올마이티>이다.

LOG&PIXART 공동제작 애니메이션과 유니벌스 스튜디오의 코미디 영화다.

트라이-스텔라 영화도 아니고, 뜻밖의 선택에 이안 제이콥스가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두 영화 모두 5월 개봉이 예정되어 있네요.”


상영 계획을 잘 못 짜게 되면, 자칫 한 영화를 포기해야 할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첫 주말 좌석 점유율이 높지 않다고 성급하지 내리지 말고, 무조건 한 달은 지켜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미국에서 한 해 제작되는 영화는 400편 이상이다.

개봉영화는 외국과 합작영화나 외국영화까지 포함했을 때 1,000 편을 가볍게 넘긴다.

3만 8천개(한때 5만 개)의 이르는 스크린을 보유한 미국이지만, 모든 영화를 다 상영할 순 없다.

따라서 될 영화를 고르는 안목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흥행영화를 미리 예측해서 스크린 배분을 잘 해 놓으면 관객들의 재방문율이 올라가고, 그런 만큼 팝콘과 음료수를 더 많이 팔아먹을 수가 있다.

흥행영화 예측을 잘 못하면 경쟁 극장으로 손님을 빼앗길 수도 있다.

미국의 영화배급 방식은 한국과 달라서 흥행대박 영화는 8개월 이상 스크린에 걸려 있는 경우도 자주 있다.

한 스크린을 수개월 동안 한 영화에 배당했을 때에 손익을 잘 계산해서 흥행영화를 내린 후에 다음 영화로 무엇을 올릴지 상영관 사이즈 및 좌석 수를 고려해 영화 상영 배치를 어떻게 할지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20년 넘게 극장업계에서 그런 업무를 수행한 이안 제이콥스과 스티브 브라운이다.

류지호가 전 임원진을 쫓아내고 일순위로 스카우트 할 만한 인재들이다.

딱히 걱정은 들지 않았지만, 괜히 미다스의 손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란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두 편을 골라 일러두었다.

이안 제이콥스가 말끔하게 생긴 라틴계 남자를 가리켰다.


“보스, 혹시 디에고와 인사 나누셨습니까?”


지명된 남자가 성큼 앞으로 나서며 손을 내밀었다.


“Diego Peña Nieto라고 합니다. 보스.”


류지호가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로 인사를 건넸다.


“Gusto en conocerte. Peña Nieto.”

“편하게 디에고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멕시코의 명문가는 조부, 심지어 증조부까지 성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서 풀 네임이 무척 긴 사람들이 간혹 있다.

디에고라는 이름은 식당에서 이름을 부르면 여러 사람이 돌아볼 정도로 멕시코의 흔한 이름이다.

때문에 공식석상에서는 이름보다 성을 주로 부르는 편이라 류지호도 그렇게 했던 것.

류지호는 대학에서 제2 외국어로 스페인어 수업을 들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경호원 티노 곤잘레스와 일상생활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고, 벨에어 주택 가사도우미 중에 라틴계 이민자가 일하고 있다.

LA 지역에는 라틴계 이민자나 불법체류자가 많다.

심지어 한인타운에서 험한 일을 하는 이들 대부분이 히스패닉일 정도다.


“멕시코 시장 점유율은 어때요?”

“Cinepolis가 현재 140개 극장으로 가장 큰 체인입니다. 멕시코뿐만 아니라 과테말라, 파나마, 코스타리카까지 진출해 남미 전체적으로 5위 안에 들고 있습니다. 관객 수 기준 19.2%의 점유율을 보이고, 매출액 기준으로는 52.1%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음이 Loews였습니다. 93년 설립된 이후 멕시코에서 최초로 365일 상영을 시작했습니다. 멕시코 전역 44개의 극장을 운영 중이며, 그중 36개 극장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관객수 기준 16.8%의 점유율을 보이지만 멕시코시티만 고려했을 때 52%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MovieMark도 진출해 있지요?”


트라이-스텔라가 지분 참여한 MovieMark는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걸쳐 202개 극장, 2,568개 상영관을 운영하고 있다.

남미에서는 56개 극장이 있는데, 그중 멕시코에서 21개 극장이 영업 중이다.


