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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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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1.01.23 12:29
최근연재일 :
2024.02.08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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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17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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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쪽

점퍼, 순간이동자

다술에 있던 백업




DUMMY

점퍼Jumper.


순간이동자를 말한다.


2022년 3월 17일.


봄 날이었다.


“더럽게, 지겨워.”


민서는 조용하게 지껄였다. 그는, 여자같은 이름이었지만 그는, 집구석에서 뒹굴고 있었다. 작은 원룸. 그리 비싸지 않은 보증금에 월세. 서울 청량리의 어느 구석에 있는 한 반 지하 방이었다.


약속도 없고, 일정도 없다. 그를 찾는 친구도 없고. 일자리도 없다. 그는 빈둥댔다. 통장에 저금은 얼마 남지 않았다. 뭐라도 해야 하지만, 당장 움직일 거리도 없었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예전에 산 게임기를 꺼내 들어 몇 번 주물거리다 금세 질려버리곤 내려 놓았다.


조금도 신경 쓸 것이 없었다.


쿵!


하고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눈을 떠서 방안을 바라보았다. 낯선 사람이 서 있었다.


“······.”


그는 순간 자신이 헛 것을 보았나 했다. 멀쩡하게 생긴 사내가 방 안에 서 있었다. 신발을 신은 채, 바깥에서나 볼 법한 행인의 모습이었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체격이 큰 사내. 그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민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역시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민서는 현재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반응할 수 없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은 사람에게서 제대로 된 표현을 앗아가기 마련이었다.


‘오 싯······.’


희미하게 그런 말이 들린 것 같았다. 쿵! 하고, 왠지 공기가 떨리는 것 같은 진동이 느껴지며 순식간에 인형이 사라졌다. 민서는 침대에 누워서 고개만 까딱한 채 굳어 있었다.


‘내가 지금 뭘 본거지.’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있었다. “······.”


잠깐 다시 눈에 들어왔던 모습을 생각하면서 머릿속을 정리해보았다. 한 3분간 그렇게 해봤지만, 여전히 이해는 되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흔들고 눈을 비볐다. 자신의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만, 아까 그 인형이 나타나서 서 있던 자리에 흙이 조금 떨어져 있었고 방바닥에 굴러 다니던 비닐 봉지가 신발에 밟힌 듯 구겨진 채로 있었다.


현실이었다. 환각이 갑자기 흙덩이를 방 바닥에 뿌리고 갈 리는 없었을 테니까.


*


민서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태도를 취했다. 잠깐은 두려움에 떨었다.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갑자기 이 현대 도시에서, 집 문과 벽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고 괴한이 그 안에 들어올 수 있다면 그건 자신의 목숨이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켠으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은 자신의 인지와 이해를 넘어가는 일을 맞닥뜨리면 계산을 포기하기도 한다. 자신이 대처할 수 없는 위협에 자신이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었다. 막는다고 막아지는 것도 아니고. 일이 벌어지면 그 때 다시 이야기를 해보던가 해야지.


민서는 대학교에서 자퇴한 청년이었다. 기계 공학과를 나왔지만, 적성에 맞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보려 했지만 그것으로 밥 벌어 먹고 살 길은 지난해 보였다. 그는 일찌감치 대학교를 자퇴하고 나와서, 이런저런 알바를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는 별다른 꿈은 없었다. 어쩌면 정신적으로 거세된 것일지도 모른다. 미래를 향한 긍정적인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상태일지도.


아무튼 부모님과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지방에서 서울의 대학에 올라온 그는 자취를 하고 있었고, 혼자 살고 있었다. 별다른 계획도 없다면 지방으로 다시 내려오라고 하시는 것도 같았지만, 그는 서울이 나름대로 살만했다. 평생 살던 곳에서 벗어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그럭저럭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핸드폰으로 근처의 알바 공고 따위를 보면서 검색했다. 그리고 근처의 편의점 하나에 연락해서 일하기로 했고, 하루는 오후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온 날이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건 피곤하다. 그렇게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피로감은 있었다. 그는 집에 돌아와 대충 옷만 갈아입고 바닥에 누웠다. 여기저기, 정리되지 않은 개인 물건들이 나돌아다닌다. 신경 쓰진 않았다.


