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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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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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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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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류지호가 너무 매정하게 말해서 에이든과 오동석이 움찔할 정도다.


“난 약물중독 치료전문가도 아니고, 현자도 아닙니다. 호흡 방법을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그것이 마약중독을 치료해주고, 제이크의 생활을 바꿔주진 않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어요.”

“매튜는 해냈잖아.”

“제대로 살고자하는 의지가 있었어요.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명확하게 인지했고.”

“......”

“제이크는 어떻습니까?”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제이크는 갑자기 위스키 병을 집어 주둥이 대고 벌컥벌컥 마셨다.


“보스, 그만 파장해야 할 분위기 같은데....”

“안 말려?”


병나발을 불었던 제이크 멜란이 빈 위스키병을 내려놓고 미니바로 향했다.

불안해하는 두 사람에게 류지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별 일이야 있으려고.”


오동석과 에이든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막노동 현장에서는 막걸리 한 주전자 비우고 일해.”

“그러다 사고 나지 않아?”


류지호가 오동석에게 핀잔을 줬다.


“사고 나지. 왜 안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오동석이 아랑곳하지 않고 에이든에게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암튼 중요한 건, 점심 먹을 때 막노동판에서 괜히 술을 마시는 게 아냐. 막노동이라는 것이 너무 힘들거든. 오후에 일 할 때 힘을 바짝 끌어올리려면 술기운이라도 빌려야 하는 거지. 밖에서 보면 술에 취해 일한다고 욕할지 모르지만 막노동 하는 사람들은 절대 술에 취할 정도로 마시지도 않아. 그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그것과 제이크가 폭음하는 게 무슨 연관성이 있어?”

“냉철하고 냉정하게 사는 것도 좋지만 때로 이런 일탈도 필요하지 않을까? 정신 건강을 위해서.”

“아무데나 막 갖다 붙이는 것 같은데?”


제이크 멜란이 위키스 한 병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봐. 친구들! 이 정도 가지고 몸을 사리진 않겠지?”


그렇게 해서, 두 병째 위스키 병을 개봉했다.

제이크가 류지호의 언더락스에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


“네가 공사현장에서 막노동을 했다고?”

“아니요. 여기 미스터 오가 해봤죠.”


오동석이 냉큼 말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군대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많은 학생들이 공사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입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나도 트러스트 펀드를 받기 전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파트타임을 뛰곤 했지.”

“보스는 십대 시절 신문을 돌렸습니다. 정말 열심히 해봐야 당시 환율로 55달러 받았을 겁니다. 맞나.... 5만 원 정도?”


류지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첫 달은 그것도 못 받았어.”


제이크 멜란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물었다.


“Jay가 신문을 팔았다고?”

“평균 100부 정도 배달했던 것 같네요.”

“트러스트 펀드 베이비가 아니었나?”


당연히 트러스트 펀드를 상속받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뉴욕 사교계에서 파커의 장학생이란 이야기가 매우 신빙성 있게 떠돌기도 했고.

이미 10대 시절부터 물가 비싼 맨해튼에서 명품으로 몸을 휘감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운전기사가 딸린 리무진을 타고 다니는 것이 자주 목격되었으니 충분히 오해를 할 법도 했다.

참고로 트러스트 펀드 베이비(Trust Fund Baby)는 한마디로 부모를 잘 만난 덕에 돈 걱정 없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젊은이들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올 해 초 선댄스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한 편이 공개되었다.

바로 <Born Rich>라는 작품이다.

모두 12명의 금수저들과 인터뷰했는데 이전 삶에서 미국의 대통령까지 된 부동산 재벌의 딸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부자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더라도 자식들의 미래에 지장이 없도록 자녀들이 어릴 때 트러스트 펀드를 반드시 만들어놓는다.

조부모가 손자들을 위해 만들어놓는 경우도 있다.

그렇듯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들어 둔 신탁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들을 일컬어 트러스트 베이비라고 조롱을 담아 표현한다.

서양의 관용구인 born with a silver spoon in his mouth(은수저 물고 태어난)와 비슷하게 쓰이지만, 트러스트 베이비는 좀 더 노골적인 멸시가 담겨 있다.


“아버지는 공장 노동자였습니다. 한때 뉴욕 사교계에서 럭키가이라고 불렸던 것 잊었어요?”

