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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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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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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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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3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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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2002년 말 LCD는 만들어 본적도 없던 중국의 베이징전자에 하이닉스 계열사 하이디스(Hydis)가 매각되었다.

베이징전자는 한국의 하이디스와 전산망을 연동시키고, 기술자료 4,000여 건을 본사로 빼돌렸다.

기술자까지 중국으로 불러들여 중국 내 현지 설비를 완공시켰다.

중국의 생산이 본궤도에 오르자, 2006년 하이디스를 부도 처리하고 한국에서 철수했다.

이것이 이전 삶의 역사다.

국민의 정부 빅딜 가운데 신진지프와 함께 최대 삽질로 밝혀지게 될 중국 매각 사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는 일이 됐다.

미국의 JHO Company Group이 3억 8천만 달러(약 4,600억 원)에 하이디스를 인수했기 때문이다.

공적자금이 투입된 하이닉스가 사업부별로 쪼개서 매각되던 시기다.

하이닉스의 핸드폰 사업부는 팬택에, 비메모리는 매그나칩에, 전장 부문은 만호에 팔렸다.

LCD 사업의 하이디스만 주인을 만나지 못했다.

오성과 금성전자는 독과점 이슈로 나서기 어려웠다.

국민의 정부도 국내 업체보다는 해외업체를 선호했다.

기술과 인재가 해외로 넘어갈 것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음에도 해외업체로 매각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과학기술에 대한 무지를 넘어 무관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누가 봐도 디스플레이 기술은 미래 핵심 기술일 텐데, 오성과 금성전자라는 글로벌 전자업체만 믿고 국가 경쟁력 일부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했다.

이전 삶에서 하이디스는 신진지프의 매각과 함께 두고두고 욕을 먹는 대표적인 기술 해외 유출 사례로 꼽혔다.

여담으로 베이징전자의 인수금액은 3억 8천만 달러였지만, 실제 국내로 유입된 금액은 1억5천만 달러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신디케이트론을 통해 외부에서 차입했는데, 산업은행(1천456억 원), 외환은행(302억 원), 우리은행(173억 원), 국민은행(71억 원), 신한은행(10억 원) 등이 신디케이트에 참여했다.

기술은 기술대로, 전문 인력은 인력대로 중국에 다 넘어가고 자금까지 국내 은행이 대줬다.

구조조정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노동자가 해고되었다.

국내 은행 돈으로 회사를 회생까지 시켜줬다.

어떤 나라 정부가 미래의 경쟁자를 도와줄 거래를 앞장서서 도와주는지.


“또 기업 수집병이 도졌네. 내 동생이....!”


하이디스 인수를 두고 매튜 그레이엄이 처음 보인 반응이었다.

류지호는 뻔뻔하게 대응했다.

추후 DALLSA, Eye-MAX, Phantom, CamPro의 디지털 카메라 LCD 스크린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 것이라 주장했다.

얼핏 듣기로는 그럴 듯했다.

류지호가 지금까지 수집한 기업들은 어떤 면에서는 D-Cinema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상호보완적이다.

게다가 투자한 기업 중에 컴퓨터와 전자회사도 많았고.

하이디스 인수합병 관련 보고를 위해 데이빗 브레텐바크가 일본으로 날아왔다.

그는 도널드 제이콥이 JHO Security Services CEO로 영전하고 후임 수석참모가 되어서 류지호와 언제든지 독대를 할 수가 있었다.


“하이디스는 지난 2년간 설비투자를 못해 글로벌 업계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상태였습니다. JHO에 매각됨으로써 떨어진 위상을 재정립할 기회도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JHO는 제조업이나 기술기업이 아닙니다만?”

“물론 그렇습니만 JHO에 인수됨으로써 5세대 라인 등 신규 투자를 단행할 예정입니다. 하이디스는 이미 이천공장에 차세대 라인구축을 위한 공간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5세대 라인구축 붐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더는 투자시점을 미룰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입니다.”


JHO Company Group은 현금을 포함해 단기금융상품 같은 현금성 자산을 엄청나게 보유하고 있다.

현금성 자산이 많다보니 은행에서 빌린 돈이 한 푼도 없다.

월가에서 JHO가 은행에 가는 이유가 돈을 빌리러 가는 게 아니라 빌려주러 간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을 정도다.

