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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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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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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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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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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는 평소의 습관대로 이른 시간에 침대를 빠져 나왔다.

곧바로 욕실로 직행한 후에 정신이 번쩍 들도록 찬물로 샤워했다.

잠을 몰아낸 후 맨해튼 전망이 일품인 통유리 창가로 걸어가 커튼을 열어젖혔다.


후두둑.


장대비가 쏟아지는 풍경이 류지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비오는 풍경이 꽤나 운치가 있어서 베란다 쪽의 미닫이문을 열어젖혔다.


쏴아아아.


빗소리가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

왠지 마음이 포근해지는 기분이다.

백색소음인 빗소리가 커피를 불렀다.

수행비서나 프런트에 부탁을 할까 하다가 손수 커피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것도 값비싼 고급 원두가 아니라 커피믹스를.


호로록.


창가에 우두커니 선채 류지호는 커피믹스를 음미했다.

달달하니... 잠들었던 세포들이 하나하나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


“......!”


더 이상 대한민국은 세계 영화의 변방이 아니다.

Loews Cineplex를 가온그룹이 인수하면서 멀티플렉스 업계에서는 당당히 주류로 부상하게 됐다.

사실 Loews Cineplex는 90년대보다 덩치가 많이 줄었다.

파산 이후 수많은 점포를 정리했기 때문이다.

GOM Cinemas International이 인수한 후로도 꽤 많은 점포가 폐쇄되거나 매각되었다.

그럼에도 150개가 넘는 극장에 2,000개를 훌쩍 넘기는 스크린수를 자랑하는 대형 멀티플렉스 브랜드다.

멀티플렉스 안에서 매점이나 오락실을 운영하고 있기에 협력업체 수도 많다.

연관된 직원 숫자만 수만 명에 이른다.

처음 극장사업을 벌일 때만 해도 이전 삶의 BGV 정도만 되어도 바랄 것이 없었다.

슬그머니 욕심이 생긴다.

AMT나 Regal Theatre Group을 뛰어넘는 세계 최대 극장체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만 충무로 사람들이 착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GOM Cinemas의 극장사업이 글로벌화 된 것은 한국영화의 쾌거가 아니라 가온그룹의 글로벌 전략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영화계가 혜택을 받는 것은 거의 없다.

이전 삶에서 <기생충>이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석권한 것은 한국영화의 쾌거가 아니라 공 감독과 <기생충>의 쾌거 일 뿐이었다.

그 같은 사건이 한국영화의 쾌거가 되려면 매년 그와 같은 수준의 작품들이 꾸준히 나왔거나 나올 환경일 때다.

애석하게도 한국영화는....


[2008년의 한국영화를 접하고 정말 궁금해졌다. 왜냐하면 어느 날 갑자기 증발된 것처럼 작가주의와 대중성의 조화가 한국영화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1년 전 즈음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비평가가 영화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와 한 인터뷰의 일부분이다.

비평가가 지적한 그 시기를 즈음으로 해서 한국영화계는 4개의 배급사가 시장을 완벽하게 나눠먹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한국영화는 대작 아니면 독립영화만이 존재하는 양극화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장기상영은 완전히 사라졌다.

치고 빠지기 및 온갖 편법상영이 한국영화배급계의 법칙이 됐다.

또한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는 의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수직계열화와 독과점의 끝장을 보여주는 일본 영화계도 안하는 짓을 한국의 4대 메이저가 자행하지만, 누구 하나 나서서 지적하는 영화인이 없었다.

왜냐하면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니까.

한국영화는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투자로 흥했다가 그것으로 망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류지호는 그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의 대형 멀티플렉스 브랜드를 인수·합병하도록 했다.


‘미국 영화산업의 나쁜 것만 배우지 말고 쫌.... 자유시장경쟁 같은 배부른 소리나 하면서 산업이 망가지는 것도 모른 채 관객에게 경영부담을 전가시킬 꼼수나 부리고 말이지...!’


