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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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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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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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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글자
25쪽

잘 참으셨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그냥 답답해서 해보는 말입니다.”


류지호가 나선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고.

공연히 구설에 오를 행동을 할 필요는 없다.


“다온의 파트너 변호사 많아요. 감독님은 이번 사안에서는 어떤 제스추어도 취하지 마세요. 절대!”

“해외로 도피한 작자들은 JHO Security에서 대부분 파악하고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필요하다면 그들이 잠적하고 있는 해외 소재지에 대한 정보를 검찰에 제공할 수 있다고 슬쩍 언질을 주세요.”


대형 기획사 대표들과 문제 있는 방송사 PD들이 외국으로 도망가거나 국내에서 잠적했다.

국내보다 해외로 잠적한 한국인 찾는 것이 어쩌면 더 쉽다.

갈만한 곳이 거기서 거기니까.

나래안전시스템 특수영업부는 류지호의 특명을 받고 있다.

이전 삶에서 언론사 사장까지 관여된 섹스스캔들과 여배우의 자살의 빌미를 제공한 기획사 대표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때가 되면,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그 작자도 수사망에 올라있는 건 맞아요?”

“현재는 지명수배 중이고 여권정지 처분과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져 있는 상황으로 알고 있어요.”

“차아암~ 실효성 없는 조치군요.”

“처음부터 수사대상은 아니었다고 해요. 대형 기획사 임원들을 입건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이름이 많이 거론됐다고 하던가. 어느 세계나 튀는 사람은 눈에 띄게 마련이고, 베팅을 저돌적으로 한다든지, 향응을 세게 베푼다든지.....”

“구체적인 혐의는 뭐에요?”

“확인된 건 아니지만, 소속 연예인들을 부적절한 향응 자리에 내몰거나 금품제공 액수가 유난히 컸다고 들었어요. 다른 매니저들이 주식제공 같은 간접 로비를 하는 데 비해 그 사람은 고급 골프채를 몇 개씩 선물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수사선상에 올린 거죠. 거물은 아니지만. 연예계에서 기존 질서를 깨면서 물을 흐리는 매니저가 몇 명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 그 사람이었다고 해요.”

“국내로 데리고 오면 곧바로 구속이 되는 겁니까? 어느 정도 수사가 진행됐어요?”

“일단은 방송사 간부들과 대형 연예기획사가 주된 수사대상이에요. 수백 개의 기획사를 다 수사할 수가 없어서 주요 기획사 위주로 수사하고 있나 봐요. 잠적한 주요 기획사 대표들의 신병 확보가 급선무이긴 하지만. 현재 서울지검 강력부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크게 네 가지이에요. 첫째는 조폭자금 유입이에요. 자금추적에 상당한 시간이 걸려요. 두 번째가 주식 제공 등 기획사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요. 또 하나는 영화제와 가요제 수상자 선정 비리죠.”


성 비리는 수사팀의 마지막 수사목표다.

방송사의 유명 PD들에 대한 성상납과 정·관·재계 인사들이 뚜쟁이를 통해 여성 탤런트·배우들과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성문제는 개인의 내밀한 문제이고 대가성을 입증하기 어려워요. 성스캔들에 따른 사법처리는 당사자들에게 사회적 매장을 뜻하잖아요. 그래서 어느 한쪽의 협조를 얻는 게 무척 어렵죠.”


사실 성상납 의혹은 연예계 비리 수사의 가지였을 뿐이지 본질이 아니었다.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언론이 과민하게 반응한 탓도 있고.

일부 기획사의 금품로비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 여성 연예인 몇 명을 불러 조사했는데, 그중엔 미스코리아 출신도 있었다.

모 스포츠신문이 이에 대해 ‘성 관련 의혹으로 검찰에서 조사받았다’고 보도했다가 당사자한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취재경쟁이 과열되다 보니 추측성 보도가 난무했다.

내밀하게 수사해야 하는 것들이 연일 언론으로 새어나갔다.

당연히 찔리는 자들이 여러 채널로 압력을 가할 수밖에.

모두의 관심사로 부상하다보니 수사팀의 운신의 폭이 점차 좁아졌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발의해 줄 용기 있는 고위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없나?”


이전 삶에서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률이 2012년에 제정됐다.


“예?”