“멕시코 시장에서 관객 수 기준 8%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점유율 3위 극장은 멕시코 메이저 언론그룹의 계열사인 MM Cinemas가 점유율 13.3%를 차지하고 있으며, 수익기준으로는 12.8%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 네 개 브랜드가 주요 멀티플렉스입니까?”

“그 외에 수 백 개의 단관극장들이 멕시코 전국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마약 카르텔이 장악한 지역은 아무래도 저희 같은 멀티플렉스가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멕시코에서 한국 영화가 상영된 적이 혹시 있습니까?”

“있긴 합니다만, 인지도는 매우 떨어집니다. 재팬 애니메이션과 해외 영화제 수상작들이 간간이 개봉되는데, 멕시코에서는 일본 영화가 중국 영화보다 인지도가 더 높습니다. 한국영화는... 죄송합니다.”

“디에고가 미안할 게 뭐있어요.”

“다만 보스가 소유한 한국 영화사에 제작한 마샬아츠 영화가 있지 않습니까? 꽤 관객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마샬아츠 영화?”

“코리아의 무술 고수가 쿵푸고수와 가라데 고수를 때려눕히는 영화 있지 않습니까?”

“아. <풍운아>!”


WaW 엔터테인먼트는 <쉬리>를 시작으로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 여러 편을 멕시코에 판매했다.

멕시코시티의 독립영화 상영관에서 개봉한 모양이다.

멕시코 영화 시장규모는 세계 10위권이다.

자국 영화는 여타 중남미 영화시장이 그렇듯 경제개방정책과 재정 감축, 스크린 쿼터제도 폐지 등으로 미국 영화에 완전히 잠식당했다.

그나마도 불법복제가 횡행하여 수도권과 일부 안전한 대도시 외에는 수입을 제대로 거두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시티에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단관극장을 알아봐 주세요.”

“....?”

“아시아영화 전용관으로 만들어볼까 생각 중입니다.”

“맡겨주십시오!”


GOM MEX 계열 멀티플렉스와 별도로 작은 단관 극장을 인수해 국제영화제 출품 작품이 아니더라도 한국의 장르영화를 상영하는 전용관을 만들 궁리를 해봤다.


‘나중에 K-pop 공연 실황도 팬들 모아다가 상영하고.’


멕시코에서 그 같은 방식이 통한다면 점차 라틴아메리카 전체로 확대시켜 볼 수도 있다.


“과분한 자리에 올라설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충분한 능력이 되기 때문에 추천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멕시코 극장들의 운영을 잘 부탁합니다.”

“그 믿음에 보답하는 모습 꼭 보여 드리겠습니다.”


인사권자는 GOM Cinemas International의 CEO 오동석이다.

그럼에도 류지호에게 잘 보이려는 모습이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류지호의 눈에 들면 남미 전체를 총괄하는 운영책임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디에고와 대화를 마친 류지호가 뒤로 빠지면서 오동석이 나섰다.

오동석이 미국, 캐나다, 멕시코 법인장들을 격려했다.


“여러분이 중심을 잘 잡아주셔야 직원들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과거는 잊으세요.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각오로 경영에 임해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믿음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한국 대기업의 미국법인장은 보통 이사에서 상무급 직급을 인정받는다.

그 외에 각 나라마다 부장~상무까지 다양한 직급을 파견 보내는데, 가온그룹은 한국 본사에서 직원을 파견 보내는 것보다 현재 채용을 선호하는 편이다.

현지 사정은 현지인이 잘 알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에는 크게 글로벌 통합과 현지화 전략이 있다.

GOM Cinemas는 글로벌 경영을 해 본 경험이 미천하기에 국제경험과 자체 핵심 역량을 축적하기 전까지 현지화 전략에 힘을 싣기로 했다.

GOM Cinemas는 국제화 과정에서 경험했던 시행착오를 굳이 사서할 필요가 없다.

류지호와 JHO가 투자한 MovieMark와 Loews CinePlex가 중남미와 유럽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복기하면 되니까.

아메리카 대륙의 법인장들은 해당 국가 극장업계에서만 최소 10년을 구른 베테랑들이다.

500개도 안 되는 스크린을 총괄했던 오동석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럼에도 오동석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었다.

오너의 최측근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구 Loews Cinplex의 노조는 이번 인수합병을 크게 환영했다.