류지호는 GOM Cinemas의 다국적기업화를 통해 세계 주요 영화선진국들이 영화시장 생태계를 어떻게 유지·발전시키는지 한국의 대기업들이 배우길 바랐다.

그렇게 해야 더 많이 더 오래 영화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랐다.


‘어차피 OTT가 활성화되면 극장산업이 위축되긴 할 테지만.’


적당한 시점에 정리할 방법을 궁리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매입자는 정해져 있다.

바로 중국기업이다.

한국의 멀티플렉스 사업만 빼고 중국기업에 좋은 가격에 팔 시점을 미리부터 계산해 둘 필요가 있다.

일단 투자비 회수는 물론이고 만족할 만한 수익을 보는 것이 먼저다.


“보스....!”


티노와 말릭이 운동을 가자고 찾아왔다.

믹스커피를 느긋하게 즐긴 후 호텔 피트니스 클럽에서 운동을 했다.


“두 사람은 LA에 정착할 생각 없어요?”

“경호팀을 교체하고 싶으십니까?”

“가정을 돌보지도 못하고, 나 때문에 오랜 시간 집을 비우고 있잖아요.”


티노와 말릭이 차례로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보스께서 아내와 아이들을 세심하게 보살펴 주시는 걸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마음이 얼굴에 다 드러난 티노 곤잘레스가 물었다.


“젊은 친구들보다 경호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까 걱정되십니까?”

“함께 한 세월이 얼마인데.... 두 사람을 믿지 못하면 누굴 믿겠어요. 단지 10년이 넘는 시간 나를 수행하면서 가정에 소홀한 것 같아서요. 미안해서 그렇죠.”

“보스께서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는 계속하고 싶습니다.”

“두 사람을 가정으로 돌려보내려면 하루라도 빨리 결혼을 해야겠네요.”

“곧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레오나가 로스쿨에 입학할 거라서.....”

“약혼식을 올리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두 사람은 프러포즈 어떻게 했어요?”

“다른 분께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뭔가 기대하고 물어본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은 멋대가리 없는 남자고, 마초맨이라서 로맨틱한 프러포즈를 했을 리가 없다.

혹시나 싶었는데, 역시나 였다.


✻ ✻ ✻


아침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오동석이 방으로 찾아왔다.


“아침식사는 하셨습니까?”

“그놈에 존댓말은....”


둘 만 있을 때는 말을 놓기도 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오늘은 타임 스퀘어로 출근 안 해?”

“토요일이잖습니까.”

“아참! 그랬지?”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 받았다면서 이렇게 느긋하게 있어도 되는 겁니까?”

“그러지 않아도 내일 오전 비행기 예약해 놨어.”

“전용기 안타시고요?”

“여름이나 되어야 한 대가 인도되나봐. 매번 비즈니스 제트기 렌트하는 것도 그렇고.... 커피 한 잔 할래?”

“좋죠.”


류지호가 믹스커피를 가지러 가는 사이 오동석이 창가로 걸어갔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파전에 막걸리 땡기는 날씨구만.”


한인타운에 가서 막걸리 마시자고 제안해볼까 고민하고 있는데 류지호가 곁으로 다가왔다.


“....?”


류지호의 손에 커피포트와 머그컵 두 개가 들려 있다.


“내 입맛에는 봉지 커피가 더 좋더라.”

“믹스 커피가 있었습니까?”

“가끔 봉지 커피가 당길 때가 있어서 챙겨 다니지.”

“제가 하겠습니다.”


오동석이 커피포트를 받아들었다.

냉장고에서 생수를 한 병 꺼내 붓고는 코드를 콘센트에 꽂았다.

그 사이 류지호는 커피믹스를 머그컵에 쏟았다.


“기자들이 알면 특종이겠습니다.”

“뭐가?”

“세계적인 억만장자가.... 향도 좋고 맛도 좋은 커피가 얼마나 많은데 믹스커피를 마신다니.”

“형, 그거 알아?”

“감독님 입이 싸구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도 믹스커피 즐겨 마십니다.”

