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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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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1.01.23 12:29
최근연재일 :
2024.02.08 23:16
연재수 :
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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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324,022

작성
23.06.1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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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단편#대사#수군통제사

다술에 있던 백업




DUMMY

3. 장수의 옆, 보좌관.


“장군······.”


떨리는 음성이 새어나오는 줄도 모르고 새어나왔다. 의지적으로 뱉은 게 아니다. 황망하고 또 황망해서 대장군을 부를 뿐이었다.


수군통제사. 어느 반도半島의 바다를 지휘하던 수군 최고위자가 그 몸을 천천히 뉘였다. 절대絶對로 죽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믿음이 있던 사내였다. 다만 그는 넘어지면서도 명장이었다. 자신의 죽음으로 치열한 바다 위 전장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소리를 죽이라는 말이 그의 마지막 언질이었다.


적들의 척후斥候를 조심하고, 또 아군의 말단 선원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말이다.


전쟁은 승기를 잡은 다음이었다. 길었던 역사의 종지부가 거의 다 와 간다. 그 기쁨을 상관과 함께하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뿐이다.


“장군······. 괜찮으십니까, 장군. 저 보십시오. 적군의 배가 다 부서지고 물러가고 있습니다···. 이 땅에 몰려왔던 저 호랑말코같은 놈들이 드디어 떠난단 말입니다. 죽이고, 베고···. 우리 땅을 유린하던 개같은 놈들이 드디어 바닷속에 처박혀서 노략질을 멈춥니다.

장군···. 새로운 배를 만들겠다고 하셨을 때 반드시 이 땅을 구하겠노라고 하셨지요. 이미 국토의 절반 이상이 강도들에게 털려 엉망이 되고··· 양조 임금께서도 국성을 버리고 도망을 치실 때 당신이 남았지요.

고작 열 몇 척의 배로 수백 척의 배에 앞서서 막아서던 그 날이 아직도 훤합니다.

이제사 말하지만 당신께서, 정말 미치광이가 아닌가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그 날조차 이제 당신에 대한 신뢰로 바꾸셨었습니다.

우릴 두고 어딜 가십니까······. 살아서 손주 얼굴 한 번 더 보고··· 며느리 끓여주는 미역국 한 번 더 먹고··· 그렇게 평화롭게 지내셔야지요···.

장군 이토록 잘 지켜내고 그 몸뚱이 바스라지게 움직이시다 그대가 정말 떠나버리면 어쩌잔 말입니까. 적국의 이름도 긴 망할 놈이 자빠져서 코가 깨지고 넘어가는 그 꼴을 같이 상상하셔야지요.


우리 조정 아래서 저 무뢰배 놈들이 더 이상 침략질을 못하게 겁먹는 꼴을 기어코 보셨어야지요.


장군 보십시오, 저기 지휘하는 당신 조카 이휘겸이 장군 대신 목이 터져라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 빙충이 같던 막내 놈 수달이가 화포조 조장으로 적선을 침수시키고 있습니다.

죽은 놈도 많지만 산 놈도 많고, 어리던 놈들이 다 큰 놈들이 되어 어느덧 우리 배를 채우고 있습니다.

장군 덕분입니다.

눈이 침침하도록 매일 밤 대계大計를 꾸리시고 아랫 놈들 멍청한 놈들 말 안듣는 놈들 때문에 매일 다시 고민하시고.

한 놈이라도 살려 보겠다고 머리 싸매시던 모습만이 선합니다.

피, 살 나부끼는 전쟁터에서 이만큼이나 산 것도 당신이 명장이자 용장이라 그렇습니다.


당신이 죽인 적병 하나에 우리 가족 하나가 살았습니다.


당신이 세운 궤계 하나에 고을 수십 개가 살았습니다.


당신이 치른 백여 번의 전투에, 이 민족이 살았습니다.


그대 곁에 신神께서 함께하셨는지, 아직도 내가 발 딛고 삽니다. 장군······”


말을 차마 끝맺지 못하고


부관副官 유정민은 뒤로 온전히 몸을 뉘여버린 장군의 곁에서 절그럭거리는 갑옷을 부딪히며 있었다. 무릎 꿇은 채로, 판옥선의 윗 단 지휘관 방에 말이다. 지붕이 덮여 있고 사방은 명치 부근까지 막혀 있다. 주위를 둘러보고 명령을 하달하는 틈이 있어야 했는데, 적군의 총알이 하필 그곳으로 날아와 군부의 영웅의 몸통을 직격했다.


그렇잖아도 지병이 있던 육신의 약화된 장기에 쇠탄이 구멍을 뚫고 내부를 헤집자 장군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주변의 몇몇 부관과 호위병들의 부축을 받으며 쓰러진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고, 몇 마디 말만 남긴 채 지금은 눈을 감은 채다. 그 맥박을 간절하게 잡고 있으면 미약하게 뛰고는 있었다.

