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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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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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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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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2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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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솔직히 잘 몰라요.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전형적인 사회풍자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감독의 공권력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사회에 대한 불신이 영화에서 잘 묻어나왔다고 볼 수 있지만, 보면서도 찝찝함을 감출 수 없었던 영화이다. 지루하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왜 일까?]

- 백원일보.


[할리우드에서 연출한 영화부터 이미 정도를 넘어선, 가부장 사회 남성문화에 대한 지나친 애착과 권위의식이 <민중의 적>에서 더욱 공고해졌다. 극단적인 예로 주요 캐릭터가 모두 남성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그 많은 경찰 중에 ‘실수’로라도 화면에 잡히는 여성 경찰은 눈을 씻고 찾아 볼 수가 없다. 조규환이라는 공공의 적에 대한 적개심보다, 충무로 최고의 파워맨이 만든 어설픈 블랙코미디스릴러에 대한 실망감이 더 밀려오는 두 시간짜리 기나긴 영화 <민중의 적>은 오는 12일 개봉한다.]

- 영화비평가 유X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감독이다. 작가영화를 찍다가 어느새 전형적인 장르영화를 찍는가 하면 또 블록버스터라고 해서 별 것 없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레모>를 찍기도 했고, 시대극을 찍었다가 이번에는 블랙코미디를 내놓았다. 진부와 신선함 사이를 절묘하게 줄타기 한 그 간의 영화들과 달리 이번에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오락영화를 들고 왔다. 다만 오락영화에도 품격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모양인지 미장센과 연출이 경지에 올라있음을 보여준다.]

- 키노.


현대 한국영화에 여러 논쟁적인 인물이 있었지만, 류지호 만큼 다양하고 다각도로 조명되는 인물도 없다.

영화인으로서 문제점 아닌 문제점이 있으니....

다방면에서 너무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대기업 오너, 오스카 수상자, 어린 시절부터 각종 해외영화제에서 주목 받은 데다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오너이며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지닌 영화감독.

세간의 평가가 다채롭다.

동시대에서 류지호와 견줄만한 인물은 스티븐 아들러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알리샤 포스터, 마리 키드먼급의 여배우와 결혼하면 모든 걸 가진 남자가 된다는 인터넷 댓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암튼 감독이 너무 빛이 나면 곤란한 경우가 있다.

주요 배우들이 묻혀 버리거나, 영화의 평가에서 손해를 볼 수 있기에.

배우들이 빛나야 할 장소에서 감독이 더욱 빛나게 된다면 이래저래 곤란해진다.

영화가 개봉될 시기에 특히 그렇다.

감독의 이름을 보고 극장을 찾는 관객보다 배우의 이름을 확인하고 극장을 찾는 관객이 훨씬 많다.

때문에 영화개봉 전 시기는 배우의 시간이다.

언론 매체 입장에서 류지호는 뭐든지 기삿거리가 된다.

<민중의 적>의 홍보마케팅 면에서 그 같은 모습은 좋지 않았다.

류지호는 일거수일투족이 화젯거리여서 문제가 발생했다.

TV 연예정보 프로그램 녹화에서 그랬다.

사전에 배우 위주로 질문을 하기로 정해졌지만 여성 리포터가 자꾸 류지호에게 질문을 했다.

그것도 영화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적인 질문을.


- 현재 사귀는 분은 없는 걸로 알려졌는데, 혹시 연예중계실을 위해 깜짝 발표를 해주실 순 없나요?


하도 많이 당하는 일이라 류지호는 대꾸 없이 웃기만 했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인터뷰가 아니다.

답하고 싶지 않은 것에는 입을 닫아도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리포터는 집요했다.


- 이상형은 어떻게 되세요?

“.....”


리포터는 계속해서 영화와 관계없는 쓸데없는 것만 물었다.

당연히 류지호는 답하지 않았다.

리포터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카메라 너머를 힐긋거리며 난처해하기 일쑤였기에.

작가나 PD가 시켜서하는 것이다.

사실 여성 리포터는 죽을 맛이었다.

작가는 계속해서 밀어붙이라고 신호를 보내지, 류지호는 다 안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지.

어쩔 줄 몰라 하는 리포터를 내버려두고 류지호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제게 천재라고 하는데, 진짜 천재는 따로 있어요.”


리포터는 재빨리 표정을 수습해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귀여움을 떨었다.