“넘겨짚기는.... 한국에서 점유율 80%를 차지하는 인스턴트커피 브랜드가 왜 수출이 안 되는 줄 알아?”

“해외에 통하지 않기 때문 아닙니까?”

“이거 외국인들에게 은근히 인기 많아. 그 식품회사 지분 50%를 미국의 유명한 커피 회사가 보유하고 있거든. 자기들이 인스턴트커피를 만들어 파는데 무서운 경쟁자를 미국에 들어오게 내버려 두겠어?”

“아, 맥심 말이군요?”


해외에서 한국의 커피믹스가 알려지고 선호도도 높아지고 있다.

헌데 쉽게 해외수출을 못하고 있다.

한국의 믹스커피로 유명한 식품기업의 50% 지분을 가진 미국의 제네럴 푸드는 지난 1976년 체결한 커피브랜드 강제조항을 들어 맥심과 맥스웰 브랜드 커피믹스 수출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국내 식품기업은 독과점에 가까운 믹스커피 점유율로 인해 수출 따위 아쉬워하지 않고 있지만.


“매년 상표권 사용료로 몇 백억은 우습게 빠져나갈걸?”

“아네모네 프랜차이즈에서 인스턴트커피도 하시게요?”

“나도 모르지. 경영진이 알아서 하겠지 뭐....”


영화 포스터가 눈에 띠면 박스오피스를 추측해 보게 되고, 신문에서 기업 소개가 나오면 주가가 궁금해지고, 오늘처럼 특정 제품을 보게 되면 연관 비즈니스를 궁리하게 된다.

회귀자라서?

아니다.

직업병은 더더욱 아니다.

도널드 제이콥 수석참모 때문이다.

류지호가 호기심을 보이고 궁금해 하는 것마다 숨겨진 비화까지 조사해 알려줬으니까.


뽀글뽀글.


커피포트의 물이 끊었다.

오동석이 믹스커피가 담긴 머그컵에 끓는 물을 부었다.

류지호는 믹스 커피 봉지를 반으로 접어 믹스가 잘 녹을 수 있도록 슥슥 저었다.


“믹스는 이렇게 타 마셔야 제 맛이지.”

“하하하. 지금 커피 타 먹는 걸 사진으로 찍어놔야 하는 건데.”

“억만장자가 인스턴트커피 마시는 게 뭐 어때서?

“여기 사람들이 비위생적이라고 또 교양 없다고 손가락질 할 겁니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자주 보면 또 적응을 하더라.”

“......?”

“유럽에서 <REMO> 로케이션 할 때 자주 타마셨거든.”

“할리우드는 바리스타까지 섭외해서 현장에서 커피 내려주는 거 아니었습니까?”

“감독이나 톱스타가 원할 때나 그렇지. 난 귀찮아서 믹스 커피 싸가지고 다니면서 현장에서 뜨거운 물 붓고 그냥 타 마셨어. 신기해하는 스태프도 있고, 특유의 달달한 맛에 중독된 사람도 있고 그랬지.”

“저는 가온그룹이 커나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하루하루가 진짜 즐겁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감독님이 있고 제가 잘 보필하는 것이 제 기쁨이죠.”

“커피 올라올 것 같아. 보필 같은 이상한 표현 쓰지 마.”

“고맙습니다. 감독님.”


요즘처럼 즐겁고 살만 나는 시기도 없었다.

류지호는 생명의 은인에 버금가는 귀인 중에 귀인이다.


“내가 형 처음 영입할 때 뭐라고 했는지 까먹었어?”

“어떻게 잊을 리가 있겠습니까.”

“겨우 Loews 정도에 만족하는 거야?”

“......”

“전 세계 5만 개 스크린을 보유한 최고 멀티플렉스 브랜드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

“작년 전 세계 스크린 수 총합이 10만 개가 될까 말까 합니다.”

“남미, 중국, 동유럽 먹으면 얼추 맞춰지겠지.”

