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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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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최근연재일 :
2024.04.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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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01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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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쪽

213

DUMMY

세그언도 대륙에는 ‘대해’라 숲이 있다. 이름에 걸맞게 빽빽이 울창한 산림이 조성되어 있는 대해는 그 환경과 더불어 천연자원이 풍부했다. 까놓고 말해 먹고 살기 좋은 최적의 환경이었다.


하지만 마냥 지내기 편한, 그런 지상 낙원 같은 곳과는 거리가 멀었다. 자원이 풍부한 만큼 많은 존재들이 이 땅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수가 불어난 만큼 대해 또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존재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나름의 생태계와 질서가 잡혀있었다.


새롭게 찾아오는 이방인은 이를 모르고 만만하게 왔다가 대부분은 거름으로써 대해의 일부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그런, 나름 위험이 도사리는 곳이기도 한 이 대해는 아이러니하게도 대륙에서 가장 큰 숲이 아니었다. 물론 제법 넓기는 했다. 전체 직경이 무려 세인트리안의 영토보다도 넓으니 말이다. 그러나 대륙 전체에서 보면 꽤 작은 축으로, 이보다 넓은 숲 따위 세그언도 대륙에는 지천으로 널리고 널렸다.


그럼에도 대해라고 불리는 연유에는 인간과 마족의 영토 근방에서 가장 넓은 숲이라는 것과, 일부 마족들이 최선을 다해 여러 괴담을 양산해 낸 덕분이기도 했다. 더불어······ 대해에 들어가는 자를 몰래 조용히 처리한 것도 아마 한몫하였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이러한 사정을 아는 존재는 거의 남지 않았고, 오늘날의 대해는 사람의 발길이 끊긴 오지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는 존재하는 법으로, 이 산속 오지에는 잊힌 한 마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 나트알의 주민이자 촌장의 손녀이기도 한 리아는 넓디넓은 대해의 청정한 하늘을 날아가는 중이었다. 편히 의자에 앉아서······.


‘크으~ 날씨 좋다~!’


70평 규모의 파란 [발판] 위에서 리아는 크게 기지개를 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정말 좋은 날씨였다. 새파란 하늘은 맑고 깨끗하여 그냥 보고만 있어도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거기에 더해 간혹 지나가는 구름은 파란 캔버스에 포인트를 주어 전혀 지루하지 않게끔 해주었다.


‘저건 핫도그인가······.’


이젠 먹지도 못할 핫도그다. 그렇지만 그리움을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했고, 별로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었음에도 리아는 입맛을 다셨다.


‘어, 아니다! 지금은 여자니까 좋아할 수도 있으려나?!’


전생에서는 단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현재는 일단 입으로 넣고 볼 정도로 즐기게 됐다. 입맛이 상당히 바뀐 듯하니 어쩌면 핫도그도 꽤 취향에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의외로 꽤 좋아했을지도······.


그렇게 리아는 전생에 먹었었던 핫도그의 맛이 어땠는지 떠올리며 한동안 느긋하게 일광욕을 즐겼다.


꽤―― 아니, 상당히 긴장감 없는 모습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주변 경계는 안중에도 없이 태평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야 [발판]으로 날아가는 게 아닌가. 상당히 서행하고 있음에도 습격은커녕 다가오는 새 한 마리도 없다.


이러한 상황이다. 긴장감을 가지는 게 더 어렵다.


‘이 숲―― 대해라는 곳에 있는 몬스터들은 대부분 온순하거나 별로 강하지 않은 종류뿐이라니까, 습격당하더라도 딱히 문제도 없을 테지.’


애초에 일행에는 인간 세상에선 손에 꼽을 정도의 강자가 다수 포진되어 있다. 정말 엄청난 강자들로, 대처 불가능한 몬스터와 조우한다면 되려 그게 더 신기하지 않으려나 싶다.


‘하지만 이건 좀 심하려나······.’


리아는 앞에 차려진 테이블을 봤다. 언뜻 흔히 볼 법한 디자인이지만 마감 같은 부분에선 장인의 디테일이 엿보이는 멋진 테이블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다과와 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간소하기는 하지만 종류가 다양하여, 파운드 케이크와 카스테라, 쿠키, 와플에 풀빵, 심지어는 에르 특제의 한과―― 유과와 약초로 만든 정과까지도 올려져 있다. 차도 이에 어울리게 홍차, 녹차, 허브티 등등 취향에 맞게 준비해 뒀다.


어딜 어떻게 봐도 여정 중이라는 분위기가 아니다. 좋게 봐줘도 그냥 티타임을 즐기는 것으로만 보인다.


애당초 이동부터가 이런 판국에 이제 와서라는 느낌이기는 하다. 하지만 정도가 있달까······ 좀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음······. 어쩔 수 없으려나? 놀러 가는 것도 아니니.’


만약 놀러 가는 것이었다면 천천히, 숲을 헤쳐 나가면서 여행의 재미를 만끽했을 터다. 안 그래도 제대로 된 여행을 즐겨보고 싶기도 했고.


그러나 이번 여정은 어디까지나 바지탄스들을 위한 것이다. 멋대로 즐기려는 마음을 넣을 순 없었다. 그렇기에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기도 했다. 이동하는 시간이 대폭 줄어드니까.


결과적으로 가는 동안 피곤하지 않게 테이블과 함께 다과를 준비했는데, 처음에는 다들 얼떨떨해했지만, 지금은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옹기종기 앉아 각자 편히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걸 보면 역시 잘 준비한 것도 같다. 괜히 계속 긴장한 채로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기도 하고.


‘하지만 혹여나 로즈 씨가 여행이 원래 이런 거라고 착각하지 않으려나 좀 걱정되네······.’


뭐든지 첫 경험이 중요한 법. 이후 황녀로서 장거리 여행도 떠날 수 있는데, 오늘과 너무 달라 당혹스러워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꼬르륵.


귀엽게 배꼽시계가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리아의 것은 아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리아는 자신에게서 그 생리적인 자명종 소리를 못 들은 지 오래되었다.


스윽, 건너편 테이블―― 소리의 진원지 쪽으로 시선을 옮겨보니 로즈가 주린 배를 붙들고 있었다.


그쪽 테이블을 보니 빈 그릇이 보인다.


재차 다과를 달라고 요구하면 그만이지만, 로즈는 배고프다고 말하질 않았다. 유즈라가 걱정스레 물어도 미소를 만들며 괜찮다고만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무척이나 기특했다. 어린데도 제대로 불구하고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니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먹을 거로 아이를 괴롭히는 기분이 드는지라 썩 불편했다. 배고픈 것만치 서운한 일도 달리 없고.



“슬슬 밥 먹을 때이긴 하네.”


거의 아침부터 4시간을 줄곧 날아갔음에도 아직 대해를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 타는 사람을 고려하여 100km쯤의 서행으로 갔다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꽤 넓다.