“아니에요.”


어쨌든 서울지검 강력부는 영화 수입업자들과 영화 담당 기자들을 기소한 것을 시작으로 가요계 비리로 수사를 확대했다.

영화업계는 주로 돈을 받고 홍보기사를 써준 혐의다.

반면에 가요계는 성접대부터 조폭연루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다.

메이저 기획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임으로써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해 각종 연예계 비리를 저지른 관계자들을 구속 또는 불구속 입건하기 시작했다.


❉ ❉ ❉


8월 말에 연예계 수사를 지휘한 부장검사가 지방청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불과 한 달 만에 수사를 접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후속 수사팀은 사건을 마무리하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상황.

그대로 수사를 마무리하도록 류지호는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이때 제기된 의혹들을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못한다면, 추후 여배우의 비극적인 죽음과 함께 연예계에 만연한 각종 부조리에 대한 경고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류지호가 경기도 모처의 골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함께 라운드 하는 멤버는 래리 킴 회장, 박건호 대표, 임건희 사장이다.

중간에 간식을 먹은 후 라운드 팀이 바뀌었다.

래리 킴 회장과 박건호 대표가 빠지고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 두 명이 합류했다.

캐디 역시 입이 무거운 사람으로 특별히 배치했다.


“우리는 정말 부장님이 경질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요.”


류지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린 위를 걸어가는 선임검사가 말했다.

새로운 서울지검 강력부장으로 유력한 인물이다.


“위에서 국민적 관심사이고 한창 수사 중이니 인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거든요. 전투 중에 장수를 바꾸는 법은 없다면서. 이 한마디로 유임이 기정사실이 됐고 부장님은 중장기 수사계획을 작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인사가 난 겁니다.”


류지호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향후 권력실세들의 연예인 관련 비리를 수사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고정된 건 하나도 없어요. 수사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겁니다. 수사주체의 의지가 중요하죠. 한계를 말하기 전에 최소한 객관적 사실관계를 확인하려고 노력할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검사의 명예를 걸고.”

“시중에 떠도는 중견 탤런트들의 소문은 확인되었습니까?”


중견 여성탤런트들 일부가 성매매의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낭설이었어요. 확인된 게 없습니다.”


과연 소문일까.


“다만 청담동과 논현동 등지에 중년 여성들이 운영하는 고급음식점에서 많은 여성 탤런트가 모인다는 사실은 확인됐습니다. A급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알려진 연예인들이 드나든다는 제보였는데, 신빙성이 높다고 보고 있죠. 그렇다고 그곳이 바로 성매매를 위한 접선장소였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단계에서 전임 부장님이 지방으로 좌천을 당하신 거고.”

“정관계 쪽에 대한 수사는 접고 연예계 내부에 집중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

“수십 년간 뿌리 내린 연예계 내부의 부정비리에 대한 개인적인 안타까움 때문입니다.”

“일단 우리 수사팀의 활동의 가시적 성과를 떠나서 연예계와 정치권이 상당히 위축됐을 겁니다. 마담뚜로 의심되는 강남 음식점 여주인들의 인적사항을 다 확보한 상태니까요. 그걸 확인하는 과정에서 인사 조치도 있고. 방송사들의 항의도 거셉니다. 주요 프로그램 제작이 거의 마비된 상태거든요. 유명 PD들이 휴가니 병가니 해서 잠적해버려서.....”


정관계의 압력뿐만 아니라, 가장 크게 반발한 쪽은 연예계 인사들이다.

훗날 한목소리로 강력부의 무리한 수사를 성토하게 된다.


“강력부가 무리하게 수사한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무리할 게 없었어요. 깡패 수사한 것도 아니고.”

“인권침해 소지는 있지요.”

“이번 수사에서 누구를 팬 적은 없습니다.”

“간혹 검사들이 의욕을 앞세우다 종종 물의를 빚곤 하지요.”

“의욕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의욕 자체를 문제 삼는 건 부당해요. 방법론을 문제 삼는 건 몰라도.”


류지호는 헛웃음이 나오는 걸 억지로 속으로 삼켰다.

좋은 말로 의욕, 정확한 표현은 출세욕이다.

출세를 위해서 검사들은 뭐든 한다.

정치 검찰에 대한 것이 소문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재하는 것이다.


