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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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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4.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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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1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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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51

DUMMY

늦은 밤.


거실 소파에 앉아 조용히 오늘의 차를 마시고 있던 델리안은 안방에서 나오는 찬크에르를 보며 물었다.



“리아는?”

“이제 막 잠들었다.”

“그거 다행이로군. 내심 신경 쓰지 않을까 싶었는데.”


안심되어 다과와 함께 다시금 차를 즐기고 있으니 찬크에르도 본인의 몫을 들고 와 맞은편에 앉았다.


한동안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델리안은 힐끔 눈치를 보고는 말을 걸었다.



“저 아이는 한번 잠들면 여간해서는 깨지 않지.”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이야기가 빨라서 좋다만······ 꽤 내키지 않은 듯하군. 자네라면 무슨 말을 꺼낼지 알았을 터이다만.”


서로가 다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찬크에르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아무래도 구태여 먼저 말을 꺼내게 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뜻에 따르도록 하자. 궁금한 건 이쪽이다.


마침 기다리고 있는 선객도 있었다.


슬쩍 웃은 델리안은 내심 진지한 척 입을 열었다.



“가베인이라고 했던가?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리아에게 듣기론 뭔가 관계가 있는 사이이지 싶은데. 나처럼 말이야.”

“그렇다면?”

“뭘. 그저 걱정은 되지 않나 물을 뿐이네.”

“어떠한 관계든 리아는 나의 반신이며 사랑스러운 나의 아내다. 그 이외의 뭐가 더 있다는 거지?”

“자네가 괜찮다면야 나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나.”


기분이 나쁘다는 듯 살짝 인상을 쓰는 찬크에르.


이전부터 범상치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자신의 오래된 친우는 그 생각을 훨씬 뛰어넘었었나 보다. 설마하니 저 용왕의 마음을 이리도 꽉 붙잡아 두다니.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러한 뜻밖의 기분을 느끼며 델리안은 본론으로 넘어갔다.



“허면, 리아의 남편이 아닌―― 용왕인 자네에게 묻네만, 그거에 대해선 짚이는 게 혹시 있나?”

“짚이는 거?”

“알면서 왜 그러나. 기억을 말하는 걸세. 다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마법 같은 것이 존재하는 겐가?”


찬크에르는 침묵했다.


쉽게 언급할 내용은 분명 아니니라.


델리안은 그가 마음을 정할 때까지 잠자코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러나 기다리지 못한 자도 있었으니······


본인의 방문을 살짝 열어둬 엿듣고 있던 아이리스는 벌컥 문을 열고 나와 찬크에르 앞으로 다가왔다.


자신을 포함하여 이미 저 아이의 존재는 알고 있던 일. 전혀 놀라지도 않고 찬크에르는 무심하게 시선을 옮겼다.



“그거, 나도 묻고 싶었어, 바보 아빠.”


찬크에르는 빤히 아이리스의 눈을 보았다. 그러다 짧게 숨을 토해냈다.



“뭘 기억하고 있느냐?”

“리아―― 이전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조금 있어.”

“어떤 관계였지?”

“꿈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어떤 관계였지?”


재차 묻는 찬크에르.


쉽게 입을 열지 않을 것임을 알아본 아이리스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지금과 달리 친한 친구 사이였어. 길진 않고 대부분이 짧은 만남이었지만. 애정이 과한 누구 씨 덕분에.”

“누구 씨는 나를 말하는 건가?”

“어.”

“그렇군. 아이리스, 네 기억은 그때 돌아온 것이었나. 상당히 오래전이었군.”

“맞아. 이름은 달랐지만, 그때―― 바보 아빠가 어머니를 죽일 뻔했을 때 살짝 기억이 돌아왔어. 지금은 좀 더 많고. ······근데 알고 있었어?”

“짐작만 했을 뿐이다.”

“뭘 보고?”

“당시 네가 나의 행동을 읽기란 불가능했다. 그런데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나의 불길로부터 리아를 감싸려 들었었다.”

“그게 마음에 걸렸었다는 거야?”

“그래.”


둘만의 대화는 정확히 무얼 이야기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도중에 있었던―― 리아를 죽일 뻔했었다는 소리엔 제아무리 델리안이라 하더라도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물론 오해로 비롯한 사건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 현재 둘의 관계를 보노라면 당연한 추측이다.


다만, 그렇게 흘러가게 된 배경이 전혀 짐작이 안 된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자 하니······’



“마음이 걸릴 수밖에. 미약한―― 아니, 솔직한 얘기로는 상당히 높은 가능성으로 그때 너나 리아가 죽었을 테니.”