그리고 전엔 에르에게 안겨서 몰랐는데, 나트알은 대해의 서쪽에 속해있었다. 즉, 마국 방면으로 이어지는 대해의 숲은 조금 더 길다는 뜻이었다.


리아는 테이블과 마찬가지로 폴스가 준비해 준 의자에서 일어나 발판 너머를 노려보았다.


넓다······. 설마 아직 저 지평선 끝까지 산림이 펼쳐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상상보다도 더 넓은 대해는 북쪽으로는 단풍의 물결이, 남쪽으로는 싱그러운 초록잎의 물결로 양분되어 있었다. 꽤 독특한 광경으로, 이러한 특징이 있어 위치 특정에는 제법 도움이 됐다. 적어도 방향은 틀리지 않게 가고 있다는 확신은 품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색색으로 넘실거리는 숲의 물결은 대자연의 압도적인 위용과 모든 것을 받아들일 듯한 유함을 담고 있어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찌푸린 미간도 펴고 리아는 생에 처음 보는 경관을 한동안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후딱 가서 바지탄스 씨들의 일을 끝내려고 했는데······. 가끔이라면 여행도 나쁘지 않네.’


달가운 연유로 가는 게 아님을 잊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줄곧 무거운 기분으로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런 기분 전환이야말로 건강한 여정으로 이어지지 않나 싶다. 그러니까 다과 같은 것을 준비한 것이기도 하고.


이것들을 고려하면 이번 여행은 최소 수 일 연장 되지 않으려나 싶다.


어쩌면 주 단위의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체력의 안배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능히 챙겨야 할 일이고, 그 의무는 일행의 리더, 리아에게 있었다.


‘당연히 리더 따윈 원치도 않았지만······.’


그러나 부정하더라도 리아에겐 이 여정의 책임이 다소 존재했다. 바지탄스들을 받아들인 것 자체가 자신의 독단이었으니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마족들도 전원 리아를 따르기도 하고.



“할 수 없지······.”


앞에 나서는 역할은 정말 체질이 아니라며 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발판]을 조작했다.


투둑. 투둑.


천천히 하강하는 [발판]에 짓눌린 나뭇가지들이 꺾여져 나간다. 당연히 일부러 불만을 표시하기 위해 이리 거칠게 내려가는 건 아니다. 반대로 내부에는 아무 충격도 전해지지 않게 조심했다. 그냥 수풀림이 너무 우거진 탓일 뿐이다.


그렇게 착륙한 장소는 적당히 앉을 바위도 놓인 괜찮은 공터였다.


일단 겉보기에는 잠시 머물기 괜찮은 듯하다. 하지만 정말로 그런지는 알 수 없었고, 리아는 철저하게 위험 요소는 없는지 확인을 마치고 나서야 [발판]을 해제했다.


투명한 벽을 없애자, 상쾌한 공기가 들이닥친다.


아무리 환기를 해놓았으나 역시나 대자연의 맑은 공기에 비할 바는 아니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그 격차가 절실히 느껴졌고, 다들 답답함을 덜려 크게 심호흡했다.


리아는 손뼉을 쳤다.



“자자. 여기서 잠시 쉬었다가 갈 거예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지탄스가 지시를 내렸다. 그 즉시 2인 1조의 경계조 3팀이 꾸려졌고, 등에 작은 단궁을 단 티라이드의 인도 아래 곧장 움직였다. 이 일련의 과정은 물 흐르듯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뭐, 솔직히 저러지 않아도 됐다. 가만히 서서 한 국가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사람이 제법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예외 중의 예외. 보통 그러한 감각을 지닌 사람이 있진 않을 테니 저 판단이야말로 미지의 장소에선 올바른 것이었다. 베르그 또한 이 숙련도 높은 모습에서 배울 점을 보았는지 크게 감탄했다.


‘괜스레 말린다면 위기의식 없는 사람으로 비치겠지. 미안하지만 여기선 바지탄스 씨들이 힘내 줘야겠어.’



“아가씨,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한 대로 마을에서 공수해 오도록 하죠. 다녀올 사람을 꾸려주세요, 바지탄스 씨.”

“알겠습니다.”


정중히 고개를 숙인 바지탄스는 즉시 아시리트에게 지시를 내려 인원 차출에 나섰다.


경계도 그렇고, 모두 바지탄스들에게 맡기는 기분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제대로 규율이 갖춰진 그룹은 이들뿐이니 어쩔 수 없다. 합도 안 맞춰본 상대를 끼워 넣어 봤자 되려 방해만 될 테고.


무엇보다 인원수가 많다. 그러니 바지탄스들 위주로 움직이는 편이 여러모로 편하고 신속하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도 않아 마족 열 명이 다가와 머리를 숙였다.


리아는 뒤를 돌아봤다.



“폴스, 부탁할게.”

“존명! 맡겨만 주십시오!”


복면 너머로 환희 미소를 그린 폴스는 무릎을 꿇어 예를 보이고는 마을로 가는 마족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는 이내 모인 사람들과 함께 땅 밑으로 가라앉았다.



“이것이 [공간이동]······.”


나타나는 것은 봤어도 사라지는 건 처음. 바지탄스와 아시리트는 신기한지 동료들이 사라진 땅을 진지하게 살펴봤다.



“덕분에 고향에도 쉽게 올 수 있어서 살았어요. 지금도 이렇게 도움이 됐고.”

“정말로 그렇습니다. 설마하니 야영하는 동안 마을의 음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고는······.”


내심 여정 내내 보존식만 먹는 게 아닐까 노심초사했었다며, 바지탄스는 제법 편한 얼굴로 넉살을 떨었다.


‘바지탄스 씨도 많이 변했네. 이젠 농담도 자주 하고 말이야. 옛날에는 마냥 진지한 사람 같았는데.’


노심초사했었다는 그의 말은 처음부터 실현될 확률 자체가 아예 없었다. 공간이동을 할 수 없었더라도 그렇다. [차원 수납]이 있지 않은가? 물건을 무한히 담아둘 수 있는―― 심지어 시간의 흐름조차 없이 넣은 상태 그대로 보관할 수 있는 사기적인 마법이 있는 이상 식량으로 고통받을 일은 없다.


당연히 일반적인 [수납]의 아티팩트로 숨길 요량이지만, 일단 대량으로 식료품을 담을 수 있다는 점만큼은 변함이 없으니 그게 그거다. 여정이 한결 편하다는 것은 변치 않는다.


괜히 [수납]의 아티팩트가 비싼 게 아니랄까······. 이렇게 여행을 떠나보니 그 편리함에 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그런데······.”

“뭐죠?”

“아, 아닙니다.”

“괜찮으니 말씀해 보세요.”


