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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님의 서재입니다.

만렙 히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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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ia
작품등록일 :
2022.05.11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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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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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2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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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쪽

200

DUMMY

상당히 서두르는 기색의 인디아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주변을 탐색했다. 그 끝이 향하는 곳은 먼저 와 있던 루비아들과 따라 들어온 베르그들이었다.


뭐, 그로서는 외부인들이니 경계하는 것이 당연했다. 따로 설명도 안 했고.


더군다나 베르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곁에는 제국의 3대 가문이라 일컬어지는 공작 가의 자제, 레스와 헤라드가 함께였다. 그 뒤에는 어린 로즈까지도 있었다. 호위인 유즈라와 가베인까지도 있어 그야말로 총출동이다. 아마 혼자 판단하기에는 우려되는 점이 많아 모두 데리고 온 듯했다.


나라의 중요 요직이 한가득이다. 루비아가 걱정했듯, 괜한 방해가 들어오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인디아도 베르그들에게 절찬리 경계를 받는 중이었다. 그 또한 케트로와 운, 최근 심판관에서 해임된 리블리지까지 전원 왔기 때문이다. 낌새로 보면 리블리지는 본인이 우겨 억지로 따라온 듯하지만······.


서로를 쳐다보는 두 그룹에게선 놀라울 정도로 상대에 대한 신뢰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 꼴을 보노라면 중재가 없는 한 꽤 오랫동안 대치 상태가 이어질 거 같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지긋이 쳐다보는 이들 사이에서 기묘한 기류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걸 수습할 사람은 달리 없다.


그게 자신이라는 걸 안 리아는 이 자리의 주최자로서 예의상 책임을 다하기로 했다. 정말 무지하게 귀찮기는 해도······.



“자자. 다들 제가 부른 거예요. 쓸데없는 견제 하지 않아도 돼요.”


제국 쪽은 이것만으로 해결됐다. 단방에 날카로운 분위기를 정리한 레스를 필두로 전원 경계를 거뒀다.


하지만 인디아는 그러지 못했다.



“보증은 있나? 확실하게 말해, 우리의 처지로는 타국의 인간을 믿기 힘들어. 순전히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안전장치 같은 게 필요하다는 말인가요?”

“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우린 이스피리아, 너를 제법 신뢰해. 그러나 저들은 아니야. 확실하게 방해받지 않는다는 확답이 있어야만 해.”

“사안의 중대함을 아는데도 그럴까요?”

“그렇기 때문이야. 우리도 그렇지만 이건 저들도 그래.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야. 생각해봐, 너라면 언제 뒤를 칠지 모를 자와 터놓고 말하는 데에 거부감이 없어?”


확실히 납득이 가는 소리였긴 했다. 아군이라고 여겼던 이가 뒤통수를 치는 건 아무도 반기지 않을 테니.


제국 쪽도 말하지는 않았지만 인디아와 같은 생각이었다. 어찌할 건지 시선으로 묻는다.


‘어쩔 수 없지만 이것도 내가 해결해야 하나 보네.’


주최자의 역할은 참으로 고되다고 생각하며 리아는 머리를 쥐어짰다.



“어쩌지······?”

“잠시 괜찮나?”


베르그였다. 그가 고민하는 리아를 보다가 슬쩍 손을 들었다.


어차피 좋은 안이 떠오르지 않았던 리아에겐 잘된 일. 냉큼 편승하기로 했다.



“편한 대로 말씀하세요.”

“고맙네.”


살짝 머리를 숙인 베르그는 곧장 인디아에게로 눈을 돌렸다.



“주교님, 재차 확인합니다만, 저희는 당신께 그리 미덥지 않은 존재들인지요?”


관계를 확실히 하려는 듯 베르그는 전에 없이 진지하였다.


그의 각오를 엿본 인디아도 어투를 바꾸고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대들 인격 하나하나에 문제가 없다는 건 보면 안다. 모두 나름대로 신뢰를 보낼 만한 인물들이지. 그러나 이 건에 대해서는 별개다. 그대들은 각 나라의 중책이다. 만약 자신이 속한 나라에 피해나 이득이 생긴다면 그걸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건 황족으로서, 귀족으로서 당연한 의무이니. 구두뿐인 신뢰 관계를 믿기 힘든 건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로군요.”

“엄한 말이지만, 언제 깨질지 모를 공동 전선에 몸을 실을 마음 따위는 없다. 나라 간의 거래나 마찬가지다. 확실한 구속력이 있었으면 한다.”

“혹여 거부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억울할 테지만 그대들을 배제할 생각이다.”

“즉, 얌전히 돌아가서 다시는 이 일에 관심을 두지 말아라······. 그런 말씀이시군요.”


긍정의 의미로 인디아는 살며시 눈꺼풀을 깜빡였다. 여차하면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의지마저도 내비쳤다.


그 뜻을 담아 인디아들은 베르그의 일행 중에서 가장 강한 가베인을 쳐다봤다.


농담이나, 위협하려는 식의 협박 같은 게 아니었다. 인디아들은 진심이다. 방해될 거라 판단되는 즉시 힘으로라도 베르그들을 배제할 속셈이었다.


가베인도 이러한 이들의 진심을 느끼고는 조용히 검 자루에 손을 올렸다.


전력상으로 보면 4:1. 압도적으로 불리한 형국이다. 미안하지만 다른 이들은 전원―― 로즈의 호위인 유즈라마저도 전력이 되질 못 한다. 그만큼 인디아들은 한명 한명이 강했다. 전력은커녕 방해만 될 것이다.


하지만 혼자라도 가베인이 밀릴 거란 생각은 안 든다. 440의 마력레벨도 그렇지만, 그 마력의 질이 2단계로 압축된 수준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제국에 갔을 때보다도 더욱 성장하여, 거의 태반의 마력이 전부 2단계로 압축된 상태다. 여태 일부러 압축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의 성장인데, 거기에 더해 순순히 질 마음 따윈 없어 마력이 꿈틀거리며 의욕이 넘쳤다.


마력의 질도 좋은데 본인마저 의욕적이다. 제대로 싸운다면 인질이라도 잡지 않는 한······ 인디아들 전원을 길동무로 데려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막강함을 알기에 인디아들은 경계했고, 대치하듯 선 그들에게 전에 없는 긴장감이 흘렀다.


물론 리아는 별로 달갑지 않은 상황이었다.


‘뭣들 하는 짓인지······.’


마음 같아서는 주최자이건 뭐건 당장 소리를 질러 그만두게 하고 싶었다. 그나마 아이리스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이 자리에 있었다면 조금 화가 났을 것 같다.