어색한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했다.


- 그 천재가 누군데요?

“영화계 사람들과 교류하며 천재라는 부류를 많이 봐왔지만 진짜 천재라고 할 만 한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에요.”

- 스티븐 아들러 감독님하고 친하다고 하시던데, 혹시?”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됩니다. 바로 이 자리에 있으니까요.”

- ....?

“설 배우는 제가 보기에 천재에요. 연기천재.”


이훈재가 짐짓 성내는 투로 물었다.


“감독님, 그럼 나는 아니라는 말이에요?”

“하하. 이 배우는 천재까지는 아니고, 천재에 근접한 범재죠. 하지만 게으른 천재 설 배우보다 성실한 범재 이 배우가 저는 더 좋아요.”

“쳇. 또 이 양반이 사람 들었다 놨다 하시네.”


설형기가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으로 물었다.


“욕이야 칭찬이야?”

“욕 같은 칭찬이라고 할까요?”


이훈재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욕은 몇 퍼센트고 칭찬은 몇 퍼센트입니까? 감독님.”

“50 대 50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나는 기분 나쁘게 들렸으니까 욕이라고 보면 되겠네.”


설형기가 농담으로 응수했지만, 워낙 무표정한 얼굴이라 진심처럼 들렸다.


“보셨죠? 이 배우는 매우 분석적으로 배역에 접근하고, 설 배우는 직관적으로 접근해요. 그 직관이라는 게 정말 무시무시한 에너지를 품고 있죠. 이 배우는 보시는 것처럼 지적이고요.”


류지호는 한동안 두 배우에 대한 칭찬과 찬사를 늘어놓았다.


“최대한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시고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고민했습니다. 관객들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것이 상업영화의 역할 가운데 하나니까요. 좋은 배우들과 작업해서 아주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설 배우와 이 배우 모두 제가 평가할 수준이 아닌 배우입니다.”


류지호는 인터뷰 말미에 이훈재 배우에 대한 걱정을 드러냈다.


“이 배우는 정말 성실하고 신사입니다. 그가 이 영화로 인해 불이익을 받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그의 연기와 실제를 절대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방송사 인터뷰도 별만 다르지 않았다.

류지호 개인사에 대해 집요하리만치 질문이 쏟아졌다.

<민중의 적>을 비롯해서 그간 찍었던 영화에 관한 이야기와 더불어 시청자들이 궁금했던 것들은 양념일 뿐.

여자 친구 유무와 이상형에 대한 질문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똑같이 나왔다.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 신랑감 1위, 사위로 삼고 싶은 연예인 1위 같은 별 시답잖은 조사까지 들먹이면서.

고등학교를 자퇴한 사연과 검정고시로 UCLA에 입학한 것까지.

별의 별 질문이 쏟아졌다.

연예정보 프로그램 입장에서는 언제 또 류지호의 인터뷰를 따겠나 싶었다.

최대한 가십성 인터뷰를 만들어내고 싶어했다.

류지호는 대답하기 곤란한 것들에는 입을 다물었고, 대본에 없는 이상한 질문이 날아오면 애매하게 웃거나 말을 돌림으로써 회피했다.

노련한 리포터의 경우는 한 번 찔러서 걸리면 좋고, 아니면 말고라는 느낌으로 은근슬쩍 던져보고 낚이며 파고들고 아니면 솜씨 좋게 다음 질문으로 자연스럽게 넘겼다.

그래서 뭐라고 따지기도 애매한 상황이 연출됐다.


- 계약금으로 1만원을 받았다고 알려졌는데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제작사의 부담을 줄여주고, 빡빡한 제작비 운영에 숨통을 트여줄 생각이었어요.

- 할리우드에서 받는 돈을 다 받을 수 없으니 생각해낸 고육지책이란 말도 있는데.....

“충무로에서 찍으면 그 룰에 따라야 하죠. 미국의 영화시장과 제작비 규모가 다른데 무리한 요구할 순 없었어요.”

- 최고 대우를 받으실 수 있을 테니 아무래도 한 3억? 아님 한 5억 정도 받으실 수 있으셨을 텐데... 그렇죠?

“한국에서는 신인감독이잖아요. 최고 대우를 바랄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어요.”


이 시기 최고의 연출료를 받는 감독은 강은석, 양성규였다.

두 사람은 연출료 3억을 받고, 지분계약을 따로 맺었다.

