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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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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금지
작품등록일 :
2021.01.23 12:29
최근연재일 :
2024.02.08 23:16
연재수 :
64 회
조회수 :
2,116
추천수 :
3
글자수 :
324,022

작성
22.11.2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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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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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
7쪽

누군가 에게 연기를 시키려고#판타지#공녀#기사#비룡

다술에 있던 백업




DUMMY




“하아.”


그녀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좁은 동굴 안이었다. 그녀의 몸을 간신히 누일 바위의 틈새. 어두운 동굴 내부에 빛이라고는 달리 없어서, 그녀는 자신의 펜던트에서 새어 나오는 초록빛의 미약함에 의지해야 했다. 이런 비상시에는 쓸만한, 아티팩트였다. 기능이라고는 작은 빛과 몇 번의 방패막이 뿐이었다.


‘그르르릉’

“저런, 아프니.”


그녀의 곁에는 작은 말 만한, 짐승이 하나 몸을 누인 채 신음을 토한다. ‘용’이었다. 그녀보다는 훨씬 큰 몸집의. 두께감이 있는 몸체를 하고서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청록빛의 아름다운 비늘을 뽐내는 것이었다.


그녀는 상처를 입은듯 힘 없이 누워 숨 죽여 우는 날 것의 머리께를 쓰다듬어 주며 한탄했다.


“후우우.”


깊은 한숨 뒤에 자신의 사연을 노래처럼 토해내는 그녀의 장기는, 그야말로 노래였다. 왕국에서 손꼽히는 아름다운 음색으로 유명한 여성이다. 이제 갓 스물이 넘었을까. 고운 피부에는 늘어 붙은 핏자국이 인상적일 정도로 덕지덕지 묻어 험한 꼴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아, 나는 망국의 공녀.


잊혀진 사연처럼 사라지고 마는 소국의 기사였네.


하늘을 떠가는 비룡떼의 움직임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뇌우나 검은 먹구름과 폭풍 속의 환란에도 사그라들지 않는 용기를 갖고


왕국의 적을 향해 돌진하던 청록 용기사단의 기수였네.


허공을 잡아채듯 날카롭게 선회하는 내 애룡 실론드의 주인,


공국의 노래꾼, 아버지의 기쁨이자 누이와 형제들의 애정을 독차지하던 품 안의 어린 양이었네.


하늘을 가장 빠르게 달리고 또 갈라내던 내 비행은


적국의 군세가 일으킨 파도에 부닥쳐 힘없는 새처럼 떨어져 이곳에 자리하네.


실론드의 날개뼈가 상한 것처럼 내 심령과 간장이 상해 떨고 또 우는구나.


이 차가운 돌벽과 이끼 사이의 이슬처럼 내 눈가 또한 구슬픈 쓴 울음을 토해내길 멈추질 않는구나.


차라리 이 눈가의 이슬만큼만 슬픔이 족했더라면 벌써 일어섰으리.


다 울어낼 수 없는 마음의 한이 내 발 길을 늦추는구나.


아아, 아버지여. 아아, 어머니와 형제들이여. 내 땅의 달리는 사자와 같던 사내들이여. 또 아름다운 사슴같던 딸들, 내 자매들이여.


그들의 안락한 터전과 뛰놀던 마당, 계곡과 들판을 잊어버리는 구나.


적군의 탄, 땅 위의 드래곤들이 그 큰 발자국으로 곱게 키운 논밭을 헤집는구나.


불타버린 마을들 위 성당의 증표와 그 찬란한 유리 공예만이 내 덧없음을 더 애달프게 만드는구나.


내가 노래를 부르면 따르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작은 소녀와 또 소년들의 지저귐과 함께 노래하던 수풀 속의 새들은 언제 어디로 떠나갔는가.


돌아오지 않을 강을 건너가신 나의 부장께서는 이 모자란 부하 기사를 두고 떠나가셨구나.


동굴속 희미한 바람소리와 같이


잦아드는 내 울음소리만이 공국의 스러짐을 증거하는구나.


화살보다 빠르게 날아들던 실론드의 기세는 어디로 갔느냐······”


거기까지 음률처럼 사정을 토로하던 그녀가 자신의 기승룡을 내려다보았다.