“감독님 그릇에 기준을 맞추지 말아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스크린 1만 개만 넘어도 비용 때문에 수익을 낼 수 없다.

무턱대고 극장 브랜드를 인수·합병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류지호가 단숨에 커피 잔을 비우고 말했다.


“비도 오고 하니 막걸리가 갑자기 당기네.”

“낮술 괜찮습니까?”

“안 될 게 뭐 있어? 어차피 오늘은 우리 둘 다 특별한 일정이 없지 않나?”

“한인타운에 가서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 할까요?”

“이 날씨에 내가 움직이면 수행하는 사람들만 피곤해.”

“제가 얼른 가서 사오겠습니다.”

“호텔에 이야기 하면 알아서 구해다 줄 걸?”

“그런 기행을 벌이면 내일 자 뉴욕 타블로이드에 그 기사로 쫙 도배됩니다.”


류지호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오동석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직접 가게? 비서 시키면 돼.”

“비서가 뭘 알겠습니까. 제가 직접 사오겠습니다.”


오동석은 무려 다섯 시간만에 객실로 돌아왔다.

파전이 포장된 용기와 막걸리가 한가득 들려 있는 봉지를 양손에 들고서.

막걸리는 유통기한이 짧다.

제아무리 한인들이 모여서 장사하고 있는 퀸즈의 한인타운이라고 해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에이든?”


오동석에 이어 에이든 해멀스가 객실로 들어왔다.


“파티 한다며?”

“비 오는 날 한국인들이 주로 하는 일이 있거든.”

“술 마시는 거?”

“응.”

“왜 하필 비오는 날이야?”

“감성이 풍부해지잖아.”

“......”

“넌 언제 캐나다로 돌아가는데?”

“저녁에.”

“같이 마실래?”


오동석이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주방에서 식은 파전부터 데웠다.

미니 바에서 위스키 한 병과 맥주까지 챙겼다.


“폭탄주 말게?”

“저는 와인이나 샴페인은 별로라서.....”

“소주 사오지 그랬어.”

“더럽게 비쌉니다.”

“물 건너 왔으니까 당연히 비싸지.”

“감독님 드실 건 음료수처럼 말아드리겠습니다.”

“출장비 아껴서 어따 써?”

“제가 모범을 보여야 직원들이 흥청망청 출장비 탕진하지 않지요.”

“잘하는 짓이다.”


박건호 대표도 그렇고 최고 임원들은 가온그룹을 직원 10명이 근무하는 중소기업인 줄 착각하는 것 같다.

Loews Cineplex 인수합병으로 자산이 크게 늘어 재계 10위권에 진입하게 생겼는데, 최고경영자라는 사람들이 출장비를 따지고 있다.


“두 사람 영어로 대화를 해주면 안 될까?”

“미안.”


식은 것을 데운 것이라 처음 부쳤을 때의 그 따끈따끈한 맛은 아니었지만, 뉴욕 맨해튼 특급호텔 최고급 객실에서 먹는 파전과 막걸리는 꿀맛이었다.

게다가 색다른 재미는 덤이다.

이 순간만큼은 한 병에 천만 원 가까운 가격을 자랑하는 도멘 르로이 끌로 부조 그랑크뤼 와인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금방 막걸리가 동이 났다.

어느새 오동석이 세 잔의 폭탄주를 만들었다.

얼마나 많이 말아봤는지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다.

영업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랄까.

류지호가 폭탄주 잔을 치켜들었다.


“마시자.”

“건배.”

“치어스!”


맨해튼이 내려다보이는 통유리 맡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세 사람이 폭탄주를 즐겼다.


“Jay, 혹시 낚시 좋아해?”

“매튜와 가끔 플라이 낚시를 하러 가는 정도.”

“바다에 한 번 나가보지 않을래?”

“어디 바다?”

“대서양으로 나가도 되고, 밴쿠버섬에서 태평양으로 나가서 대물과 승부를 겨뤄 봐도 좋고. 바다가 부담스러우면 온타리오 호수에서 즐겨도 나쁘지 않고.”