“수사팀이 확실하지 않은 혐의를 언론에 흘렸다는 비난이 있지요. 조폭자금 유입이라든지 성상납이라든지.”

“그거는 의장님도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명확하게 입증된 건 얼마 되지 않잖습니까?“


수사팀 선임검사가 임건희 사장을 슬쩍 의식하고 입을 열었다.


“의장님 쪽 사람들이 수사협조에 적극적이어서 말씀드립니다만.... 일부 기획사 임직원들이 어디 출신인지 파악한 상태입니다. 매니지먼트 CHAN에도 조폭 출신이 임원으로 재직 중이더군요.”

“인천 깡패 출신이긴 하죠.”


순순히 인정해서 그럴까.

검사들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보였다.


“불똥이 튈 수도 있습니다만.”

“전직이지 현직은 아니니까요. 강 실장은 한 점 부끄럼이 없습니다. 강 실장이 여전히 조폭 세계와 연관되었다면 그를 제 친구의 곁에 두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렇습니까?”


사실 강현도는 파봐야 나올 것도 없다.

본래가 무력을 담당하는 건달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요계로 조폭 자금이 유입된 정황이 포착됐습니까?”

“일반 단타 사건도 한 달은 수사합니다. 이 사건은 관련자만 수십 명입니다. 몇 달짜리가 아니라 최소 6개월짜리 수사죠.”

“수사가 흐지부지 될 것 같습니까?”

“의장님은 왜 이번 사건에 관심을 두는지 모르겠습니다. 깨끗하시던데....”

“......”

“다온에 몸담고 계신 선배님들이 꽤 적극적이시던데. 정의의 용사 놀이라도 하고 계십니까?”

“정의 따위는 관심 없습니다. 이번 수사로 연예계의 고질적인 적폐가 사라질 것 같지도 않고.”


류지호의 입가에 미소가 스쳤다.

명백히 비웃음이다.

경쟁자라도 밟아놓으려는 것인지 의심하는 검사들의 눈초리가 같잖았다.


“그저 내 사람들은 보호하고 싶을 뿐입니다. 수사를 해봐서 알겠지만, 연예계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습니다. 여러 모로.... 일반 사회에서도 매춘은 불법입니다. 그것이 연예계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내 자존심을 건드립니다. 같잖은 사람들이 나와 함께 일하는 여배우에게 성상납을 요구하는 짓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방송국 관계자나 영화 쪽 경쟁자들을 치워버리려는 줄 알았습니다.”

“기획사의 기획력이 떨어지니까. 쉽게 말해 머리가 나쁘니까 대신 돈으로 미는 겁니다. 자기 배우나 가수의 특성을 잘 파악해서 필요한 곳에 알리는 것이 기획입니다. 적재적소에 알리면 세상은 평가를 하죠. 그걸 해내지 못하고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획사가 기획은 할 줄 모르고 우리사회의 전형적인 접대문화로 손쉽게 영업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접대를 받는 사람은 자신이 갑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접대는 당연한 것이고요. 저 쪽에 천만 원 주면 다른 쪽에서 3천만 원 줍니다. 그러다가 주식을 주게 되고. 그게 당연한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는 이 판의 관행을 바꿔보고 싶은 게 내 진심입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렇다고 해 두죠.”

“검찰에서 가온그룹을 파보려고 애쓴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딱 잡아떼는 것이 실토하는 것과 다름없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은 세상에 없습니다. 의장님과 가온이 사회공헌 활동을 아무리 많이 해도 작은 사건 하나로 역적이 될 수도 있지요.”


류지호가 노골적인 비웃음을 검사 두 명에게 보여줬다.


피식.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


“오늘 의장님을 뵙자고 한 것은 선의의 경고를 드리려는 겁니다.”


선의와 경고는 의미상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말이다.

개소리란 뜻이다.


“그쪽 사람들이 수사에 자꾸 들어오니까.”

“압력이라고 느꼈다니 유감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상당히 수사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분명.”

“......”

“그런데 의장님.... 수사는 공권력이 하는 겁니다. 불법복제업자들 단속 건이나 뭐 그런.... 자꾸 공권력의 범위 안으로 선을 넘으려고 합니다. 나래 사람들이.... 정보를 주는 거까지야 도움이 되니 뭐라 할 순 없지만. 지나치게 앞 서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류지호가 임건희 사장을 돌아봤다.

