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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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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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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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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09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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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 (2)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류지호는 이전 삶의 게임 중독 양상을 떠올려봤다.

누군가는 게임 중독의 근거라며 MRI로 찍은 뇌 사진을 들이밀고, 다른 학자는 게임 때문에 성장기 청소년의 수면 시간이 줄어든다고 주장했었던 것 같다.

반짝이는 뇌 사진과 점차 줄어드는 수면 시간 그래프는 스모킹 건처럼 사용됐다.

게임에 주홍글씨를 새기기 충분할 정도로.

학계는 뇌가 예상치 못한 보상을 얻었을 때 쾌락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고 반복적으로 자극에 노출돼 더 큰 자극을 찾게 될 때 게임이나 도박 등에 중독된다고 보고 있다.

심리학과 연구팀은 게임 이용자가 보상이나 단서에 대한 과도하고 충동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며 약 12%가 도박 중독에서 나타나는 신경생리학적 반응과 유사한 반응을 보인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또 소아정신의학과 연구팀이 게임 중독인 사람과 아닌 사람의 뇌를 비교한 연구 결과, 게임중독일 경우 뇌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영역(백질)의 발달과 기능 효율이 떨어졌다고 발표한다.

당연히 반론도 있다.

다른 정신질환 없이 오로지 게임중독만으로 뇌에 변화가 생긴 것인지 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다.

게임에 중독된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시간관리 능력 부족에 가깝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게임중독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만만치 않음에도 언론에 휘둘리는 정책담당자들은 게임 중독 주장에 힘을 실어줄 겁니다.”

“언론이 뭐 그렇죠.”


물론 게임중독이 병이든, 병이 아니든 일상생활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치료가 필요하다.

오락(娛樂)이나 유희(遊戲)라고 해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도 있으니까.


“게임의 긍정적인 효과를 주장하는 연구들도 속속 발표되고 있지 않습니까?”

“주로 미국 서부권 명문 대학에서 그 같은 논문이 자주 나오고 있죠.”

“혹시....?”

“맞아요. 내 모교인 UCLA를 중심으로 스탠퍼드와 버클리의 사회과학 분야 저명한 교수들에게 연구용역을 줬고 그들은 3~10년 이상 사례 수집과 분석을 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어요.”


1~2년치 사례가지고 나대는 연구자들을 압도할 생각에서 장기과제를 의뢰했다.


“연구팀에서 1차적으로 내놓은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액션이 가미된 게임이 주의력의 방향을 조절하는 대뇌피질, 주의력을 유지하는 전두엽, 갈등 해결을 맡고 있는 전측대상회에 자극을 준다고 하네요. 또 다른 연구팀은 게임 시간이 길수록 아이들의 정신건강 및 인지·사회적 능력이 증가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고요.”

 “국내에도 게임은 잘만 활용하면 인지 능력이나 학습 능력이 발달하고 대인관계를 넓히는 등 이점을 얻을 수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개진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 보고서를 검토한 미국의 일부 전문의들이 게임중독을 알코올이나 약물처럼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을 첨부했지요.”

“논쟁이 오래 갈 것이라고 보십니까?”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유 없이 나타나지 않아요. 나는 게임에 중독이란 프레임을 씌운 것은 누군가의 의도라고 생각해요. 음모론처럼 들리겠지만.”

“정신의학계....?”

“아마도.”


그래서 류지호는 게임 중독과 관련된 연구를 3년, 5년, 7년, 10년 간 장기적으로 진행시키기로 했다.

또한 해당 연도에 세계적으로 중요한 학회에서 중간 발표될 예정이다.

전문적인 연구는 전문가에게 맡기면 된다.

업계가 해야 할 것은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하지 않도록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다.

가만히 손 놓을 때가 아니다.

아직까지 기성세대가 게임의 가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받아들일 순 없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누군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게임은 무엇인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단순히 놀이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아이나 청소년이 사회생활에 앞서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는 툴로 볼 수도 있다.


“도구는 어떻게 사용할지 쓰기에 달렸어요. 단순히 몰입 효과가 있다거나 공부를 방해하는 놀이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거죠.”


이런 고정관념은 향후 전 세계적으로 붐을 이루게 되는 4차 산업혁명과도 모순된다.