잠시간 동굴에서 쉬고 있던 실론드의 표정을 보면, 그 눈빛의 총명함이 아직 지워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망국의 공녀는 말을 멎고


잠시 숨과 함께 슬픔을 삼키며 다시 일어서기로 생각을 바꾸어갔다.


아직 할 수 있는게 있다면 그녀의 사명은 끝과 거리가 멀었다. 한참이나 더 달릴 길을 앞에 두고 경주를 그만두는 선수는 선수로서 취급받지도 못한다.


실론드의 주인, 청록기사단의 기수, 공국의 첫 번째 가희. 공왕의 가장 아름다운 보석. 공국민들의 자랑이었던 그녀는 마음을 다르게 먹은 것처럼 표정을 바꾸었다.


지치고 다 덜어내지 못하는 슬픔만이 있던 기색에서 목표를 바라보기로 했다.


전쟁이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적국은 협상을 모르는 괴한들이었고, 공국의 기사와 병사들은 불굴의 전선을 지키고 있었다.


적어도, 다시 돌아가 그 시간만큼 미처 대피하지 못한 국민들을 구하는 것이 그녀에게 남은 최소한의 도리이자 사명일 것이다.


“······가자꾸나. 아직 끝이 아니구나, 실론드.”


그녀보다 조금은 어린 짐승이었다. 그 대가리가 말이나 늑대처럼 길쭉하게 뻗어있고, 유려한 곡선의 등줄기를 지나 길게 꼬리까지 이어지는 날짐승은 말이다.


잠시 지친 날개를 누이고 숨을 헐떡이는 청록빛의 용이다. 앞발과 뒷발 역시 몸을 둔 아래에 깔아두고 있다. 적군의 공격에 얼어붙었다가 녹은 왼쪽 날개뼈 부근이 다시금 혈기를 찾으며 움직였다.


열 살. 유년기 무렵 함께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그녀의 곁을 지켜온 오랜 친구는 냉기에 결리는 몸을 뒤틀며 일으켰다.


전세는 그녀의 나라인 공국의 멸망을 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수도 지방의 방벽이 밀리기 전까지 교전 지역의 인근에서 대피하지 못한 이들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많은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아직 움직여 살릴 수 있는 목숨이 남았다면 그녀가 멈추는 건 일국의 왕족으로서 수치였고, 책임감의 회피였다.


‘그르릉.’


사나운 늑대의 울음 소리와도 닮았으나, 그보다 훨씬 통이 큰 울림을 뱉으며 실론드가 일어난다. 공녀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짐슴의 목덜미를 한 번 쓰다듬어 주고는 익숙하게 그 등에 올라탔다.


그녀가 몸을 옮기자 원래부터 있었다는 듯, 용의 등줄기에서 돌기가 변형이 돼 등받이와 앉을 곳이 만들어졌다. 그 목덜미에서 비행 중에 쥐고 방향을 지시내릴 수 있는 끈 역시 희미한 청록빛을 내며 모습을 드러낸다.


비룡을 운용하는 청록 기사단에 지급되는 기본적인 아티팩트들이었다.


“가자, 실론드. 날자.”


그녀가 나지막이 동굴 속에서, 비룡의 위에 타 말했다. 상처를 견디어내고 비행을 하기로 한 짐승은 주인의 의지를 담아 눈빛을 형형하게 빛냈고, 곧 몸을 웅크리며 도약을 준비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동굴의 통로. 청록빛 안광의 실론드는 어둠을 꿰뚫는 눈으로 그 사이를 노려보며 다음 순간 빠르게 뛰쳐 나갔다.


몇 걸음이 채 못되어 순식간에 동굴을 벗어난 비룡이, 다시 날개를 피며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 올랐다. 홰를 치듯 두어번만에 몸을 띄우는 모습은 그야말로 신비로운 것이었다.



*

IMG_6654.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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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에게 연기를 시키려고#판타지#공녀#기사#비룡 22.11.23 41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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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연극독백#트라우마#김한수 22.11.09 38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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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잠수도시, 칼젝 21.07.09 53 0 5쪽
36 발란은 숲에서 길을 잃었다. - 21.06.23. 21.06.23 58 0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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