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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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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1.01.23 12:29
최근연재일 :
2024.02.08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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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23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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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쪽

발란은 숲에서 길을 잃었다. - 21.06.23.

다술에 있던 백업




DUMMY

길을 잃었다. 사위는 두껍고 높은 활엽수종으로 빽빽한 원시림이었다. 발란은 주저없이 도끼를 꺼내들었다. 퍽! 바로 앞에 있던 나무가 패였다.


그의 눈높이에서 잘 보일만한 위치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발악이라도 해야했다. 자신이 남긴 자국을 보고 스스로 방향을 정리 해야 했다.


퍽! 카득. 퍽! 퍽!


그는 걸음마다 진행방향과 같은 도끼자국을 내면서 일단 전진했다. 머릿속으로 그가 가는 진로와 방향을 최대한 그리고 있었다. 그가 가는 곳은 이 깊은 수해 속에 있는 어떤 이의 거처였다. 숲에 들어온 지는 며칠이 지난 상태였고, 수해에서 빠져나가는 일은 아마 어려웠다. 이대로 길을 찾아 그 집을 찾아내던, 그 집의 주인이 자신을 발견하던지 해야 했다.


“빌어먹을.”


남자는 낮게 욕을 지껄이면서 길을 계속갔다.


퍽, 퍽, 퍽.


숲에서 길을 잃는 건 고된 일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 중 하나였는데, 남자의 직업 상 확률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다시 겪고 있는 것이다.


“빌어먹을.”


남자는 이 일이 정말 싫었다. 일종의 트라우마와 같았다. 그의 직업 상, 어떤 의뢰를 받아 물건을 찾는 일이었는데 그게 하필 깊은 숲 속에 자리해서 죽을 고생을 몇 번이나 넘기면서 의뢰를 마친 적이 있었다. 물론 일이 끝난 뒤에 마땅한 대가는 받았지만, 남자에게는 괴로운 순간이었다. 그가 길을 잃었던 숲은 여행객들이 많이 목숨을 잃곤 하는 지독한 숲이었다. 독충이나 독이 있는 식물 따위가 목숨을 위협하고, 햇빛마저 가리는 울창한 나무들에 방향조차 잃기 십상이었다.


물론 지금 그가 길을 잃은 숲은 그때의 것보다는 조금 사정이 나았다. 보아하니, 햇빛도 얼추 방향 정도는 가늠할 수 있었다. 독충이나 해로운 식물도, 일단 그에게 달려드는 종류는 보이지 않았다. 잘하면 식량이나 식수 따위도 구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짐작이고 상황이 나빠지면 이대로 조난당해 굶어 죽을 수도 있었다. 일단 이 드넓은 숲에 짐승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는 것부터가 그의 뒷골을 싸하게 만들었다.


“그의 집은······.”


그가 찾고 있는 누군가의 거처는 정확한 표식이 몇 개 있었다. 그 거처 주변에는 거하게 생긴 마수가 위압감을 풀풀 풍기면서 영역을 지키고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의 거처 주변으로 가면 활엽수림이 마치 의도적으로 심어진 것처럼, 일정한 길을 내고 영역을 빙 둘러서 있다고 했었다. 이 드넓은 숲에서 그것만으로는 아주 부족했으나, 무슨 동화 속의 단서처럼 태양과 가까운 곳에 있다고 했었다.


“아니 이 미친 태양은 계속 움직이잖아?”


당연한 말이었다. 남자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남자가 하는 말은, 그러니까 그 단서를 알려준 인간의 멱살을 쥐고서 건네주고 싶은 내용이었다. 불행히도 단서를 알려준 술집 주인은 남자에게서 도시 서너개 정도의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일단 살아남아야 주인장의 멱살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태양과 가까운 곳이라.’


그게 무슨 말일까. 남자는 계속해서 기계적으로 도끼로 나무에 상처를 내면서 길을 걸었다. 일정하게 걷는 것조차 포기했다. 그저 최대한 넒은 반경을 시야에 두면서 빙빙 돌고 있었다. 머리속으로는, 점점 더 커져가는 원을 그리면서 돌고 있었다. 최대한 많은 장소를 탐색해서 집을 찾기 위함이었다. 남자의 체력이 다할지, 식량이 다할지, 집을 찾을지는 미지수였다. 숲은 남자의 체력보다는 훨씬 컸다. 아마 이 도박과도 같은 탐색이 잘못된 불운한 결과로 이어진다면 남자는 그 자리에서 쓰러질 테였다.