주요 선진국들이 메타버스 운운할 때 한국은 게임 중독을 명분으로 관련 산업을 탄압했다.

학부형들이 일차원적인 판단을 한다고 해서 정치인과 관료, 언론까지 덩달아 일차원적으로 사안으로 바라보는 집단지성이 실종된 안타까운 현실이다.


“Mirinae Games가 실제 현장에서 겪고 있는 우스운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뭔데요?”

“프로모션 차원에서 교육용 게임을 학교에 들고 가서 아이들에게 시켜봐 달라고 하면 교장들이 안 받아들인답니다. 근데 교육용 소프트웨어라고 소개하면 잘만 써준다고 합니다. 둘은 단어만 다를 뿐 똑같은 것인데 말입니다. 하하.”


기성세대에게 게임이 도박 혹은 마약 같은 나쁜 것이라는 주홍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더 우스운 것은 <혈맹> 현피 사건이 횡행하고 게임에 빠져있던 현역군인이 군대에서 총기사고를 일으키던 시절에도 부모님의 잔소리를 들어가며 열심히 게임을 즐기던 세대가 어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자녀들에게 중독된다면서 게임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는 똑 같은 잔소리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식으로 하면 우리 아이들은 영화도, 게임도, 판타지소설도, 음악도 즐겨선 안 된다.

그것들에는 청소년기에 유해한 요소가 무척 많으니까.

다른 매체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잘도 선별해서 즐길 수 있도록 하면서 유독 게임에만 낙인을 찍고 차단하려고만 한다.

‘중독’ 혹은 ‘질병’이란 주홍글씨를 새겨가면서.


“보스가 왜 게임 중독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돈을 쓰는지 솔직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가온그룹 비서들이 하는 말이다.

류지호는 농담으로 ‘돈이 남아돌아서‘라고 말하곤 했다.

목마른 놈이 우물파고.

제 밥그릇은 자기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이다.

이권을 유지하는 가장 현명한 길은 본인이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다.

남들이 안한다고 함께 손 놓고 있다가는 나중에 태풍에 함께 휩쓸릴 뿐이다.

기왕 게임판에서 사업을 벌일 것이라면 존경을 못 받더라도 욕은 먹지 말자가 류지호의 생각이다.


‘Mirinae Games나 SPECTRUM 본사 앞에 시위 트럭이라도 나타나면 쪽팔리잖아.’


이전 삶에서 류지호는 영화 덕후였다.

고상한 말로는 시네필(Cinephile)이었다.

현재도 마찬가지고.

분야는 달라도 같은 덕후들로부터 비난이나 조롱을 받게 되면 기분이 몹시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기왕 게임판에 끼게 됐으니, 뭐라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봐야하지 않겠나.

성공한 덕후로서.


❉ ❉ ❉


충무로에서 블록버스터라는 말은 올해 악몽이란 말과 동의어였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을 비롯해 <아유레디>, <예스터데이>등이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참패했다.


-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 도대체 그 많은 제작비는 어디에 쓴 거냐?


이런 비난이 집중됐다.

관객들은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대한 시도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제작비를 많이 쓴다는 것이 새로운 소재와 형식에 도전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블록버스터라는 껍데기에 매달리기보다 질 높은 영화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인데.

극소수의 영화를 제외하고는 큰 제작비를 쓴 것에 비해 관객들을 매료시키기는커녕 화만 유발했다.


“70억 원 이상의 대작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단 세편만으로 200억 원 가량의 제작자본이 증발해 버렸습니다. 영화는 흥행이 잘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지만 그런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루아침에 영화계로 흘러들어와야 할 휘발유가 없어졌으니.....”


박상기 프로듀서의 한탄이었다.

WaW 엔터테인먼트의 제작·배급 자회사 WaW 픽처스 임원 회의실에 류지호를 비롯해 박건호 대표, 주영호, 전하영, 이낙용 부사장들, 그 외에 주요 프로듀서들이 모두 모여 있다.

최근 프로듀서 입봉을 준비하는 막내 김재욱이 말석을 차지하고 있다.

WaW 픽처스는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을 많은 부분에서 벤치마킹했다.

그 중에 하나가 프로덕션 헤드(Production Head) 개념이다.

매년 몇 편의 영화가 만들어져야 하는지, 누가 그것들을 제작할 것인지, 그리고 그 제작된 작품들의 예산은 얼마로 해야 하지에 대해 결정권을 가진 매우 중요한 직위다.