배우는 <이중간첩>의 한정원이 4억 5천에 플러스 지분계약을 맺었다.

참고로 안정기 배우는 90년대 개런티 2억 동결을 선언했다.

2000년에 들어서며 조금 떴다 하면 개나 소나 주인공에게 3억을 책정하면서 그 의미가 점차 퇴색하고 있다.

<퇴마기록>이 처음 제작될 때 현승희 역할에 캐스팅 된 신인여배우는 현재 로코 여주인공으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면서 3억 원을 요구하고 있다.

남자배우와 달리 여배우는 따로 러닝개린티 계약이 없다.

한창 촬영 중인 <퇴마기록>에서 3억 원 플러스 알파로 계약했는데, 세금을 제작사가 부담하는 조건이다.


- 참고로 알려드리면, 류 감독님은 할리우드에서 감독 개런티로 20억 이상을 받으신다고 합니다.”


<REMO> 최종편에서는 그것에 두 배를 받게 된다.

흥행영화 감독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굳이 정정해 주진 않았다.

미국에서는 자랑할 만한 일이지만, 겸손을 중요시 하는 한국의 정서상 돈자랑은 가급적 안 하는 것이 좋았다.


- 여주에 만든 종합촬영소가 할리우드 못지않다고 하던데, 촬영팀 외에는 출입이 되지 않더라고요? 일반인이 구경할 순 없는 것인가요?

“배우와 스태프들이 촬영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외부인에게 오픈하고 있진 않는 것으로 알아요. 언젠가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투어처럼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날이 오겠죠.”

- 들리는 말에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도 적자 때문에 스튜디오를 축소하고 있다고도 하고.....

“적어도 오년 간 적자를 각오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미국에서 열심히 흥행영화 찍어서 적자를 메워봐야죠. 제 영화 많이 좀 봐주세요. 적자 좀 메우게. 하하.”

- 양수리 종합촬영소도 있는데 굳이 대형 인프라가 필요하냐는 이야기도 있어요. 가격도 비싸고.

“한국에서 영화 찍는데 답답하더라고요. 충무로 후반작업 업체와는 인연이 없기도 했고. 그리고 WaW가 투자·제작·배급하는 영화도 좀 더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제작시스템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면 어떨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스튜디오까지 설립하게 됐는데... 운영비가 장난이 아니네요. 하하하.”

- 이번 영화에는 류지호 사단이라고 불리는 배우 중에 송라원씨가 출연을 하지 않았더라고요. 카메오 출연을 기대한 관객도 많았을 텐데.

“라원씨는 스케줄이 맞질 않았어요. 이제 저도 그 친구를 쓰기 힘들어졌어요.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많이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 자주 연락 하세요?


역시 찔러보는 질문이다.

말려들면 다음 날 스포츠신문에서 스캔들 기사가 나온다.


“한국에 들어오면 안부전화를 하긴 하더라고요. 뜨고 나면 나몰라 하는 배우도 많은데 기특하죠.”

- 송라원씨가 <복수의 꽃> 촬영할 때 감독님이 너무 완벽주의자라 힘들었다고 하소연했어요.

“모든 감독은 완벽주의자에요. 순발력이 있느냐 그런 환경에서 작업을 하는 행운을 얻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라원이는 신선한 마스크에 끈질긴 근성을 가진 배우에요. 아직은 연기력 부분에서 좀 더 가다듬을 부분이 있겠지만 연기에 대한 자신만의 감을 터득하기만 하면 지금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 배우가 될 거라고 봐요. 외부에 휘둘리지 말고 멋진 여배우의 길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민중의 적>의 개봉이 가까워질수록 류지호와 배우들은 다양한 홍보활동을 펼쳤다.

지상파와 케이블TV에서 출연요청이 쇄도했다.

대부분 배우들만 내보냈다.

방송가에서 볼멘소리가 나왔다.


- 미국에서는 잘만 TV에 출연하면서 한국을 무시하는 거냐!


TV 프로그램에 출연해봤자 나오는 이야기는 신변잡기와 부자에 대한 호기심 충족이 전부다.

영화홍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스포츠신문 인터뷰는 보도자료로 대신했다.

찌라시 수준의 연예부 기자와 나눌 이야기가 없었다.

영화잡지들과는 성실하게 인터뷰했다.

이 시기 온·오프라인 영화잡지는 모두 다섯 개.