“뭐 먹을 게 있을란가···”


남자는 불안한 지 혼잣말을 계속해서 토해냈다. 자기가 가진 식량 외에 다른 먹을 만한 것을 찾을 수 있다면 탐색의 기간이 조금 더 늘어나고, 집을 찾을 수 있을 확률 또한 늘어났다. 목숨을 걸고, 판 위에 직접 올라와있는 퍼즐 게임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숲 길은 사람이 다니기에 좋게 정비되어 있는 길이 아니었다. 그저 짐승의 길 따위가 조금 있는 듯 했고, 나머지는 농담으로라도 좋다고 말할 수 없는 길들이었다. 남자는 큰 체구를 이리저리 뒤틀어가며 숲을 헤맸다. 평범한 길을 걸을 때에 비해 체력이 두, 세 배정도는 많이 들어가는 환경이었다.


남자는 눈으로 여러가지 정보를 담으며 탐색을 해나갔고, 손으로는 도끼질을 했으며, 발로는 끊임없이 걸어댔고, 머리로는 그에게 주어진 몇 가지 수수께끼를 풀고 있었다.


이 숲에서 태양은 지금 남자가 서 있는 방향 앞으로 져가고 있었다. 남자는 서쪽으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그가 돌고 있는 가상의 원은 꽤나 지름이 커서, 한동안 직진하고 있었다. 그가 찾고 있는 거처는 지도 상에서 사람들이 추론한 대략적인 정보 상에서 볼 때, 숲을 십자선으로 사분할 했을 때에 북서쪽의 면에 존재한다고 했었다.


여기까지는 믿을만한 정보였다. 실제로 그가 찾고 있는 집의 주인과 교류를 했던 이들이 만났던 경험을 토대로 한 추론이었으니까. 숲은 방향감각을 찾기가 힘들고, 집의 주인은 자신이 머무는 자리 근처로 이상한 마법적인 술수라도 부려놓았는지 그 정확한 위치를 방문객들이 짐작하기 어렵게 해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남자가 이런 개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부디 그 집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 와 달라는 대도시 거부들의 연합이 내놓은 의뢰를 받은 바람에.


남자가 찾고 있는 집의 주인은 기이한 능력을 가졌다고 소문이 난 현자였다. 그 지식과 지혜의 깊이가 도시에 있는 누구도 따라갈 수 없고, 탁월한 마법적인 능력을 가지고 사람에게 일정한 종류의 축복을 주는 데에 뛰어난 자. 그의 집을 찾은 이들은 도시의 소란함 속에서 겪는 많은 문제들의 해답이나 적어도 그 도움을 얻고, 도시에서 유력한 거부나 명성을 얻은 이들이 되었다고 한다.


그게 지난 한 이십여년 간의 일이었다. 숲의 은자에게 기연을 받은 이들이 주변의 도시들로 많은 명성과 힘을 가진 권력자들이 되었다.


소문에 의해 그 축복을 노리고 은자를 노린 많은 도적이나 암살자들이 있었으나,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고 숲을 탐험하는 베테랑 모험가들조차 그 집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이 길을 헤매고 있는 남자가 거의 마지막 시도였다. 숲의 거부들이 거액의 선금을 걸고, 선금의 몇 배나 되는 완수금을 걸고서 내놓은 의뢰를 덥썩 받아버린 멍청한 해결사. 나름대로, 이 인근 도시들과 넓게는 나라 전체를 보아도 남자는 쓸만한 경력을 가진 우수한 해결사이기는 했다. 그랬기에 그들이 남자에게 의뢰를 맡긴 것이기도 했고.


남자는 나름대로는 일정한 가능성을 보고 숲에 들어오기는 했다. 그 은자를 만나서 권력자가 된 한 사람이 남자의 친한 지인이었으니까. 은자에 대한 정보는 보통 비밀에 쌓여 있었고, 그를 만났던 이들은 하나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그 정보를 잘 공개하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남자가 이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한 권력자는 남자에게 소상한 정보를 공개해주었다.


남자가 들은 몇 가지 단서와 정보들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한참이나 부족했는지, 그리고 남자도 어느정도는 헤맬 것을 각오하기는 했지만···


“이 숲 자체가 조금 기이한 분위기인 것 같은데.”