‘역시나!’


놀란 기분으로 보고 있자니 아이리스가 시큰둥하게 긍정한다.



“둘 다 죽었을 때도 있었어.”

“그런가······.”


어울리지 않게 속삭이듯 중얼거린 찬크에르는 드물게도 얼굴이 크게 일그러뜨렸다. 거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죄책감과 미안함 등 다양했다.


아이리스는 그런 그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동시에 델리안 또한 생각을 정리하였다.


‘과연. 이야기가 맞춰졌어.’


이전의 리아―― 자신의 친우였던 이스피리아 자인 디바오러.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용왕에게 강한 적개심을 품고 있던 그녀의 모습이 지금의 이야기로 설명됐다.


그녀는 복수를 위해 살아갔던 것이다.


어쩐지 인생을 사는 데에 그다지 의욕이 없어 보였더니만. 그녀는 오로지 자신의 친구―― 아이리스를 죽인 찬크에르의 복수만을 꿈꾸며 지냈던 거다.


가족을 지극히도 아끼던 리아였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긴 기간 교제를 한 건 아니었지만, 가끔 가족에 대해 언급하는 그녀를 보노라면 오래되어 잊어버린 자신마저도 상기시킬 정도였다.


――가족이란 이리도 애틋한 것이었다고.


자세한 사정은 차마 물을 수 없었다. 쉽게 떠들만한 화제가 아니었으니. 그러나 넌지시 말해주기로는 일가족을 몰살시킨 마족은 진작에 죽어 신의 곁으로 갔다고 했다.


남은 원수는 찬크에르뿐······


알고 있다. 여기와는 완벽히 무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거기에 결과가 어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든다.


자신이 죽고 난 이후―― 그녀는 과연 무슨 선택을 했을지.



“그나저나 바보 아빠는 하나도 기억나는 게 없는 거야?”


각자 이유는 다르겠지만 무거워진 분위기를 깨고 아이리스가 물었다.


찬크에르는 뭔가 생각하는 빛으로 아이리스를 보다가 이내 원래의 냉정한 그로 돌아와 대답했다.



“없다.”

“조금도?”

“그래. 꿈을······ 꾸질 않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기억을 보았다거나 떠올린 적은 없다.”

“꿈은 나도 평범하게 안 꾸는데?”

“아니. 그건 평범한 게 아니다. 기본 상식인 것처럼 말하지 마라. 빈도수는 다르지만, 대다수의 존재는 꿈을 꾼다. 그리고 그건 너 또한 예외가 아니야.”

“아직 꿈을 꾼 적이 없을 뿐이라는 거야?”

“그렇다. 꿈을 꿀 수 없는 존재는 애당초 그렇게 만들어진 자들뿐이다. 넌 그렇게 만들어지지도 않았을뿐더러 리아의 혼도 섞여 있지.”

“흠. 한마디로 꿈을 꿀 수 있는 자들만이 다른 미래의 일을 떠올릴 수 있다는 거?”

“지금까지의 정보로 판단하면 그게 최소한의 조건일 거다. 추후에 달라질 수도 있다만. 어떤 조건이 더 있을지 모르니.”

“그래? 그럼 뭐가 원인인지는 알아냈어?”


진지한 아들의 물음에 찬크에르는 천천히 눈을 돌려 안방을 보았다.



“설마, 어머니?”

“그 밖에 누가 있겠나.”

“그냥 하는 말은 아니지?”


말해도 되는 건가, 조금 고심스러워 보였던 찬크에르는 천천히 대답해주었다.


아주 놀라운 이야기를.



“너희들은 못 느끼겠지만, 리아는 상시 마법을 발동하고 있다.”

“내가 아는 그건 아니지?”

“그래. 그 훨씬 이전에―― 내가 처음으로 리아와 만났을 때부터 이미 발동되어있던 마법이었다.”

“근데 왜 말을 안 해준 거야?”

“나도 확신하진 못했었다. 그만큼 세밀하면서도 은밀한 마법이다. 알아차린 건 어느 순간부터 통제되었기 때문이었다.”

“맨날 있던 게 사라지니 위화감이 들었다는 거로군. 그런데 통제? 갑자기―― 아!”


떠오르는 게 있었던지 아이리스는 훅, 찬크에르 옆에 앉더니 얼굴을 들이댔다.


묘하게 리아를 닮은 행동이다.