임건희가 고개를 끄덕여 검사의 충고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이슨 박은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수사 대상이라고 하기에는 좀 이상한데, 암튼 문제 되는 사람은 다 조사해야 했지요. 수사 협조 차원에서 만난 업계 사람들이 박 대표에 대해 ‘기획사 규모가 작은데 저돌적으로 운영한다’라고 말했지요. 불과 30대 초반으로 그 일을 한 지 얼마 안 된 친구였는데 평판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조사를 막 시작할 시점에 도망간 것인지 현재 잠적 상태입니다.”


이전 삶에서 모 여배우의 자살로 인해 밝혀진 정관언의 유력자들에 대한 성접대 의혹의 중심이 있었던 인물이 제이슨 박이다.

내사단계부터 업계에서 안 좋은 소리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조사를 받던 기획사 대표 등이 ‘우리는 정상적으로 활동하는데 몇 사람이 물을 흐려놓는다’라고 얘기했고, 그 몇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제이슨 박이었다.

소규모 기획사인데 너무 공격적이라고 했다.

미국 출신으로 할리우드에도 지인이 많다고 자랑하고 다니기도 했다.

자주 무엇을 방송사에 갖다 준다는 것이다.

방송계에 종사하며 10년, 20년 지내다 보면 서로 소주도 한 잔 하면서 호형호제하게 된다.

그런데 그 정도 범주에 속하지도 않는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런 이들이 주로 금품 살포와 성접대로 로비를 벌인다.

과거부터 그랬다.

검찰에 재벌 2세가 연예인 누구하고 동남아에 같이 갔다는 정보가 들어오기도 했다.

문제는 그것만 가지고 죄가 되느냐다.

실명까지 거론되었지만.


“순수하게 놀러가서 그랬는지 비즈니스 목적이었는지 확인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아실지 모르지만 실제 노회한 거물들은 연예인과 함께 외국 나갈 때 절대 같이 가지 않습니다. 대체로 날짜를 달리 정해서 따로 나갑니다. 굉장히 조심합니다.


연예계 성상납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수사하는 입장에서 조사하기 힘든 면이 많았다.

그래서 향응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현금이나 골프채, 항공권 등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 과정에 누가 있었느냐 하는 식으로 병행 조사를 하게 된다.

성행위에 국한해서 조사를 한다는 것은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말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연예계에서 떠도는 루머 가운데 ‘누구는 날아다니는 침대‘ 같은 말이 있다.

거의 대부분 음해성 루머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두고 검찰이 무작정 조사할 순 없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몇 명 쯤 되는 줄 압니까?”

“글쎄요. 한 10만 명?”

“최소 50만, 최대 100만 명입니다.”


캐디에게서 골프채를 건네받던 선임검사가 깜짝 놀라 류지호를 돌아봤다.

그 정도로 많을 줄 몰랐다는 표정이다.


“포르노 찍는 사람들도 자신들은 할리우드 사람이라고 합니다. 개나 소나 할리우드에서 얼쩡거리면 인맥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나는 제이슨이라는 사람을 할리우드에서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어요. 내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교포 모두를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후우. 의장님을 조금 일찍 불러 조사... 아니 말씀을 들어볼 걸 그랬습니다. 물론 너무 거물이시라 함부로 부른다고 오지도 않았겠지만.”

“내가 아니더라도 유학파 감독들에게 물어보면 다 압니다.”

“의장님이 미국에서 알아주는 보안경비업체를 소유하고 있는 걸 압니다. 이번 사건의 용의자 중에서 해외로 도피한 이들 소재지, 의장님 쪽에서 온 것으로 압니다.”


말하면서 또 다시 임건희 사장을 슬쩍 의식하는 선임검사다.

임건희 사장이 딴청을 피웠다.


“해외가 넓다고 해봐야 한국인이 갈 곳은 뻔합니다. 딴에는 외국으로 도망가면 안 걸릴 줄 아는데, 마음만 먹으면 쉽게 파악이 가능합니다. 솔직히 대사관 직원들이 교포들 탐문만 해봐도 최근에 해당 지역에 들어온 한국사람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지요. 일들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지.”


