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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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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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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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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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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예술창작품이 어떻게 시장에서 상품으로 취급될 수 있느냐는 시각 때문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압니다. 문화발전을 위해서는 문화의 산업화가 오히려 문화의 시장을 확대하고 다양한 문화매체를 발전시키는 촉진제가 된다는 사실을요. 앞으로 똑같은 장소에서 공연을 펼치거나 영화를 상영하거나 전시회를 연다고 해서 관객이 알아서 찾아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질 겁니다. 그렇다면 예술과 문화가 관객에게 찾아가거나 오도록 유인해야겠지요. 공연장이 옮겨 다닐 수도 없고, 극장이 관객을 찾아다닐 수도 없습니다. 연극 쪽에서는 최근 호객꾼 문제로 골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대학로가 호객꾼 문화로 인해 골치를 썩기 시작했다.

특히 개그쇼 호객꾼들로 인해 연극계와 마찰을 빗고 있다.


“한국의 연극계는 잘 모르지만, 제가 할리우드나 브로드웨이는 좀 압니다. 사실 그 쪽이 무조건 정답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수십 년 간 만들어낸 시스템은 후발주자인 우리에게 많은 걸 알려줍니다. 그들이 모범적으로 행하는 것들을 우리식으로 변형해서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예술 종사자들은 대자본이 또 재벌이 하는 건 뭐든 나쁜 일이고 시장논리를 우선하기 때문에 나머지를 싸그리 죽여 버린다고 생각합니다. 툭 까놓고 말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대다수 분들은 이미 각자의 분야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스크린쿼터 지켜야지요. 사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영화계 선배님 가운데 비둘기들의 둥지에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시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시는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인터넷 모임에서 시작한 비둘기들의 둥지는 영화산업노조를 지향하고 있다.

영화 스태프 조수들이 연대해서 시작한 이 모임은 일부 젊은 감독과 촬영감독 등 소수의 감독급 영화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목소리를 키워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스스로를 강남좌파든, 중도 개혁주의자든, 진보 지식인이라 주장하면서 왜 정작 자기 일터의 약자들인 조수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기는커녕 그 흔한 지지조차 보내는 이가 드물까.


“영화 분야의 산업화라는 말에는 노동의 전문화, 노동조합의 법률적 인정만 있습니까? 투명하고 효율적인 경영도 포함됩니다. 따라서 시나리오, 감독, 배우, 스태프 등 모든 분야에서 전업구조가 정착될 수 있도록 개선되어야 하죠. 배급구조 또한 개선될 필요가 있긴 합니다. 현재와 같이 지나치게 투자배급사 중심의 환경에서는 몇몇 블록버스터 흥행영화만 수익성을 높이고 다양성 영화를 비롯한 대부분의 일반적인 영화의 설자리를 잃게 만들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 표준상영계약서, 스크린 독과점과 같은 업계의 룰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불쑥 고유현이 질문을 던졌다.


“류 감독은 영화산업에서 스태프들의 노동조합이 만들어지는 것에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까?”


류지호는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이 즉각 답을 내놓았다.


“찬성합니다.”


영화인들이야 익히 아는 사실이니 별로 놀라지 않았다.

대신 다른 분야 예술인들이 놀랐다.


“......!”


고유현 후보는 진심인지 묻는 시선으로 류지호를 빤히 쳐다봤다.

류지호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언젠가 만들어져야 한다면 조금 더 속도를 내줬으면 좋겠습니다.”

“단체행동이라도 한다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당연히 곤란합니다.”

“.....?”

“작년에 미국 작가조합이 파업을 결의해서 할리우드가 난리가 난 적이 있습니다. 작가조합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진 않았지만 석 달 정도 스튜디오들이 패닉에 빠지긴 했었죠. 할리우드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조합인 작가조합과 배우조합의 경우 즉각적으로 파업을 하는 일이 없습니다. 적어도 삼 개월 전에 파업을 예고합니다. 그 사이 메이저 스튜디오와 물밑에서 많은 협상이 벌어집니다.”


노동자들의 파업은 최후의 수단이다.

파국을 맞이하기 전에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에 노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3년에 한 번씩 사용자측에서는 대표적인 조합과 임금인상 등 주요 사안을 협의합니다. 당연히 쉽게 합의를 보지 못합니다. 꽤나 힘든 과정을 거치지요. 그런 과정을 수십 년 째 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는.”