찬크에르도 비슷하게 느꼈는지 살짝 미소 짓고는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바로 아이리스가 쳐냈지만. 그러나 계속 옆에는 앉아있는 것이 아이리스도 그리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갑자기 통제된 건 리아가 강화마법을 건 3년 후로, 그전까진 무분별하게 주위에 영향을 끼쳤겠지.”

“나도 그랬다는 거구나. 그럼 실제로 있는 거야? 다른 곳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마법이?”

“정확히는 나도 모른다. 단지 그런 마법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바보 아빠도 할 수 없어?”

“전혀. 아무런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오올르오레이나 정령들이라면 아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저번에 다이탈로스 아저씨랑 따로 만났다며? 왜 안 물어봤어?”

“물어보려고는 했다. 하지만 쉽게 알려줄 모양새가 아니었다. 힌트만을 조금 얻는 정도에 그쳤다.”

“어떤 거?”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알 사람은 안다고 하더군.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뜻이겠지만, 무얼 의미하는지 확실한 건 나도 모른다.”


거기서 델리안은 손을 들며 끼어들었다.



“미안하네만, 그렇단 소리는 리아 본인에게도 마법의 영향이 있는 게 아닌가?”

“칫.”


단순히 물었을 뿐이건만. 찬크에르는 대차게 혀를 차고는 매서운 눈매로 째려본다.


명백히 넘어가려 했음이 분명한 이 반응에 아이리스는 그와 비슷한 눈매를 가늘게 하여 뚫어져라 찬크에르를 쳐다봤다.



“영향은 받았다. 그러나 자세하게 말해줄 건 없다. 본인이 없는 데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니. 그렇다고 리아에게 직접 묻거나 하진 마라.”

“이것도 이유가 있는 거지?”

“그래.”


의심스럽다는 듯이 아이리스는 그를 노려봤지만 먼저 물러섰다.



“알았어. 믿을게. 바보 아빠가 어머니한테 허튼짓할 리도 없으니.”


깔끔하게 떨쳐낸 아이리스는 기지개를 켰다.



“근데 말이야. 가베인 씨였나? 그 아저씨는 어떻게 된 거야? 통제하고 있다며? 암만 들어도 떠올린 것 같은데.”

“통제하던 대상이 한 거 말고 뭐가 있겠나. 생각이라는 걸 하거라.”

“갑자기 잘난 척 구네―― 응? 아이?! 그 아이가 했다고?”


찬크에르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라임이라고 했던가? 좋은 말장난이다. 그쪽으로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쪽은 무슨 그쪽! 장난치지 말고!”


‘의외로 사이가 좋군.’


아이라는 게 누굴 말하는 건지 궁금하긴 했지만, 눈앞에 티격태격하는 둘 사이에 끼어들기가 좀 그렇다. 찬크에르가 농담하는 것도 제법 의외였고.


잠시 내버려 두기로 하자.


그렇게 델리안은 따스하게 한동안 지켜보다가 조금 소강상태에 들어가자 그 틈을 봐 물었다.


도대체 아이가 누구냐고.


그러자 딱히 감출 건 아니었는지 찬크에르가 선뜻 알려주었는데······ 이것도 상당히 놀라운 이야기였다.



“호, 혼에 그런 마법을?! 아, 아니. 마법의 영역이긴 한 건가? 이단이라 할 정도는 아니지만, 용케도 그런 방식을 떠올렸구먼. 실행에 옮긴 것도 놀랍고. 허나, 아직 제 상태가 아님에도 리아는 이만한 힘을······”


너무나 믿기 힘든 이야기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도대체 얼마 만에 온 지식 열이란 말인가. 신선한 기분까지도 든다.



“어지간한 건 다 알게 됐다고 자부했건만. 세상만사엔 정말 끝이 없구나.”


이전 친우와 지금 친우의 모습을 겹쳐 본 델리안은 미소 짓고는 조용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역시 리아야. 절대 질리게 두질 않는구먼.”

“그건 동감한다. 수명이 긴 존재들에게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지루함이니.”

“호······ 자네도 그렇단 말인가? ――아니, 우문이었군. 그대야말로 누구보다도 지루함이라는 것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을 터인데.”

“그래서였겠지. 우린 감정이란 것이 상당히 희박한 존재들이었다.”

“‘었다’인가······”

“당시에는 몰랐지만, 동포들의 변화도 그러한 이유가 있었겠지. 나와 마찬가지로. 그래봐야 우리의 감정은 흉내 낼 뿐인 가짜에 불과하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는 게로군. 유구의 세월을 보냈기에 무덤덤해진 건······ 또 아니겠고.”