숲의 대략적인 지도는 가지고 있었다. 남자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숲에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감정적으로는 절대 다시 오고 싶지 않았지만, 능력적으로는 나름대로 숲에서 길을 찾고 이동하는 데에 수월함이 있었다. 그러나 지도도 뭐고, 방향을 찾는 여러 탐험가들의 노하우고 뭐고, 하나도 맞지 않았다.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부터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남자는 한참을 헤매다가, 지금 떠올렸다.


“숲의 은자의 집은 그 정확한 위치를 알기 힘들다고 하지. 그러면 지금 이게 그 이상한 술수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와 있는건가?”


남자는 의외로 옳게 찾아온 것일지도 몰랐다. 남자는 고무적인 생각에 다소 희망적인 기운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일단, 그 집에 도달하면 돌아가는 것은 쉬운 일일 것이다.


남자는 자신이 처음 길을 잃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진행해온 원형의 길을 머릿속에서 가늠했다. 남자의 걸음은 숲길에서 제법 빠른 편이었다. 그리고 지금 한 낮부터 시작한 길이 해가 질 무렵까지 다다르고 있었다. 꽤 큰 원일 것이었다. 남자는 여태까지 태양에 가까운 곳, 나무들이 인위적으로 서 있는곳, 거대한 마수가 영역을 지키고 있는 곳 중 어떤 비슷한 장소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면 생각보다 그 술수의 영향권이 거대하게 미쳐있고, 남자가 그곳을 헤매고 있는 걸까.


‘태양에 가까운 곳.’


일단은 진행방향대로 길을 계속가기로 했다. 멈춰 있어서는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다. 운명 안에서 남자는 움직이며 길을 찾는 것이 익숙했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르며 중천에 이르렀다가 서쪽으로 진다. 태양에 가까운 곳이란 어디일까. 물리적으로 태양과 가장 가까운 거리. 그딴 건 없었다. 천체에 관한 지식이 있다면 아마 중천에 떠있는 해의 아래에 있는 것이 그나마 가장 가까운 거리일 것이었다. 그러나 그게 틀린 답일까? 혹은 과연 맞는 답일까?


남자는 중천에 해가 떠있던 지점을 떠올렸다. 그 지점은 남자가 곧바로 길을 잃기 시작한 즈음이었다.


남자는 덜컥 길을 멈추었다. 웃기지도 않은 수수께끼가 말 그대로의 내용이고 천문학에 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면 남자가 가야 할 곳은 처음의 그 자리였다.


남자는 멈춰서서 잠깐 고민을 했다. 앞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인가. 이 숲에서 한 자리의 집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 게 옳은가, 아니면 수수께끼와 자신이 내놓은 그저 빈약한 추론을 따라 돌아가는 게 옳은가.


남자는 돌아가기로 했다. 머리를 흔들고 방향을 고쳤다. 뒤를 돌아서. 다행히 남자는 꾸준하게 나무에 상처들을 내며 길을 걸어왔다. 돌아가는 것만큼 확실한 일은 없었다. 식량은 한, 두 끼 정도가 남아있었다. 돌아간다면 식량을 새로 찾을 걱정부터 해야 할 것이었다.


*


밤의 숲은 위험하다. 그러나 여기는 사람에게 별로 위험한 짐승이 돌아다니지 않는 특이한 구역인 듯, 남자에게 해로운 것은 그다지 없었다. 어둠만이 남자에게 방해물이었으나, 그는 아주 질이 좋은 기계식 랜턴을 가지고 있었다. 튼튼한 강화유리로 보호받는 화학물로 발광하는 랜턴은 수명도 길었다. 내용물만 갈아주면 거의 반영구적으로 숲안에서 쓸 수 있었다. 막대한 선수금이 없었다면 구하지 못했을 물건이었다.


랜턴의 불빛은 짐승들을 모을 수도 있었고, 도망치게 할 수도 있었다. 남자는 어쨌거나 길을 계속 갔다. 왔던 길을 돌아가는 건 처음보다 아주 조금 빨랐다. 길이 남자의 몸에 익숙했던, 아니면 그저 남자가 지나오며 밟은 흔적들이 미약하나마 길을 냈을 지도 모른다.