“아, 그랬지. 파커가의 행운아!”

“제이크씨와 비슷하다면서 다르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에이든 해멀스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버지가 그랬어. 에드워드 버펫, 잭 월치. 샘 월튼, 디즈니 같은 부자들의 공통점이 한 때 신문배달원으로 일했다는 거라고.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포브스에서 미국 부자 500명을 조사해 봤는데 그들 중에 신문배달을 한 사람이 많았다나봐.”


20세기 자수성가한 부자들은 어릴 때부터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반면에 21세기 부자들은 엘리트 교육을 받은 후에 아이디어를 통해 투자를 받아 일약 부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후우. 너는 나보다 더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는데, 공허한 마음이 들 때는 없어?”

“공허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하루 24시간도 모자란데.”


풋.


에이든 해멀스가 마시던 위스키를 뿜을 뻔했다.


컥.


오동석은 숫제 사례가 걸렸다.

류지호가 얼마나 지독하게 살아가는지 잘 알기에.


“어설프게 가지고 있어서 그래요. 아마 나만큼 딸린 사람이 많으면 절대 마약 같은 것에 손 못 댈 걸요? 아이들 보기에도 부끄러워서 딴 짓 할 마음도 없을 겁니다.”


류지호가 자식을 들먹여서 그럴까.

제이크 멜란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젠장!”


류지호가 통유리로 된 창문 쪽으로 몸을 틀었다.


툭툭.


언더락스를 한 모금 마시며 창문 너머로 잦아드는 빗줄기를 바라봤다.

제이크 멜란이 상속받은 트러스트 펀드는 18세에 받는 것과 21세, 31세에 받는 것으로 나눠져 있다고 했다.

보통 트러스트 펀드는 법적인 성년이 되면 그때부터는 자신들이 직접 맡아서 어떻게 투자나 운용을 할지 결정할 수 있다.

제이크 멜란이 상속받은 돈을 모두 탕진한 것은 아니다.

500만 달러를 여러 곳에 분산해서 투자해 두었다.

나름 짭짤한 수익을 거둔 것도 있다.

마약 문제와 여성편력 등에서 망나니가 따로 없지만, 투자에 있어서는 꽤나 감각과 소질이 있다고 들었다.

독선에 빠지지 않고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확신이 있는 것에 적극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통해 똘똘한 투자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나.

물론 멜란가문 종손이라는 타이틀이 있었기에 두루두루 인맥을 쌓을 수 있었겠지만.


‘내가 마약중독자 재활전문도 아니고 누굴 호구로 아나....?’


순수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마약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단전호흡법을 배우려고 한다?

천만에 말씀이다.

류지호에게 달라붙어서 뭔가 얻어내고 싶은 꿍꿍이가 있다.

아내와 별거 중인 상황에서 얼마 안 가서 이혼통보를 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제이크 멜란이다.

아내의 회사 주식을 달라고 생떼를 쓰고 있는 상황이다.

구제불능이다.


‘매튜 형처럼 홍 관장님에게 데리고 갈까? 관장님이 요즘 소일거리도 없고 심심하다고 하시던데....‘


매튜 그레이엄과도 제법 잘 지냈던 홍 관장이다.

제이크 멜란이라고 못 다룰 이유가 없다.

도장 운영에서 손을 뗀 후로 소일거리를 찾고 있기도 했고.


“혹시 나와 함께 한국에 가보겠어요?”

“한국에?”

“내게 숨 쉬는 법을 가르쳐주신 마스터를 소개시켜 줄 수 있어요.”

“....음.”


제이크 멜란은 즉답을 삼갔다.

류지호도 그냥 던져 본 말이다.


“......”


이후로 네 사람은 특별한 대화 없이 위스키 한 병을 비웠다.

비가 완전히 그치고 술자리도 파했다.

류지호는 일부러 술기운을 날려버리지 않았다.

오랜 만에 취한 기분을 즐겼다.


“레오나는 트러스트 펀드로 얼마나 받았으려나....?”


멜란가문이 미국의 5대 상속가문에 속하지만, 파커가문에 비할 바가 아니다.

파커가문은 21세기에 들어서며 최고 부자가문으로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니까.

