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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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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4.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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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15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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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쪽

214

DUMMY

회의는 예상 이상으로 제법 열기를 띠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와는 반대로 이렇다 할 의견은 나오지는 않았다. 대부분 경청 뿐으로, 이따금 베르그가 진지하게 어째서 그런 건지, 왜 그래야 하는지를 묻는 게 전부였다.


은근슬쩍 세스와 잭에게 바턴을 넘겨보려고도 했다. 어쨌거나 둘은 은근 박식하고 숲에 대해서도 잘 아니까.


하지만 돌아온 말은 기대와는 다른 것이었다.



“나? 좋게 봐줘서 고맙기는 한데, 수색은 해본 적이 없어서 유의점이라든가 아무것도 몰라.”

“나도 별다른 건 없어. 내가 아는 거라 봐야 결국 네가 아는 것들이니까.”


점잔부리는 건가 싶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대답은 변함이 없었다. 잭은 자신이 가르쳤던 게 전부였다고 하며, 따로 더 이야기할 게 없다고 아예 못을 박았다.


덕분에 리아는 혼자 주도적으로 떠들며 회의를 이끌게 됐다. 가볍게 진행자나 하려 했던 마음과는 반대로······.


그런 회의가 좋게 끝날 리가 없다.


애당초 리아도 어찌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여 연 회의였다. 아무도 의견을 내지 않으니 처음 정했던 대로 숲을 수색, 흔적을 발견하면 그것을 따라가기로 결정됐다.


실속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회의였다.


그런 생각과 함께 회의를 마치고, 각자 자유시간을 갖게 했다. 너무 멀지만 않으면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허락하였다. 개인행동 같은 건 딱히 제지하지 않았다. 다들 어느 정도 수련했으니 자기 한 몸 정도는 지킬 것이기에. 물론 로즈만큼은 어른들과 함께 움직이도록 했지만······.


크게 기지개를 켠 리아는 집 밖으로 나갔다.


베르그들은 짐을 정리할 요량인지 위층으로 올라갔다. 다만 모두 간 건 아니었다. 유즈라와 부노 등의 보호자를 여럿 대동한 로즈가 만면에 미소를 짓고는 리아의 뒤를 따랐다.



“리아 언니님!”


번역기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번을 다시 곱씹어봐도 로즈의 말은 똑같이 들렸다.


‘언니면 언니지, 언니님은 도대체 뭐야?’


자꾸만 꿈틀거리는 눈썹을 어떻게든 붙들며 리아는 미소를 만들었다.



“저기, 로즈 씨······?”

“네!”


반짝반짝――.


너무나도 순수한, 때 묻지 않은 똘망똘망한 눈동자가 향해오자 리아는 순간 주춤했다. 저 기대 순진무구한 얼굴이 실망으로 변할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좀 약해진다.


‘아냐아냐! 아무리 그래도 이건 단호하게 내쳐야 해!’


이대로도 괜찮지 않냐는 나약한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그렇지만 억지로 내리누르고는 로즈와 눈높이를 맞췄다.



“로즈 씨, 언니님은 뭔가요?”

“누님 같은 거예요!”

“아······.”


대충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나 그런 것이었다. 리아에게는 무척 생소한 말이다 보니, 이 세계의 번역기가 나름대로 머리를 쥐어짜 선택한 단어가 바로 언니님이었던 거다.


동시에 한 가지 깨닫게 됐다. 이곳에는 언니님과 같은 언니의 높임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주변에 따라온 이들 모두 당연하다는 듯, 무엇 하나 이상하지 않다는 반응들뿐이다. 아이의 귀여운 말이라고 넘어가는 느낌은 확실히 아니었다.


······덕분에 흔들리던 마음이 확 굳어버렸다.


없는 말을 억지로 지어낸 것이 아니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제국의 황녀에게 극존칭으로 불린다는 게 어디 예삿일이겠는가.


이전에도 리아 님이라고 부르기는 했으나, 그건 예의를 갖춘다는 의미로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분명 논란이 될 것이다. 아니, 논란거리로 만들 터다. 시비 걸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귀찮은 건 질색이다. 안 그래도 도플갱어 때문에 어지간하면 얽히고 싶지 않은 상황이다. 괜한 일 따윈 사전에 차단해 둬야 한다.


얼굴을 굳힌 리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언니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네······?”


로즈의 눈망울이 커졌다. 그리고 이내 말을 이해하고는 그 눈에 깊은 실망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이번만큼은 단호히······



“우우······”


입을 앙다문 로즈의 표정이 크게 일그러졌다. 파르르 떨리는 눈썹과 슬픔에 젖은 촉촉한 눈에선 금방이라도 굵은 물방울이 떨어질 것만 같다.


실제로 사슴 같은 눈망울에서 방울방울 물이 고이고, 이내――



“――언.니.님은!”


큰소리에 놀란 로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반동으로 맺혀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리아는 최대한 당황하지 않은 척 고개를 돌려 애먼 곳을 쳐다봤다.



“커, 커흠. 언니님은······ 너무 정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친근하게 언니라 부르도록 하세요!”


얼이 빠져 보였던 로즈가 천천히 말을 이해하고는 서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벅벅, 눈가를 문질렀다.



“네, 언니! 저도 친근하게 로즈라 불러주세요!”

“······좋아요, 로즈. 하지만 이건 저희끼리 있을 때만이에요. 다른 사람 앞에서는 서로 존칭을 써야 해요. 품위를 지키는 것을 잊어선 안 돼요. 알겠죠?”

“맞아요! 전 황녀니까요!”

“음. 좋아요. 바로 그거예요.”


이젠 완전 함박웃음을 짓는 로즈. 눈가가 살짝 촉촉하다는 것만이 방금까지 슬퍼했음을 알려왔다. 아이답게 휙휙 잘도 바뀐다.


‘나, 뭐 하는 거다냐······?’


못하게 하려다가 되려 언니를 공인해 버리다니. 혹을 떼려다가 더 붙인 꼴이 이것이려나 싶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차마 웃는 얼굴을 망가뜨리진 못하고 리아는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오오······. 역시 언니! 카리스마가 진짜······. 어후~”

“머, 멋있어요, 언니······.”


느닷없이 찬양하는 말이 들려온다.


리아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천천히 닫히는 문 앞, 두 명의 여성이 서 있었다. 매력 포인트는 다르지만, 모두 눈이 휘둥그레질 미인들이다.


그리고 보다시피······ 다들 연상이다.