“현재 영화계가 임금 부분에서 턱없이 낮은 걸로 압니다. 스태프들이 단결하면 제작사나 투자배급사의 부담으로 돌아올 텐데, 그래도 좋단 말입니까?”

“다 같이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하지요. 처음에는 많은 갈등과 이해충돌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할리우드 조합은 말입니다. 회원들의 회비로만 복지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소수의 높은 개런티를 받는 회원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에 굴러갑니다.”


사실 할리우드 스타들이 고액 출연료로 탐욕스럽게 비춰지는 면이 있는데, 높은 세금부담도 있지만 조합에 내야하는 회비도 무시하지 못한다.


“할리우드 A-List 작가의 집필료는 대략 500만 달러입니다. 할리우드는 작가료를 받은 작가가 조합에 회비를 내지 않습니다. 제작사에서 지불합니다. 영화사에서 계약금을 작가에게 지불할 때 작가조합으로 들어갈 돈을 뺀 상태에서 작가가 수령합니다. 영화사가 직접 해당 조합에 회비를 보냅니다. 많이 받는 회원이 많이 냅니다. 그것도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많이 냅니다. 적게 받는 작가는 적게 냅니다. 최소 작가료를 받는 작가는 교통요금 정도밖에 내지 않습니다. 작가조합에서 받는 혜택? 많이 내건 적게 내건 모든 회원은 동일하게 받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일부 대형사업장의 노조간부들은 ‘귀족노조‘라는 엉터리 프레임에 진저리를 치겠지만, 노조 간부들의 도덕적 해이나 고용세습 같은 부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조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인과 언론의 행태에 분노하기 전에 한국에서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약 10%밖에 되지 않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도 있다.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것이 기득권과 언론의 세뇌 때문일까.

깊이 들어가면 류지호가 빼놓거나, 과장한 것도 물론 있다.

요점은 많이 버는 사람이 회비를 더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내는 시늉만 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국가가 하지 못하는 복지를 할리우드 직능별 노조들이 일정 부분 떠안는 구조라고 볼 수도 있다.

할리우드 영화인 조합은 회원들 모두가 최소한의 복지라도 누릴 수 있도록 사용자인 메이저 스튜디오와 치열하게 협상해 근로조건을 개선시킨다.

당연히 메이저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프다.

무조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각각의 조합원의 전문성에 대한 신뢰가 담보되는 측면도 있다.

각 조합에서 회원들을 철저하게 관리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쓸 만한 스태프가 없다는 소리가 나올 일이 없다.

스태프들의 전문성 또한 상향평준화 되어 있다.

삐딱하게 보면 스튜디오가 만든 시스템에서 기계부품처럼 쓰인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할리우드 영화가 대체로 고른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밑바탕이기도 하다.

영화 스태프의 권리만 강화하는 것도 아니다.

사용자 측 역시 계약서를 매우 꼼꼼하게 작성해서 책임소재를 칼 같이 규정한다.

자기 일도 아닌데 참견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그렇게 만든 스태프가 책임을 져야 한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로서는 하루 빨리 조합이 만들어져서 돈을 지불하기 아까운 형편없는 스태프를 울며 겨자 먹기로 고용하는 사태가 더는 벌어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한국영화계는 스태프 사이에서 전문성의 편차가 너무 크다.

단적인 예가 포커스풀러 문제다.

기껏 포커스풀러로 키워놨더니 입봉을 해버린다던가, 그 빈자리를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비숙련 촬영팀 조수가 맡게 된다던가.


“전문성이 보장되는 스태프라면 WaW는 대기업 수준의 연봉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근접한 대접을 해 줄 의향이 있습니다. 제가 영화인조수노조를 찬성하는 이유는 그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처럼 제작사 입장에서 상향평준화된 전문인력들이 조합을 통해 공급되고 관리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말을 마친 류지호가 마이크를 진행도우미에게 건넸다.

충무로의 막내부터 기사급 스태프 모두가 전문성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면 영화계의 축복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잘하는 스태프는 진짜 잘하고, 대부분은 기준 미달이다.

충무로 어시스턴트들은 자신 분야의 전문성을 유지·발전시키는 것보다 경력을 빨리 쌓아 디렉터가 되고 싶어 한다.

70억 예산 영화의 인턴급 막내를 했다가 다음 영화에서 세컨 어시스턴트로 가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각 파트의 전문성 기준도 없고, 크레디트 관리도 엉망이다.

