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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1.01.23 12:29
최근연재일 :
2024.02.08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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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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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9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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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연극독백#트라우마#김한수

다술에 있던 백업




DUMMY

김한수는 트라우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좁은 방 안. 주변은 밀실이고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형광등 불빛 정도가 그의 눈가를 어른거리며 안구 피로를 돋군다.


“그래서······.”


침을 삼키듯이 몇 번을 되새김질을 하고 나서야 간신히 꺼낸 첫마디였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었지만, 동시에 누군가가 있었다.


그는 지난 날의 한 장면을 상상하면서 그 때 자신이 했었어야 했던 말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 고개를 조금쯤 숙인 채, 무릎에 양팔을 두고 아래를 바라보고 있다. 슬쩍 내리깐 시선의 위, 그리고 오른쪽 부근에 사람의 형상이 보이는 것 같다. 실체는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그 때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었기에, 그때의 그를 상상해볼 뿐이었다.


그는 상상력이 좋은 편인 인간이었다. 이런 식으로 했어야 했던 일들에 대한 후회를 할 때조차도 말이다.


‘입이 굳었네요. 천천히 말하세요. 아무도 당신을 재촉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한 번 여쭤보죠.’


그 날의 그는 그렇게 물었다. 한 텀을 쉬고 나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평온한 목소리로.


‘여기에 온 이유가 뭐죠? 김한수 씨.’


그 때의 그는 마치 이런 곳에 있었다. 밀실이었고, 불빛은 형광등 뿐이었다. 그 때 그의 앞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그때도 이렇게 고개를 푹 숙이고, 오랜 시간을 끌다가 다시금 나왔다. 하려던 말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김한수는 마치 벙어리처럼 몇 번을 입을, 눈이 그러하듯 껌벅대며 마른 침만 넘겼다. 지금 자신에게 있는 건 긴장감인가, 두려움인가? 혹은 분노인가.


그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확신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찾아간 곳이었다.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되는 차가 있습니다.’


달그락 거리면서 당시의, 그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내주었다. 소리로 들어 보건데 찻잔이었다. 고개를 들어 확인했고, 상대는 금방 따뜻한 차 한잔을 타왔다. 김한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한 모금을 마셨다.


그 때의 기억처럼, 그는 빈 허공에 손을 들어 찻잔을 드는 시늉을 했다. 천천히 입가에 가져다 대어, 입술의 감촉을 떠올린다. ‘이상한 약물 따위는 없어요.’라며 하는 농담을 듣고 한 모금을 마셨다.


따뜻한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고, 뱃속을 데우자 약간의 피로가 풀리는 느낌도 들었다.


보통 차를 마실 때는 말을 하지 못한다. 김한수는 그런 척을 했다. 당시의 상황을 재연하는 것이, 말을 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다시 한 번 똑같은 자리에 간다면, 그 때는 말을 할 것이다. 김한수는 연기를 하며 삶을 연습했다.


“후우.”


먼저 뜨거운 액체를 마신 뒤라 한숨을 토해낸다. 그와 함께 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뻐근한 눈가가 이완된다. 그런 느낌이 든다.


김한수는 이번에는 적셔진 목구멍에서 소리를 냈다.


“아무것도···.”“아무것도···.”“아무것도······.”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목구멍을 비집고서 눈물처럼 새어나온 말은 그것이었다. 김한수의 뇌리를 지배하는 감정은 후회였다. 무엇에 대한 후회인가.


‘뭘 못했죠? 어떤 상황인가요. 지금 느끼는 건 후회일까요?’


상대는 차분하게, 세 가지 질문을 텀을 두고 말했다. 느리고 일정한 어투는 그에게 안정감을 전염시킨다.


김한수는 말과 함께 새어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손가락으로 틀어막았다. 실제로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저 그럴까봐 그랬을 뿐이었다.


그는 차마 앞을 보지 못한 채, 눈꺼풀로 세상을 가리고 입을 다시 열었다. 그가 보지 않는 건 세상이었다. 그리고 그 스스로였다. 눈을 감은 이는 그 스스로에 대한 관조도 포기한 이였다.


“내 앞에서······.”

‘앞에서.’


이야기를 듣는 데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는 가끔은 말을 따라 뱉으며 대화를 구슬렸다.


“떨어졌···.”


거기까지 말한 그는 발작적으로 눈가를 누르던 손가락을 떨었다. 말을 하면서 동시에 지난 기억을 떠올린 탓이었다.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연습을 하고 있었고, 그 과거보다 더 지난 일을 동시에 끄집어내고 있었다. 정신적인 고통 속에서 시제는 의미가 없었다. 그는 그저 편안해지고 싶을 뿐이다.


번뜩, 하며 그의 눈가에 영화의 필름이 튀듯 일그러지고 또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주변은 빛으로 번져 있어서 상세하게 파악이 되지 않는다.