기업을 인수합병하면 가혹한 구조조정부터 하는 것이 아니라, 악성부채부터 해결하고 R&D 투자부터 늘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하이디스의 경우도 그 같은 기조가 그대로 적용될 예정이다.


“기업 자체에 대한 평가는 어때요?”

“하이디스가 비록 생산능력이나 시장지배력에서 경쟁사들에 비해 처지지만 이번에 경영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재도약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분석입니다. 특히 독자적인 광시야각(FFS)기술을 포함해 경쟁력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의료·항공용 분야 같은 틈새시장 공략에 주력, 설비투자만 뒷받침된다면 회사전망은 밝은 편이란 진단입니다.”

“특허기술은 쓸만하대요?”

“현재 하이디스는 특허기술을 포함해 3,200개 조금 넘는 디스플레이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알짜 특허도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 기술을 미래의 경쟁기업에 빼앗기지 않게 된 것이다.

물론 JHO는 미국 기업이다.

따지고 보면 기술의 해외유출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향후 베이징전자그룹에서 오성전자와 금성전자의 인력을 수없이 빼가겠지만, 하이디스 인수를 계기로 중국의 디스플레이 기술 발전을 최소 3년은 늦출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류지호는 기대했다.


‘이러다가 일본의 소부장 기업까지 손대는 건 아니겠지.’


류지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현재로서는 쓸데없는 오지랖이다.

이번에는 일본과 무역전쟁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정의국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한국의 정치적 판세가 변했기 때문이다.


“미국 명문대 외교 싱크탱크와 한국의 외교통 중에서 똘똘한 인재들 선별해 봐요.”

“외교 말씀이십니까?”

“경제논리에 기반을 둔 세계화 정책들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이것이 정치에 부담을 주고 또 다시 부메랑으로 돌아와 경제에 다시 영향을 미칠 겁니다. 정치, 사회, 외교 문제와 경제가 별개로 돌아가던 시대가 아닙니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며 모든 이슈를 경제와 연관해 고민해야 할 겁니다. 미국과 중국이 힘겨루기 하는 날이 올 겁니다. 냉정하게 손익계산서를 만들어보고 이를 반영해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방안을 미리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에요.”

“경제문제를 논의하는 싱크탱크 지원을 늘리라고 할까요?”

“한국이나 미국이나 대책도 없이 정치와 외교의 칼을 휘두르다 경제가 파탄 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잖아요.”

“예. 보스.”


한국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관료들은 한국이 주변국과 갈등을 겪을 때마다 외교와 경제는 별개 또는 정치와 경제는 별개라며 경제보복이 없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사실 희망사항일 뿐이다.

한국은 정치나 경제로 주변국에 영향력을 미칠만한 강대국이 아니다.

특히 밀접한 관계를 맺은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은 세계 최고 열강에 속한다.

북한 문제까지 겹쳐 언제든 이해관계가 충돌할 지정학적 리스크도 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정치적 또는 외교적인 이유로 한일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그만두길 반복하고 있다.

이전 삶에서는 무역전쟁까지 벌였다.

10여 년 후가 되면 국제사회가 경제가 정치, 사회, 외교 등의 이슈에 휘둘리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고, 최강대국 미국에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영화감독이 국제정세와 경제정책까지 고민하는 게 맞는 건가?’


관심이야 가질 수 있다.

관여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어쨌든 팔짱끼고 지켜볼 순 없다.

한국의 가온그룹은 한국정치에 휘둘릴 수밖에 없기에.


❉ ❉ ❉


도쿄 유라쿠쵸에 위치한 도쿄다카라(東宝) 영화사 본사.

대회의실에 한국과 일본의 영화 관계자들 모여 있다.

참가자는 WaW 엔터테인먼트의 박건호, 도쿄다카라 영화사의 제1 제작위원회 부장, 푸지TV 영화편성부장, 영화제작사 로봇의 사장, 출판사 쇼가쿠인의 영화판권 담당이다.

오늘은 WaW와 도쿄다카라의 합작 프로젝트가 첫 발을 내딛는 날이다.

처음 협상을 벌일 때만 해도 연간 한 작품씩 5년을 계획했다.

하지만 영화 제작에 들어가기까지 두 영화사들이 해결해야 할 사안들이 많았다.

상대의 입장과 문화를 이해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양측 최고 수뇌부가 함께 하기로 의기투합한 이후 실제로 합작에 서명하기까지 1년이 넘게 걸렸다.