최소 30살 이상의 언니들이 언니라고 부르며 수시로 찬양을 이 상황······. 암만 외견이 젊다 하더라도 그 기이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절대적인 신뢰를 받긴 하지만 저딴 신뢰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는 게 본심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지······, 어디부터 단추를 잘못 채웠는지 도통 모르겠다.


이럴 때 믿을 건 유즈라다. 깐깐한 그녀라면 분명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빗나갔다. 유즈라, 그녀는 은은하게 미소를 짓고 로즈를 보고 있었다. 앞선 대화를 신경 쓴다는 기색은 없었다.



“뭐하냐?”


불린 소리에 돌아보니 루데릭이 있었다.



“어, 그냥 있었어.”

“그러냐.”

“오라버니는? 짐은 다 정리했어?”

“갈아입을 옷 정도라 정리할 것도 없어. 이번 여행이 워낙 특이하잖냐. 그냥 이거만 간수 잘하면 그만이지.”


그러면서 루데릭은 허리춤의 검집을 탁탁 두드렸다. 그 과정에서 아주 미세한 금속음이 들렸는데, 품에도 작은 단검 같은 게 두어 개 있는 듯했다.


‘흐음. 생각 이상으로 강해졌네. 준비성도 철저하고.’


최근 루데릭과 대련한 적이 없어 정확히 얼마큼 강한지는 모른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적은 마력의 움직임이 범상치 않은 수준이다. 못해도 저 세스와 비등하거나 혹은 그 이상이다. 비록 내세울 점이 마력조작 하나라지만 절대 호락호락하진 않을 터다.



“뭘 멋대로 가늠하고 있냐?”

“오우. 알아챈 거야? 감도 좋구나······. 근데 아직 마력의 절대량이 적으니까, 화력으로 찍어 누르는 상대를 만나거든 조심해야 할 거야. 이를테면 공격에 몰방한 마법사라든가.”

“너나 찬크에르 아니면 어지간하면 몰릴 일은 없어. ――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델리안 씨를 보니 그건 또 아니더라. 확실히 세계는 넓은 모양이야.”

“그러고 보니······ 오라버니는 마을 밖이 처음이던가?”

“그래. 아직 마을에 있는 느낌이지만 처음은 처음이지. 그보다 저녁은 어쩔 거야? 슬슬 시간이잖아.”

“아~ 그걸 물으러 온 거구나.”


리아는 손가락을 튕기면서 정면에 있는 공터를 가리켰다.



“저기에서 하자. 집 안에 음식 냄새가 배는 게 싫은 분도 있을 테니까. 따듯하게 마법을 걸어뒀으니 식을 걱정은 없을 거야.”

“그려. 내가 말해둘 테니 너는 사이좋게 놀고 있어.”

“응.”

“감사합니다! 루데릭 오빠!”


꾸벅, 감사를 전하는 로즈.


환해지는 얼굴빛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 1달간 나트알에서 로즈가 가장 먼저 친해진 주민이 바로 루데릭이었다. 아마 마을에서 그나마 가장 나이대가 비슷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로즈는 처음부터 놀랄 정도로 스스럼이 없이 그를 대했었다.


그리고 곧장 오빠라는 호칭을 획득해 냈다. 처음에는 오라버님이라고 불렀지만, 루데릭이 너무 낯간지럽다고 하여 지금처럼 됐다.


이제 와 하는 소리지만, 사실 선뜻 언니라고 부르라 한 배경에는 이와 같은 일이 깔려있었다.


마을 모두 아저씨, 아줌마, 언니, 오빠 등으로 편히 불리는데, 혼자 언니님은 수치 플레이지 않나. 차라리 평범하게 언니라고 불리는 편이 낫지. 저기~ 저 둘과 달리 동생 호소인인 것도 아니고.


속으로 그리 생각을 하고 있자니 루데릭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 슬며시 로즈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저래도 되나 조마조마했는데······ 이번에도 유즈라가 가만히 있어 좀 의외였다.


슥슥.


헤실헤실 웃는 로즈를 쓰다듬어 준 루데릭은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


‘여유가 넘치는 것도 그렇고, 암만 내 오라버니라지만 좀 멋지네. 어느새 신장도 훤칠해졌고. 은근 여자들에게 인기 있으려나······?’


아시리트가 호감을 보이는 것도 같으니 정말 인기가 있지 않을까.


‘뭐, 어련히 잘 하겠지.’


친구 때와 마찬가지다. 내 코가 석자인데 누굴 신경 쓰겠는가.


급격하게 관심이 식은 리아는 흙으로 된―― 거의 도자기 같은 질감의 의자를 만들어 냈다. 물론 2개 만이다. 스리슬쩍 합석하려는 프리에나와 리블리지의 것은 만들지 않았다. 덤으로 유즈라도 왠지 사양할 거 같아서 뺐다.


‘아. 한 명이 더 있었지 참.’


리아는 살짝 팔을 내밀었다. 그 내민 팔에 새하얀 부엉이가 사뿐히 활강하여 내려앉았다.



《음. 고맙군.》


휙 고개만 돌려, 반쯤 감긴 눈으로 쳐다보는 부노.


엄청 귀엽다. 제법 중후한 목소리 때문에 잘 적응은 안 되지만 외견만큼은 정말 무지하게 귀여웠다.


리아는 털을 고르는 부노를 도와 길게 뻗은 하얀 귀깃을 정리 해줬다. 보슬보슬한 게 엄청 감촉이 좋다. 귀깃을 다 정리하고 나서는 머리를 살살, 리드미컬하게 긁어줬다.


그 상태로 리아는 물었다. 제법 예의 없는 짓이었지만, 여긴 벨루디스가 아니다. 이 정도는 라프리트도 뭐라 하진 않을 것이다.



“여행은 어땠나요? 힘들진 않았나요?”

“네! 이번에도 나른나른해서 잘 잤어요!”

“아아. 아니마무스 씨를 만나러 갈 때도 [발판]을 탔었죠. 어쨌거나 편했다면 다행이네요.”

“저도! 하늘은 몇 번 날아봤지만 이리 편한 적은 처음이었어요!”

“저, 저도······ 바, 바람도 안 불고 쾌적했어요!”

“아, 네······.”


파직.


신나서 척척 대답했던 프리에나가 밝은 얼굴을 굳히고는 옆에서 따라 대답한 리블리지를 매서운 눈매로 째려봤다.