“난 낚시 라이선스가 없어.”

“괜찮아. 발급 받는 절차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아.”


오동석이 조심스럽게 말을 얹었다.


“저기 혹시 말이야.... 에이든도 요트 있어?”


뭘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대답하는 에이든이다.


“응.”

“전용기도?”

“비즈니스 제트기는 아직 없어. 급하게 필요할 땐 아버지에게 말해서 빌려 타고 있지.”


류지호가 오동석의 술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치며 말했다.


“형, 에이든이 가진 슈퍼요트는 어지간한 소형 제트기 가격에 맞먹어.”


업계에 따라 슈퍼요트 기준을 20미터, 24미터 또는 30미터 이상으로 분류한다.

국가마다 기준을 달리하기도 한다.

에이든 해멀스가 소유하고 있는 슈퍼요트는 170피트(약 51m)짜리다.


“왠지 나만 서민인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은인가...”


절대 아니다.

오동석은 GOM Cinemas International 사장이 되면서 34억 7천 만 원의 연봉을 보장받았다.

오성전자 등기이사 평균 연봉 수준이다.

사실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 임금으로는 많은 편은 아니다.

다만 Loews Cinplex가 안정화되고 글로벌 극장사업의 매출이 오르게 된다면 두 배 이상 껑충 뛰어오를 수도 있다.


“전 세계 5만 개 스크린을 보유한 멀티플렉스 체인으로 만들어 봐. 미국 100대 기업 CEO 평균 연봉 이상 주라고 할게.”


지난해 미국 100대 기업 CEO 평균 연봉은 710만달러(약 82억 원) 수준이다.


“내가 앓느니 죽는다, 아주.”

“그거 꼭 이루고 죽어.”

“죽지도 못하겠습니다.”

“뭐 한 게 있다고 죽네마네 하고 앉아 있나, 사람이 말이야!”


그때 티노 곤잘레스가 다가와 류지호의 귀에 대고 뭔가를 보고했다.


“전용기, 요트 다 가진 사람이 찾아왔네.”

“그게 누군데?”

“잠시만 기다려 봐.”


류지호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서 객실 현관으로 걸어갔다.

경호원 말릭이 열어준 문을 통과해 백인 남자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류지호를 발견하자마자 다짜고짜 포옹인사를 했다.


“오랜만이다, Jay."

"연락도 없이 어쩐 일이에요?“

“내일 뉴욕을 떠난다고 해서..... 실례가 된 건 가?”

“친구들과 작은 파티를 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나도 낄 수 있을까?”

“친구들과 인사부터 나누세요.”

“실례하지.”


류지호가 백인남자를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와는 사적으로 친밀한 사이는 아니다.

의형인 매튜 그레이엄 소개로 안면을 튼 정도.

그렇다고 홀대한 만한 인물도 아니다.

161년 역사를 자랑하는 멜란 가문의 상속자이자, 나름 유명 투자자이기에.

남자는 예전에 뉴욕 선상 파티에서 인연을 맺은 제이크 말론이었다.


“퀘벡의 해멀스 가문의 장자, 에이든.”


제이크 멜란이 실실 웃으며 에이든에게 말했다.


“우린 구면이지?”

“매튜와 함께 파티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여기는 나와 형제처럼 지내는 GOM Cinemas International CEO 동석 오.”


오동석을 만만하지 여기지 못하도록 일부러 형제라고 표현했다.


“만나서 반가워.”

“예. 저도 반갑습니다.”


제이크 멜란이 술자리에 합류하면서 2차가 시작됐다.

오동석의 폭탄주가 낯설 만도 하건만 제이크 멜란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파티 마니아로써 별의 별 폭탄주를 모두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명문가의 이슈메이커.

뉴욕 사교계의 망나니.

멜란가문의 수치.

이 부끄러운 별명들이 모두 제이크 T 멜란을 지칭했다.

한때 매튜 그레이엄과 함께 미국 동부 명문가의 골칫덩어리로 쌍벽을 이뤘다.