계약서 작성에만 4~5개월이 걸렸다.

한국과 일본의 영화 제작시스템이 너무나 달랐다.

WaW 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실험적인 영화부터 보수적인 메시지를 견지하는 작품까지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반면에 도쿄다카라는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을 해치는 소재를 다루지 않는 매우 보수적인 영화 제작으로 유명했다.

<춤추는 대수사선Ⅱ>>와 <자토이치> 두 편의 영화는 쉽게 합의를 보았다.

하지만 <이니셜 D>의 원조교제, <군계>의 폭력성에서 이견을 보였다.


“일본 극장 개봉 수익은 WaW를 제외한 제작위원회가 나눠가지세요. WaW는 해외 판매 수익에서 좀 더 많이 분배 받는 것으로 합시다. 또 오프닝 로고는 일본판에서는 귀사가 먼저, 해외판에서는 저희가 먼저 나가는 걸로 합시다.”


도쿄다카라와의 합작영화 제작위원회는 해외 판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일본은 세계 2~3위 영화시장이다.

자국 내 흥행만으로 투자금 회수는 물론 이익까지 챙길 수가 있다.

그렇다고 WaW가 일본 내 비디오와 DVD 수익까지 양보한 것은 아니다.

오로지 일본 내 극장 수익만 합작영화 제작위원회에 양보했다.

이후로 협상은 급물살을 탔다.


슥슥.


박건호 대표와 합작영화 제작위원회 부장이 각각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계약서를 나눠가지며 악수를 나눴다.


“잘 부탁합니다.”

“저희가 드릴 말씀입니다. 앞으로 좋은 영화 함께 만들어 두 회사가 번영하길 기대합니다.”


참석한 관계자들이 의례적인 박수로 축하를 보냈다.


짝짝짝!


이로써 WaW 엔터테인먼트는 도쿄다카라가 제작하는 10편에 관해 제작위원회 멤버가 되었다.


“공동제작 영화 외에 씨네콰논이 가져오는 영화는 기존 히비야샹테계의 200개 플러스알파에서 독립계 스타일로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일본의 메이저 영화사들은 일단 제작이 결정되면 개봉시기, 개봉규모를 1년 전에 미리 결정한다.

도쿄다카라의 일본영화 라인, 즉 블록부킹인 니치게키2계의 경우는 300개 플러스알파 스크린, 지브리 애니메이션 등의 스카라좌계는 400개 스크린 전후, 히비야샹테계에서는 200개 플러스알파 스크린 규모에서 개봉된다.

원작의 소비기한이 짧다고 판단해 완성과 동시에 곧바로 개봉을 하는 경우도 있다.

몇 년에 한 편 정도로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도쿄다카라는 일본에서 가장 극장을 많이 확보하고 있는 배급사다.

때문에 변칙 개봉도 가능했다.

본래 일본 영화계는 1년 전 계획된 개봉 스케줄을 절대 바꾸지 않는다.

암튼 도쿄다카라 영화사는 향후 가온그룹 일본법인 씨네콰논이 배급하는 한국영화를 독립계 개봉방식인 순차 개봉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독립계 방식은 처음 10개 미만의 상영관에서 개봉했다가 관객 반응에 따라서 점차 스크린을 늘려가는 일본 특유의 배급 방식이다.

참고로 〈쉬리〉가 180개 스크린에서, <퇴마기록>이 210개 스크린에서, <풍운아>가 130개 스크린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과 달리, 〈JSA〉가 235개 스크린에서, <친구>가 280개 스크린에서 개봉했다 흥행에 실패했다.

무조건 스크린을 많이 잡는다고 해서 일본에서 흥행에 유리하진 않다.


“이해합니다. 도쿄다카라의 방식을 존중합니다.”

“감사합니다.”

“WaW가 극장 흥행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일본 영화인들과 관계를 만들고, 그것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역사와 전통의 도쿄다카라에 류지호 감독님께서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습니다.”


WaW 엔터테인먼트는 일본에서 영화를 제작해 나가며 3대 메이저와 끈끈한 인맥을 갖출 생각이다.

당장의 흥행성공보다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파트너십을 구축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일본 영화계에서는 트라이-스텔라와 WaW가 일본진출의 간만 보고 금방 빠질 것이라 예단했다.

워낙에 기존의 메이저들이 폐쇄적이고 견고했으니까.