트라이-스텔라 픽처스에서는 생산담당 사장 직위다.

한국의 대기업 계열 영화사에서는 본부장과 비슷한 개념이다.

그런 막중한 직위를 전하영이 맡고 있다.

본부장이었던 주영호는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이낙용은 영화배급 부문 총책임자(CMO)로 직급이 정리가 됐다.

세 명 모두 사장급 대우를 받고 있다.

주영호가 입을 열었다.


“올 초 충무로 돈줄이 마르기 시작했지만 지금 같은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캐스팅까지 마친 영화도 파이낸싱이 안 되고 있는 실정이지요. 작년까지는 배우 캐스팅이 완료되면 제작비 조달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박상기 프로듀서가 말을 받았다.


“충무로 제작자들이 투자사·배급사를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니기는 하는데, 아주 냉담한 분위기라고 합니다. 장르가 뭐냐고 물어보고 코미디가 아니면 기획안을 보여주지도 말라는 식이랍니다. 무비서비스와 BS엔터테인먼트 같은 탄탄한 회사도 마찬가지 분위기라고 들었습니다.”


전하영이 말을 받았다.


“때문에 어지간한 시나리오는 모두 우리에게 들어오고 있어요. 저희 방침 상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모두 리뷰하고 있어서 기획실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에요.”


류지호가 물었다.


“얼마나 들어오기에 그래요?”

“충무로의 돌고 있는 웬만한 책은 다 들어온다고 보면 돼요.”

“그건 좋지 않은데....”


류지호가 검지로 뺨을 긁적거렸다.

곤란할 때 보이는 특유의 버릇이다.

주영호가 다시 나서서 말을 이었다.


“올해 상반기 동안 돈 놓고 돈 먹기 하겠다는 단기금융자본은 다 떠난 것 같습니다.”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영화들 때문에 평균 제작비가 많이 올랐겠네요?”

“평균 제작비가 2∼3년 전보다 두 배 가량 올라서 40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투입 대비 손실이 그만큼 커졌으니 단기투자수익을 노리는 자본들이 발을 뺄 수밖에요. GTB네트워크, 산운캐피탈, 무안기술투자 등 벤처캐피탈이 쏟아 부은 수백억 원의 돈이 큰 타격을 입었고, 각종 영화펀드 대부분이 상반기에만 20% 이상의 손실을 입었습니다.”


최근 한국 영화의 전체 제작비 구성을 보면 벤처캐피털을 중심으로 형성된 금융자본이 40∼50%, 메이저 영화사인 WaW, 무비서비스, BS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한 투자·배급사가 40∼50%, 제작사 자체 조달이 10%다.

단기금융자본이 대박을 기대하고 돈을 쏟아 부은 블록버스터들이 줄지어 무너졌으니 돈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법도 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박건호 대표가 입을 열었다.


“제작자들 사이에서 비관론이 팽배한 것 같긴 한데,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지요.”


모두의 시선이 박건호 대표에게 모여들었다.


“작년에 영화 투자 붐이 절정을 이뤘고, 그 과실을 받아 그 전 해의 두 배에 이르는 평균 40억 원 정도가 올해 개봉되는 60여 편에 투입됐습니다. 어림잡아 계산해보면 2,400억 원 정도가 비용으로 들어간 셈이지요. 올해 한국 영화가 벌어들일 수 있는 규모는 1,200억 원 정도라고 볼 때 1,000억 정도를 손해 보게 된 겁니다.”


그 다음 해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손해의 대부분은 금융자본입니다. 영화도 자본주의화 됐기 때문에 수익성이 있으면 돈이 몰리고, 수익성이 적어지면 돈이 빠지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정도의 문제지 돈이 완전히 빠지지 않습니다. 돈을 번 곳도 있고, 여전히 한국영화의 비전도 있기 때문에 투자는 계속될 겁니다.”


물론 주로 번 곳들이 세 개의 메이저 투자·배급사라는 것이 문제다.

투자자본은 다양하게 분산되는 것이 좋다.

쏠림 현상은 장기적으로 좋지 않았다.