해외로 도피하는 이들 대부분은 국내 사법기관의 어느 정도 묵인하게 나가는 거다.

삼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에서 해외출국금지를 내리면 방법이 없다.

밀항밖에는 답이 없다.

이판사판인 막장 인생이 아니면 밀항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의장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곤란한 점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치죠. 어쨌든 제이슨이란 사람은 언제든지 입국 시킬 수 있다고 얼핏 들은 것도 같습니다. 협조가 필요하면 JHO Security 서울 지사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의장님도 다칠 수 있습니다. 나래안전 쪽으로 구린 것이 꽤 보이니까요.”


검사 특유의 특성인지, 틈만 나면 꼭 자기가 더 갑의 위치라는 걸 어필하려고 든다.

류지호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I'm not afraid."

“이번에 보여주신 호의는 고맙게 받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공권력의 경계를 지켜주실 것을 염두에 두시라고 충고 드립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 할 일을 하면 될 뿐.”


일련의 연예계 성상납 및 금품 접대에 중심인물 가운데 한 명인 제이슨 박.

홍콩으로 출국한 뒤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다.

그가 잠적하자 성접대 리스트에 오른 고위층들도 하나같이 혐의를 부인했다.

이전 삶에서는 부장검사의 지방 좌천과 대통령 선거 등으로 수사는 흐지부지 마무리되고, 그는 몇 년 후 한국에 돌아와 다시 연예기획사를 이름만 바꿔 설립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성상납 사건을 일으켰다.

이번에 그를 단죄한다고 해서 연예계 성상납 관행이 없어질까?

천만에 말씀.

연예계 비리 수사팀 검사들과는 몇 홀을 함께 돌고 헤어졌다.

다시 라운드에 합류한 박건호 대표가 우려를 드러냈다.


“실세라고 할 수 있는 특수부도 아니고.... 직접 만나신 게 잘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래리 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잘 한 겁니다. 보스는 너무 장막 뒤에 숨으려는 경향이 있어요. 가끔 존재감을 드러낼 필요가 있습니다. 신비주의가 통하지 않는 것이 비즈니스 세계입니다. 자신의 영향력이나 존재감을 과시해야 조무래기들이 감히 엉겨 붙지 않는 법입니다.”

“서울지검 강력부장이 조무래기는 아니지 않나.....?”

“레벨이 맞지 않습니다. 그나마 서울지검장이면 몰라도.”

“그런 사람하고 골프치고 밥 먹으면 체할 거 같은데요?”

“소화제 챙겨 가시면 됩니다.”

“골프는 래리가 치세요. 난 딴따라들이랑 어울릴 랍니다.”

“어련하시겠습니까.”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들과 라운드를 하고 이틀 후, 류지호는 일본으로 출국했다.

예상대로 연예계 비리는 업계 내부로 좁혀졌다.

정치권과 관료까지 확대하지 않기로 방침이 정해졌다.

서울지검 마약수사부가 연예인 엑스터시 리스트를 확보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여러 연예인들이 도핑테스트를 받는 일이 있었다.

정관계 성상납이 연예인 마약사건으로 비화됐다.

작년에 사극으로 주가를 올린 여자탤런트 외에 미스코리아 출신 여자배우 포함 몇 명의 연예인이 마약사범으로 구속되었다.

연예계 비리를 수사하던 서울지검 강력부는 규모가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이전 삶과 달리 관련수사를 계속했다.

조폭들이 연예기획사의 실제 오너이거나 바지 사장을 앉힌 사실이 속속 밝혀졌다.

전국구 조직에서 떨어져 나온 세력들이었다.

전국구 조직의 부두목급이거나 조직책을 맡는 등 상당한 위치에서 브레인 역할을 했던 조폭들이 연예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주로 나이트클럽이나 디너파티, 기획 행사 등에 관여했다.

메이저급 기획사는 아니었다.

일부 신생 기획사 가운데 갑자기 떠오른 기획사에 조폭이 연루됐다.

중간급치고는 제법 큰 기획사에 대한 수사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는 조폭을 비호하던 별도의 세력이 있었는데, 사실 관계가 확증되고 기소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민감한 문제이기는 했다.

비호세력이 정관언계에 두루 걸쳐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밀어붙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YNTV 등 주요 매체에서 연일 관련 특종이 팡팡 터졌다.