“그렇다. 그리 창조됐을 뿐이다.”

“······혹시 후회하나?”

“그거야말로 우문이다. 리아를 만난 지금의 삶이야말로 나에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거늘. 후회라니 가당찮지도 않다.”

“그러한가······ 그렇군.”


눈은 감은 델리안은 여운을 곱씹으며 얼마 남지 않은 차를 마셨다. 찬크에르도 마찬가지였는지 자신의 차를 조용히 홀짝이는 소리만이 들렸다.


제법 운치가 좋다.


그런 나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찬크에르는 분위기에 섞이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있던 아이리스를 보았다. 그 눈은 매우 진지한 빛을 띠고 있었다.



“아이리스, 죽지 말아라.”

“뜬금없이 무슨 당연한 소릴 하는 거야?”

“당연한 게 아니다. 세상엔 위험이란 넘치고 찼다. 그리고 죽지 말라고 한 건 다름이 아니라 리아를 위해서 한 소리다. 수명 이외에 네가 죽는다면 리아는 무너진다. 네 목숨을 너만의 것이란 생각은 버리도록. 불효를 끼치지 말란 소리다.”

“불효 같은――”


발끈해서 소리치던 아이리스는 말을 멈추고 크게 심호흡하였다.



“알았어. 최대한 조심하도록 할게.”


수긍하는 아이리스에게서 고개를 돌린 찬크에르는 똑바로 이쪽을 본다.



“다시금 아들을 잘 부탁하마.”


정중히 머리를 숙인 찬크에르.


델리안은 내심 당황했다. 나름 친해졌다고는 하지만 설마 용왕인데다가 까칠한 그가 머리 숙여 부탁할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그러나 이런 당혹감은 시큰둥한 아이리스의 말에 의해 곧장 깨졌다.



“그렇게 안심이 안 됐으면서 잘도 여태 나 혼자 돌아다니게 했네.”


즉시 반발한 찬크에르는 고개를 들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마법은 걸어뒀다.”

“헹. 그런 것치고는 어머니 때도 늦지 않았어? 모든 일이 다 끝난 다음에야 도착했다며.”

“아니. 리아에겐 너만치 많은 마법을 걸어두지 않았다. 알고 있을 텐데? 너와 리아와의 차이는 땅 밑 지하에서 우주 저편이다. 방비를 달리한 것도 당연한 처사지. 게다가 애당초 늦은 이유는 너의 안전을 확보하다 그런 것이다.”

“어째 변명만 늘어가지 않아?”

“변명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만을 주장할 뿐이다.”


다시금 시작된 투덕거림.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군.’


하지만 이 역시 끼어들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금세 흐뭇해진 기분으로 델리안은 둘의 사이 좋은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다 슬쩍 눈이 마주친 찬크에르에게 윙크하고는 대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걱정하지 말게, 찬크에르. 나 또한 지금의 광경이 무척이나 보기 좋으니 말이야. 내 확실하게 그대와 리아의 아이를 지켜내도록 하지.’


나름 성실한 대답을 하고 있자니 이를 알아본 찬크에르에게서 돌아온 건 혀를 차는 소리뿐이었다.


‘용왕님은 의외로 부끄러움이 많구먼.’


뜻밖의 사실에 입가에 미소를 그린 델리안은 재차 티격대는 둘을 따스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호······ 굉장한 실력이네.’


빗발치듯 몰아치는 탄환―― [마력탄]을 대검으로 모두 쳐낸 리아.


팅팅, 거의 동시라고 할 만큼 무수히 많은 금속음이 울린다.


탄도 탄이지만, 본인 자체도 예상보다 빠르고 꽤 전략적이다. 처음 목적으로는 운과 마찬가지로 대충 화풀이나 좀 하려 했는데 뜻밖에 여러 참고가 된다.


특히나 원거리 전을 치른 적이 거의 없었다 보니 그 전투방식이나, 흐름을 만들어가려는 게 제법 색다르기까지 했다. 이쪽은 접근하려 하고, 저쪽은 되도록 거리를 벌리려고 하는 부분이 말이다.


덕분에 원래 목적도 잊고 빠져들게 된 리아는 살짝 감탄하며 리블리지를 보았다.


그녀는 지난번의 거대한 저격총 대신 권총 같은 걸 2자루를 들고 있었는데, 이게 또 예상보다도 훨씬 강했다. 작다고 만만하게 봤는데.