류지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진짜 위기는 영화라는 상품이 다양한 맛을 잃고 소비자의 신뢰를 놓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홍콩 영화가 그랬지요. 어떤 작품이 잘 나가면 질이야 어찌됐든 죽어라 비슷한 영화를 양산하는 체제 말이에요.”


박건호가 말을 받았다.


“조폭 코미디가 잘된다고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짜임새 있는 영화들은 100만 명을 돌파했고, 호러 장르도 흥행이 잘되는 등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또 장르와 상관없이 흥행을 이어가는 배우들도 있지요. 지금의 어려움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긍정적인 정리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상기가 끼어들었다.


“한국의 등록된 영화사가 1,200개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전하영이 말을 받았다.


“프로듀서들이 배우가 없다고 죽는 소리를 하는데, 사실 캐스팅 대란이라는 것도 제작사가 난립하고, 그만큼 영화사 만들기가 누워서 떡먹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놈 저놈 준비가 전혀 안 됐는데, 한탕을 노리고 뛰어드는 것이 큰 문제다.

할리우드와 달리 산업화 기초가 부실한 한국영화계는 조금 잘된다 싶으면 자본이 밀물처럼 밀려들다가 아니다 싶으면 또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를 반복한다.


“상대적으로 전보다 파이낸싱이 어려워지니까 기획 단계부터 더욱 탄탄해질 수밖에 없고, 그러면 다시 영화 퀄리티도 좋아지지 않을까요? 시행착오 치고는 매우 비싼 대가를 지불하긴 했지만, 일정한 자정 기간을 거치며 발전적 과정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제작자라면 누구나 블록버스터를 만들고 싶어 한다.

크게 판을 벌려서 크게 먹으려는 생각뿐만 아니라, 폼이 나기 때문이다.

제작자들이 당장 차기작들의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며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낙관하는 이유는 영화에 들어오는 돈이 안전한 투자를 바라고 들어오는 돈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유명 배우, 검증된 감독이 수십 억 예산을 들여 제작한다고 하면 또 다시 눈먼 돈들이 몰려들 터.

누군가는 한 번의 실패로 많은 것을 배웠으니 꼭 만회하고 싶다고 하고, 또 누군가는 세계 시장을 겨냥해 더 안정된 형태의 블록버스터를 만들고 싶다고 하고.

달콤한 말과 장밋빛 청사진이 떠돌겠지만,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다.


”블록버스터 제작의 핵심문제는 애초에 기획한 일정과 범위가 끝없이 늘어지면서 프로덕션 과정이 통제되지 못하고 그 결과 비용은 비용대로 늘어나면서 작품의 품질이 관리되지 못하는 현상이 되풀이되는 것에 있어요.“


WaW 프로듀서들은 류지호의 영향을 받아 프로덕션 기간이 15주가 넘어가는 걸 싫어했다.

프로덕션 기간을 길게 가져가면 무능하다는 인식이 있었다.

고예산 영화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제작되고 있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는 120회 내외로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프로덕션 기간만 기본 20주다.


“평균 제작비가 두 배로 뛴 주된 원인은 인건비 상승에 있지만, 그동안 스태프들이 받을 걸 못 받았기 때문에 결국 오를 게 올랐다고 봐야 합니다. 충무로가 프로덕션 과정의 세분화·전문화를 통해 촬영기간을 줄이는 식의 방법밖에 대안이 없을 겁니다.”


WaW는 초창기부터 프리프로덕션 정착에 공을 많이 들였다.

촬영준비가 완벽하지 않으면 촬영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프로덕션에서 쓸데없는 비용이 발생할 여지를 꼼꼼히 차단하고 촬영에 들어간다.

스태프도 일찍부터 꾸리지 않는다.

촬영 3개월 전, 1개월 전으로 나눠 고용하고 있다.

그 전까지는 프로듀서와 감독이 프리프로덕션을 진행한다.

연출부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WaW 제작부 직원들이 있으니까.

적어도 WaW 픽처스 인하우스 영화에서 감독이 연출부들을 병풍처럼 데리고 다니며 폼 잡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영화 연출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감독은 자리를 내려놓아야 할 상황에 처할 수가 있다.

대신 프로덕션에서 돌입하면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질 때까지 감독을 섬세하게 보살피고 극진하게 대접한다.

할리우드와는 정반대다.