리블리지도 지지 않고 쌍심지를 켜 맞대응했다. 여린 분위기와는 달리 제법 호전적이다.


아. 이젠 불꽃도 튀긴다.


진짜 불꽃은 당연히 아니다. 눈에서 레이저 빔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다만, 둘에게서 감정에 동조된 마력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는데, 붉은빛과 남색의 빛이 격렬히 부딪치는 광경이 흡사 불꽃이 튀기는 것만 같았다.


‘아무래도 좋지만.’


금세 흥미가 사라진 리아는 척, 하고 검지를 세웠다.



“잘 들으세요, 로즈. 오늘과 저번의 여정이 편할 뿐이에요. 보통의 평범한 여행은 이보다 훨씬 가혹해요. 노면의 거친 상태를 브르르, 고스란히 전달하는 마차의 진동은 실로 유쾌하지 않죠. 로즈는 앞으로 황녀로서 긴 여행길에 오를 일도 있을 거예요. 그때 우울해지고 싶지 않다면 이 여행에 익숙해져선 안 돼요. 알겠나요? 이번이 특별한 거예요.”

“넷! 명심할게요, 리아 언니!”


뭣도 아닌 시골 처자의 말인데도 로즈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다.


정말 솔직하고 착한 아이다. 너무 기특한 나머지 수중에 있는 과자를 몽땅 꺼내주고 싶다. 밥 먹기 직전이라 진짜로 실행에 옮기진 않을 거지만······.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리아는 부노의 턱을 쓰다듬었다.



“부노 씨는······ 딱히 제 조언 같은 게 필요하진 않겠죠. 원래부터 하늘을 거닐 수 있으니. 멀미 같은 건 없었나요?”

《전혀. 뭔가를 타서 이동하는 건 자주 겪어봐서.》

“어깨를 타고 다닌다던가요?”

《그렇지. 이따금 대장 어깨를 빌렸었다.》

“그 세스가 남을 배려할 거 같진 않으니까······ 탑승감은 최악이었겠네요.”

《덤으로 날아가지 않으려 진을 뺐지. 체감상으로는 나보다 훨씬 빨랐거든.》


덕분에 멀미는 없었다는 부노. 하지만 이내 당시가 떠올랐는지 살짝 몸을 떨었다.


고속으로 하늘을 나는 새가 질색하다니. 오히려 거꾸로 대단하다는 기분마저 든다.



“로, 로즈는 뭐 요청할 사안 같은 건 없나요?”

“네! 저는 이렇게 리아 언니의 일상을 직접 목격할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요!”

“으음. 좋아해 줘서 고맙지만, 제 일상 따위 말고 다른 걸 즐기는 게 더 보람차지 않을까요?”

“따, 따위라니?! 언니의 일상은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고귀한 발자취라구요!”

“에이. 과장이 심하네요. 제가 뭐라고. 봤잖아요. 다들 띄워주고는 있지만 저는 여기~ 시골 마을의 평범한 계집에 불과해요.”

“어······ 과장이요?”


로즈는 유즈라를 돌아봤다. 굉장히 어이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보기 드문 상황이었는데, 유즈라 또한 주군의 뜻에 보답이라도 하듯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녀는 여기에 더해 허탈해한다고 할까, 어째서 모르는 거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근위 기사답게 겉으로 크게 티 나진 않았다. 리아가 알아본 것은 단순히 어마어마한 지각 능력 덕분이었다.


‘근데 뭐를 모른다고 하는 걸까······?’



“저기, 이스피리아 님?”

“네. ······아, 잠시만요.”


손을 내민 리아는 위를 쳐다봤다.



“――돌아가렴. 여기엔 네가 먹을 게 없단다.”


리아는 무척이나 상냥하게 말했다. 요정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리아의 진한 미소는 마치 다정함의 화신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함께 쏘아진 마력은 전혀 달랐다. 다음은 없다는 명확한 의사가 담겨있었다. 이를 직격으로 쏘인―― 총 길이 5M에 달하는 지네는 천천히 나무를 타고 내려오다가 빠르게 뒤로 후퇴했다. 느닷없이 강대한 포식자를 마주한 것처럼 신속히.


사사삭.


꾸물꾸물, 생리적으로 오싹함이 드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요즘 마이와 드에들에게 익숙해져서 그런지 별로 혐오스럽다거나 하진 않았다.


머리로 붉게 물든 낙엽들이 떨어진다.


지네가 확실히 다른 나무로 넘어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리아는 고개를 내렸다.



“바지탄스 씨들에겐 비밀이에요? 아신다면 분명 자책하실 테니.”


조금 더 성장하면 마물급이 되겠지만 당장은 일반 지네에 불과하다. 그만큼 마력이 미약한지라 근처에 오기 전까진 알아차리기란 꽤 힘들다. 게다가 저 지네도 엄연히 사냥의 명수다. 기척조차 흐릿하건만 그걸 감지하지 못했다고 탓하기에는 너무 불합리하다. 어차피 덮쳐봐야 로즈말고 대응 못 할 사람도 없고.



“끊어서 미안해요. 계속 말씀하세요.”

“······.”


마찬가지로 나무 위를 바라봤던 유즈라가 더욱 황당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습격당할 뻔했다는 사실은 잊힌 듯했다. 그 외의 다른 사람들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왜······?’


모두의 반응을 도저히 따라가지 못한 리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흐흠.”


한동안 이어지던 묘한 분위기를 유즈라가 헛기침으로 끊었다.



“이어 말씀드리자면, 그, 이스피리아 님은 귀족―― 말석이라 할 수 있는 남작이 되려면 얼마큼의 시일이 걸린다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주변에 고위 귀족이 많긴 하지만 심도 깊게 알아보진 않았다. 하물며 귀족이 되고 싶다는 마음 따윈 아예 없어 그 주변 지식조차 전무했다. 결국 대충 추측하여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 그냥 나라에 공헌하면 되는 게 아닌가요?”

“맞습니다. 간혹 중대한 공훈을 세워 귀족이 되는 경우가 더러 있지만, 그건 한 줌에 불과한 예외입니다. 평균적으로는 한 세대―― 왕가에 충성을 바치고 약 200년쯤이 되어서야 겨우 작위를 수여받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귀족이라 자처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엑?! 그, 그렇게나 오래 걸린다고요?!”


리아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다.


당연히 오래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일단 귀족이니까. 하지만 설마 집안 전체가 대대로 섬겨야지만 겨우 작위를 받는 시스템일 거라고는 미처 몰랐다.