영 탐탁지 않았던 리아는 작게 콧방귀를 뀌었는데, 이 급박한 상황 속에서 베르그가 여유롭게 다가와 공손히 예를 취했다.



“이스피리아 공. 번거롭게 하여 미안하네만, 황제께 받은 물건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징그러울 정도로 호의를 내비친 황제에게 받은 거라고는 검은빛이 도는 금속뿐. 한낱 신분증일 그것을 그가 왜 언급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리둥절하면서도 리아는 일단 귀걸이에 보관하고 있던 그것을 꺼냈다.



“이거 맞죠?”

“내용물도 보여주게나. 그리하면 주교님께서도 납득하시겠지.”


겨우 신분증에게 그러한 힘이 있나 싶어 물음표가 가득 머리를 메운다. 그렇지만 달갑지 않은 현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리아는 시키는 대로 제국의 문장이 금실로 수놓아진 검은 자루를 열었다.


안에 든 물건은 검은빛이 도는 둥그런 금속 패.


리아는 이것을 모두가 잘 볼 수 있게 내밀었다. 그러자 인디아는 물론이고, 다른 셋의 눈이 커졌다.



“제국을 상징하는 흑철강에 황제의 문장이라······. 그야말로 제국의 황제를 가리키는 것이나 다름없군.”

“훌륭한 안목이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 명패는 황제 폐하의 권위 그 자체. 즉, 전권대리인을 칭하는 것으로, 명패의 주인인 이스피리아 공의 말은 황제 폐하의 명이지요. 구속력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합니다.”


자신만만한 베르그의 말에 인디아는 신음을 흘리며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함께 들은 리아는······



“아······?”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가 나왔다.


‘내, 내가 뭘 들은 거지?’


기억을 되돌려봤으나 잘못 듣지 않았다.


기어코 확인까지 한 리아는 넋이 나가 금속패를 멍청하니 내려다봤다.


확실히 칼윈이 건네줄 때도 명패가 있으면 어디든, 심지어 군사기밀 지역에도 들락거릴 수 있다고 하긴 했다. 상당히 높은 신분임을 증명한다는 건 분명했고, 당시에도 그저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뭐? 전권대리인?


착각이나 오해하는 게 아니라면 전권대리인이란 말 그대로 황제의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뜻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받을 때까지도 아무 설명이 없었다. 보통 그런 중요한 것이라면 귀띔이라도 해주기 마련이건만 그러지도 않았다.


만약 전권대리인 같은 받기 무서운 것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한사코 사양했을 텐데······.


‘아니! 애초에 황제 씨는 왜 이런 걸 나한테?! 고령이라더니 노망난 거 아냐?!’


상식적으로 자국민도 아닌, 어느 나라에도 소속되지 않은 시골 처자에게 이런 걸 준다는 게 가당찮기나 한가.


진심으로 머리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싶기만 하다.


그런 리아의 황당함과는 별개로 이야기 자체는 순탄하게 정리됐고, 인디아들은 훨씬 경계심을 누그러뜨렸다.



“이스피리아, 맡겨도 되겠지?”


제국 쪽의 스텐스가 바뀌지 않게 감독해달라는 것이겠지.


리아는 황망하게 명패를 뒤집어봤다. 혹시 만약에 누군가에게 양도할 수 있으면 냉큼 넘겨버릴 속셈이었다. 누가 됐든 관리 감독만 할 수 있다면 그만일 테니. 제 발로 이딴 무거운 짐을 떠안고 싶은 마음 따윈 전무했던 터라 망설임조차 들지 않았다.


하지만 칼윈은 이것을 예상했나 보다. 뒷면에는 공용문자로 소유주가 누구인지 떡하니 적혀있었다.


――나트알의 이스피리아라고.


과연 다른 미래를 떠올린 자답달까, 용케도 나트알이란 지명을 알고 있다. 더불어 나트알이 알려지게 된 다른 미래에 대해서도 살짝 놀랍다. 여간해서는 알려질 일이 없을 거라고 단정마저 했기에······.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조금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잠시 추측해보았으나······, 현실도피는 여기까지다.


이미 손에 있는 이 명패가 갑자기 사라질 일은 없을뿐더러, 다른 누군가에게 줄 수도 없다. 이름까지 새겨진 마당에 양도했다가는 멋대로 위력을 행사했단 명목으로 받은 사람의 목이 떨어지고 말 것이다. 이딴 시한폭탄 같은 물건을 누구에게 준단 말인가.


아무리 따져봐도 당시 미처 확인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이 크다.


지난날의 실책을 순순히 인정하기로 한 리아는 떨리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전권대리인의 권한을 행사하려는 마음은 없다. 어쩔 수 없어서다. 서로 으르렁거리는 꼴을 그만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리아는 바랐다. 자발적으로 알아서들 통수치지 말기를······.



“하나만 확실히 할게요. 저는 전부 책임질 마음이 전혀 없어요. 그렇잖아요? 전 그저 아들과 함께 선진교육을 받으러 왔을 뿐인 시골 처자니까요. 여러분들처럼 무언가 짊어질 의무는 전혀 없어요. 이번 일만큼은 저도 발을 디뎠으니 아예 모르쇠 굴진 않을 거지만, 그렇다고 필요 이상으로 나서진 않을 거예요. 이곳의 일은 이곳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잖아요?”


딱 잘라 선을 긋는 말에 숨을 삼키는 기척이 여기저기서 났다. 그러나 양보는 못 한다. 이 이상 끼어드는 건 오지랖을 넘어서는 일로, 주제를 넘은 짓이기 때문이다.


함께 사정을 들은 루비아와 라프리트만은 고뇌가 깊어진 얼굴이었지만 이해하고는 말을 아꼈다.



“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서지 않겠다는 거야?”


이곳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랬지만 가벼운 어투로 묻는 인디아. 하지만 그 속에는 무척이나 깊은 고심이 깃들어있었다.



“그럴 생각이에요. 저희를 건드리지 않는 한은.”

“너희라는 건 누구까지 포함되는 건데?”

“제 가족들과 친구, 그리고 몇몇 안면을 튼 사람과 아이리스의 친구들까지도요. 그 외에는 솔직히 어찌 돼도 관심 없네요.”

“단호한 것치고는 꽤 범위가 넓네······.”

“그래봐야 인간 전체로 치면 1%로도 안 돼요.”

“그건 그렇군. ······근데 만약 건드린다면 어쩔 거야?”

“어쩌긴요. 당연히 맞받아쳐야죠. 의도했건 아니건 이미 한 번 찔러봤으니 봐주진 않을 거예요.”


대답을 들은 인디아는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다.