류지호가 벌이는 사업에 투자하면서 엄청난 이득을 챙겨가고 있다.


‘제이크가 받은 펀드 규모의 두 배는 받지 않을까 싶은데....’


미국에서 트러스트 펀드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10대~20대인 것은 아니다.

트러스트 펀드 베이비가 주로 그 연령대를 가리키는 호칭이 된 것은, 돈을 관리할 줄은 모르고 쓸 줄만 아는 갓 성인이 된 이들이 흥청망청 돈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종종 18세가 되어 물려받은 돈을 30세가 되기도 전에 모두 날려버리는 트러스트 펀드 베이비들이 있다.

언제고 돈이 남아있을 것이라 안일하게 생각하고 물쓰듯 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전체 금액을 인출할 수 없도록 제약을 걸어두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평생 연금처럼 일정 금액만 받도록 하는 라이프타임 트러스트 펀드가 부자들 사이에서 인기다.

류지호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G&P의 부자를 위한 집사서비스에서 처음 연금형 트러스트 펀드가 만들어진 이후, 맡겨놓은 돈을 G&P가 굴려주며 미성년자 고객에게 매달 용돈처럼 지급되는 상품이 꽤 인기가 높다.

용돈이라 표현했지만, 웬만한 직장인의 연봉에 육박하는 경우도 있다.

뉴욕 맨해튼, 센트럴 파크의 동쪽에 자리한 세계 최고의 부촌을 배경으로 명문 사립고등학교에 다니는 상류층 아이들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TV시리즈 <가십걸>의 등장인물들이 바로 트러스트 펀드 베이비의 모습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가만! <가십걸>....?”


불현듯 다솜방송이 제작할 만한 드라마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강남의 상류층이 다니는 사립고등학교.

그 곳에 반골기질의 학생이 입학하게 된다.

상위 10%에 들어야만 입부자격이 주어지는 방송부와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의해 입부자격이 주어지는 도서부간의 라이벌 의식과 우정 그리고 풋내 나는 사랑까지.

입시지옥에 던져진 고등학생의 학창시절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제도와 부의 불평등으로 교육의 기회에 차별이 생기는 한국의 현실을 꼬집는 드라마가 불현 듯 떠올랐다.


‘2000년 대 판 <스카이캐슬>이겠는데....?’‘


생각이 떠오른 김에 비서실장 제니퍼 허드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 다큐멘터리 <Born Rich> 말이십니까?

“DVD가 출시됐다면 그걸로 부탁해요.”

- 예. 보스.

“그리고 소설 <가십걸>이 출판되었는지 판권이 팔렸는지 알아보고 구매할 수 있으면 구매하도록 하세요.”

- 말도 마세요. 보스.

“......?”

- 요즘 십대들에게 인기가 많은 소설이에요. 동성애, 욕설, 마약, 음란한 성애 묘사로 우리 애들이 너무 깊이 빠져드는 것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그렇군요.”


소설 <가십걸>은 작년 4월에 1권이 출판되었다.

매년 한 권씩 출판되어 모두 13권이 나오게 된다.


“JHO 파운데이션에서도 트러스트 펀드를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죠?”

- 예. 후원 학생 중 특별한 이들을 선별해서 매달 일정 금액이 돌아갈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자세한 내역을 보고서로 작성할까요?

“그래줘요. 이참에 한 번 살펴보고 싶네요.”


JHO 자선재단은 특별히 관리하는 장학생 일부에게 트러스트 펀드를 어릴 때 들어주고, 40세부터 매달 연금처럼 탈 수 있도록 해줬다.

트러스트 펀드 베이비들이 받는 것처럼 큰돈은 아니다.

다만 JHO 장학생들에게는 든든한 비상금 역할을 해 줄 터.

JHO Company에 우호적이고 충성스러운 인재들을 관리하는 방법 중 하나다.

통화를 마친 류지호가 다시 통유리 창가로 향했다.

먹구름이 물러나고 맑게 개는 맨해튼의 하늘을 감상했다.


‘갑자기 녀석들이 보고 싶네.’


모두가 뭉쳐서 술 한 잔 한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했다.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당장 불알친구들을 소집하기로 마음먹었다.