한국의 감독들은 프리프로덕션에 대한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

때문에 WaW 입장에서는 감독을 지나칠 정도로 몰아붙일 수밖에 없다.

대신 감독은 그 자체로 존중을 받아야할 위치이기에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면 걸맞은 대접을 해준다.


“빠질 곳은 빠지고, 들어올 사람은 들어오겠죠. 우리는 환경변화에 너무 크게 흔들리지 말고, 해오던 대로만 합시다.”


그때 말석에서 대화를 구경만 하던 김재욱이 손을 번쩍 들었다.


"<복수의 꽃>이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올랐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아직 못 들으셨을 것 같아서....“

“내 영화는 안 내기로 한 것 아니었어요?”

“아카데미 후보에만 제출하지 말라고 하셔서... 해외배급팀에서 영진위에 출품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습니까?”

“...음. <취화선>이 출품될 거라 생각했는데.”


골든글로브 외국영화상 출품은 9월 중이고, 아카데미 출품은 11월 초순까지다.

외국영화는 해당 국가에서 한 편만을 선정해 출품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며, 이후 외국어영화상 후보 선정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해야 후보작 5편 안에 선정될 수 있다.

류지호는 수상에 큰 욕심이 없었다.

수상 가능성도 낮다고 봤다.

아예 영진위 신청조차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한국 영화계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베를린 영화제 수상작을 후보에조차 올리지 않으면 논란이 벌어질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런 이유로 출품할 것을 촉구했다.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 후보작은 칸영화제 수상작인 <오아시스>를 비롯해 <취화선>, <집으로>, <YMCA야구단>, <복수의 꽃> 다섯 편이다.

그 가운데 <오아시스>는 2003년 3월에 열리는 제75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출품하고, 1월에 열리는 제 60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에는 <복수의 꽃>을 보내기로 결정됐다.

지금까지 한국영화는 <마유미>,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 <춘향전>이 출품됐으나 모두 최종 후보에는 선정되지 못했다.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참석하겠지만, 모두 기대는 하지 마세요.”

“무슨 언질이라도 받으셨습니까?”

“트라이-스텔라에서 전해온 이야기로는 올해 출품작에서 최다 기록을 세웠다던가, 그러더라구요.”

“몇 편인데요?”

“56편인가.....?”


모두가 얼빠진 표정으로 류지호를 쳐다봤다.

스튜디오 단독으로 미국 주요 영화시상식에 무려 56편이 출품되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얼른 정신을 차린 박건호 대표가 물었다.


“뉴욕 영화계와 외신기자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찬예모 감독도 물 먹을 텐데, 내가 어디 명함을 내밀겠어요. 그냥 참가하는데 의의를 두자고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류지호를 보며 프로듀서들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한국 대표로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골든글로브에 자신의 영화가 출품되면 무척 영광스러워하고, 괜히 우쭐하게 되기 마련이다.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려 본 경험이 어디 가지 않는 것인지 류지호는 크게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다.

류지호로서는 당연한 거다.

출품작 리스트를 확인해 보고는 대강의 수상작을 유추할 수 있었으니까.

아카데미 시상식은 매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외국어영화상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선정되기 위한 기본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 해당 국가 주요 언어로 대사가 구성되어야만 한다.

- 시나리오 작가, 감독, 제작자 중 한 명이 해당 국가 출신이어야 한다.

- 주연배우 중 그 국가 출신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 촬영, 프로덕션 디자인, 사운드 등 제작 각 부문 책임자가 해당 국가의 국적을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이런 기준 때문에 <이 투 마마>가 출품 자체를 하지 않았고, 유럽의 다국적 공동제작 영화들은 처음부터 아카데미 출품은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시아에서는 <색, 계>가 주연배우나 주요 제작진 중에 대만 출신이 없다는 이유로 대만 영화로 출품했다가 탈락하는 일도 벌어지고, 내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게 될 <톡 투 허>는 공동제작 국가들 어느 곳에서도 자국 대표로 아카데미 외국영화상에 출품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는 이변을 연출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영화 시상식은 위상과 달리 엉망진창이다.

비평가들과 외신기자협회에서 매년 문제를 제기한다.

아카데미 위원회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다.

결국 10여 년이 지나서야 '해당 국가의 주요 언어로 대사가 구성돼 있지 않은 영화는 출품할 수 없다'는 기준을 '영어 대사가 아니기만 하면 된다'는 것으로 조건을 수정하게 된다.