언론에서 어떻게 관련 첩보들을 입수했는지 알 길은 없었지만.

또한 강력부가 한 유명 스포츠 단체 몇 곳을 관심 있게 들여다봤다.

스포츠 행사를 하며 조폭이 운영하던 기획사와 커넥션이 이어졌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참에 태권도협회도 뒤집어 놨어야 하는데....!”


일본 출장에 동행한 박건호 대표가 류지호를 다독였다.


“잘 참으셨습니다.”


만만해 보여서 때만 되면 연예계를 들쑤시는 것이 아니다.

만만하게 보일 정도로 썩어 있기 때문이다.

때마다 수사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제도와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다.

방송사 고위급이 일정 액수 이상이면 외부 인사와도 밥을 먹지 않겠다고 암묵적인 룰을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빨리 제정되는 것도 좋다.

사실 다 소용이 없을 수도 있다.

제이슨 박 같은 이들이 언제든 출현하는 것이 연예계 판이니까.


‘일단은 연예계에 만연해 있는 성상납 관행에 대한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일시적인 경고로 그치겠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낫다.


✻ ✻ ✻


어둠 속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류지호에게 보고가 되는 일은 없다.

JHO Security Services의 데본 테럴은 암중에서 많은 일들을 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백인우월주의자 단체 하나를 해체시킨 것이다.

공권력도 못한 일을 일개 민간경비경호회사가 했다.

류지호를 타깃으로 수시로 협박 소포를 보낸 루이지애나 주에 근거지를 둔 백인우월주의 단체가 있었다.

불법 무기 거래 및 마약 거래혐의로 대대적인 소탕을 당했다.

JHO Security Services의 비공식 조직이 작업한 일이다.

수뇌부는 살인과 시신 암매장까지 드러나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LA지역 빈민가 콤프턴의 대표적인 갱단 가운데 한 곳 역시 류지호를 목표로 수작을 벌이려고 한 적이 있었다.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데본 테럴이 직접 협상을 벌였다.

마약 자금세탁을 해 줄 변호사를 소개시켜 주며 암중으로 관리했다.

미국에서 증오범죄는 TV뉴스에나 볼 수 있는 남의 일이 결코 아니다.

특히 911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한 노골적인 증오는 KKK의 악몽을 부추겼다.

FBI는 1900년대 초반 400만 명까지 회원을 두고 있던 KKK단이 현재는 6,000명 정도로 줄어들어 미국 전역에 소규모로 분산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 없었다.

총기 소유가 합법이며 누구나 손쉽게 불법 무기를 구할 수 있는 미국에서 그들 한 명 한 명이 잠재적인 위협이다.

류지호처럼 성공한 아시안이 표적이 될 수도 있다.

결코 과대망상이 아니다.

미국의 데본 테럴이 있다면 한국에는 장문식이 있다.

나래안전 시스템 내부적으로 구조조정이 있었다.

회사 내부에서 문제를 일으켰거나, 외부 인사들과 작당해 분란을 조장했던 불온 세력을 모조리 (주)서평특수로 몰아냈다.

대부업을 추진하는 것을 꾸준히 주장해 왔던 사람들까지 함께 몰아냈다.

결국 나래안전 시스템에서 (주)서평특수를 완전 분리시켰다.

한국에서 대통령선거가 있기 전 나래안전 시스템이 가온그룹에 전격적으로 편입된다.

나래안전 직원 대다수가 열렬히 환영한다.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류지호는 분리해서 나간 회사에서 언제고 사고가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원래도 남이었고 분리 후에는 남보다 더 하찮은 존재가 되었으니까.

한편 모두가 류지호 같지는 않았다.

황재정과 나래안전 일부 임원들은 (주)서평특수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연매출 1,000억 대 회사를 포기할 만큼 황재정과 나래안전 일부 임직원의 배포가 크지 않았다.


작가의말

활기찬 한 주 맞이하시고 즐겁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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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 (1) +2 23.06.08 2,966 109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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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넘어진다. (2) +5 23.06.03 3,010 113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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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참으셨습니다. +6 23.05.29 3,172 123 25쪽
512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2) +5 23.05.27 3,249 119 24쪽
511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1) +7 23.05.26 3,186 11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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