과연. 보기보다 나이가 많다더니 단방에 속에 담긴 뜻을 알아들었다.


더 이상의 질문도 없이 인디아는 눈길을 베르그에게 돌렸다.



“자네들이 믿을만하다는 걸 알겠네. 그래서 묻네만, 우리도 신뢰할 무언가를 제시하길 바라나?”


명백히 서두르는 기색의 말에 베르그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굳이 이스피리아 공이 함께 부른 것이니. 그것만으로 신뢰하기엔 충분합니다.”

“고맙군. 더불어 사과하겠네.”


베르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례에 대한 사과가 아니군요.”

“자네들은 전권대리인인 이스피리아가 있는 한 제국 전체가 배신할 일이 없지. 그러나 성국은 달라. 이번 일은 우리의 독단. 예하와 다른 주교들이 어찌 행동할지 자네들에게 확답해주지 못한다네.”

“그렇군요······.”


고민스러운 듯 베르그는 길게 신음을 흘렸다. 그러다 곧 고개를 주억거렸다.



“알겠습니다.”

“괜찮겠나?”

“주교님이라도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말이죠.”

“고맙네. 대신이라 하기엔 뭐하지만, 우리만큼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 것과 더불어, 최대한 다른 이들도 협조하게끔 애쓰겠노라 약속하겠네.”


일방적이기까지 한 거래 내역이다. 불공정 약정과 다를 바 없다.


인디아도 이것을 알기에, 정중히 가슴에 정십자를 그려 예를 표하는 것과 동시에 신의 앞으로 맹세해 보였다. 신뢰를 보일 셈이었겠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태도에서부터 진심으로 고마워한다는 것이 엿보인다.


베르그들도 이를 느끼고는 완전히 경계심을 풀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이것으로 대충 정리됐다.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위해 리아는 에르에게 신호를 보냈고, 그는 즉시 그들이 앉을 자리를 만들어줬다.


조금은 신뢰를 품은 두 그룹이 마주 보며 앉았는데――


――반짝반짝.


여태까지 조용히 있던 로즈가 종종걸음으로 저 홀로 떨어져나와 리아의 앞에 서서 눈을 빛냈다. 이따금 옆의 폴스를 쳐다보며······.


뒤따라온 유즈라가 난처해하는 건 안중에도 없는 이 모습을 보면 무얼 바라는지는 명확했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건가······? 진짜 새삼스럽지만 막 나가는 게 황제 씨랑 닮긴 했네. 뭐, 황제 씨와는 달리 마냥 귀여울 따름이지만.’


뭐라 할 낌새였던 베르그에게 슬쩍 손을 들어 말린 리아는 피식 웃었다.



“같이 앉을까요?”

“네!”


안 그래도 큰 눈망울이 커진 로즈는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도 마주 웃으며 로즈의 허리를 잡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무릎 위에 앉혀놨다.


설마 무릎 위에 앉힐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뒤에 대기한 유즈라가 안절부절못했다. 베르그 또한 곤혹스러워하며 미안하다는 뜻을 담아 눈짓했다. 물론 싱글벙글 기분 좋은 로즈가 눈치채는 일은 없었다.


귀엽기만 했던 리아는 떨어지지 않게 로즈를 잘 잡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관리된 로즈의 머리결은 부드러워 감촉이 좋았다. 몸도 아이답게 따끈따끈하고.


칙칙해서 힘들었는데 치유되는 기분이다······.


힐링의 시간을 맘껏 만끽하다가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폴스와 피프스였다. 그 둘이 빤히―― 선망의 시선으로 부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방긋방긋 웃는 로즈를······.


창조주에게 이쁨받고 싶은 건가······.


얼추 그런 바람 같다만, 절대 해주지 않을 것이다. 생리적으로 무리였기 때문이다. 실제 연령은 제쳐두고, 다 큰 성인을 무릎 위에 앉히는 걸 상상만 해봤을 뿐인데 진절머리가 쳐진다.


그나마 폴스는 괜찮았다. 성격도 그렇고, 모습 자체가 어린애다 보니 아무런 저항도 없다.


세컨드까지도 아슬아슬하게 괜찮긴 했다. 그러나 한 번 해주면 다른 넘버즈도 바랄 터. 차별하지 않기 위해 모두 다 해줘야만 할 것이다.


넘버즈 모두를 아낀다지만 차마 하기 힘들다. 눈물을 머금고 모른 척하기로 했다.


리아는 조금 어색해진 기분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설명하기에 앞서 하나만 말씀드릴게요. 통수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다들 지키도록 하세요. 설마 사안을 듣고도 그럴까 싶지만, 혹시 모르니 말씀드리는 거예요.”

“어긴다면 어떻게 할 거냐?”


묻는 인디아에게 리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어쩌긴요. 잘 아시면서.”

“아······.”


의미심장한 말에 인디아가 곧장 탄식을 흘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굳이 떠보는 사람은 없었지만, 세인트리안의 성전 사태를 누가 벌였는지 짐작하고는 있었던 터라 묵직한 침음을 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아예 관여하고 싶지 않지만 맡기로 한 이상 확실하게 할 거예요. [맹약]을 걸면 행동을 완전히 제어할 순 있지만 그건 제가 싫거든요? 알아서들 자주적으로 지켜주셨으면 해요.”


한명 한명과―― 품에 안은 로즈까지도 예외 없이 다짐받듯이 리아는 시선을 주고받았다.



“모두 알아들으신 듯하니 시작하도록 하죠.”


이의는 없었고, 작게 헛기침을 한 리아는 맞은편에 홀로 앉아 병풍처럼 숨죽이고 있었던 무무카케를 가리켰다.


지목되자 무무카케는 긴장한 듯 허리를 곧추세웠는데, 왔을 때부터 관심을 보였었던 모두는 그를 빤히 관찰하듯이 보았다.



“이분은 무무카케 씨예요.”


짤막하게 서두를 땐 리아는 도플갱어, 무무카케를 만나기까지의 과정과 그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줄이고 줄였음에도 제법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야 했기에 꽤 시간이 걸렸다.



“좀 믿기 힘든 이야기로군. 하지만······ 사실이겠지.”


미간을 찌푸린 베르그에게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심판관―― 제1 위상, 가이란 씨를 죽였어요. 그는 ‘마법사 죽이기’라는 술수로 온갖 일을 초래하고 있었기에 좌시할 수 없었거든요. 벨루디스 이외에도 여러 나라에 그 마수가 뻗쳤을 거라고 예상돼요. 추측하기로는 현 벨루디스의 정황도 그렇지만, 삼국과의 관계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 게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이제는 확인하긴 어렵지만.”