저녁에 돌아가기 시작한 여정은 그대로 밤이 되고 깊은 새벽이 되어서야 끝을 맞았다. 남자는 짙은 어두움, 푸르스름한 새벽녘에 처음에 도달했던 그 자리에 섰다.


“어디냐, 그래서.”


남자는 랜턴을 들고 이리저리를 찾았다. 반경 오십 보 안을 벗어나지 않고 도끼로 흔적을 남기며 탐색했다. 아니, 근데.


“처음에 여기서 인위적인 나무 정원과 거대한 가디언을 발견했다면 길을 벗어나지도 않았을 거잖아?”


남자는 잠시 든 생각에 생각이 꼬이는 걸 느꼈다. 그래, 그가 가진 단서는 여러가지였다. 한 가지 단서만이 있지는 않았다. 다른 단서의 흔적들이 보였으면 애초에 길을 벗어나지도 않았겠지. 남자는 입에서 자연스럽게 욕이 나오는 것을 잠시 멈췄다.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힘도 별로 안났다.


일단 멈추었다. 탈력감이 몸을 감쌌다. 남자의 체력으로도 쉬지 않고 숲 속의 강행군을 해댄 것은 지칠 만한 일이었다. 잠시라도 어디 그루터기에라도 앉든, 쉬고 잠잘 곳을 찾아야 했다. 물이라도 한 모금 마셔야지.


남자는 수통을 열어 목을 축였다. 한 나무 그루터기에 기대어 앉아 피곤하고 절망감에 휩싸인 눈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쿵.


남자는 등에 닿는 부분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등을 기대려 했던 멍청한 사람이 된 모양으로, 그대로 땅바닥에 뒤통수를 박았다. 그는 시야가 사라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몸이 한번 더 반 회전했다.


그러니까, 땅바닥조차 남자의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한번 더 돈 것이다. 남자는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땅바닥의 표면에 거꾸로 누워 있었다.


“이게 뭐야.”


남자의 시야가 밝아졌다. 어두운 시야는 사라지고, 위치적으로 보여야 할 흙속은 아니었다. 남자는 멀쩡한 땅 위에 누워 있었다. 그가 등을 기대려다 넘어진 그 자세로, 이상한 장소에 있었다.


“어린 시절 동화 속 소녀라도 된 기분이로군.”


꿈 많은 소녀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환상을 꾸며서 현실을 인식하고는 한다. 유년기의 미숙한 자아와 시야가 만들어 낸 유치한 꿈이었다. 남자는 그 속에 들어온 기분을 느꼈다. 성인이 되고서도 한참이 지난 사내가 할 만한 상상은 아니었다.


다만 그의 오감이 현실감을 자아내고 있다는 것이 조금 문제였다. 숲의 은자가 마법사라면, 별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남자는 마약을 한 전적이 있지는 않았다.


-어서오시게, 여행자여.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옆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있는 곳은 인조적인 조명등으로 환하게 밝혀두기라도 한 듯, 훤한 광장같은 자리였다. 주변으로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의 배열이 참으로 인위적인 정원같았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본 건 거대한 상판이었다. 상판. 낯짝.


-허허허.


거대한 상판데기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남자는 그가 주워들었던 단서들을 보고 있었다. 남자의 옆에는 코끼리보다 조금 작은 사자가 비현실적인 크기의 상판데기를 들이대고 있었다. 음성은 그 쪽에서 들려왔다.


“다, 당신이 라그누스라는 숲의 현인이십니까.”


남자가 더듬대며 말을 물었다. 사자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네. 그런데 지금 자네가 보고 있는 건 우리 집을 지키는 사자 갈랑이로군. 나는 여기있어.


남자는 찬찬히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사자의 입에서 목소리가 나오는 건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위로 들었다. 사자의 갈기 뒤에 가려져 잘 보이지도 않는 부근에 땅딸막한 노인네가 앉아 있었다.


-자네 지금 땅딸막하다고 생각했나? 갈랑, 왼팔을 잠깐만 씹었다가 놓아주렴.


“크르릉.”


“으어어어어!”


남자는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저었다. 사자, 갈랑의 성대에서 오금을 저리게 하는 으르렁거림이 들렸다. 사자의 이빨은 하나하나가 무슨 단검같은 크기였다.