분업화도 문제다.

업무 분담이 중구난방이다.


‘더는 그래서는 안 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류지호는 한국영화 스태프들에게 경의와 감사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바뀌어야 할 것은 바꿔야 한다.

일본과 홍콩영화가 침체를 겪는 것에는 스태프들 처우와도 관련이 깊다.

두 나라는 충무로와 마찬가지로 모든 금전적 보상을 투자배급사(제작위원회)가 독식하는 구조다.

인건비 부분에서 소수의 잘나가는 사람들에게만 쥐꼬리만큼 분배되는 구조다.

류지호의 친구 최영웅은 홍콩영화의 마지막 전성기를 홍콩에서 보냈다.

홍콩의 유명한 무술감독들은 자신의 팀원들에게 가야할 돈을 떼어먹기 일쑤란다.

일본에서는 오야붕, 홍콩에서 따거, 한국에서는 오야지라고 불리는.

세 나라 모두 각 파트의 디렉터들이 독식하는 구조다.

그러니 발전적이고 창의적인 활동에 의욕이 생길 리가 없다.

독립영화계를 제외하고 세계 어떤 상업영화판에도 충무로 스태프처럼 헌신적이고 희생을 감수하는 스태프는 없다.

조금만 더 환경을 개선시켜주면 현장에서 날아다닐 인재들이 많다.

어시스턴트로 살고 싶어도 먹고 살기 힘들어 입봉을 해야만 하는 환경.

말이 안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후배이자 조감독인 이동화다.

<복수의 꽃>과 <민중의 적>, <퇴마기록Ⅲ>를 연달아 작업한 이동화는 충무로에서 가장 잘나가는 제1 조감독이다.

서로 데려가려고 경쟁까지 붙고 있다.

왜냐하면 일을 너무 잘한다.

이동화는 어지간한 신인감독보다 수입이 많다.

2년 간 세 편의 영화에서 원천징수 3.3%를 제외하고 대략 5,200만원이 통장에 입금되었을 정도다.


‘동화는 다음 영화에서 2,000까지 올려주고, 한동안 3,000 정도 받게 해주면 되려나? 보너스 좀 챙겨주면 가정을 꾸리기 전까지는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겠지.‘


이전 삶에서 충무로 신인감독 계약에 있어서 2010년까지 3,500만 원에서 크게 오르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어시스턴트가 3,000만 원을 받는 다는 것은 대단한 파격이다.


‘본인이 조감독 생활에 만족하면 그대로 밀어주고, 또 다른 꿈을 갖게 된다면 그것대로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생판 남 챙기는 것보다 내 새끼 먼저 챙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사람에 투자하는 것은 돈을 더 주는 것이 아니다.

그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현실은 환경보다 최소한의 먹고 사는 것부터 해결해주는 것이 먼저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이날 간담회에서 고유현 대통령이 부른 ‘상록수’는 정부 행사에서 비공식 지정곡이 된다.

전 정부들에서는 주로 ‘선구자’가 행사에서 불렸다.

한때 운동권 가요로 금지곡이기도 했던 ‘상록수’는 IMF 외환위기 이후로 국민가요처럼 널리 불리고 있다.

이곡은 원래 결혼 축가로 사용하려고 만들어졌다고 한다.

공단에서 야학하던 커플들이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동거살림을 차려 살고 있었는데, 작곡가와 가수가 공장에서 합동결혼식을 열어줄 때 불러주려고 했단다.

그런 노래가 ‘아침이슬‘과 함께 대표적인 투쟁가가 됐다.

그런 것이 대중 속에서 만들어지는 문화다.

이날 열린 문화예술인과의 간담회에서 문화예술인들이 고유현 후보 지지의사를 밝히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류지호를 의식해서다.

왜 그래야만 했는지 류지호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 ❉ ❉


연말 시상식 시즌이다.

영화인 축제 가운데 그랜드벨 어워즈는 완전히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언론사가 주최하는 양대 영화제 조광영화제와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이 건재한 가운데 작년부터 춘사영화예술상이 전열을 정비해 새출발을 알린 상황이다.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은 올해부터 연극부문 시상을 없앴다.

TV부문에 좀 더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조광영화제는 주최 및 후원 언론사의 평판과 상관없이 신뢰를 상실한 그랜드벨 어워즈를 대체하는 분위기 조성에 애를 쓰고 있다.