“그랬는데 흑막 뒤에 다른 흑막이 있다······.”

“네. 시작은 인디아 주교 씨의 의혹이었어요. 흑막인 줄 알았던 가이란 씨가 사실 모종의 세력 내지는, 어떤 개인에게 조종당한 게 아니었냐는 물음이었죠. 그래서 조사해보기로 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때마침 그럴싸한 정보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현장에 직접 가봤더니 저자가―― 도플갱어가 있었다. 그것도 인류 최강이었다는 벨루디스의 건국왕으로 의태 해서······.”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죠. 솔직히 말해, 다른 분들이 갔으면 위험했을 수도 있었고.”


재차 듣게 된 루비아와 라프리트를 빼고 전원 무거운 분위기로 침묵했다. 새삼 건국왕이란 존재에 대한 무게감이 어느 정도인지 실감 나는 모습이다.


다만, 비밀에 부쳐진 심판관의 존재에 대해서는 신분이 높기에 다들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는지 별다른 말은 없었다. 인디아 또한 한배를 타게 된 이들에게 그 존재를 밝히는 것에 아무런 반론도 하지 않고 조용히 경청하기만 했다.



“근데 도플갱어가 뭐예요?”


어린 로즈만큼은 따라오기 힘들었나 보다. 심각한 모두에게 고개를 갸웃하며 도플갱어가 뭔지 묻는다.


마음 같아서는 알려주고 싶으나 할 이야기는 아직 많다. 하지만 황손이기도 한데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질문이기도 해 무시하기도 그렇다.


이래저래 리아는 난처했는데, 의외의 곳에서 조력이 들어왔다.



“타인으로 둔갑하는 특기를 가진 종족이야.”


조력자는 바로 로즈와 마찬가지로 피프스의 무릎 위에 앉아있던 폴스였다.


로즈는 반말이나 복장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그런 종족이 있냐며 놀랬는데, 폴스는 그렇다며 맞장구치면서 슬쩍 맡기라는 듯 눈짓을 보내줬다. 로즈는 이를 당연히 몰랐고, 둘은 짤막하게 자기소개도 하는 등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조금 어수선한 건 있지만, 바로 옆에 앉은 터라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아 방해될 정도는 아니다.


‘이대로 폴스에게 맡기면 되겠네.’


리아는 고맙다고 재빨리 [염화]를 보내고는 말을 이어 나가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의는 없는지 둘을 내버려 두고 진지하게 눈을 빛냈다.



“우선 나부터 하나 물어볼게, 이스피리아. ‘암시’라는 건 확실해? 마법도 아닌데 가이란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고?”

“주교님이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사실이에요. 아니면 납득하실 수 있게 직접 확인해 보실래요?”

“어. 기왕이면 명확하게 해 두고 싶어.”

“상관없어요. 말은 그랬지만 저도 실제로 확인해 본 건 아니니.”


리아는 뻣뻣하게 굳어 정자세로 있는 무무카케에게 시선을 옮겼다.



“부탁해도 될까요?”

“예. 그, 근데 어, 어떤 암시를 심으면 되겠습니까?”

“음. 그냥 내 말이 진실이다, 란 암시는 어때요? 그거라면 간단하고 익숙할 테니 편할 거 같은데.”

“알겠습니다.”


숨을 들이켠 무무카케가 팔짱을 낀 인디아를 똑바로 쳐다봤다.



“방금 이스피리아 님께서 하신 말씀은 진짜입니다. 일부 자아가 확고한 이들에겐 그리 효과가 없지만, 저희 도플갱어에겐 대상에게 사고를 유도하게끔 암시를 심어두는 능력이 있습니다.”


평범한 말이다. 달리 무어라 설명할 것도 없다. 여느 사람이 설득하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어딜 어떻게 보더라도 그 이상의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도리어 말빨이 좋은 평범한 사람보다도 성의가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인디아도 어리둥절하며 몸 상태를 체크했다. 두 심판관과 리블리지도 뭔 일이 벌어졌나 싶은 낌새로 함께 확인하였다.



“이봐, 지금 암시를 건 거야?”


무무카케가 힐끔 쳐다보며 리아의 눈치를 봤다.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혹시나 하였는데 역시 허가를 구하는 것이었는지, 앉은 채였기는 하나 무무카케는 깊이 묵례하여 예를 차리고는 대답했다.



“암시는 확실하게 걸었습니다. 다만 말씀드린 대로, 여기 계신 분들은 전원 자아가 확고하시기에 그리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무 효과도 없단 거잖아! 겨우 이딴 술수에 그 신실했던 가이란이 휘둘렸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용납되지 않는지 인디아는 맹렬히 분노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몸에서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1단계 마력이라도 단순히 내뿜기만 한 거라 아무렇지 않을 테지만, 이 자리에는 로즈도 있다.


손을 든 리아는 가볍게 손뼉을 쳤다.



“자자. 진정하세요. 여기엔 아이도 있다고요?”


리아는 눈망울이 동그래진 로즈의 등을 토닥이면서 말했다.



“이야기는 끝까지 들으셔야죠. 어른으로서 성급하게 굴면 되겠어요?”


인디아는 쉽게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였다. 어지간히도 납득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재차 진정하라고 하니 눈시울이 붉어진 로즈에게 시선이 갔고, 그는 곧 심호흡하며 분노를 가라앉혔다. 이에 따라 대기에 퍼진 마력 또한 찌를 듯했던 날카로움을 잃고 흩어졌다.



“미안하구나······.”

“응. 별일 아니었으니까 이거 받고 진정해.”


사과하는 인디아에 이어 무심하게 말한 폴스가 손을 내밀었다. 아담한 그 손바닥 위엔 당최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불투명한 포장지에 쌓인 막대사탕이 있었다.


아마 무무카케를 미행하는 동안 거리에서 구한 듯한데, 로즈는 무서워하던 것도 잊고 관심을 보였다.



“이게 뭐예요, 폴스?”

“사탕이잖아. 보고도 몰라?”

“사탕은 알지만 이런 건 처음 봐서······. 혹시 주는 건가요?”

“어.”

“고, 고마워요.”


볼이 살짝 불그스름해진 로즈는 막대사탕을 짚었다. 그런데 막상 받아 가고는 멀뚱멀뚱 이리저리 둘러보기만 했다.



“에휴. 어떻게 먹는지도 모르는 거야? 잠깐 줘봐.”


폴스는 로즈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막대사탕을 가져가더니 포장지의 위를 잡아 터프하게 뜯어냈다. 그리고 막대에 남은 쪼가리도 싹 내려 빼고는 순식간에 로즈의 입에 넣어버렸다.