한 때 10여개 가까이 되었던 영화잡지는 로드쇼 폐간을 시작으로 하나둘 없어지더니 현재는 다섯 개만 남았다.

로드쇼 출신 영화기자와 편집장 대부분이 합류한 CineFeel.com은 가장 규모가 큰 영화잡지인 동시에 영화 포털사이트 역할을 하고 있다.

류지호와 가온그룹이 대주주이라서 친 WaW 성향이긴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편을 들진 않는다.

때론 폐부를 찌를 정도의 날카로운 저격 기사를 내기도 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키노 역시 폐간위기에 처해있다.

투자자 혹은 인수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내년에는 잡지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CineFeel.com 내부적으로 키노 인수를 논의한 적이 있었다.

류지호가 막았다.

두 영화잡지의 지향점과 성격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대신 키노 출신 영화기자와 주요 기고가들을 영입하기로 했다.

단 프랑스영화와 예술영화 맹목적인 숭배자들은 제외하고.

키노 출신들까지 CineFeel.com에 자리 잡게 되면 기획기사부터 예술영화 평론까지 한층 깊고 두터워진 기사를 담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예전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영화를 남자영화, 여자영화로 가르는 분위기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 여성영화라는 분류가 마음에 안 드세요?

“아마 여성영화를 그렇게 분류하는 것 같아요. 여성이 자신의 시간을 들여 영화 속에서 사소한 것을 감히 질문하며 현실을 여과 없이 재현해낸 어떤 장르. 혹은 직관적으로는 여성감독이 만든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 여성감독이 아니더라도 넓은 의미에서 여성의 삶이 진지하게 담긴 영화도 포함되겠죠.

“그저 인간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것인데, 자기 영화를 어필하려고 속보이게 ‘남자영화’란 식으로 포장하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고. 그래서 <복수의 꽃>도 여성영화라는 식으로 홍보를 하지 말라고 했어요. 한 시대를 살아갔던 다양한 인간군상을 담았을 뿐이에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와 고통, 배신, 도덕 같은 것들이요.”

- 감독님 영화에서는 그 특유의 거칠고 건조한 정서가 들어있어요.

“건조하다고요? ....음.”

- 심지어 밝은 풍의 <레모>에서조차요.

“....그런 말을 많이 듣긴 했죠.”

- 감독님을 아는 사람들은 절대 어둡고 우울한 성격이 아니라고 하는데, 영화라는 특수성 때문에 감독님 내면의 어떤 면이 은연 중 담기는 걸까요?

“글쎄요. 굳이 이유를 찾자면, 중·고등학교 다닐 때 암울하고 꿀꿀한 경험들이 유달리 깊게 남았을 수도 있겠죠. 그땐 시대와 사회 전체가 폭력적이었잖아요. 미국에서 만난 친구들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뺨을 안 맞아보고 누구한테 머리도 안 맞아봤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고부터 무지하게 맞았는데. 나랑 똑같은 일을 당해도 기억조차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 경험들을 어딘가 암세포처럼 저장해놓는 것 같아요.”

- 그래도 70년대 생은 60년대 생보다는 덜하지 않을까요?

“언제 태어났든 어떤 환경에서 자랐든, 크게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그런 현상을 또 사건을 얼마나 예민하게 받아들였는가. 이쪽 세계에 몸담은 사람 가운데 반골들이 꽤 많아요. 감수성도 풍부하고.... 그런 면에서 나는 코미디나 멜로를 잘 찍는 감독들이 부럽더라고요.”

- 이번 영화는 코미디 요소가 대폭 강조되고 있지 않았나요?

“가끔 나 자신에게 그런 질문을 해보곤 하거든요.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로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을까. 달리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걸 할 거냐, 대중이 원하는 걸 할 거냐. 근데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피식 웃게 되는 게, 솔직히 나도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잘 몰라요. 사람들은 어두운 거 안 좋아해... 라고 말하는 것도 어찌 보면 건방진 생각 아닌가 싶기도 하고. 대중은 좋아하죠. 어둡든 밝든, 잘만 만들면.”

- 최고의 난제 아닐까요? 그 잘이라는 게.

“어쨌든 결국은 자기만 재밌어선 안 되고 좀 더 그럴듯한 거짓말을 계속 찾아내서 더 재밌는 이야기를 쓰면 되는 건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영화전문기자들과의 인터뷰는 언제나 재미가 있다.