두 시상식은 매해 11월과 12월 초에 열리고 있다.

그런데 올해는 12월 중순으로 날짜가 늦춰졌다.

춘사영화예술상을 의식해서다.

언론에서는 조광과 춘사 영화상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과 후보작 면면을 비교하며 경쟁관계를 부추기고 있다.

류지호는 나쁘다고 보지 않았다.

두 영화상이 대놓고 경쟁관계가 형성되길 기대했다.

미국에서는 사회참여나 작품성에 무게를 싣는 골든글로브와 너무나 할리우드적인 아카데미상이 경쟁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서로 영화상의 성격을 명확히 규정함과 동시에 영화팬들에게 다시 한 번 그 해 만들어진 괜찮은 영화와 활약한 영화인을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골든글로브는 외신기자클럽, 즉 전 세계에서 미국으로 파견 나와 있는 특파원 90명이, 아카데미상은 할리우드 영화인 6,000여 명이 수상작을 선정한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리는 1월 말부터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3월까지 후보들을 놓고 영화팬 사이에서 예상과 논쟁으로 뜨겁게 달궈진다.

골든글로브는 TV부문도 함께 시상하고 있다.

그 때문에 에미상과 아카데미 중간에서 어중간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아카데미처럼 대형 공연장에서 시상식이 열리지 않는다.

호텔에서 파티형식으로 치러진다.

심지어 음주가 가능하다.

간혹 술에 취해 수상소감을 말하는 수상자까지 볼 수 있다.

반면에 아카데미 시상식은 규모·권위 모두 세계 최대를 자랑했다.

권위 부분에서는 당연히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영화제 본 시상에 앞 서 일주일간을 오스카 시즌이라고 한다.

각종 전야행사들이 벌어지며 할리우드가 들썩거린다.

1월부터 3월까지 골든글로브가 분위기를 띄우고, 바통을 이어받은 아카데미가 그 분위기의 정점을 찍는다.

그 기간 각종 매체를 통해 쏟아지는 할리우드발 기사와 보도량은 엄청나다.

두 영화제 간 미묘한 신경전과 경쟁관계마저 쇼비즈니스로 만드는 것이 할리우드다.

아무리 영화인들의 축제니 뭐니 해도, 대중의 호응 없이는 그들만의 잔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백원이고 십원이고 간에.... 춘사영화상과 멋있는 경쟁구도가 되길....’


어차피 한국연극영화TV예술상은 오성계열 언론사가, 조광영화제는 백원일보 계열사가 주최하고, 그랜드벨 어워즈는 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겉으로야 영화인들이 참여하는 형식이지만, 주최와 협찬하는 언론사 입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보장하지 못한다.

주최와 협찬사가 대표적인 보수 언론사 두 곳이다.

보수 스탠스의 언론사가 주최 혹은 후원했기에 문제가 아니라, 구태를 구태로 인식하지 못하는 태도 때문에 이전 삶에서는 두 영화상이 최고가 될 수 없었다.

영화상의 권위는 공정하다는 신뢰에서 나온다.

공정은 투명하고 깨끗한 절차에서 보장된다.

어쨌든 류지호는 10년 안에 그랜드벨 어워즈를 대체할 영화상이 자리를 잡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것이 3개의 대표적인 영화시상식 중 어떤 것이 되었든지 간에.

국립극장 레드카펫을 둘러쌓고 있던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찰칵찰칵.


무비스타들이 하나둘 입장하기 시작하자, 사진기자들도 분주해졌다.

류지호가 처음으로 조광영화제에 참석했다.

<복수의 꽃>이 여덟 개 부문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작년 춘사영화제 이후로 국내 영화시상식 참석은 두 번째다.

레드카펫, 포토존 행사 등 사전행사가 끝나고 본 시상식이 열렸다.

약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가 진행됐다.

김혜주 단독으로 진행하던 사회는 올해부터 남자 진행자와 함께 진행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행사진행은 대체적으로 무난했다.

<복수의 꽃>은 촬영상, 여자신인상, 신인감독상 세 개 부문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작품을 수상한 <오아시스>가 출품을 하지 않아 논란이 불거졌다.

이때부터 이창석 감독은 조광영화제 출품을 거부하게 된다.

백원일보 계열에서 이창석 감독의 영화에 대해 지독할 정도로 평가절하를 하는 것도 이 즈음부터다.