투구를 옆구리에 낀 바지탄스는 먼저 말을 걸어놓고 꽤 망설였다. 뭔가 실례라고 뒤늦게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평소 사소한 것 하나 모두 예의를 갖춰주던 바지탄스다. 사소한 것임에도 혼자 실례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재차 괜찮다고 좋게 설득하니 바지탄스는 고심하면서도 입을 열었다.



“정말로 아가씨께선 [공간이동]을 쓰실 수 없으십니까?”

“어, 네. 저는 못 해요.”

“하지만 폴스는······.”


피조물이라는 폴스가 가능한데 정작 만든 사람이 못 한다니까 이상해 보이겠지. 하지만 사실인 걸 어찌하랴.


리아는 입술에 검지를 댔다.



“음······. 폴스는 분명 제가 만들긴 했지만, 저는 단지 육체와 인격만 부여한 것에 지나지 않아요. 바지탄스 씨도 직접 겪어봐서 아시겠지만, 폴스는 스스로 사고하는 단일 개체에요.”

“예. 골렘 같은 무기물과는 명백히 다른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그러하도록 구상한 것이었으니까요. 한 명의 개인이 되도록. 비유하자면 부모와 자식 사이 같은 거예요. 부모가 못 한다고 해서 자식도 못 한다는 법은 없잖아요?”


대체로 맞는 소리이긴 했다. 그렇지만 완벽히 옳은 예시는 또 아니었다. 폴스가 지닌 대다수의 것들은 육체를 비롯하여 그 지식마저도 창조주인 리아에게서―― 정확히는 아이가 추출하여 준 것들로, 바지탄스에게 해준 설명과는 조금 달랐다. 결단코 스스로 습득한 게 아니었다.


뭐, 당연했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스스로 습득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가.


천재의 뺨을 왕복으로 후려칠 정도로 똑똑하더라도 그러하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라면 그건 막 태어난 신생아랑 다를 바 없다. 성장하는 과정 또한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기에 지금의 폴스만치 되기까지는 못해도 수년이란 시간이 소요될 터다.


초월자이니 이후 습득할 건 분명 셀 수도 없을 만치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까지 스스로 습득한 건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물며 걷는 것마저도 그렇다. 모두 전해 받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림자 이동]도 다르지 않다. 만들어진 직후에 바로 습득했다는 건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 되니 지식을 전수 받았다고 생각해야 하리라.


그렇다는 건―― 그 지식의 원천인 리아도 할 수 있어야만 했다.


여기서부터 조금 복잡해진다. 백방 전생의 기억이 관련되어 있을 테니.


일단 에르와도 대화를 나누어봤는데, 세스의 주장대로 전생에서 습득한 기술과 지식을 이어받는다는 건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했다. 오히려 에르는 세스보다도 훨씬 먼저 알아보았다고 한다. 습득 속도나 수련 방향을 정하는 데에 아무 망설임이 없는 모습을 보고서······.


그만큼 일반적인 기준과는 상당히 동떨어졌었다고 에르는 조심스레 고백했었다.


여태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확실하지 않거니와, 알려준다 한들 딱히 변하는 건 없어서라고 한다.


그건 그렇다. 다룰 수 있는 능력도 아니고 알아봤자다. 고민만 깊어진다.


결국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지, 왜 이랬는지 등등 밝혀진 건 없었다. 그나마 딱 하나 알아낸 게 있기는 한데······ 아직은 애매모호하고, 일일이 짚어가기에는 이야기가 길어진다. 그렇기에 바지탄스에게도 약간 거짓을 섞어 말한 것이었다.


다행히 바지탄스는 쉽게 납득하고는 자리를 지켰고, 잠시 후 마력의 기척과 함께 공간의 뒤틀림이 느껴졌다.


이내 아까의 역재생을 한 것처럼 폴스와 마족들이 튀어 오르듯 나타났다.


[그림자 이동]에 놀란 듯 보이는 마족들의 옆에는 사람 하나는 들어갈 원통형의 큰 냄비와 뚜껑이 덮인 커다란 접시가 10개가량 있었다. 참고로 접시는 보온으로, 출발하기 전에 리아가 스테인리스 합금을 생성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2번의 실패는 값진 경험이었지······.’


만져본 접시에서는 내부의 열기가 전해지지 않았고, 리아는 흡족해하며 뚜껑을 열었다.


제대로 골랐는지 안에는 불고기가 들어있다. 확 올라오는 버터의 풍미도 그렇지만, 모락모락 김이 나는 게 맛나 보인다. 양도 41인분――페리와 부노도 포함이다――답게 상당히 많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변질 같은 이상은 없다. 사람도 막 지나다니는 판국에 이상이 생기는 게 반대로 이상하다.


그러나, 진짜 그런지는 확인하기 전까지 단정 지으면 안 될 것이다. 그림자를 매개로―― 무척이나 판타지스럽게 연결된 통로를 지나는 게 아닌가. 탐지가 불가능한 부정적인 에너지 같은 걸 내뿜을지도 모르고, 그것에 음식이 변질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람이 괜찮은 건 저항할 수 있는 힘―― 마력 때문일 수도 있고.


가물가물하지만 만화 같은 데에서 언뜻 비슷한 설정을 본 기억이 있다.


덕분에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그런 설정이 진짜로 존재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으니까. 출발 전에 미리 체크하긴 했었는데······ 이번에도 달리 이상이 없어서 다행이다.


리아는 도로 뚜껑을 덮었고, 바지탄스의 지휘 아래 빠르게 식사 준비가 되어갔다.



“리아 님, 이걸······.”


폴스가 깔끔하게 보자기에 싸인 무언가를 공손히 내밀었다.



“내 도시락이려나?”

“예. 필리아 님께서 챙겨주셨습니다.”

“응. 그렇구나······.”


힘들게 챙겨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하지만 그런 소리는 개의치 않고 꿋꿋이 도시락을 만들었을 필리아가 눈에 선하다.



“고마워. 수고했고, 어서 식사하러 가렴. 로즈가 기다리고 있단다.”

“옛! 식사 맛있게 하시길!”

“폴스도.”


정중히 예를 보인 폴스는 로즈에게로 갔다. 로즈는 냄새 때문에 더욱 힘들어했는데 다가오는 폴스를 보자 싹 잊게 됐나 보다. 얼굴이 활짝 피고는 곁에 착 달라붙는다.


재잘재잘 떠드는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으니, 테이블에 식기가 주르륵 깔렸다. 바지탄스가 출발 전에 줬던 [수납]의 마도구에서 꺼낸 것들이다. 물론 [수납]의 탈을 쓴 [차원수납]이 아니라, 진짜 [수납]의 마도구다. 용량은 거대해서, 테이블과 의자, 이번 여정에 필요한 물품을 모두 담아도 넉넉했다. 다만, 결국에는 [수납]이다 보니 식량을 보관할 때는 주의가 필요하였다.


