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대본
다술에 있던 백업
영훈 : 야이 씨······ 내가 얘기했잖아. 미쳤어? 너, 그거밖에 안되는 놈이야? 왜 그러는 건데. 뭐가 문제야, 대체.
기명 : ······.
영훈 : 네가 한다며. 이 새끼야. 지금 다 죽이려고 작정했냐,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니가 그래···.
기명 : ······.
영훈 : 그래···. 좋아···. 내가 한다···. 이 미친 새끼야. 똑바로 잘 보고 있어, 알겠어? 내가 들어간다고.
영훈은, 야구 모자를 고쳐썼다. 8회초, 1아웃. 경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 태양이 그대로 떨어질 것 같은 여름이다. 한국 최고의 아마추어 팀을 가리는 전국대회였다. 고교팀, 대학팀, 가리지 않고 올라와서, 프로 직전 단계의 승부를 펼친다.
이곳에서 활약하는 이는 당연히 프로가 되기도 하고, 몇몇 녀석들은 이미 국내 리그에서 통할만한 솜씨를 보여주기도 한다.
영훈 : 똑바로 앉아 있어. 네가 못 던진 공, 내가 던지고 올테니까. 윤덕고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두 눈 바짝 뜨고 지켜봐라. 이 팀은 강해. 니가 부담감 때문에 던지지도 못할 팀이 아니라고.
영훈이 손가락으로 기명을 노리듯,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씹어뱉듯이.
영훈 : 감독, 코치님이 없는 상황에서 우린 여기까지 왔어. 여기만 이기면 결승이고, 마지막 해의 여름이다. 김기명. 후회하지 않게 행동해.
영훈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마저 말하고는, 덕 아웃을 벗어났다.
벤치의 그늘에서 나가자, 햇살이 그의 뒷목을 지졌다.
그것보다 더 뜨거운 건, 거대한 운동장에 울려퍼지는 관중들의 응원이다. 먹먹한 함성이 영훈의 귀를 때린다.
그들은 한국 최고의 장소에서, 결승 직전에 서 있었다.
담이 작은 김기명은 수전증 때문에 공을 못 던지겠다고 한다.
어깨가 부서져서가 아니라, 말이다.
팀의 에이스가 담이 약한 놈이라는 건, 결국 주장이 책임져야 할 리스크였다. 지영훈은 야구공을 들고 마운드에 오른다.
길지 않은 길이 지독하게 길게 느껴졌다.
8:4.
지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지지 않는다.
이 게임은 시간 제한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야구공의 실밥을 만지는 영훈은, 김기명을 제외하고 최고의 고교 투수다.
그 말은 전국에서 두 번째라는 거고, 이 대회에서 그의 공을 쳐낼 놈이 극소수라는 뜻이다.
영훈 : 후우우우우우우···.
영훈은 깊은 숨을 토한다.
터벅,
하고 마운드에 올랐고,
사람들의 열기는 그의 심장을 울린다.
하지만 영훈은 고요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눈이 앞을 본다.
모자를 고쳤다.
영훈 :(속으로)‘승부하기를 좋아하는 새끼야···. 계명고 윤일수. 애매하면, 반드시 휘두를 놈이다. 아슬아슬하게···, 아슬아슬하게···.
······.’
영훈 : 후우···.
영훈 : (속으로)‘아슬아슬하게, 공 하나 차이로···. 빠지는 공으로 잡는다.’
아슬아슬하게 해라, 아슬아슬하게.
그들을 훈련시킨 김일학 감독이 늘 내뱉는 말이었다. 지병이 도져서 대회 전 날부터 드러누우셨고, 코치는 당일, 부인이 출산에 임박하고 난산이라며 병원에 가 있었다.
개같은 날이었다. 고등학생 주장 하나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친 짐이었다.
거기에 에이스 투수라는 놈은 간이 좁쌀만해서 경기 내내 죽을 쑤고 있었으니···.
‘아슬아슬하게 해라···’
감독이 노래처럼 부르던 말을 지영훈은 기억한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그의 슬라이더는 일품이고, 프로에서도 통할 절예라고 했었다.
자세를 고쳐 잡는다. 글러브 안쪽으로 손가락을 감춘다. 포수, 신성민과 눈을 맞추었다. 직구? 아니, 슬라이더다.
영훈 : 후우우우우우우···. 가자고···(아주 작게 속삭이듯).
영훈의 눈빛이 빛났다. 태양의 뜨거움은 느껴지지도 않는다.
백색 세계 속에서, 여름 하늘 아래서. 지영훈은 몸을 가만히 두고, 이완시켰다가, 뒤로 빼고, 뒤틀어 움직인다.
온 몸을 걸레짜듯 비틀어 날린다. 어깨가 빠졌다가 들어간다.
영훈 : 훕!(내뱉는 숨)
···.
긴 정적 뒤에, 탕!
하고 총소리처럼 포수가 공을 받아내었다.
-우아아아아아!
경기장을 달구는 함성 소리가 그의 투구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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