반면에 춘사영화예술상은 지난해 11월 25일부터 올해 11월 24일까지 국내에서 개봉한 거의 모든 영화가 출품되었다.

심지어 가장 최근 개봉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민중의 적>도 후보가 될 정도다.

네티즌 투표와 전문가 심사위원단 의견을 종합해 1차 후보작을 선정했다.

다시 후보작 다섯 편으로 압축한 후 1,500명의 춘사영화예술 회원들이 일일이 작품을 감상한 후 평점을 주고 투표를 통해 수상작을 가렸다.

아카데미와 비슷하게 작품상과 공로상을 제외하고 각자 전문분야에만 투표할 수 있게 했다.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춘사영화제는 편파적이라는 시시비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의지가 뚜렷했다.

상을 수상할 배우가 불참해 스태프가 대신 상을 받던 촌극을 연출했던 그랜드벨 어워즈와는 달리 모든 수상자들이 시상식에 참석했다.

수상 가능성이 높지 않은 배우들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심지어 표정들도 무척 밝았다.

기존 영화시상식과 다른 점 중에는 취재진들에 대한 푸대접도 있다.

기존 영화시상식은 취재진을 VIP 대접하듯 하는 관행이 있었다.

춘사영화예술상은 아니다.

단적인 예가 좌석 배치다.

기존에는 수상 후보를 제외하고 좌석배치의 최우선은 항상 기자 차지였다.

반면에 춘사영화예술상은 영화인 위주로 좌석을 배정했다.

영화시상식이 영화인들의 축제라는 점에서 당연한 조치다.

그럼에도 일부 기자들이 보이콧을 외쳤다.

그를 통해 영화인들이 똘똘 뭉치는 빌미가 됐다.

작년 서울지검에서 연예계와 언론계 비리를 수사했다.

그를 통해 영화인들이 기자들의 갑질에 벌벌 떨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가 조금 형성됐다.

또한 춘사영화예술상에는 인기상이란 것이 없다.

인기상이나 흥행상은 한국에만 있는 이상한 시상 부문이다.

그 같은 부문이 존재하는 이유는 별 것 아니다.

더 많은 스타들이 영화제에 참석해 주길 원해서다.

시상식에 참석했지만 빈손으로 보낼 순 없다.

그래서 주요 부문에서 수상하지 못한 배우에게 상을 나눠주려는 의도로 이상한 상을 만들었다.

그 같은 나눠주기 시상식에 권위가 생길 턱이 없다.

춘사영화예술상은 과감하게 기존 영화상 관행을 없애버렸다.

대신 행사 의전을 포함해 세심한 부분에서 최고의 대접을 해주었다.

레드카펫 행사를 위한 대기시간부터 뒤풀이 파티까지 밀레니엄 힐턴 펜트하우스 투숙객 이상의 의전 서비스를 받도록 했다.

연기부문의 시상은 영화의 흥행과 상관없이 연기에서 두각을 나타낸 배우가 주목받게 하고, 감독상 역시 연차나 인맥과 상관없이 그 해 연출력을 증명한 감독에게 주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따라서 조광영화제와 수상결과가 꽤나 엇갈렸다.

조광영화제에서 작품상 포함 다섯 개 부문 수상작인 <취화선>은 감독상과 남자주연상 수상에 그쳤다.

<복수의 꽃>이 촬영상, 조명상, 미술상, 음향상, 시각효과상 등 기술 부문을 전부 석권하다시피 하고 신인감독상과 신인여우상까지 7개 부문을 차지했다.

조광영화제에 출품하지 않았던 <오아시스>는 작품상을 포함해 각본상과 여자주연상을 가져갔다.

화제작 <집으로>으로는 쟁쟁한 영화들 틈바구니에서 상을 챙기지 못했지만, 여러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려 화제작임으로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작품상 부문에서 <취화선>, <복수의 꽃>, <오아시스>가 치열하게 경쟁했다.

세 영화 모두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기에 더 그랬다.

적어도 기술 부문에 있어서 회원들 사이에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복수의 꽃>은 충무로 포스트프로덕션 분야의 혁신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류지호의 완벽주의가 빛을 발한 작품이었으니까.

특히 70mm 포맷을 통해 충무로 영화감독들의 게으르고 무성의한 장면연출에 경종을 울리는 효과도 있었다.


