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아직 안 정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1.01.23 12:29
최근연재일 :
2024.02.08 23:16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2,105
추천수 :
3
글자수 :
324,022

작성
23.04.17 01:02
조회
24
추천
0
글자
6쪽

글1

다술에 있던 백업




DUMMY

바람이 푸르다.


"바람이 파랗군."


입을 열어 발음을 해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아니었다. 그저 멍을 때리고 있을 뿐이다.


파란 하늘의 공간 너머를 떠다니고 있으니까, 아마 그 가운데 있는 바람도 대충 파랗지 않겠는가.


지나가는 누군가를 붙잡고 설변을 늘어 놓는다면 미친놈 소리를 딱 듣기 좋은 이야기였다.


벤치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불러서도 아니었고, 그저 시간이 남아서.


앞 뒤로 무슨 일정인가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적어도 잠시 멈춰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라고 하면서 입으로 꿍얼대는 꼴이 참 보잘것 없고 초라하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보면 뭐라고 할까.


상관은 없지만, 그저 동네에 돌아다니는 질 나쁜 양아치가 있다면 멍청한 사냥감이라고 생각해서 돈이라도 뜯기 위해 다가올 지 모르는 일이다.


공원의 나무는 푸르르다.


꽃은 어느덧 만개를 했고. 봄 날이었다. 봄 날.


만물이 소성하는 시간들. 춥디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집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온갖 풀벌레나 짐승들도 움직임을 나타내고


심지어 실내에만 머무르던 사람들마저 야외로 나와서 활동을 하고는 하는 시간이다.


인간이 아무리 발전을 거듭하고 무슨 지랄들을 할지라도,


결국 이 거대한 자연계의 시스템에 대해서 무언가를 할 수는 없었다.


과학이 어마어마하게 발전을 한다면?


그래, 아마 몇 번의 기술적 혁명을 거치고 한 오백여 년 정도 지난다면 혹시 모르겠다. SF만화에 나오는 기술들 따위가 상용화가 된다면.


그러나 그럴지라도, 사람이라는 것의 손아귀는 보잘것이 없었다.


전체에 비하면 그러하다.


우리는 드넓은 전체, 세상, 공간 안에 자신의 작은 붓을 들고 그것에 무엇으로든 색을 구해다 그림을 그릴 뿐이었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저 비천한 신세라는 것이 달라지지 않는다.


전체에 비하면 한 없이 작은 일부인 것이다.


"아잇, 싯팔."


하늘을 바라보며 욕을 했다.


이런다고 갑자기 하늘 위에 있는 조물주가 자신을 욕하는 것으로 듣고 벼락을 내리시지는 않겠지.


그냥 속이 답답해서 한 소리였다. 아마도, 그리고 조물주는 생각보다는 자비로울 것이다.


왜냐면··· 열 명 백 명을 다루는 보스boss조차 사사로운 일에 모두 밑에 놈 목을 쳐버린다면 집단이라는 게 굴러갈 리가 없으니까. 세상이라는 게 유지가 될 리가 없으니까.


높은 자리에 있는 인간은 자비로운 면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논리에서,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하늘 위의 신 역시 그럴 것이다.


답답해서 한 소리 한다고 갑자기 벼락이······


꽈르릉!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갑자기 옆에서, 입체 음향에 효과적인 거대한 돌비 사운드 스피커라도 갖다 대고 벼락 소리를 틀어 놓은 줄 알았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그는 인적이 없는 공원 외곽의 벤치에 혼자 앉아서 하늘을 처다 보고 있었으니까.


주변은 황량했고, 백주 대낮의 거리에는 드물게도 인기척이 조금도 없었다. 가장 가까운 것이 한 블럭은 떨어진 자리에 있는 가게 내부의 종업원들일 것이다.


"···응?"


너무 놀라서, 단조로운 소리가 입에서 나왔다.

개그 프로그램을 보다가 예상과 다른 장면을 보았을 때의 반응과 비슷했다. 사람은 지독한 현상에는 반응을 할 감정이 모자라서, 도리어 적은 반응을 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러했다.


공원은 경사가 있는 곳이었고, 벤치에 앉은 내리막을 내려 주욱 가다 보면 저 멀리 언덕길이 다시 나온다. 수백 미터는 떨어져 있는 곳의 작은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바라다보고 있는 그 자리에 갑자기 벼락이 내려 꽂힌 것이다.


"······."