바닥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TV를 켰다. 작은 TV였지만 혼자 적적할 때 소음을 위해서 틀어두고는 했다. 가끔 볼 게 있기도 했고, 게임기를 연결해서 쓰기도 한다.


[······]


뭐라 뭐라 시끄럽게, 예능인들이 나와서 왁자지껄 떠드는 프로그램이었다. 즐겨보던 것은 아니었어서, 그냥 소음을 뱉도록 내버려 둔 채 관심을 껐다. 그는 방 안에 누워서 잠깐 생각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삶은 스트레스와 지겨움의 반복처럼도 보인다.


그렇게 잠시간 있었다.


쿵!


그리고 다시 둔한 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공기가 터져나가는 것 같은 소리였다. 강렬한 물체가 허공을 때리면 나는 소리처럼도 들렸다. 그리고 이 소리는 얼마 전에 들었던 것이다.


민서는 눈을 떴다. 방바닥에 길게 누워 있는 그의 앞에 한 청년이 서 있었다. 훤칠하게 키가 크고, 정장을 빼입은 남자였다. 구두를 신은 채였다. 그는 멀쩡하게 서서 민서를 바라봤다.


그는,


그러니까 민서는 너무 놀라서 바로 옆자리에 있던 물건을 집어 들어 던져버렸다. 뭔지는 정확히 확인을 못했으나, 날아가서 남자에게 맞고 보니 굴러다니던 핸드폰 충전기의 헤드였다. 휙, 딱.


의외로 팔만으로 집어 던진 거였지만 조준이 정확했다. 충전기 헤드는 훤칠한 남자의 이마를 때리고 떨어졌다. 청년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반응했다. “윽.”


큰 소리가 나지는 않았다. 가볍게 던졌어도 나름대로 아플 텐데. 민서는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주변에 있는 무언가를 집어 들며 물었다. 조립을 중간에 하다가 말고 방바닥에 버려둔, 행거의 지지대 하나였다. 속이 빈 철제라 잘 휘두르면 사람을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제야 정장을 입은 청년, 깔끔하게 머리를 자르고 행색이 좋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아니, 잠깐만. 미안합니다. 이게 자꾸 오류가 나서···. 당신한테 악의는 없어요.”


좋은 말이었다. 별안간 남의 집 원룸에 신발을 신은 채 침입한 인간이 아니었다면 들어줄 용의도 있었다.


다만 바로 철제 봉을 휘두르지는 않았다. 의외로, 위기의 상황에서 민서는 침착하게 행동했다. 두 손으로 봉을 고쳐 잡으며 여차하면 목을 찌를 생각으로 근육을 이완시켰다.


“···내 입에서 비명이나 욕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놀랍지만. 씨발 당신 뭐야.”


문장으로 적으면 맥락이 맞는 말은 아니었다. 민서는 침착함을 최대한 가장하고 있었지만 몇 초 사이에 감정이 널뛰기를 할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욕을 뱉으며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보통, 집 안에서 괴한을 발견하면 적절한 태도이기도 하다.


“···일단 진정하세요. 놀랄 건 알지만. 여기에 찾아온 목적은 따로 없습니다. 그냥 좌표 오류가 나서 튕기는데, 그 지점이 놀랍게도 자꾸 여기로 고정될 뿐이에요. 당신한테 악의도 없고요.”


민서는 두려움을 떨쳐내듯 봉을 한 번 위에서 아래로 붕, 털어내며 대답했다.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아니지? 목적? 좌표라고?”


정확히 말하면, 남자를 향한 대답은 아니었다. 그는 최대한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속의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머릿속에 여유가 없었다. 안 그래도 복잡하고 고달픈 삶에 거대한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이었다.


뭐 누구라도, 갑작스럽게 이런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이렇게 되기 마련이었다. 조금 더 대담하고 공격적인 성향이라면 바로 남자를 때리고 제압을 하려고 하겠지만. 민서는 그런 드잡이질에 능한 편은 아니라 시간을 끌고 있는 것뿐이었고.


“씁. 원래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두 번이나 이 난리가 났으면 암시暗示도 안될거고···.”