이 일련의 과정은 1초도 걸리지 않은 찰나였는데,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유즈라는 화들짝 놀라고는 로즈의 안색을 살폈다.



“로즈린느 님, 괜찮으십니까?!”

“으응. 달고 맛있어.”


분명 독이 들진 않았나 염려하는 것이었지만, 안중에도 없는 로즈는 표정이 녹아내리듯 느슨하게 풀렸다.


하지만 이 태도야말로 독이 들어있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한숨을 토해내며 안심한 유즈라는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다만 무례도 그렇지만, 뛰어난 신체 능력에 경계심이 들었는지 폴스를 곁눈질로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폴스는 신경도 안 썼지만······.



“뭐, 진정된 듯하니 다시 이어 가도록 하죠.”


로즈가 우물대는 소리만이 흐르는 가운데, 리아는 검지를 펼쳐 보였다.



“직접 암시를 보고 나서 알아낸 사실이 있어요.”

“쩝. 우움움······.”


솔직히 무게를 잡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재차 진지한 이야기를 해야 하기에 리아는 자신을 다독이면서 억지로 얼굴 근육을 딱딱하게 굳혔다.



“사실 [암시]는 투기술이에요. 말은 그저 효과를 높이기 위한 부차적인 행동일 뿐, 실체는 눈을 통해 행해지는 동술이죠. 인디아 씨나 다른 이들에게 통하지 않은 건 강도를 조절한 거였어요. 아마 하려고만 했으면 더욱 강한 [암시]를 심을 수도 있었을걸요?”

“그렇다는 건, 저 녀석이 거짓말을 했다?”

“아, 아닙니다! 정말 마법의 힘과는 무관합니다! 저는 거짓말하지 않았습니다!”


화들짝 놀란 무무카케는 벌떡 일어나 리아를 향해 필사적으로 외쳤다.



“투기술이라는데 뻔뻔하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아뇨. 무무카케 씨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요. 서로 관점이 달랐을 뿐이죠. 이른바 종족 차랄까······.”

“종족 차?”

“네. 쉽게 말해, 인디아 씨는 달릴 때 마법을―― 투기술을 쓴다고 생각하나요?”

“그냥 뛸 뿐인데 그럴 리가 없잖아.”

“무무카케 씨도 그래요. 도플갱어에겐 [암시]는 우리가 달릴 뿐인, 숨 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인 거죠.”

“예시가 이상하잖아. 투기술이라며? 우리가 뛰는 건 투기술이 아니라고.”

“아뇨. 투기술이에요. 분명하게 마력이 소비되거든요. 인디아 씨도 느껴본 적이 있을 텐데요?”

“빨리 뛴다면 일정 부분 소모된다는 건 당연히 알아. 하지만 결국에는 뛰는 거야. 그걸 투기술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멈칫한 인디아가 조금 크게 떠진 눈으로 쳐다본다.



“설마 투기술이란 마력이 소모되는 모든 일의 지칭이라 하고 싶은 거냐?”

“마력은 자신의 일부에요.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자신의 일부인 마력에는 의지가 깃들죠.”

“자신의 일부······ 그렇기에 투기술이라고······?”

“본인의 의지가 깃들어 행해진 일이니까요. 그런데 저희는 투기술이라 여기지 않죠. 당연해요. 왜냐하면 모든 존재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마력을 소모하니까요. 숨을 쉬거나 음식을 먹는데도 마력이 소모되는데, 그런 걸 투기술이라 부르기엔 뭣하잖아요? 애당초 워낙에 마력 소모가 적은 탓에 느끼기도 힘들고요.”

“즉, 우리가 말하는 투기술은 좀 더 강한 의지가 담기고, 더 많은 마력이 담긴―― 평범한 일상생활에선 볼 수 없는 것들을 따로 분류했다는 소리로군. 사실은 멀리서도 알아차리기 쉬울 뿐인, 격한 숨쉬기와 다를 게 없는데.”

“비유가 이상하지만 대충 비슷해요. 느끼기 어려워 모른 거지 본질은 같은 거죠. 격하게 숨을 쉬나 약하게 숨을 쉬나, 숨을 쉰다는 행위 자체가 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군. 대충은 알겠어······.”


턱에 손을 올리고는 고개를 주억거리는 인디아. 껄렁대는 꼬락서니와는 달리 제법 똑똑하다. 거저로 주교 자리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모양이다.


그 외에 이해한 사람은 라프리트와 루비아, 그리고 헤라드가 끝인 듯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심각한 얼굴로 골똘히 생각에 잠겼지만, 내심 모르겠다는 심정이 마력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특히 다 이해했다는 양 당당히 가슴을 편 카를로 운이······. 로즈는 태평하게 사탕을 탐했고.



“인간에겐 당연한 달리기가 두 발이 없는 존재에겐 평범하지 않은 행위―― 투기술로 비칠 수도 있다라. 저 녀석의 [암시]도 마찬가지로 없는 우리에겐 투기술처럼 보이고. 과연. 그야말로 종족 차로 인한 견해의 차이로군.”

“정확해요. 그러니까 무무카케 씨는 투기술이란 생각조차 안 했고, 말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 거죠.”

“달리기는 달리기일 뿐이니 말이지. 애당초 종족마다 어디까지 투기술로 칠 것인지 범위가 다를 수 있고.”

“그런 거죠. 저희 마을만 하더라도 투기술이란 말조차 없었고요. 하지만······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능력의 한계를 숨겼겠죠.”

“과연. 투기술이라면 강도의 변경은 당연하지. 기술이란 본디 그런 것이니. 뭉뚱그려 조절한다는 식은 절대 아니지. 물론 능력이 부족하다면야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최전방에서, 그것도 벨루디스의 건국왕으로 의태 한 공작원이야. 고작 의사가 확고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영향도 끼칠 수 없다는 건······ 앞뒤가 안 맞아.”


인디아는 안광을 번뜩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리아도 그냥 넘길 수는 없었다. 확실하게 해두어야만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인간과 도플갱어, 두 종족을 위해······.



“무무카케 씨가 말해준 대로 [암시]는 자아가 확고한 이들에겐 큰 효과가 없겠죠. 하지만 그건 무리하지 않는다는 선, 혹은 상대가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조절했을 때예요. 더욱 많은 마력과 강한 암시를 걸겠다는 의지가 추가되면 확실하게 통용도 되겠죠. 하지만 쉽게 쓰려 들진 않겠죠.”

“왜?”

“바로 들키기 때문이에요. 아까 마력에는 의지가 깃든다고 했잖아요? 아마 모르실 거 같은데, 그거처럼 마력은 개개인마다 고유의 특성이 담긴 색을 띠게 돼요. 저 같은 경우엔 은색이죠.”