‘어차피 식량은 마을에서 공수해 오니까 상관없지만.’


리아도 에르와 함께 한 자리 차지하여 앉았다.


느긋하게 하품하던 페리도 당연하다는 듯 떡하니 옆자리를 차지했다. 의자는 사람의 체형에 맞춘 것이다 보니 페리에겐 조금 좁아 보였는데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그저 꼿꼿하게 허리를 펴 날라지는 음식만을 빤히 보는데, 참으로 대단한 집념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어이없어하고 있으니 루데릭과 잭이 왔다. 언제나 루데릭의 곁을 지켰던 아시리트는 이번 여정에선 마족들과 함께 있을 예정인지 그녀는 오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아저씨?”

“어어······. 아직 어지럽기는 한데, 밥 좀 먹다 보면 나아지겠지.”


힘겨운 대답처럼 자리에 앉아 이마를 짚은 잭의 안색은 제법 창백했다.


리아는 걱정스레 보았다.


처음 보는 잭의 나약한 모습이다. 기억 속의 그는 언제나 쾌활하고 강인한 인상이 강했으니.


‘설마 아저씨에게 멀미가 있으려고는······.’


놀랍게도 그러했다. 잭은 멀미로 고생하는 것이었다.


본인이 말하기를, 속도 자체는 괜찮은데 저절로 움직이는 게 적응이 안 된다나? 아마 버스나 지하철을 탔을 때 멀미 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한다.


뭔가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지 정말 예상 밖이었다. 라프리트는 그런 잭에게 동질감이 생긴듯하고.


서행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온전히 모두 잭의 탓은 아니지만, 그가 라프리트처럼 다소 극복하기 전까지는 계속 지금과 같은 속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저희 때문에 고생하시네요······.”

“응? 아아. 눈을 감고 있으면 좀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누군가는 따라갔어야 했고. 마을의 어른이 아무도 안 간다는 건 좀 그렇잖아?”

“어······.”

“세스랑 찬크에르는 제외야. 일단 원주민이 아니고, 무엇보다 감시역을 제대로 해내지 못할 테니까.”


상식인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덧붙이는 잭. 용케 안 보고도 시선을 감지해 냈다.


그건 대단하지만, 내용 자체는 동의하진 못하겠다. 어른이 필요하다는 건 알겠다. 자신이나 루데릭도 성인이기는 하지만 관록이 쌓였다고 보기에는 어려우니. 혹여 마족을 만나더라도 사정을 설명하기에는 아직 아이의 티를 벗지 못한 이쪽보다는 잭과 같은 어른이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렇듯 모두 합리적인 의견이긴 했다만······



“세스는 몰라도, 에르는 상식인인데요?”


저 무계획 기분파랑 에르를 비교하다니 무척이나 실례다.


남편이라는 딱지를 떼고 봐도 그러했다. 에르의 압승이다. 세스도 나름 똑똑한 면모가 있지만 그 정도로는 감히 에르를 넘볼 수 없다. 상식면에서는 되려 비교하는 것자체가 가당치도 않다.



“평소라면 그렇지. 박식하기도 하고 지극히 상식적이야. 근데 너와 관계되어 있으면 별로 그렇지 않아서 문제지.”

“저랑 있으면요? 음. 별로 그러지 않은 거 같은데······.”

“그래그래. 너야 모르겠지. 어쨌든 나 하나 추가됐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러려니 해. 그보다 밥이나 먹자.”

“어, 네······.”


배식을 받으러 가는 잭을 보며 리아는 연한 갈색빛의 보자기를 풀었다. 필리아가 싸준 도시락은 3단으로 통이 겹겹이 쌓여 있는 형태였다. 아마 에르랑 함께 먹으라고 준 것일 테지만 양이 상당하다.


쑥쑥 크길 바라는 맘에 듬뿍 챙겨준 것이겠지만······ 역시 이 나이까지 왔으면 더는 안 크지 않을까 싶다. 실로 안타깝게도······.



“근데 좀 추우려나?”


확실히 북쪽으로 올라와서 그런지, 입김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꽤 추워졌다.


크게 신경 쓸 부분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추위를 타진 않게 되어, 한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고 다녀도 아무렇지 않게 됐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추운지는 느꼈고, 기왕이면 식사는 따뜻한 곳에서 편히 하고 싶었다.


‘로즈 씨도 꽤 추운듯하고.’


제 딴에는 숨기려고 해도 배꼽에 가지런히 모은 두 손은 살살 떨리고 있다.


어린아이를 저런 모습으로 두기에는 인상이 찡그려진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게 마음 쓰는 것도 보기 좋지 않고.


리아는 이미지를 그렸다. 우선 지역을 설정하고, 그곳에 히터의 뜨끈한 바람이 부는 그런――


‘――아니. 그러면 텁텁할 테니 별로인가.’


마법이란 이미지. 이대로 실행한다면 분명 목이 갈라질 정도로 건조해질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 가습기를 추가, 에르와 함께 맞이했던 봄날의 싱그러움이 넘치는 온후한 기후를 그려봤다.


피드백이 곧장 돌아왔다. 능히 가능하다고 한다. 마력은 제법 많이 든다. 아마 마력레벨 60인 사람이 겨우 한 번 사용할 정도의 양이 될 것 같다.


이거라면 꽤 레벨 높은 마법이 아닐지 싶다. 일단 학원에서 배운 마법 중에 이만큼 마력이 드는 건 없었으니까. 그런데 단박에 쓸 수 있다고 하니······ 이전에는 없었던 위화감을 느낀다.


‘이것도 계승을 하고 있는 영향이려나?’


이전―― 다른 미래에서 습득한 것이 현재로 이전된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그냥 꿈속의 상상이다. 무슨 게임 2회차 플레이도 아니고.


하지만 너무나도 빨리 마법을 습득하는 현 상태를 설명할 길이 달리 없다. 무엇보다 용왕인 에르조차 할 수 없다는 마법을 4살 경에 썼다는 게―― 지금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좀 기괴하기까지 했다.



“그 효용성에 비해 마력의 소비도 좁쌀밖에 들지 않기도 하고. 뭐······ 이제 와서랄까.”


딱.


리아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구상한 마법을 발동했다.


돌연 따스해지자 순간 사람들은 당황하여 주위를 경계했다. 그러다 이내 누가 한 짓인지를 알아채고는 미소 지었다.



“와우. 날씨마저도 바꿀 수 있는 거야? 굉장한데?”


배식을 받고 돌아온 잭이 신기하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봤다.



“정작 본인이 유감스러운지라 좀 아쉽지만요.”

“그, 그래도 덕분에 따뜻하게 식사할 수 있게 됐잖아요? 고마워요, 리아 양.”

“헤헤. 뭘요.”


착실하게 감사를 전하는 라프리트. 착하다. 과연 천사 그 자체다. 뒤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는 안네 또한 못지않게 마음씨가 곱다.