인천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 중에 결혼한 녀석들은 부부동반으로 자주 어울린다고도 하고, 따로 모임을 만들어 애경사를 반드시 챙겨주며 끈끈함을 과시한단다.

이전 삶에서 후회되던 것 중에 하나가 불알친구들에게 소홀했던 것이다.

친구들이 경제적인 면에서 안정이 되면서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면에서도 무심했던 것 같았다.

두 번의 삶을 산다고 해서 류지호가 초인(超人)이 된 것은 아니다.

단단한 다이아몬드 멘탈 소유자도 아니다.

때때로 향수병을 앓기도 한다.

지독한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다.

영화 한 작품을 끝낼 때마다 밀려오는 공허함 때문에 남몰래 독주로 달래기도 한다.

말이 필요 없는... 그저 묵묵히 함께 대작해줄 불알친구들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고우찬을 괜히 한국 근무로 못 박았나 싶은 후회를 해보는 류지호다.


❉ ❉ ❉


미국에서 일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

이미 수행원들이 호텔 체크아웃을 했고 짐도 먼저 싣고 떠났다.

청바지에 운동화, 캐주얼 재킷 차림으로 백팩을 한쪽에 걸친 채 류지호가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Jay!"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류지호가 반사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

명품정장을 갖춰 입은 제이크 멜란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제이크 멜란이 대뜸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류지호가 떨떠름하게 그의 손을 맞잡았다.


“가자!”

“......?”

“한국으로!”

“......?”

“케네디 공항에 비즈니스 제트기를 대기시켜놨어.”


제이크 멜란은 한때 개인 전용기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의 부를 과시했다.

대부분의 재산을 탕진한 현재는 아니다.


“너의 태권도 마스터를 만나보고 싶어. 너의 조국도 구경하고 싶고.”

“....?”

“The Land of Morning Calm!”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개뿔....’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매튜 그레이엄으로부터 온 전화다.

용건만 간단하게 통화를 마친 류지호의 미간에 깊은 골이 생겼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꼴인가.....'


괜히 한국에 가자고 했다가 귀찮은 꼬리를 달게 생겼다.


“갑시다. 가!”


어차피 한국에 들어가면 제이크 멜란과 함께 다닐 일은 없다.

한국에서의 일정이 매우 빡빡했기에.

한 동안 연달아 영화를 찍어야 했다.

때문에 한국 사업의 굵직한 사안들을 처리해 두어야 했다.

한가하게 제이크 멜란과 노닥거릴 여유 따위는 없었다.


“제이크의 짐과 임대했다는 비즈니스 제트기 꼼꼼하게 살펴보세요.”


경호팀이 철저히 수색을 했지만, 마약 같은 금지물품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류지호 일행은 제이크 멜란이 임대한 비즈니스 제트기를 타고 편안하게 한국에 올 수 있었다.

한국까지 비행하는 동안 류지호와 오붓하게 대화를 나눌 줄 알았다.

제이크 멜란의 착각이었다.

류지호는 시차가 바뀌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REMO> 최종편 콘티 작업에 매달렸다.

옆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를 정도로 집중하는 류지호를 보며, 제이크 멜란은 질려버렸다.

한국에 입국하고 곧바로 인천으로 향했다.

얼렁뚱땅 제이크 멜란을 홍 관장에게 떠맡겼다.


“이 놈 혹시 약쟁이냐?”

“예.”

“미국에서 이런 놈들만 사귀는 게냐?”

“친구 아니에요. 관장님 소일거리 필요하실까봐서.... 정신 못 차린 사람 한 명 주워왔으니까 매튜처럼 개조시켜 주세요.”

“말은 참 쉽게 한다, 인석아.”


하하하.,


류지호가 멋쩍게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패도 돼? 차려 입은 꼴 보니까 좀 사는 놈 같은데. 나중에 고소하는 거 아니냐?”

“관장님이 직접 가르치시게요?”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내내 붙어 있을 순 없고...”

“제가 책임질 게요. 빡세게 굴려주세요.”

“그러마.”

“만약 마약을 하거나 구하려는 시도를 하면, 관장님이 상대 하지 마세요. 곧바로 나래안전에 연락 주세요. 당장 미국으로 쫒아버릴 테니까.”