매튜 그레이엄은 마약으로 죽을 뻔 했다가 재활에 성공해 수렁에서 벗어났지만, 제이크 멜란은 여전히 그 수렁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대니얼 할아버지 말대로라면 제이크는 명문가 일원의 자격이 없는 건가?’


멜란가문은 피츠버그에서 금융업과 법조계에 몸담고 있는 명문가 중에 명문가다.

그런 명문가의 장손이 바로 제이크 T 멜란이다.

처음부터 그가 가문의 장손으로 인정받았던 것은 아니다.

18세가 될 때까지 자기가 멜란가의 상속인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어릴 때 어머니가 이혼을 하면서 평범한 소년으로 키워졌기 때문이다.

제이크 멜란이 펜실베니아 대학에 입학하고 만 18세가 되었을 때 뜻밖의 통보를 받게 되면서 자신의 뿌리를 알게 됐다.

멜란가문이 들어 둔 트러스트펀드를 상속 받으라는 통보였다.

그것도 무려 2,500만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의 펀드였다.

트러스트 펀드는 미국의 부호들이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줄 때 들어두는 일종의 보험이다.

후손이 너무 어린 나이에 상속 받게 되는 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만 18세라는 조건을 걸어둔다.

종종 결혼이나 직장생활 등의 조건을 붙이기도 한다.

트러스트 펀드를 받은 후로 제이크 멜란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재벌 2세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게다가 18세에 받은 트러스트펀드는 일부에 불과했다.

가문에서 그의 앞으로 들어놓은 상속 펀드가 무려 12개나 남아 있었다.

이후로 벼락부자가 된 평범한 청년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보여주는 삶이 펼쳐졌다.

첫 번째 트러스트펀드를 수령한 후 한 일이 대학교 앞에 침실이 10개인 대저택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친구들에게 아낌없이 돈을 쓰며 살기 시작했다.

졸부가 되자 온갖 인간군상이 몰려들었다.

매일 밤 파티를 벌이며 흥청망청 돈을 탕진하기 시작했다.

알코올과 섹스에 이어 마약에 취했다.

정해진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비달사순의 공동창업자의 딸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남편 제이크 멜란과는 다르게 능력이 있던 부인은 말레이시아 구두 디자이너와 함께 J·CHOO라는 회사를 설립해 사업가로 인정을 받았다.

반면에 제이크 멜란은 미국과 처가의 나라인 영국 양쪽 사교계에서 최악의 평판을 받았다.

그의 부인은 뛰어난 사업적 수완으로 런던을 시작으로 전 세계 32개국 115개의 매장을 가진 고급 구두 브랜드를 일궈냈다.

부인이 자신의 구두 브랜드를 명품반열에 올려놓을 정도로 노력하는 동안 제이크 멜란은 못난이처럼 부인을 졸졸 따라다니거나 미국과 유럽의 부자집 자녀들이 모이는 스페인의 이비자라는 휴양지에서 화려한 파티를 벌이며 지냈다.

이비자에서까지 마약딜러를 초청하는 막장을 자행하며 국제적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파티와 마약에 찌들어 살다가 부인의 간곡한 설득으로 남성용 고급신발 브랜드를 런칭했다.

딱 1년 만에 말아먹는 대단한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

여기까지가 류지호가 알고 있는 제이크 멜란의 삶이다.

매튜 그레이엄에게 들은 더 기가 막힌 사연도 많았다.

깊은 인연으로 나아갈 것 같지 않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 자질구레한 에피소드는 기억에 없었다.


“난 현재 최악이야.”


술기운이 오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제이크 멜란이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속내를 드러냈다.


“Jay와 에이든은 내가 몇 년째 코카인에 중독된 상태라는 걸 알고 있겠지.”

“.....”

“아내와 별거 중이야. 아이를 만나고 싶은데 허락해 주지 않아. 아마 얼마 안 가서 이혼 통보를 받게 될지도 모르겠어.”