인디아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고 찰랑거리는 리아의 은발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자신의 백금발을 만지작거렸다. 물론 그의 마력색은 노랑에 가까운 옅은 금색이기에 머리카락 색과 조금 달랐지만.



“정신 조작 수준의 [암시]면 필시 많은 마력이 들어갈 터라, 반드시 그 눈을 통해 징조가 드러날 거예요. 눈동자의 색이 변하는 등의 징조가.”

“그렇군. 그러한 변화라면 어지간히도 멍청한 놈이 아니라면 눈을 마주한 상태에서 모를 순 없겠지.”

“많은 마력이 사용되는 만큼 느끼기도 쉽겠죠. 그래서 되도록 쓰지 않으려 했을 거예요.”

“하지만 막강하다는 것엔 변함없어. 그걸 고의로 숨긴 거야······.”

“그렇긴 하죠.”


평온한 리아의 맞장구에 전부터 잔뜩 경직됐었던 무무카케는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렇게 떨지 않아도 됐다.


――애초에 이 사달이 난 것도, 그가 숨기려던 것도 모두 다 인간이 자초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리아는 그를 탓하거나 추궁할 생각이 없었다. 피해자의 복수를 같은 인간인 자신이 왈가왈부할 권리는 그 어디에도 없으니 말이다.


‘음. 나로서는 개방 상태 때의 헛점을 알아 만족한달까. 앞으로는 교묘히 진실을 숨긴 언행에 주의해야겠어.’


분명 무무카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애당초 못한다. 원리는 모르지만, 개방 상태 때에는 그러한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의 확답도 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진실을 발설하지 않을 순 있다. 딱히 거짓말을 못할 뿐이지, 말하지 않으려거든 마음대로 숨기는 게 가능했다.


그래서 무무카케는 숨겼다. 더더욱 강한―― 정신 조작에도 이를 [암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리아는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이것으로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였던 무무카케는 단숨에 평온을 되찾았는데, 놀라는 그에게 리아는 상냥하게 말했다.



“처음에도 말했었죠? 저흴 건드리지 않는다면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고. 숨긴 것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딱히 피해받은 게 없어요. 당신으로서는 동족의 원수인 인간에게 모두 다 털어놓기 힘들다는 것도 알고요. 그러니 마음 졸이지 않으셔도 돼요. ······인디아 씨도. 그를 몰아세울 만큼 염치가 없는 건 아니겠죠?”

“녀석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말이지.”

“정말일 거예요. 세인트리안에서 벌어진 행태만 보더라도 쉽게 상상되는걸요.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겪기도 한 저는 광기에 빠진 인간이 도플갱어를 찾아 죽이는―― 마녀사냥이 없었다고 단언하진 못하겠네요.”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인디아는 입을 다물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침묵하고는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혔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고위층이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인간의 악의가 얼마나 집요하고, 잔혹해질 수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아무도 딱 잘라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리아는 그런 이들보다도 더욱 쉽게 그 사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중세 지구에서도 벌어졌던 사건이었으니까.


이세계라지만 사람 사는 곳은 역시 비슷비슷하다고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지구에 실제로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이미 존재하는 이상, 리아에겐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현실감이 있는 일로 다가왔다.


‘무고한 사람이 희생되어도 멈추지 않을 광기였겠지.’


무무카케의 말에 따르면 그 광기에 희생당한 동족은 무려 전체의 99%다. 80만에 이르던 도플갱어들은 그 숫자가 100단위에 이를 만큼 격감.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마저도 현재는 뿔뿔이 흩어져, 일부 연락되는 이들을 제외하면 생존해있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객관적으로 봐도 지독했다. 종족 마저 다르니 어쩌면 지구보다도 더 잔혹해질 수 있는 게 아닌가도 싶다.


무언가 잘못이라도 했다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것도 아니다. 인간들은 얌전히 동화되어 살아가던 도플갱어들을 학살했다. 심지어 인간 세상이 아닌, 타 종족의 생활권에서 잘 지내던 이들마저 기어코 색출해내어 모두 죽였다고 했다.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신기하겠네.’


그들의 복수는 흐르는 물과도 같이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인간 전체를 증오하더라도 하등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인간은 많다. 100단위까지 줄어든 도플갱어로서는 바위에 계란 치기였다. 복수하기엔 여의찮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한 건 내부에서부터 공작. 일부 힘을 가진 도플갱어를 주축으로 인간의 나라 안에서 뒤흔들기로 한 것이었다. 도플갱어들이 가진 힘―― [암시]를 통해. 본인들의 힘을 쓸 것도 없이 인간들을 분열, 인간이 인간을 죽이도록 유도했다.


수백 년이란 오랜 시간을 들여······.


정확히 언제부터 이어졌는지는 무무카케도 모른다. 박해받고 사냥당한 그때의 기억도 구체적으로 남은 게 없어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도플갱어들은 당시의 원한과 증오를 잊지 않고 오늘날까지 대를 이어왔다.


무무카케도 그 일원으로 수십 년째 애써왔다. 그런 그의 역할은 벨루디스의 고위층의 관계자들에게 접촉하여 분란을 조장하는 것으로, 긴 시간 이어져 왔던 공작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결실을 맺었다.


그리고 이제는 다음 스테이지로 나아갈 차례였다.


――벨루디스의 멸망이란 무대로.


‘시작은 인디아 씨의 부탁이었지만 기가 막힌 운이었네. 암만 베르다드에 있었다지만 여간하면 모르고 지나쳤을 텐데. 설사 무무카케 씨들이 벌인 일에 휘말렸어도 그래. 도플갱어들이 흑막이었다는 사실은 평생 알아내진 못했을 거야.’


마음에 안 들지만, 이게 운명이란 건가 싶기도 하다. 타이밍도 예술적이고. 지금이라도 경마장에 가봐야 하나 고민마저 된다.



“뭐어, 진짜 가진 않을 거지만.”


어깨를 으쓱인 리아는 조심히 무릎 위의 로즈를 내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잘재잘 잘 떠들고 있던 로즈는 놀라면서도 따라 내려선 폴스가 손을 잡아 이끄는 대로 얌전히 옆으로 빠졌다. 그런 둘의 뒤로 유즈라가 재빨리 따라붙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다 한 거 같네요. 말씀드릴 건 다 했어요. 나머지는 여러분들의 몫이에요. 벨루디스의 현 정세라든가, 세인트리안이 꾸미는 일들에 여러 의혹이 생겼지만 그건 앞으로 여러분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죠.”

