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연기 시키려 끄적
다술에 있던 백업
"주군, 당신을 위해서 왔나이다. 이 송 모가, 비루한 놈이 칼 한자루에 의지해서 여기에 왔나이다.
그런데 주군께서는 어찌 이리 대답이 없으십니까. 어찌 이 모자란 놈이 당도할 때까지를 기다리시지 못하고,
이렇게 고개를 먼저 누이셨나이까. 주군, 명을 하소서.
주군, 명을 하소서. 이 내게 눈 앞에 있는 도당들을 베어 죽이라고, 모조리 처죽이고 당신의 일을 이루시도록
그렇게 명을 좀 내리소서.
살았을 때 그 성난 호랑이나, 말의 울음 소리같던 거센 목소리로 다시 내게 말씀을 좀 하시옵소서.
번갯불을 닮은 그 희번득한 눈빛으로 다시금 내게 부라리면서 명령을 내리옵소서. 주군, 어찌 여기 계시나이까.
어찌, 피하지를 않고 또 피하지를 못하고 이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이렇게 팔을 늘어뜨리셨나이까.
쉬기에 이른 날입니다, 주군. 주무시기에 차가운 날씨입니다, 주군.
어서 눈을 뜨시지요. 어서 그렇게 언제나처럼 걸걸한 목소리로 내게 손짓을 하여 제발 말씀을 하소서.
당신을 둘러싸고 왕위를 무너뜨리려 패악질을 일삼는 저것들을 모조리 베고, 그 뒤에 일들을 꾸민 천인공노할-
세도가의 개 잡놈들을 싸잡아 옥장의 지푸라기 위에 두라고 하소서.
내게 말씀을 좀 하소서, 주군이시여.
어찌, 이 왕좌에 앉은 채로 이렇게 붉은 색으로 얼굴을 덮으셨나이까.
어찌, 용포의 금빛이 물들어 보이질 않도록 붉은 염료로 가득 색을 먹이셨나이까.
누가 이토록, 차갑게 식은 핏자국으로, 그대의 손과 온 몸을 덮도록 두었나이까.
누가, 누가 말입니까 주군."
그는 한 호흡을 쉬고 결국 왕좌에서 매만지던 왕의 육신에서 손을 때었다. 그가 뒤를 바라보자 수많은 이들이 그를 그저 지켜만 보고 다가오질 못한 채 있었다.
중세시대, 조선 최대의 명장은 빼들은 칼을 고쳐 잡았다.
일인이 만인을 상대한다던, 도개교의 장비처럼 구는 전설을 가진 장수였다. 그가 얼굴을 한없이 일그러뜨리며 눈빛을 빛내자 기백명의 숨이 멎는 것처럼 좌중을 압도했다.
수염을 남의 피로 물들인 장수는 양 손아귀로 칼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머리께로 높이 든다. 명도 영광의 칼날은 이미 수십의 철갑옷과 피륙을 지났지만 예리함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아마, 이 전쟁이 끝나기까지 그럴 것이다. 마치 장수의 의지처럼.
그가 짓씹듯이 입술 사이로 말을 토해냈다.
"백 명이 넘느냐."
한 호흡을 쉬도록 좌중이 말이 없었다. 자신을 송 모라 칭한 중년의 장수만이 입을 열 뿐이다.
"요동 전쟁에서 내 앞을 가로 막은 것이 이 세 배다. 너희는 그들만큼 용맹하고, 사납고, 친인척이라 할지라도 잡아 먹을 기세로 달려드는 짐승들이냐."
꿀꺽, 하고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것도 같았다. 한 명에게 집단이 옴짝달싹 못하는 광경은 기이한 부자연스러움마저 연출을 했다. 빛이 흐린 궁전의 앞 뜰. 왕좌에서 멀리까지 보이는 궁 내의 풍경이 어딘가 어색했다. 누군가 억지로 전쟁을 멈추어 놓는다면 이런 꼴이 될까.
송 모가 말했다.
"그렇지도 않다면, 감히 무슨 배짱으로 나의 주군에게 아가리를 디밀었느냐. 짐승도 아닌 것이라면, 그 뭣도 아닌 이빨을 내가 다 깨부수어 주마."
오늘이, 그가 속으로 말하고 이었다.
"네 놈들이 그 그칠 줄 모르던 야욕을 버리는 날이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송 모는 자신의 말을 실행시키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에 반사적으로, 공포심에 휩싸인 듯한 집단이 움직였다. 장수의 칼날은 날카로웠고, 그의 움직임은 일반적인 군사들에 비해 두 세배는 멀리서 눈으로 보기에도 빨라 보였다.
그는 인간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며, 다가오는 칼날들을 쳐내곤 일방적으로 그 갑옷과 너머의 것들을 영광으로 베어 나갔다.
다술에 있던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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