“춘사탄생 100주년 기념공로상 수상자는.... 모두 큰 박수로 축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임선택 감독님.”


비록 <취화선>이 주요 부문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태양영화사 사장과 함께 공로상을 수상했다.

임선택 감독의 이름이 호명되자 시상식에 참석한 거의 모든 영화인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기립박수로 축하해주는 장관을 연출했다.

물론 존경심이 절로 나와서 기립박수를 친 사람보다 아닌 사람이 더 많았다.

적어도 태양영화사 사장은 충무로 바닥에서 큰 존경을 받는 인물까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화려한 기립박수 퍼포먼스가 펼쳐지며 좋은 그림이 만들어졌다.

영화인들에게 가장 빛나고 의미 있는 수상은 작품상도 감독상도 아니다.

바로 공로상 같은 특별상이다.

영화 분야에서 헌신했고 그 공헌을 동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니까.

대중들에게는 요식적인 상처럼 보이겠지만.

어쨌든 각종 기술상 부문도 세분화해서 기술 스태프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그 외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까지 모두 21개 부문 시상을 했다.

어떤 영화시상식이든지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복수의 꽃>과 <민중의 적> 두 편을 출품한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춘사영화예술상 조직위는 기본적으로 그 해 극장에서 개봉한 모든 한국영화가 대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복수의 꽃>의 싹쓸이 수상에 대해서도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취화선>과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오아시스>에 다소 처지는 베를린영화제 수상 실적이 손색이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


“할리우드 영화에도 볼 수 없는 ‘Eye-MAX’의 압도적 미장센은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힌 것과 동시에 영화기술적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투표인단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라고 영화상 조직위가 밝혔다.

춘사영화예술상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예산문제를 비롯해서 그 동안 부침도 심했다.

가온그룹이 후원하면서 환골탈태한 후 이제 2회째다.

안정적인 자금지원과 함께 한국영화계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시상상에 한 걸음 다가서고 있다.

그리고 언제든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는 준비를 차곡차곡 해나가고 있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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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 잘 됐으면 좋겠다. 다들! (2) +10 23.06.29 2,895 106 22쪽
539 잘 됐으면 좋겠다. 다들! (1) +2 23.06.28 2,879 108 26쪽
538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3) +4 23.06.27 2,840 105 22쪽
537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2) +4 23.06.26 2,880 111 26쪽
536 죽더라도, 그거 꼭 이루고 죽어. (1) +5 23.06.24 3,012 115 24쪽
535 전성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3) +9 23.06.23 3,027 116 27쪽
534 전성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2) +9 23.06.22 2,947 115 26쪽
533 전성기가 꽤 오랫동안 이어질 것 같다. (1) +5 23.06.21 2,967 124 24쪽
532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6) +8 23.06.20 2,991 108 24쪽
531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5) +3 23.06.19 2,986 118 25쪽
530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4) +3 23.06.17 2,998 117 25쪽
529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3) +4 23.06.16 2,958 123 26쪽
528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2) +5 23.06.15 2,961 115 24쪽
»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타이밍. (1) +2 23.06.14 2,941 113 23쪽
526 자기 사람은 진짜 잘 챙기는 것 같아. +5 23.06.13 2,979 116 26쪽
525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솔직히 잘 몰라요. (2) +3 23.06.12 2,921 119 24쪽
524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솔직히 잘 몰라요. (1) +8 23.06.10 3,052 115 26쪽
523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 (2) +3 23.06.09 2,969 112 24쪽
522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 (1) +2 23.06.08 2,967 109 23쪽
521 Zombie Apocalypse. (2) +4 23.06.07 2,904 110 23쪽
520 Zombie Apocalypse. (1) +6 23.06.06 2,961 108 23쪽
519 가진 것은 없어도 가치 있게 살아라. +10 23.06.05 2,977 107 24쪽
518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넘어진다. (2) +5 23.06.03 3,011 113 24쪽
517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넘어진다. (1) +4 23.06.02 3,041 105 24쪽
516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3) +6 23.06.01 3,042 109 26쪽
515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2) +4 23.05.31 3,128 110 25쪽
514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1) +5 23.05.30 3,173 109 23쪽
513 잘 참으셨습니다. +6 23.05.29 3,172 123 25쪽
512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2) +5 23.05.27 3,250 119 24쪽
511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1) +7 23.05.26 3,187 11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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