반면, 정장을 입은 청년도 나름대로 골치가 아픈 듯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머릿속 사고가 과부화가 되면 가끔 나오는 현상들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충전기 헤드를 얻어 맞은 자리가 아픈지 빨갛게 달아오른 이마를 문지르고 있었다.


청년은 짧게 단정한 머리를 하고 있었고, 고급스러운 양복과 구두를 신고 있었다. 언뜻 보이는 손목의 시계도 저렴한 물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잘 정돈되고 깔끔한 모습. 어딘지 부유층의 냄새가 나는 꼴이었다. 그런 모습들이 아주 약간은, 민서의 심정을 진정시켰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지는 않았다.


민서가 다급한 감정을 뱉어내듯 말했다.


“뭐라는 거야. 일단 당장 이 집에서 나가. 이 미친 인간아.”


민서의 머릿속 상태에 비하면 굉장히 정돈되고 매너 있는 말이었다. 그만큼 심정이 당황스럽기에 어색하기도 했지만. 청년은 일단 민서의 얼굴을 보며 웃어 보였다.


“예. 일단 나가죠. 여기서 이러는 건 일단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천천히 얘기합시다.”


얘기라고? 뭐라는 거지 이 정신 나간 자식이. 민서는 얘기고 뭐고 당장 사라진 다음에 자신의 인생에 관여하지 않아 줬으면 싶었지만, 청년은 헤실거리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곤 손가락을 튕겼다.


딱, 하고 최면 술사나 마술사들이나 낼 법한 깔끔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눈 앞의 허공이 일렁이더니 순간 청년이 사라졌다.


“뭐.”


야, 라고 하기 전에 목소리가 뒤에서 들리며 손길이 느껴졌다. 아까 그 청년의 목소리였다. 그가 민서의 어깨에 손을 짚더니 말했다.


“일단 나가서 얘기합시다.”


딱, 하는 소리가 들리며 공간이 일렁인다. 아니, 눈앞 전체가 어지럽게 흐려졌다. 현기증과 비슷했다. TV가 꺼지는 것처럼 순식간에 시야가 어둠으로 찼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민서의 눈은, 서울의 도심지를 멀리까지 내려다보는 높은 위치의 전경을 비춘다.


“······.”


다른 의미로 현기증이 몰려왔다. 그는 어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 빌딩의 옥상이었다.


민서는 이해되지 않는 일련의 상황에 잠시 생각을 포기했다. 손에는 여전히 철봉이 들려 있었다.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긴 곳도 없었다. 멀쩡하게 움직인다. 어느새 다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서 정장 차림의 사내가 말한다.


사내의 목소리는 민서보다는, 침착했고 말투는 정돈되어 있었다.


“···놀라고 이해가 안 될 겁니다. 하지만 당신 앞에 저는 실존하는 사람이고, 특이할 뿐 당신과 다름없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민서는 별다른 말 없이 뒤를 돌아 사내를 처다봤다. 그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풍경과, 멀리 뻗은 시야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남산의 모습에 서울이구나,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신의 눈 앞에서 이야기를 하는 남자의 존재감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지독하게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순간이동.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을 겪는 것뿐이었다. 민서는 철봉을 쥐고 있는 손이 땀으로 축축한 것을 느꼈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괜한 긴장감이었다. 남자는 멀끔하게 생겼고, 잘생긴 축이었다. 말도 한국말로 하고 있었고, 평범한 한국인의 외형이었다. 다만 이 비현실적인 이질감은 어쩔 수 없었다. 민서는 크게 반응하지 않고 우선 그의 말을 듣는다.


“···이렇게 저 같은 사람들이 외부인에게 노출되면 보통은 최면이나 암시로 기억을 지웁니다. 애초에 말도 안 되고, 순간적인 일이라 다소 시간이 걸려도 큰일로 번지지도 않고요. 그런데 기억을 지우기도 전에 연속해서 이따위 실수가 벌어지다니···. 저로서도 일단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하는 수밖에 없어서 이러고 있는 겁니다.”


남자의 말과, 목소리가 멀게도 들렸다가 가깝게도 느껴졌다가 했다. 그의 정신에 따른 일이었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사람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린다.


민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초점을 잡았다. 어질어질한 기분이 드는 것도 같다. 어쨌든 말을 끝까지 들어보고 말 일이었다.


