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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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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1.01.23 12:29
최근연재일 :
2024.02.08 23:16
연재수 :
6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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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0
추천수 :
3
글자수 :
324,022

작성
23.06.12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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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단편#대사#젊은 청년, 고백

다술에 있던 백업




DUMMY

2. 젊은 청년



“야.”


부르는 목소리가 아주 약간 떨렸다. 평소에 잘 하지 않던 긴장 탓이다.


“······. 바로 말할게. 나는 질질 끄는 성격 아니거든. ······. 큼(헛기침).

그······.”


사내는 고개를 잠깐 떨구었다가 다시 올려 바라보았다. 가로등 불빛에 상대의 얼굴이 비쳤다. 콧날이 오똑하고 웨이브 진 긴 생머리에, 화장기는 거의 없다. 가을 저녁 바람에 걸친 재킷을 슬쩍 여미면서 그를 쳐다보고 있는 눈망울이 동그랗다.


“······좋아한다. 넌 나 어떠냐. 아니, 잠깐만. 지금 말하지는 말아봐. 미안한데, 내 말부터 우선 들어봐. 그게···

우리 처음 본 게 언제야. 한참 됐잖아. 응?

대학교 처음 들어와서 OT때 알았고··· 그 뒤로 얼마 안있어서 같은 수업 듣다가 말 텄고···. 너나 나나 술은 안하는데 괜히 끌려가서 시간 죽이고 있다가 얘기하고···. 너 도망가는 거 내가 시선 끌어주고.

그러다가 나는 못 빠져나오고 새벽 다 지나도록 맨정신에 주정뱅이들이랑 노래방 가서 난리 치는 거 구경하고 챙기느라 개고생··· 아니··· 이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


“······.”


여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면서 그를 계속 처다봤다. 입술이 달싹거리면서 ‘그래서 뭐,’ 라고 묻는다.


“어? 아니. 서운하단 말이 아니라···. 못 들었나? 잠깐만···. 처음에 내가 뭐라고 했지. 어··· 너··· 는 나 어떠냐고. 나는 너 좋아하는데.

김윤서.

우리 본 지 오래됐잖아. 나······, ······ 는 솔직히 너 정도면 예쁘다고 생각하거든?”


찰싹, 하고 청년은 눈 앞의 여자애의 표정이 구겨지는 걸 보더니 제 입가를 손으로 쳤다.


“조···올라 예쁘지. 응. 다른 애들도··· 너 좋아하는 애들 많고··· 걔들은 상관 없지만. 내 눈에도 네가 우리 과에서 제일 예뻐. 예뻐서 좋아하는 건 아니고··· 예쁜 것도 있긴 한데··· 성격도 좋고.

침착하고. 잘 웃고.

······.

배려심 많고.

나 미친 놈인가? 지금 뭔소리 하는지 모르겠다.


······어, ······ 그러니까.


눈도 예쁘고. 저번에 나 학회 준비하고 밤에 가려는데 신용카드 잃어버렸을 때 있잖아. 그 때 옆에 있다가 왜 그러냐고 하고 같이 찾아봐주고. 결국 못찾으니까 네가 돈 빌려줬지. 고맙다. 너는 야, 마음이 따뜻한 녀석이야.

나 술 못하는 거 아니까 선배들이 끌고 가려고 할 때 동아리 발표 준비 있다고 쉴드 쳐주고.

내 말도 잘 들어주고. 고민 상담도 해주고. 네 고민도 솔직하게 얘기해주고.

······.

힘들 때도 잘 웃고. 너 그냥 이쁘다고 싫어하는 선배 욕한 적 한 번도 없고. 애들 싸우면 먼저 나서서 풀라고 다리 놔주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 좋아하고.


나랑 약속 잡고 만날 때 내가 얼타고 길 잃어서 이상한 데 데려가도 진심으로 화낸 적도 한 번 없고.


······미쳐가지고 이상한 짓 하려고 하는 애들 있으면 따끔하게 얘기하고. 후배들 중에도 너 싫어하는 애 한 명도 없지.

그게 다 옳은 말 해주는 거 알아서 그런 걸거고···. 내가 보기에도 좋아 보여. 잔소리 하는 사람 있어도 나쁠 거 없고 사실은.

그거 계속 하고······.”


“······.”


여자 아이, 20대 초중반. 검푸른 색의 재킷을 걸치고 뚝 떨어지는 핏의 면바지에 안에는 면 티를 입었다. 그녀는 눈살을 슬쩍 찌푸리면서 그를 계속 보았는데, 장난기나 웃음기 같은 게 조금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라고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그······ 래서. 어. 그런 말이 아니지. 응. 맞아.