-허허허허. 농담이라네. 숲의 현인은 사람을 해치지 않아요. 먼저 해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약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인네였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이 들자마자 스스로의 머리를 세게 쳤다. 생각을 제어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괜찮다네. 그건 나도 인정하는 부분이거든.


보통 객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땅딸막함을 인정하고 정신적인 결함을 부인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고는 남자는 한번 더 자신의 머리를 가격했다. 도저히 생각이 제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어서인가.


-궁금증이 많은 친구로구만. 일단 먼 길을 찾아오느라 고생했네. 처음에 씹어먹으라고 한 건 당연히 농담이야. 나는 손님을 험하게 대접하진 않지. 일단 집에 들어가 천천히 이야기를 들어보지.


“크르르르릉.”


갈랑이 귀엽게 갸르릉거리며 고갯짓으로 집을 가리키더니 어슬렁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몸짓이나 움직임이 말했듯, 코끼리에 가까워서 남자는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위압감을 느꼈다. 이건···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위압감은 일단 아니었다. 남자가 일개 대대정도의 숫자로 있어도 이거랑 싸우기는 싫었다.


남자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일으켰다. 이 꿈속같은 세계는 일단 일반적인 상식으로 몸이 움직이기는 했다. 남자는 광장의 중앙에 보이는 작은 오두막으로 향하면서, 아직도 본인이 꿈을 꾸는 건지 혹은 숲 속에서 정신을 잃어 죽기 전의 환상을 보는 건지 오락가락했다.


*


오두막의 내부는 목제 가구들로 실내가 채워진 단촐한 모습이었다. 집 주인의 검소함이 드러나는 듯도 했다. 오랜 세월 때묻은 가구들과 집 안이 왜인지 남자에게 편안함을 주었다. 남자는 그제야 숲의 현인이 귀신이 아닌 사람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사자, 갈랑은 오두막의 창문 옆에 자리를 깔고 앉아 낮잠이라도 자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저······.”


남자는 목메인 소리를 내며 말을 시작했다. 몹시 체력적으로 피곤했던 건지, 잘 그러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불쌍한 목소리가 나왔다.


-그래, 말을 하게.

“일단 그 이상한 웅웅대는 목소리 좀 편하게 해주시면 안되는 겁니까?”


남자는 갑자기 울컥해서 먼저 말을 했다. 갈랑의 위압감에 놀라 잊고 있었는데, 현인은 입을 벙긋거리면서 입으로 말하고 있지 않았다. 마치 머릿속에 직접 울리는 듯한 기이한 소리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음, 미안하네. 불편했나보군.”


노인은 순순히 사과를 하며 입으로 음성을 내었다. 남자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제가 이곳에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라······.”


그리고 말이 막혔다. 그래서 뭐라고 하지. 남자는 이곳의 위치를 알기 위해 의뢰를 수행하는 중이었지, 딱히 현인에게 바라는 것은 없었다. 숲 속의 노인은 그런 남자를 바라보며 준비한 차를 부엌에서 내주었다. 급하게 끓는 물로 순식간에 만든 두 잔의 차였다. 남자는 일단 주어진 차에 감사인사를 하며 후루룩 마셨다.


“겁내 맛있어!”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육성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겁나 맛있잖아. 뭘로 만든거지.


알싸한 향이 도는 차는 정확하게 식욕을 돋구어 주는 듯도 했고, 약간의 단맛과 신맛이 조화를 이루면서 완벽히 남자의 입맛을 충족시켰다. 깔끔한 차였지만 은근히 식량의 대용이라도 되는 듯한 포만감마저 있는 것 같았다.


“마음에 드는가? ‘누구든지 입맛에 맞아 차’라는 차라네.”


남자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많은 의문이 떠올랐지만 그냥 차나 한번 더 마셔버렸다.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모양이로군. 무슨 얘길 하고 있었지?”

“아, 그러니까··· 이곳에 찾아오게 된 경위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랬구만. 그 드나크 지방의 거부들은 내 위치를 궁금해하고 있다고?”

“뭐여.”


노인은 남자가 말하지 않은 부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대화가 순식간에 십 분 정도 단축되어 버렸다.