“······.”


남자는 민서의 상태를 보며 잘 들리는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서 분명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남자와 민서는 바람 부는 빌딩의 옥상에서, 몇 걸음은 떨어진 상태였다. 남자가 한 두 걸음 더 가까이 왔다.


“···아무튼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노력해 보십시오.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니. 저희로서도 딱히 초인적인 최면 능력자를 보유한 것도 아니고··· 약물을 쓸 수도 없고··· 초법적인 일을 멋대로 벌일 만큼 깜냥이 크지도 않습니다. 당신이 이해하고 납득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에요.”

“···뭘 이해한다는 거지?”


민서가 말을 뱉었다. 남자가 답했다.


“뭐, 저희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납득하고 너무 까발리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어디 인터넷에 올리는 정도야, 흔한 헛소리로 치부되겠지만··· 너무 전문적이고 집요하게 뒤를 쫓고자 하면 저희도 곤란합니다. 잡힐 사람들도 아니지만 이런 일이 많아지면 행동의 제약이 생길 수도 있는 거니까요.”

“너희···라면 당신 같은 사람들이 여러 명 있는 건가?”


남자가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제스쳐였다.


“뭐 그렇습니다. 직접 말해줄 순 없지만 작은 단체를 이루고 활동을 할 정도는 되지요. 당신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일이니··· 잊고 살면 될 겁니다.”

“···그냥 그렇게 약속만 하면 되는 겁니까? 관여하지 않고, 단순히 잊겠다고.”


민서의 말투가 누그러졌다. 대화의 내용에 따른 변화였다. 괴상한 힘을 보유한 정체 불명의 괴한이라고 하더라도, 말이 통한다면 협상의 여지가 있다. 그런 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전적인 신뢰를 하는 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남자가 그런 낌새를 알아 들었는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예. 그냥 잊으면 됩니다. 이번 일은 실수이고··· 애초에 저희가 일반적인 사람 눈에 띄는 게 극히 드문 일입니다. 좌표 오류가 왜 거기로 고정이 되어서 두 번이나 자택에 침입하는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식적으로 주의하면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민서 역시 긴장이 풀린 듯 웃어보이며 물었다.


“잊지 않는다고 하면? 그러면 뭐, 혹시 그쪽 조직이 강압적으로 나온다거나, 납치나 목숨을 위협하고 그런 겁니까.”


민서가 가지고 있는 불안감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인간이었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이해해보자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범죄 조직이랑 비슷하게 느껴졌다. 초법적인 일을 할 생각은 없다고 하지만 그럴만한 능력이 있을 때, 사람이란 건 수틀리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존재였다.


사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습니다. 말했듯이, 우리는 대책 없이 범죄를 저지르고 다닐만한 깜냥이 못됩니다. 순간이동을 할 뿐이지, 만화 속의 초인들 같은 존재들이 아니라서요. 그냥 당신이 모르는 세계에서, 다양한 일을 맡아서 처리하는 비밀스런 전문직일 뿐입니다.”


전문직···이라고 불릴 만큼 과연 합법적이고 상식적인 일들만 하는 존재들일 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눈앞에서 남자가 보이는 태도는 상식적인 면이 있는 듯하다. 휘말린 일반인에게 강압적으로 나오지 않는 것만 해도. 상식과 국가의 법에 배치되는 행동을 하는 이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어디까지나 근거도 없는 추측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민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대충 그렇게 이해하죠. 내 인생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지만,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다신 만날 일이 없으면 나로서도 좋고.”


남자가 웃으면서 짧게 박수를 쳤다. 살짝 신경을 건드릴만큼 과장스럽고 어색한 동작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웃는 표정은 진심인 듯 보였다.


“그걸로 됐습니다. 멋대로 신발을 신고 방 안에 들어간 건 미안합니다. 이제 그럼,”


‘그럼?’


남자의 말에 끝맺음이 없어 당황하는 사이 청년은 다시 눈 앞에서 사라졌다. 이번엔 딱, 하는 손가락 튕기기도 없었다. 그리고 올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뒤에서 인기척과 함께 어깨에 손이 올라왔다.


“돌아가죠.”