더욱이 귀족의 그 수도 꽤 많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더더욱 저런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응? 근데 집안이 아니라 개인이 귀족인 경우도 있잖아요?”


엔가나의 경우가 그러했다. 그는 투기장의 가주로 제국에서 준남작위였었다. 딱히 집안과는 관계가 없었고, 심지어 황제는 시원스레 새 후계자에게 이양하기까지 했었다.



“그게 앞서 말씀드린 특별한 경우입니다. 공훈에 대한 대가로 작위를 수여한 겁니다. 하지만 공훈을 세운 건 어디까지나 자신뿐. 그 작위는 공훈을 올린 본인에게만 귀속되는 겁니다. 덕분에 정통 귀족들에게는 벼락출세한, 일시적으로만 존재하는 반쪽짜리 귀족이라며 멸시하기도 합니다.”

“아아. 그렇군요.”


비슷한 이야기를 전생의 만화 같은 데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땐 왜 그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싶었는데, 확실히 수백 년간 충성을 바쳤던 이들이 보기에는 그리 달갑지도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다.



“새삼스럽지만 루비아 씨나 라프리트 씨는 진짜 굉장한 영애들이구나.”

“왕족이신 공녀님은 말할 것도 없지만, 리벨리타스 후작 가는 개국공신의 명가입니다. 세월만으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귀족조차도 우러러보는 구름 위의 대귀족입니다. 사설입니다만, 태어났을 때부터 혼사가 정해지는 귀족 세계에서 두 분의 약혼자가 아직 정해지지 않은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습니다.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금방 정하지 않아도 아쉬울 게 전혀 없는 것이죠.”

“어, 엄청나군요······.”


얼추 알고는 있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두 친구의 위상이 높다. 신분을 따지지 않는 베르다드라지만 진짜 용케 잘도 친구가 될 수 있었구나 싶다.



“근데 저는 왜?”


굉장한 사람들과 친구도 되고, 잔뜩 부풀려진 세스와의 일전으로 좀 화제가 되었다는 건 안다. 그렇지만 일상마저 역사에 남을 만한 엄청난 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랬는데······


놀라는 시선들이 쏟아진다. 그 시선들을 표현하자면 여기까지 들었는데 모르겠느냐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로즈, 심지어 인간 사회를 잘 모르는 프리에나와 부노마저 저리 쳐다보니 좀 당혹스럽다.


왠지 혼자 멍청한 것 같아 리아는 얼굴이 빨개졌다.



“흠흠. 분명 이스피리아 님께선 귀족이 아니십니다.”

“네! 아니에요!”

“······.”

“미, 미안해요. 계속하시죠.”


부끄러운 마음에 실수했다.


몇 번이나 말을 끊는 것인지······.


화악하고 열기가 올라온다. 하지만 동요하거나 하면 더 창피할 걸 알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했다.


눈치로 기분을 헤아린 유즈라도 언급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여태 융통성 없이 꽉 막힌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심성 자체는 꽤 곱다.


그녀의 주가가 쭉쭉 오르는 것을 느끼며 리아는 귀를 기울였다.



“이스피리아 님은 작위를 받은 귀족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오히려 왕족에 버금가는 직책을 갖고 계십니다.”

“아. 최고 국빈이요?”

“그렇습니다. 초창기에는 그 정당성에 대해 의구심이 있기도 했으나, 현재는 반석처럼 단단합니다. 심지어 벨루디스에만 국한되지 않은 실정입니다. 저희 제국의 경우 전권대리인이기까지 하십니다.”


거기서 유즈라의 눈이 예리한 빛을 발했다.



“쉽게 말하면 이스피리아 님은 왕족―― 조금 부풀린다면 국왕에도 버금가는 권력자이십니다. 비록 본인께서 바라신 게 아니라 하시더라도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는 분명 그러합니다. 정치에는 까막눈인지라 자세한 사정까진 모르지만······.”

“그런······.”


여태 과한 직책이다 싶긴 했다. 그렇지만 설마 그만한 권력자로 취급될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않았었다. 솔직히 말해 조금―― 아니, 어차피 몇 년 지내다가 떠날 거란 기분에 꽤 가볍게 보기까지 했었다.


그런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생각 이상의 이야기에 리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왕족이 아닌, 아무 연고도 없는 인간이 돌연 삼국 모두에서 최고 국빈 대우를 받은 적은 전무후무합니다. 이후로도 다시는 없을 겁니다. 제아무리 공훈을 연이어 세웠다고 한들, 결단코 이스피리아 님과 같은 위치에 오를 자는 없으리라 단언합니다.”

“남작조차도 200여 년이나 걸린다고 했으니······.”

“예. 저희 제국도 능력을 더 중시하는지라 출세의 길이 넓다고는 하나 오래 걸린다는 사실에는 변함없습니다. 그러한데, 이스피리아 님께서는 그만한 권한을 갖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남작은커녕 귀족조차 아니십니다.”


순간 리아의 뇌리가 번뜩였다. 드디어 그녀가 하고픈 말이 무엇인지 알겠다.


유즈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즉, 이스피리아 님은 신민을 보살피고 국가에 헌신하는, 귀족의 책무가 없으면서도 막강한 무소불위에 권력을 지니셨습니다. 하물며 그것을 오로지 본인의 힘만으로 이룩해 내신 겁니다. 그런 분의 일상입니다. 평범한 일상은 더는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이스피리아 님의 발자취가 쓰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너는 그만한 사람이다. 바라든 바라지 않든.


그리 말하는 유즈라의 말에 리아는 잠시 멍해졌다.



“리아 언니······.”

“괘, 괜찮아요. 그냥 놀랐을 뿐이에요.”


미소 지은 리아는 걱정스레 바라보는 로즈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하지만 그럼에도 로즈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황제는 그리 음험한데 어떻게 이런 참한 아이가 태어났다냐.’


입꼬리를 올린 리아는 로즈의 허리를 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무릎 위에 앉혔다. 부노는 눈치껏 유즈라의 팔로 옮겨 갔다. 아직 대화까진 못 하는 유즈라는 당황하면서도 “이, 이러면 되나?”라며 팔의 각도를 맞춰줬다.



“정말 괜찮아요. 그야 변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네! 언니는 언니예요!”


밝게 웃는 로즈.


무척이나 그리운 기분이 든다. 동생이 있어 본 적은 전, 현생 모두 합쳐도 없건만.


――그리고 이 기시감은 도대체 무엇일까.