‘오라버니랑은 완전 딴판이구먼.’



“미안하게 됐네요. 글러 먹은 오라버니라.”


찌릿――. 페리의 옆에 앉으며 루데릭이 날카로운 눈매로 째려본다. 덤으로 페리는 그가 가져다준 식판에만 관심을 보였다.



“에? 아, 아니, 난 오라버니가 글러 먹었다고 생각한 적 없어! 이렇게 걱정된다며 따라와 주기까지 했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러면 혼잣말을―― 아니. 됐다. 알았으니까, 밥이나 먹자.”

“진짜라니까?!”

“누가 아니래? 괜히 입씨름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모처럼 아주머니가 챙겨주셨는데 식겠다.”


제 할 말만 하고 루데릭은 식사를 시작했다.


왠지 말싸움에서 진 것 같아 분했는데······ 이대로 계속 째려보고 있기에는 확실히 모처럼의 도시락이 식을 것 같다.



“흥. 에르의 몫도 있어서 그냥 넘어가 주는 거야.”

“네네. 정말 고맙네요.”


빠직――


이마에 힘줄이 솟아오르는 기분이다. 하지만 나는 착한 동생이다. 그리 자신을 되뇌며 리아는 어떻게든 평정을 유지했다.


그렇게 유쾌하지만은 않은 상태에서 식사를 시작했는데······ 별로 오래 가진 않았다. 도시락에 담겨 있던 수제비를 한 숟가락 떠먹자 번쩍, 그대로 식사에 열중하게 됐다.


‘멸치도 없을 텐데 감칠맛이 일품이네.’


콩자반과 연근조림의 반찬도 적당히 짭조름한 것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정작 밥이 없긴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즐거운 식사가 끝나고, 리아는 냄비와 식기들을 나트알로 곧장 돌려보내고는 자리를 정리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쉬고 싶었다. 그렇지만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 판국에 뭉그적거릴 수만도 없는 노릇이라 곧장 이동을 개시했다.


리아는 만족스럽게 배를 두드리며 떠들썩한 [발판] 내부를 둘러봤다.


배가 불러서인지 다들 기운이 넘친다. 가장 걱정됐던 잭도 밖을 보지 않으면 멀미가 나지 않는 것을 알고는 한결 편해진 모습으로 있었다.


잠시 지켜보던 리아는 [염화]를 사용했다.



『바지탄스 씨. 잘 쉬고 계시는 중에 미안한데, 바로 와주실 수 있나요?』

『알겠습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부하 마족들과 함께 있던 바지탄스는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는 아시리트와 함께 왔다.



“부르셨습니까?”

“네. 제대로 가고 있는지 진로에 대해 여쭤보려고요.”


그리 말한 리아는 테이블 위에 [생성]으로 만든 조약돌을 올렸다.



“여기가 나트알이에요. 그리고 저희는 지금 여기 북서쪽으로 쭉 올라가고 있죠. 지금까지 아마 400km쯤은 갔을 거예요.”


리아는 대략적인 현 위치에다가 다시금 조약돌 하나를 올렸다.


둘 간의 거리를 보며 바지탄스와 아시리트는 대화를 나누었다. 다른 사람들은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윽고 결론이 났는지 바지탄스는 테이블의 한 지점을 짚었다. 현재까지 이동한 거리의 3배쯤은 떨어진 곳이었다.



“아마 이쯤에 이베시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꽤 가깝네요?”

“저흰 지상으로―― 그것도 몰래 숨죽여 움직였잖습니까? 아무래도 속도가 나질 않다 보니 제법 시일이 걸린 것이었습니다.”

“흐음. 그렇군요.”


리아는 바지탄스가 가리킨 곳을 쳐다봤다.


정말 그리 멀지 않다. 바지탄스들처럼 지상으로 갔으면 여러 장애물 때문에 좀 오래 걸렸을 듯싶지만, 하늘을 나는 이상 그런 건 없다. 조금만 무리한다면 아마 오늘 안으로도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처럼 마냥 쉽게 풀리지는 않을 모양이다.


바지탄스의 얼굴이 살짝 곤란하다는 듯 일그러졌다.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지상으로 왔습니다. 위에서 보는 풍경과는 거리가 먼데다, 애당초 저흰 거리를 측정하며 이동하지 않았습니다. 대략 짐작하는 것에 불과한지라 정확한 위치라 보긴 어려울 겁니다.”

“한 번쯤은 밑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아가씨. 무작정 날아서 가다간 자칫 마국령 본토에 들어설 테니 말이죠. 다만······ 계절도 다르고, 시간도 상당히 흐른지라 제대로 알아본다고 자신하진 못합니다.”


면목이 없다며 아시리트가 머리를 숙였다.


확실히 풀이 무성히 자라기만 하여도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준다. 그게 숲이라는 곳이다. 더군다나 3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다. 같은 장소라도 못 알아볼 가능성은 다분했다.


계절마저도 바지탄스들이 왔을 때는 여름의 막바지였던 것에 비해, 현재는 완연한 가을이다. 큰 차이가 아닌 것으로 보이더라도 이 시기의 차이는 의외로 크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산이 전부 다른 것처럼.


도시 사람이었던 바지탄스들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한눈에 지리를 파악하기에는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이 모든 고민은 날아간다면 단숨에 해결된다. 그렇지만 이번 여정은 어디까지나 조용히, 트러블 없이 다녀오는 게 목적이다. 아시리트가 언급했듯 실수로 마국의 영공을 활공하다가 걸리면 일행이 일행이다 보니 골치 아프다.



“아저씨는 어때요?”

“나?”

“네. 숲에 익숙하시잖아요.”

“익숙하면 다냐? 어떻게 한 번도 안 가본 데를 안다는 거야?”

“지나간 흔적 같은 게 있을 수 있잖아요.”

“그걸 알아보는 게 전부야. 암만 그래도 길까진 찾지 못해.”

“충분해요. 흔적들을 토대로 역추산하다 보면 길이 나오겠죠. 뭐, 정 안되면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날아서 찾는 것으로 하죠.”

“처음부터 그렇게 하는 건 어때? 굳이 지상으로 갈 이유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잭이 그랬듯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다. 계속 하늘로 이동하면 편하기도 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이니만큼 길 찾기도 식은 죽 먹기일 테니까. 다만, 몇 가지 문제가 산재했다.



“마법이 편하긴 해도 만능은 아니거든요. 세스나 델리안처럼 민감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탐지해 낼 수 있어요.”

“비교군이 평범이랑은 거리가 멀지 않아?”

“거기도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죠. 세상은 넓잖아요? 괜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보단 조금 조심하는 편이 낫겠죠.”

“뭐, 걸어서 오는 녀석들보단 하늘에서 오는 놈들이 더 경계심이 들 테지.”