제이크 멜란이 홍 관장의 지도를 받는다고 해서 마약 중독이 치료되거나 정신을 차릴 것 같진 않았다.


‘효과가 있다면 전 세계 마약중독자들에게 태권도와 단전호흡을 가르쳤겠지.’


그저 제이크 멜란을 부인과 아이들에게 떨어뜨려 놓으려는 것이다.

별거 중인 부인의 집을 도청했단다.

미국 언론과 사교계로부터 웃음거리가 되고 있어서 입지가 대폭 좁아졌다고 한다.

의형인 매튜 그레이엄은 한때 자주 어울렸던 제이크 멜란이 잠시 미국을 떠나 있길 바랐다.

그렇다고 유럽이나 친숙한 휴양지로 보낼 순 없었다.

이비지의 사례처럼 마약파티로 더 망가질 수도 있었으니까.

그래서 류지호에 부탁했다.

잠시만이라도 한국에서 머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제이크, 당신은 도망 못 갑니다.”

“내가 왜 도망 가?”

“비즈니스 제트기는 미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한국에서는 마약도 못 구할 겁니다. 제 경호원들이 당신을 24시간 감시할 테니까요.”

“뭐, 뭐라고? 이건 약속하고 틀리잖아!”

“어떤 약속도 한 적이 없습니다만.”


태권마스터에게 데려다 준다는 것과 호흡법을 알려줄 고수를 소개시켜준다는 약속을 지켰으니까 된 거다.


“내 카드까지 빼앗는 건.... 네게 그럴 자격은 없어!”

“어쨌든 제이크는 X된 겁니다. 그것만 알아두세요.”

".....What?"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혹시 내가 죽길 바라는 건 아니지?”

“이번 기회에 아이들이 본인에게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죽더라도... 그건 꼭 이루고 죽길 바랍니다.”


당장에 미국으로 돌아갈 것 같았던 제이크 멜란은 의외로 한국에 잘 적응했다.

새롭고 낯선 나라, 신기한 환경, 접해보지 못한 문화 등.

꽤 즐거워했다.

홍 관장이 유창하진 않지만 더듬거리는 영어로 물었다.


“자네 막걸리 마실 줄 아나?”

“막...?"

“그냥 따라 오게.”


홍 관장에게 술친구가 생기는 순간이다.

경찰에 신고라도 할 기세였던 제이크 멜란은 의외로 얌전했다.

홍 관장에게 단전호흡을 배우면서 틈틈이 태권도를 배웠다.

홍 관장과 함께 문학산에 오르기도 하고, 인천대공원이나 월미도를 구경 다니기도 했다.

은퇴한 제자들과도 어울렸다.

홍 관장의 제자들은 은퇴한 전직 군인, 청와대 경호실 교관 같이 국가를 위해 봉사한 인물이 많았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도 있다.

아프리카 어떤 국가의 대통령 경호원을 지냈던 인물도 있으며, 남미의 태권도 국가대표 감독을 역임한 인물도 있다.

제이크 멜란이 보기에 그들 한명 한명은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었다.


“내가 월남전에서 베트콩하고 싸울 때 말이야. 베트콩을 사살하면 그걸 증명해야 했단 말이지. 그래서 베트콩의 귀를....”

“태권도 교관으로 간 주제에 언제 베트콩과 싸웠다고 그래?”

“내가 아프리카에서 경호실장을 할 때는 그 쪽에 이북의 빨갱이들이 많았어.”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빨갱이 타령이야.”


허풍이 듬뿍 담긴 노인들의 무용담을 듣는 재미가 있었다.

함께 막걸리를 마시며 친해지니, 제이크 멜란은 자신이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점점 옅어졌다.

한국은 낯선 나라다.

전에는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인지 알지도 못했다.

사실은 관심도 없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음식도 제법 맞았다.

몇 주 간 휴가를 보낸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편해졌다.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루는 강남 대로변에 있는 가온그룹 소유의 E-스포츠 플라자를 구경했다.


“이곳이 Jay가 소유하고 있는 곳이란 말입니까?”


나래안전에서 감시자겸 경호원으로 파견 나온 사내가 대답했다.


“빅보스의 소유 회사 중 하나입니다.”


제이크 멜란은 E-스포츠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류지호에게 부탁해 가온그룹의 E-스포츠 사업에 대해 알아보았다.