딱 이거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뭔가 이게 아니라는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이것도 계승의 영향인가······? 하지만 당최 무엇이?’


조금 생각해 봤으나 짚이는 건 없다. 거기다 알아낼 상황도 아니다.


부럽다는, 심지어는 꽤 슬픈 눈으로 바라보기까지 하는 시선들을 느끼며 리아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렇죠. 저는 저예요. 로즈를 비롯, 갑자기 다 큰 동생들이 생겨버린 이스피리아죠.”

“언니!”


프리에나가 달려와 와락 안겨들었다. 얼마나 힘차게 달려들었는지 바람이 몰아친다.


‘로즈도 있는데 뭐 하는 건지 원······.’


제 딴에는 신경 써 힘 조절을 했다지만 로즈까지 함께 안는 바람에 그녀가 놀라지 않는가. 거기다 가슴 사이에 얼굴을 넣고 비비기나 하고······.


연장자로서 이런 모습 말고 좀 모범을 보이면 어떠려나 싶다.


작게 한숨을 쉰 리아는 세스와는 너무 다른, 새하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놀란 듯싶었던 프리에나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가 해맑은 미소와 함께 다시금 꼭 끌어안았다.



“헤헤. 언니~”


너무 좋아한다.


이게 이렇게나 좋아할 일인가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태 너무 무심하게 굴었나 싶어 조금 반성하게 된다.


그 일환이다. 리아는 어느 곳에 시선을 뒀다.



“하아. 거기서 혼자 뭐 해요? 저는 일방적으로 한 명만 편애하는 언니가 될 마음은 없다구요?”

“어, 언니······.”


혼자 덩그러니 떨어진 리블리지. 그녀는 머뭇거리면서 좀처럼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리아는 눈썹이 움찔했다.


바로 그때 로즈가 폴짝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오종종 귀엽게 리블리지에게로 뛰어갔다.



“가요, 리지 언니! 어서요!”

“어, 언니······요?”

“네! 함께 언니의 동생이잖아요! 그러니까 리지 언니!”


자신의 손을 잡아끄는 로즈를 리블리지는 멍하니 쳐다봤다. 땡그랗게 뜬 그 눈에서는 여러 감정이 엇갈렸다.


주저하면서 리블리지는 밑을 내려다봤다. 피로 얼룩진 본인의 손을······ 그리고 이와는 반대로 너무나도 깨끗한 로즈의 손을.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는 명확했다.


너무나 탐탁지 못했던 리아는 목구멍까지 말이 올라왔다. 그러나 가까스로 억누르고는 얌전히 지켜봤다. 끼어들 때가 있는 것이다. 여기는 그때가 아니었다.


다행스럽게 언짢게 끝나진 않을 것 같다.


리블리지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순수한······ 리아조차 찡그린 눈가를 펼 정도로 맑고 깨끗한 미소였다. 청순한 그 외모와 더불어 인정하긴 싫지만 정말 아름답게 보였다. 완만하게 곡선을 그린 눈매에도 지극히 상냥한 빛을 띠고 있어 공기가 대번에 부드러워졌다.



“예. 가죠. 고맙답니다, 로즈린느 님.”

“로즈면 돼요! 님도 괜찮아요!”

“······그러면 저희끼리 있을 때만 그러도록 할게요, 로즈.”

“아쉽긴 하지만 역시 그래야겠죠······?”


살짝 불만이라는 듯 로즈는 유즈라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지킬 선이라는 게 있음을 알기에 차마 허락받으려 하진 않았다.


쿡쿡 웃은 리블리지는 조심스럽게 로즈를 이끌었다.


살짝 인상을 편 리아는 모두를 둘러봤다.



“까놓고 말해, 왜 이리됐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당신들이 바라는 한, 저는 당신들의 언니로 있을 생각이에요. 그러니 당당하세요. 제 동생을 자처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말고 한껏 웃어요. 약한 모습은 오로지 언니인 제 앞에서만이에요. 알겠나요?”

“넷!”


저마다 힘찬 대답을 하며 눈을 빛낸다.


리블리지도 그러했는데, 여전히 끌어안은 채로 그녀를 곁눈질로 보던 프리에나는 작게 웃으며 비켜섰다. 이번에는 네 차례라는 것처럼.


당연히 리블리지는 사양하는 낌새였다. 나름 상식인다운 행동이다.


하지만 여기기까지 와서 내빼는 건 용납 못 한다. 한번 창피함이라는 것을 맛봐라.


본인의 창피함을 공유하고 싶은 리아는 냉큼 리블리지의 손을 잡아당겼다. 상당한 힘을 실었기에 그녀는 저항하지 못하고 빨려 들어가듯 품에 들어왔다.


리아는 볼이 새빨개진 리블리지를 내려다보다가 천천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다. 로즈나 프리에나와 달리 모발이 굵은 보랏빛의 머리카락은 언뜻 거친듯하면서도 매끈하다. 성직자답게 딱히 꾸미거나 하진 않았지만, 관리 자체는 꽤 잘 되어 만지는 감촉이 제법 새롭다.


‘이러나저러나 미인이란 말이지.’


리아는 조심스럽게 흘러내린 리블리지의 앞머리를 걷어 올려줬다.



“솔직히 당신에게 좋은 인상은 없어요.”


리블리지는 움찔 몸을 떨었다.



“분명하게 말하지만, 이전 일 때문이 아니에요. 그때의 일은 이미 사과를 받았잖아요? 내키진 않았지만, 이래저래 용서하기로 했어요. 델리안도 그랬죠? 이제 됐다고. 그래요. 다 끝난 일이에요. ······하지만 그건 더는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에 불과해요. 딱히 관계가 개선되거나 한 건 아니죠.”

“······네.”


흐린 표정으로 리블리지는 눈을 깔았다.


리아는 그런 그녀의 이마에 딱콩을 날렸다.


적청의 세계로 진입해서 날린 일격이다. 경쾌한 소리와 함께 클린 히트로 들어갔고, 리블리지는 이마를 부여잡으며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 언니······?”

“어리광 부리지 말아요. 미안하다며 우물대는 것 자체가 사치에요. 그럴수록 먼저 다가가도록 하는 것이 예의라는 거라고요. 직접 부담된다고 들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내빼지 마세요. 노력해야 하는 건 상대방이 아니에요. 당신이죠. 내 동생이라면 변명보다는 먼저 앞을 보고 나아갈 생각을 하세요. 알겠나요, 리지?”

“네, 넷!”