물론 저격총과는 달리 1단계의 압축된 마력인지라 맞아도 아무런 타격이 없긴 했다. 그러나 한발, 한발 마력조작으로 회전을 걸어두어 상당한 위력을 자랑했다. 분명 맞으면 상당히 아플 것이다.


더욱이 저런 위력이면서 무슨 기관총처럼 연사해댄다.


솔직히 운보다 훨씬 상대하기 까다로운 건 물론이거니와 상당히 실전성이 높은 것이 케트로를 비롯하여 어지간한 실력자는 명함도 못 내밀 거라 보인다.


마땅한 파훼법도 없는 게, 탄환은 [마력탄]이기 때문이다. 즉 마법이다.


여차하면 궤도를 바꿔버리기에 총구를 읽어 미리 피하면서 달려든다는 등의 전법은 오히려 빨리 죽을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그렇기에 딱히 이렇다 할 묘책이 없다.


‘마법 하나로 이렇게까지 활용할 수 있다니. 좋은 경험이 됐네. 다른 학생들도 느끼는 바가 있겠지.’


의외의 만족스러운 성과에 리아는 빙긋 웃었다.



“하지만 지는 건 다른 문제겠지?”


그것만큼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리아는 힘을 담았다. 딱히 이렇다 할 공략법은 여전히 없다. 리블리지와 신체 능력을 맞춘 지금의 상황으로는 더욱.


하지만 딱 한 가지, 대등하게 이끌어갈 방법이 있었다.


한순간에 세세한 공방을 시뮬레이션한 리아는 가능성을 확인하고는 앞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리블리지는 바로 반응하여 거리를 벌리고는 빗발치듯 탄환을 쏘아내려 했다.


그 순간 리아는 손가락을 튕겨 그녀가 내딛는 땅을 흔들었다.


급습에 자세가 흐트러진 리블리지는 순간 당황했지만 바로 진정하고는 양팔을 펼쳐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탄환을 쏘아냈다.


총구가 향한 곳은 하늘 위.


엉뚱한 곳으로 발포한 듯싶었지만, 마법을 조작하여 [마력탄]은 궤도를 바꾸어 다가온다.


순간 쏜 것치고는 제법 많은 30발의 탄환. 위험천만해 보이는 상황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작은 비명이 울린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돌진하자 놀란 리블리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딜 어떻게 봐도 자신이 피격될 모습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리아는 입꼬리를 올렸다.


――딱 원하는 대로 됐다.


이윽고 탄환이 적중하기 직전―― 탄환은 궤도를 바꿔 땅속에 박혔다.


놀라는 기색이 여기저기 나오고, 리블리지 또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역시 마법에 개입하는 건 별로 본 적이 없었나 보네.’


피식 웃은 리아는 다리에 마력을 집중했다.


균형을 잡으며 공격까지 한 리블리지에 비해 자신은 오로지 한 점에만 집중한 것이다. 신체 능력을 똑같이 맞췄으나, 순간 가속하는 이쪽을 떨쳐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거리는 눈 깜짝할 새에 좁혀졌다.


이 와중 리블리지는 견제할 겸 권총을 거치지 않고 정면에서 직접 [마력탄]을 만들어 냈다.



“대단한 집중력이네요.”


능히 찬사를 해줄 만한 멋진 판단과 대응.


그렇지만 헛된 발버둥이었다. 애초에 권총을 통해 가속된 [마력탄]조차도 통하지 않았었으니 말이다. 정면에 있는 [마력탄]은 그저 단순한 걸림돌에 불과하다.


리아는 그대로 [마력탄]을 베어내며 크게 대각선으로 올려 쳤다.


모든 방비가 조금 늦었다. 리블리지는 이대로 일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의견이었는지 리블리지는 다가오는 대검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저기······ 대련이거든요? 그렇게 비장할 필요는 없어요.”


딱 머리카락 한 올만을 자르고 멈춘 대검. 리아는 황당하다는 듯이 리블리지를 보았다.


슬쩍 눈을 뜬 리블리지는 어느새 멈춘 지진과 손뼉을 치는 주변 상황을 둘러봤다.



“절 나쁜 사람으로 보이게 하지 말라고 했죠?”

“앗! 죄, 죄송해요. 그럴 의도는 전혀······”

“사과할 정도는 아니에요. 그보다 수고하셨어요. 나름 괜찮은 대련이 됐어요. 정말 예상외로 재밌었고.”