한동안 E-스포츠 게임이 열리는 경기장을 구경 다녔다.

다솜방송 산하 게임 전문 방송국도 견학했다.

E-스포츠협회나 문화관광부를 들락거리며 관련업계 인물들과도 접촉했다.

멜란가문의 장손을 내세우자, 모두가 협조적으로 나왔다.

투자여력도 없는 껍데기 투자자에 불과하다는 걸 알 리 없으니까.

어쨌든, 현 시점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E-스포츠 시스템을 구축한 나라가 한국이다.

제이크 멜란은 한국의 E-스포츠 시스템을 경험하며 사업구상에 들어갔다.


“이 신세는 미국으로 돌아가 갚도록 하지.”

- 안 갚아도 좋으니까. 미국에서 친한 척이나 하지 말아요.

“자네와는 친구가 되기 정말 힘들군.”

- 난 마약중독자와 친구 안 합니다.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이전 삶에서 제이크 T 멜란은 섹스와 마약 등과 관련해 대중적 이미지가 무척 나빴다.

전형적인 재벌 2세의 모습을 자주 노출함으로써 최악의 평판을 얻었다.

나쁜 모습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혼 후에는 전 부인과도 잘 지냈고, 자식들도 차별 없이 잘 대해주었다.

대형 은행에서 재무위원장을 지냈던 시절도 있었고, 암호화폐라는 기술을 알게 되어 관련 분야에 적극 대응한 점은 인정해 줄만 했다.

이전 삶에서는 비교적 54세라는 이른 나이에 약물중독으로 사망했다.

당시에 암호화폐를 통해 10억 달러를 벌었다.

이전 삶에서는 방탕한 삶과 철저한 투자자의 삶이라는 양면성을 가졌던 인물.

200만 달러로 10억 달러를 벌어들여 포브스에서 선정한 암호화폐 부자 순위 5위에 들기도 했던 인물.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할리우드 영화로 기획되기도 했다.

류지호와 인연을 맺은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매튜 그레이엄처럼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운명에 굴복해 이전 삶의 인생 굴곡을 그대로 반복하게 될지.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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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 잘 됐으면 좋겠다. 다들! (1) +2 23.06.28 2,878 108 26쪽
»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3) +4 23.06.27 2,840 105 22쪽
537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2) +4 23.06.26 2,880 111 26쪽
536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1) +5 23.06.24 3,011 115 24쪽
535 전성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3) +9 23.06.23 3,026 116 27쪽
534 전성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2) +9 23.06.22 2,947 115 26쪽
533 전성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1) +5 23.06.21 2,967 124 24쪽
532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6) +8 23.06.20 2,990 108 24쪽
531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5) +3 23.06.19 2,985 118 25쪽
530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4) +3 23.06.17 2,998 117 25쪽
529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3) +4 23.06.16 2,958 123 26쪽
528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2) +5 23.06.15 2,961 115 24쪽
527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1) +2 23.06.14 2,941 113 23쪽
526 자기 사람은 진짜 잘 챙기는 것 같아. +5 23.06.13 2,979 116 26쪽
525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솔직히 잘 몰라요. (2) +3 23.06.12 2,920 119 24쪽
524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솔직히 잘 몰라요. (1) +8 23.06.10 3,052 115 26쪽
523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 (2) +3 23.06.09 2,969 112 24쪽
522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 (1) +2 23.06.08 2,967 109 23쪽
521 Zombie Apocalypse. (2) +4 23.06.07 2,903 110 23쪽
520 Zombie Apocalypse. (1) +6 23.06.06 2,961 108 23쪽
519 가진 것은 없어도 가치 있게 살아라. +10 23.06.05 2,977 107 24쪽
518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넘어진다. (2) +5 23.06.03 3,011 113 24쪽
517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넘어진다. (1) +4 23.06.02 3,040 105 24쪽
516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3) +6 23.06.01 3,042 109 26쪽
515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2) +4 23.05.31 3,128 110 25쪽
514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1) +5 23.05.30 3,173 109 23쪽
513 잘 참으셨습니다. +6 23.05.29 3,172 123 25쪽
512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2) +5 23.05.27 3,249 119 24쪽
511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1) +7 23.05.26 3,187 11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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