회사 사정과 상관없이 기를 쓰고 배당금을 뽑아먹는 주주, 하는 일 없이 등기이사에 등재해 막대한 돈을 연봉으로 받는 오너, 직원 복지보다 수익에만 눈 먼 오너.

모두가 월가에서 리틀 버펫이란 별명으로 불리는 류지호의 방침과 맞지 않았다.

COM Cinemas는 최소 5년 간 배당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가온그룹의 복지정책 또한 그대로 적용할 것도 약속했다.

캐나다에서 폐쇄한 극장 때문에 일자리를 잃게 된 일부 종업원들을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다른 극장으로 취업을 연결시켜주기까지 했다.

그 같은 사연이 알려지자 중남미는 물론 스페인, 헝가리 노조가 크게 환영했다.

GOM Cinemas의 진정성을 받아들여 적극 협조했다.

노조의 협조를 통해 조직 개편 작업을 내부 반발 없이 끝마칠 수 있었다.


‘괜히 걱정했잖아.’


걱정했던 오동석은 무리 없이 직위에 적응했다.

베테랑 임원들과 큰 갈등 없이 업무를 조율해 나갔다.

게다가 GOM Cinemas International의 직원들을 얼마나 굴렸는지 상당히 빠릿빠릿했다.

다양한 국가와 인종을 골고루 채용해 향후 글로벌 확장의 첨병으로 활용할 계획이란다.


“......!”


오동석이 북중미 법인장들과 잘 섞이는 걸 확인한 류지호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원 타임스 스퀘어 빌딩을 나섰다.

오동석은 이전 삶에서 류지호의 얼마 안 되는 소중한 인연이었다.

신세도 많이 졌다.

그런 사람이 출세해서 국제적으로 활약을 하게 됐다.

류지호는 왠지 모를 희열과 함께 큰 보람을 느꼈다.

이전 삶에서 그에게 졌던 신세에 대한 보답도 보답이지만, 한 사람의 삶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다.


작가의말

평안한 주말 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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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할리우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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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 잘 됐으면 좋겠다. 다들! (2) +10 23.06.29 2,894 106 22쪽
539 잘 됐으면 좋겠다. 다들! (1) +2 23.06.28 2,878 108 26쪽
538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3) +4 23.06.27 2,840 105 22쪽
537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2) +4 23.06.26 2,880 111 26쪽
»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1) +5 23.06.24 3,012 115 24쪽
535 전성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3) +9 23.06.23 3,026 116 27쪽
534 전성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2) +9 23.06.22 2,947 115 26쪽
533 전성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1) +5 23.06.21 2,967 124 24쪽
532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6) +8 23.06.20 2,990 108 24쪽
531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5) +3 23.06.19 2,985 118 25쪽
530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4) +3 23.06.17 2,998 117 25쪽
529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3) +4 23.06.16 2,958 123 26쪽
528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2) +5 23.06.15 2,961 115 24쪽
527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1) +2 23.06.14 2,941 113 23쪽
526 자기 사람은 진짜 잘 챙기는 것 같아. +5 23.06.13 2,979 116 26쪽
525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솔직히 잘 몰라요. (2) +3 23.06.12 2,920 119 24쪽
524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솔직히 잘 몰라요. (1) +8 23.06.10 3,052 115 26쪽
523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 (2) +3 23.06.09 2,969 112 24쪽
522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 (1) +2 23.06.08 2,967 109 23쪽
521 Zombie Apocalypse. (2) +4 23.06.07 2,903 110 23쪽
520 Zombie Apocalypse. (1) +6 23.06.06 2,961 108 23쪽
519 가진 것은 없어도 가치 있게 살아라. +10 23.06.05 2,977 107 24쪽
518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넘어진다. (2) +5 23.06.03 3,011 113 24쪽
517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넘어진다. (1) +4 23.06.02 3,040 105 24쪽
516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3) +6 23.06.01 3,042 109 26쪽
515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2) +4 23.05.31 3,128 110 25쪽
514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1) +5 23.05.30 3,173 109 23쪽
513 잘 참으셨습니다. +6 23.05.29 3,172 123 25쪽
512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2) +5 23.05.27 3,249 119 24쪽
511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1) +7 23.05.26 3,187 11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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