에이든 해멀스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재활센터에서 약물치료 프로그램을 받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나도 여러 번 코카인을 끊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제이크 멜란은 약물중독 재활원을 들락거리며 생활하는 중에도 상속받은 250억 원 가운데 상당한 돈을 마약과 파티로 탕진했다.

또 별거 중인 상태로 주위의 비난과 조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인이 설립한 회사 J·CHOO의 지분까지 요구하는 뻔뻔함을 보이고 있다.


“아내의 집을 도청하다 구속당하는 못난 행동도 저질렀고.”

"......"

“내가 요즘 좀 힘들어."


이런 말로 시작되면 보통 돈 좀 융통해 달라는 이야기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매튜에게 네 얘기 많이 들었다.”

“무슨 얘기요?”

“그 놈은 나와 같이 마약을 하고 놀았어.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변했지.”

“죽을 고비를 겪었으니까요.”

“스스로 통제가 안 될 정도야. 정말 마약 중독이 심각해.”

“그럼 중독센터를 찾아가야죠.”

“후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이 들락날락거렸는지 몰라.”

“....”

“숨쉬기.... 나도 알려줘.”

“....?”

“매튜에게 알려준 hypogastric breathing(단전호흡)을 내게도 알려줘.”

“뉴욕에도 태극권이나 단전호흡을 교습하는 센터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매튜를 정신 차리게 한 그 방법이 내겐 필요해.”


매일하고 있는 단전호흡이 무협지에서 나오는 특별한 심법도 아니고.

한국의 단전호흡 수련원 아무 곳에나 가면 알려주는 호흡법이다.

류지호는 호흡이 생활에 일부가 되었기에 매일 하고 있지만, 매튜 그레이엄은 열심히 하지도 않는다.

매튜 그레이엄의 극적인 변화는 단전호흡 때문이 아니다.

삶의 목표와 태도가 변했기에 마약과 방탕한 생활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부자가 되었으니 즐기면서 살고 싶고, 부는 계속 유지하고 싶고. 이미 마약에 중독되어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류지호의 묵직한 목소리가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와 섞였지만, 제이크 멜란의 귀에 또렷이 박혔다.


“아무도 대신 내 인생을 살아줄 수 없어요. 본인이 마약중독자가 된 것은 본인이 선택한 겁니다. 갑자기 돈이 생겼다는 핑계나 잠시 방황했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어요.”


에이든 해멀스는 캐나다 금융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가문의 일원이다.

그라고 트러스트 펀드가 없을까.

마약이나 음주, 문란한 파티 대한 유혹이 없었을 리가 없다.

가정교육을 잘 받았다.

UCLA에서 함께 방을 써봐서 잘 알고 있다.

매우 건전한 취미생활을 가지고 있다.

비록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는 취미지만.

차라리 마약보다는 수백 억 달러짜리 호화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 대형 물고기와 힘싸움을 벌이는 것이 백번 나았다.

상속 부자 가문의 자녀라고 할지라도 모두가 방탕한 건 아니라는 거다.


“부자가 되는 건 어쩌면 쉬울지도 몰라요. 복권에 당첨된다거나 스포츠 토토로 대박을 맞을 수도 있고, 주식투자로 대박을, 물려받은 부동산이 오를 수도 있어요. 제이크처럼 부모가 들어둔 트러스트 펀드를 받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걸 죽을 때까지 별 무리 없이 운영하는 건 힘들고, 당대의 이룬 부를 대를 이어 유지하는 건 더 힘들지요. 당신은 멜란가의 장손이에요. 당신은 내 의형인 매튜와 달라요. 매튜는 삐뚤어졌던 겁니다. 반면에 당신은 그냥 신나게 한 평생 놀다 가고 싶은 거죠. 티벳의 고승을 만나 어떤 현명한 충고를 들어도, 인도에서 저명한 요가승에게 가르침을 받아도 제이크는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제이크 멜란이 울적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가망이 없다는 거야?”


작가의말

장마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별 탈 없이 지나가길 기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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