잠깐 말을 멎었다. 무언가 말을 해보려고 했는데, 처음의 멍청한 반응 말고는 목이 메어서 소리가 잘 나지도 않았다. 벤치의 옆에 두었던 아메리카노···


를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갑자기 힘을 주어서 플라스틱 컵이 사정없이 찌그러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벤치 아래로 전부 흘러버리고 말았다. 남은 것은 구겨진 플라스틱과 약간의 커피, 그리고 얼음 조각들 뿐이다.


뒤늦게 알았는데 커피가 흘러서 허벅지 부근이 축축했다. 이런 망할.


꽈르릉!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소리에 반응했다. 어깨가 나가도록 크게 들썩이며 움찔했고, 뒷목이 쭈볏 섰다.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 컵은 휘이, 던져져서 길바닥에 처량하게 떨어졌다.


"······."


나는 약간의 불안감을 갖고 다시 먼 자리를 처다 보았다. 불길한, 예상으로 인한 불안감이었다.


하늘로부터 시퍼런 창이 내려 꽂히는 것 같았던 벼락은, 한 번 더 그 자리를 찔렀다.


멀리 보이는 언덕 공원의 나무가 시꺼멓게 타버린 것이 보인다. 그 가지와 나뭇잎들이 모조리 떨어지고, 남은 것들은 불에 타고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선명하다. 거짓말같다. 아니, 거짓말인가? 누가 CG를 저렇게 잘 만들었담, 하하.


"하······"


웃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입매가 올라가지 않았고 소리가 잘 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벤치에 앉아 있었다.


머리가 띵하다. 잠시 있었다. 음··· 다행히 오줌을 지리지는 않았다. 축축한 건 아메리카노 뿐이었다.


나는 한 손으로 눈가를 쓰다듬었다. 극한의 피로감을 느껴 한 생존반응이었다. 그리고 아메리카노를 쏟은 손으로 그래서 축축한 커피를 느껴야 했다.


"······."


속으로 욕이 튀어나오려 하다가, 멎었다. 음······.


나는 아무런 연관도 없지만, 괜스레 속으로 사과를 했다.


어··· 요, 욕은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이었다.







다술에 있던 백업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직 안 정했습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4 야구#대본 24.02.08 6 0 5쪽
63 라디오 드라마Radio Drama, 사자의 나날, EP(1)작심삼일 24.01.16 6 0 60쪽
62 시, 누군가의 생일 선물로 쓴 24.01.08 11 0 1쪽
61 낙산 공원의 밤_연극 대본#어딘가에서 연극을 할 글 23.12.30 10 0 93쪽
60 산#영화대본#이것도뭔가를찍으려고했었으나 23.12.15 13 0 13쪽
59 홀리샷#연극대본#어딘가에서 연기를 하려다 말았음 23.12.15 10 0 43쪽
58 누아르물# 23.09.07 21 0 14쪽
57 B와의 인터뷰(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적은 글) 23.08.28 16 0 31쪽
56 연개소문 컨셉#대사 위주#단편 23.07.03 24 0 11쪽
55 단편#대사#수군통제사 23.06.13 19 0 8쪽
54 커피샵의 남녀 23.06.12 20 0 12쪽
53 단편#대사#젊은 청년, 고백 23.06.12 24 0 7쪽
52 단편#대사#어느 노인의 유언 23.06.11 25 0 8쪽
51 형사刑事 이야기, 윤계식(2) 23.06.11 26 0 18쪽
50 사실 바둑이란 종목에서 23.06.07 25 0 3쪽
49 빌 그런츠, 작가 23.05.17 24 0 18쪽
48 짧은 형사 묘사 23.05.14 26 0 14쪽
» 글1 23.04.17 25 0 6쪽
46 유르타Eurta:Conscience story 23.01.12 38 0 28쪽
45 그대를, 2022 23.01.05 44 0 5쪽
44 누군가에게 연기를 시키려#남자#시트콤 23.01.05 37 0 2쪽
43 사랑에 대하여, 기독교적#단편#에이와 이이#아가페와 에로스 23.01.05 43 0 24쪽
42 누군가 에게 연기를 시키려고#판타지#공녀#기사#비룡 22.11.23 40 0 7쪽
41 누군가에게 연기 시키려 끄적 22.11.14 37 0 4쪽
40 문혈, 젊은 천재 22.11.14 31 0 14쪽
39 연극독백#트라우마#김한수 22.11.09 37 0 9쪽
38 점퍼, 순간이동자 22.09.17 38 0 27쪽
37 잠수도시, 칼젝 21.07.09 53 0 5쪽
36 발란은 숲에서 길을 잃었다. - 21.06.23. 21.06.23 58 0 26쪽
35 2:01 PM 21.06.22 42 0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