웅.


하고 무언가 떨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이 뒤집혀지는지. 어지러운 VR기기를 쓸 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시야가 흔들거리며 변한다. 그러다 아주 잠깐의 어둠이 찾아왔고, 다시 시야가 돌아왔을 때는···


그의 원룸 방이었다. 말소리가 귓가에 멤돌았다.


“다시 볼 일은 없을 겁니다.”


소리만 남고 형체는 사라졌다. 방 안은 그가 처음 누워 있을 때와 같았다. 뭐··· 조금 어지럽혀 있었긴 했지만.


민서는 천천히 손에서 쥐고 있던 행거의 지지대를 내려 놓았다.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고작해야 3, 40분?


PM7:42.


전자 시계가 시간을 가리켰다. ···. 어제 사다 둔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이나 해결 해야겠다. 배가 고팠다.



*



“······.”


4월 1일.


만우절이었다. 민서의 원룸이었다. 그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주중에 다니고, 주말에는 쉰다. 미래를 계획하기 위해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는 편이었다. 밥은 도시락이나, 간단한 냉동식품으로 끼니를 떼운다.


봄 날의 날씨는 포근했다. 원룸의 바닥에 작은 상을 펴놓고 점심을 먹던 중이었고. 이른 점심을 먹곤 곧바로 알바를 하러 나갈 셈이었다.


그리고 그는 편의점 도시락의 떡갈비를 입에 넣으려 든 자세 그대로 멈췄다.


왜냐면,


웅.


하면서 공기가 떨리는 듯한 특유의 진동이 느껴지며 그의 원룸에 이상한 인형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큭, 뭐야. 여기는. 이런 빌어먹을. 사람이잖아.”


이번에는 한 사람도 아니었다. 한 명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저번에 본 멀끔한 청년. 이번에도 정장을 차려입고 있었다. 다만 자켓이 벗겨지고 넥타이도 없었다. 여기저기 천이 찢어져 있었고, 손에는 경찰들이 들고 다니는 제압용 봉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봉으로, 나이프를 든 상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억.”


사내, 그러니까 민서에게 익숙한 청년이 헛바람 들이키는 소리를 냈다. 그로서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얼빵한 표정이었다.


두 사내의 등장은 원룸을 어지럽혔다. 나타나자마자 자세를 잡으며 힘 싸움을 하는 터라, 구둣발 따위에 방이 조금 어질러졌다. 민서는 들고 있는 떡갈비를 차마 삼키지 못하고 있었다. 상황을 움직인 건 반대편의, 칼을 들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경광봉에 막힌 나이프에 힘을 빼면서 정장을 입은 청년의 소매를 잡았다. 그대로 허리를 뒤틀어 끌어당기며 뒤로 날리는 동작이었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 민서를 보고 신경이 흐트러진 청년은 그대로 끌려갔다. 당할 수 없다고 느꼈는지 그는 아예 몸을 뛰어넘기며 힘을 받아 뒤로 넘어갔다.


원룸의 구조는 단순했다. 현관을 열고 들어와서, 신발장이 있고. 그대로 꺾어서 들어오면 방이 있다. 현관의 정면에는 화장실 벽이 있어서 좁은 공간이었다. 민서는 원룸의 안쪽 벽에 기대어 있었고, 그들은 현관 쪽 자리에 나타났다가 그대로 청년이 신발장을 향해 던져졌다.


“큭.”


잇새에서 호흡이 터져 나오며 그대로 날아가 박혔다. 우당탕! 호쾌한 소리였다. 액션 영화라도 보는 줄 알았다. 맹세컨대, 자기 집에서 저런 소리를 듣는 경우는 별로 없을 테였다. 어지간히 제정신이 아닌 이상에야.


그대로 신발장에 처박힌 청년에게 나이프를 든 사내는 성큼성큼 다가갔다. 멍청하게 앉아 있는 민서는 신경 쓰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민서는 멍청하게 떡갈비를 든 손을 내려놓지 못했다.


딱.


소란스러운 와중에 귓가에 그런 소리가 들린 듯했다. 마술사의 제스쳐처럼 선명하게 울리는 손가락 튕기는.


“이런 씹. 아직도 남아 있다고?”