별 영양가 없는 질문도 많지만, 대체로 본론을 깊고 넓게 질문한다.

때때로 핵심을 정확하게 찔러 류지호를 당황시키기도 하고.


- 일본에서도 영화를 찍을 것이란 기사를 본 것 같아요. 일본영화까지 진출 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일본 원작 판권을 사서 한국이나 할리우드에서 연출을 하게 되는 건가요?

“일본 영화계가 워낙 침체되어 있고, 오리지널 시나리오도 거의 없다고 하더군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잘 팔리면 그것으로 영화를 만드니 지금은 오히려 영화가 하나의 부가시장처럼 돼 가고 있다고 해요.”

- 저도 한때 일본 영화 무척 좋아했는데... 한동안 오겡기데쓰까를 얼마나 주절거리고 다녔는지..

“많이들 그랬죠. 암튼 도쿄다카라 영화사와 합작으로 진행할 프로젝트 중에 한 편을 맡게 될 것 같아요.”

- 일본 영화네요?

“WaW와 공동제작이라서 어느 나라 영화인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 일본이 생각보다 영화 찍는 환경이 열악하다고 그러던데요?

“내가 하던 환경과는 분명 다를 겁니다. 그래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큰 작품이 아니라서 신인배우를 캐스팅하는 것도 허용됐고 제작비가 약간 초과되는 것도 용인될 것 같고. 여러 면에서 해볼만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최근 일본에서 우리 드라마와 영화가 선전하고 있어요.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말 그대로 선방하고 있는 것이지, 아직까지 뭔가 크게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는 단계는 아니에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일본 영화가 아니라 문화죠. 90년대부터 다시 일본 문화는 쿨하다는 인식이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확산되는 추세에요. 어제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죠. 일본은 패전의 열패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적의식적으로 세계영화제에 일본 영화를 열심히 소개했어요. 중국요리가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요리로 자리 잡자 일본의 스시는 건강음식, 고급음식으로 열심히 포장했어요. 소닉이 세계를 제패한 것은 누구나 몸에 소지하고 다니는 오디오 워크맨을 통해서였어요. 아주 오랜 시간, 서서히 체계적으로 일본은 자신의 대중문화를 세계화하기 위해 노력해온 것이죠.”


매번 한류가 국가 주도적 성공사례라고 일본이 떠들고 유럽 언론이 받아쓴다.

류지호가 보기에는 우연의 산물이다.

K-POP의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이 막히면서 모든 역량을 세계화에 쏟아 부었고, 넷튜브에서 저작권을 느슨하게 풀어줌으로써 팬들이 자발적으로 K-POP을 홍보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했다.

국제영화제 외에 마땅히 판로가 없었던 한국영화와 드라마는 운이 좋게도 StreamFlicks의 현지화 전략에 편승해서 날개를 달았다.

어떤 것도 한국의 엔터테인먼트업계가 주도적으로 예측해서 설계하고 실행한 것이 아니었다.


- 현재 일본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세계의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전 세계 문화상품의 대표격이라 할 할리우드 영화가 그런 일본 대중문화의 매력적인 요소들을 끌어들여 새로운 작품으로 변신하는 일이 지극히 자연스러워졌죠.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감독님에게 그런 모습이 더욱 피부에 와 닿았지 않겠나 싶어요.

“미국의 대중문화가 일본에서 그들 것으로 변용되었다가 다시 미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뛰어난 문화를 만들어내는 기본조건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죠.”

- 많은 사람이 향유하는 거 아닐까요?

“막힘없는 교류....”

- .....

“어떠한 제약이나 한계도 없는 자유로운 창작환경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 아, 표현의 자유요?

“아무리 싸구려라 해도, 아무리 소수의 것이라 해도, 그것이 바다를 건너고 타인의 손에 넘어가면 새로운 문화, 예술적인 상품으로 재창조되는 것 같아요. 그것이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 대중문화의 힘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K-POP은 그걸 받아들인 이들로 하여금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스스로 즐길 거리를 만들어 주면서 트렌트가 되었다.