“그런 거죠.”

“하아. 일단 알았어. 되도록이면 빨리빨리 찾자고.”

“고마워요, 아저씨.”

“됐어. 리더의 말은 따라야지. 너무 무계획인 것도 같지만······.”


어쩔 수 없달까. 정말로 갑자기 생각나 급히 추진한 여정이었기에 계획을 수립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각오는 했었지만, 몇 번 정도 길을 잘못들을 경우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루데릭과 라프리트에게도 의견을 물었으나, 둘도 이렇다 할 의견을 제시하진 못하였다.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나가는 정석적인 여행이 되겠네.”


다른 때라면 반겼을 것 같지만 솔직히 반기기에는 여건이 좀 여의찮다.


어쨌든 별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이대로 방침을 정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각자 쉬기로 하고 쭉쭉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러기를 3시간. 마침내 대해의 끝이 보인다.



“이제 슬슬 내려갈 거예요! 다들 준비해 주세요!”


외침에 꽤 긴장이 풀려 있던 모두는 순간 의식을 날카롭게 전환했다. 배낭을 품에 안고 꾸벅꾸벅 졸던 로즈 또한 번쩍 눈을 뜨고는 빠르게 주변을 살핀다.


과연 위험이 많은 이 세계의 사람들이랄까, 지구와는 위기의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리아는 이번에도 나뭇가지들을 부러뜨리며 적당한 공터에 착륙했다. 대해의 끝에서 대략 10km 떨어진 곳이었다. 조금 더 나아간 다음 내리고 싶었지만, 혹여나 나무를 캐러 온 사람에게 보일 수도 있으니 그러진 않았다.


‘어둡네······.’


머리 위는 [발판]으로 터놓아 밝은 빛이 내리쬈지만, 나무가 우거진 숲 안쪽은 마치 다른 세상처럼 어두침침하다. 쭉 걸어왔으면 저녁이라 착각했을지도 모를 광량이다.


그리고 춥다.


북쪽으로 더 올라온 영향으로 점심을 먹었을 때보다도 확연히 추웠다. 확실한 건 로즈가 스산한 분위기 때문에 두 팔을 끌어안고 떠는 게 아니라는 거다.


날씨는 여행의 묘미이기는 하다. 미처 대비하지 못해 낭패를 보더라도 그것 또한 재미이자 추억이다. 그렇지만 로망을 추구하다가 몸을 망치는 건 미련한 짓이다. 마법 같은 편리한 방법이 있다면 더더욱이나.


‘멋대로 따라왔다고 안 챙겨줄 순 없지. 쩨쩨하게시리.’


리아는 점심때도 썼었던 온열의 마법을 모두의 주변으로 얇게 펼쳐줬다.



“흐음. 마력은 괜찮은 거야?”


마법을 기척을 잘도 알아챈 루데릭이 물었다.



“알잖아, 오라버니. 오히려 회복하는 양이 더 많아. 매일 유지하는 것도 가능해.”

“그래도 무리하진 마.”

“응. 걱정해 줘서 고마워.”


무심하게 돌아서는 루데릭. 그러나 머리를 쓰다듬어 준 그의 손길은 무척이나 따스했었다.


‘정말 변함없구나.’


만면에 미소를 지은 리아는 지시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오늘은 여기서 쉬도록 해요!”

“음. 그 정도겠지.”


대번에 납득한 잭은 곧장 막 등에 멘 활을 풀고는 근처 바위에 앉았다. 루데릭도 어깨를 으쓱하고는 바지탄스와 아시리트에게로 향했다. 마족들도 점심때처럼 저마다 경계조를 꾸리고는 탐색하러 움직였다.


다들 굉장히 숲에 익숙한 모습이다.


이런 이들과 달리 베르그들은 가만히 서서, 뭘 어째야 할지 모르고 멀뚱멀뚱 지켜보기만 하였다.


하지만 저 중에서도 예외는 있었다. 그들은 바로 가베인과 라트리트였다. 둘은 몹시 익숙하다는 듯―― 오히려 예상이라도 했던 것처럼 바로 주변을 경계했다. 딱히 뭔가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감각을 넓히는 게 느껴진다.


‘오······. 라프리트 씨야 워낙 똑똑하시니 그렇다 치지만, 가베인 씨는 꽤 의외네. 숲에서의 경험이 풍부한가? 탐지 범위도 무지막지하시네.’


잘못 느끼는 게 아니라면 가베인은 거의 2km에 달하는 범위를 탐지하고 있다.


잭도 비슷하게 탐지할 수 있다고는 했지만, 그는 시력으로 커버하는 것이다. 오로지 감각으로 살피는 그와는 제법 차이가 났다.


자존심 높은 세스가 인간 중에선 두세 손가락 안에 뽑히는 강자라고 극찬했었는데, 정말 과언이 아니다. 여태 이만한 사람은 교황과 제1 위상 말고는 처음이다.



“황제 씨는 용케도 저런 분을 베르그 씨들에게 붙여줬네.”

“――뭐가?”

“우왓! ······아. 너구나. 놀랐잖아.”

“충분히 기척을 내면서 왔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허리에 한 손을 얹은 세스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지긋이 쳐다본다.



“왜, 왜?”

“아니, 그냥.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어련히 나아지겠지. 매일 뭔갈 하는 그것도 언젠가는 끝날 테고. 살짝 불안해도 든든한 보호자가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잘 곳은 어떻게 할 거야? 대충 이불이나 덮고 잘 건 아니잖아?”

“당연하지. 이 날씨에 입 돌아갈 일 있나.”

“아가씨가 걸어준 마법 때문에 그러진 않을 것 같은데······ 뭐, 길바닥에서 안 잔다면야 아무래도 좋지만.”


그건 이쪽도 사절이다.


여정에는 로즈도 끼어있다. 비록 바라진 않은 동행일지라도 아이를 길바닥에서 재운다는, 비정한 어른이 될 마음 따윈 처음부터 없었다.


‘출발하기 전부터 며칠은 숙박하게 되리라 생각하기도 했고.’


리아는 짝짝, 크게 손뼉을 쳤다.



“다들 잠시 자리 좀 만들어 주세요. 널찍하게.”


무얼 하려는지 가르쳐주지 않았으나 마족들은 즉각 움직여 공터 밖으로 나갔다. 조금 머뭇거리던 베르그들도 가베인의 인도로 천천히 움직였다.


나머지 사람들도 물러나고, 리아는 텅 빈 공터를 보며 손가락을 튕겼다.


우선 사각형으로 범위를 설정, 그 부근의 지면을 중력 마법으로 평평하게 다졌다. 손바닥으로 밀듯 땅을 다질 수도 있으나, 먼지가 부는 데다, 압축하는 편이 여러모로 지반이 단단해지기에 중력 쪽을 택했다.