“대강 자네의 생각들을 읽으면서 추론해보았네. 아까 자네가 머리를 치면서 가리려 했던 생각들을 읽는 거랑 똑같은 이치야. 뭐 자네의 깊은 비밀까지는 알지 못하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 내가 알아봤자 어디 얘기할 곳도 없고··· 만약 알게 되어도 혼자만 알고 있도록 하지. 그나저나 무좀은 어떻게 좀 괜찮은가? 내가 떠나기 전에 좋은 무좀약을 주도록 하지.”


“······.”


남자는 이해가 안되는 상황에 일단 그냥 차를 한번 더 마셨다. 굉장히 맛있었다.


“그 거부들이 원하는 건 정확히는 내 지혜와 마법 지식과 축복일 테지. 그런데 나는 그 자들한테 딱히 줄 것이 없는걸. 나에게 나쁜 마음을 먹고 찾아와 봤자 갈랑의 식사가 될 뿐일테고······.”

“······.”


노인은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시켜갔고 남자는 듣고 있었다.


“뭐 자네의 의뢰가 완성되려면 내 위치가 알려져야만 하겠지. 그럼 이렇게 하지.”

“예?”


후루룩. 남자는 궁금증을 내뱉으면서 차를 마셨다.


“그 차도 마음에 든다면 가기 전에 한 두번 먹을 정도를 주도록 하지. 한 번에 많은 양은 못만들어서, 가끔 찾는 이들한테 조금씩 주기는 한다네.”

“아앗, 감사합니다.”


남자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감사로 고개를 숙였다. 노인은 그런 남자를 바라보며 껄껄 웃더니 말을 이었다.


“이제 숲 생활도 지겨워졌고, 슬슬 도시에서 살아보도록 하지. 같이 도시로 가세나. 그러고 나면 내가 어디있는지 알테니 자네의 의뢰도 완수된 셈이겠지.”

“······.”


남자는 그렇게까지 바라지는 않았는데, 굉장히 친밀하게 다가오는 이 노인에게 많은 궁금증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풀기를 그냥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뭐······ 그럴 수 있지. 후루룹.


“그럼 이제 가세나. 자네의 몸의 피로도 많이 풀린 것 같으니.”

“예?”


남자는 노인의 손짓에 따라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왜인지 한계까지 체력이 닳고 녹초가 되어있었던 몸이 그새 가뿐해져 있었다. 남자가 이 이상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눈건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한 시간을 넘지 않았는데.


“현자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남자는 자세하게 말을 다 하지도 못하고 대뜸 물었다. 노인은 웃음기로 눈을 접으며 말해 주었다.


“음, 이 공간은 피로가 풀리기 쉽지. 자네가 마신 그 차 역시 비슷한 효능을 가지고 있고. 자네만 괜찮다면 지금 당장 같이 이동하려는데, 괜찮겠나?”


어차피 남자는 노인의 집만 찾아낸 뒤에 곧바로 떠날 생각이었으므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노인, 숲의 현자는 빙그레 웃으며 손을 휘둘렀다. 본 적도 없지만 악보를 지휘하는 지휘자의 손놀림같이 일정한 리듬과 모양이 있는 손짓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우우우우우우우우우웅.


온 사방이 강하게 두드린 쇠 종 안에 갇혀버린 마냥 떨어댔다. 땅도, 나무도, 오두막도, 심지어는 보이지 않지만 하늘마저 떨리는 것 같았다. 남자는 두려움에 차 노인을 쳐다보았다. 아니, 이게 대체 뭡니까?


캬오오.


오두막 옆에서 곤히 앉아 쉬던 갈랑이 고개를 쳐들고 사자후를 내뱉었다. 이 신비한 세상이 통째로 무너지는 듯한 현상이었다. 노인은 그 떨림 가운데 유일하게 흔들리지 않는 음성으로 남자에게 말했다.


“말했잖나. 지금 바로 간다고.”

“그게 뭔······.”


그게 설명이 됩니까? 하는 불만이 있었지만 어쨌든 현상은 이어졌다. 그리고 지속되는 현상은 마침내 끝에 달해 변화를 토해냈다.


-!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소리가 어마어마하게 크게 들렸다. 귀로는 잘 감지되지 않는 어떤 진동이었다. 시인이 와서 이 안에 있다면 공간이 찢어졌다, 라고 표현할만한 느낌이었다. 잠시 후 지진 후에 여파가 남고 이내 잦아들듯 소리도, 떨림도, 기이한 현상도 조용히 멎었다. 남자는 식은 땀을 흘리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캬오오.