나이프를 든 사내가 씹어 뱉듯 말을 했다. 소리와 동시에 신발장에 처박혀 구겨져 있던 청년이 사라지고, 떡갈비를 든 민서의 곁에 와 있었다. 저번처럼 어깨에 사뿐히 손을 올리고, 다시 손가락을 튕긴다. 딱.


“미안합니다.”


그리고 민서가 인지한 건 명멸하는 시야였다. 원룸의 전등불이 꺼졌다가 켜진 것 마냥. 흐릿한 시야가 눈앞을 잠깐 담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을 땐, 어딘지 익숙한 광경이었다. 기억이 난다. 어디선가 본 도심지의 광경. 한 2주쯤 전에 왔던 빌딩의 옥상이었다. 멍청하게도, 그는 떡갈비를 쥔 채 빌딩 옥상 바닥에 앉아 있었다.


청년이 어깨를 툭 치며 일으켜 세우듯 잡아 힘을 줬다.


민서가 그 힘에 멍청하게 일어서고 그를 바라봤다. 청년이 말했다.


“일단 미안합니다. 저번보다 더 휘말리게 했네. 나도 상황이 통제가 안되니까, 일단 알아서 다치지 않게 숨어 있으세요.”


웅.


하고 곧 이어 특유의 진동이 느껴졌다. 특이한 느낌과 소리였다. 거리의 멀고 가까움과 상관없이, 기묘한 전조는 공간이 일렁거리는 듯한 느낌과 함께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나이프를 든 사내였다. 스포츠 용의 점퍼에, 검은 작업용 바지. 공사장에서 신어도 안전할 법한 등산화. 짧게 머리를 친 남자였고, 눈빛이 날카롭고 인상이 험악하다. 나이는 정장을 입은 청년과 마찬가지로 20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수염은 없고, 얼굴형도 날카로워 보였다.


정장을 입은 사내는 재킷은 반쯤 벗겨진 것을 아예 벗어서 손에 들었다. 여기저기, 드잡이질이나 나이프에 베인 듯이 찢기고 베인 자국이 보였다. 몸에서 피가 나지는 않는다. 칼 든 괴한과 다투면서, 솜씨 좋게 몸이 베이는 건 피한 모양이었다.


칼을 든 사내, 는 눈을 부라리면서 외쳤다. 민서는 본능적으로 떡갈비를 입에 넣고 빌딩 옥상의 구석으로 움직인 뒤였다. 옥상은 물탱크나 공기 순환기, 실외기 따위의 설비나 옥상으로 올라오는 문이 붙은 작은 건물이 있다.


민서는 옥상의 출입구 쪽으로 슬슬 움직여 청년이 바라보는 시야의 반대편, 칼 든 사내의 시야 사각에 있었다. 멀찍이서 그들의 대치를 바라보고 있었고, 칼 든 사내가 민서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칼 든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는 칼을 앞으로 들고 디딤발을 밟는 등 금방이라도 달려들 태세였다.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여력이 남아 있었나. 아무리 그래도 종일 추격전을 벌인 너랑 내 횟수는 다르겠지. 잘난 조직원께서 떠돌이에게 팔이라도 잃으면 고개나 들고 다니시겠어.”


청년이 말했다. 그는 재킷을 한 손으로 늘어뜨린 채, 들고 있었다. 여차하면 두꺼운 천으로 단검을 막고 목이라도 조를 셈인 듯 싶었다.


청년이 답했다.


“떠돌이라고 하기엔 조직적이던데. 적어도 네 팀과 그 머리의 신상 정도는 밝혀내야겠어.”

“너무 그러지 말라고. 이게 다 당신들이 지나치게 억압을 하니까···”


칼 든 사내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그 순간에 민서의 눈에는, 여전히 말도 안 되지만 사내의 모습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게 보였다. 마술사가 잘 준비해서 보이는 장면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이건 영상도 아니고 준비된 장치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사라진 사내의 칼날은 청년의 뒤에 나타난다. 그는 한 발자국 뒤에 나타나서 그대로 정신을 잃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민서가 순간이동을 당했을 때는, 현기증으로 잠시 움직이지 못했는데 저들은 익숙한 모양이었다.