리블리지―― 리지는 힘차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설이지만 눈물이 살짝 맺힌 그 모습은 실로 남심을 자극할 요소가 넘쳐흘렀다.


이래 놓고 한참 연상이라니······ 세상은 참 불공평한 것 같다.


한숨을 내쉰 리아는 거칠게 리지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물론 복수할 셈으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좀 부러워서다.



“헤헤. 언니들이 잔뜩 생겨서 너무 좋아요!”


얼추 상황이 정리된 것을 느낀 로즈가 와락 달려들어 프리에나와 리지를 끌어안았다.


그 순수함에 심금이 자극당했는지, 프리에나는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리고는 돌연 리지를 번쩍 안아 올렸다.



“아유~ 귀여운 것. 이게 동생이지! 멀대 같은 오빠랑은 완전 달라. 치유된다······. 아! 리지도 그렇다는 건 아니다? 리지는 커도 충분히 귀여워! 이대로 다 납치하고 싶어!”

“어······ 프리에나 언니가 언니예요?”

“그럼! 내가 언니의 첫 번째 동생이지!”


너무 좋은 분위기다. 신나 떠드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다 큰 어른이 이리도 순수할 수 있나 싶어 살짝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아니. 둘째부터야. 첫째 동생은 따로 있어.”


반론 따윈 허락하지 않는, 가득 힘이 담긴 목소리가 울린다.


기껏 좋은 분위기를 산통 내버렸다.


의도한 건 아니다. 오히려 말을 꺼낸 리아마저 속으로 엄청나게 당황했다.


‘가, 갑자기 이 무슨······.’


좀 전까지는 분명 같이 웃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런 말을 꺼내고 있어 황당하기 그지없다.


더욱 어이없는 건 철회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거다.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으나, 저들 중 누군가가 첫째 동생의 자리를 차지하게끔 두고 싶지 않았다.



“엇! 언니, 다른 동생이 또 있어요?!”


이상하게 보지 않고 프리에나가 순수하게 놀라 물었다.


리지와 로즈도 놀라기는 했지만 다행히 별로 의심하는 낌새가 없었고, 이제 와 아니라고 하기엔 그러니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을에는 없었는데······ 다른 데로 나갔나? 언니! 언젠가 소개해 주세요!”

“아, 네······. 기회가 된다면.”


기대된다며 프리에나는 빙긋 웃었다.



“그러면 둘째인가······.”

“저기······ 둘째는 리지 언니 아니에요?”

“무슨 소리!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함이 있는 내가 둘째지! 가슴 크기로 정하는 게 아니라고?”

“저, 저는 셋째라도 괜찮아요.”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첫째와 둘째를 나누는 것이라면 셋째부터 정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이젠 정말 뭐가 뭔지 모르겠는 주제로 떠드는 동생들. 그 모습이 왠지 우스꽝스러워 리아는 웃었다. 부노도 당최 모를 소리에 질렸는지 저 소란 통에서 빠져나와서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거, 부모님에게는 뭐라 말한다냐······.’


그 외에도 재밌어할 것이 분명한 델리안을 떠올리니 괜한 짓을 했나 싶어 리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 식사를 끝마치고, 리아는 저택 주변 공터를 걸었다. 드물게 주변에 다른 사람들은 없었다. 기어코 따라오려고 한 동생들은 서로 친해지라면서 떼어냈고, 에르도 잠시 생각할 게 있다는 이유로 방에 남았기 때문이다.


나뭇잎 소리가 살살 들려오는 밤하늘 아래 달빛이 쏟아진다.


아직도 달빛이 세계 곳곳에 비치는 원리는 모른다. 중력처럼 백방 마법적인 뭔가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냥 보기에는 지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별도 선명하니 잘 보이고 꽤 운치가 있다. 차분히 생각하기에는 나쁘지 않다.


리아는 가장 별이 잘 보이는 하늘 아래에 의자와 테이블을 만들어 앉았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 둔 차를 꺼내 한 모금 마셨다.



“좋네.”


편하다. 이대로 계속 있어도 좋을 만큼.


‘하지만 이래선 안 되겠지.’


마음을 정한 리아는 속으로 말을 걸었다.



‘아이야?’

『수신.』


답변이 없을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리아는 살짝 놀라면서 묻고 싶었던 것을 말했다.



‘아이는 내가 계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

『긍정.』

‘역시나······.’


아이가 알고 있으리라고는 예측하기 쉬웠다. 이따금 허둥대거나 거동이 수상할 때가 있었으니.


결정적으로 넘버즈. 이쪽이 모르는 지식들을 넘버즈가 지녔다는 것 자체가 알고 있음을 명확히 시사했다. 아니, 되려 알고 있는 것을 넘어, 완벽히 컨트롤 할 수 있다는 방증이었다. 내용물을 채운다는 건 그러한 뜻이다.



‘어째서 그런 걸 다룰 수 있는지, 왜 알리지 않았는지는 묻지 않을게. 아이가 나름대로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을 테니. 대신 물어볼게. 나에게 피와 영혼을 나눈 형제가 있어?’

『부정. 데이터베이스 내에 그러한 존재는 없음.』

‘의형제는?’

『다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

‘프리에나들 이외에도?’

『존재함.』

‘그중에서 내가 첫째 동생을 고집할 사람도 있어?’

『선정 기준이 모호함으로 인해 추정 불가. 다만······.』

‘다만? 뭐? 편히 말해봐.’

『사견이지만, 시전자―― 이스피리아가 애착을 가질 존재는 없으리라 판단 됨.』

‘사이가 그닥이었나 봐?’

『긍정. 다소 일방적인 관계였음.』


드물게 사설을 덧붙인 아이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기분 탓인지 왠지 모르게 살짝 불쾌해하는 것도 같았다.


그럴 순간이 아니었지만 조금 아이가 귀여워 리아는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무거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자. 그보다 오랜만인데 잠시 수다나 떨자.’

『수락.』


냉큼 수락할 거로 생각지 못했던 리아는 순간 벙졌다. 하지만 어떻게 온 기회인가.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평소 하지 못했던 사소한 잡담을 나누었다.


아이는 그리 말이 없었다. 간혹 단답형의 말만을 짤막하게 할 뿐, 먼저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언뜻 보기에는 혼잣말하는 것도 같다. 그렇지만 리아는 즐거웠고, 빈 잔에 재차 차를 따르고는 이 시간을 맘껏 만끽했다.