합작 프로젝트 10편 계약으로 섣부른 예단을 무색케 만들었다.

계약이 체결되고 곧바로 제작위원회는 라인업을 꾸리기로 했다.

가온그룹의 일본 프로덕션 서비스 컴퍼니(PSC) 씨네콰논과 의견을 조율해 가며 작품 제작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면서 일본 영화 환경에 차음 적응해 나가며 한국에서 넘어오는 한국감독이나 배우들이 일본 제작 방식을 이해하고 적응하도록 도울 생각이다.

PSC 즉 Production Service Company는 현지에서 영화 제작을 실제로 전담할 파트너 영화사를 이르는 말이다.

씨네콰논이 WaW와 도쿄다카라의 합작영화를 제작하는 현지 프로덕션 기능을 할 예정이다.

합작계약을 원활하게 체결한 양측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했다.

한편으로 양쪽 실무자들이 공식발표와 언론에 낼 보도자료 문구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고위급 인사들은 따로 접대를 받았다.

일본은 접대가 비즈니스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에 따른 접대문화가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

접대의 방법 또한 중요시 여기고 있다.

한국의 접대문화가 일본에서 건너왔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회사의 예산에서 접대비 항목을 따로 책정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뿐일 정도로 비용 가운데 접대비 항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도쿄에는 고급요정이 많다.

그 중에서도 유력자들이 주로 찾는 최고급 요정으로 WaW 엔터테인먼트 고위임원들이 초대됐다.

일본에서도 정재계 유력 인사들만 들락거린다는 이 요정은 110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는데, 10여 년 전 2대째 여주인이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며 새롭게 요정을 손봤다고 한다.

일본 특유의 완고한 전통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나름 현대적인 감각을 조화시켜서 다타미 36조의 큰방, 20조, 12조, 거기에 다실이 붙은 8조로 개편했다.

박건호 대표와 임원들은 간단한 술을 곁들여 1인당 50만 원짜리 식사를 대접받았다.

게이샤들의 춤과 노래도 감상했다.

류지호는 접대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건호 대표가 공동제작 프로젝트의 가온그룹 대표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음날.


류지호가 <풍운아>의 박은상 감독과 함께 씨네콰논을 방문해 각각 <군계>와 <이니셜D>의 연출계약을 체결했다.

WaW와 도쿄다카라의 한일합작 프로젝트에 포함된 영화다.

제작은 WaW 엔터테인먼트의 일본 자회사 씨네콰논에서 하고, 투자와 배급은 도쿄다카라 제작위원회가 맡기로 했다.

계약을 마친 류지호가 박은상 감독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감독님.”

“아니야. 마침 다찌마리 말고 다른 액션 장르를 해보고 싶던 차였어. 내가 고맙지.”


<풍운아> 최종편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그로인해 박은상 감독만 붕 떠버렸다.


“계속 붙잡아 놓고 있는 것도 감독님께 폐를 끼치는 것 같고.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뭐하지만 잘 부탁드려요.”


다른 영화사에는 불러주지 않는다.

대작영화를 찍어 흥행에 성공하면서 계약금이 톱급으로 껑충 뛰었고, 소위 ‘WaW 떼’가 묻은 감독이라 충무로 프로듀서들이 함께 일하기 꺼려했다.

WaW의 프로듀서처럼 일 할 능력이 안 되면 박은상 감독과 일하기 쉽지 않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충무로 특유의 문화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류 감독처럼 글로벌하게 놀면 좋지 뭐. 내가 달리 류지호 사단이라고 불리겠나.”

“제 사단이라니요. 700만 감독이신데.”

“부담 갖지 말게. 이번에 일본 사람들하고 영화 찍으면서, <풍운아> 최종편에 출연할 배우도 함께 찾아볼 셈이니까.”

“좋게 생각해주셔서 감사해요.”

“감사는 내가 해야지. 자네 아니었으면 난 영화감독으로 재기하지도 못했어, 이 사람아.”


류지호로 덕분에 한국에서 원 없이 액션영화를 연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WaW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이니셜D> 한국감독으로는 신인급을 내정했었다.

그런데 도쿄다카라 측에서 반대했다.

경험이 풍부한 중견감독이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하는 수 없이 <풍운아>의 박은상 감독을 섭외했다.

박은상 감독은 맨주먹 고전 액션 영화와 결이 다른 영화를 해보고 싶었다.