그가 바라보는 건 한 여자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제법 아름다웠고, 심지어는 길가에서 마주쳤다면 이상형이라고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는 정도였다.


다만 구도는 정상적이지 않았다. 한 여성의 얼굴은 빠르게 그를 지나쳐서, 아래로 멀어졌다. 그가 있는 곳은 한 고층 빌딩의 테라스였다. 그는 상황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고, 인지했다.


한 건물에서 지독한 실랑이가 일어났다. 가정 내의 다툼이라고 보기에는 위험한 지경의 소리가 났다.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공간이었음에도, 야외와 같은 베란다에서 선명하게 그 사연이 들려왔다.


점점점, 고조되던 감정과 폭언과 괴성, 고함과 물건 따위가 깨지고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무언갈 해야 하나, 아니면 가만히 있어야 하나. 이걸 듣고 있는 건 자신 뿐인가. 괜한 오지랖이나, 혹은 멍청한 불안감에 불과한가.


그때 낭비한 시간이 지독하게 후회가 되었다.


지난 날의 지난 날. 트라우마가 시작되는 시점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감정의 격류가 일어났다. 김한수는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아무런 말이나 소리를 전달했다.


“아아아. 어쩌면. 어쩌면 좋았죠.” “내가-”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분절되어 바깥으로 나왔다. 감정의 격류가 생각과 말을 제대로 분간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였고.


“그걸 봤어요. 멍청했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때 말릴걸. 아무런 일도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앉아 있었고, 가만히. 누군가가 그 지경에 처할 때까지.”


“그러다가···.”


그의 말투에 물기가 서리기 시작했다. 막아두었던 눈가에서도 기어코 무언가 맺히는 듯했다. 기관지가 막히고 답답해지면서 신체적 변화와 함께 감정이 고조되었다. 그와 함께 그는 지난 날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결정적인 장면을 생각한 부분에서 헛숨을 삼키며 잠깐 말을 쉬었다.


그리고 머릿속 사건이 다시금 시간의 흐름대로 움직이면서, 회한처럼 맺혀 있던 후회가 그를 자극했다. 그는 마음을 열어 토해내듯이 나머지 말들을 쏟아냈다.


“떨어졌어요. 떨어졌어. 내 앞에서. 젊은 여자였는데, 나보다도, 나보다도 당황스러워 보였습니다. 눈가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해요. 미친 사람들처럼 고함을 지르던 방에서 순식간에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바람 소리가 났고, 나는 바라보던 그 자리에서 마주쳤습니다.”


긴 말을 빠르게 하는 건 숨이 찬 일이었다. 김한수는 의도치 않게 차오르는 숨에 말을 끊었다가 뱉어야 했다.


“마지막, 마지막, 마지막이었어요. 마지막 남은 얼굴. 그게 나란 말입니다. 그 사람이 본 거. 내가 뭘 했어야 했죠? 손을 뻗어야 했나? 잡을 수 있었을까요? 신고를, 했, 으면··· 좋았을까요? 그러면 만족해요? 내 잘못인가요? 내가 이 사고를 막지 못한 겁니까?”


덜덜덜덜, 길게 말을 토해내면서 손끝이나 입술이 부들거리며 떨렸다. 그는 지난 날의 상황을 아직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형체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죄책감만이 그의 심장을 조이면서 삶의 숨통을 막히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죄를 고백하듯이 토해내며 마침내 더욱 몸을 웅크렸다.


그가 찾아간 곳은 병원의 정신과였다. 매번, 수많은 지독한 사연이나 혹은 정신병력을 위조하고자 하는 이들의 솜씨를 들어야만 하는 의사는 김한수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그가 한 호텔에 묵으며 겪었던 경험 이후, 목을 조르듯 괴롭게 만들던 기억을 못 이겨 찾아간 병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을 토해내면 자신의 잘못이 그 사이에 섞여 있어 드러날까 해서였다.


그러나 결국 누군가에게 말을 하지 않고 있는 것조차 견딜 수가 없어, 그는 자신의 집 작은 방 안에서 홀로 말을 토해내기에 이르렀다.


누군가에게 고민을 상담하는 것조차 연습이 필요한 지독한 상황이었다.


눈물이나 회한을 작은 방 안에서 홀로 토해낸 그는 잠시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스스로가 진정이 될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누군가가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그 스스로가 그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거칠고 불규칙적인 호흡이 가다듬어질 때까지, 수 분의 시간이 걸리고 침묵을 찾을 때까지 더한 시간이 걸렸다.


*




다술에 있던 백업


작가의말

뭐 어디 쓸 일이 있어서... 잠깐 써봤습니다. 독백을 써먹을 일이 있어서.

레퍼런스는···

조던 필 감독의 영화 '겟 아웃'의

'성큰 플레이스'라는 씬입니다.

https://youtu.be/kBwVWrBk_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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