그렇게 평온하게 티타임을 즐기고 있으려니······


바스락.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인기척이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곳에는 한 성인 남성이 있었다.



“가베인 씨?”


자기만의 세상에 빠진 듯 멍하니 쳐다보던 가베인은 부르는 말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여전히 여운이 남았는지, 놀란 눈동자에는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이 담겨있었다.



“실례했습니다.”

“아뇨. 부끄럽지만 그냥 멍때리고 있던 거라서요. 가베인 씨도 쉬러 오셨나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곧 돌아――”

“――그럼 같이 쉬죠. 이쪽에 앉으세요.”


리아는 냉큼 맞은편에 의자를 만들고는 그쪽을 가리켰다.


무언가 말을 하려던 거 같았던 가베인은 잠시 멍해졌는데, 이윽고 사양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했나 보다. 의자를 번갈아 보고는 웃으며 다가왔다.



“배려에 따라 잠시 실례하지요.”

“네. 아, 이거 흑차라고 하는데, 괜찮으세요?”

“딱히 가리는 건 없습니다.”


리아는 차를 또르르 따라 간단한 다과와 함께 건넸다. 모두 에르가 만든 것이니 맛은 나쁘지 않을 거다.


별로 사양한 건 아닌지 가베인은 인상 하나 찡그리지 않고 쓴 차를 찬찬히 들이켰다. 다과도 달걀이 들어가지 않는 만큼 기성품에 비해 깊이가 부족한 맛일 텐데도 먹기 편하다며 좋아해 줬다.


다만 먹는 모습 자체는 암만 포장해도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리 깔끔하지 않게 다듬어진, 붉은 기가 도는 갈색의 머리카락처럼 예법 하나하나가 조잡한 것이다. 배우기는 했지만 실천에 옮긴 적은 별로 없달까, 맞지 않은 옷을 입힌 느낌이 강했다.


‘근위 기사로서 대충 배운 건가? 뭐, 굳이 트집 잡을 건 아니지만.’


격식을 차릴 자리가 아니다. 오히려 신경 써 준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관심 끄고 리아도 차를 들었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가베인이 의아하다는 듯이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달빛에 비친, 머리카락과 같은 눈동자가 내심 이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무심코 빤히 보고 있었나 보다.


물론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수염도 그렇고 터프한 생김새는 남자다워 멋지기는 하지만 크게 관심은 없다. 이쪽의 마음은 에르에게 진즉에 관통당한 상태이니.


‘암. 그렇고말고.’


리아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별로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어서요. 어떤 분이려나 싶어서 좀 보고 말았네요.”

“일전엔 무례가 많았습니다.”

“아, 아뇨! 그건 이미 많이 사과하셨잖아요! 놀라긴 했지만 진짜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예법에는 역시 어색했지만 머리를 숙이는 가베인에게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게······ 아. 유즈라 씨요. 꽉 막힌 분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더라고요.”

“아아. 유즈라 말입니까?”


조금 어색해 주제를 돌렸는데 가베인은 개의치 않고 따라줬다.



“일단 제가 뽑은 인선입니다. 기본적인 사리 분별 정도는 합니다. 그저 충성심이 두터울 뿐.”

“으음. 제가 할 말은 아닌데, 조금은 지나친 경향이 있으시지 않나 싶네요. 괜히 트러블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하고.”

“어중간한 것보다는 그 정도가 딱 좋습니다. 그녀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혹여 제국이 무너지더라도 끝까지 황가를 모실 테니. 그야말로 근위의 표본이 아닐 수 없죠.”

“가베인 씨는요?”

“하하. 그리 보이십니까?”

“실례지만, 별로 그래 보이지 않으세요.”


어쩐지 그려지는 건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사는 모습이다. 예법에서도 그러지만 역시나 충성 쪽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런 솔직한 말에 가베인은 멋쩍다는 듯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뼈아픈 말씀이로군요. 하지만 제대로 보셨습니다. 출신이 출신이다 보니 제가 유즈라와 같은 충성심을 갖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도리어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 모욕일 테지요.”

“그런 것치고는 이 오지까지 같이 오셨네요.”

“일단 저를 중용해 준 황제 폐하께 은의를 갖고 있기는 하니. 되도록 받은 만큼은 돌려주려 합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하고픈 일이 있기에······.”

“복수인가요?”


가베인은 빙긋, 깔끔한 미소를 만들었다. 너무나도 평온한 모습이다. 덕분에 언뜻 헛다리를 짚었나 착각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분명하게 느꼈다. 원한 서린 지독한 살기가 찰나의 순간에 뿜어진 것을.


딱히 궁금한 건 아니다. 사정 하나둘쯤은 다들 갖고 있으니.


하지만 왠지 가만 놔두기가 힘들어 똑바로 그의 눈을 응시했다. 그러자 잠시 후 가베인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어울려 주겠습니까?”


그리 말한 가베인은 허리춤에 달린 바스타드 소드를 뽑았다.


‘좋은 검이로군.’


외관은 조촐하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 보면 실용성만을 추구하여 만든, 오로지 살인을 위해서 만들어진 검임을 알 수 있었다.



“황제께 받은 겁니다. 제국에선 나름대로 보물로서 취급되는 명검이라고 하더군요.”

“그런가요. 근데 어울려달라는 건······?”

“투기장 출신이다 보니 말이죠. 말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단 이쪽이 상대를 이해하기 편합니다. 뭐, 걱정 마시길. 간단하게 검을 나눌 뿐이니.”

“음. 알겠어요.”


힘 조절이 잘 안되는 지금으로서는 대련이 좀 꺼려진다. 더군다나 가베인은 강하다. 저 세스마저도 본인이 이긴 것을 자랑하며, 그가 인간 중에서 1, 2등을 달린다고 치켜주기까지 했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프리에나와는 격이 다른 상대다. 제대로 대련한다면 분명 사고가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보아하니 가베인에게 그럴 마음은 없다. 투지조차 전혀 없으니. 정말 간단하게 검을 주고받으려는 요량인 듯하니 별문제는 없겠지.


리아는 귀걸이에서 대검을 꺼내 걸었다.



“이쯤에서 하죠.”


적당히 장애물이 없는 공터에서 리아는 가베인과 마주 섰다. 그리고 결코 빠르지 않게 서로의 검을 맞댔다.


위에서 아래. 왼쪽에서 오른쪽. 어쩔 때는 빙글 돌면서 검을 주고받았다.