때마침 <분노의 질주>를 보고 어떤 영감도 받았다.

카레이싱이란 장르에 도전하고 싶던 차에 연출 기회가 왔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풍운아>로 액션 연출에 대한 검증이 끝난 감독이다.

도쿄다카라 제작위원회는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또한 박은상 감독이 잠시나마 할리우드에서 활동했던 이력도 좋게 받아들여졌다.


“<풍운아> 최종편을 싹 갈아 업고 싶지만.... 어찌 되었든지 간에 마무리는 잘 지어야겠지.”

“낯설고 불편하시겠지만 합작영화 하시면서 생각의 전환도 시도해 보세요.”

“배우 녀석들이 머리가 컸다고 이것저것 바라는 것도 많고... 쯧.”


<풍운아> 1,2편으로 벼락스타가 된 신인배우 몇 명이 좋은 조건으로 드라마 출연 제의를 받았다.

WaW 엔터테인먼트에 8개월 스케줄을 통보해 왔다.

말 그대로 통보다.

자신을 출연시키려면 8개월을 기다리던지.

그런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기획사의 의지인지 배우 본인의 의지인지 WaW는 관심이 없었다.

배은망덕?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원래 연예계가 그렇다.

한국영화판에서 의리가 밥 먹여주던 시대는 옛날이야기가 됐다.


“배우들이 드라마나 다른 영화 책을 많이 받는 모양이에요. 아마 감독님이 책을 보내주면 바로 달려올 겁니다.”


예전 선배들이 분바른 놈(배우) 믿지 말라고 했다.

모든 배우가 그렇진 않다.

인연과 의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배우도 아직 많다.


“어디 그럴라고. 신인 키워봐야 다 헛것인 것 같아.”

“이왕 배우가 되어서 스타가 되고 싶은 건 당연한 거죠. 스타로써의 삶을 즐기도록 내버려 두죠. 드라마 갔다가 성숙해져서 <풍운아>로 돌아올 겁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예전에는 배우와 감독, 감독과 스태프들 간에 의리가 있었는데, 점점 개인주의가 되는 것 같아. 속 터놓고 술 한 잔 할 동료 영화인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서 문득문득 아쉬워.”


속 터놓고 술 마실 친구는 여전히 충무로에 많다.

다만 박은상 감독 본인의 위치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연차가 있는 중견감독이자 흥행감독이다.

누군가는 그의 위상을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다.


“모두가 친구가 될 순 없겠죠. 그래도 감독님을 좋아하고 따르는 후배들도 많잖아요.”

“대부분이 다찌마리 하는 애들이니 문제지.”

“이번에 드라마 한 번 제대로 찍어보세요. <이니셜D>는 청소년 성장드라마이기도 하니까. 착한 영화 한 번 찍어보면서 피맛 좀 빼보세요.”

“이번에도 내 모든 걸 쏟아 붓도록 하지. 한국영화 감독이 일본 사람들 앞에서 쪽팔린 순 없으니까.”

“건강 잘 챙기시구요.”

“내가 태권도 선배인 것 잊었나?”

“하하하. 그랬지요.”


<풍운아>는 삼부작의 마지막 편만을 남겨두고 있다.

시라소니는 해방을 맞이해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쉽게 중국을 떠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최종편의 악당은 빌 하워드 태프트란 이름의 미국인이다.

1905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특사로 일본 총리였던 일본의 가쓰라 다로와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를 미국이 묵인하는 대신, 일본제국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묵인한다라는 그 유명한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당사자의 성이다.

시라소니는 중국인 무술가, 일본인 가라데 고수들을 규합해 인종차별과 온갖 악행을 일삼는 미국인 악당을 혼내주고는 조선으로 향하는 배에 오르게 된다.

이후 새로운 시리즈는 없다.

<풍운아>는 시라소니의 중국에서의 모험을 그린 영화로 기획되었다.

중국 생활이 끝나면서 시리즈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삼부작의 마무리에 공을 들여도 모자랄 판에 <풍운아>의 주연급 배우들이 조금 떴다고 갑 행세를 하고 있다.

류지호가 보기에 그 배우들은 드라마를 찍은 것을 후회할 날이 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두 편 합산 700만 관객을 동원한 감독이자, 한일합작 감독이자, 어쩌면 멀지 않은 미래에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연출할지도 모르는 감독에게 신뢰를 잃었으니까.