전하영이 웃으며 말했다.


“이번 아카데미는 오랜만에의 JHO 잔치가 되겠네요.”


제75회 아카데미 주요 수상 부분에 ParaMax의 <시카고>, <갱스 오브 뉴욕>이 노미네이트 되었고, 트라이-스텔라의 <반지의 제왕Ⅱ>도 기술 부분에 다수 이름을 올렸으며, 트라이-스텔라가 투자·배급한 <8마일>은 주제가상의 유력한 수상후보다.

이변이 없는 한 <시카고>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류지호는 길게 이야기 해봐야 잡담 밖에 되지 않을 것 같아 화제를 돌렸다.


“Eye-MAX와 계약을 잘 체결했습니까?”

배급을 총괄하는 이낙용 사장이 대답했다.


“예. 편당 수익의 10%를 Eye-MAX가 가져가는 것으로 계약을 마무리했습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12.5%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협상을 잘 했네요.”


Eye-MAX는 트라이-스텔라, 워너-타임, LOG 애니메이션과 Eye-MAX DMR과 관련한 중요한 계약을 체결했다.

메이저 스튜디오가 지정한 영화의 Eye-MAX DMR 작업 비용을 Eye-MAX Cop.이 부담하는 대신, 영화가 개봉한 후 얻게 되는 수익의 12.5%를 Eye-MAX가 분배받는 계약이다.

모든 극장매출에서 나눠 갖는 것이 아니다.

Eye-MAX 상영관에서 발생한 수익에 한정한 계약이다.

메이저 스튜디오는 부담스러운 추가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되고, Eye-MAX로서는 새로운 수익 모델과 더 많은 Eye-MAX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윈윈 전략이다.

또한 극장과 체결하고 있는 계약도 새롭게 갱신할 계획이다.

기존에는 멀티플렉스 극장 상영관에 200만 달러를 받고 Eye-MAX MPX 시스템 시공을 해주었다.

향후 협상 결과에 따라 Eye-MAX MPX 시공비용을 모두 Eye-MAX Cop.에서 부담하고 상영관 수익에서 대략 20%를 분배받는 계약을 추진 중이다.

상영관 개조비용 때문에 Eye-MAX MPX 변경을 주저하는 멀티플렉스 체인의 부담을 덜어주면서 공격적으로 전용관을 늘리려는 전략이다.

2000년으로 넘어오면서 극장업계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TV 화면이 커지고 홈시어터 시스템이 저렴해짐에 따라 관객들이 극장과 유사한 형태로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멀티플렉스들은 더 큰 화면과 더 나은 사운드 시스템으로 더욱 차별화 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고민했다.

Eye-MAX는 훌륭한 대안 중에 하나다.


“WaW는 향후 Eye-MAX와 어떻게 협력하게 되는 겁니까?”


작가의말

한 주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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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 자기 사람은 진짜 잘 챙기는 것 같아. +5 23.06.13 2,979 116 26쪽
525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솔직히 잘 몰라요. (2) +3 23.06.12 2,921 119 24쪽
524 대중이 원하는 게 뭔지 솔직히 잘 몰라요. (1) +8 23.06.10 3,052 115 26쪽
»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 (2) +3 23.06.09 2,970 112 24쪽
522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법. (1) +2 23.06.08 2,967 109 23쪽
521 Zombie Apocalypse. (2) +4 23.06.07 2,904 110 23쪽
520 Zombie Apocalypse. (1) +6 23.06.06 2,961 108 23쪽
519 가진 것은 없어도 가치 있게 살아라. +10 23.06.05 2,977 107 24쪽
518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넘어진다. (2) +5 23.06.03 3,011 113 24쪽
517 뭉치면 서고, 흩어지면 넘어진다. (1) +4 23.06.02 3,041 105 24쪽
516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3) +6 23.06.01 3,042 109 26쪽
515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2) +4 23.05.31 3,128 110 25쪽
514 동해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1) +5 23.05.30 3,174 109 23쪽
513 잘 참으셨습니다. +6 23.05.29 3,172 123 25쪽
512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2) +5 23.05.27 3,250 119 24쪽
511 맹수가 얌전하도록 가만 놔둬라. (1) +7 23.05.26 3,187 116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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