한순간에 키 작은 초목과 자갈, 바위들이 빠각거리며 압축되자 놀란 환성이 터져 나온다.


다음, 평평해진 지대에 [생성]을 사용했다. 지정한 범위에서 작은 빛들이 번쩍이더니 이윽고 눈을 뜰 수 없을 광량을 냈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진 자리에는 굴뚝이 있는 적당히 큰 4층의 벽돌집이 우뚝 서 있었다.


‘꽤 괜찮게 만들어졌네.’


이미지한 대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실물로 보니 그 존재감과 더불어 밀려오는 감동 같은 게 있었다. 특히 삼각형의 검붉은 지붕이 풍취가 있어 무척 마음에 든다.



“우와아······.”

“허 참. 마법은 진짜 뭔들 가능하냐?”

“그냥 아가씨가 대단한 거야, 잭. 창문에 문까지, 디테일 모두를 단방에 챙기는 건 델리안이라도 못 해.”


아니.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다. 거창할 만큼 너무 띄워준다. 그냥 집을 만들었을 뿐이 아닌가. 그런데 델리안이 언급되고 좀 호들갑이다.


‘델리안이 못할 리가 없는데 말이야. 응. 그러니까 그만 고개를 끄덕여 줄래? 폴스야? 그래도······ 로즈 씨가 놀라는 것만큼은 좀 기분 좋네.’


역시 어린아이의 순수한 웃음을 이길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자자. 어서 들어가죠. 바지탄스 씨들도······.”

“예.”


고개를 숙인 바지탄스는 조금 떨어져 있던 티라이드에게 V자를 그린 손가락으로 찌르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 제스처는 수신호의 일종이었는지 티라이드는 곧바로 2인 1조의 경계조 두 팀만을 남겨두고 모두를 불러 모았다.


리아는 앞장서서 대문을 향해 걸었다. 별로 나서고 싶진 않았지만 다들 본드라도 발린 듯 움직이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


끽.


짧게 경첩의 소리가 나고, 스르르 대문이 저항 없이 열렸다.


맨 처음 보이는 건 어두운―― 숲속보다도 더 어두운 실내였다. 왠지 으스스하다. 하지만 그것도 한 발짝 나아가는 것으로 끝났다.


반짝.


미리 설치해 둔 마법이 발동. 입구 천장에서 [광구]가 떠올라 반짝였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리아는 성큼성큼 안쪽으로 걸어 벽면에 있는 까끌까끌한 감촉의 금속판을 터치했다. 그러자 번쩍―― 정중앙의 천장에서 크기는 비슷하지만, 입구의 [광구]보다 훨씬 밝은 [광구] 떠올랐다.


실내 곳곳 비추는 빛에 의해 드러난 내부의 홀. 하얀 대리석의 바닥은 매끈하고, 천장도 높다. 3m인 사람도 거뜬히 수용할 수 있다. 중앙 벽면에는 위층까지 쭉 이어지는 굴뚝이 있고, 왼쪽 측면에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ㄷ자의 계단이 있다.



“아가씨. 저희는 꼭대기 층에 머물겠습니다.”

“어, 좀 불편하실 텐데 괜찮으세요?”


각 층마다 방은 왼쪽, 오른쪽 3개씩, 총 여섯 개다. 그리 넓진 않으니 3명이 한방을 써야 할 거다. 그러다 하더라도 18명. 27명인 바지탄스들의 인원을 모두 수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경계조 4명을 빼더라도 그렇다. 5명이 지낼 곳이 없다. 하물며 위층인지라 들락날락하기에 꽤 번거롭고 귀찮다.


이런 걱정을 읽었나, 바지탄스는 살짝 미소 짓고는 말했다.



“여차하면 홀에서 지내면 되니 문제없습니다. 거기다 위층인 만큼 시야가 넓지 않습니까? 경계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바지탄스는 물론이고 이야기를 듣던 마족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음. 알겠어요. 하지만 쉴 때는 제대로 쉬셔야 해요? 실내에서까지 무리하게 경계하진 말고요.”

“예. 명심하겠습니다.”

“······저기, 잠시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리아 님.”

“응? 뭐니?”


리아의 물음에 말을 건 폴스가 즉각 무릎을 꿇었다.


일일이 너무 과한 반응이다. 그것도 동년배로 보이는 소년이 이러는지라 괜히 더 편치 않다.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대화 중이었으니 참고 리아는 어서 대답해 보라 하였다.



“주제넘은 짓인 줄 알고 있으나, 혹시나 하여 침상과 기타 세간을 준비했습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각 방에 놓아도 되겠나이까?”

“어? 그런 걸 준비했다고?”

“옛!”


힘차게 대답한 폴스는 당연하다는 듯 [차원수납]을 열어, 견본으로 침상 하나를 꺼냈다.


침상은 싱글 침대 형식으로, 간소하게만 꾸민 소박한 디자인이었다. 다만, 흐르는 빛이 예사롭지 않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 흑단으로 불리는 나무일 것이다. 도장 처리라든가 뭔가 후가공이 엄청나 중후한 느낌이 장난 아니다.


‘하, 하루 만에 잘도. 아니, 그보다 저 흑단은 어디서 구한 거야?’


일단 저런 나무는 나트알에서 본 기억이 없다. 물론 이쪽이 모를 뿐일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고작 하루 만에 세간까지 준비했다는 게 살짝 놀랍고 경이롭다.


진짜 목수로 전직해도 괜찮을 듯싶다.


그만큼 품질은 훌륭하다. 황족이나 왕족이라도 딴지를 걸긴 힘들 것이다. 안 그래도 침상은 어쩌나 고민했는데 폴스의 제안은 때마침 적절했다.



“그럼 알아서 잘 배치해 주겠니? 맡길게.”

“존명!”


폴스는 얼굴 가득 환희를 내보이며 머리를 숙였다. 그렇게 좋나 싶지만 본인이 기뻐하니 다행이긴 하다.


이후 다른 사람들의 방도 신속히 정해졌다. 베르그들과 덤으로 부노가 3층. 세스와 프리에나, 리블리지가 2층을 사용하기로 했다. 도중 프리에나가 “언니와 함께 잘래요!”라며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세스가 간단히 뒷덜미를 끌고 가 단숨에 정리됐다.



“아! 불키는 방법은 아까 봤죠? 각 방마다 패널이 있는데, 그걸 건드리면 켜져요! 그리고 짐 정리가 끝나면 다들 1층 홀로 모이세요! 회의할 거예요!”


저마다 대답하고 사람들은 짐을 풀러 올라갔다.


짐이랄 게 없는 리아는 그대로 폴스가 홀에 차려준 원형 테이블 앞에 앉았다. 테이블도 그렇지만 의자도 흑단으로 엄청 고급지다. 이에 어울리게 방석 또한 아마 드에의 작품이라 예상되는 푹신한 것이었다.