노래와 퍼포먼스가 쇼츠 콘텐츠로 공공장소 댄스커버 챌린지로 또 노래들이 모여서 무작위 재생 댄스 챌린지로 팬이 자발적으로 놀이를 만들어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서구권이나 일본 같은 나라는 그렇게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저작권이 침해되는 것을 두고볼 정도로 너그럽지 못하고, 한국은 저작권을 움켜쥐고 있어봐야 수익으로 들어오는 것도 없으니 풀어버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류지호는 한국영화 역시 그런 부분에서 답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연달아 두 편의 한국영화를 하셨는데, 하시면서 제약과 한계를 느끼셨나요?

“어디나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어떤 면에서는 더 극성스러운 면도 많아요.”

- 충무로에 함께 일하는 스태프를 사단이라고 부르잖아요. 김영복 촬영감독, 프로덕션디자인의 윤재구 감독 같은 사람들. 배우로는 김영찬씨를 빼놓을 수 없고.

“단편영화 시절부터 함께 한 지인들을 그렇게들 묶는 것 같은데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잘 이해하기도 하고. 잘 해요 기본적으로.”


[예술가의 영혼.]

[억만 장자가 아닌 씨네아스트 류지호의 진심.]


대표적인 여성잡지에 실린 류지호 인터뷰 기사 제목이다.

사실 별 내용은 없었다.

하도 홍보마케팅팀에서 여성지 한 곳과 독점 인터뷰를 해달라고 간곡한 요청을 해서 할 수 없이 한 인터뷰였다.

가온웨딩 컴퍼니와도 관계가 무척 좋단다.

류지호가 주부들에게도 인기가 많아서 반드시 인터뷰해야 하는 잡지라나....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기 제 명함이에요.”


인터뷰를 마친 여성지 기자가 작업을 걸어왔다.


“나중에 괜찮으시면 식사라도 한 번 어떠세요?”

“기회가 닿으면요.”


한번 찔러보려는 느낌이다.

류지호에게 뭔가 해보겠다기보다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는 분위기.

확실히 기자하기 아까운 외모다.

누구나 좋아할 법한 서글서글한 미소도 인상적이고.

그뿐.

누군가는 그런 여기자와 무언가가 내밀한 것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류지호는 어떤 감흥도 없었다.

할리우드에서는 그녀보다 훨씬 예쁘고 지적이며 우아한 여성앵커들의 작업을 받아보기도 했다.

연인이 된 레오나 파커는 그 같은 사실을... 모를 것이다.


‘몰라야 할까?’


모르는 것이 좋다.


11월 둘째 주.

마침내 <민중의 적>이 한국에서 개봉됐다.

디지털 상영관 6개관 포함 전국 325개 스크린에서 시작한 <민중의 적>은 시사회 이후 입소문을 타고 첫 주말 서울에서 전 상영관 매진을 기록했다.

억지 매진을 만든 면도 없지 않았다.

서울 시내 강력반 형사 300명 무료 초대, 저소득 취약계층 초대권, 기타 무료표를 상당히 뿌렸다.

일부 가온그룹 계열사에도 초대권이 많이 뿌려졌다.

<민중의 적>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메이저 배급사가 개봉하는 대부분의 영화는 무료표가 꽤 많이 뿌려진다.

군소배급사가 배포하는 무료표의 몇 배가 뿌려진다.

첫 주 흥행성적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배급사는 손해를 무릅쓰고 무료표를 뿌려댄다.

방식은 간단하다.

배급사가 극장으로부터 티켓을 구입해 영화에 도움을 준 업체나 협찬사에 먼저 뿌린다.

대기업의 경우 계열사에 무료표를 보내기도 한다.

많은 관객이 영화를 봐야 입소문이 난다.

오래 전부터 꾸준히 행해지고 있는 마케팅이다.

심지어 미국에서도 한다.

연예소식을 전하는 매체마다 <민중의 적> 첫 주말 전회매진 타이틀을 단 기사가 쏟아졌다.

그런 기사에 낚여(?)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작가의말

활기차고 행복한 한 주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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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솔직히 잘 몰라요. (2) +3 23.06.12 2,921 119 24쪽
524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솔직히 잘 몰라요. (1) +8 23.06.10 3,052 115 26쪽
523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 (2) +3 23.06.09 2,969 112 24쪽
522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 (1) +2 23.06.08 2,967 109 23쪽
521 Zombie Apocalypse. (2) +4 23.06.07 2,904 110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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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2) +4 23.05.31 3,128 110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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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잘 참으셨습니다. +6 23.05.29 3,172 123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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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1) +7 23.05.26 3,187 11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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