“이스피리아 공은 힘을 보태주지 않을 건가?”

“그럴 생각이에요, 베르그 전하. 솔직히 조종한다고 들었을 때는 조금 생각이 달랐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제가 낄 자리가 아닌 거 같더라고요. 제게 피해가 미치더라도 그거만 떨쳐내고 관여하진 않을 거예요.”

“그런가······.”


베르그는 아쉽다는 듯이 말을 흐렸다.


그러나 한 번 정한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도플갱어들과 인간 사이에 얽힌 원한은 일이 년이 아니다. 못해도 수백 년―― 어쩌면 인마대전 위로도 올라가야 할 만큼 깊은 것이었다.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만한 일에 끼고 싶진 않다.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었다면 혹시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도 아니다. 선대 촌장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나트알은 2,000년 전에도 지금의 자리에서 홀로 지냈었다. 다른 마을과는 최소한의 교류 정도는 했었어도 그 이상의 관계를 맺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륙 전체가 휩싸였다는 대전쟁 때조차도 아예 세상과 단절하고 고독히 지낸 마을이다. 도플갱어 사냥 같은 일에 참여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들과의 일이 얼마나 오래전인지 모르나, 나트알은 관계가 없으리란 확신마저 든다.


물론 도플갱어 사냥이 끝난 이후 관계됐던 인간들이 나트알에 자리를 잡아 마을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명확히 그랬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굳이 끼어들 생각 따윈 없다.



“저 녀석은 어쩔 셈이야?”


인디아가 턱짓으로 무무카케를 가리켰다.



“일단 제가 데리고 있으려는데, 혹시 볼 일이 남았나요?”

“나중에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 사실은 처음부터 묻고 싶었던 거야.”

“어······, 그렇다면 편한 대로 하시죠.”


자리를 마련해주자 인디아는 일어나 아직 앉아있는 무무카케의 앞으로 갔다. 주교다운 무게를 품고······.


소년 같은 외모와 신장으로 인해 여태 주교답지 않았었던 인디아였다. 몸에 걸친 법의마저도 특유의 껄렁대는 분위기 탓에 그리 어울리지 않는단 생각도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아니다. 사람 자체가 달라진 듯한, 연륜을 느끼게 하는 묵직한 무언가가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질 이 변모는 자타공인,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주교의 위엄이 흘러넘쳤다.


무무카케는 자신의 앞에 선 인디아를 보며 숨을 삼켰다.



“솔직히 도플갱어가 무얼 하든 관심 없다. 성국에 방해라면 처리할 뿐이지. 하지만 지금은 인도의 주교가 아닌, 인디아 빌 쿠리스리움이라는 한 개인으로서 너에게 꼭 듣고 싶은 것이 있다.”


여기서 입을 다문 인디아는 눈을 감았다. 언뜻 보기에는 침착하나 그의 안에서는 마력이 조용하지만 격한 요동이 전해졌다.


한동안 가만히 있던 인디아가 숨을 들이셨다. 그러자 그의 복잡한 감정은 단숨에 가라앉았고, 이내 뜬 그의 눈은 지난날에 봤었던 맑은 빛을 띠고 있었다.


완전히 평온해진 상태가 된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1 위상, 가이란 케아코찰을 조종한 놈―― [암시]를 건 놈은 누구냐?”


확신하는 인디아에게는 아쉽게 됐지만, 그 답은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무무카케는 이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으니까.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개방 상태에서 들은 것이었다. 확실하다. 그렇지만 가장 궁금한 건 직접 들어야 속이 시원한 법.


방해하거나 끼어들면 기분이 상할 테니 얌전히 있어 그를 배려하도록 하자.


그리 마음먹은 리아는 아까 내려준 로즈에게 재밌었냐며, 신경 써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인디아와 무무카케는 정말 관심 밖이었다.


그랬는데――



“우리의 장로이자 현 지도자인 에스쿠드. 아마 그 분이지 않을까 한다. 정확히 가이란 케아코찰이란 인간인지는 모르지만, 수십 년 전, 비슷한 일을 하셨다고 말씀하시는 걸 들었었다.”


똑똑히 울려퍼진 무무카케의 목소리.


리아는 고개를 팩 돌렸다.



“이스피리아 님, 결코 속일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무무카케는 무릎을 꿇으며 깊이 머리를 숙였다.


뒷통수를 쎄게 얻어맞은 듯 얼얼한 기분이었지만 리아는 냉정히 기억부터 되돌려 차근차근 확인해봤다. 그리고 원인을 곧장 찾아냈다.


‘아아. 그렇군. 잊고 있다가 뒤늦게 떠올린 건가? 이런 상황이라면 거짓을 말하는 것도 가능하나 보네. 하긴 잊었다면 본인 입장에서는 일단 거짓이 아니니까.’


놀랐기는 하나 별로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폴스조차 바로 알아차린 사실을 몰랐다는 것에 창피함만을 느낀다.


리아는 얼굴에 피가 쏠리는 것을 느끼며 무무카케를 일으켜 세웠다.



“자자. 얼굴 펴세요. 전 괜찮아요. 이렇게 솔직히 말씀해주시기도 했고.”

“넓은 마음에 감사드립니다.”

“아뇨아뇨. 용서하고 말 것도 없었어요. 되려 이번에도 제가 감사를 전해야 할 판국이죠. 덕분에 또 하나 실증됐거든요.”


무무카케는 예를 담아 머리를 숙였다. 벌벌 떨던 모습도 없이 정중히.


조금은 나아진 반응에 리아는 미소 짓고는 말했다.



“인디아 씨, 더 묻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지금은 그거뿐이었어.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지만.”

“그땐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다른 분들은요?”

“우리도 지금 당장 궁금한 건 없다네.”


고개를 젓는 베르그.


루비아와 라프리트에게도 물었으나 그녀들도 같았다. 더 알고 싶은 건 없는지 괜찮다고만 했다.



“그럼. 여기까지인듯 하니, 저 먼저 실례하도록 할게요.”


라프리트와 루비아, 두 친구를 비롯하여 리카드도 끼게 된 일이기에 마음 같아서는 함께 의견을 나누며 힘을 보태고 싶다. 그렇지만 앞서 말했듯 가벼운 마음으로 낄 자리가 아니다. 편치 않지만 돌아가기로 했다.



“무무카케 씨는······.”

“죄송합니다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요?”


긴장되는지 무무카케는 마른침을 삼켰다. 하지만 이내 각오를 다진 듯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런 부탁을 드릴 처지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디 동족들을 설득할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 말한 그는 입을 꾹 다물고는 움켜쥔 두 주먹을 벌벌 떨었다.