숨과 같이 아주 가는 맥박이다. 유정민은 전쟁의 마무리와 목숨처럼 따랐던 상관의 마지막이 언제일지 깨달을 수 있었다.


상관의 명命은 몇 번의 호흡이 채 남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제 숨이 가빠지는 걸 느꼈다. 비통함이 흘러 넘쳐 손께를 잡은 손을 많이 움직이지 못한 채 고개만 지휘실의 나무 바닥에 처박고 잠시 들썩였다. 그가 울먹거리는 투로 말했다.

사내, 유정민은 단단한 군인이었다. 적병의 화살과 총구가 노릴 때에라도 간담이 흔들리는 걸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다. 긴 몇 년 간의 전쟁이 시작되는 동안 울음이나 유약함 따위는 잊어버린 놈처럼 살았다.


이제사 끝난다고 생각하니 둑 안의 물처럼 모아두었던 게, 체납했던 빚이 문제를 일으키듯 흘러나오는 모양이다.


“······쉬십쇼······ 흐으. 쉬십쇼, 장군. 내 목숨 살려준 때부터 기필코 당신보다 앞서서 죽으리라 생각했는데,

빚도 못 갚았는데 가십니까. 총탄 하나 대신 처맞지 못한 미련한 동생을 용서하십쇼.

이 바다, 형님이 지키신 겁니다. 해안가에 허튼 놈들 발 하나 디디지 못하도록 잘 하셨습니다. 장군이 맡고는 남부부터 시작해 쥐새끼 하나 올라간 놈이 없었습니다.

양조 임금께서도 칭찬하실 겁니다. 그토록 장군 시기하시던 분도 말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당신 따라서 지키다 갈텁니다. 배운대로 하겠습니다, 배운대로······.”


다 큰 장정이 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진듯한 자세로 들썩였다.


잡은 손목에 맥박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거의.

거의.

그러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무렵 유정민은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반쯤은 아버지같던 양반이었다. 반쯤은 거의 친형제였고. 상관 이상의 무엇이었는데, 지금 그는 그 여럿을 한 번에 잃었다.


“······.”


말을 잃은 채 그는 고개를 들지 못했는데,


툭.


무언가 그의 정수리를 두드렸다.


‘내가··· 구해줬으니··· 내 몫까지 살어라···. 정민아.’


그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정민은 홀린듯이 고개를 들었다. 그가 잡은 손 말고 장군의 다른 손이 기어코 움직여서 그의 대가리를 툭, 건드리고 옆에 떨어져 있었다.


갑주를 입은 채 그대로 누워, 그 비늘 갑옷의 틈에서 피를 흘리던 장년의 노병이 숨에 섞여 희미하게 마지막 말을 토해냈다.


그리고는 그게 정말로 마지막이었다는 듯, 정민이 애초에 느꼈던 대로 말도 숨도 멎었다.


주변은 시끄러운 함포의 소리와 적군들의 배가 바숴지는 소리, 적군의 비명 소리 따위, 그리고 아군의 사기 넘치는 함성이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정민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소리를 색깔로 표현한다면 온통 하얀색이 그가 감각하는 세계를 먹먹하게 대신 메우고 있었다.


재빠르게 지휘 체계를 이어받은 다른 장군과, 아군 수병들의 애씀에 따라 전쟁이 오롯이 마무리 지어졌다.

애초에 적군의 후퇴 중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 배 반 정도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살아서 그들의 함포 범위를 벗어난 배는 애초의 100분의 1정도였다.

나머지는, 모조리 바다에 빠져 죽거나 포로의 신세였다.


반도를 너머 대륙을 바라보았던 침략군은 그렇게 망연자실하게, 만신창이가 되어 제 땅으로 돌아갔다. 초라한 위세의 도망이었고 남은 자조차 얼마 없을테니.

향후 한 두 세대 정도는 더 이상 엄두조차 내지 못하리라.


유정민은 이미 결정난 전투의 말미에 차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잠시 소회所懷를 나누었고, 그리곤 다시 일어서며 바뀐 장군의 곁으로 움직여 아군 병력의 수습을 거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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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술에 있던 백업


작가의말

모티브는 누구나 아는 유명한 그 위인입니다만

정확하게 그 얘기라고는 안 하고

적당히 비슷한 톤의 판타지, 어느 다른 세계의 이야기입니다.

고증이 귀찮아서 그랬다고는 절대 말못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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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연개소문 컨셉#대사 위주#단편 23.07.03 24 0 11쪽
» 단편#대사#수군통제사 23.06.13 20 0 8쪽
54 커피샵의 남녀 23.06.12 20 0 12쪽
53 단편#대사#젊은 청년, 고백 23.06.12 24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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