느긋하게 앉아 있으니 잠시 후 하나둘 1층의 홀로 모여들었다. 마족은 모두 내려오면 바글바글하기에 바지탄스와 아시리트만이 대표로 왔다.



“시작하기에 앞서 묻고 싶네만, 이스피리아 공.”

“아, 네. 뭐죠?”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것 같다만 이리 일찍 쉬어도 되는 건가?”


현재 시각은 4시 30분쯤. 겨울이라 하더라도 아직 밝고 한창 활동하기에는 좋은 시간이다.


도시였다면······.


하지만 숲은 아니다.



“밖을 보세요.”


리아는 굴뚝 옆에 난 창문을 가리켰다.


밖은 아직 밝아 보인다. 그러나 아까보다 시간이 더 지난 숲은 생각 이상으로 어두컴컴해졌다.



“도시와 달리 숲은 활동 시간이 훨씬 짧아요. 지금은 괜찮아 보일지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어두워질 거예요. 그때 가서 부랴부랴 숙소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세요. 잘 보이지도 않아서 고생 꽤나 할 걸요? [광구]를 띄우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그건 대놓고 위치를 광고하는 꼴이라서요. 몬스터가 즐비한 숲속에서 그러고 싶진 않네요. 되도록이면 마력도 온존해야 하고요.”

“음. 그렇군······.”


기초적인 생존 수칙이건만 베르그에겐 꽤 생소한 것이었는지,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며 수긍했다.


그리고 왜인지 그의 뒤에 있던 유즈라가 화들짝 놀라더니 올리려던 손을 도로 내렸다.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그게······.”


설마 봤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유즈라가 몹시 허둥댔다.



“괜찮으니 말씀해 보세요. 궁금한 것은 말끔히 해소하는 편이 여행에 좋거든요.”


배려하는 게 아니다. 모두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느낌으로 부담감을 줄여주니 유즈라는 조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물론 베르그의 허락은 구했다.



“그······ [공간이동]이 있는데, 어째서 마을로 돌아가서 쉬지 않나 궁금해서······.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지만 마력의 온존을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근데 마력의 온존 때문만은 아니에요. 안전을 위해서기도 해요.”

“안전······ 말입니까?”

“네. 저희가 마을로 돌아가면 분명 편히 쉴 수 있겠죠. 하지만 다시 돌아올 때는 어떨까요? 만약 이곳에 몬스터가 있다면? 혹은 저흴 적대하는 누군가가 함정을 파두었다면요? 이동 전까지는 안전했을지라도 이후는 아니잖아요?”


무얼 말하고 싶은지 안 유즈라의 눈이 커졌다.



“그래요. 저희가 돌아올 이곳에 어떤 위험이 도사렸는지 몰라요. 그런 상태로 [공간이동]을 했다간 자칫 적진 한복판에 뛰어든 것처럼 될 수도 있을 거예요. 물론 그럴 상황은 무척 낮아요. 어지간히도 운이 없는 한, 평생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목숨은 하나에요. 조심해서 손해 볼 건 없다고 생각해요. ······답변이 되셨나요?”

“예. 말씀 감사했습니다.”


유즈라는 정중히 기사답게 가슴에 손을 올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태도에서도 감사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그녀에게 말해준 건 그저 표면적인 이야기에 불과했다.


위험을 피할 방법 따윈 넘쳐흘렀다. 이동할 자리가 어떤지 정도는 [천리안]을 써서 주변을 탐색하기만 하면 됐다. 나트알과 이곳과의 거리라면 그냥 마력을 탐지하기만 해도 충분했다.


마력도 크게 문제 될 게 아니었다. 폴스의 마력은 방대하다. 6급 수준의 [그림자 이동]은 수백 발을 남발해도 마력이 고갈되지 않는다. 만약 고갈되더라도 이쪽이 보급해 주면 그만이다. 거기다 여차하면 에르가 있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마력량의 에르라면 평생을 쓰더라도 마력이 소모되는 기별조차 없을 거다. 아니, 오히려 자연 회복하는 양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이쪽의 전력을 감추기 위해······.


딱히 베르그들을 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조금 호감을 품고 있다. 여태 마을에서 본 그들의 모습 덕에 꽤 좋은 시선으로 보게 됐다.


그러나 그게 전력을 보여줄 이유는 또 아니었다.


그들은 제국의 중추 귀족이다. 오늘은 동료일지라도 상황에 따라 언제라도 적이 될 수 있는 게 그들이다. 그리고 이건 비단 베르그들뿐만이 아니다. 라프리트와 리블리지도 그러했다. 상황에 따라 언제 지금의 관계가 깨지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그리되는 걸 바라진 않는다. 하지만 앞날이란 아무도 모른다.


더군다나 이들은 나트알에 왔다. 대륙의 북서 끝에 위치한 ‘마국’과 ‘대해’, 그리고 오늘 이동한 방향을 계산하면······ ‘나트알’이 어디에 있는지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다.


본인들은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왔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로즈는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행동이 이들과의 관계에 선을 긋게 되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얌전히 마을에만 있었더라면 괜찮았다. 그러나 구태여 따라온 이들에겐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친밀감을 줄 수 없게 됐다.


그 시작으로 리아는 라프리트를 제외한 외지인 모두에게 조용히 한 가지 마법을 걸었다. 그리고 손가락조차 튕기지 않고 무영창으로 발동된 마법은 아무 저항 없이 혼에 새겨졌다.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그 사람······ 가베인이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조용히 계셔주셨으면 하네요. 그저 딱 한 가지만 관여할 수 없게 제약을 걸었을 뿐이니까. 해는 없어요. 뭐, 느끼신 걸 보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정 불안하시다면 구태여 보장해 드릴게요. 정말 해가 없는 마법이에요.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하죠.』


일방적으로 알린 리아는 바로 [염화]를 끊었다.


마법을 걸었다는 것을 알리더라도 그리 상관없었다. 그래봐야 해제는커녕 어떤 마법을 걸었는지도 가르쳐주지 않을 것이니까.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 따윈 개의치 않았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런 건 정말 아무래도 좋았다.



“자. 그러면 이제 내일 일정에 관해 대화를 좀 나눠볼까요? 좋은 생각이 있으신 분은 부담 없이 손을 들어주세요!”


작가의말

그렇게나 싫어했던 [맹약]을 고민도 없이 단숨에 걸어버리는 리아 선수!

아아. 생각이상으로 냉정하고 단호합니다! 사설입니다만 조금 무섭습니다!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큿소! 좀 더 일찍 돌아오려했건만!

뭐,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 또다시 인사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곧 설날도 머지 않았는데 감기 들리지 않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참고로 저는 감기 2연벙 걸려서 몹시 고생했다는...

여하튼 건강하게 보내시고 다음 화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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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5 200 +2 23.08.22 86 0 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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