흡사 평생의 용기를 다 쥐어짜 낸 듯한 모습이다. 드라마 말고는 볼 수 없을 듯한 장면으로, 리아가 느끼기에는 말이 안 통하는 폭군에게 목숨을 걸고 진언하는 신하 같기도 하였다.


‘암만 적대하기도 했다지만 무섭게 굴진 않았던 거 같은데······.’


마냥 귀엽게 대하는 것에 고민하기도 했지만, 막상 이렇게 무서워하니 좀 좌절된다.



“동포분들을 만나러 떠나고 싶다는 거죠?”


살짝 침울해진 리아는 되도록 사근사근 물었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무무카케의 떨림은 더욱 거세졌다.



“화, 황당하시다는 건 압니다.”

“아뇨. 별로 그러진 않았어요. 화도 안 났고요. 그냥 물을 뿐이에요. 동포를 만나서 설득하고 싶으시다고요?”

“예······.”


무무카케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두려워하면서도 그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 확고한 의지를 보며 리아는 입꼬리를 올렸다.



“피프스······.”

“이곳에.”


한순간에 피프스가 거울이 뒤집히는 모양새로, 당연하다는 듯 공간을 도약하여 리아의 앞에 도열했다.


모든 넘버즈가 그랬지만 역시나 피프스의 능력도 엄청나다.


황당하게 여기면서도 리아는 한쪽 무릎을 꿇은 피프스에게 명했다.



“바로 부탁해서 미안한데, 무무카케 씨를 따라가 주렴.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것 말고는 모두 네 판단에 맡길게.”

“알겠습니다.”

“고마워.”


리아는 놀라는 무무카케를 돌아봤다.



“딱히 감시할 요량은 아니에요. 저도 분쟁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원활한 조정이 되었으면 하고, 혹시 힘이 필요하거든 피프스의 도움을 받도록 하세요.”

“가, 감사드립니다!”


크게 감격한 듯 무무카케는 피프스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



“기왕이면 좋은 결과가 났으면 싶네요. 힘내세요.”


덕담을 남긴 리아는 몸을 돌려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뒤를 에르와 폴스, 몸을 일으킨 피프스와 무무카케가 따랐다.



『폴스, 미안한데, 여기의 회의가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좋아. 잠시만 로즈 씨랑 같이 있어 줄래? 혼자 어른들 사이에서 심심할 것 같아. 네가 떠나는 것도 아쉬운 듯하고.』

『존명! 맡겨 주십시오!』

『응. 고마워. 해산하면 내 방으로 오고.』


정중히 고개를 숙인 폴스는 걸음을 돌려 애처롭게 표정을 흐린 로즈에게로 갔다.


이윽고 밝은 로즈 목소리가 들린다.


한결 맘이 편해진 리아는 친구들에게 짤막한 작별 인사를 나누고, 에르가 열어주는 문을 지나쳤다.



“조심히 돌아가세요, 리아 양.”


리아는 마중 나와준 리카드에게 살며시 머리를 숙였다.



“라프리트 씨와 루비아 씨를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당분간 바쁘실 테니 연구는 조금 미뤄야 할 거 같아요.”

“뭘요. 괘념치 마시고 리아 양은 다른 일에 집중하세요. 모레부터 3학기 시험이라구요? 모처럼이니 1학년 전체 만점을 노려보세요. 그리고 그대로 기세를 올려 졸업까지 올 만점이란 대기록을 세워보시는 건 어떤가요?”

“후후. 별로 자신은 없지만 그래 볼까요? 최초란 타이틀이라면 학생 시절의 좋은 추억이 될 수도 있고.”

“아······. 그건 무리입니다. 그 타이틀은 제가 먼저 획득해놨으니 말이죠.”

“엑.”

“의도하진 않았지만 죄송하게 됐습니다.”

“치사해요!”

“하하. 먼저 태어나는 것도 능력입니다.”


리카드는 기분 좋게 웃었고, 리아도 즐거워하며 미소를 그렸다.



“고마워요, 리카드 씨. 마음 써줘서.”

“이 정도야 당연하죠.”


넉살 좋게 웃은 리카드는 상냥하게 눈웃음을 쳤다.



“여긴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제 학생들의 죽음도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이 연관됐을 수도 있으니 말이죠. 집요하게 파고들어 꼭 밝혀낼 예정이니 불화 따위 생길 틈은 만들지 않을 겁니다.”

“든든하네요. 하지만 무리하진 마시고요.”

“물론이죠. 제 안위는 이제 저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우우. 뜨겁네요~”


리아는 능글맞게 웃으며 리카드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렀고, 그는 뒷머리를 긁으며 쑥스러워하면서도 입가엔 멋들어진 미소를 그렸다.


지킬 사람이 생기면 남자는 변하기 마련인데, 그 또한 제법 남자다워졌다. 이전의 그보다는 확실히 패기가 있어 보기에도 좋다.


그렇기에 오랫동안 그의 이 행복이 유지되었으면 한다.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락해주세요. 끼지 않겠다 해서 너무 사양하진 말고요. 리카드 씨도 제 친구들처럼 소중하신 분이에요. 도움을 요청하면 기꺼운 마음으로 달려갈 거예요.”

“알겠습니다.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긴다면 그땐 힘을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리카드는 웃음기 없이 진지했다.


쭉정이 같았던 때의 그라면 모를까, 지금의 리카드가 고민하다 때를 놓치진 않겠지.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 리아는 조용히 머리를 숙여 학원장실을 뒤로했다. 솔직히 걱정은 남았다. 원한과 증오의 깊이가 남다르다 보니. 하지만 믿어보기로 한 이상 불안을 억지로 떨쳐냈다.


발걸음도 잘 떨어지지 않고, 오늘따라 복도는 적막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지만, 어쩐지 가만히 있기 힘들었다.


한동안 고민하던 리아는 결국 [염화]를 사용했다.



『에르, [그림자 이동]의 최대 한계 거리가 어디까지예요?』

『그림자만 있다면 이 지상 어디든 갈 수 있어.』


지극히 당연하다는 에르의 말에 주저되던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됐다.



『그럼, 부탁이 있어요. 에르, 저를 세인트리안에―― 대성당에 데려다주세요.』


작가의말

대성당! 리아는 누구를 만나려 그곳에 가는 걸까요?!


안녕하세요 라스티아입니다.

윽. 최대한 1주일 안에 맞춰보려고 했는데 좀 늦었네요.

이상하게 분량도 늘어나 방학 라인까지도 못갔고...

뭐... 어차피 다음화에 가면 되려나요...?

저에게도 방학이 있었으면...

농담이고 다음화에서 또 뵙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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