<풍운아> 최종편 이후 박은상 감독이 그들을 자신의 영화에 불러줄 것 같지 않았다.

자신이 한 만큼 돌려받게 되어 있다.


“식사 모시겠습니다.”


연출 계약을 마친 두 사람은 합작영화 제작위원회로부터 저녁 식사를 대접받았다.

일본에서 접대를 받으면 매번 요정을 갔다.

조금은 식상한 감이 없지 않았다.

어쨌든 오는 것이 있으면 가는 것이 있는 법이다.

WaW 엔터테인먼트 임원들이 일본을 떠나기 전, 도쿄 시내 최고급 호텔의 펜트하우스를 빌려 제작위원회 관계자들에게 합작 축하 파티를 열어주었다.

류지호와 박은상은 연출계약서 서명하고 하루가 지나자마자 본격적으로 비즈니스가 시작됐다.

일본의 대형 기획사 고위급 인사들과 배우들이 파티장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합작영화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제작위원회 부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군계>를 B무비 스타일로 찍으실 생각이십니까?”


류지호는 두루뭉술하게 대답했다.


“원작이 가진 임팩트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대중적으로 잘 풀어봐야죠.”

“할리우드와 한국에서도 영화를 찍으셔야 한다고 들었는데.....”


합작영화라고 대충 찍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말인데, <군계>는 2004년에 촬영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미 도쿄다카라 회장께 양해를 구했습니다.”

“아, 그러셨군요.”

“내년은 <춤추는 대수사선2>, <자토이지> 두 편을 개봉하고, 2004년에 <이니셜D>, 2005년 <군계> 정도가 개봉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2005년 개봉할 영화 한 편 더 공동제작을 할 수도 있고요.”

“예. 알겠습니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부장이란 사람도 도쿄다카라 회장과 이야기가 끝났다고 하니 얌전히 물러났다.

파티에 온 사람들은 모두가 도쿄다카라 라인이다.

도쿄에이가나 마츠다케 라인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걸 답답하다고 해야 할지, 좋아해야 할지.’


일본영화계의 갈라파고스화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잃게 되면 그것이 WaW 엔터테인먼트에게 마냥 좋은 것일까.

섣불리 예단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WaW가 못하는 일본만 할 수 있는 영화도 있으니까.

그래서 <이니셜D>나 <군계> 같은 영화를 합작하는 것이고.


작가의말

lcd는 중국 oled는 한국. 그렇게 이야기 하던데.... 소설 속 이 시기부터 한국이 디스플레이 세계 점유율에서 일본을 막 앞지를 분위기가 감지되었다고 합니다. 2004년부터는 확실히 일본을 밀어냈죠. 그리고 20년이 채 되지 않은 현재 한국이 중국에게 디스플레이 전체 시장에서 밀리고 있다고 합니다. 수익성이야 oled가 훨씬 높다곤 하지만. 하이디스가 중국 기업에 매각되지 않았다고 해서 중국이 lcd 분야에서 한국을 추월하지 못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미래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국가와 기업에 너무 안일하게 기업들을 넘기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국이 일본을 죽어라 흉내내며 따라잡았듯이 다른 나라도 한국을 죽어라 따라하며 추월할 수 있는 것을.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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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99 ehqur
    작성일
    23.05.30 09:34
    No. 1

    지금 중국은 반도체빼고 한국기술 다 따라잡았죠. 자동차부터 lcd 스마트폰 화장품까지...
    그런데 군계는 넘 다크한데 잘 될수있을지 모르겠네요.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78 모란
    작성일
    23.05.30 13:20
    No. 2

    중국이 하이디스 인수안햤어도 따라오겠지만 아무래도 몇년치 기술을 한번에 따라잡게 만들게 한건 하이디스 인수가 결정적이었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루시오엘
    작성일
    23.05.30 14:41
    No. 3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얀유니콘
    작성일
    23.05.30 19:56
    No. 4

    일본이 LCD 시장에 과대 투자 한것도
    한국과 일본 의 시장이 같이 망하고
    중국에 기회를 준것 같습니다

    춤추는 대수사선은 왜 인기가 있는지
    이해가 안되더군요..
    권력자 는 처벌 못하는 일본 경찰 영화 라...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OLDBOY
    작성일
    23.05.31 21:15
    No. 5

    잘 봤어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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