검을 귀걸이에 집어넣은 리아는 조금 무안한 기분에 바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등 뒤에서 우물거리는 리블리지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네. 언니도 수고하셨어요.”


‘언니라······’


한참 연상일 사람에게 저런 소릴 듣는 게 참으로 묘하다. 그렇지만 딱히 말릴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게 또 영 성가시다.


그나마 남들 앞에선 언니라 하지 않으니 다행이랄까.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냥 내버려 둬도 괜찮겠지. 왠지 뿌듯해하는 것처럼도 보이고.


‘거기다 지금은 그걸 신경 쓸 데가 아니기도 하지.’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며 리아는 돌난간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어제 찾아왔던―― 갑작스레 껴안는다는 행태를 보인 가베인과 그 일행들, 그리고 레스와 헤라드가 있었다.


거기로 향하니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다만, 그 말속에 껴안았다는 이야기는 쏙 빠져있었다.


근처이기에 사양한 게 아니다. 학생들은 정말 그 일 자체를 모르는 모양새였다.


이는 에르 덕분으로, 미리 사태를 짐작했던 그가 시야를 차단하는 결계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묘한 소문에 시달릴 리는 없어졌고, 지금도 편히 저들을 만나러 갈 수 있었다.


이런 혁혁한 공을 펼친 에르에게 보답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래서 당분간 못된 장난을 하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안녕하세요. 끝나면 바로 찾아뵈려고 했는데 직접 오셨군요. 가베인 씨였나요? 컨디션은 좋아지셨나 보네요.”


인사를 건네는 가베인은 현재는 상당히 진정하여 정중히 예를 보여왔다.


아마 본인도 상당히 뻘쭘하겠지.


솔직히 자신도 매우 뻘쭘했기에 리아는 일부러 말은 걸지 않고 짧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다음 그의 뒤에 있는 차분한 인상의 남자에게 가상의 치마를 잡고 머리를 숙였다.



“이스피리아라 합니다. 바로 인사를 드리지 못하여 실례했습니다.”


딱 보기에도 높은 사람처럼 보이긴 하나 이쪽이 먼저 고개 숙여 인사할 줄은 몰랐나. 주변에 있던 학생들이 나름 자중한다고는 했지만 살짝 소리가 샌다.


그런 주위의 반응엔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의―― 신분이 높은 자 특유의 여유로운 목소리가 들린다.



“실례하니 당치도 않네. 이쪽이야말로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부디 머리를 들어주게.”


뜻에 따라 자세를 풀고 고개를 드니 남자는 어깨까지 오는 진한 적갈색의 머리카락을 흔들리며 예를 표했다.



“제국의 제3 황자, 베르그 드몽 폰타르트라네. 제3 황자인 탓에 변변찮은 작위밖에 없지만 이해해주시게나, 이스피리아 양.”

“변변찮다니요. 저는 작위는커녕 성도 없는 몸. 만나 봬서 영광일 따름입니다.”

“그러한가······”


작게 중얼거린 남자―― 제3 황자 베르그는 유쾌하게 웃었다.



“나도 만나서 영광일세. 드래곤 슬레이어, 이스피리아 공. 앞으로 좋은 연을 이어갔으면 하는군.”

“말씀 감사합니다. 저 또한 진심으로 그러하길 고대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베르그는 아까부터 똘망똘망한 눈을 빛내고 있던 어린 여자아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 아이의 소개까지 하고 싶으나······ 자리를 옮겨도 되겠는가?”


많은 학생이 모인 주위를 슬쩍 둘러본 리아는 수긍했다.



“그럼 제 방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

“이견은 없다네. 모처럼의 배려에 따르도록 하지.”


여자아이는 뭔가 굉장히 아쉬운 듯도 싶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베르그의 옆에 섰다.


이제는 나름 익숙해진 레스와 헤라드도 같이 가려는지 베르그의 뒤에 선다.



“주교님, 또 뵙도록 하죠.”


떠나기 전, 베르그를 대표로 제국의 인원 모두가 인디아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 그러고 보니 제국은 세인트리안과 사이가 좋다고 했었나? 그런데······ 뭔가 묘한 기분이 드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인디아는 잘난 사람처럼 상쾌한 얼굴로 이들의 인사를 받아줬다.


그렇게 대충 자리가 정리되고, 리아는 많은 주목을 받으며 선두로 이들을 이끌어 서쪽 기숙사를 향해 갔다.


조금 한숨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참으며.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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