대단하다고 볼만한 점은 전무했다. 힘과 속도, 하물며 검로마저도 평범 그 자체. 냉정하게 평가해 무척이나 수준이 낮았다.


하지만 즐거웠다.


미리 합을 맞춘 연무와도 같이, 모든 동작이 물 흐르듯 진행되는 과정이 신선하고 재밌었다.


다만, 너무 딱 맞는다. 아니······ 지나치게 딱 맞아떨어진다.


그래. 알고 있는 것이다. 가베인, 그가 그리는 검로가······. 눈을 감고 오감을 모두 차단해도 전부 또렷이 보인다. 이 몸과 영혼이 그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


‘올곧고, 한결같이 쭉 뻗은 좋은 검이야.’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생각 이상으로 즐거운 시간은 끝을 고했다.


처음과 같은 위치에서 마주 보며 선 리아는 땅으로 툭툭 떨어지는 물방울을 내려다봤다. 감정의 기복은 없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상쾌한 기분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후후. 미안해요. 가끔 이러거든요. 아. 병 같은 건 아니에요.”


검을 집어넣은 가베인은 묵묵히 쳐다봤다. 이쪽의 가슴이 아파질 만큼 아련한 눈으로······.



“당신은······ 지금 행복해?”

“네. 조용한 마을과 느긋한 가족들, 무뚝뚝하지만 너무나도 마음이 따듯한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 그리고 저를 무척이나 아껴주는 친구들까지. 모두가 있어 줘서 너무 행복해요. 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래······.”

“당신은요? 행복한가요?”

“난······. 내 행복은 오래전에 끝맺었어······.”


가베인은 힘없이 말을 끌었다. 고개를 떨군 모습은 흡사 체념을 한 것도 같았다.


――그것이 너무 마음에 안들었다.


턱.


쏘아지듯 한달음에 달려간 리아는 [발판]을 만들고는 덥석 가베인의 얼굴을 붙들었다.



“당신, 몇 살이에요······?”

“······.”

“몇 살이냐고요?”


내빼지 못하게 머리를 고정하고 빤히 쳐다보니 가베인은 힘겹게 대답했다.



“마, 마흔아홉······.”

“하아?! 완전 애잖아요?! 난 또 투기장의 폭군이니, 레스 씨의 스승이니 뭐니 해서 훨씬 많은 줄 알았는데! 원숙은커녕, 리카드 씨보다도 어리잖아요!”

“그, 그런가?”

“그렇다고요! 그런 주제에 우리 할아버지도 안 할 소리나 하고!”


너무 어이가 없던 나머지 눈물은 쏙 들어갔고, 리아는 그대로 가베인의 머리칼을 거칠게 헝클어뜨렸다. 살짝 분이 풀렸을 때는 까치집 저리 가라가 됐다.



“알겠나요? 저의 분노를?! 행복이 어쩌구 떠들 수 있는 건 멋들어지게 허리가 굽은, 최선을 다해 살아온 노인이 할 대사라구요! 그걸 새파랗게 어린 당신이······. 모욕도 이런 모욕이 없다고요! 얼른 세상에 있는 모든 노인께 사과하세요!”

“어, 미, 미안합니다?”

“네. 잘하셨어요.”


앞서 말했듯 솔직한 아이는 좋다. 그렇다고 가베인이 아이라는 건 아니지만, 충분히 기특하지 아니한가. 보상으로 까치집이 된 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줬다.


그 상태로 리아는 말했다.



“복수를 하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 그걸 정하는 건 자기 자신이니까. 하지만 이후의 일도 제대로 생각하셨으면 해요. 복수가 끝나더라도 당신의 인생은 계속되니까요.”

“계속된다······.”

“네. 무책임하게 새 행복을 찾으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대신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진 마세요. 인생사 새옹지마에요. 살다 보면 가끔은 재밌는 일도 있을 거예요. 저와 당신이 만난 것처럼.”

“······나도. 나도······ 당신과 만날 수 있어······ 즐거웠어······.”

“저도요. 당신과 검을 나눈 시간은 제법 즐거웠어요.”


상냥하게 미소 지은 리아는 조심히 가베인의 머리를 안아줬다.


에르가 싫어할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그리 생각하면서도 리아는 그만두지 않았다. 약해진 남자를―― 그것도 영웅의 기색을 지닌 남자를 따듯하게 보듬어 주는 것도 멋진 여자의 덕목이 아니겠는가. 에르도 사정을 듣는다면 바람이라고 하지 않겠지.


남자의 눈물이란 본디 귀한 것이기도 하고······.


‘아아······. 역시 당신에겐 악귀의 길은 어울리지 않아.’


입꼬리를 올린 리아는 조용히, 달밤이 아름다운 하늘을 올려다봤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여러분 명절 다들 잘 지내셨는지요?

참고로 저는 그냥저냥 보냈습니다요! 다행히도 사촌들이 금세 철이 들었는지 모처럼 한가한 명절이었죠 ㅎㅎ


다음화는 예기치 못한 만남이 있을지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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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219 24.04.10 37 0 42쪽
257 218 +2 24.03.25 30 1 43쪽
256 217 +2 24.03.14 19 0 50쪽
255 216 +2 24.03.01 28 0 40쪽
254 215 +2 24.02.22 34 0 40쪽
» 214 +2 24.02.15 30 0 45쪽
252 213 +2 24.02.01 39 0 48쪽
251 212-2 +2 24.01.22 24 0 21쪽
250 212 +2 24.01.22 30 0 33쪽
249 211-2 +2 24.01.03 33 0 20쪽
248 211 +2 24.01.03 67 0 43쪽
247 210 +2 23.12.03 104 0 45쪽
246 209 +2 23.12.03 38 0 41쪽
245 208 +2 23.11.11 45 0 55쪽
244 207 +2 23.10.29 70 0 42쪽
243 206 +2 23.10.21 50 0 50쪽
242 205-2 +2 23.10.11 60 0 21쪽
241 205 +2 23.10.11 69 0 37쪽
240 204 +2 23.09.30 68 0 40쪽
239 203 +2 23.09.14 61 0 39쪽
238 202 +2 23.09.14 93 0 36쪽
237 201-2 +2 23.09.02 66 0 18쪽
236 201 +2 23.09.02 72 0 35쪽
235 200 +2 23.08.22 86 0 47쪽
234 199 +2 23.08.14 73 0 42쪽
233 198 +2 23.08.04 85 1 39쪽
232 197 +2 23.07.27 80 0 42쪽
231 196-2 +2 23.07.19 52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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