순간이동은 움직임에 대한 전조가 없다.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곧바로 다가오는 움직임은 일반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전투에 익숙한지, 청년은 곧바로 그 전조를 읽고 앞으로 뛰쳐 나갔다.


순간이동의 횟수에 제한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모든 움직임이 순간이동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걸 보면 말이다. 청년은 앞으로 달리며 칼날을 피했다. 운동선수와 같은 반사신경이었다. 그것을 쫓는 사내도 만만치 않았다. 순간이동이라는 점을 빼면, 본격적인 전투였다. 민서는 만화에서나 보던 ‘킬러’를 떠올렸다. 초인적인 전투 능력과 기술을 가진 상상 속의 괴물들. 혹은 고도로 단련된 특수부대 요원과 비슷할지도 몰랐다.


근접전에서 그들의 박투는 정상적인 것이었다. 살면서 그다지 볼 일 없는, 빠르고 정교한 움직임들이었지만.


먼저 뒷목을 향해 휘둘러진 나이프가 허공을 갈랐다. 순식간에 몇 걸음 뛰쳐나간 청년은 그대로 뒤로 돌며 재킷을 겹쳐서 내세웠다. 한쪽 손에는 접이식 경찰봉이 여전히 들려 있었다. 마주본 상태에서 다시 나이프를 든 사내가 달려 들었다.


타닥, 하고 가볍게 탄탄한 거구가 날았다. 사내는 상대가 내세운 재킷을 왼손으로 잡아 치우며 그 틈으로 나이프를 찌르려 했다. 양손으로 재킷을 팽팽하게 펼치고 있던 청년은 그대로 재킷을 밀어 올렸다. 그 위로 팔을 뻗으려던 사내의 팔이 위로 밀려 올라갔다. 움직임은 청년이 좀 더 빠른 듯했다.


청년은 그대로 재킷을 휘감아 상대의 팔과 목을 함께 묶었다. 몸으로 들며 들어간 거라 나이프를 함부로 움직여 그 등을 찌르지도 못했다. 상대의 팔을 껴안듯이 다가가 재킷으로 묶고는 그대로 고개를 빼서 뒤로 돌아간다. 청년은 무릎으로 뒤에서 상대의 오금을 치고는 경찰봉의 손잡이를 쥐고 그대로 상대의 후두부를 쳤다.


퍽!


섬뜩한 소리가 들린다. 사내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그가 뒤로 돌아가자마자 몸을 돌리며 빠져나오려 했지만, 청년이 조금 더 빨랐다. 머리를 얻어맞자 움직임이 흐트러졌다. 격투기라고 해도 한순간이면 승부가 결정 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지금 이 빌딩엔 심판도, 링도 없었으며 규칙도 없었다.


머리가 어질거리는 듯 주춤하는 사이에 청년이 그대로 상대의 발을 걸어 밀어 넘어뜨렸다. 힘이 빠진 사내는 곧바로 저항하지 못하고 바닥에 얼굴을 대고 깔렸다. 팔을 뒤로 꺾어 부러뜨렸고, 나이프를 놓치게 했다.


청년은 깔린 상대의 목과 바닥의 틈새로 경찰봉을 집어넣고, 양 무릎으로 상대의 어깨를 짓눌렀다. 팔로는 양손으로 경찰봉의 끝을 잡고 순식간에 목을 졸라 부러뜨리거나, 기절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대로 말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청년이 물었다.


“알다시피 순순히 끌려가면 죽이진 않아. 우리도 시체를 처리하는 취미는 없어서. 이제 좀 불 생각이 있나?”


사내는 목이 막힌 상태에서 가래가 끓듯 대답했다.


“개···새끼.”


청년으로서는 만족할만한 대답이었다. 그는 그대로 봉을 짧게 쥐더니, 손가락을 목 아래에 집어넣어 그대로 팔을 넣고 끌어안듯 내려가 초크 자세를 취했다. 팔뚝에 잠깐 힘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의 몸이 축 늘어졌다.


“······.”


청년은, 그대로 잠시 말 없이 위에 올라타 있었다. 민서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역시 가만히 있었고. 숨가쁜 움직임 뒤에 호흡을 고르는 듯도 보였다.




다술에 있던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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