갈랑이 투정을 부리는 정도로 소리를 냈다. 창밖은 어느새 기이한 숲 속의 광장이 아니었다. 그가 의뢰를 받고 떠나온 대도시 드나크의 어느 길목이었다. 남자가 그것을 어떻게 바로 알았느냐면,


“여긴 내 집 앞이잖아.”


남자가 드나크에 머물면서 거처로 삼았던 집 바로 맞은 편의 자리였다. 너무나도 익숙한 본인의 집이 창문 너머로 보이고 있었다. 남자는 이내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에 잔떨림이 멎지를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는 노인에게 설명을 바란다는 듯 궁금증을 담은 표정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노인은 노인답지 않은 정력으로 이내 또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주었다.


“공간이동의 마법이네. 갈랑을 거대하게 만들고, 보이지 않는 곳에 집을 만든 것도 모두 비슷한 종류의 일이지. 이제 내 얼굴을 그토록 보고싶어하는 치들의 낯짝을 직접 보러 왔으니, 그들이 뭐라고 할런지 들어 봐야겠군. 나는 현인도 아니고, 숲의 은자도 아니며, 전 세대의 대마도사 ‘라그누스 벤’이라네. 대륙에서의 내 과업을 마치고 숲에서 한가로이 노후를 즐길까 했는데··· 이렇게 종종 사람들을 보내와 귀찮게 하니 직접 얼굴을 보고 말을 하는 것도 좋겠지.”


노인, 마법사 라그누스 벤이 한번 더 그 유려한 손동작을 보였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작은 지팡이 하나가 들려 있었다. 발란은 마법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그들이 늘 저 지팡이로 전쟁터에서 싸우곤 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유려한 손동작이 끝나자 라그누스 벤은 훤칠한 키의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은 발란도 익히 아는 모습이었다. 모를 수 없었다. 이 시대에 가장 유명한 동화책의 표지에 그려지는 어떤 얼굴이었다. 강국의 왕들을 전쟁터에서 도망치게 만들고 나라간의 전쟁을 끝낸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사의 얼굴이었다.


“라그누스 벤. 그 얼굴 그대로···”


발란은 후세대의 삽화가 기가막히게 그려졌다고 생각했다. 라그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도 꽤 괜찮은 정보전달의 수단이지. 이제 이 얼굴로 거부들에게 가 봐야겠군. 내 제자의 제자들이 왕들과 마주하며 실력있는 마법사로 유세를 떨고 있는 세상에서, 욕심 많은 거부들이 과연 무슨 염치로 무엇을 요구할 지 들어 봐야겠군.”


발란은 라그누스의 손짓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체력의 문제는 아니었고, 경악의 문제였다. 라그누스가 먼저 오두막의 문을 열며 거리로 나섰다. 그의 오두막은 드나크의 알맞게 자리가 남은 건물 사이에 들어가, 원래 그랬던 것처럼 빈 곳을 채우고 있었다.


그르르릉.


문을 열자 순식간에 크기가 강아지만해진 그랑이 그를 쫓았다. 발란은 일단 의뢰를 완수해야 했으므로, 어떤 애매한 입장과 약간의 직업의식을 가지고 벤의 뒤를 따랐다. 드나크의 거리의 사람들은 벤을 마주하자마자 세상에서 절대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본 듯 잠시 굳었다가, 이내 진짜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며 고개를 흔들곤 지나가거나 했다.


*




다술에 있던 백업


작가의말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한 기념으로


써보았다 아이폰에서.


-------------


다시 읽다보니 전반부에 단서를 알려준 게 술집주인이라 되있고

후반부에 그의 지인인 권력자라고 되어있는데

한번에 그냥 새롭게 생각하면서 쓴 티를 낼 겸 냅두겠습니다.

권력자가 술집운영 할 수도 있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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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유르타Eurta:Conscience story 23.01.12 38 0 28쪽
45 그대를, 2022 23.01.05 44 0 5쪽
44 누군가에게 연기를 시키려#남자#시트콤 23.01.05 37 0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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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연극독백#트라우마#김한수 22.11.09 3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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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잠수도시, 칼젝 21.07.09 53 0 5쪽
» 발란은 숲에서 길을 잃었다. - 21.06.23. 21.06.23 58 0 26쪽
35 2:01 PM 21.06.22 42 0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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