······.

너······ 지금 만나는 사람 없······지. 그렇지. 혹시 누구 좋아하는 선···배나 애들 있는······ 것도 아니지.

음······. 솔직히.

너랑 있을 때 좋다.

너랑 있으면 많이 웃고

쓸 데 없는 걱정이나 고민도 덜 해.

네가 웃으면 더 좋고.

너 좋은 사람인 거 알고,

좋은 애인 것도 알아. 그리고 예뻐. 다른 애들보다 내 눈에 더 예뻐 보여. 진짜로. 확신할 수 있어. 내 눈 그대로 출력하면 너 기절할 걸. 화장빨이 아무리 잘 먹어도 사람이 그 정도로 변할 수는 없으니까······


어 미안.”


김윤서, 의 표정을 살피면서 남자는 말을 골랐다.


“진짜로.

그리고, 내가 너 때문에 더 웃는 것만큼 너 웃게 해줄게.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이···. 그리고··· 내가 그렇게 잘났는 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책임감은 좀 있거든? 네가 먼저 그러지 않으면 내가 먼저 널 덜 좋아하게 될 일은 절대로 없을 거야.

만약에,

진짜 만약에 우리 둘이 사귀면 네가 나 좋아하는 것보단 무조건 내가 더 많이 좋아해줄게. 이미 지금도 그런 거 같긴 한데······.


······너···는 어떠···니. 나······는 너 좋아해. 너 웃는 모습도 공부하는 옆 모습도 등교 때 마주치고 같이 대화할 때 말투도. 네가 나한테 먼저 장난치는 것도. 여자애가 스케이트 보드 좋아하는 것도. 게다가 나보다 훨씬 잘 타는 것도. 머리 좋고, 똑똑하고, 사람한테 쓸데없이 나쁜 말 안하고, 늘 예쁘게 말 하려고 단어 고르는 것도.

화장 잘 안하고 다니는 것도. 털털하게 잘 웃고 시덥잖은 개그 치는 것도. 밥 굶었냐고 나한테 빵 던져주는 것도. 실수하면 먼저 사과하는 것도. 다른 애들 먼저 좋아해주고 항상 친절하게 사회 생활 하는 것도. 고맙다는 말 자주 하는 것도.

쓸 데 없이 돈 많고 잘난 선배한테 가서 끼 안부리는 것도, 교수님한테 예의 바르게 맨날 앞자리에서 먼저 인사하는 것도. 너 맨날 입는 그 초록색 추리닝 후드 티도. 집중하면 다른 사람 말 잘 못듣는 것도.


······다 좋아. 나랑 사귀어 주라.”


청년이 말했다.


가로등 불빛이 어른거렸다.


대학교정, 대운동장 근처의 어느 벤치가 하나 있었다. 낙엽이 떨어진 벤치는 사람 하나 없이 덩그러니 있었고, 그 근처에 두 사람이 선 채로 있다.


달이 밝다. 휘영청 흰 빛을 내리쬐면 동기의 얼굴이 잘 보인다. 가로등 불빛이랑 섞여서, 청년보다 작은 키로 올려다보는 얼굴이 홍조가 섞인 듯도 했다.

뭐, 사람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고 다 좋은 의미는 아니었다.

그러나 왠지 분위기라는 게 있었고, 표정과 인상이 말하는 비언어적 표시들이라는 게 있는 법이었다.


청년, 한형석은 길게 말을 하느라 타는 줄도 몰랐던 목에 침을 삼키면서 기다리는데,


왠지 예감이 좋았다.


윤서가 입을 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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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술에 있던 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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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글1 23.04.17 25 0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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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그대를, 2022 23.01.05 44 0 5쪽
44 누군가에게 연기를 시키려#남자#시트콤 23.01.05 38 0 2쪽
43 사랑에 대하여, 기독교적#단편#에이와 이이#아가페와 에로스 23.01.05 43 0 24쪽
42 누군가 에게 연기를 시키려고#판타지#공녀#기사#비룡 22.11.23 41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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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연극독백#트라우마#김한수 22.11.09 3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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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잠수도시, 칼젝 21.07.09 54 0 5쪽
36 발란은 숲에서 길을 잃었다. - 21.06.23. 21.06.23 58 0 26쪽
35 2:01 PM 21.06.22 43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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